솔직히 쉬운 영화는 아니다. 필자가 영화를 좋아하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어렵고 간혹 지루하게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만약 영화의 깊게 우러나는 맛을 좋아하지 않는 관객이라면 큰 결심을 하고 봐야 할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여기까지는 일반 관객의 시선에서 본 이 영화에 대한 필자의 첫 소감이다.

 

그러나 196분의 긴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두 번을 더 관람한 필자의 소감은 그럼에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이다. 일단 영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예술이다. 영화 곳곳에서 셰익스피어,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등 고전 작가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벽에 걸린 그림과 포스터는 실제 단편에 들어간 삽화이거나 연극 포스터이며, 전직 연극배우인 주인공 아이딘의 대사는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에 나오는 양심에 관한 대사의 인용이다. 게다가 주인공이 운영하는 호텔의 이름은 셰익스피어의 작품명에서 따온 오셀로일 정도니 감독의 문학에 대한 사랑과 그 깊이는 일일이 다 열거할 수가 없을 정도다. 그 중에서도 이 영화에 가장 큰 영감을 준 작가는 안톤 체호프라는 작가인데, 안톤 체호프의 엄청난 팬인 감독 누리 빌제 세일란은 무려 15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영화 <윈터슬립>을 제작했다고 한다. 편집 기간에만 6개월을 투자한 이 영화는 체호프의 문학을 영화로 옮긴 가장 뛰어난 작품”(시카고 트리뷴)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앞서 밝혔듯이 윈터슬립은 196분의 긴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다. 그러나 영화 안에 들어있는 여러 메시지에 비해 복잡한 편은 아니다. 영화가 연극처럼 두 인물의 대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고, 한정된 장소에서 발생하는 사건들로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키기 때문이다. 다만 인물간의 대화 양상에 따라 에피소드 별로 나눠진다고 볼 수 있으므로, 만약 이 영화가 어렵다고 생각된다면 인물간의 대화 별로 나누어 감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대화 별로 나누어 정리한 후 영화의 중심 소재인 으로 각 장면을 다시 재정리하는 방법으로 감상했다.

 


황량한 들판을 걸어오는 아이딘


 

영화에서 아나톨리아 고원에 위치한 오셀로호텔의 주인인 아이딘은 고립되어 있는 호텔처럼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는 인물이다. 그가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은 인터넷을 통해 지역신문에 칼럼을 기고하는 방법뿐이다. 그는 이 칼럼 작성을 위해 다른 것들은 남에게 맡겨 두고, 타인의 을 절대 넘보지 않는다. 나머지 일은 타인에게 맡기고 잠재적으로 관여되어 있는 모든 일에서 한 발짝 물러나 을 닫아둔다. 이 모습은 영화 초반부의 첫 장면에서부터 연상이 가능한 내용이다. 영화 초반부에서 아이딘은 황량한 곳에서 걸어오는 인물로 등장하는데, 놀러온 관광객 무리가 멀리서 웅성거리는 모습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모습이다.

 

, 첫 장면부터 고독감이 시야를 강타하기 시작한다. 아이딘의 코트는 황량하게 펄럭이며, 겨울바람에 나부끼는 을씨년스러움을 강조한다. 그는 모든 장면에서 온 몸으로 그의 고독감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그럴수록 고독감은 더욱 강조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아이딘을 제대로 응시하는 인물이 초반부에 등장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마치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인물처럼 고립된 호텔과 방 사이를 부유할 뿐이다.

 


아이딘을 응시하는 일리야스



이런 아이딘의 고독감이 초반부에 강조되었기 때문인지 돌을 던지기 전의 일리야스의 시선은 강렬하게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일리야스의 검은 눈동자는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나기 전의 수면처럼 고요하고도 강렬하게 빛난다. 관객의 불안한 느낌은 적중해 일리야스는 아이딘이 탄 차창 쪽으로 있는 힘껏 돌을 던지고, 창문은 여러 조각으로 균열이 일어난다.

 


아이딘이 탄 차의 창문에 일어난 균열


 

이 순간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일 것이다. 아이딘이 닫아놓은 에 균열이 생기는 첫 장면이기 때문이다. 비로소 그는 이 균열의 틈을 통해 타인의 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또한 이 장면은 관객이 균열의 틈을 통해 영화 속 인물들의 이중성을 인식하도록 유도하고, 관객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하는 중요한 장면이기도 하다. 필자도 이 부분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가 알고 있는 나의 모습은 과연 타인이 보는 모습과도 일치하는가? 나의 선함, 혹은 악함은 타인에게도 똑같이 인식되는가? 어쩌면 필자도 아이딘처럼 나만의 에 갇혀 그동안 많은 것들을 무지 혹은 선악으로 나누어 외면해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스스로에 대한 물음과 함께 지옥은 타인이다.”라는 사르트르의 말은 영화 속 아이딘의 모습을 통해 구현된다. 타인과의 관계 사이에서 소통하지 못하는 아이딘은 극도의 고독감에 빠져든다. 이는 타인뿐만 아니라 아이딘 본인과의 관계에도 적용되어 아이딘은 이중의 고독감에 빠진다. 그야말로 타인이라는 지옥에 빠진 셈이다. 특히나 아이딘에게는 잘 안다고 생각했던 본인의 모습조차 타인처럼 인식되는 순간이 더 외롭고, 고통스럽기만 하다. 이는 균열의 틈이 벌어질수록 더욱 심화된다.

 


균열의 틈을 응시하는 아이딘


 

그렇다면 이 균열의 틈은 영화 안에서 각 인물들의 사이에서 어떻게 작용하는가? 과연 부정적인 결과만을 불러오는가? 필자는 이 의문을 바탕으로 각 인물의 균열의 틈을 통해 타인의 을 좀 더 구체적으로 엿보기로 했다. 추가적으로 영화의 개봉관이 적어 많은 사람이 접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되어 스토리를 세부적으로 서술했음을 밝힌다.

 

 

* 아이딘 측 인물과 이스마일 측 인물 사이의 균열의 틈 - 빈부와 자존심 사이

 


이스마일과 히다예의 대화장면


 

영화 전반에서 가장 눈에 띄는 균열의 틈은 단연 아이딘과 이스마일의 집안의 대립이다. 외면적으로 크게 부각되는 문제는 집주인과 세입자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아이딘은 이스마일의 집이 몇 달째 집세를 밀렸다며 집사 역할을 하는 히다예에게 투덜거린다. 그러나 아이딘은 이 집세 문제가 본인과 연결되어 있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히다예와 변호사들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한다. 정확히는 위임하는 이다. 왜냐하면 히다예는 모든 문제를 아이딘과 상의하여 해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딘은 이를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무지의 영역으로 취급하고 철저히 무시한다. 타인의 을 바라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 집주인과 세입자의 갈등은 이스마일의 아들인 일리야스가 아이딘의 차창에 균열을 낸 후에 더욱 심화된다. 일리야스를 잡은 히다예는 일리야스를 집에 데려다주며 깨진 차창에 대한 변상을 요구하는데, 이때 이스마일이 날카롭게 응수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스마일은 처음엔 자신의 아들이 그럴 리가 없다며 히다예에게 당당히 맞서다 사실을 확인한 후에는 아이의 뺨을 때린다.

 


일리야스의 뺨을 때리는 이스마일


 

이 장면은 필자에게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 하나다. 사실 이스마일은 본인이 할 수 없었던 강자(아이딘)에 대한 항의를 한 아들이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아들과 닮은 그의 검은 눈동자는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강자 앞에서 그는 아들을 혼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야하기에 아이의 뺨을 때린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스마일의 이중적인 입장은(여기에서도 간접적으로 인물의 이중성이 등장한다.) 아이와 이스마일의 사이를 휘감는 바람소리에 의해 더욱 쓸쓸하게 부각된다. 가난하기에 드러낼 수 없는 자존심이 그의 마음에 바람처럼 불었을 것이다. 이스마일은 결국 참지 못하고 자신의 집 창문을 주먹으로 깨고 만다. 그리고 동시에 이 장면은 아이딘의 균열의 틈을 더 벌려놓는 사건이 된다.

 

이 장면 외에도 아이딘 가족의 식사 시간에 등장한 이스마일의 동생 함디와 일리야스의 등장은 빈부와 자존심에 대한 물음을 다시 야기한다. 아이딘의 가족은 식사시간에 등장한 불청객(함디와 일리야스)을 식탁에 앉아 응시한다. 위에서 아래를 향한 응시는 불편하다. 특히 자선 사업을 하는 아이딘의 아내 니할의 계속되는 질문은 그런 점에서 더욱 불편하다. 차창을 깬 것에 대한 사과를 핑계로 집세에 대한 이야기를 하러 온 함디는 본인의 의중을 숨긴 채(역시 이중성이 등장한다.) 일리야스에게 사과를 강요한다. 아이는 억지로 사과를 하려고 하지만,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한 채 바닥에 쓰러지고 만다.

 

사실 일리야스는 영화 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사이에서 가장 깨끗한 을 가진 인물이다. 본인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행동 또한 감정과 일치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깨끗한 을 가진 일리야스의 행동은 모든 어른들에게 가장 강력하게 영향을 미친다. 그 때문에 일리야스의 돌을 던지는 행위, 뺨을 맞는 장면, 쓰러지는 장면 모두는 영화 전반에서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일리야스의 맑은 은 어른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비추는 거울로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바닥에 쓰러진 일리야스


 

그렇기 때문에 일리야스의 쓰러지는 장면은 니할의 에도 균열을 일으킨다. 감독은 이를 장면의 교차 편집을 통해 표현하는데, 일리야스가 쓰러지는 장면과 교차되는 니할의 놀란 표정은 효과적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때 니할의 에 일어난 균열은 또 다른 방식으로 이스마일 집안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리야스가 인상 깊었던 니할이 남편이 부재중인 틈을 타 이스마일의 집에 방문해 큰돈을 건넸던 것이다. , 이 얼마나 오지랖이 넘치는 상황인가! 니할이 이스마일에게 돈을 건넴으로서 이스마일 집안의 가난은 그녀가 심심풀이로 하는 자선사업의 하위 개념으로 추락하고 만다. 물론 가만히 있을 이스마일이 아니다. 이스마일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니할이 건넨 큰돈을 불길 속으로 던져버리고 만다. 이에 니할은 일리야스의 기절 때 그랬던 것처럼 깜짝 놀라며 이스마일의 집을 뛰쳐나오고 만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운전대를 잡은 니할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 결국 선의라고 생각했던 니할의 행동은 이스마일에게는 선의의 행동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처럼 영화 속의 인물들은 자신만의 에 갇힌 채 자신의 행동만이 옳다고 생각하며 행동한다. 특히 아이딘측 인물들의 경우 이 경향이 더욱 짙게 나타난다. 그들이 생각하는 선의의 행동들은 타인에게는 선의의 행동이 아닐 수도 있음을 그들은 모른다. 단지 부자이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아이딘의 집안과 대비되는 집안인 이스마일의 집안은 선의의 행동만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가난 앞에서 자존심만 세우는 이스마일의 모습, 모든 것을 확실히 맺지 않은 채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는 함디의 모습 역시 옳은 행동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는 그들 모두가 타인의 을 무시한 채 본인의 안에서만 머물렀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이다.

 

 

* 아이딘 집안의 균열의 틈 - 도덕과 위선 사이

 


아이딘 집안 사람들이 식사하는 장면


 

빈부의 키워드를 제하고 나면 이제 주목해볼 것은 아이딘 집안 인물의 균열의 틈일 것이다. 그런데 이 균열의 틈 역시 심상치 않아 보인다.

 

아이딘의 경우는 가장 대표적이다. 그는 칼럼을 통해 본인이 도덕적인 사람임을 어필하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의 글을 써가며 본인 스스로 도덕적이고, 명예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의 그는 세입자와의 문제를 회피하고, 아내의 권태를 못 본 척 하며, 여동생의 불행도 무시하기 일쑤다. 이스마일의 집에서는 한 마디도 못하던 그는 호텔로 돌아온 후에는 이스마일의 집 살림살이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고, 이를 칼럼의 소재로도 사용한다. 강력하게 본인의 의사를 표현하는 여동생 네즐라 앞에서 그는 강력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한다. 물론 발끈하며 자신의 말을 계속 내뱉기는 하지만 여동생을 등진 상황에서 여동생의 말을 무시한 채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그의 행동을 대화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사실 그와 여동생의 대화 패턴은 늘 이처럼 일방적이다. 둘의 대화는 대부분 소통이라고 보기 어렵다.)

 


서로를 응시하는 니할과 아이딘


 

그래도 아이딘이 강자로 군림하는 관계는 있다. 바로 아내 니할과의 관계이다. 니할의 모든 것은 아이딘의 재력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그는 아내와의 관계에서 본인을 강자라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아이딘은 본인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니할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한다. 니할은 이런 아이딘의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모습을 경멸한다. 그러나 그녀는 동시에 아이딘의 물질적인 안락함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래서 니할은 이 권태의 늪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자선사업을 추진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부분에서 순종적인 편이던 니할은 자신의 고유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자선사업에 관여하려는 아이딘을 못 견뎌한다.

 

만약 니할의 자선사업이 정말 도덕적으로 우러나와서 하는 행동이었다면 니할의 태도는 공감을 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듯이 그녀의 자선 사업은 타인을 향한 진정한 자선 사업이 아니다. 자신의 권태를 잊고, 삶의 의미를 찾게 해 줄 방법일 뿐이다. 아이딘은 이런 니할의 태도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비판한다.(이와는 반대로 네즐라는 니할의 자선 행위를 직접적으로 비판한다.) 니할은 결국 이스마일에게 돈을 건네는 자선 행위를 통해 극단적으로 아이딘의 통제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이는 실패로 끝난다. 그리고 이 자선 행위는 오히려 위선으로 변질되고, 결국 그녀는 그녀 스스로 경멸하던 남편의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모습에 더 가까워진다.

 


니할과 대화를 나누는 네즐라


 

그렇다면 네즐라는? 역시 자신만의 에 갇힌 인물이다. 그녀는 식사 자리에서 다소 엉뚱한 이야기를 꺼낸다. 요지는 선이 악에 대항하지 않음으로서 악을 이긴다는 것이다. 이는 영화 전반에 흐르는 선악 키워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 네즐라의 본인만의 고립된 을 보여주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네즐라의 이 논쟁은 아이딘 집안의 인물들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의 을 점점 닫게 만들기도 한다.

 

또한 네즐라는 본인의 결혼생활을 정당화하기 위해 꺼낸 이 논쟁을 정작 실제로 적용하는 단계에서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인다. 본인이 아끼는 컵을 깬 가정부를 어떻게 벌을 줘야하나 니할과 대화하는 장면에서 이 아이러니는 더욱 돋보인다. 그녀는 모든 문제에 있어 자신만의 논점이 옳다고 확신하며 자신의 문제는 정당화시키고, 타인의 문제는 신랄하게 비판한다. 마치 본인의 상처가 세상에서 가장 큰 것처럼 포장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이딘과 다투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다음 대사를 보자.

 

난 삶의 방향을 설정할 열정도 없지만 그러는 오빠는? 오빠랑 상관도 없는 일에 좋은 시절 다 날렸잖아. 연금술사처럼 무모하게 사는 거 지겹지도 않아? 오빠 문제가 뭔지 알아? 고통 받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속이는 거야. 토 달지 마. 내 말 인정해. 용감하게 진실에 직면해야 해. 더 사실적인 걸 찾고 있다면 파괴적이 돼야 해.”

 

네즐라는 본인도 고통 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모순적인 논쟁으로 속이면서도 오빠에게는 사실적인 걸 찾기 위해서는 용감하게 파괴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비판한다. 결과적으로 도덕과 위선 사이에 선 네즐라는 아이딘의 집안 인물 중에서도 가장 아이러니한 존재, 아이러니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처럼 아이딘 집안의 인물들은 도덕과 위선 사이에서 도덕을 지향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위선에 가까워지고 만다. 역시나 원인은 타인의 을 의식하지 않은 자기 자신으로의 고립이다.

 

 

* 아이딘 스스로의 균열의 틈 - 본인과 타인 사이

 


창 너머를 응시하는 아이딘


 

이제 가장 내부 균열의 틈이 남아있다. 바로 아이딘 스스로의 균열의 틈이다. 이는 영화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일리야스가 던진 돌에 의해 생겨난 아이딘의 균열은 영화 속에서 여러 인물과 부딪히며 점차 벌어져간다. 그는 점차 타인의 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다만 영화에서는 이 과정에 대한 인식이 드러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타인의 균열의 틈에서 본인의 모습을 발견한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글을 쓰기 위해 이스탄불로 떠나던 아이딘은 기차역에서 알 수 없는 깨달음을 얻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마침내 돌아온 아이딘은 창문 너머의 니할을 응시하며 독백한다.

 


기차길에 서 있는 아이딘


 

니할, 나 안 갔어. 못 갔지. 늙어서일 수도 있고 미쳐서일 수도 있고 내가 달라져서일 수도 있지만 좋을 대로 생각해. 나도 모르겠으니까. 하지만 내 안의 새로운 내가 나를 놓아주지 않네. 나한테 가라고 하지 마. 이스탄불에 갈 이유가 전혀 없다는 걸 알았어. 가 봤자 모든 게 낯설 뿐.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이걸 알아줘. 내겐 당신뿐이라는 사실.”

 

놀랍게도 일련의 사건들은 열리지 않을 것만 같은 아이딘의 의 균열의 틈을 벌리며 을 점점 열리게 만든다. 이제 아이딘의 균열의 틈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긍정적인 의미로 재탄생하게 된다. 다만 이것이 니할에 대한 사랑으로만 언급되며 끝난다는 점은 아쉽다. 아이딘은 니할을 향한 독백에서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음을 인식하고 있으나 그 실체를 정확히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크린 밖의 관객 역시 아이딘과 같은 입장에 놓여있다. 영화가 끝난 후 관객은 여러 메시지를 통해 많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지만 답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열린 메시지는 관객의 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하다. 그러나 필자는 개인적으로 영화의 결말에서는 감독이 의도한 하나의 생각이나 메시지로 정리되며 끝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윈터슬립>의 경우는 꽤어렵고 아쉽다고 생각되었다.

 

그래도 마지막 장면을 통해 관객들은 그가 윈터슬립’, 드디어 겨울잠에서 깨어 봄날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음을 확신할 수 있다. 아이딘의 고독한 은 마침내 어느 봄날에 활짝 열릴 것이다. 그리고 아이딘의 열린 은 외부에도 영향을 미쳐 타인의 까지도 열게 만들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관객들의 차례다. 스크린 밖의 관객들은 아이딘이 그랬던 것처럼 타인의 을 엿보는 것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을 열 준비가 이미 되어있기 때문이다.


* 사진 출처 : 네이버영화


  

요리 프로그램이 대세입니다. ‘삼시 세끼’에서 차승원 씨의 요리 솜씨로 큰 화제가 되었는데, 최근엔 전문 셰프들이 각자의 개성대로 음식을 맛깔나게 선보이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보다 보면 절로 군침이 나오지만, 그동안 가지도 않던 주방으로 가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요리사의 캐릭터와 개성이 잘 나타냈지만, 그중에서 백종원 씨를 보면 캐릭터 설정을 잘 한 것 같습니다. 까다로운 식재료나, 어려운 조리 기법을 요구하지 않고, “집에 그냥 있는 거로” 하면 된다는 그의 지론이 시청자의 호감을 얻고 있는 듯합니다.


백종원 씨의 흥행은 개인뿐만 아니라, 식품업계에도 내심 반색하며 기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주가 나서도 막을 수 없었던 ‘메르스’로, 소비시장이 많이 침체하였던 차에, 이런 요리 프로그램의 흥행은 다시 실낱같은 희망이 찾아온 것이죠. 그래서인지 요즘엔 백종원 씨를 광고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데요. 그렇다고 모든 광고에 출연하지는 않았습니다. ‘슈가 보이’라는 별명이 있음에도 그에게 들어온 설탕 광고 제의를 거절하는 것에서 신중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쌓아온 인기에 묻혀가기보다, 그의 전문성을 더 부각하고 인지도를 지키는 전략인 것입니다. 캐릭터를 설탕에 묻어가는 것 대신, 치약 광고를 선택한 것도 그런 맥락의 선구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센소다인을 쓰니까 시린 게 없어졌어요. (GSK, 2015)


 

30초 동안 제품은 딱 2번 노출했고, ‘센소다인’이란 단어도 대사에서는 한 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간결하다고도 볼 수 있지만, 언뜻 보면 이상합니다. 대부분 치약광고는 ‘어느 어느 성분이 들어가서, 플라그를 제거하는데 탁월하다’라는 기능의 어필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빅 모델’의 경험을 들어 시린 이에 탁월함을 소구합니다. 그만큼, 백종원이라는 ‘빅 모델’에 대한 의존도가 강한 것입니다. 요리를 업으로 하는 모델의 전문성과 모델의 인지도에 기대어 치아와의 연관성은 매우 깊은 점에 착안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문성과 인지도를 모두 갖춘 ‘빅 모델’을 씀으로써, 브랜드 인지도 또한 높이려 한 것이겠죠. 그러나 모델에 의존도가 너무 커진 광고는, 광고에 나온 모델만 부각시킬 뿐, 브랜드는 소위 ‘아웃 오브 안중’이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모델을 쓴다는 것은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인지도가 높은 ‘빅 모델’을 쓸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광고료 지출은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어마어마하기 때문입니다. 그 어마어마한 비용을 내고도 쓰는 이유는 아마 ‘이 사람이 유명하니까 이 사람이 우리 제품 광고에 나오면 같이 유명해지지 않을까’라는 발상일 것입니다. 얼핏 보면 당연한 이치인 듯하고, 실제로 많이들 썼습니다. 과거에는 그런 경향이 짙었죠. ‘밀키스’ 광고가 대표적인데, 롯데에서 89년에 시판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음료가 원래 없던 게 아니었습니다. 코카콜라 사(社)의 ‘암바사’는 1984년에 먼저 나왔습니다. 5년 동안 시장을 점해있는 브랜드, 그것도 세계적인 브랜드 코카콜라를 상대로 도전장을 내민 것입니다. 양이며, 맛이며 두 음료는 큰 차이가 없기에, 차별화를 두기에는 더더욱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런 기호식품에서는 기능보다는 인지도의 우위가 시장의 우위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얼마만큼 소비자가 그 브랜드를 기억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여기서 롯데는 승부수를 띄웁니다.

 


사랑해요, 밀키스 (롯데칠성, 1989)

 

80년대 후반은 홍콩영화의 황금기였습니다. [영웅본색], [천녀유혼]과 같은 작품으로 주윤발과 장국영 등이 스타덤에 오릅니다. 한국에서도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롯데는 이 인기에 주목한 것이죠. 그래서 국내 최초로 외국인 배우를 광고 모델로 내세웁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밀키스가 암바사의 판매량을 제치고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이죠. 더욱이 광고 말미에 ‘사랑해요 밀키스’라는 멘트는 어색하지도 않고 잘 소화하였습니다. 주윤발의 등장으로 이후 광고들에서는 홍콩 배우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초콜릿 광고에서는 장국영이, 음료 광고에서는 왕조현까지 나왔습니다. ‘빅 모델’의 효과적인 사용으로 브랜드의 기존에 가진 가치 그 이상의 시너지와 함께 광고 시장의 트렌드마저 바꾼 것입니다.

 

기호식품은 느낌과 감성을 자극해야 합니다. 모든 이들의 감성을 맞출 수 없기에, 특정한 타겟을 목표로 합니다. 타겟이 60대라면, 60대에 관심 키워드를 골라내야 하고, 10대라면 10대의 최근 관심사를 잡아내어 공략해야 합니다. 롯데의 선택도 그랬을 겁니다. 당시 10~20대는 주윤발은 영웅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 주윤발이 밀키스를 들고 있기만 해도, 대중에게는 큰 각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2008년 PMP 광고도 ‘빅 모델’ 경쟁이었습니다. 
빌립에서는 소녀시대를, 코원에서는 소지섭을 내세워 10~20대 시장을 타겟으로 삼았습니다.


‘빅 모델’은 이처럼 신생브랜드를 우위로 가져다 놓기도 하고, 브랜드에 기대 이상의 힘을 더해주기도 합니다. 맛있다를 100번 설명하는 것보다, 딱 한 마디로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게 빅모델의 역할인 것이죠. 어디서든 그 모델이 등장하면 바로 브랜드가 떠오를 수 있게, 한마디로 그 모델이 가진 친근함과 인지도가 브랜드에서 시너지를 기대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모델도 다른 광고에 자주 나오면 어떻게 될까요? 같은 모델이 이곳저곳 나온다면,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가 떨어지게 됩니다. “아, 쟤는 돈 되는 곳이면 다 나오는가보다”라는 생각이 들게 되면, 광고는 일개 상술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광고주는 그런 생각을 막기 위해서 그 모델을 되도록 오래 잡고 싶어 합니다. 유명한 모델이 지속적으로 한 브랜드에 나오면, 그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는 제고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상첨화(錦上添花)라는 성어는 다들 아실 겁니다. 옷감 중에서 으뜸인 비단이라도, 곱게 꽃을 수놓은 비단에 눈이 먼저 가게 됩니다. 광고를 비단이라 본다면, ‘수놓은 꽃’은 모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소비자에게 이목을 끌게 하고, 브랜드를 돋보이게 만드는 것, 그것이 오늘날 ‘빅 모델’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모난 돌은 삼재인지 몇 년 전부터 봄이 참 혹독했다. 그래도 모난 돌은 진심을 담아 열심히 하면 될 거야하고 사람들이 알 거라고 생각했다

올해 봄을 보내다 보니 꼭 그렇지도 않았나 보다.

 

저마다 예쁘고 잘 다듬어진 돌이 좋으신지. 모난 돌을 잡았다가 내려놓는다. 모난 돌은 실눈을 뜨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다들 쓰잘데기 없고, 부적합하다고 한다. 문 고정할 때나 잡다한 일 할 때만 필요할 뿐이란다.

 

모난 돌은 눈물 찔끔 흘리며, 몸을 불태워 사람들의 손에 뜨거운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루는 모난 돌은 일광욕을 하고 와서 사람들이 오길 기다렸다. 한 사람이 모난 돌을 잡으려하다 살짝 데었다. 모난 돌의 복수로 속 시원한 감정도 한 순간.

 

그 사람이 하는 말에 자신의 행동이 소용없음을 알게 되었다. “역시나 빛깔 좋은 것이 모든 것이 완벽하고 미래지향적이야라고 한다모난 돌은 위축되어 왜 나를 어여쁘지 않을까. 왜 사람들은 날 안 좋아할까. 왜 나는 들러리인가 항상 잡다한 일은 나만 하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깊이 들어간다.

 

모난 돌은 하는 일마다 뽐내고 포장해야만 한다는 걸 새삼 느꼈다. 진심을 다해 뭔가를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는 걸 느꼈다. 사람들의 마음에 쏙 드는 외형과 성격으로 다듬어져야 한다는 걸 알았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모난 돌은 올 봄에도 옆에 있는 사랑받는 돌에게 KO패를 당했다.

 

모난 돌은 치기 어리게 뜨거운 모습을 보여주지 말아야 했고, 표를 내지 않고 참으며 항상 쿨한 모습 보였어야 했다.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하는 시기인 화사한 봄에 이놈의 성질머리 때문에 쓰잘떼기없는 모난 돌 신세다.

 

누가 그러더라.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 모난 돌은 정 맞는다고. 굴러온 둥글둥글한 돌이 그나마 쓰이고 있던 모난 돌을 처량하게 만들었네. 아니다. 잘 다듬어지고 보기 좋은 돌은 수집하고 모난 돌은 저 멀리에 놓아버리는 사람들 탓하고 싶어진다.

 

그 와중에도 봄 내내 사람들의 선택받으려 차가운 달빛과 뜨거운 땡볕을 오가던 모난 돌은 극단의 쿨함과 뜨거움을 경험하며 서서히 금이 가 쪼개져가고 있다. 어차피 손으로 내던져질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모난 돌은 몸이 쪼개져도 스스로 떠나기 전까지 예쁜 돌 인 척해보려 한다. 그럼 조금이라도 어여뻐 여기셔서 날 데려가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모난 돌은 과연 날카롭기만 하고 쓸 데가 없을까.

모난 돌은 올해 여름을 어떻게 보내게 될까. 지금처럼 지내면 모난 돌은 모래가 되어버릴 것 같다.

박노해 시인은 여름이 열음이란다. 창문을 열고 옷깃을 열고 가슴마저 활짝 여는 계절이라고 한다모난 돌에게도 마음이 활짝 열리길 바란다. 마음에 구멍이 나서 열려서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모난 돌이 되길 바란다. 지금의 모습에서 느영나영 잘 살아갈 수 있는 모난 돌이 되길 바란다. 누군가에게 꼭 선택을 받으려고도, 사랑만 받으려 하는 삶을 살지 않길 바란다

내 마음 속 모난 돌을 포함해서 이 세상의 모난 돌이여.



#느영나영 모난 돌

#느영나영 여름이네

 

3주 전부터 인턴기자로 일하고 있다.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조급해지고 이내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그토록 바랐던 인턴이었는데 막상 와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적어도 나는 무언가 생각하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여기서 하는 일은 대부분 무언가 생산해내는 일에 가깝다.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을 구태의연하게 표현하자면 이상과 현실의 괴리다. 물론 그런 우려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언론인이 된 선배들의 조언, 책의 구절, 퇴직한 언론인의 푸념 등에서 그런 기미를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간접경험과 직접경험의 차이는 컸다. 말로 수차례 듣던 이야기를 현실에서 마주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혹자는 내게 말한다.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일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물론 이런 말 해주는 사람들 마음 잘 안다. 또 고맙다. 그러나 의미 부여는 스스로 하는 것이다. 아무리 옆에 있는 사람이 의미 있는 일이라 말해줘도 내가 그걸 느끼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남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기울이는 사람이었다면 모를까. 냉정히 말해 의미 없는 일은 억지를 부린다고 의미 있는 일이 되지 않는다.

내가 하루 종일 붙잡고 있는 일이 의미 없게 느껴지고 재미조차 찾을 수 없다면 그 일은 안 하는 게 맞다. 그런데 슬프게도 그럴 용기는 또 없다. 왜냐면 대안이 없으니까. 총체적 난국이다. 대안을 찾기 위한 시도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항상 돌아선다. 지금까지 해온 게 아깝기도 하고 지금껏 온힘을 다해 준비한 적 역시 없어서 후회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많은 걸 잃어간다. 운 좋게 꿈에 가장 근접하게 됐는데 여전히 꿈은 멀게만 느껴진다. 꿈과 대안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는 사이 자존감은 추락하고 용기와 도전의식 따위는 희미해져만 간다. 함께 언론을 준비했던 친구들은 하나둘씩 평범한 샐러리맨이 되어 간다. 그들이 부럽다. 적어도 갈팡질팡하지 않고 하나의 선택을 내린 것일 테니까. 그 과정에서 그들에게는 어떤 소신 같은 것이 생겼을 것이다. 반면에 나는 꿈과 대안의 중간지점에 놓인 애매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속된 말로 이도저도 아닌 놈이 된 것이다.

어렸을 적에는 이런 고민을 어떤 식으로든 유예할 수 있었다. 어른이 된 다음에 고민해도 늦지 않아, 라는 식으로 말이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누가 봐도 어른이어야 할 나이가 됐다. 지난날처럼 마냥 세월아 네월아 방황의 늪에 빠져 있을 수 없다. 꿈을 예리하게 조정하든, 새로운 대안을 찾든 결정을 내려야 할 때다. 1년 후에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싶지는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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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서울시가 이번 달 27일부로 대중교통요금을 인상하기로 했다(버스:150~400원, 전철: 200원). 서울시와 교통시스템이 연계된 인천과 경기도도 각각 요금인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12년 2월에 서울시가 단일인상분으로는 역대 최고치인 150원을 올린 이후(1000원→1150원) 3년만이다. 물론 박원순 시장 임기동안 대중교통요금이 올랐다고 해서 박원순 시장 개인만을 비난하는 건 분명 부당하다. 그간 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공사, 서울시 시내버스 운송사업 조합 등 각 운영 주체의 지속적 적자로 인해 요금인상이라는 고육지책이 어느 정도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표심을 의식해 손도 안대고 있다가 후임자에게 폭탄을 떠넘긴 전임시장들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박원순 시장 임기 4년여 동안 수도권 전철 기본요금은 350원이 인상되었다.”

이번 대중교통요금 인상안은 운송원가 공개나 사전 공청회 및 시민참여 토론회 없이 최종 확정되었다. 사진 속 박원순 시장 뒤의 '시민이 시장'이라는 문구가 무색하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6/10/0200000000AKR20150610174100004.HTML?input=1195m)

그렇다고 서울시의 수장인 박원순 시장에게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는 이유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시민 의견이 전혀 반영이 안 되는 ‘서울시의 허울뿐인 공청회 제도’이고 두 번째는 대중교통업체의 지속적 적자에 대한 그 '구조적 원인'을 제대로 분석도 안하고 무조건 인상요금의 방식으로 시민들에게 그 책임을 떠넘긴다는 점이다. 구조적 원인으로는 대중교통업체의 방만한 경영과 대중교통업체 임금구조에 대한 부당한 노사 관행,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의 확대를 들 수 있다.

있으나 마나한 공청회

부실한 공청회 제도에 대해 살펴보자. 서울시는 올해 4월, 운영적자에 따른 대중교통의 서비스 질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대중교통 요금 인상안 입법을 예고했다. 그리고 요금인상에 대한 시민여론을 참고하고 수렴하기 위해 이번 달 10일에 공청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하지만 예정되었던 공청회는 무산되었다. 서울시는 노동당 서울 시당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본부 노조원 등의 요금 인상안 반대 시위로 인해 무산되었다고 변명하지만, "서울시가 요금 인상안 발표시점을 이미 못 박고 진행하는 공청회는 그 자체로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 노동당의 항변은 분명, 현행 서울시 공청회 제도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정책 설정 과정에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후, 합의한 최종안을 발표하는 게 '올바른 순서'라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에도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가 요금인상안을 우선 철회한 뒤, 원점에서 '요금 인상의 타당성'에 대해 치열하게 시민참여토론을 할 생각이 없는 이상, 시민들과 의견을 나누겠다는 취지의 공청회는 말 그대로 ‘시민들과 의견만 나누는’ 반쪽짜리 공청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시 관계자는 공청회 무산 직후 추후 공청회 일정을 다시 잡겠다고 말했지만, 인상된 요금이 적용되는 6월 27일까지 불과 2일밖에 안 남은 현 시점에서 공청회 재개 일정은 감감무소식이다.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는 말로는 참여행정을 지향한다고 외친다. 하지만 정책 설정 단계에서 시민참여를 배제한 채, 자기들끼리 방향을 이미 결정한 정책에 대해 시민의 의견을 듣겠다는 공청회는 그저 '사후적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한 하나의 요식행위에 불과할 뿐이다.

대중교통운영 적자의 책임은 과연 시민에게만 있는가?

대중교통업체 만성적자의 구조적 원인을 요금인상으로만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일까? 서울시 지하철을 주관하는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 및 서울시 버스조합의 경영진은 단지 적자로 인한 회사 경영의 어려움만 강조하고 자신들의 ‘예산운용 투명성’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수많은 공기업이 부실한 감시를 틈타 방만한 경영으로 적자를 내고 자신들의 잇속만을 챙기는 마당에, 적자의 원인으로 자신들의 부실한 기업경영 문제를 꼽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염치없는 행동이다.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이 서울시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적자가 각각 1,723억 원, 2,658억 원에 달했다. 경영평가에서도 서울메트로의 경우 2013년 행정자치부 평가에서 ‘다’ 등급, 서울도시철도는 지난해 꼴찌 등급인 ‘라’ 등급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메트로 기관장은 260%, 직원들은 140%의 성과급을 받았고, 서울도시철도는 기관장과 직원 모두 100% 이상의 성과급을 받았다. 회사 적자가 수천억 원에 이르는 와중에 자기들끼리 성과급 잔치를 벌여놓고, 시민들에게 운영적자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겠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서울시와 그 수장 박원순 시장은 그들의 불투명한 경영에 대해 감시, 견제해야 할 의무는 제대로 이행하고 요금인상안 카드를 꺼내는 것인가?

과연 누구를 위한 요금인상인가?

서울시와 대중교통 운영기관 경영진은 요금 인상 필요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회사 직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임금인상을 실현하고 그로 인한 대중교통 서비스 질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울시 택시 기본요금 인상의 사례를 보건대, 요금인상을 통한 대중교통 서비스 질 개선은 물론이고, 임금인상을 통한 직원들의 처우 개선 역시 장담할 수 없다. 지난 2012년 말, 택시를 대중교통에 포함시켜달라는 이른바 ‘택시법’이 국민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국회에서 무산된 후, 서울시 택시 업체의 기본요금인상 요구가 거세어졌다. 그러자 2013년 10월, 박원순 서울 시장은 "시민 서비스 개선과 운수종사자 처우개선이 동시에 이뤄지는 첫 택시요금 인상이 되길 기대한다."며 시민들의 의견 수렴 없이, 2400원이던 택시 기본요금을 3000원으로 갑자기 인상하였다. 일부 택시기사의 승차거부와 불친절한 태도 등 당시 택시업계의 실종된 직업윤리의식 회복이 순서였지만,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는 택시업계의 자정의지만을 믿고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였다. 기본요금 인상 이후 2년이 지난 지금 시민들이 느끼는 택시 서비스의 질은 크게 향상하였는가? 무엇보다 ‘택시 기사들의 처우’는 개선되었는가? 일부 몰상식한 기사들의 승차거부는 여전하고, 택시 기사들이 느끼는 ‘후생의 개선’역시 미미하다. 택시회사 업주들이 기본요금 인상분만큼, 택시기사들에게 부과하는 ‘사납금’을 올리는 바람에 기사들의 실질임금 상승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본요금은 올랐지만 사납금 납부 후, 기사들이 손에 쥐는 돈은 종전과 별반 다를 게 없게 되었고, 시민들 역시 비싼 가격에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회사와 운수 종사자 사이의 부당한 임금 관행 구조개선 없이 행해진 '원칙 없는 기본요금 인상'은 택시 회사 업주들의 배만 불려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서울시 대중교통 요금 인상 확정에도 전면파업 예고한 서울시 버스노조"

요금인상분이 기사들의 실질임금 상승으로 귀결되지 않는 소위 '배달사고' 관행을 시정하지 않는 이상, 기사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요금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은 헛소리에 불과하다.

(http://www.nocutnews.co.kr/news/4433578)

다시 서울시 대중교통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대중교통요금 인상안이 발표되었지만, 서울시 버스노조는 임금 7.29% 인상, 휴게 시간 보장, 정년 연장 등을 요구하며 이번 달 25일부터 전면파업을 예고했다. 대중교통요금 인상이 결정되었는데 왜 이들은 파업을 하기로 결정하였는가? 이는 요금 인상분이 어떻게 기사들의 실질임금 상승과 근로 복지 개선으로 전환되느냐에 대해 노, 사, 정 간 구체적 논의가 없는 이상, '대중교통 요금인상'과 '해당 운수 종사자들의 처우 개선' 간의 상관관계는 미미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또한, 임금협상을 위한 노, 사, 정 간 비효율적인 기싸움이 벌어질 때마다, 결국 손쉬운 '요금 인상 카드'로 마무리되어 시민들의 부담만 되풀이되는 악순환 구조를 초래한다. 대중교통 업체 일선 기사들의 처우 개선도 해결하지 못하고, 시민들의 가계 부담만 늘리는 대중교통요금 인상안. 과연 누구를 위한 요금인상일까? 그 답은 너무나도 명확하다. 박원순 시장만 모르는 것인가?

현실 직시를 통한 책임행정: 지속가능하지 않은 복지는 포퓰리즘에 불과할 뿐이다.

대중교통 요금인상이 되풀이되는 요인으로 또 무엇이 있을까? 바로 노인인구 증가로 인해 발생하는 지하철 무임승차혜택 대상 증가이다. 서울 지하철의 매년 총 적자 중 약 3000억 원의 손실은 바로 노인무임승차로 인한 것이다. 필자를 싸가지 없는 후레자식이라고 욕한다고 해도 이건 부정할 수 없는 ‘팩트’이다. 정년연장을 위해 노인 기준에 대한 나이를 상향조정해야 하는 여론이 조성되고 있는 마당에, 노인무임승차혜택을 받는 나이 기준 재조정에 대한 문제 역시 재고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대한민국의 노인 인구는 지금보다 더 가파르게 늘어날 것이다. 현행 무임승차 연령을 재조정하지 않는다고 가정하였을 때, 베이비 붐 세대의 대부분이 65세 이상이 되는 2020년대, 지하철 이용인구의 약 40%가 무임으로 이용할 것이라는 통계도 있다.(현재 전국 7개 도시철도의 하루 무임승차 인원은 전체 수송인원의 16%, 환경일보) 상황이 이런데도 서울도시철도와 서울메트로는 노인무인승차로 인한 적자에 대해 손실보전 책임을 중앙정부에 떠넘길 뿐, 폐지나 혜택축소에 관해서는 거의 입을 닫고 있다. 박원순 시장 역시 노인 표심을 의식해 노인 무인승차로 인한 적자 문제를 단 한 차례도 언급한 바 없는 걸로 안다. 물론 요금 인상이 적자해소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행정참여의 투명성 문제와 대중교통 관련 공기업의 부실경영, 요금인상이 기사들의 실질임금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 부당한 임금구조, 방만한 무임승차복지 제도에 대한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고, 그때그때마다 요금만 올리는 임기응변식 방법으로는 대중교통운영 적자해소의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 현재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는 구조적 원인은 외면하고 그 책임을 시민들에게 떠넘기기만 하고 있는 것이다. 대중교통 운영기관의 지속적인 적자에 대한 구조적 문제에 대해 시민들의 실질적인 참여를 보장하는 '참여행정'의 내실화와, 원칙과 신뢰를 바탕으로 공익을 우선시하여 특정이익단체에 휘둘리지 않는 '책임행정'이 동시에 필요한 시점이다.


* <철서구West of the Tracks>의 감독이 시골과 도시 세계 사이에서의 성장, 영화 교육과 다큐멘터리 훈련에 대해 말한다. 변화하는 중국의 민낯과 사회경제학적 법칙의 중력이 형성한 삶의 장대한 초상.

 


격변의 대지를 필름에 담다 - ①

 

 

<철서구>(왕삥, 2003)


영화를 많이 봤었나? 당신에게 특별한 영향을 준 영화는 무엇이었나?

 

우리는 하루같이 여러 장르의 영화들을 많이 보았다. 나는 비록 시네마의 역사가 겉으론 매우 풍부해 보이지만, 또한 상당히 단순하다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었다. 즉, 처음에 당신은 여러 영화제작자, 학교, 국가적인 전통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체계적인 방식으로 그 분야를 검토하면, 그것의 전반적인 풍경에 대해 상대적으로 포괄적인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사는 매우 짧은 반면, 예술사는 매우 길다. 100년이 좀 넘는 역사를 지닌 시네마는 오래된 형식이 아니다. 거기다, 활동사진motion pictures이 탄생하고 얼마 안 있어, 그 형식은 이미 사람들의 일상적인 문화에 침투해 들어왔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시네마는 문화생활의 필수적인 부분으로서 그 영향의 정점에 다다랐다. 여러 학교와 전통이 생겨났다.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과 소련. 각각은 상대적 환경과 사회적 문맥에 따라 형성되었다. 각 사회의 시네마에는 고유한 기능과 필요조건이 있었다. 가령, 미국에서 영화가 재빨리 상업적 이익에 기여하는 것으로 바뀌었던 반면, 소련에서 영화는 프로파간다의 수단이 되었다. 처음부터 나라별로 실험과 탐구는 상이했다. 시네마 혁신─형식적. 예술적 특성과 기술적 진보 모두에 있어서─이 취한 방향들은 지역의 사회문화사와 연관되어있다.

 

학우들과의 논의에서, 당신은 촬영기법과 같은 기술적인 물음들에 집중했었나, 아니면 이미 대개 영화제작으로 관심이 바뀌어 있었나?

 

단지 촬영기법만 한정하진 않았다. 시작부터, 우리의 관심은 특정한 측면 대신 전체를 쥐어 잡는 것에 있었다. 첫 해는 진정 시네마─역사, 동시대적 발전, 그리고 여러 국가의 전통에 대해─에 대해 배웠다. 요컨대, 목표는 영화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였다. 꼬박 일 년 동안 이 방식으로 작업한 후에, 우리는 영화를 볼 때마다 기본적인 요약과 평가를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영화제작에 있어서 기본적인 방향성은 점차 명료해졌다.

 

당신이 영화제작에 눈을 돌렸던 90년대 중반, 중국 감독들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다. 당시 중국 시네마가 당신의 생각의 영향을 주었나?


아니다. 나는 그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당시 영화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제작자 개인을 싫어한다는 말이 아니다. 사실, 비록 몇 편의 영화들이 1980년대 이후로 국제적 권위의 상을 받았지만, 그것들은 여전히 문화적으로 매우 황량했고, 세계적인 예술의 특성인 풍부함과 예측불가능성이 결여되어있었다. 모던 아트는 삶에 대한 확장된 이해를 포함하지만, 당시 영화들에 그런 의미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왜냐고? 문화적 표지cultural markers 또는 이정표의 문제에 더하여, ─내가 보기에─PRC[각주:1]의 체제establishment 하에서 지속된 영화 제작이 주된 문제였다.

 

1990년대에 영화제에 참여하기 위해 정부의 승인 없이 해외로 몰래 작품을 반출했던 영화제작자들은 어떤가? 그들은 상대적으로 독립적이고, 더 이상 제도적 체제institutional establishment 속에서 영화를 만들지 않지 않나?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내가 체제 속의 영화제작이라고 말할 때, 누구라도 비난하려는 의도는 없다. 뭘 의도한 거냐고? 간단하다. 체제의 영화들은 동시대적 문화와 모순되거나 충돌하는 몇몇 고유의 특징들을 갖고 있다. 체제의 관점은 여전이 영화 속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아직 동시대적이지도, 진정으로 현대문명의 작업도 아니다. 어떤 점에서, 또한 이건 중국 시네마의 역사 때문이기도 하다.

 

<철서구>(왕삥, 2003)

 

이 말은 당신이 이른 20세기 중반 이후 수많은 영화들을 봤고 동시대 영화를 그 당시와의 연관 속에서 본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오, 그렇다. 우리는 모든 영화들을 봤다. 당신이 영화계에 발을 들인다면, 영화는 당신의 삶이 되므로 당신은 영화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언제나 이 작업을 해왔다. 여전히 매일 영화를 본다. 이건 영화제작자로서 내 삶의 일부다. 중국의 영화사를 보면, 영화가 중국에 들어왔을 때, 그건 마치 땅에 떨어진 씨앗과 같았다. 영화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과 접촉했고, 그들 또한 영화에 대한 의식을 형성했다. 중국인들은 시네마가 새로운 문명을 대변한다고 받아들이지도, 또 다른 문화적 형식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만약 그 상황을 연구한다면, 당시 중국인들에게 시네마는 그저 장난감 정도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영화는 주로 이 새로운 장난감이 상당히 매력적이라는 걸 발견한 몇몇 부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우리가 갖고 있는 당시의 자료는 랜덤 저글링random juggling이나 무대 공연 쇼트들이 전부다. 이건 유럽의 경우와 전혀 다르다. 예컨대, 프랑스에서 영화는 아주 강력한 시네마 문명으로서, 새로운 문명─중국의 경우와는 매우 다르게─으로 성장하였다. 

 

이것이 초기 국지화localization가 수행된 방식이다. 하지만 중국 시네마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국, 유럽과 일본 영화의 영향을 받으며, 여러모로 변화했다. 중국인들은 영화가 단지 갖고 노는 새로운 장난감이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문화를 암시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건 또한 중국 자체가 매우 급속히 변화하고 있던 시기와 겹쳤다. 정치와 경제의 발전은 중국 시네마의 역사와 함께였다. 오늘날 통상의 표현은 이 시기를 ‘좌파 시네마’라고 부른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때, 그렇게 정의내리긴 어렵다. 1949년 이전 상하이에서 발전한 시네마는 중국 영화사상 가장 뛰어난 시기였다. 당시 영화들을 세심히 보면, 교과서에서 봤던 버전과는 달리, 씬 뒤에서 이데올로기들의 혼합을 발견할 수 있다. 이제는 역사적 문제가 되었으므로, 이 시기를 차분하고 조리정연한 눈으로 보는 것은 쉬울 것이다. 내 눈에 이 시기의 영화에는 세 가지 요소들이 있다.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있다. 그리고 헐리우드를 표방한, 상업적이고 스타 중심적인 작품도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지적인 전통에 기반을 둔 작품도 있다. 영화를 보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몇몇 요소들이나, 과거 지식인들의 윤리적 표현들, 그리고 동시에 지배적인 스타 시스템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영화는 도시 아방가르드적urban avant-garde이고, 어떤 영화에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리얼리즘의 흔적이 남아있다. 사실, 대부분의 영화는 혼합되어있다. 영화의 여러 스타일은 보통 감독들의 다양한 배경 때문에 생긴다.

 

중국의 영화제작자와 평론가 대부분은 국가(중국 – 옮긴이)의 영화사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다.

 

그건 중국의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유럽의 학자들이 왕왕 중국의 시네마에 대해 논쟁하지만, 중국사회에 대한 제한적인 이해로는 비록 그들이 흥미로운 의견을 제시한다 하더라도, 자세한 연구를 수행할 수 없다. 대조적으로, 그들은 방대한 시간과 에너지를 당면한 문화역사적 배경의 맥락 속에서 자국의 시네마를 연구하는데 투자한다. 국가의 영화사는 이런 종류의 연구로 출현한다. 하지만 중국에는 이와 같은 작업이 없다. 우리의 영화사를 정초하려는 노력─신중하고, 명확하며, 합리적인 노력─이 결핍되어있다. 물론 세계의 영화사와 다른 나라들의 영화사를 이해해야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가의 사회문화적 질서와 동시대적인 영화제작뿐만 아니라, 영화사에 대한 뚜렷한 관점을 갖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전반적인 문화적 맥락 속에서 영화의 본질을 무엇인가? 지금 시네마의 실정은 어떠한가? 영화제작자로서 보건대, 자기이해에 도달하기 위한 인내력을 가져야 한다. 나의 관점은 이렇다.

 

 <원유>(왕삥, 2008)

 

 

당신은 90년대 말에 북동쪽으로, 선양으로 돌아가서 그곳의 사양화한 지구의 철거에 대한 장편 다큐멘터리 <철서구>(2003)을 찍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런 테마로 결정했나?

 

나는 베이징에서 때로 텔레비전 시리즈 작업에 참여하거나 카메라맨으로 일하면서 삼년을 보냈다. 이후 <철서구>를 찍기로 결정했다. 나는 이미 톄시(铁西) 산업지구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선양에서 컬리지에 다닐 때, 주말이면 종종 그곳에 사진을 찍으러 가곤 했다. 그곳의 공장들, 노동자들과 거주자들. 나는 그 장소에 익숙해졌다. 반면에, 그 결정은 또한 우리네 시간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나왔다. 내게 톄시 지구를 상기시키는 고적감desolation─중요하던 역사가 이제 점차 우리 눈 앞에서 쇠퇴해가고, 와해되어가고 있다는 감정─이 있었다. 그 이후, 나의 과제는 어떻게 그런 테마와 수많은 캐릭터를 가지고 상대적으로 일관성 있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느냐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공단과, 그곳의 생산 일과routine,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마주하는 것도 포함되었나?

 

물론이다. 어떤 테마를 정한 뒤에, 모든 영화제작자는 여러 기술적인 접근을 선택할 것이다. 실제로 기술 장비들을 실행 가능하도록 배치하는 법을 고려하는 것, 그게 전부다. 많은 이들은 왜 첫 영화의 러닝 타임이 9시간인지 물었다. 하지만 별다른 이유는 없다. 개인적으로 그건 내게 전혀 특별하지 않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나는 전혀 특이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은 관객들로부터의 저항resistance(저조한 관객수를 말하는 듯 – 옮긴이)을 예상하지 않았나? 그리고 영화 제작에 있어 주된 문제는 무엇이었나?

 

저항? 그런 건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만약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 처음부터 완성할 때까지의 계획을 자각하며 영화에 공을 들여야 한다. 내 직업은 완성하는 것이다. 거기에 현시presentation와 재현representation으로서 언어에 대한 천착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건 주로 나날의 실제 작업과 현실적인 문제들이었다. 나는 공장으로 들어가고, 노동자들과 사귀는 것 등에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모든 건 참으로 간단했다. 영화제작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돈이다. 매일같이 찍고, 매일같이 수많은 세부사항들을 다뤄야 한다. 작업에는 물적 자원의 지속적인 투입이 필요했다. 기본적으로 내 친구들과 가족이 나를 지원해줬다.

 

<원유>(왕삥, 2008)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잠재적인 관객들의 저항을 고려하지 않았나?

 

뭐라고? 영화의 비용은 박스오피스 수익과 다른 문제다. 둘은 연관이 없다. 나는 영화를 만들 때 박스 오피스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걸 완전히 외면하는 것은 아니지만, 둘은 뒤얽혀있지 않다.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그로부터 경제적 이윤을 기대하기 때문이 아니다. ‘예술’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요지는 둘은 서로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다는 것이다. 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고 하자 – 옮긴이). 그건 명백히 큰 이윤을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프로젝트가 중요하다고 믿는 한, 계속해야 한다. 그건 경제적인 문제의식으로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

 

이후 당신은 <철서구>의 테마를 잇는 듯한, 다큐멘터리 두 편 <원유Crude Oil>(2008)와 <석탄 가격Coal, Money>(2010)을 더 찍었다. 엄동설한에 중국 북서쪽 칭하이靑海성의 황야에 있는 유전에서 노동자들을 기록한 <원유>의 러닝타임은 14시간이다. (<원유>는 – 옮긴이)로스 엔젤레스에서 관객들이 임의로 들어오고 나가는 전시관에서 상영되었다. 사실상, 거기 앉아서 영화 전부를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마치 설치미술 같다. 의도했었나?

 

그랬다. 로테르담 영화제를 위한 것이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설치 시네마 섹션을 원했다. 그들은 내게 요청했고, 나는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 영화는 특별히 그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다. 수익은 별로 없었다. 당시 나는 북서쪽에서 작업하고 있었으므로, 편의를 위해 유전을 찍기로 결정했다.

 

이 세 편의 영화들은 모두 중공업이나 에너지 산업과 연관이 있다. 하지만 <원유>에서는 노동자들의 휴게실에서나, 바깥 리그rig(굴착 장비 – 옮긴이) 옆에서나, 대화나 행동이 거의 없다. 영화에 대한 단일한 인상은 심지어 그들이 말을 하거나 주위를 돌아다닐 때에도 끊기지 않으며, 보통 몇 분여간 지속되는 롱 쇼트들은 그 효과를 더욱 강화한다. 이건 관객들이 집단의 유대감뿐만 아니라 이전에 존재했던 공동체와 삶lived life에 대한 강렬한 감상을 품는 <철서구>와는 상반된다. 그러한 대조는 지역의 차이 때문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중국은 변화하고 있다. 과거의 공장들에는 공동체 정신이 남아 있었다. 노동자들의 삶은 공장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이곳의 정규직 노동자라면, 노동 현장에 대한 소유 중 일부를 가진 것으로 간주된다. 유사하게, 사람들의 일상은 공장에서 그들의 노동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옮긴이) 이는 오늘날의 생산시설에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이제는 어디든지 계약-노동 시스템으로 이뤄져있다. 그건 고용이라는 단순한 관계이며, 보통 일시적이다. 유전도 예외는 아니다. 오늘날 중국에서 공무원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계약 시스템에 속해 있다. 본질적으로 노동 현장은 더 이상 당신의 삶과 관계가 없다.

 

 

<원문 p.119-124>
 

 

* <뉴 레프트 리뷰>는 1960년 영국에서 창간되어 격월로 발간되는 잡지입니다. 이따금 한국어로 번역되어 단행본(도서출판 길)으로 출간되긴 하지만, 영어판 잡지에 기고된 글을 선별적으로만 다루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BIG HIP>에선 <뉴 레프트 리뷰>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된 글들을 최대한 번역해서 수록할 예정입니다. 저는 전문 번역가가 아니기에, 분명 오역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혹시 그걸 발견하신 분이라면, 제게 훈수를 두셔도 좋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여기서 공동 번역 작업을 제안하고 있는 셈입니다.


*사진출처:

https://d1tyf8b78tco2j.cloudfront.net/3d16c62a/cea14667/images/b929d2662ab573ede55da76278e346248724a391.1000.jpg
http://www.lightindustry.org/crude_oil.jpg

  1.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중화인민공화국. 중국 (옮긴이) [본문으로]

현대차에 i30라는 차가 있습니다. 당시 국내 시장에선 그렇게 인기가 많지 않던 준중형 해치백이었는데요. 그런데도 파격적인 어필로 당시 여성 고객에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차는 기억이 나실지는 모르겠지만, CM만큼은 한번 쯤 들어보셨을텐데요.


New street icon, i30 (현대차, 2007)


“난 사람 예쁜 사람 이리 많은데, 어쩜 모두 하나 같이 똑같은건지
달라 달라 달라 난 달라 내가 타는 차가 바로 그 차 i30야.”


‘달라, 난 달라’라는 카피가 귀에 감깁니다. 아마 CM을 제작하신 분들도 이 부분에 많은 공을 들였을 겁니다. ‘난 달라’라고 고객한테 강한 어필을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시장에서 수많은 제품에 묻히지 않으려면, 기존과는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어야 하니까요.
이렇게 제품이 차별화된 강점을 내세우는 전략을 USP라고 합니다. USP는 ‘Unique Selling Proposition'의 준말입니다. 독특한 판매 포인트를 제의한다, 그러니까 브랜드가 가진 강점을 고객에게 제안하는 마케팅 전략인 것입니다. 그러나 무턱대고 자신만의 모든 강점을 살려서 말할 수는 없습니다. 강력한 강점, 고객에게 팔릴만한 매력만을 모색하는 것이 USP 전략의 승부처입니다. 


청정원은 왜 느림보 간장을 만들까요? (청정원, 2014)


청정원의 ‘햇살담은 간장’의 유튜브 15초(5초 뒤 스킵)광고입니다. 15초 동안 전하는 말은 고작 3문장입니다. 그 3문장이기에 더 간결하게 그리고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광고에서는 USP를 느림보로 잡은 것 같습니다. ‘느리지만, 우리 간장만큼은 건강하게 만든다.’라는 어필을 한 것입니다. 솔직히 고객 입장에서는 제품이 정말 느릿느릿 만들어지는지는 알 수는 없습니다. 마트에 가면 매일 물건이 들어와 진열되어있기 마련이고, 직접 제조 공정을 본 것도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느림보’ USP 전략은 꽤 예리한 어필입니다. 이는 ‘모두들’ vs 청정원의 구도로 시작한 것에서 볼 수 있습니다. 빠름에 열광하는 모두들과 비교했을 때, ‘청정원’ 자신을 홀로 느림을 고집하는 건강한 제품으로 보일 수 있게 만드는 것이죠. 초반 카피에 ‘청정원은 왜’라고 운을 떼며, 소비자에게 물음을 던지는 것도 이를 뒷받침하기 위함입니다. 이 물음은 어차피 ‘답정너’입니다. 답은 정해져있고, 소비자는 그대로 ‘인식’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시나리오이니까요. 자연스레 광고를 보는 이들의 의식에 ‘청정원 간장은 다르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USP는 광고 전반에서 많이 쓰입니다. 아니 쓰일 수밖에 없는 기본적인 과정입니다. 어느 회사든지 신제품을 기존에 있는 것과 똑같이 내놓지는 않습니다. 기존에 없던 참신함과 다를 수 있는 점을 연구해서 브랜드를 구상해야합니다. USP는 바로 여기서 쓰입니다. 제품에 가치를 더하고(말이 어렵나요. 그냥 고객이 인지할 수 있는 의미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브랜드만이 갖는 컨셉과 이미지 등을 제품에 부여하는 과정이 이어서 따라붙는 것입니다. 이 계획대로만 굴러가면 브랜드는 소위 ‘대박’을 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시 시장의 입맛에 맞게 브랜드에 손질을 하거나(재포지셔닝이라고 합니다), 최종적으로 폐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브랜드가 태어나고, 살아남고, 때론 소리 없이 사라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손에서는 녹지 않고 입 안에서만 녹아요.’ (M&M) 
대표적인 USP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USP 전략이 유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독창적인 메리트나 차별성을 찾아야하는데, 매번 화려한 강점을 찾는 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이때 생각해야 할 다른 변수는 결국 소비자의 인식을 누가 먼저 가져가는지에 달렸습니다. 다른 제품에도 똑같이 있는 장점임에도 누가 가장 먼저 소비자에게 어필하느냐 말입니다. USP의 최종 목적은 자신의 브랜드가 최대한 많은 소비자의 손에 잡히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업은 소비자가 알지 못했던 (소비자의)이득이 될 수 있는 점을 변별력있는 장점으로 뚜렷하게 보여야 합니다. 그 장점을 누구나 갖고 있다 해도, 대중이 모르고 있었다면 그 장점은 가히 ‘먼저 말한 사람이 임자’가 되는 셈인데요. 그래서 많은 기업이 새로운 공법이나 서비스를 찾아 어필하는데 매진합니다. 그 중에서 어떤 것은 정말 새로운 기술일 수도 있겠지만, 경쟁자도 가졌는데 말만 먼저 했을 뿐일 수도 있습니다.


손자병법에 ‘출기제승’이란 말이 있습니다. 원칙만으로 싸워서는 이기기 어려울 때, 원칙을 살짝 바꾼 ‘기묘함’(奇)으로 승리를 이끌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기묘함은 반칙이 아니라, 미묘한 차이 하나를 찾아 반전을 꾀하는 것입니다. 기술과 기능은 갈수록 대동소이가 되어가는데,  ‘남들 다 하는’ 싸움에서  ‘남들 다 아는’ 전략으로는 상대를 맞설 수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USP는 그 기묘함을 찾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만 있는 기묘함으로 상대를 맞서는 것이고, 제품이 팔리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날 모든 광고계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인 듯합니다.



희한한 경제 속 우리의 모습

어제 만난 친구가 그런 말을 했어요

눈과 귀를 닫고 입을 막으면 행복할거라고.

너는 톱니바퀴 속 작고 작은 부품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사랑에 정복당할 시간도 없는 희한한 시대에 열심히도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마지막 저금통장에 들어있는 십만원을 들고서 나는 어디로 갈까 또 상상하죠.

울지마 달리질 건 없어 울지마 그냥 그림자처럼 살아가라고 친구는 말하죠

가만히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그럼 지금보다 행복할 거래요

너는 바뀌지 않을 글자를 보면서 다시 써볼까 상상해본 적도 있죠

울지마 어쩔 수 없다고 울지마 네가 잠자코 있었다고 하네요

눈 감고 귀 막고 입을 닫고 살면 그럼 지금보다 행복할거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요?

그래도 세상 한 가운데 어차피 혼자 걸어가야만 한다면

눈 뜨고 잘 듣고 목소릴 내보면

그럼 지금보다 나아지겠지 그리고는 천천히 살아갈 수 있겠죠?

- 옥상달빛, 희한한 시대 中 –


뭔가 말도 안되고 희한한 면을 가지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옥상달빛의 노래처럼 많이들 이야기 하지 않나요? (옥상달빛, 희한한 시대 MV 꼭 보길 권유합니다. 특히 사회초년생들) 매번 사회생활을 하면 어쩔 수 밖에 없는 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돈 벌기가 쉬운 줄 아니?”라고 말을 듣기도 합니다. 과연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그럴까요? 


우리가 자주 말하는 돈은 경제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는 쉽게 생각하면 살아가는데 필요한 활동으로 살림살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미시적으로는 우리집 살림살이, 거시적으로는 국가 살림살이/지구촌 살림살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경제는 우리가 하는 사회활동의 하나로서 내재된 부분이지만, 어느 순간 살림살이 신경쓰다 보니 우리가 본연 모습을 잃어버리거나 경우도 있다. 그런 삶이 잘못되었거나 이상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일을 하기 위해 하루에 나의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노동력이라는 이름으로 투입하는 것은 인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있는지를, 얼마나 노동을 하고 오로지 자신을 위한 생활이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한 균형의 문제를 고민할 수 있다. 이를 뛰어 넘어 내가 일하고 있는 이 곳에서 나는 어떤 존재이고, 어떤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조직 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영향력에 대한 만족도가 높을 수 있겠지만, 이걸 좀더 크게 사회적으로 바라본다면 나는 어떤 존재인가? 거대한 경제나 기업라는 톱니바퀴 속 작고 작은 부품으로 느껴진 적 없나? 가족들과 다른 여가생활의 충분하여 삶의 부족함을 느끼지 못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을 자신과 사회적 활동(삶)을 위해 보장받지 못하고 홀로 열심히 버틴다. 또, 눈과 귀를 닫고 입을 막으며 현실이라고 받아들이고 인정해야만 이 또한 지나가고 행복할거라 한다. 과연 그럴까 의문이 든다.



다른 방식의 삶: 사회적경제와 사회혁신

돈을 벌기 위한 현실이라고 말하면서 그 현실이 우리가 한쪽만 아는 사실일 수 있다.우리는 혼자 있음 살벌하며, 어려운 단어로만 포장되어 있는 희한한 경제 속에 있다. 그러나, 경제 안에 구속 되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사회적 활동도 중요하고 이를 통해서만 사람다운 생활이 가능하다. 희한한 시대에서 열심히 사는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떨까? 그 방식이 바로 사회적 경제, 사회적 혁신이 될 수 있다.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걸어나가는 경제와 삶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라고 한다면 단어를 들으면 다들 어려워하고 복잡하게 생각한다. 혹자는 사회주의 경제라고 연상하는 사람들도 있다 (설마 당신도?). 사회적경제는 사회를 변화하고 자신의 삶도 꾸려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속에서 사회가 혁신하기도 하며, 조금씩 변화하기도하여, 사람들의 삶도 풍족해 질 수 있다. 기존의 경제는 분절화되어 개인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경제적 욕구만 충족되는 삶이었다면, 사회적경제는 다르다. 사회적 자본(신뢰와 관심)을 바탕으로 사회적 이슈와 영향력을 고려한 삶이 가능한 경제이다. 사회적경제 안에는 사회문제해결이나 취약계층 고용으로 좀 더 나은 사회가 되도록 혁신을 이끄는 기업(사회적기업/소셜벤처)도 존재하며, 혼자하면 어려운 일들을 함께 협동해서 이루어내는 기업들(협동조합)도 존재한다. 또한 사람들은 그저 경제적 수단이 아닌 사회에 긍정적 영향력을 가지고 하루하루 함께 살아간다. 사회적경제는 사람과 사회를 중시하기에 민주적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좀더 많은 사람들을 고려한 결정을 하고 고민을 한다. 즉, 나만을 위한 삶가 아닌, 사회와 모두를 위한 삶를 고민하는 것이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아가보실래요?

사회적경제와 사회혁신은 완벽한 대안이거나 정답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행위자로서 활동할 기회를 열어두고 개방적 소통이 가능하며,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함께 있다는 것에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돈중심의 경제가 아닌 사람중심의 경제인 사회적경제와 사회혁신은 좀더 나은 세상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될 것이라고 믿는다. 사회적 경제는 저 멀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지나가는 그 곳에서도 있으며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 글은 자본주의 경제와 혹독한 삶에서 벗어나 떠나라고 하는 계몽적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희한한 시대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존재하고, 함께 살아가고 천천히 나아가는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드리고자 하는 것이다. 고민을 나누며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느끼고, 조금씩 우리도 좀더 나은 삶을 위해 걸어서 나아가볼래요? 느영나영 함께 살아가는 법 알아가보실래요?

 

 

 

철학 속에 답이 있다. 대학 입학 첫 해 교양 수업에서 들었던 말이다. 감히 말하건대 내게 철학은 어렵지 않은 학문이었다. 적어도 정답과 오답의 학문이 아니었으니까.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는 것. 내게는 그것이 철학의 전부였다. 최초로 생각하는 것이 어려울 뿐, 일단 한번 시작하면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식으로 나만의 철학은 완성될 수 있었다. 생각한대로 말하기, 아무 것도 모를 때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철학을 머릿속으로만 해봤자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것은 뇌내연애와 조금도 다를 게 없었다. 실천하지 않는 철학은 죽은 지식과도 같았다. 철학을 실천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움일 것이다. 철학의 근본이 다른 생각, 다른 사유에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큰 맥락에서) 동일한 가치관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내 생각을 말했다가는 도태되고 소외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철학을 실천하는데 있어 가장 큰 적이었다.

그러나 실천하는 철학의 어려움에 대한 나의 사유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깨지고 말았다. 지난 해, 우연히 수많은 필리핀 이주자들을 만난 적이 있다. 놀랍게도 그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혜화역 부근에서 주말마다 필리핀 시장을 열고 있다고 했다. 4년 이상 학교를 다니는 동안 나는 그들을 보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애써 못 본 척 했던 것일까. 어쨌든 그들은 저마다의 처지와 사연은 다르겠지만 하나같이 유쾌해 보였다. 그냥 지나가기엔 아쉬운 마음에 필리핀 음식을 먹어보기로 했다.

 

간이식당에는 나와 일행을 제외한 이들 전부가 필리핀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의식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척 음식을 먹으려 했지만, 왠지 모르게 빨리 먹고 자리를 피해야 된다는 생각에 쫓겨 제대로 맛도 보지 못한 채 접시를 비웠다. 식당에 있던 이들은 내게 적대적인 신호를 보내지 않았고, 나 역시 그들에게 반감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나와 일행은 알 수 없는 이질감에 몸을 사렸고, 재빨리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평소 피부색이 다르거나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얼마든지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앞의 사례를 제외하고도 나는 과거 베트남 사람이 건네는 음식에 대해 속으로 경계한 부끄러운 경험이 있었다. 이러한 경험들은 그간 철학 실천의 어려움에 대해 갖고 있던 나의 생각이 어쩌면 변명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는 걸 증명했다. 철학 실천의 어려움은 세상이나 사회 탓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자극과 변화를 두려워하는 나약한 내면에 있었다.

 

그래서 철학적으로 살기란 어렵다. 세상을 바꾸는 일도 어렵지만 그에 앞서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 역시 결코 쉽지 않은 법이다. 철학을 위해서라도 나부터 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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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는 책을 내놓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책을 내놓고 판매하는 회사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읽고 좋아하는 책을 만들 수 있을까?’ 이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몇날 며칠을 고민했는지 모르겠다.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라는 책은 2012년도에 출간된 책으로 문화재 환수운동의 교본이라 불린 책이며 출간과 동시에 청소년 권장도서로 선정된 책이기에 내용은 의심할 바 없이 좋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 예쁘게 포장해서 독자에게 전달할지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었다.

 

책을 잘 만들고자하는 욕심에 가장 먼저 한 것은 시장조사! 온, 오프라인 서점에서 잘 팔리는 책을 두 달 이상 꼼꼼히 살펴보았다. 각 분야의 베스트셀러를 열심히 살펴보고 또 살펴보며 무엇이 이 책을 구매하게 만들었을까 고민해보았는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어떤 책이 잘 팔리는지 파악이 안됐다. 역사 분야의 경우 최근 방영되는 사극과 관련된 책이 잘 팔리고 있었다. 책을 파는 것도 결국 운인가? 싶을 정도로 감이 잡히지 않아서 생각했다.

 

‘내가 갖고 싶은 책을 만들자!’

 

내가 갖고 싶은 책을 만들기 위해 처음 한 작업은 그림 의뢰였다. 평소에 알고 있는 그림 잘 그리는 친구가 있어서 이번에도 그림을 의뢰했다. 딱딱하고 날카로운 그림보다 수채화 같고 색연필로 은은하게 그린 느낌의 그림이 책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지라 친구에게 의뢰할 때도 그렇게 그려달라 주문했다.
그림은 챕터마다 한 장씩 넣기로 하고 의뢰했는데 한일협정 당시 돌려받은 문화재 중 가장 어이없는 ‘짚신’, 시민운동을 통해 돌아오게 된 문정왕후 어보,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반환하게 만든 ‘대한제국 국새’, 우리가 돌려줘야 할 문화재인 ‘오타니 컬렉션’, 우리가 꼭 찾아와야 할 문화재로 ‘조선대원수의 투구’와 ‘평양 율리사지석탑’(투구의 경우 그 전에 의뢰한 그림 사용)을 책 속에 넣기로 했다.

 

이유정 작가에게 받은 오타니 컬렉션-공양보살상과 조선대원수 투구 그림

 

삽화를 이용하여 제작한 차례

삽화를 이용하여 제작한 본문

 

본문 수정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표지 디자인에 매달렸다. 표지에는 가장 상징적인 것을 넣어야 해서 우리가 찾아와야 할 문화재인 조선대원수 투구와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반환한 대한제국 국새를 배치했었다.


그러나 조선대원수 투구의 경우 그림이 너무 많이 사용됐다는 점도 있고 올해 문정왕후 어보가 반환된다는 소식을 들었기도 해서 표지 그림을 전면 수정했다. 수정 후, 문화재환수의 역사적인 장면이라 평가받은 오바마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대한제국 국새를 반환하는 장면을 띠지로 넣기로 하고 띠지를 제작했다. 그런데 아뿔사! 띠지가 잘 보이려면 표지 그림에 있는 어보 그림이 샥~ 가려지고 띠지를 포기하자니 너무 좋은 사진을 놓치게 되는 것 아닌가! 심각한 회의 끝에 문정왕후 어보가 가려지더라도 오바마 대통령 사진을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오바마 대통령의 사진은 언론사에 돈을 주고 구입했는데 가격은 10만원! 내가 언제 오바마 대통령을 책 광고 모델로 사용해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은가?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띠지를 넣기로 결정했다.

 

또, 저자의 힘이랄까, 혼이랄까? 저자의 기를 표지에 넣어보고 싶어서 표지 글씨도 저자에게 직접 써달라고 부탁했다.  

 

1차 표지, 2차 표지, 최종 표지

인쇄소에 넘어가기 전 날 밤엔 어찌나 비가 세차게 내리던지 마음도 급한데 우르르쾅~하는 천둥소리가 나를 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출판 기념회 날짜가 잡힌 채로 출간 작업을 하고 있던 차여서 넘기지 않으면 출판 기념회에 책 없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지기 때문에 열심히 작업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교정 작업을 마치고 이제 인쇄소에 넘어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찌나 마음이 헛헛하던지 모른다. 왜 헛헛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뭔가 해냈다는 생각에 그랬던 것 같다. 헛헛한 마음 한 편으로는 뭔가 해냈다는 생각에 내가 너무 기특해서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책이 인쇄소에서 배달되던 날, 너무 기뻐서 보고 또 보고 또 봤다. 내가 갖고 있는 책 이외에 2천권 가까이 되는 책을 모두 창고로 보냈다. 어떻게든 내가 이고 지고 쌓아서 갖고 있어 보려했지만 2천권 되는 책을 보관하고 또 발송하는데 창고밖에 좋은 곳이 없었다. 친절한 창고 사장님 덕분에 계약도 즐겁게 마치고 대량 주문 발송도 쉽게 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출판 판매와 관련해서는 총 판매자와 계약을 해서 1인 출판사가 몸소 뛰기 어려운 서점 및 그 외 출판 영업을 담당해주기로 했다. 2번의 계약을 하며 새로 판 좋은 도장을 꽝꽝! 찍었는데 왠지, 정말로,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1부와 2부로 나누어 진행된 출판 기념회

 

출판 기념회는 성황리에 잘 마무리했다. 80석 규모의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을 대관했는데 아니 글쎄! 좌석이 조기마감 된 것이 아닌가! 그래서 1부와 2부로 나누어서 진행하기로 하고 80석의 자리를 더 신청 받았는데 그것마저 행사 일주일 전에 예약이 마감됐다. 출판사 사장으로서는 너무나 기쁜 일이었다.

 

출판 기념회를 성공적으로 마치고나서 좀 쉬어볼까 했는데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 저자가 인기 팟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에 나가는 바람에 북콘서트 날짜가 덜컥! 잡혀버렸다. 출연진도 그 유명한 명진스님, 정봉주 그리고 주진우!! 이렇게 화려한 출연진이 있다면 더 즐거운 이벤트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 큰맘 먹고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 한정판 텀블러를 제작했다. 2015년 6월 13일 예정이었는데 아쉽게도 메르스 때문에 연기된 상태여서 7월에 진행할 예정이다. 7월에는 좀 더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해볼 생각으로 준비중이니 꼭 성공해서 출판 마케팅 성공기 칼럼을 또 써봤으면 한다.

 

매일 아침 하는 일이 알라딘과 예스24의 판매지수를 확인하는 것인데 웬일로 갑자기 출판지수가 팍팍 뛰어서 오늘 아침부터 어깨춤을 추고 있다. 허허허. 나도 드디어 책 판매량에 울고 웃는 출판사 사장이 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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