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프로그램이 대세입니다. ‘삼시 세끼’에서 차승원 씨의 요리 솜씨로 큰 화제가 되었는데, 최근엔 전문 셰프들이 각자의 개성대로 음식을 맛깔나게 선보이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보다 보면 절로 군침이 나오지만, 그동안 가지도 않던 주방으로 가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요리사의 캐릭터와 개성이 잘 나타냈지만, 그중에서 백종원 씨를 보면 캐릭터 설정을 잘 한 것 같습니다. 까다로운 식재료나, 어려운 조리 기법을 요구하지 않고, “집에 그냥 있는 거로” 하면 된다는 그의 지론이 시청자의 호감을 얻고 있는 듯합니다.
백종원 씨의 흥행은 개인뿐만 아니라, 식품업계에도 내심 반색하며 기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주가 나서도 막을 수 없었던 ‘메르스’로, 소비시장이 많이 침체하였던 차에, 이런 요리 프로그램의 흥행은 다시 실낱같은 희망이 찾아온 것이죠. 그래서인지 요즘엔 백종원 씨를 광고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데요. 그렇다고 모든 광고에 출연하지는 않았습니다. ‘슈가 보이’라는 별명이 있음에도 그에게 들어온 설탕 광고 제의를 거절하는 것에서 신중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쌓아온 인기에 묻혀가기보다, 그의 전문성을 더 부각하고 인지도를 지키는 전략인 것입니다. 캐릭터를 설탕에 묻어가는 것 대신, 치약 광고를 선택한 것도 그런 맥락의 선구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센소다인을 쓰니까 시린 게 없어졌어요. (GSK, 2015)
30초 동안 제품은 딱 2번 노출했고, ‘센소다인’이란 단어도 대사에서는 한 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간결하다고도 볼 수 있지만, 언뜻 보면 이상합니다. 대부분 치약광고는 ‘어느 어느 성분이 들어가서, 플라그를 제거하는데 탁월하다’라는 기능의 어필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빅 모델’의 경험을 들어 시린 이에 탁월함을 소구합니다. 그만큼, 백종원이라는 ‘빅 모델’에 대한 의존도가 강한 것입니다. 요리를 업으로 하는 모델의 전문성과 모델의 인지도에 기대어 치아와의 연관성은 매우 깊은 점에 착안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문성과 인지도를 모두 갖춘 ‘빅 모델’을 씀으로써, 브랜드 인지도 또한 높이려 한 것이겠죠. 그러나 모델에 의존도가 너무 커진 광고는, 광고에 나온 모델만 부각시킬 뿐, 브랜드는 소위 ‘아웃 오브 안중’이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모델을 쓴다는 것은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인지도가 높은 ‘빅 모델’을 쓸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광고료 지출은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어마어마하기 때문입니다. 그 어마어마한 비용을 내고도 쓰는 이유는 아마 ‘이 사람이 유명하니까 이 사람이 우리 제품 광고에 나오면 같이 유명해지지 않을까’라는 발상일 것입니다. 얼핏 보면 당연한 이치인 듯하고, 실제로 많이들 썼습니다. 과거에는 그런 경향이 짙었죠. ‘밀키스’ 광고가 대표적인데, 롯데에서 89년에 시판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음료가 원래 없던 게 아니었습니다. 코카콜라 사(社)의 ‘암바사’는 1984년에 먼저 나왔습니다. 5년 동안 시장을 점해있는 브랜드, 그것도 세계적인 브랜드 코카콜라를 상대로 도전장을 내민 것입니다. 양이며, 맛이며 두 음료는 큰 차이가 없기에, 차별화를 두기에는 더더욱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런 기호식품에서는 기능보다는 인지도의 우위가 시장의 우위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얼마만큼 소비자가 그 브랜드를 기억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여기서 롯데는 승부수를 띄웁니다.
사랑해요, 밀키스 (롯데칠성, 1989)
80년대 후반은 홍콩영화의 황금기였습니다. [영웅본색], [천녀유혼]과 같은 작품으로 주윤발과 장국영 등이 스타덤에 오릅니다. 한국에서도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롯데는 이 인기에 주목한 것이죠. 그래서 국내 최초로 외국인 배우를 광고 모델로 내세웁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밀키스가 암바사의 판매량을 제치고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이죠. 더욱이 광고 말미에 ‘사랑해요 밀키스’라는 멘트는 어색하지도 않고 잘 소화하였습니다. 주윤발의 등장으로 이후 광고들에서는 홍콩 배우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초콜릿 광고에서는 장국영이, 음료 광고에서는 왕조현까지 나왔습니다. ‘빅 모델’의 효과적인 사용으로 브랜드의 기존에 가진 가치 그 이상의 시너지와 함께 광고 시장의 트렌드마저 바꾼 것입니다.
기호식품은 느낌과 감성을 자극해야 합니다. 모든 이들의 감성을 맞출 수 없기에, 특정한 타겟을 목표로 합니다. 타겟이 60대라면, 60대에 관심 키워드를 골라내야 하고, 10대라면 10대의 최근 관심사를 잡아내어 공략해야 합니다. 롯데의 선택도 그랬을 겁니다. 당시 10~20대는 주윤발은 영웅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 주윤발이 밀키스를 들고 있기만 해도, 대중에게는 큰 각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2008년 PMP 광고도 ‘빅 모델’ 경쟁이었습니다.
빌립에서는 소녀시대를, 코원에서는 소지섭을 내세워 10~20대 시장을 타겟으로 삼았습니다.
‘빅 모델’은 이처럼 신생브랜드를 우위로 가져다 놓기도 하고, 브랜드에 기대 이상의 힘을 더해주기도 합니다. 맛있다를 100번 설명하는 것보다, 딱 한 마디로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게 빅모델의 역할인 것이죠. 어디서든 그 모델이 등장하면 바로 브랜드가 떠오를 수 있게, 한마디로 그 모델이 가진 친근함과 인지도가 브랜드에서 시너지를 기대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모델도 다른 광고에 자주 나오면 어떻게 될까요? 같은 모델이 이곳저곳 나온다면,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가 떨어지게 됩니다. “아, 쟤는 돈 되는 곳이면 다 나오는가보다”라는 생각이 들게 되면, 광고는 일개 상술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광고주는 그런 생각을 막기 위해서 그 모델을 되도록 오래 잡고 싶어 합니다. 유명한 모델이 지속적으로 한 브랜드에 나오면, 그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는 제고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상첨화(錦上添花)라는 성어는 다들 아실 겁니다. 옷감 중에서 으뜸인 비단이라도, 곱게 꽃을 수놓은 비단에 눈이 먼저 가게 됩니다. 광고를 비단이라 본다면, ‘수놓은 꽃’은 모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소비자에게 이목을 끌게 하고, 브랜드를 돋보이게 만드는 것, 그것이 오늘날 ‘빅 모델’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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