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이 코앞이다. ·야 가릴 것 없이 각 정당들은 선거대책위원회 구성, 예비후보 공천 심사, 그리고 앞 다투어 외부인사 영입 추진 등 총선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 124일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하나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다음 20대 국회의 비례대표 의원 정수를 현행 54석에서 47석으로 줄인다는 골자였다. 당장에 합의한 두 정당 이외에 비례대표로 원내 진출을 희망하던 소수정당들의 눈앞에 빨간불이 켜졌다.

 

 

<ⓒ레디앙>

 

 

현재 19대 국회의 총 의원수는 300명이다. 이 가운데 새누리당이 156, 더불어민주당이 116석을 차지하고 있다. 전체 의석 중 두 정당이 차지하는 비율을 따져보면 무려 약93%나 된다. 반면에 소수 진보정당들 중 정의당만 그나마 5석을 갖고 있으며, 그 외 노동당과 녹색당은 단 한 석도 없는 원외정당 신세다. 이 중 정의당은 새누리, 더민주와 함께 원내정당 위치임에도 원내 교섭단체 자격 기준인 의원수 20명에 미달이라 교섭권이 없기 때문에 보수양당으로부터 무시 받는 처지에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가 복수정당제, 즉 다당제를 추구하고 있다지만, 현실적으로 양당체제와 다름없는 정당구조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지역주의와 인물, 계파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보수적인 정치문화에서 소수정당으로서 원내에 진출하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특정 정당의 과반의 의원 구성에 따른 다수당의 횡포를 미리 막고, 소수정당의 원내진출을 도모하고자 마련한 장치가 바로 비례대표제다. 현행 비례대표제는 총선에서 3% 이상의 정당지지율을 얻어야만 그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 1순위인 사람에게 비례대표 의원직을 부여한다.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 지역구에서 의원을 5명 이상 당선시켜야 지역구 의석 비율에 따라 비례대표직을 배분받게 된다.

 

그런데 현행 비례대표제는 소수정당에게 불친절하단 점 외에 또 큰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사표'의 가능성이다. 우리나라에서 소수정당의 경우 지역구에서 승리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실정이다. 일단 새누리와 더민주 양당의 견고한 경쟁구도 속에서 지지도가 턱없이 부족할뿐더러, 정당과 후보 개인의 열악한 재정상황으로 막대한 선거자금을 조달하기란 더욱더 힘들다. 때문에 결국 소수정당의 입장에서 비례대표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당장에 지지율도 3% 받기 힘든 마당에 정당득표율 3%를 얻으려 한다는 것 역시 큰 벽에 부딪치게 돼있다(3%가 당장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투표자 수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한 숫자가 된다). 다시 말해 정당득표에서 어느 정당이 최종적으로 3% 미만의 득표율을 기록할 시 던져진 그 표들은 전부 사표, 즉 '죽은 표'가 된다. 어느 한 유권자가 소신껏 소수 정당에 투표 하고 싶어도 만약 3%가 넘지 않으면 나의 표가 무용지물이 되지 않을까란 두려움 때문에 선뜻 투표하지 못 하는 현상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렇듯 소수정당은 도저히 살아남기 위한 돌파구가 없는 정치선거제도 현실에 놓여있다.

 

지난 2015년 초 국회는 선거구획정 관련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헌법재판소가 선거구별 인구 차이에 따른 투표가치 불평등 문제에 대하여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여기서 함께 거론된 제시안이 바로 비례대표제에 대한 개혁 작업이었다. 선관위는 이에 연동형비례대표제 방안을 처음 제시했고,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적 소수정당들이 주도적으로 이를 주장해오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현행 비례대표제가 단순히 정해진 비례대표 전체 의석수(현행 54)에서 득표율을 따져 비례대표를 배분했었다면, 그와 다르게 총 300석의 의석에서 정당득표율에 따라 고스란히 비례대표직을 배분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는 절대적으로 소수정당이 원내에 진출하기 유리한 제도로 여겨진다. 혹여나 지역구에서 아무런 성과가 없을지라도 현행 의석수를 전제하에 정당득표율을 단 0.5%만 기록해도 1명 이상의 의원을 배출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최근의 전국선거였던 2014년 지방선거에서 소수정당들의 각 정당득표율을 보자면 정의당은 3.52%, 노동당은 1.25%, 녹색당은 0.84%. 현행 비례제도로 계산하면 유일하게 정의당만이 고작 1석을 얻을 수 있는 초라한 기록이다. 하지만 이때의 각 정당득표율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입해보면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은 각각 무려 10, 3, 2명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 있다. 겨우겨우 정당득표율 3% 이상을 얻어야 비례 의원 1명을 얻을 수 있던 것에 반하여 얼마나 놀라운 효과이자 결과인지 눈여겨보게 된다. 

 

 

 

<‘6대 선거권역중앙선거관리위원회>

또 다른 방안으로 권역별비례대표제가 거론된다. 이는 더불어민주당이 현재 주장하는 것으로서 먼저 특정 권역별로 선거구를 나눈 다음, 국회의원 정수인 300명을 기준으로 해당 권역의 인구비례에 따라 각 권역별로 지역구 의원수와 비례대표 의원수를 더해놓은 할당된 총 의원 수를 배정한다. 그리하여 특정 정당의 득표율 결과에 따라 의석을 배분받는 제도다. 여기서 할당된 의원 수는 지역구 : 비례대표 = 2 : 1’의 비율이다. 예를 들어 서울(인구비례 약 20%)을 기준으로 인구비례를 하면 300명 의원정수 중 60명의 의원을 선출할 수 있다. 지역구 대비 비례대표 의원 비율을 2:1로 한다면 지역구 의원 총 40, 비례대표 의원 총 20명이 된다. 여기서 만약 어떤 정당이 서울 권역에서 20명이 당선되고, 40%의 정당득표율을 기록한다면, 원래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받을 24명의 비례 당선자 중 지역구 당선자 수(20)를 뺀 나머지 4명만 비례대표직을 배분받게 되어 총 24(지역구20+비례4)의 의원을 얻어가는 방식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시행하면 연동형보단 미비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소수 정당에게 역시나 기회를 줄 수 있고, 또 호남에서 새누리당이, 반대로 영남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비례대표 의석을 얻는 등 지역구도를 완화하는 데 도움 될 것이라 선관위 역시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계속되는 여·야의 협상 파행 소식에 정의화 국회의장까지 나서 선거구획정 및 비례대표확대 합의 촉구의 성명을 냈지만, 소수정당 야당의 득세가 실현될 것이 두려워서인지 새누리당은 그마저 무시한 채 전면 반대하고 나섰다. 자신들의 과반 의석수가 깨질 것이 우려되니 반대한다는 노골적인 언사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개혁하기 좋아하면서 정작 개혁당하기는 싫어하는 그 얄팍한 속내가 드러나보인다이렇게 정치 혁신을 뻔뻔히 거부할 수 있는 건 한국 정치사에서 이어져온 지역주의정치, 정당정치의 과두제, 제왕적 대통령제 등의 고질적인 폐단이 견고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점차 민주주의와 자유가 우리 생활과 의식 속에 깊숙이 자리함에 따라 다원화 시대가 도래했다. 사람들은 점차 계층별, 분야별로 각기 추구하는 바가 다양해지며 정치권력이 자신들의 더 나은 삶을 대변해주고 책임져주길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주류 정치세력들은 국민들의 삶보다는 위선과 권모술수의 정치로써 기득권 수호와 정권 획득에만 혈안이었다. 그게 다였다. 전보다 다양하고 세분화된 가치를 충족해주고, 또 사회적 문제와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정당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만의를 배제한 정치는 정치적 무관심층을 생산했고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넘어 전사회적인 신뢰와 연대를 깨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비례대표 확대를 위한 각 정당과 시민사회, 국회의원의 기자회견 모습 비례대표제포럼>

<왼쪽에서 두 번째부터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정진후 정의당 원내대표, 박원석 정의당 의원 정의당 트위터>

연동형(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로의 개혁은 그래서 필요하다. 비례대표제도 개혁은 먼저 보수양당의 독과점 체제가 쌓아놓은 정치적 진입장벽을 허물고, 사표가 줄며 비례성이 높아지는 데 크게 기여한다. 그리고 여러 소수정당들이 원내에 진입하여 정책으로써 경쟁하는 정치, 다양한 계급과 계층, 개인의 의사를 반영하는 정치의 환경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 또 이로써 정당정치의 활성화가 예견되는 바, 소수정당들의 주요 가치인 '탈핵', '노동', '복지', '실질적 민주주의', '평등', '평화', '생태', '인권' 등이 개개인의 정당 참여로써 조금 더 실현 가능해질 것이다. 연동형(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소수정당의 꽉 막혔던 숨통을 트게 해주리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암담하다. 앞서 말했듯이 새누리와 더민주, 보수양당은 비례대표제 개혁과 선거구획정의 합의 파행인 와중에 현행 비례대표 의원수를 줄이고 결국 본인들에게 유리한 지역구 의원수를 늘리는 게리맨더링을 저지르고야말았다. 여기서, 더민주는 도대체 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주장했는지 의아할 수밖에 없다. 또, 새누리는 직접 말만 안 했을 뿐, '지역주의를 좀먹으며 기생할 것'이라 공공연한 다짐을 한 셈과 진배없다. 이 밀실야합은 거대 보수양당이 정치문화 전반을 혼탁하게 만들고 결국 자신들의 기득권만 수호하려했다는, 유권자들의 비판을 결코 면치 못 할 것이다. 아마도 현대정치사에도 길이 남지 않을까 싶다. 우리 사회엔 경제민주화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정당정치, 선거제도의 민주화 또한 간절히 필요하다. 연동형(혹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개혁하는 정치혁신은 '숨통이 트이는 정당정치', '숨통이 트이는 사회'로 변화하는 움직임에 크나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 AP통신>


 

<채권단의 긴축재정안을 반대하는 그리스 국민들 프레시안>

 

그리스 사태가 결국 일단락되어지는 모양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는 심정은 그리 편치 않다. 그리스는 지난달 30(현지시간)까지 국제통화기금(IMF)에 채무를 갚지 못 하면서 사실상 디폴트(국가부도) 상태에 빠졌다. 유럽채권단은 이에 긴축재정을 조건으로 하는 구제금융안을 그리스 정부에 제시했지만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반대의사를 표하며 국민투표에 부쳤고, 그 결과 6139라는 압도적인 표 차이로 국민들 또한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치프라스 총리는 며칠 뒤 기존 협상안보다 무려 50억 유로나 더 긴축하는 내용의 파격적인 재협상안을 채권단에 제시했다. 은행의 붕괴와 유로존 탈퇴(그렉시트)의 우려로 마련한 긴급 강구책이란 판단이었다. 결국 그리스 의회의 승인을 받아낸 이 안은 유로존 정상회의에 회부되어 13(현지시간) 그리스 3차 구제금융에 대한 결정을 이끌어낸 상태다.


 

그리스가 그놈의 복지병때문에 망했다?

 

그리스의 디폴트 사태 이후 우리나라에선 언론들의 다양한 원인 분석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그 중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들은 아니나 다를까 그리스 사태의 원인을 과잉복지’, ‘복지병인 것 마냥 그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 기사를 내놨다. <지원금 300조원도 탕진공짜복지 좋아하다 이 지경까지”> 실제 조선일보 지면에 실렸던 제목이다. 과연 그리스가 복지때문에 망하게 된 걸까? 먼저 그리스의 1인당 국민소득(GNP) 대비 정부 복지지출 비중은 21.3%로 유로존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복지로 유명한 스웨덴은 27.3%, 덴마크는 26.1%, 핀란드는 24.9%(2012년 기준). 복지지출이 많아 그리스가 저 지경이다? 망했다면 저 북유럽 국가가 먼저 망해야 옳다. 결국 애초 사실관계부터 틀린 것이다. 다음 과도한 연금수령액을 문제 삼는다. 그러나 그리스의 노년층이 받는 연금의 비율은 2011년 이후 3차례의 채권단의 긴축 요구에 의해 무려 40%이상이 삭감되었다. 또 그리스 연금수령자의 45%는 빈곤선인 월665유로(83만원) 미만의 연금을 받고 있으며, 그리스 전체 가구의 49%의 주 소득원이 노인연금에 의지하고 있단 사실은 그리스의 열악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연금이 곧 생계 수단인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과잉복지라 칭하고 또 탓할 수 있는가?

 


<한국일보>

 

그 다음 이런 과잉복지로 인한 그리스 국민들의 나태함을 이유로 많이들 꼽는다. 그러나 그리스는 연간 노동시간이 OECD국가 평균(2013년 기준) 1,770시간보다 훨씬 많은 2,037시간으로 멕시코, 한국 다음으로 가장 높은 나라로 기록돼있다. 유럽에서 2,000시간 이상 일하는 나라는 그리스가 유일하다. 이처럼 그리스는 우리가 터무니없이 걱정하는 만큼 복지가 과하지도 또 나태하지도 않다. 우리나라처럼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그에 걸맞은 복지 권리는 누리지 못 하고 있는 처지다.

 


죄지은 금융자본과 부패정권, 탈세자는 쏙 빠진 채, 애꿎은 국민들만 벌 받으라고?

 

그동안 몇 차례에 걸쳐 구제금융을 받는 동안 유로존 정상들 특히 그리스 채권 비중이 높은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채권단은 그리스에게 강도 높은 긴축재정을 요구했고 또 그리스는 성실히 이행해왔다. 재정지출을 줄였고, 빚도 꼬박꼬박 갚아나갔다. 재정은 적자에서 흑자가 됐다. 하지만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실업률이 25%로 치솟았고, 2009년 금융위기의 여파로 GDP(국내총생산)22%나 감소했으며, GDP대비 부채비율도 35%나 증가했다. 부채규모는 갈수록 증가해 20113,559억 유로로 최고치를 찍었고 2015년 현재 3,127억 유로(400조원)를 기록하고 있다. 2011년 말 당시 1,000억 유로 규모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았었다. 하지만 현재를 미뤄보면 구제금융이 그리스 부채를 줄이는 데 별다른 효과를 보이지 못 했다는 걸 나타낸다.

 

그리스의 디폴트 사태는 어찌 보면 예견된 일이었을지 모른다. 애초에 그리스는 유로존에 가입할 수 있는 조건의 나라가 아니었다. 하지만 2001년 당시 그리스 전 정권과 미국 금융회사인 골드만삭스의 국가채무 은폐 작업을 통해 무리하게 가입했던 것이 원흉이었다. 한 마디로 국채 사기를 벌였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 그리스는 각종 공공재 수입을 담보로 28억 유로를 골드만삭스로부터 빌렸었다. 유로존 가입만 하면 장밋빛 미래를 예상했던 그리스는 점차 수출경쟁력 하락과 경기침체에 빠지자 손쉽게 돈을 빌릴 수 있는 금융회사들의 검은 손을 잡아버렸다. 이후의 구제금융이 실질적 경기진작 효과를 거두지 못 하게 된 이유도 이와 같은 금융자본의 채무관계에서 비롯되었다. 또 그리스와 유럽연합 내부 역시 당시에도, 지금까지도 골드만삭스 출신의 사람들도 가득 차 있어왔다.

 

탈세 또한 빈번하고 그 액수도 어마어마하다. 연간 세금 청구액의 불과 20%만이 세입 되고, 나머지의 절반인 40%는 탈세, 또 절반은 뇌물로 바쳐진다고 알려져 있다. 해운업이 강세인 그리스에선 해운재벌들이 사업등록지 이전 등의 방법으로 연 2000~3000억 유로의 탈세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2009년 그리스의 탈세액은 약 2000~3000억 유로로 당해 재정 적자의 3분의2에 달하기도 했다.

 

이렇듯 부정부패와 금융자본주의의 결탁이 지금의 위기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 유럽채권단의 그리스 국민들을 향한 긴축재정 요구는, 죄인은 가만둔 채 애꿎은 이들에게 벌 받으라 강요하는 꼴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리스인의 입장에선 가혹하고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

 

 

 

<SBS>


 

차라리 그렉시트(유로존 탈퇴)가 기회일 수 있다.

 

법률적인, 또 도덕적인 관점에서 그리스가 긴축재정으로 고통을 감내하고서라도 채무이행의 의지를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유로존의 시스템은 그리스와 그 국민들에게 너무나 가혹하다. IMF 등 국가재정 및 개발원조 업무를 맡았던 엘리엇 모스 박사에 의하면 자국 통화를 쓰는 국가들은 무역수지가 악화되면 통화 가치를 낮춰 수출경쟁력을 높일 수 있지만 유로존 국가는 통화가치를 독자적으로 낮출 수 없어 무역적자를 감내할 수밖에 없다. 무역적자의 증가는 정부부채 증가 및 경제성장의 둔화로 이어진다. 그리스 위기도 이런 과정에서 발생했다라고 말한다. 그리스는 제조업 비중이 5.7%로 매우 낮으며, 관광 및 해운업 등 서비스업의 비중은 무려 90%에 이른다. 그런데 자동차, 가전제품 등 대부분 소비재는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 결과 무역수지가 적자 구조인 것이다. 근본적인 경제 산업구조의 개편이 선차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구제금융을 통해 유로존에 남아있다 한들 과연 그리스가 끝까지 살아남을지는 미지수다. 더구나 애초에 유로존의 회원국가간의 경제규모가 천차만별인 상황에서 유로존의 존재이유와 시스템 문제, 그리고 단일통화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시적인 유로존 탈퇴를 통해 자국 경제의 흐름이 어떠한 모습을 보이는지 살피고 체감해보는 것도 지금의 위기를 타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최선의 방법은 공존의 길이다.

 

유로존은 경제도 그렇지만 철저히 정치적 연합체에 가깝다. 경제규모뿐만 아니라 정치적 영향력 또한 미국 패권과 대등한 위치에서 견제하고 협력하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만약 그리스의 치프라스 총리가 모든 협상을 거부하고 그렉시트(유로존 탈퇴)를 선언했다면, 그리스와 같은 부채와 경기침체에 시달리는 나머지 PIGS(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스페인, G는 그리스다)국가들 또한 연달아 유로존 탈퇴를 염두에 둘지도 모른다. 이는 결국 훗날 유로존의 영향력 상실과 나아가 붕괴까지 이어질 수 있기에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 체제 유지를 꾀하는 유로존 강대국인 본인들로서는 큰 위기로 다가올 수 있다. 그리고 이미 올해 초 총선에서 승리를 거둔 시리자(급진좌파연합)의 치프라스 총리는 이미 공약으로 구제금융 재협상 카드를 들고 나왔었다. 국민의 삶 개개인을 파괴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적 구제금융 협상안은 일정 부분 제외하면서, 채무의 30억 유로 정도의 헤어컷(채무탕감)을 요구해왔다. 이처럼 기본적으로 채무이행에 대한 책임감과 의지를 가졌던 사람인 것이다. 기존에 정치적으로 좌파라는 이유만으로 그리스 사태의 책임자로 몰고 비난하는 이들은 이 같은 사실을 알아야한다.

 

그리스 채권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는 독일이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연합국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전쟁보상금을 추징당했지만, 1953년 런던합의를 통해 채무탕감을 받은 전례가 있다. 그로 인하여 경제위기에서 타개했고 라인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독일 역시 이제는 자신들의 예전 기억처럼 위기의 그리스에게도 그와 같은 선처와 배려의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체제 공고화를 위해서 말이다.

 

치프라스 총리가 국민투표 이후 갑작스레 구제금융 재협상안을 제시했을 때 대다수의 국민의 반대의사를 무시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치프라스는 국민투표의 결과가 곧 긴축재정안에 대한 불만의 표시일 뿐이지, 그렉시트의 의미는 아니란 걸 먼저 깨달았다고 본다. 또 그의 협상안 내용을 보면 긴축재정 액수를 늘린 것은 불만일 수 있겠지만, 채무 만기 연장과 법인세 강화, 채무탕감 요구 등을 제시했다. 자국의 탈세문제 같은 부정부패 해소와 더불어 채무탕감을 직접 요구함으로써 유로존의 시스템 문제를 건드리며 온전히 자신들만의 문제 때문이 아니란 것을 피력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해주고 싶은 부분이다.

 

결국 본래 예상 밖으로 탈 없이 그리스 3차 구제금융안이 유럽정상회의서 장장 17시간 마라톤 회의 끝에 타결됐다. 그리스는 기존 요구액보다 108조원이 많은 86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얻게 됐다. 팽팽한 기싸움을 벌이던 독일과 그리스는 공존의 길을 도모한 것이다. 하지만 당장에 그리스를 긍정적으로 예견하기는 힘들다. 삐걱거리는 유로존 시스템의 한계와 금융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검은 그림자가 언제 그리스를 잠식해버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치프라스 본인은 자신의 판단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또 그걸 바라보는 현재의 그리스 국민들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하다. 그리스의 행운을 빈다.


  

 4.29 재보선 참패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요즘 초상집 분위기를 넘어 난장판의 지경에 처해있다. 새정치연합 내부에선 의원들이 서로 간의 패배 책임을 놓고 공방을 계속 벌이며 지켜보는 국민들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지난 5월 8일 새정치연합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주승용 의원이 친노 패권주의를 운운하며 문재인 대표체제에 패배의 책임을 돌리자, 이에 정청래 의원은 ‘사퇴 공갈’ 발언으로 맞받아쳤고 격분한 주 의원은 사퇴 선언을 하며 문재인 대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릴 박차고 나갔었다. 이런 와중에도 그 자리에서 유승희 최고위원은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 파악 대신 새정치연합 한심스런 처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데 일조했다. 이를 지켜 본 시민들은 한 편의 ‘붕숭아학당’을 본 기분이라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비꼬아 표현하기도 했다.

 

ⓒ아이엠피터

 

재보선 참패 후 문재인 대표를 향한 비판의 화살이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많다. 하지만 당대표로서 선거의 책임을 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아무리 야권의 열세였던 상황에서 치러진 선거에서 패했다 할지라도 박빙의 결과가 아닌 완전히 수세로 밀리는 결과가 나왔다면 지도부의 공천과 선거전략 상의 미진함이 큰 원인이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 내에서 벌어지는 비판의 정도는 현실적인 대안과 성찰의 요구가 뒷받침된 비판이 아닌, 오로지 국민들이 체감할 수도, 실체를 파악할 수도 없는 패권주의에 입각한 무조건적인 사퇴론만 외쳐대고 있는 실정이다.

 

ⓒ연합뉴스

 

과연 이번 재보선의 참패가 문재인 대표와 친노 패권주의의 탓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먼저 친노 패권주의가 있기나 한 걸까? 각 계파들이 실체도 궁금한 친노 패권을 들먹이며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 크나큰 의문이 든다. 얼마 전, 김한길 전 공동대표가 그간의 침묵을 깨고 문재인 대표에게 ‘호남 외면’과 ‘친노 패권’을 거론하며 적극적으로 사퇴를 종용했다. 그런데 김한길 전 대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한번 되돌아보자. 2013년 당대표 당선, 2014년 새정치연합 합당 이후 당 강령의 개정을 강행하며 ‘민주정부 10년’과 ‘광주 5.18 민주화운동(처음에 빠졌다가 이후 반발에 다시 삽입했다)’, 그리고 ‘경제민주화’, ‘반값등록금’ 등의 주요 항목을 삭제한 바람에 민주당(현 새정치)의 노선과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들었고 이에 호남 지역뿐 아니라 본래 지지자들의 전국의 민심마저 저버리며 들끓게 만들었었다. 또 새정치연합으로 급작스러운 창당(또는 합당) 이후 작년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 당시 안철수 공동대표 계파와의 지분 나눠먹기식의 무리한 전략공천으로 인한 당내 파동을 일으켰고, 무려 텃밭이었던 전남 순천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에게 승리를 빼앗기는 지경까지 이르게 한 과오가 있는 자가 바로 김한길 전 대표이다. 결국 이번 재보선을 앞두고 천정배 전 장관이 탈당하여 무소속 후보로 나와 승리하게 된 것도 안철수 전 대표 측 사람으로 분류되었던 당시 권은희 경정을 천정배 전 장관 대신에 전략공천 한 과오의 연장선 때문이라 볼 수 있다.

 

4.29 재보선 때에도 마찬가지다. 호남과 당내 동교동계를 대표하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지난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선거에 패한 이후 나서지 않다가 문재인 대표와의 선거에서 벌인 공방의 악감정 때문인지 광주 서구을 선거에조차 뚜렷하게 지원유세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앞서 말한 김한길 전 대표, 안철수 전 대표 등 비노계 인사들은 아예 선거유세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선당후사’란 말이 있다. “개인의 입신양명을 위하기보다 당을 먼저 생각하다”란 뜻이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결집하는 새누리당과 다르게, 새정치연합은 항상 선거 전에 계파들 간의 분열하는 모습만 국민들에게 내보이며 실망감을 안겨줘 왔다. 정당은 일반 이익집단과 달리 자신들의 이익만을 ‘표출’하는 집단이 아닌, 외부의 여러 사람들의 이익을 ‘집약’하는 집단이다. 지금처럼 국민을 대표하는 정당의 인사들이 국민들의 바람을 귀 기울여 정책으로 보답하지 않고, 개개인이 정당이란 특성을 악용하여 정치적인 생존을 꾀하는 모습만을 계속적으로 보여준다면 그 정당의 미래는 없다.
        

ⓒ뉴스핌

 

현재 당내 각 계파 인사들의 너도나도 문재인 대표 흔들기는 절대 바람직하지 못 하다. 선거 패배의 책임을 묻기 이전에 본인들 스스로가 선거를 위해, 당을 위해 무엇을 해왔는지 자성하는 태도가 당위적으로도, 순서로 봐도 옳다. 내가 본 문재인 대표는 그랬다. 선거 때만 되면 계파의 입장에 관계없이, 큰 선거든 작은 선거든, 강한 후보든 약한 후보든, 그 후보가 ‘친노’든 아니든 간에 그 누구보다도 헌신적으로 전국 각지의 힘을 보태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선거 지원 유세를 다녔다. 선거철만 되면 지원유세자로 빠짐없이 언론에 노출된 사람도 문재인 대표였다. ‘친노’ 계파만 위하는 수장이라고, 당내 분열의 원인이라고 힐난하는 이들의 말이 맞았다면 저런 ‘헌신과 노력’의 행보를 보였을까. 지금 위기의 새정치연합을 재정비하고, 당의 발전과 국민들의 바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헌신할 사람을 필요로 한다면 그에 가장 알맞은 인물은 바로 문재인 대표라 생각한다. 그의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면, 현 새정치연합 내부에서 이처럼 청렴하며, 약자를 위해 살아온 인물이 또 있을까 싶다. 문재인 대표는 이럴 때일수록 주변의 ‘흔들기’에 주저하면 안 된다. 수많은 당원과 국민들의 지지를 얻은 덕분에 당선된 한 공당의 대표의 신분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좌절 말고, 자신의 뜻을 통해 당의 개혁을 이끌어나가는 강단 있는 자세가 더욱 필요하다.

 

새정치, 이제 그만 싸워라. 지지자들은 계속되는 참패보다 싸우는 모습에 실망감을 느끼고 지쳐서 아예 정치에 관심을 끊고 외면할 수도 있다. 이 같은 비극도 없을 것이며, 또 이런 비극 자체가 생기는 걸 원치 않으리라 믿는다. 새정치연합의 개개인과 각 계파들은 정치 야욕을 던져버리고 앞으로 당의 환골탈태와 혁신을 위해 자기희생을 감내하고서라도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새정치연합이 전적으로 마음에 들어서 지지하려는 사람은 결코 소수에 불과하다. 보기에 불쌍할 정도로 기울어져있는 정치지형과 절망 수준의 진보 정당 및 단체를 향한 이념적 탄압이 이뤄지고 있는 현실에서 마땅한 대안 정당이 없기 때문에 지지해줄 뿐이다. 이제라도 치열하게 성찰하여 국민들의 바람에 귀 기울이고 그에 걸맞은 결과물을 보여주며 민심을 사로잡아야 한다. 그것이 곧 정치인이 남을 비판할 자격을 얻는 조건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자격은 어디에도 없다. 정치는 결국에 대다수 국민을 상대로 하는 마케팅이고 세일즈다. 정치인은 영업사원의 정신으로 손님이라 볼 수 있는 서민들의 삶의 현장을 발 벗고 누비며 경청하고 소통하고 그들의 고통을 정책을 통해 보듬어주어야 할 것이다. 사실 이런 한심스런 상황에서도 내년 총선에서 과연 새정치연합이 어떤 결과를 얻게 될지 하는, ‘울며 겨자먹기’의 심정으로 희망고문을 당해야 한단 현실은 기대감보단 절망감을 더 느끼게 만든다.

 

졌다. 그야말로 뼈아프게 졌다. 최근 논란인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야권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야권 정당들은 재보궐 선거가 치러진 4곳 모두에서 모두 참패했다. 선거를 앞두고 야권은 내심 자신했을 것이다. 새누리당 소속 몇몇 중진 의원들을 비롯해 지역단체장, 심지어 현직 총리와 청와대 비서실장의 이름까지 리스트에 올라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기 좋게 예상은 빗나갔다. 대표적인 새정치연합 텃밭이었던 ‘광주(서구을)’는 물론, 지난 27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야권 세력이 승리했고 불과 얼마 전까지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이 있던 서울 ‘관악을’에서마저 패배했기에 그 충격은 더욱 컸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그 귀추에 여야의 이목은 더욱 집중됐었다. 바로 내년에 있을 총선의 결과를 미리 가늠해볼 ‘바로미터’ 역할의 선거라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고 제1야당이라는 새정치연합, 그리고 정의당을 비롯한 군소정당들의 존폐 위기까지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http://www.incheonin.com/2014/news/news_view.php?sq=29103&m_no=2&sec=7

 

새정치연합이 내세운 선거 구호는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정권심판론’이었다. 선거 직전에 터진 ‘성완종 리스트’에 기대를 걸었지만 지역 주민들은 자신들의 표를 행사하는 데 있어 냉담했다. 더구나 새누리당과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주류언론들의 노무현 정권과 연관 짓는 물 흐리기 전략으로 기사 면을 도배하는 통에 대다수 국민들은 사건의 심각성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애초에 이번 재보궐선거는 시작 전에 정치 구도상 야권에 불리했다. 헌법재판소의 무리한 통진당 해산판결로 인해 치러지게 됐고, 이미 야권을 향해 ‘종북’이라는 근거 없는 낙인을 찍는 여론이 형성된 이상 중간층의 민심은 요동칠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선거는 부당한 정당해산판결에 반대하여 야권이 한 마음으로 ‘前 통진당’ 후보들에게 양보하고 연대하여 다시금 후보로 나서게 해주면 어떨까란 생각을 했었다. 통진당의 해산판결은 곧 야권 전체의 위기를 몰고 올 수 있을 만큼의 무서운 사건이기 때문에 그 부당함에 정면돌파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선거에 도의란 물론 중요한 요소이지만 도의만으로 선거를 치를 수 없는 노릇일 테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확신 없는 희망을 갖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안타까운 이유들을 극복하길 바라는 심정에서라도 야권이 더더욱 승리해주길 바랐다. 그러나 제1야당이란, 야권의 큰형님을 자처하는 새정치연합은 이번 선거에서도 무능력한 형님의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아무리 4곳에 불과한 ‘미니’ 선거였지만 정권심판론을 외치는 것뿐만이 아닌 정책과 비전 있는 선거를 내심 기대했었다. 예전과 달리 국민들은 이제 선거를 임하는 데 있어 더 신중해지고 성숙했다. 결코 ‘못 살겠다, 갈아보자’와 같은 추상적인 구호만 외치는 선거 전략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오늘날 유권자는 이념과 정당에 상관없이 진정 자신의 삶을 더 희망적으로 바꾸어 줄 수 있는 정책을 내놓는 후보를 지지한다.

 

오마이뉴스 고정미

 

결국 이번 선거에서 정권심판론은 ‘야당심판론’이란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새정치연합의 그동안의 오만함과 무능함을 국민들이 오히려 심판하고 나선 것이다. 특히나 야권 텃밭인 호남의 결과는 그 민심의 심각성을 더욱 또렷이 보여준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오히려 총선이 아닌 재보궐선거에서 이런 결과를 얻은 것이 다행일 수 있다. 총선까지 남은 기간 동안 개선의 여지가 주어진 것 아니겠느냐는 생각에서다. (물론 야권 분열이 참패의 원인이라며 책임을 전가하는 몇몇 야당 관계자와 지지자들의 입장을 보면 답답하고 화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다음 제20대 총선이 1년도 채 안 남았다. 그래서 지금 야권들에게 4.30 재보선 성적표를 들여다보면서 더욱 ‘처절히 절망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야만 자신을 더욱 되돌아보고, 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치열한 전략과 정책을 세울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음 총선은 야권 진영의 운명을 가를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그 이듬해엔 대선이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사활을 걸고 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난 2010년 국민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획기적인 정책들이 펼쳐지는 지방선거를 경험했고, 아직도 잊히지 않을 만큼의 강한 인상을 느꼈었다. 이제는 야권 세력들에게 그 저력이 아직 남아있음을 국민들께 다시금 보여주기 위해 노력할 때이다.

 어느덧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왔다. 봄의 시작은 으레 우리들에게 설렘과 기대를 안겨주기 마련이다. 청소년들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들에게 봄은 곧 새 학년, 새 학기의 시작을 뜻하기 때문이다. 몇 반이 될까, 어떤 친구를 만나게 될까, 또 어떤 선생님이 내 담임 선생님이 되실까. 아이들은 이런 설렘을 안고 3월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더구나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있어서 기대하는 것이 또 있다. 바로 급식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실에서 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에게 점심시간 1시간 남짓은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유일하게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런데 이렇게 청소년들에게 없어선 안 될 ‘점심’을 놓고 경상남도에선 논란이 한창이다. 작년 11월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그동안 실시했던 무상급식을 중단한다는 입장 발표에서 불거졌다. 당시 홍 지사는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무상급식은 포퓰리즘 정책”, “나의 초중고 시절에는 물로 배를 채웠다”라며 개인적 경험을 섞어 비난했고, 또 “학교는 밥을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니”라는 비난도 퍼부었다. 그렇다면 그의 말을 하나하나 따져보도록 하자.

 

먼저 홍 지사와 경남도청은 경남의 열악한 지방재정을 무상급식 중단의 이유로 들었다. 과연 그 말이 사실일까? 경상남도는 지난 3월 1일 재정공시 발표에서 무려 1,561억 원 ‘흑자’라고 밝혔다. 이는 전국 광역도의 평균 흑자 규모가 89억 원인 것을 감안하면 경상남도는 전국에서 가장 높은 재정 흑자 규모를 자랑하는 수준인 것이다. 또 2015년 올해 기준 경남 지역 무상급식에 들어갈 예정이었던 비용 1125억 원 중 경남도청이 부담할 액수는 257억 원에 불과했다. 이에 따르면 홍 지사의 열악한 지방재정 때문에 중단한다는 주장은 결코 앞뒤가 안 맞는다. 흑자 규모로만 놓고 보면 경남도청이 전부 무상급식을 부담하고도 남는 상황에서 홍 지사와 경남의 그러한 주장은 속이 뻔히 보일 정도로 얄팍하다

 

<지난 2010년 경기도의 한 초등학생들이 ‘친환경 무상급식’을 먹고 있는 모습이다.
ⓒ 유성호 오마이뉴스>

 

다음으로 홍 지사는 무상급식이 포퓰리즘 정책이라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여기서 먼저 ‘무상급식’이라는 용어의 수정이 필요하다. 현재 시행하는 무상급식은 말 그대로의 공짜 점심이 아니다. 우리들이 납부하는 세금에서 그 비용을 충당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은 초중고 의무교육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사람 누구라면 교육 받을 의무가 있다. 그래서 의무적인 교육현장에서 ‘의무(적인) 급식’은 필수로 따라오는 것이다. 학생들이 집 외에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내는 장소는 학교다. 그런 학생들에게 차별 없이 식사 한 끼 대접하는 건 국가와 정부의 책무 아니겠는가. 이렇게 당연한 것을 두고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을 운운하며 정쟁으로 이끄는 건 아이들 앞에 부끄러운 짓이고, 또 타당한 이유도 될 수 없다. 무상급식은 학생들의 복지 차원에서 존재하는 것이지 본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한낱 표 하나 얻기 위해 만들어진 정책이 아니다.

 

오늘날 무상급식은 지난 2010년 지방선거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돼 왔다. 당시 선거에서 무상복지(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는 최대의 화두이자 획기적인 정책의제였다. 이 공약을 내세운 많은 야권의 광역단체장(각 도지사, 시장)과 교육감 후보들이 당시 열세라는 예상을 뒤엎고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었다. 국민들이 얼마큼 소득의 불평등에 의해 고통 받고 있고, 또 그로 인해 얼마나 복지의 필요성을 느끼는지 알게 해준 선거였다. 복지가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라는 걸 당시 선거 결과가 증명해준 것이다. 하지만 그 선거 이듬해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상급식 시행을 놓고 당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과의 입장 차이와 이견 마찰 때문에 결국 서울에서는 주민투표까지 실시하게 되는 진풍경이 벌어졌지만, 33.3% 이상의 투표율을 기록하지 못 하여 투표함을 열어보지도 못 하고 끝나버렸고, 오 시장은 약속대로 시장직을 내려놓았다. 만약 선거 이후 1년이나 지난 그 시점에서 무상급식에 대한 불만 여론이 대다수 시민들에게 존재했다면 고작 투표율이 그만큼만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경남의 경우도 그렇다. 지난 3월 중순 경남CBS와 리얼미터가 ‘경남 무상급식 중단’과 관련해 경남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잘못한 결정이다’란 의견이 59.7%로 ‘잘한 결정이다(32.0%)’란 의견보다 두 배 가량 높은 것으로 나와 무상급식 중단에 대해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홍준표 지사는 이런 결과와 대다수 주민들의 직접적인 반발에도 불구하고 도민들에게 ‘종북’이라 표현까지 쓰며 비난하며 주민들의 바람을 어긴 채 독단적인 행정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종북이라니,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두고 종북으로 매도하는 행정가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도지사선거에 나와 무상급식에 대한 찬성 입장을 내비췄고, 취임사에서도 무상급식에 대한 당위성과 타당성을 주장했던 사람이 저렇게도 비열하게 자신의 정치적 계산에 의해 변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경남의 무상급식 중단 결정을 전해들은 함양의 한 초등학교 4학년생이 쓴 일기가 화제다.
ⓒ 경남도민일보>

 

결국 4월 1일부터 경남은 도의회 의결을 거쳐 전면적인 무상급식 중단을 강행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많은 학생과 다자녀 가정이 당장의 예상치도 못 한 심적, 금전적 부담을 지게 생겼다. 얼마 전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일기 하나가 있었다. 경남의 한 초등학교 4학년생이 쓴 것으로 그 내용엔 무상급식 중단으로 고통 받을 부모님에게 미안함이 담겨있었다. 그 일기를 들여다보니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아~ 이제 급식비를 내야한다. … 계속 그 생각을 하면 부모님께 되게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하루하루 마음이 편치 않은 것 같다. 나라도 안 태어날 걸...... … 엄마, 아빠한테 미안해서 잘 때도 편히 못 자고 그래서 너무 마음이 힘들고 속상하다. 어떨 땐 난 내가 죽고 싶기도 하다. 너무 힘들다.”라고. 나의 고등학생 시절 급식 지원 대상자였던 나와 내 친구들이 수업 도중에 담임선생에게 복도로 불려나가 일렬로 세워진 채로 가난을 증명할 서류를 준비해오란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그 비참함과 창피함의 순간이 중첩되어 떠올랐다. 저 아이는 사회에 발을 들여놓기 전부터 급식비 부담 때문에 인생의 좌절감을 느낀 것이다. 왜 우리 사회가 아이들에게 고작 이런 이유로 죄책감을 느끼게끔 만들어야만 하는가.

 

무상급식, 아니 의무급식의 시행의 유무는 고작 액수나 정치적인 이해타산으로 결정할 부분이 아니다. 의무급식 하나로 인해 많은 학교-학생 사회에 비용 이상의 긍정적인 효과를 안겨줄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많은 학생들이 자신과 친구들 사이의 차별이 사라지고 동등한 관계가 되었음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어려운 집안 형편 탓에 급식을 먹으려면 어쩔 수 없이 가난을 증명해야 했던 학생들에게 의무급식이라는 좋은 제도가 그들의 부끄러움과 상처를 보듬어줄 것이다. 또 가난이란 낙인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역할을 해줄 것이다. 의무급식이 지금의 학생들에게 학생으로서의 권리란 측면에서 더 나아가 미래에 국가로부터 마땅히 권리를 보장받을 사회의 주체라는 인식 또한 심어줄 것이라 기대해 의심치 않는다. 이처럼 의무급식은 단순히 밥 주는 것, 밥 먹는 것의 이상의 교육적 파급효과를 가져온다. 초, 중, 고 1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자신의 미래를 위해 자그마한 교실에서 고생하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하하호호’ 웃고 떠들며 친구들과 편히 먹는 밥 한 끼는 큰 위안과 행복으로 다가올 것이다.

 

결국 무상급식(=의무급식)을 중단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의무급식이 갖게 될 의미와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 의무급식은 복지가 더 이상 국가가 가난한 이들에게만 베풀어준다는 시혜적 개념이 아니라, 국가가 차별 없이 동등하게 전체 구성원들에게 마땅히 지급하고 국민들은 마땅히 누려야하는 ‘권리’의 개념으로 인식의 저변 확대를 이끌어내는 데 제 역할을 해줄 것이라 본다. 이제 홍준표 지사처럼 사회적으로 철 지난 정치이념적, 성장론적 복지논쟁을 일으키는 건 그만두어야 할 때다. 실질적인 복지는 행정가와 정치가들이 얼마큼의 의지와 철학의 밑바탕을 갖추느냐에 따라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앞서 말했듯이 보편적, 제도적 복지는 우리나라에서 역시 시대적 요구이자 권리로서 자리해나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백 번 양보해 홍 지사의 본래 입장대로 도정 예산이 부족한 것이 무상급식 중단의 이유라면, 중앙정부의 수장인 박근혜 대통령을 상대로 경남도민들의 복지 권리를 위해 재정문제와 지방분권을 놓고 맞서 싸워야 할 일이지, 오히려 도민들의 권리를 합의 없이 빼앗는 건 행정가로서 절대 옳지 못 하고 비겁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자, 이제는 홍준표 지사가 경남도민들과 더불어 국민들에게 ‘고품격’의 도지사인지, 또는 ‘싸구려’ 도지사인지 둘 중 어떻게 평가 받느냐는 온전히 본인의 올바르고 현명한 결단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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