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하면 뭐가 달라지나?"
나는 어렸을 때 공상을 참 좋아했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생각들. 물론 그런 터무니없는 상상을 한다고 해서 부모님이 상을 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잠들기 전이면 늘 어떤 것이든 머릿속에서 끄집어내려고 노력했다. 그 생각이 사람들한테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또 내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따위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 시절 내가 품었던 가장 큰 의문은 지구가 혹시 네모난 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이없는 생각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름 진지했다. 물론 그때도 ‘지구는 둥글다’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왠지 인정하기가 싫었다. 적어도 내가 한 방향으로 쭉 가서 다시 원래 있던 지점으로 돌아오지 않는 한 나는 지구가 둥글다라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이기 싫었다.
물론 이 이야기는 혼자만의 상상으로 그쳤다. 당시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계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보편적인 진리에 대한 의문 제기가 철없는 아이의 반항으로 비칠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나름 진지하게 생각한 것인데 그걸 실없는 소리로 취급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들 역시 나와 같은 루트로 그 보편적 사실을 깨달았기에 그들의 반박은 원래 내가 알고 있던 사실의 무게를 뛰어넘지 못할 것이라 판단했다. 마지막으로 일단 공상에 타자가 개입되면 그건 더 이상 공상이 아니었기에 나는 말하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는 공상을 하지 않게 되었다. 무슨 계기가 있었다거나 철이 들었기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런 공상을 한다는 사실을 우연히 다른 친구들한테 들켰다가는 이상한 놈으로 낙인찍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지레 겁을 먹었던 것 같다. 한마디로 나는 대학생이 되면서 남의 시선을 신경 쓰게 됐고, 그 시선이 내 공상을 부정적으로 볼까 두려워 나는 공상 행위 자체를 중단한 것이다. 물론 공상을 하지 않아도 삶이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몇 가지 달라진 것들은 분명히 있었다.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사이에는 늘 간극이 있으니까.
일단 공상을 끊으니 합리적인 고민도 하지 않게 되었다. 지극히 당연한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게 공상이었는데, 그걸 하지 않으니 당연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질문마저도 자취를 감춰버렸다. 또 한 가지, 공상을 하지 않으니 오히려 공허함을 느끼게 됐다. 기실 공상의 위대함은 창조성에 있다. A를 생각하다가 B가 나오고 A와 B가 조합되는 사이에 하나의 세계관이 형성되는 일련의 과정은 공상하는 사람을 절로 유쾌하게 만든다. 그게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그런 공상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기제로 작동하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마음 편히 공상하기로 했다. 공상을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것이 내게 더 유익하고 다른 삶의 영역에 영감을 줄 수 있으니 말이다. 새삼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가 한 말이 떠오른다.
"불가능한 것을 얻으려면 불가능한 것을 시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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