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학원 발제 준비로 재일 조선인에 대한 이즈츠 카즈유키 감독의 영화 <박치기, 2004>를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처음 이 영화를 접했던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당시 이 영화를 봤을 땐 단순히 일본 특유의 재치가 느껴지는 상업영화라고만 생각했다. 머리가 조금 커서 그런지 단순한 상업영화라기보단 정치성이 다분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대충 내용을 설명하자면, 영화는 1968년도 교토에서 일어나는 조선학교와 일본학교의 갈등을 그려낸다. 갈등의 극단에는 각 학교의 폭력조직이 위치해 있지만 결국 조선인 여학생 ‘경자’와 일본인 남학생 ‘코우스케’의 사랑으로 평화가 찾아온다는 매우 신파적 결말로 막을 내린다.


영화 '박치기' 스틸컷 (출처 = 네이버 영화)


 그런데 문제는 내용이 아니다. 내용이 ‘보여지는 방식’이다. 2000년대 세계화의 이름 아래 초국가적 공간이 형성된다. 미국만이 ‘Melting Pot’이 아닌 전 세계가 ‘Melting Pot’이 된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 맞추어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일본 영화계에서는 마치 트렌드처럼 ‘다문화에 대한 고민’, 특히 ‘재일 조선인’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는 재일조선인 출신 최양일 감독의 <피와 뼈>,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Go>, 그리고 <박치기>가 있다. 모두 각종 영화제에서 우수한 상을 차지하면서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좋은 결과를 얻은 영화들이다. 이 세 영화의 재미있는 점은 재일조선인을 다루는 시선은 제각각이지만 그것을 구현하는 방식에서 ‘위협적이고 폭력적인 재일조선인’이라는 공통점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일본 상업영화에서 재일 조선인에 관한 극영화가 많이 제작되었다면 한국에서는 재일조선인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많이 제작되었다. 재일한국인 양영희 감독의 <디어평양>, <굿바이평양>, 김명준 감독의 <우리학교>, 또 최근에 개봉한 박사유, 박돈사 감독의 <60만번의 트라이>등이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시 한번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에서 제작된, 혹은 재일한국인에 의해서 제작된 이 일련의 다큐멘터리에서 재일조선인들이 그려지는 방식이다. ‘위협적인 재일조선인’을 그려낸 일본영화와 달리 한국 다큐멘터리에서는 일본 사회 내의 차별과 극우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순수한 존재로 그들을 구현해 내고 있다.


 이렇듯 일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재일조선인과 한국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재일조선인은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일본인이 또는 한국인이 재일 조선인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영화에서 구현해 내는 폭력적인 재일 조선인의 모습을 보며 한국인으로서 마냥 화만 내야 할까. 실제로 50년, 60년대의 재일조선인들과 일본인들의 무력적 갈등은 영화에서 그려내고 있는 것보다 더 심했으면 심했지 덜 하지는 않았다. 물론 재일조선인의 폭력은 해방 후에도 ‘해방되지 못한 존재’로서 식민지 제국에 살면서 받는 차별과 고통으로부터 기인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되지만,‘위협적인 재일조선인’이 존재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영화는 상상하는 예술이지만 현실에 토대를 둔 상상의 예술이다. 영화가 시대와 사회의 반영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일련의 영화들이 재일조선인을 폭력적으로 그려낸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타당성을 잃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한국 다큐멘터리에서 그려지는 ‘순수한 재일조선인’의 모습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영화에서 보여지는 ‘요즘 시대에 사는 아이들 맞나?’ 싶을 정도의 순수성은 그들의 한 면일 뿐이다. 그들이 재일조선인으로서 살아가면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그 정체성으로 인해 일본 사회 내에서 차별과 위협에 시달린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들은 조선학교를 떠나면 일본 사회에서 사는 똑같은 일본 학생일 뿐이다. 멋 내기 좋아하고, 친구들과 놀기 좋아하는 여느 학생들과 다를 바 없는 아이들이란 말이다.


 우리는 흔히 미디어에서 하는 이야기들을 곧이곧대로 뇌에 저장시키곤 한다. 생각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날 것으로 들어온 정보들은 마치 내 생각인 것 마냥 뇌를 장악한다. 이 날 것의 정보는 또다시 생각의 과정을 생략한 채 입 밖에 나와 누군가의 뇌를 점령하기도 한다.


철학자 벤야민은 근대 인간의 지각 양식을 설명하기 위해 ‘아케이드’를 예로 든다. 아케이드는 19세기 파리 도심에 세워진 아케이드 형식의 쇼핑몰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차 화물칸 같은 상점들로 이루어진 쇼핑몰 양식은 현대에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소비자는 근대에 들어와 ‘이러한 아케이드를 거닐며 이전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다양한 이미지의 ‘파노라마적 연쇄’를 경험하게 된다. 일정한 흐름에 따라 ‘정지’ 상태가 아닌 ‘이동’ 상태에서 상품을 관람하면서 소비자-대중은 주의 깊은 지각 대신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지각만을(김호영, 영화 이미지학, 문학동네) 가능하게 한 것이다.


 



 따라서 이미지의 홍수시대에 사는 우리는 아케이드를 거닐며 지각하는 방식, 대상을 주의 깊게 바라보지 못하고 외연적인 것만을 훑어버리는 편의적인 방식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이러한 편의주의적 지각방식, 사고방식이 현대인간들의 ‘사유’를 멈추게 한다. 이것은 언론, 방송, 영화 등을 포함한 미디어와 그 뒤에 숨겨진 거대담론의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다. 스탈린은 ‘영화는 가장 중요한 대중 선동 수단이다’ 라고 말했다. 소련시대와 나치시대에 영화가 프로파간다의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여전히 북한에서는 프로파간다로서의 영화와 방송프로그램을 제작한다. 물론 21세기는 20세기의 피의 역사의 시대와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안이하게 미디어가 가진 정치성마저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더욱 교묘하게 인간의 의식을 형성한다. 어찌 보면 그것이 미디어의 숙명적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더 ‘보여짐’의 폭력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방패를 마련해야만 한다.


 바로 ‘질문하기’와 ‘사유하기’ 필자가 이 글에서 제안하고 싶은 방패이다. 다시 영화 <박치기>의 예로 돌아가 보자. 영화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영화를 보면서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왜 시대는 68년도일까?’ ‘왜 조선인은 폭력적이고 일본인은 순진하게 그려질까?’ ‘왜 재일조선인에 대한 영화에서 재일조선인은 항상 위협적인 존재일까? 의도적으로 질문한 순간 풀고 싶은 궁금증이 되어버린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스스로 생각하고 공부하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아무런 여과 없이 영상이 보여주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면, <박치기>를 본 한국 관객들은 재일조선인을 폭력적으로 그린 것에 대해 분노할 것이고, 일본 관객들은 폭력적인 재일 조선인들을 보며 자신들을 다시 한번 피해자로서 재정의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비단 재일조선인의 영화, 혹은 영화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던 모든 미디어, 우리가 지각하는 모든 이미지와 정보들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우리는 수동적인 관객에서 능동적인 관객이 된다. 날 것을 정제하여 내 것으로 만드는 힘을 갖게 된다. 또한 ‘사유하기’ 세계의 문을 열 수 있게 된다. 사유할 수 있는 틈새가 발생하는 순간 우리는 더 많은 궁금증이 생긴다. 저절로 찾아보게 되고, 공부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며 이미지가 보여지는 일방적인 사슬에서 벗어나 저 멀리서 관조하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요즘 지하철 내 의자에 앉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 엄지를 위아래로 열심히 움직여가며 핸드폰에 열중해 있다. 과연 그중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 ‘보여짐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호모 사피엔스, 생각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 글을 보는 당신은 진정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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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타시나요?  (0) 2015.05.16

풍선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눈 딱 감고 바늘로 푹 찔러 내 안에 차올랐던 모든 감정들이 말끔히 빠져나가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누군가에게 부탁해 고이고이 접어 서랍 안 쪽에 넣어달라고 하는거다. 그렇게 조용하고 깨끗하게 사라지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런 이유모를 우울감이 찾아올 때면 우린 종종 계절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나 봄타나봐.’, ‘나 가을타나봐.’ 하지만 정말 계절만이 이 이유모를 우울감의 원인인 걸까?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은 이유가 너무 많아서 마치 여러가지 색의 실타래가 뒤엉켜 어떤 색인지 분간할 수 없는 것처럼 ‘에라, 모르겠다.’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뒤엉킨 색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내야 하는 작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 정돈된 실타래의 색들을 확인하고 심지어는 예쁜 팔찌 하나를 만들어 낼 수 있지는 않을까.

 

 

하지만 문제는 우울증, 또는 때때로 찾아오는 이 우울감의 상태에서는 무기력해진다는 함정이 있다. 속은 공허하고, 의욕은 상실되고, 머리로는 알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매력적인 글귀와 명언을 보아도 예전처럼 가슴이 요동치지 않는다. 페이스북을 보면 다들 멋지게 살고 있는데 나만 정지해 있는 것 같다.

 

안다. 힘들다는 것. 하지만 단순히 ‘봄 타는 것’으로 책임을 떠넘겨서는, ‘언젠간 괜찮아지겠지.’하며 방관해서는 지금 이 곳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는 것 또한 안다. 앤서니 기든스는 현대의 자아정체성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전통 농경사회에서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할아버지가 하고, 아버지가 했던 일을 이어받는 것이 나의 정체성이었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정체성은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인터넷, 스마트폰, 미디어의 발달로 시공간의 구분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사회에서 우리는 수없이 밀려들어오는 정보의 양과 경험으로 다수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이 때 우리 안에 형성된 각각의 정체성은 서로 모순되어 충돌하며 자아를 분열시킨다.

 

그러니깐 당연한 것이다. 우울하다는 것은.

 

그래서 나는 또 안다. 지금의 이 무기력함에서, 이 공허함에서, 이 우울감에서, 언젠가는 벗어날 것이라는 걸. 그리고 또 언젠간 찾아올 것이라는 걸. 사람마다 이에 대처하는 법은 다르겠지만 여기서 벗어나기 위한 나만의 ‘발버둥침’을 조금 소개하고자 한다.

 

글로 쏟아내기 그리고 마지막은 긍정적인 문장으로.

 

엉켜진 실타래를 풀어 내는데는 반드지 글로 쏟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도대체 이 감정은 뭐지?’, ‘우울한데 이유를 알 수 없어.’라는 생각이 들 때는 지금 느껴지는 감정들, 생각들, 내가 처한 상황들을 있는 그대로 글로 옮긴다. 한 편의 멋진 글을 써 내는게 아니라 단순히 내 안에 엉켜있는 생각과 감정의 실들을 빼내는 것이다. 그러니깐 글쓰기에 대한 부담은 없어야 한다. 부담이 생기면 꾸며 쓰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모호했던 감정들이 언어로 구체화되면 내 상태가 스스로 진단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지막은 항상 긍정적으로 끝내는 것이다. 마지막 긍정적인 한 줄이 치료법이다. 부정적인 문장에서 끝나면 내 감정 또한 부정적인 것에 머물러 있게 되기 때문이다.
 
우울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느 날 혼자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외로움이 사무쳤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인간으로써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웠고 감사했다. 그리고 나는 핸드폰을 가방에 넣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서서 온전히 그 감정을 느끼도록 노력했다. 가끔씩은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것보다 정면으로 맞서보는 것도 방법이다. 

 

움직이기.

 

우울할 때는 운동을 하라는 말은 여기저기서 들어보았을 것이다. 물론 운동을 통해서 몸을 일부러 움직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움직임’은 몸을 움직이는 것  뿐만이 아니다. 마음에 맞는 친구들을 만나서 입을 움직이자. 또는 평소에는 안하는 퍼즐 맞추기라던가 그림 그리기를 통해 손을 움직여 보자. 아무 생각없이 재밌는 예능프로를 보며 하하 웃으며 표정을 움직이기도 하고, 진지한 다큐멘터리를 보며 뇌를 움직여보기도 하자. ‘움직임’은 내가 살아있음의 증거이다.

 

사소한 성취감 느끼기

 

갑작스런 우울함이 밀려들어올 때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그 시기에 스케쥴러는 텅텅 비어있다. 연말이 되어 지난 1년간의 스케쥴러를 되돌아보면 그 여백을 통해 인생의 여백의 시기도 확인하게 된다. 그렇다고 무리하게 채우려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하루하루 성취할 수 있는 사소한 일들을 적는다. 예를 들면 그 동안 쌓아놨던 책상의 책들을 정리한다던가, 보고 싶었던 영화를 시간 내어 본다던가, 혼자 밤에 산책을 한다던가 등의 그런 사소한 것들.

 

 

사실 이 글은 나에게 쓰는 조언정도가 될 듯싶다. 어쩌면 이 글을 통해 나는 글로 쏟아내기 작업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풍선이 되고 싶다. 하지만 이왕이면 하늘을 자유롭게 훨훨 날 수 있는 풍성한 풍선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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