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11일 오전 11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훈민정음 국보1호 지정을 위한 10만인 서명운동’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동안 한글관련 단체가 같은 주제로 서명운동을 벌였으나 번번이 실패한 운동에 문화재 관련 단체가 도전한 것이다. 문화재 관련 단체가 주장한 내용은 ‘숭례문이 국보1호로써 자격이 있느냐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1996년 김영삼 정권, 2005년 노무현 정권에서 추진했던 국보1호 숭례문과 국보70호 훈민정음 해례본의 번호를 교체하려 했던 정책을 다시 추진하자.’였다. 


서명운동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진행됐는데 국민의 호응을 얻어 서명운동 마감일인 2015년 1월 11일까지 총 11만 8405명의 서명을 받은 것으로 종료됐다. 두 달이라는 시간동안 학생, 주부 및 정치인까지 많은 이들이 호응한 서명운동으로 조명 받았다.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서명운동 종료 당일 저녁에 문화재청은 보도 자료를 배포해 국보 및 보물 등의 번호를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국가문화재 관리 체계 재조정을 위한 기본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국보 번호를 폐지하는 것을 전제로 여러 가지 안을 마련한 뒤 공청회 및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안을 결정한다고 한다.

 


서명은 국보1호 숭례문과 국보70호 훈민정음 해례본의 번호를 바꿔달라는 운동이었는데 문화재청은 왜 모든 국보 번호를 폐지하겠다고 나선 것일까?


문화재청은 국보 1호는 단순한 행정관리 번호이지, 국보의 가치가 으뜸이란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국보1호와 국보70호의 번호를 바꿀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문화재청이 말하는 변명에 불가하다.


국보 1호가 무엇인지는 초등학생도 다 알고 있다. 그 이유는 교과서에 수록하여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국보 1호가 무엇인지 묻는 문제는 외국인이 한국에 귀화할 때 보는 시험에도 등장하고 있으며 문화재 해설 및 관광 관련 자격시험 문제 등 역사와 관련된 시험에 단골문제로 출제되고 있다. 또한 2008년 숭례문 화재 당시 언론은 ‘국보1호’가 불에 탔다고 집중 조명했으며 2013년 숭례문 복원 당시 문화재청에서 ‘국보1호’를 복원했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미 국보1호는 대한민국 문화재의 대표자리를 부여받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문화재청은 말한다. “단순한 행정관리 번호를 국민들이 문화재 중요도 순위로 오해하고 있어서 생긴 일이다.” 그러나 이것도 문화재청이 매번 말하는 변명에 불과하다. 당장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국보2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라고 물어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답하지 못한다. 국보를 문화재 중요도 순서로 인식했다면 국보 5호까지는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국보1호 숭례문을 국민이 기억하는 이유는 1호의 상징성 때문에 그것이 문화재를 대표하는 상징이자 표상이 됐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의 논리적 모순이 드러나는 지점은 1996년과 2005년. 정부가 국보1호와 국보 70호의 번호 교체문제를 진행했다는 것으로 이미 드러나 있다. 국보1호의 상징성은 이미 예전부터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던 사안인 것이다.


두 차례 실패한 정책 이야기가 2015년, 다시 수면위로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2015년이 광복 70주년을 맞는 해이기에 일제잔재를 청산한다는 의미와 최근 복원된 숭례문이 부실과 비리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 국보 자격 박탈문제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숭례문은 1934년 조선총독이 보물1호로 지정한 문화재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한양의 교통흐름에 방해된다며 아다치 겐조우가 숭례문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고 하세가와 요시미치 조선군 사령관은 대포로 쏴서 파괴하자라고 주장했다. 이에 일본인 거류민 단장이었던 나카이 기타로가 숭례문 폭격을 반대하고 나섰다. 그가 반대한 이유는 숭례문은 가토 기요마사가 임진왜란 당시 한양에 입성한 문이므로 남겨 놔야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조선침략의 증거로서 숭례문은 살아남았고 임진왜란 당시 고니시 유키나가가 한양으로 들어온 흥인지문도 살아남았다. 그러나 식민통치에 의미 없는 돈의문, 소의문, 혜화문 등은 철거당했다.


그 후 1934년 일제는 조선보물고적명승기념물 보존령을 제정하여 보물1호는 숭례문, 보물2호는 흥인지문으로 정했다. 국보1호 숭례문이 일제잔재라고 비난받는 이유가 이것이다.(당시 일제는 조선은 식민지이기에 국보번호를 부여하지 않고 보물 번호를 부여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또 변명한다. 국보지정 당시 이 문제가 거론됐지만 보물에서 국보로 격상시켰기에 일제잔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제는 보물 지정 당시 고적도 지정했는데 당시에 고적 1호로 지정한 문화재는 경주 포석정이었다. 일제는 교묘하게 보물과 고적에 망국의 의미를 담은 문화재를 1호로 지정한 것이다. 보물을 국보로 격상시키며 일제잔재를 털어냈다면 고적1호는 왜 그대로 지정한 것일까? 숭례문은 일제잔재가 아니기에 국보1호 자격에 문제가 없다고 말할 때마다 나오는 문화재청의 논리 없는 변명일 뿐이다. 


문화재계에서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문화재와 관련하여 일하고 있는 지식인은 모두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집착 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행정관리 번호일 뿐인데 잘 모르는 국민들이 오해한 것이다라며 이야기 할 때마다 그들은 왜 상징과 표상은 이해하지 못하는지 의아할 뿐이다.

 


현재 국보에 번호를 부여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북한 밖에 없다. 해외사례 중 국보에 번호를 부여하는 경우가 없고 일본도 최근에 없앴으니 우리도 없애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필자는 이 의견에 반대한다.


우리는 우리를 나타낼 수 있는 쉽고 간편한 방법을 갖고 있다. 바로 문화재 국보번호 시스템이다. 이러한 좋은 상징 제도를 왜 없애려하는가. 우리를 나타낼 수 있는 문화재로 훈민정음 해례본을 하겠다며 국민들이 지지하는데 번번이 문화재 위원회만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상징과 표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재위원들이 있는 한, 국민의 여론을 무시한 채 고집과 아집으로 버티는 문화재위원들이 있는 한, 문화재계는 절대로 발전할 수 없다. 또한 대한민국을 상징할 수 있는 좋은 체제도 잃어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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