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신상의 이유로 퇴사?


  회사에서 행정상 제출을 해야하는 사직서에 ‘일신상의 이유’로 적어서 내야했다. 내가 겪었던 복합적인 상황과 내가 퇴사를 결정하게 된 계기/배경에 대해서 그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는다. ‘중이 싫으면 절을 떠나야 한다.’라는 말처럼 떠나는 사람한테는 관심이 없었고 사직서를 쓰는데 복잡한 마음이 들면서 주저리 설명할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나는 사직서를 송부하면서 조직내부자들의 귀에 대고 ‘ 과연 이게 나의 희망 퇴사으로만 봐야 할까요? ’ 라고 온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있을 정도로  소리치고 싶었다.

  대부분 서류상 퇴사의 이유는 개인적 사정, 사유로 귀결된다. 계속 사직서를 수정저장 하면서 끝내 일신상의 이유로 써서 내버린다. 하지만 퇴사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나 근원적 문제에 대해서 모두가 느끼면서 누구도 입밖으로 꺼내지 않고 그곳을 떠난다. 무언가에 의해 떠밀려 나가는 경우가 대다수이지만 쉽게들 희망 퇴사와 이직을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해 퇴사 밖에 방법이 없다 생각해 선택했고 더 이상 못 버티겠어서 떠났다. 사회초년생이었던 나는 정신적, 신체적으로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퇴사’를 고민하게 되었고, 나의 아픔이 그저 개인적 사유나 부주의로만 생각된다는 느낌이 들고 아픈 와중에도 일을 이야기하고 생각해야 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시간과 일만 생각하는 워커홀릭이 되어버린 나에게 ‘STOP’ 버튼과 쉼이 필요했지만, 뭔가 적응을 못하고 뒤쳐지는 것만 같은 느낌에 아등바등 일을 하면서 버티고 있었던 거였다.  



내 몸에서 보내는 신호 ‘그만 멈춰.’


  확실히 건강의 적신호는 나의 상태를 명확히 알려준다. 젊은 나이에 겪지 않을 질병에 걸렸다. 작년에 회사가 재정이 어렵다고 해서 노동조건을 변경하고 계약서를 수정하게 되었고, 내 월급과 비스므리한 활동비를 지원해주는 용역단체가 건강검진표를 요구했다. 그 덕분에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내 몸에 이상이 생겼음을 알게 되었다. 그저 피곤하고 컨디션이 안 좋은 거 뿐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였다. 회사에 말씀을 드렸고 나는 일은 해야 했기에 차일피일 치료를 미루어지게 되었다. 휴가를 신청하고 얻는 과정에서 내 상황을 고려해주십사 요청드렸고 우여곡절 끝에 조금 긴 휴가를 얻게 되었다. 그래도 계속 일에 신경 쓰게 되고 휴가임에도 마음이 엄청 불편했다. 일은 되게 해야한다는 일중심 사고, 멋지게 일을 해내고 싶은 마음이나 책임 때문인지 모르겠다. 휴가임에도 일은 끊임없이 생겨나고 뭔가 쉬지 못한 상태로 있는 것만 같았다.

  하루는 병원에서 의사선생님이 덤덤하게 말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아파요. 이게 다 스트레스때문이죠 뭐. 사는게 그렇지’ 나는 스트레스를 잘 안받는다고 생각했었지만, 이렇게 몸이 아프고 나니 내가 많이 받고 있었구나를 느꼈다. 스트레스의 주 원인은 바로 회사에서 있는 관계들, 일들이었다. 조직 안에서 소통도 되지 않고 최소한의 배려가 부족하다고 느꼈지만, ‘아닐 거야. 좋은 사람들이야.’ 라고 계속 부정했다. 내가 사회생활과 일을 잘 모르고 너무 많은 걸 바라는 내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회사도 어렵고 다들 바쁘고 힘들게 일하니까 라고 이해하려 했다. 아프고 나서 버겁게 일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회사의 재정상 어려움은 거짓말이었음을 알게되고 조직안에서 그 누구도 함께 일하고 있는 나를 기억되거나 생각되지 않음을 확실히 느꼈다. 무례했던 조직과 상사, 동료들에 대해서 격렬한 감정과 생각이 들면서 회사 안에서의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보았다. ‘ 고슴도치 한 마리 ’가 혼자 노오력하며 일하고 뭔가 이상하고 잘 맞지 않는 공간에서 힘들고 어려워도 캔디처럼 존버하고 있었다. 사실 내 자신을 내팽겨쳐놓고 누군가를 위해, 일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퇴사하고 알게 된 사실, 1+1=0


  한때는 일을 하고 바빠보이는 것이 멋져보였다. 뭔가 역할을 하고 책임을 가지고 한다는 거에 소속감도 느끼고 자아실현을 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조직은 항상 어렵다고 말하고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이 밀려왔고 우린 팀원으로 협업을 하며 일을 해나간다. ‘일이니까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일에 얽매여 지내고 공을 들여 열심히 해내야 한다. 또 일 뿐만 아니라 조직생활도 어렵고 힘들어도 사회초년생, 직장인이라는 이유로 아름답게 함께 일해야 하기에 참고 일을 한다. 일을 하면서 ‘퇴사’를 고민하게 되는 시점이 많이 오지만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때문에 다시 사직서를 수정하고 저장해둔다. 그러면서 나는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바짝 세우며 일을 하고, 내 자신은 점점 건강하지 않은 상태가 되어갔다.

  퇴사를 고민하게 된 수많은 단절점 중 ‘나 상태 안 좋음’을 깨달은 일이 있다. 하루는 퇴근하고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다음날 출장이 있음에도 술이 날 마시는지 내가 술이 마시는지 모를 정도로 술을 마셨다. 대책없이 술을 마시고 엄청 흐트러진 적 없었던 내가 그날 탄탄대로 길바닥에 슬라이딩하며 뽀뽀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얼굴 오른쪽 광대는 까져서 빨개져있고 안경은 부러져있었다. 그래도 아침일찍 일어나 출장을 가 일하는 내 모습이 안 쓰러워 보이고 짠내 났다. 원인을 특정할 수 없지만 참 버거워 보였고 ‘이대로 괜찮은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직장에서 일이 나를 하게 되었다. 퇴사를 고민하면서 일을 할 때 수란과 딘의 1+1=0 노래를 많이 들었다. ‘나도 그렇고 너를 이해해. 철저히 아무것도 안하고 쉬어도 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분들에게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추천한다. 

 


SURAN - 1+1 = 0 (feat.DEAN)



( 여유가 없어 여유가 없어 여유가 없어 없어 없어 여유가 )

다들 왜 이래  뭐 땜에 이래 힘 좀 빼 hey hey my baby

일 주 내내 일에 얽매인 채 삐걱대 hey hey why baby

페북을 둘러봐도 인스타를 둘러봐도 관심에 메말라 갈 뿐

알겠어 청춘인 건 근데 좀 버거워 보여 이대로 괜찮을까요

1+1 = 0 and I'm still young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나영

So how bout you So how bout u

일을 해 아니 일이 나를 해

everyday same day 놀자 하니 이젠 노는 법도 모르겠어 Am i crazy whoo

woo 따져보자 엄밀히 어 넌 왜 일에만 공 들이지

해와 달 낮과 밤 세상 만물엔 다 밸런스라는게 있으니

넌 좀 쉬어야 돼 이미 yeah 달고 사는 아스피린

고진감래 다 헛소리지 yeah Just take a little time Relax ur mind yeah

1+1 = 0 and I'm still young

아무것도 안하면 아무것도 아닌게 되나영

1+1 = 0 and i'm still young

이젠 좀 가만 가만 가만 가만히 가만 가만 가만 가만히 just chill Just chill Just chill

시간이 약이라면 그게 언제인지 알려줘 일에 내 팽개져있던 진짜 나를 찾고 싶어 hey

1+1 = 0 and I'm still young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나영

1+1 = 0 and i'm still young

이젠 좀 가만 가만 가만 가만히 가만 가만 가만 가만히 just chill Just chill Just chill



  어느 순간 워라밸(Work & Life Balance) 라는 말처럼 멋지게 균형점을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랬고 그렇게 커리어우먼으로 성장해서 사회생활을 잘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난 사회생활과 일이라는 블랙홀에 빨려들어가서 몸과 마음도 다쳤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휴가를 보냈지만 나는 아직도 일하는 중인 것 같았다. 몸, 마음도 상태가 안 좋고 더이상 몸이 버티지 못하겠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다시 일터로 돌아가면 날 힘들게 한 상황을 변경할 수 있는 결정권/권한이 없다는 걸 직시했고 ‘그저 아픈 채 익숙하게 일할 뿐이고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나아질 수 없음.’를 느꼈다. 그렇게 황급히 비상구를 찾아 나가듯이 퇴사를 했다. 사회초년생으로 젊은 나는 일터에서 다 소진, 소모되어서 태워져 도망치듯이 나가게 된 것 같았다. 퇴사를 하면서 사회생활, 일 자체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일은 해도해도 끝이 없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1+1=0?




 

사람들을 만나면 ‘ 요즘 무슨 일 하세요? ’ 라고 묻는다.

 소속이 없고 일을 쉬고 있는 나는 답한다.

 ‘ 저는, 지금 퇴사 중입니다. ’

 

 어느 날 오후 회의를 하는 내 모습을 마주했다.

 내가 제일 힘들어하고 닮고 싶지 않았던 ‘회색인간’이 되어서 말하고 있었다.

 내 모습이 낯설었다.마음 속에는 선인장을 키우고, 세상과 사람들에겐 바짝 가시를 세우고 움츠리고 있었다.

 마치 속살은 섬세하지만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시를 세우는 고슴도치처럼 말이다.

 다들 사회생활이 그렇다고 하니 멀쩡한 척, 괜찮은 척하며 견디며 살았다는 걸 깨달았다.

 

 퇴사를 하면 여러모로 힘들고 포기하고 도망치는 것 같아 머뭇거렸다. 또 일을 해야만 쓸모가 있는 사람이라고 존재의 가치를 느끼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누군가를 포용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보기 어렵고

 글을 쓰거나 주변의 것을 예찬하지 못하고 있는 회색 고슴도치였다.

 그곳에서 나와 비슷한 고슴도치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모두가 소모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일하고 싶지 않기로 했고,

 나는 사직서 7장을 쓰고 퇴사를 선언했다.


 회사 행정상 제출해야 했던 사직서 1장엔 ‘일신상의 이유’로 적어야 했다.

 퇴사의 이유는 마음 속의 복잡하게 얽힌 감정실 타래 같은데, 어떻게 한 줄로 정리할 수 있나.

 나의 젊은 날에 잠시 일했음에도 삶의 우선순위와 가치가 뒤흔들렸다. 나랑 맞지 않은 옷을 입고 가면을 쓰고 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통제하고 관리하고 있었다. 참 폭력적이여서 마음에 상처투성이었다.

 지금은 나답게 일을 하고 함께 일할 방법을 고민하면서 나의 일경험과 사회생활을 회고하고 있다.

 아직도 난 회사와 일에서 완벽하게 퇴사하지 않은 것만 같다.

 내 안에 이해가, 소화가 되지않은 것들이 참 많다.

 서류상 퇴사했지만, 나는 아직도 퇴사중입니다.


 퇴사하고 나니 홀가분하면서도 덧없음을 느끼고, 또 다른 결의 공허함을 느꼈다.

 바쁘게 지내야 할 것만 같아서 서울을 다녀오던 밤에

 나의 빈자리를 채우는 채용공고를 봤다.

 ‘ 나는 대체가능한 인력이었구나. 내가 대체불가능한 인력이 되고 싶었구나 ’ 를 느꼈다.


 그 날은 잠들기 그른 것 같았다.

 ‘ 벌써 나의 존재가 지워지고 잊혀가는 구나.’ 라는 아쉬움과

 ‘ 새로운 사람은 뭔가 이상한 곳에 잘 적응할까? 나와 다르게.’라는 걱정이 생긴다.

 ‘ 나만 못 견디고 적응에 실패한 걸까 ’ 하는 쓸데없고 자존감을 낮추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계약직이라는 앨범 속에 공집합이 부르는 퇴사 노래를 들으면서

 많은 사람이 나와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생각을 하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낀다.

 ‘ 우린 아직도 퇴사 중이구나. ’  



“ 등을 돌려 떠나가네 남겨둘 것 없는 채로

아쉬워할 틈도 없이 예정대로 지워지네


내가 있던 자리. 당연했던 일상. 함께였던 사람들

모두가 낯설어져만 가네


내가 있던 자리. 당연했던 일상. 함께였던 사람들

모두가 낯설어져만 가네

모두가 잊혀져 가고 있네

모두가 희미해져만 가네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는 하루가 그대로 지나가네

아무 일 없이 무사할 걸 알면서 어쩐지 뒤를 돌아보게 되네


등을 돌려 떠나가네 남겨둘 것 없는 채로

아쉬워할 틈도 없이 예정대로 지워지네.

< 퇴사 - 공집합 > 가사



 

[ 퇴사하면서 하고싶었던 말 #1. 넌 날 담을 큰 그릇이 못된다 ]




추신 :

오랜만에 저의 이야기를 담는 글을 쓰네요. 글을 쓰지 않았던 3년 가까운 시간동안 저에게 참 많은 일이 있었어요. 느영나영 함께 살고 나다운 삶을 찾아서 대안적으로 살려했지만,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내기도 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었죠. 딱 그 시기에 사회와 사람에 대한 순진한 희망을 품고 소위 좋은 일을 시작했어요. 차차 글에 담아내겠지만 엄청난 일들을 겪고 나서 두 달 전에 서류 관계로 완벽히 퇴사했어요. 앞으로 제가 듣고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제 퇴사기를 비롯해서 많이들 공감할 수 있는 고민을 담아서 글을 쓸게요. 글과 음악을 통해 함께 알아가고 소통할 수 있길 바래요.


출퇴근 시간에 기계적으로 몸을 지하철에 싣는 삶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의 내 모습과 다르게, 내가 잠시 살아봤던 인도는 생기가 넘치고 ‘살아 있는 곳’ 이었다. 물론 단편적인 모습이라며 인도의 사회문제를 말할 수 있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에너지가 있고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인도의 모습으로 계속 글을 써가도록 하겠다. 또한 기억해야 할 점이 내가 지냈던 곳이 소수민족이 많고 다양한 문화와 종교, 인종이 있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생각하시길.


‘진정 살아 숨쉬는 사람들'이 있는 인도
한국에서 나는 주체적으로 나만의 방식으로 살고 싶었지만, 경쟁 속에 눈치를 살피며 어떤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이끌려 살았다. 하고 싶은 걸 하는 것보다는 안정적이고 사회가 원하는 것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다수의 방향에 따라야 하는지에 의문도 생기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내가 잘 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인도에서 나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볼 수 있었다. 현재 자신의 감정과 일에 충실하고, 주변을 살피고 함께 살 수 있는 여유도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보통 한국 사람들이 인도 사람들를 보고 게으르다고 말한다. 가난이라는 굴레를 벗어나려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그들이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만약 릭샤 아저씨가 우리를 본다면 어떨까? 아마 아저씨는 우리의 방식이 더 한심하다고 생각할 것 같다. 길가에서 낮잠도 자고, 품격 있는 짜이(인도식 밀크티)를 마시며, 가족들을 위해 일할 땐 일하는 릭샤 아저씨들의 삶은 만족을 알고, 그들만의 행복을 향유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기엔 그들의 삶이 열악할 수 있지만, 그들의 삶은 우리보다 풍요롭다고 생각한다. 릭샤 아저씨들처럼 내가 본 인도분들은 자기 페이스를 절대 잃지 않으며, 어떤 틀에 자신을 가두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여유를 가지고 자신의 방식대로 해 나간다. 누군가의 시선과 생각에 의식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에 충실히 사는 것 같았다. 자신이 궁금하면 물어보고, 흥정하고 싶으면 하고, 신기하면 쳐다보고, 무엇이든 때 묻지 않고 아이들처럼 행동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인도 분들의 삶은 겉으로 보기엔 나와 크게 다르지 않으나, '누가 그들 삶의 주인인지'는 달랐다.
또한 타인을 대할 때 자신이 소중해서 타인의 삶이나 성향을 자신의 틀 안에 넣어서 이해하려 합리화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남일에 무심하기 보다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고 관심 가져주고 함께 고민한다. 그 분들은 나를 소수민족인 앙가미족 아이로 생각했음에도 다들 모여서 고민해주었던 기억들이 있다. 내가 무슬림마을에서 사원을 찾지 못해 헤맬때 내가 못 알아듣는 데도 가이드해줬던 일리아할아버지와 마을 사람들도 그랬고. 번잡한 버스터미널에서 내 엉덩이를 만지고 성희롱했던 아저씨한테 나 혼자 위축되어서 한국어욕을 하고 있는데 다들 어디선가 나타나서 욕해주고 혼내줬던 것도 그랬다. 모든 것에 효율적이고 경쟁적인 사람들에겐 시간낭비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분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아낄 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어느 사회든 사람마다 다르지만, 내가 본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그분들의 삶 태도는 내 생각과 행동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해지고 따뜻해졌고, 어떤 것에 편견과 잣대가 아니라 받아들일 수 태도를 배웠다. 한국에서는 오지랖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야할지를 느꼈다. 인도생활은 나에게 더 없이 큰 응원 같았다. ‘너 방식대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달라도 함께 사는 곳’이 살아있는 인도
인도는 다양함 그 자체 였다. 나처럼 생긴 몽골리안부터 우리가 흔히 인도인이라고 생각하는 인종까지, 지역별로 많은 부족과 문화들이 공존했다. 그들은 여러 신들이 공존하고 다른 신들을 믿으며 살아간다. 힌두교, 무슬림, 기독교, 시크교 등등 종교가 달라도 함께 다른 종교의 축제와 휴일을 즐겁게 보낸다. 우리는 절대 무슬림과 기독교는 함께할 수 없으며 이도교라고 배척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서는 종교를 여러 개 가지고 있을 수 있고 기독교이면서 힌두교인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인도인들은 너무나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기에 비슷한 점도 다른 점도 느끼지만, '함께 살아갈 것이고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내가 본 인도는 서로 달라도 융합되고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인도에서의 경험은 나도 모르게 ‘다르다’는 말을 두려워하고, ‘다름’을 머리 속으론 인정하지만 불편해 하고 있었던 나의 모습들이 되돌아보게 되었다. 한국 사회에선 선 긋기와 다름을 죽이려 하는 움직임이 있지만, 인도는 너무나도 다른 차원에서 그들의 삶을 이루고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은 내가 미타암톨 마을(망고나무아래라는 뜻의 시골마을)을 가서 단적으로 볼 수 있었다. 그 마을에는 다양한 소수민족마을과 네팔등 외지에서 시집을 온 아주머니들이 살고 있다. 아주머니들은 항상 모이면 아쌈주의 유명한 비훗Bihut춤을 추고, 한 두시간씩 추고 나서야 마을일을 하던 한다. 비훗을 함께 출때 보면 다양한 소수민족출신의 사람들이 자신의 동네방식을 선보이면서도 함께 모인 사람들끼리 좋아하는 네팔노래를 부르며 박수로 가락을 만들어 한다. 내가 만났던 아주머니들은 서로 너무나도 다른 지역 출신임에도 문화, 언어가 다 달라도 어울리며 지내고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발전시키고 그들만의 문화생활을 만들어 갔다. 나에겐 너무나 신선한 충격이었고, 그들의 포용력과 함께 살아가는 태도 덕분에 외지인인 나도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살아있다. 바로 이 곳에.
나는 그 곳에서 느꼈다. 내가 살아있고, 그들도 살아있고, 우리 모두가 지금 지구에 살아있다는 걸. 옹졸하고 편협했던 나의 마음과 삶의 태도가 나 자신을 죽이고, 주변을 보지 못하게 해서 외부로 공격적으로 반응하고 대한다는 것을 느꼈다. 인도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나는 내가 잊고 있던 많은 감정과 생각들을 다시 느끼고 배웠었다. 다양성이 서로 공존할 수 있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사회를 봐왔고, 잠시 그 곳에서 함께 살아봤다.
지금 나는 이 곳에 살고 있는 데, 아직도 이 곳은 다르고 다양한 것에 대한 혐오의 목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고 뉴스에선 종교를 비롯한 다름에 의한 혐오와 이로 인한 폭력들을 다룬다. 점점 사람들도 나도 뭐가 옳고 그른지를 잘 모르고 몽롱한 상태에서 살아가는 듯하다. 회색빛이 짙게 투사되는 지금의 분위기에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생기가 넘칠 수 있을까? 조화를 이루면서 다양성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을까? 내가 인도 아쌈에서 얻었던 경험처럼 모두가 ‘내가 살아있다’는 자극을 계속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의 나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바짝 긴장해서 올라온 어깨부터 풀고 주기적으로 내면의 평화를 찾고,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기 기대한다. 무엇보다 가시로 둘둘 감은 말과 행동이 아닌, 나와 다른 것을 포용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갖게 해주는 ‘우리는 이곳에서 함께 살아있다’는 의미를 잊지 않길 바란다. 나는 인도에서 함께 살아있음을 느꼈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금 이곳에서도 함께 살아있음을 주변에서 보고 있다. 우리는 지금 살아있다. 바로 이곳에.



당신은 지금 살아있나요? 아니면 오늘 하루라도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 있나요?

요즘 나는 살아있는 햄토리 같은 삶이다. 햄스터가 우리 안에서 주는 먹이를 잘 먹고 쳇바퀴를 수십번 돌고 피곤해서 자고, 어제와 동일한 패턴으로 또 먹고 돌고 잔다. 분명 나는 살아있기에 지금 움직이고 숨을 쉬고 있는 거지만, 내 정신은 살아있다는 느낌보다는 꾸역꾸역 하루를 지낸다는 느낌이 들까. 내 정신이 맑고 말랑했던 때, ‘내가 살아있구나’라고 마음 깊숙한 어느 곳에서 마구 올라오는 감정을 느꼈던 그때의 글을 펴보려고 한다.

물었다. ‘나는 살아있나?...’
피로사회라고 명명되는 한국사회에서 내가 모르는 사이 나는 학점, 취업, 스펙 모든 것을 향해 사람들과 경쟁하고 하루하루 그저 살아가고 있었다. 경쟁 속에서 계속 마주하게 된 좌절과 포기, 걱정으로 일상 속에 지쳐가고 있었다. 점점 ‘내가 잘 가고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이 생기고 조급해지고 사람들로부터 고립되고 있었다. 그땐, 내 눈 앞에 아무것도 안보이고, 미래가 암담해 보였다.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혼자 살기 바빴던 나는, 누군가를 살펴보고 함께 할 만한 여유 또한 없었다. 이렇게 나는 모든 것에 폐쇄적이고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쉽게 말하자면,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문뜩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메말라 가던 내가. 나한테 물었다 ‘나는 살아있나……?’ 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배우고 함께 움직여보고도 싶었고, 살아있다는 말랑말랑한 그 감정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과감히 모든 걸 내려놓고 인도로 떠났었다.

나에게 던지는 물음 ‘살아있는 인도’
인도. 나에게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게 된 곳. 참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한번도 외국을 가본 적이 없었다. 난 오직 인터넷과 책을 통해서만 외국을 봐왔고, 옆집에 살았던 외국인 노동자분들과 학교에서 친하게 지냈던 교환학생들을 만나면서 외국을 알았다. 그렇기에 인도는 간접경험뿐이었던 나에게 마치 세계지도에서 보이는 인도라는 이름처럼 그저 보이기만 하고 느껴지지 않았다. 잠시 인도 아쌈주 가우하티에서 살면서, 살아 숨쉬는 인도와 사람들은 나에게 생기와 호흡을 나눠주었다. 인도는 ‘나는 살고자 하는 삶 자체요. 살고자 하는 삶의 한 가운데 있다’라는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말을 정확히 느낄 수 있었던 곳이었다.

‘사람 그 자체’ 살아있는 인도
인도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Where are you from? 너는 어디 출신이니?’ 이었다. 인도라는 나라가 넓어서, 인도 자국민이라도 다양한 인종과 지역출신들이라 출신을 묻는 질문을 일상 속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나 또한 이 질문을 많이 들었다. 내가 KOREA에서 왔다고 대답했을 때, 그들의 반응은 날 KOREA이라는 외국 나라에서 온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옆집 사는 사람, 인도에 어느 지방사람처럼 대해주셨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모를 수 있지만, 지구라는 별에 나는 그저 어느 곳에 사는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대하는 인도인들에게 놀랐다. 내가 만났던 인도인들은 어느 누구보다 넓은 세계관을 가지고 사람들 자체로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나는 '한국에서 외국인들을 있는 그대로 사람들 자체로 받아 들였나'하고 돌아보게 되었다. 편협하게 외국인들을 어느 나라 사람이라는 인식과 국적으로만 가지고 대하진 않았는지를 말이다. 인도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외국인이 아니었다. 나가랜드, 마니푸르(인도 동북부지역명)사람처럼 생기고 동네에서 덩치가 큰 아이, 한국에 고향 집이 있는 황은미이었다, 다양한 인종, 종교, 문화 속에 살아가는 인도사람들과 살면서 나는 온전히 나일 수 있었고, 나를 마주보고 있게 되었다. 그 곳에서 나를 보여주고 자연스럽게 그 분들을 받아들이면서, 다다, 바이듀(언니 오빠 호칭)과 말이 안 통해도 함께 즐겁게 비훗춤을 추기도 하고 나눠먹기도 하는 등 시간을 보내고 다양한 이야기 나누었다. 잠시나마 한 곳에서 살아가면서 사람 그 사람자체로 느끼고 마주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배웠다. 누군가를 편견과 배경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함을 느꼈다.

3년이 지난 지금. 난 다시 한국에 돌아와 하나의 틀 안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을 쓰며 두꺼운 가면을 쓰고 나를 포장하고 남들과 비교하기 바쁘다. 다시 그 때처럼 온전히 ‘내 자신’이려 노력하고 사람들의 다름을 이해할 필요성을 느꼈다. 2부에 걸쳐 인도 나가랜드에서 일본군을 격파한 몽골리안 앙가미족있었던 내 모습들을 다시 떠올리며 인도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을 함께 공유하고 다시 느끼고자 한다. 

 

* 인도 아쌈주는 우리가 흔히 카페에서 먹는 아쌈홍차가 나오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인도의 이미지와 다르게, 아쌈와 나가랜드, 마니푸르등 인도 동북부지역은 소수민족이 많고, 힌두교,무슬림,기독교가 각각 2-30%정도를 차지하고 그 외에도 여러 종파가 있기에 다양한 종교들이 존재한다. 한국 사람처럼 생긴 몽골리안부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인도인들도 있다. 주변 국가(네팔, 방글라데시, 중국국경 등)과도 가까운 편이다.



소비는 나의 즐거움?

나는 자발적 실업상태가 된 지 1주일째다. 실업상태라 돈이라고 하면 통장에 몇푼 뿐이기에 한번 돈 안 써보겠다는 마음으로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다들 말하듯이 집밖에 나가는 순간에 교통비-식사비-커피비 등 모든 것이 돈!돈!돈!이라 집밥만 먹는다. 우리 집이 텃밭을 가지고 농사를 지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서울에서 살았음 마트 가서 돈 쓰게 될 뻔 했다. 그렇지만 계속 물건을 사야하는 일들을 마주한다. 내 손에 있는 몇 백원이라도 소중한 나로서 물건 사는 것만큼 고민되고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인가?’를 끊임없이 물어본다. 지금은 물건 사는 일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는 것 같은데, 언제 경제행위를 하면서 즐거웠던 적 있었나?

지난 몇 년 간 소비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던 시절들이 생각난다. 편의점에서 짜잘하게 매일 사가며 내 입을 호화스러운 척하게 했고, 아무런 생각 없이 터덜터덜 걸어가다가 보이는 잡동사니를 샀고 휴대폰과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지만 멋져 보이는 것들을 사 모았다. 뭔가 허전함을 느끼며 자기 위로조로 ‘나를 위한 선물이야.’라는 식으로 소비해왔던 시절이 있었다. 과연 그 당시는 즐거웠고 나에게 도움이 되었을까?

소비가 즐거웠던 기억들: 관계 맺기
나는 사회에선 백조지만 집에서는 가사노동을 해야만 하는 집도비이다. 아직 며칠 되지 않아서 그런지 청소할 때도 계속 걱정과 고민뿐이다. 무심코 틀어 놓은 티비에서 ‘재테크 방법과 주식 변동’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잠시 걸레질을 멈추고 ‘저 방법 써먹을 정도 돈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 찰나에 내가 엄마들이 하는 혼잣말을 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내가 언제부터 돈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목을 맺나’는 생각이 불쑥 든다. 용돈을 받았던 초등학생때부터 인가? 아님 타지에서 대학입학 후 목돈이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인가? 알바를 하고 짧게 돈 벌어본 경험때문인가? 내 머리 속 기억들을 다 들어보아도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담 내가 가진 푼돈으로 즐겁게 쓰고 지냈던 적이 있었나?

내가 돈을 모아서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사거나, 가족들과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할 때 즐겁게 사용한 것 같다. 물리적으로 보이는 것을 소비함으로서의 가지게 된 만족감 말곤 없었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할아버지를 따라 아이스크림 사러가던 가게방에선 항상 더 많이 받아오는 기분이 들어 즐거웠다. 시골동네의 하나뿐인 가게방(슈퍼)는 마을사랑방같은 공간이어서 모든 거래는 외상과 호의로 이루어졌고 부수로 많은 교환활동이 가능했다. 어려서부터 돈으로 주고받는 관계라기보다는 가게방할아버지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지냈던 그 때 무엇인지 모를 따뜻함이 나에게 좋은 기억으로 자리잡혀있다. 또 일주일에 한번만 동네에 오는 순대오토바이할아버지는 내가 이사갔음에도 영역을 확장해 우리동네를 와줄 정도의 관계를 유지하며 초등학교시절 내 나의 순대를 담당하셨다. 그때는 무엇을 사러간다는 것은 부수적인 것이었고, 사람을 만나러 간다는 마음이 더 담겨 있어서, 사고 교환하는 것들이 참 즐거웠던 것 같다. 그 안에는 ‘우리가 함께 살아갈 사람이라는 믿음’으로 경제가 이루어지고 더 주기도 하고, 덜 주기도 하고 돈이 없으면 외상도 해주며 서로의 상황에 맞도록 돕고 지냈던 것 아닐까?

사람들의 관계 속 경제행위
우리 동네도 아파트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다들 시가지로 나가고 구멍가게가 없어졌다. 어느 순간 대형마트와 편의점이 생겨났다. 전에 비해 훨씬 깔끔하고 편리한 모든 것들이 갖춰져 있는 곳들에 둘러싸여 나도 살고 있다. 그런 곳일수록 돈으로만 모든 것을 평가하고, 직원들의 노동력도 서비스라는 차원으로 돈으로 환산하는 것이 쉬워지는 것 같다. 다시 돌아와 고향에서 지내다보니 누구도 가게방할아버지와 순대할아버지처럼 나를 기억해주지 않는다. 자신의 먹고 살기 위한 소비를 할 뿐이지. 이걸 건네주는 사람의 이야기, 생산자의 이야기, 이 물품의 역사에 관심이 없고 플라스틱를 위에 붙어있는 가격표만 본다.

백조로 돈을 펑펑 쓰며 끝없는 공허함을 채울 수 없다보니 나는 근원적 원인을 계속 들여다보게 된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어떤 곳에서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어가며 경제행위를 하고 있는 지’가 문제였다. 합리적 인간처럼 되라고 배운 모든 경제지식들이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법보다는 ‘돈’이라는 허상으로 나와 너를 분리하여 분절화 시키고 있었다. 내가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우리 동네는 경제적 인간보다는 사람다운 인간들이 살았던 곳이었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에 와서야 지저분하고 몇 품목이 없었던 가게방의 아이스크림과 비계를 더 많이 주던 순대모듬을 사먹고 싶고, 지금은 만날 수 없는 그분들과 일상 대화를 너무나도 나누고 싶다.




‘오늘도 청년실업’
어김없이 뉴스에선 청년실업과 취업난, 어려운 경제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낸다. 사람들은 청년문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한 마디씩 거든다. ‘요즘 애들은 끈기가 없어. 공부만 해서 쯧쯧’부터 ‘다 우리의 책임이다. 미안하다 흑흑’까지 모두 저마다의 청년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경제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가만히 듣고 보니, 지금 나의 모습은 매스컴에서 다루어지는 청년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취준생/6년만에 대졸/대학나온 고급인력이라는데 공부와 책상에서 하는 오피스 워크 말곤 할 줄 아는 능력 없음/돈도 집도 없어 다시 부모님 집/아슬아슬한 스펙 등등. 다 말하려 하니 구차해진다. 내 처지 말고도 다양한 청년들의 모습이 있음에도 청년실업문제를 정형화시킨 뉴스들이 계속 전달된다. 주류 언론을 챙겨보시는 우리 부모님은 하루종일 집에만 있는 나를 계속 비교하며 한숨을 푸욱 푸욱 쉰다.

뉴스에선 41만명이 나와 비슷한 상황이란다. 어떻게든 취업시키면 청년문제가 다 해결될 것처럼 모든 정책과 연구들은 청년과 청춘을 연관 지어 이슈를 생성한다. 다들 ‘청년/청춘’이르는 틀을 고루하게 만들어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또, ‘대기업 취업의 문을 열어주면 되고, 창업을 할 수 있으면 된다.’는 식으로 거짓정답일지도 모르는 기존의 방법들에 헛된 희망만을 심어주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누군가 날 청년이라고 규정하고 우리가 무기력하고 힘든 존재로만 만드는 것 같은 누군가의 생각들이 기분 나쁘다. 다들 스물다섯 살이 경제적 노동력으로서 한창이라고 하지만, 나는 무기력한 25살을 보내고 있다. 매스컴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반복되는 청년에 관한 이야기에 ㅆ 욕하고 싶었고 순간 욱하기도 한다.

 

‘국민여러분, 경제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커가면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국민여러분, 경제가 어렵습니다.’라는 말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계속 어렵고 힘겨운 삶을 조장하는 경제가 회복되길 바라고 각자 기다리며 열심히 일하는 것이 최우선일까? 시장경제와 자본주의경제 속의 삶을 살아왔던 우리에겐 어쩔 수 없이 경제가 나아지길 바라며, 당장 안정적이고 돈을 적당히 주며 익숙한 공간을 찾아서 사는 것을 택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여기서 하나 묻고 싶다. ‘과연 지금의 경제가 나아질까요?’ 라고. 경제상황과 청년실업문제가 마치 정답을 찾는 듯이 일정한 형태의 정책과 수단들로 귀결되는 모습을 계속적으로 봐왔다. 투자나 개발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누구에게도 동의 받지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 현실성 없는 경제학원론법칙들처럼 그저 경제가 나와 내 친구들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모습을 한정시키고 경제 안에서 갇혀서 살 수 밖에 없도록 하고 있다.

 

‘타의적 백조생활’
나는 사회에서 노동력으로 인정받기 위해 지금까지 뒤처지지 않으려 공부하고 남들 하는 대로 하기 위한 삶을 살려했던 것 같다. 계속 ‘잘 하고 있는 거야’라고 자기위안을 할 수 있는 형식적 생각을 하고 합리화해왔던 것 같다. 현명하게 살기 위해 어떻게든 사회가 요구하는 틀 안에 나를 구겨 넣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점점 내 모습을 잃어가고 세상이 원하는 모습이 되어가고 누군가가 정해준 메시지가 담긴 뉴스 속 이야기를 똑같이 하고 있었다. 백조가 되고 나니 극도의 스트레스와 미운 25살의 삐딱함으로 인해서 인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과 믿어왔던 경제에 회의감이 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도 청년에 대한 우울한 이야기를 듣고는 ‘내가 아직 준비가 덜 돼서 일거야. 언젠가는 기회는 올 거야.’라고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지만, 결국 나는 세계경제와 나라경제가 어렵기에 선택받지 못한 타의적 백조생활이었다. 주류경제에서 백조인 내 상황은 어렵고, 경제회복은 나아갈 곳이 없어 보이기에 기다리는 것도 대책 없이 보인다.

 

그래서 나는 백조생활이 익숙해진 시기에 하나 결심을 했다.

어차피 힘들 거라면 타의적 백조생활이 아니라 ‘자발적 백조인생을 살기’로 했다.

‘자발적 백조’로서 경제와 사회를 삐딱하게 바라보고 다른 삶의 방식과 태도에 대해 다룰 예정입니다.

다음 편에는 자발적 백조인생의 주제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것들입니다.



 

사회적경제. 먹는건가요?

‘사회적경제’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사회적경제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 법도 만들어지고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사회주의를 떠올리거나 잘 모른다. 그렇다면 사회적경제에 대해 활동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한 마디로 정의하고, 공통적 정의가 있을까요? 꼭 그렇지만도 않다. 사회적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조직들과 기업들의 특징에 따라 다른 표현을 사용하기에 여러분이 직접 경험해보면서 알아가길 바란다. 무책임한 대답일 수 있지만 사회적경제가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되어가면서 좀더 명확한 공통 정의가 제대로 확립될 것이라 믿는다. 그렇기에 필자가 느끼고 배운 사회적경제를 이 글에서 전달하고자 한다.

사회적경제를 알게 된 당시를 돌이켜보자면, 나름 괜찮게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했던 생활 속에서 나에게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과 함께 공허함이 다가왔었다. 매번 마주했던 그 감정이 처음에는 낯설기도 하고 간파하지 못했다. 분명 나는 돈 주고 사서 나름의 합리적 선택으로 좀더 편리한 것을 취하고 있지만, 내가 하고 있는 경제행위는 따뜻한 무언가 빠져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예를 들어 집근처 대형마트에 가서 아무 말도 안 하고 값싼 물건을 사와서 나 혼자 먹고 있다고 하자. 값싼 물건을 샀다는 경제적 효용에 대한 만족감은 집에 가는 길에도 계속 갈까요? 물론 몇몇의 사람들은 경제적 효용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 들 수 있지만, 나는 집에 도착했을 때 마트에서 누굴 만났는지도 기억하지 못하고 오로지 가격만 기억이 났다. 나와 마트 직원의 관계를 떠올려보면, 반복적으로 사람이 사람을 만났음에도 오로지 돈과 바코드로만 이야기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형마트에서 나의 경제행위 안에서 나-마트직원의 관계를 포함하지 않았고, 오로지 시장에서 효율적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관리비용에 가치를 뒀다. 드라마와 영화 속에 많이 비추어지듯이 세련되고 도외적인 우리의 삶과 생활방식으로부터 내가 그때 느끼고 불편했던 감정이 초래되고 있었다. 우리가 암묵적으로 지향하는 경제생활은 우리의 모든 삶을 가격과 돈으로 표현되어야만 인정받고 우리가 보지 못한 소중한 것들이 외면을 받고 있었다.

당연히 경제적 효용만으로도 충분히 만족감을 가지고 ‘경제라는 건 화폐와 가격으로 나타낼 수  밖에 없다’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효율성을 위한 로봇도, 경제적 수단도 아니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임에도 누군가의 노동과 관계를 오로지 물질적 숫자로만 반영해서 바라보고 있는 경향이 크다. 어느 순간 이런 상황이 경제라는 이름으로 익숙해졌고 당연하다고만 받아들인다. 어머니의 밥상과 이웃의 부지런함으로 깨끗한 길처럼 누군가의 관계를 위한 배려와 노동으로 이루어진 것들을 가격표가 없다는 이유 하나로 무가치하다고 치부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적 가치가 존재하고 사회적경제에서 중시하는 가치들이 존재한다. 내가 공허하게 느낀 이 감정은 바로 자본주의경제에서 외면하고 있었던 관계와 사회적가치로 인한 것이었다. 나는 구멍가게라도 동네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며 아는 동네사람들이 생산하는 푸드를 소비할 때 행복했다. 이 경제행위 속에 가격엔 포함되지 않는 따뜻한 관계와 사회적으로 가진 의미가 더 중시했던 것이다. 사람으로서 우리는 경제적 욕구외에 사회적 욕구가 존재하듯이, 경제행위에서도 사회적 자본을 기반으로 한 행위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이뤄가는 경제생활들이 바로 사회적경제가 아닐까 싶다. 사회적경제는 우리가 하는 경제생활이 우리를 도우면서도 돈이 소수의 주머니로만 돌아가는 세습자본주의와 금융자본주의가 아닌, 지역사회에서 순환하여 일자리가 생겨나고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사회적경제 모습은 내가 어렸을 적 살았던 마을공동체의 확대판으로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에 관계를 바탕으로 한 경제행위와 경제생활이라고 느꼈다.



마음 속 쇠사슬을 벗어나, 사회적경제

사회적경제는 말은 쉽지만 그것이 가능하겠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우리가 쇠사슬을 끊지 못하는 서커스단 코끼리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충분히 사회적경제가 가능하다고 본다. 서커스단 코끼리는 어렸을 적 받았던 학대와 쇠사슬의 무게로 인한 마음 속 편견으로 인해 평생 쇠사슬에 묶여 지낸다고 한다. 우리도 마음 속 쇠사슬로 인해 경제를 편향적으로 어렵고 차가운 것으로 보고 있는 것 아닐까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주류경제 메커니즘은 만인이 행복해 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과연 그런가요? 우리는 어느 순간 효율성과 경제적 효용만 생각하는 행위를 하고, 지금 살고 있는 자본주의에서는 돈을 가진 소수의 부 증식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직면한다. 돌고 돌아야 하는 돈의 종착지는 ‘돈을 가진 자’가 되어버린 상황이고, 누구나 잘 살기 위해선 치열하게 '돈을 가진 자‘가 되어야만 한다고 몰아세우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하는 경제행위가 나를 돕고 내 이웃에도 도움이 되어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나아지도록 하는 방식의 경제를 만들 수 있다. 마음의 쇠사슬을 끊고 서커스단 코끼리가 아닌 자유 코끼리가 될 수 있듯이 인드라망처럼 관계로 연결된 사회를 반영한 ’사람 중심의 경제’ 사회적경제를 만들어가고 이루고자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우리도 될 수 있다.

서커스단 코끼리가 비참한 삶을 벗어나기 위해선 쇠사슬을 끊을 만한 위대한 힘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실천해야 한다. 처음 겪는 상황에서 계속 해서 연습하고 실천하다보면 코끼리는 쇠사슬을 벗어나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사회적경제 속 사람들의 모습도 코끼리가 마음 속 쇠사슬을 벗어났듯이 움직이고 있다. 사회적경제 영역 안에서는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공정무역 외 다양한 섹터의 주체들이 활동하고 있고 협력해서 사회혁신을 이끌어내려 노력하고 있다. 믿음을 가지고 실천하고 계속 연습하는 작업처럼 사회적경제 내 많은 사람들이 ‘사람 중심 경제’가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민주주의 원리, 협동가치, 사회적 가치 등을 실천하고 연습해가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대안이라고도 보는 시각도 있지만 사회적경제는 사람들이 '사람중심 경제'로 좀더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두려움과 편견을 이겨내면서 삶으로 실천하고 만들어가는 작업을 하는 장이다. 지금까지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자본주의 경제의 쇠사슬을 벗어나, 사람중심 경제를 믿고 사회적경제 활동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중요한 ‘한 사람이자 주체’로서 경제와 사회를 바라보고 오늘부터 나의 소비와 생활방식을 조금씩 변화시켜 보는 건 어떨까요?



꺼내 먹어요. 사회적경제

미리 자이언티 노래 관계자와 자이언티 팬들, 오글거려서 힘들어 하시는 독자분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자이언티-꺼내먹어요 노래를 들으며 사회적경제도 이렇게 따뜻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아래 가사를 읽어보길 바란다.

안녕! 쉽지 않죠? 바쁘죠?
왜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죠?
바라는 게 더럽게 많죠? 그렇죠.
쉬고 싶죠? 시끄럽죠? 다 성가시죠?
집에 가고 싶죠? 집에 있는데도. 
(뭔가 포근하고 사람냄새 나는 사회적경제라는)집에 가고 싶을 거야.

그럴 땐 (사회적경제)를 아침사과처럼 꺼내 먹어요
(사회적경제는 너의 생활를 신경쓰니) 피곤해도 아침 점심 밥 좀 챙겨 먹어요.
그러면 이따 내가 칭찬해줄게요

(사람들을) 보고 싶어. (사회적경제는 사람을) 많이 좋아해요
(사회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더 많이 안아주고 싶어요.
사랑, 사랑 비슷한 걸 해요. 어쩌면 정말 사랑해요.

(지금 삶이) 힘들어요?
(사회적경제는) 아름다워서 알아봐줘요 나를
(사회적경제는) 흘려 보내지 마요 나를
사랑해줘요. 놓치지 마요. (사회적경제를)


사회적경제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한강대교를 걷게 되면 볼 수 있는 글귀처럼 내일이 생각보다 괜찮을 거라는 마음으로 변화를 실천해보고 사회적경제의 믿음을 가지고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에서 좀 더 나은 삶의 방식으로 변화하기 위해 함께 믿고 실천하면서 계속 시도하고 있는 경제이다. 우리도 지금부터 친구들,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으며 마을 안에서도 진행할 수 있고, 좀 더 넓은 공간에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다. 사회적경제는 언제든 꺼내먹을 수 있는 초콜릿처럼 우리 삶에 가깝게 존재한다.

# 꺼내먹어요. 사회적경제



모난 돌은 삼재인지 몇 년 전부터 봄이 참 혹독했다. 그래도 모난 돌은 진심을 담아 열심히 하면 될 거야하고 사람들이 알 거라고 생각했다

올해 봄을 보내다 보니 꼭 그렇지도 않았나 보다.

 

저마다 예쁘고 잘 다듬어진 돌이 좋으신지. 모난 돌을 잡았다가 내려놓는다. 모난 돌은 실눈을 뜨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다들 쓰잘데기 없고, 부적합하다고 한다. 문 고정할 때나 잡다한 일 할 때만 필요할 뿐이란다.

 

모난 돌은 눈물 찔끔 흘리며, 몸을 불태워 사람들의 손에 뜨거운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루는 모난 돌은 일광욕을 하고 와서 사람들이 오길 기다렸다. 한 사람이 모난 돌을 잡으려하다 살짝 데었다. 모난 돌의 복수로 속 시원한 감정도 한 순간.

 

그 사람이 하는 말에 자신의 행동이 소용없음을 알게 되었다. “역시나 빛깔 좋은 것이 모든 것이 완벽하고 미래지향적이야라고 한다모난 돌은 위축되어 왜 나를 어여쁘지 않을까. 왜 사람들은 날 안 좋아할까. 왜 나는 들러리인가 항상 잡다한 일은 나만 하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깊이 들어간다.

 

모난 돌은 하는 일마다 뽐내고 포장해야만 한다는 걸 새삼 느꼈다. 진심을 다해 뭔가를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는 걸 느꼈다. 사람들의 마음에 쏙 드는 외형과 성격으로 다듬어져야 한다는 걸 알았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모난 돌은 올 봄에도 옆에 있는 사랑받는 돌에게 KO패를 당했다.

 

모난 돌은 치기 어리게 뜨거운 모습을 보여주지 말아야 했고, 표를 내지 않고 참으며 항상 쿨한 모습 보였어야 했다.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하는 시기인 화사한 봄에 이놈의 성질머리 때문에 쓰잘떼기없는 모난 돌 신세다.

 

누가 그러더라.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 모난 돌은 정 맞는다고. 굴러온 둥글둥글한 돌이 그나마 쓰이고 있던 모난 돌을 처량하게 만들었네. 아니다. 잘 다듬어지고 보기 좋은 돌은 수집하고 모난 돌은 저 멀리에 놓아버리는 사람들 탓하고 싶어진다.

 

그 와중에도 봄 내내 사람들의 선택받으려 차가운 달빛과 뜨거운 땡볕을 오가던 모난 돌은 극단의 쿨함과 뜨거움을 경험하며 서서히 금이 가 쪼개져가고 있다. 어차피 손으로 내던져질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모난 돌은 몸이 쪼개져도 스스로 떠나기 전까지 예쁜 돌 인 척해보려 한다. 그럼 조금이라도 어여뻐 여기셔서 날 데려가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모난 돌은 과연 날카롭기만 하고 쓸 데가 없을까.

모난 돌은 올해 여름을 어떻게 보내게 될까. 지금처럼 지내면 모난 돌은 모래가 되어버릴 것 같다.

박노해 시인은 여름이 열음이란다. 창문을 열고 옷깃을 열고 가슴마저 활짝 여는 계절이라고 한다모난 돌에게도 마음이 활짝 열리길 바란다. 마음에 구멍이 나서 열려서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모난 돌이 되길 바란다. 지금의 모습에서 느영나영 잘 살아갈 수 있는 모난 돌이 되길 바란다. 누군가에게 꼭 선택을 받으려고도, 사랑만 받으려 하는 삶을 살지 않길 바란다

내 마음 속 모난 돌을 포함해서 이 세상의 모난 돌이여.



#느영나영 모난 돌

#느영나영 여름이네

 


희한한 경제 속 우리의 모습

어제 만난 친구가 그런 말을 했어요

눈과 귀를 닫고 입을 막으면 행복할거라고.

너는 톱니바퀴 속 작고 작은 부품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사랑에 정복당할 시간도 없는 희한한 시대에 열심히도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마지막 저금통장에 들어있는 십만원을 들고서 나는 어디로 갈까 또 상상하죠.

울지마 달리질 건 없어 울지마 그냥 그림자처럼 살아가라고 친구는 말하죠

가만히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그럼 지금보다 행복할 거래요

너는 바뀌지 않을 글자를 보면서 다시 써볼까 상상해본 적도 있죠

울지마 어쩔 수 없다고 울지마 네가 잠자코 있었다고 하네요

눈 감고 귀 막고 입을 닫고 살면 그럼 지금보다 행복할거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요?

그래도 세상 한 가운데 어차피 혼자 걸어가야만 한다면

눈 뜨고 잘 듣고 목소릴 내보면

그럼 지금보다 나아지겠지 그리고는 천천히 살아갈 수 있겠죠?

- 옥상달빛, 희한한 시대 中 –


뭔가 말도 안되고 희한한 면을 가지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옥상달빛의 노래처럼 많이들 이야기 하지 않나요? (옥상달빛, 희한한 시대 MV 꼭 보길 권유합니다. 특히 사회초년생들) 매번 사회생활을 하면 어쩔 수 밖에 없는 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돈 벌기가 쉬운 줄 아니?”라고 말을 듣기도 합니다. 과연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그럴까요? 


우리가 자주 말하는 돈은 경제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는 쉽게 생각하면 살아가는데 필요한 활동으로 살림살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미시적으로는 우리집 살림살이, 거시적으로는 국가 살림살이/지구촌 살림살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경제는 우리가 하는 사회활동의 하나로서 내재된 부분이지만, 어느 순간 살림살이 신경쓰다 보니 우리가 본연 모습을 잃어버리거나 경우도 있다. 그런 삶이 잘못되었거나 이상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일을 하기 위해 하루에 나의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노동력이라는 이름으로 투입하는 것은 인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있는지를, 얼마나 노동을 하고 오로지 자신을 위한 생활이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한 균형의 문제를 고민할 수 있다. 이를 뛰어 넘어 내가 일하고 있는 이 곳에서 나는 어떤 존재이고, 어떤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조직 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영향력에 대한 만족도가 높을 수 있겠지만, 이걸 좀더 크게 사회적으로 바라본다면 나는 어떤 존재인가? 거대한 경제나 기업라는 톱니바퀴 속 작고 작은 부품으로 느껴진 적 없나? 가족들과 다른 여가생활의 충분하여 삶의 부족함을 느끼지 못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을 자신과 사회적 활동(삶)을 위해 보장받지 못하고 홀로 열심히 버틴다. 또, 눈과 귀를 닫고 입을 막으며 현실이라고 받아들이고 인정해야만 이 또한 지나가고 행복할거라 한다. 과연 그럴까 의문이 든다.



다른 방식의 삶: 사회적경제와 사회혁신

돈을 벌기 위한 현실이라고 말하면서 그 현실이 우리가 한쪽만 아는 사실일 수 있다.우리는 혼자 있음 살벌하며, 어려운 단어로만 포장되어 있는 희한한 경제 속에 있다. 그러나, 경제 안에 구속 되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사회적 활동도 중요하고 이를 통해서만 사람다운 생활이 가능하다. 희한한 시대에서 열심히 사는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떨까? 그 방식이 바로 사회적 경제, 사회적 혁신이 될 수 있다.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걸어나가는 경제와 삶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라고 한다면 단어를 들으면 다들 어려워하고 복잡하게 생각한다. 혹자는 사회주의 경제라고 연상하는 사람들도 있다 (설마 당신도?). 사회적경제는 사회를 변화하고 자신의 삶도 꾸려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속에서 사회가 혁신하기도 하며, 조금씩 변화하기도하여, 사람들의 삶도 풍족해 질 수 있다. 기존의 경제는 분절화되어 개인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경제적 욕구만 충족되는 삶이었다면, 사회적경제는 다르다. 사회적 자본(신뢰와 관심)을 바탕으로 사회적 이슈와 영향력을 고려한 삶이 가능한 경제이다. 사회적경제 안에는 사회문제해결이나 취약계층 고용으로 좀 더 나은 사회가 되도록 혁신을 이끄는 기업(사회적기업/소셜벤처)도 존재하며, 혼자하면 어려운 일들을 함께 협동해서 이루어내는 기업들(협동조합)도 존재한다. 또한 사람들은 그저 경제적 수단이 아닌 사회에 긍정적 영향력을 가지고 하루하루 함께 살아간다. 사회적경제는 사람과 사회를 중시하기에 민주적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좀더 많은 사람들을 고려한 결정을 하고 고민을 한다. 즉, 나만을 위한 삶가 아닌, 사회와 모두를 위한 삶를 고민하는 것이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아가보실래요?

사회적경제와 사회혁신은 완벽한 대안이거나 정답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행위자로서 활동할 기회를 열어두고 개방적 소통이 가능하며,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함께 있다는 것에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돈중심의 경제가 아닌 사람중심의 경제인 사회적경제와 사회혁신은 좀더 나은 세상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될 것이라고 믿는다. 사회적 경제는 저 멀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지나가는 그 곳에서도 있으며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 글은 자본주의 경제와 혹독한 삶에서 벗어나 떠나라고 하는 계몽적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희한한 시대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존재하고, 함께 살아가고 천천히 나아가는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드리고자 하는 것이다. 고민을 나누며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느끼고, 조금씩 우리도 좀더 나은 삶을 위해 걸어서 나아가볼래요? 느영나영 함께 살아가는 법 알아가보실래요?

 

 

나는 일상에 지쳐 여행 떠나고 싶어 이곳저곳을 배회하다가 추운 겨울에 제주도에 갔었던 적이 있다. 그때 명창으로부터 배운 노래가 바로 ‘너하고 나하고, 너랑나랑’이라는 뜻을 가진 제주도 방언인 ‘느영나영’ 제주도 민요이다. ‘느영나영’민요(한번 들어보시길)를 연신 따라 부르던 당시 나의 모습을 회상해보면, 여행이라는 낭만에 젖어 ‘김종욱찾기’ 영화속 이야기 같은 사랑과 뭔가 새롭고 다르고 완벽한 유토피아을 찾을 것이라는 생각에 계속 해서 혼자 도피하듯이 돌아다니고 있었던 중이었다.그때 ‘왜 나는 내가 살아야 할 곳을 정하지 못하고, 모두가 살기 어렵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홀로 해결하려고 돌파구를 찾아 해매고 있나’ 하는 물음이 생겼었다. 요즘 다들 힘들다는데 내 고민을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요즘 잘 지내시나요? 지금 지내고 있는 곳에서 당신는 함께 잘 살고 있나요?


느영나영 사는 세상: 분절화된 개인과 냉혹한 경제


고향 떠나온 난 도시에서 모든 걸 돈으로 부담하고 내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느꼈다. 무엇을 할 때마다 돈돈돈 할 수 밖게 없었고 소비를 해야만 삶이 가능하도록 되어있었다. 살다보니 어느 순간 마을시장에서 단골가게를 가서 관계를 형성하며 하는 소비보다 대형마트가서 싸고 깨끗해보이는 플라스틱 그릇에 들어있는 걸 사는 게 더 익숙해졌다. 밥한끼 제대로 챙겨먹기 보다는 어딜 가든 있는 편의점에서 손에 있는 돈에 맞춰 저렴한 가격에 한끼 떼우는 게 편해졌다. 또, 기업들이 찍어내는 제품트렌드에 따라 TV와 인터넷에서 소문난 제품을 수동적으로 소비하고, 내가 세일해서 산 것에 대한 이야기를 재잘재잘 이야기한다. 그런 일상 속에서 뭔가 모르는 공허함에 사로잡히는 순간이 있다. 또 나는 뭔가 허전한 마음을 휴대폰과 카드로 소비하며 해소하려 한다. 내가 쓰는 이 돈이 어디로 흘러가고, 내가 쓰는 이 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누구의 노동력이 들어가고 어떤 환경적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제품의 정보에 관해 잘 모른다. 지금 하는 소비의 의미에 대해 무관심한 채 일시적 내 효용과 만족감을 위한 소비만 하는 내 자신을 문뜩 발견한다. 모두가 이런식으로 자본주의 경제 속에서 분절화된 개개인되어 홀로 합리적이고 경제적 선택이라고 믿는 소비를 하고 있다. 개인이 쓴 돈이 소수의 누군가에게 더 많이 돌아가는 소비가 될 수 있고 누군가의 노동과 소중한 자원에 대한 고려 없이 계속해 소비를 해 쓰레기를 만들고 있다. 소비자로서 비대칭한 정보로 잘 알지는 모르지만, 뭔가 소모적이고 일시적 소비를 하는 우리는 계속 이렇게 살아가는게 가능할까? 화폐적으로 나만을 위한 소비가 아닌, 사회적자본로 이루어진 소비로 지속가능하고 좀더 따뜻한 경제가 될도록 우린 할 수 있다.


사회초년생인 나는 나름 희망차게 사회생활에 적응하려 노력하지만 구조적으로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매번 증명받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을로서 살아가는 위태로운 고용형태이기에 내가 일하는 만큼 노동의 대우를 받나 의문이 들지만, 이 일마저 없어지면 안되기에 야근도 하며 버틴다. 많은 직장인들이 ‘미생’이기에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질 것이고, 사회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있는 것이라곤 몸뚱이 밖에 없어 착실히 일해서 노동소득으로 좀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나와 나의 가족들, 나의 사람들의 안정적 생활과 삶을 위해 노력한다. 그렇지만 지금의 경제체제에서 우리는 노동이 아닌 돈으로 돈을 벌기 쉬운 세상이라는 것을 목격하고, 고도로 발전되고 있는 금융시장에 진입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출근하면 보는 저 빌딩 맨 꼭대기층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노동을 하기에 저렇게 높은 월급을 받고, TV 속 고발뉴스에 나오는 정치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기에 저렇게 많은 돈으로 더러운 짓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진정 금수저를 물고 나오듯이 고소득자 자식이나 신의 직장을 갖아야만 세습자본주의에서 나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그래도 내가 하고 있는 일과 공부로 충분히 미래가 나아질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가지고 일터와 닭장 같은 도서관으로 돌아간다. 사회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 걸 안다고 계속 지금처럼 버티고 동아줄 같은 희망을 기대하며 일하고 공부한다면 과연 미래는 나아질까? 좀더 우리를 사람으로 인정해주고 내 노동력을 존중해주고 기업과 경제를 우린 만들 수 있다.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매스미디어에 익숙해져 사회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기 보다는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발전해가면서 당연하다고 받아들일 때도 있어 가끔 내 자신이 무섭기도 하다. 하극상 이야기를 들으면 사회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만 결론은 사회구조와 정부가 바뀌어야 한다고 뻔한 답으로 끝나는 것 같다. 묘하게 우리 안에서 사회문제는 우리가 해결해 나갈 수 있지 않다는 인식을 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눈 앞에서 일어나기 전까지 저 멀리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회문제들은 바로 우리 옆집에서도 일어나고 있지만 관계가 맺어져 있지 않아 모르고 있고, 보호해줄 아무런 사회적 안전망과 사회적 관계가 없어 낙오되고 배제되면서 사회문제가 발생한다. 옛날에는 마을에서 공동체를 형성해 서로 도우면서 문제를 풀어 나갔지만, 지금은 분절화된 우리모두가 소시민으로 홀로 냉혹한 경제와 돈의 앞에 서서 해결해 나가면서 사회문제가 더 발생한다고도 볼 수있다. 그렇다면 구조적 노력을 하면서도 사회문제를 함께 모여 우리 스스로가 해결해 갈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시작해서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지역사회문제부터라도 고민해 조금씩이라도 변화될 수 있다.

 

 

 

느영나영 함께 사는 세상: 사람중심 경제


나는 밤 늦게 집에 들어가는 길에 모던한 야경을 보며 갈 때 ‘이 곳에 나 혼자 뿐이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 ‘왜 난 혼자만 아등바등 살아가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건 나의 성향 때문이구나 하는 생각도 하면서, 다르게 보니 ‘주변이야기를 너무 곧이곧대로 듣고 살아온 삶의 태도’가 문제였다. 학교 다니며 교수님과 선생님들은 항상 ‘사회’라는 곳이 얼마나 냉정하고 직장생활을 비롯해서 모든 공간에서 모두가 경쟁하고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는지를 이야기해준다. 마치 잔혹동화 같은 세상이야기를 어른들로부터 들어오면서 컸던 나는 긴장해서 잔뜩 어깨에 힘주고 눈을 굴리며 주변을 살피고,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해가며 살아왔다. 가만히 보면 모든 사회생활의 무서운 이야기에는 “혼자” 살아가기에 더 힘들고 지치는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모든 것에 ‘혼자’ 맞섰던 분들이 무진장 겁을 주고 “세상살이는 말이야. 경쟁해서 버티고 살아남아야 한다 말이야” 라고 한다. 나는 혼자 잘 살아가는 삶의 태도와 방향만 보고 들어왔지. 어디서도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법이나 협력해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잘 듣지 못하고 제대로 배운 적도 없다. 자본주의 경제 속에서 자본의 법칙에 따라 잉여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노동력을 취급하고, 그 안에서 사람을 마치 하나의 부품처럼 취급받는다. 그런 취급에 익숙해서 우리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부가가치를 많이 낼 수 있는 요소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살아가는 경제체제와 사회구조가 개개인들에게 혹독한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고 혼자서 살아남는 이야기만 전해져 올 뿐이었다. 정녕 냉혹한 경제와 사회 속에서 홀로 버텨 살아남는 것만이 답일까?


‘느영나영’ 우리가 협력해서 함께 나은 삶이 가능하고 좀더 인간적으로 운영되는 경제인 사람 중심 경제를 형성한다면, 회색의 어두운 현실이라는 잔혹한 세상동화를 핑크빛 행복한 해피엔딩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사람중심 경제를 꿈꾸며 나름의 방식으로 사회적경제(Social Economy: SE)를 형성해가면서 함께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려 노력하는 사람들과 조직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 봐도 ‘좋아보여 잘지내나봐” 라고 말할 수 있는 함께 사는 세상, 사람중심 경제의 구성원이 되길 바라고 응원합니다. ‘느영나영’ 함께 사는 세상인 사회적경제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씩 소개해드리겠습니다.

 

 

# 너 요즘 잘지내_느영나영


# 사람중심 경제_느영나영 함께 사는 세상


# 좋아보여 잘지내나봐_느영나영

 


*이 글을 읽을 시 유의사항*


필자는 엄청난 학식과 경험이 없다는 점에 유의하고, 동네 한량으로 바라보는 세상이야기와 사회적경제이야기를 다룰 예정입니다. 만약 독자님들이 잘못된 정보와 마음에 안드는 의견을 올린다고 이야기해주면 지속적 대화로 함께 풀어가시면 됩니다. 무엇보다 가끔 까칠하고 단정적인 어조나 사투리, 이상한 개그와 비유는 지극히 개인적 취향임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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