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문제를 둘러싼 美中의 속내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주석이 4월 6~7일 미국 플로리다 마라라고에서 첫번째 정상회담을 했다




정상회담 직후 급속히 가까워지는 美中관계…


中북핵압박공조-美사드배치유보 '빅딜' 가능성


美中은 북핵문제해결보다 국익 챙기기가 우선




4월 6일부터 7일까지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미중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악동’으로 불리는 트럼프와, 중국 최고 권력자인 시진핑의 역사적인 첫 만남이었다. 태영호 공사 탈북, 김정남 암살, 연이은 미사일 발사 등으로 악화되기만 하는 한반도 문제에 대해 미중 양국이 어떤 논의를 나누고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회담에서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 당장 가시적인 성과는 없어보인다. 사실 없을 수밖에 없다. 첫 대면인 만큼, 회담은 서로의 입장을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선에서 그쳤을 것이다. 그런데 깜짝 쇼는 전혀 다른 곳에서 등장했다. 정상회담을 하는 도중에 미군이 시리아를 공습한 것이다.



지난 6일, 미군의 공습을 받은 시리아 정부군 소속의 샤이라트 공군기지



트럼프는 시진핑과 함께 디저트를 먹는 순간에 시리아 정부군의 공군기지를 공격했다. 이는 시리아 문제에 대한 미국의 의지를 피력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실은 중국에 대한 엄청난 압박이다. 그렇잖아도 북한을 사이에 두고 껄끄러운 미중 사이에, 실질적인 미사일 폭격을, 그것도 시진핑이 눈앞에 있는 그 순간에 자행한 것이다. 줄곧 “북한은 인류의 문제다”, “중국이 안 하면 우리가 하겠다”고 호언하며 ‘중국역할론’을 주장하던 트럼프에게, 당장 중국에 보낼 수 있는 메시지로서 이보다 강력한 방법은 없다.


실제로 정상회담 후 중국은 중국인의 북한여행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미국의 거센 압박에 못이겨, 마침내 대북압박에 보다 전향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쏟아졌다. 그런데 상황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 정상회담이 끝난 뒤인 12일, 시진핑과 전화통화를 한 트럼프는 예상치 못한 말을 꺼낸다. “중국이 북한에 막강한 영향력이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달랐다”며 중국의 입장을 옹호한 것이다. 지금껏 중국을 거세게 몰아붙이던 ‘악동’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의외였다. 중국이 ‘고작’ 북한여행을 규제했다고 해서 그 답례로 건네는 말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무겁다.





이상징후는 다른 곳에서도 포착됐다. 16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함께 한국을 찾은 백악관 외교보좌관이 사드 문제에 대해 “차기 대통령이 결정하는 것이 맞다”고 말한 것이다. 외교정세에 대해 사실상 무지했던 트럼프 정부에서 큰 손을 휘두르는 외교정책 담당자가, 사드 문제가 얼마나 민감한 문제인지, 그리고 한국에서 야권 성향의 후보자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사드 철회 가능성을 시사했다. 사드 문제로 몇 년간 골머리를 썩인 우리나라는 난리가 났다.


한미 당국은 즉각 사드 배치는 기존 계획대로 진행된다며 논란을 진화하고자 했다. 하지만 미중정상회담이 끝난지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이런 말이 나온 것은 몹시 의미심장하다. 중국이 대북제재를 강화하며 미국의 체면을 세워주고, 미국이 이에 호응해 사드 배치를 유보하거나 철회하는 ‘빅딜’의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논의되는 이유다.




정상회담 후 경제협력 강화하는 美中……


북핵문제, 뒷전으로 밀려날 가능성


한국, 닭 쫓는 개 신세 될 수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일관되게 '미국 우선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빅딜’이 성사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중국이나 미국이나, 북한문제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에 여력을 쏟기보다, 자국 경제에 노력을 쏟는 편이 현명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는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면서도 국내에서 강한 비판에 시달리고 있으므로, 자국의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는 일에 사활을 걸고 있다. 세계 최대 수출국인 중국과의 원활한 공조는 필수적이다. 중국 또한 2016년 이후 하락세로 접어든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일대일로 정책, 서부대개발, 동북3성 개발 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의 경제 공조는 필수적이다. 이번 정상회담의 최대 의제는 미국이 제기한 미중 무역불균형 문제였다.


실질적인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정상회담 전에는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북한에 대해) 모든 선택지가 테이블 위에 있다”며 중국을 압박하던 트럼프는, 회담이 끝나자마자 “중국과 정말로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미중 간) 잠재적인 모든 어려운 문제들이 사라질 것”이라며 시진핑에 대한 친밀감을 드러냈다. 시진핑 또한 “미중이 협력해야 할 이유는 1000개”라며 화답했다. 바로 며칠 뒤 트럼프는 대선공약이었던 ‘중국 환율조작국 지정’을 철회했다. 자국의 실익이 가장 중요한 양국 정상에게, 북한문제가 이보다 중요할 수 있을까? 심지어 북핵문제는 20년 넘게 1%도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들에게 경제회생과 북핵해결 중 무엇이 ‘해결 가능성 있는 시급한 문제’일까?



북핵 갈등이나 사드 갈등은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 간 '대리세력경쟁'으로서의 성격이 크다



미중은 이렇게 열심히 짝짜꿍을 맞추고 있다. 이제 눈을 다시 우리에게 돌려보자.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데, 우리로서 할 수 있는 게 도대체 무엇이 남아있나? 미국이 사드를 배치해준다는 말 하나만 믿고, 백악관 외교보좌관의 말 한 마디에 당황하며 좌지우지되고 있다. 수도권 방어도 못하고, 장거리 미사일 이외의 수 천 발의 단·중거리 미사일은 막지도 못하고, 그마저도 어설픈 실험만 몇 차례 거친 사드의 효능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할 필요도 없다. (관련기사: 오마이뉴스. "100초 만에 살펴보는 사드 성능 보고서")


북한의 주력미사일인 노동/무수단 등은 사드포대를 넘어 부산/제주도 등을 타격할 수 있다. ⓒ오마이뉴스



만약 미국이 미중관계의 원활한 전개를 위해 사드 배치를 유보해버린다고 해도, 한국이 미국에 대고 ‘미중관계보다 북한의 핵미사일이 더 중요하다’고 설득할 수 있을까? 북한의 장거리미사일은 아직 그 성능이 불확실해 미국에게 실제적인 위협은 되지 않고, 만약 미국까지 닿는다고 해도 미국에 배치된 사드로 본토 방어에는 별 무리가 없으며, 더구나 ‘아메리카 퍼스트’의 트럼프가 한국의 국익을 미국의 국익만큼 챙겨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희망적 사고다. 한국은 미국의 말에 따라 “알겠습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제 손으로 외교적 카드를 전부 내팽개쳐버린 비참한 말로다.


지금이라도 정신을 다잡아야 한다. 그리고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은 민감하고 번거로운 북핵문제해결에 별 관심이 없다. 적당히 상황유지만 하면서, 당장 눈앞에 있는 국익만 챙기면 그만이다. 더 이상은 닭 쫓는 개처럼 분별없이 외교정책을 세워선 안된다. 한반도는 언제나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각축장이었으며, 강대국 세력갈등의 데모버전이자 대리전쟁의 장이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어느 한 편으로 기울면 필연적으로 다른 한 편이 반발해 전쟁의 폐허가 된 곳은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였다는 사실을 다시금 기억해야 한다.



북한 붕괴가 남북 통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어떤 세계를 이해하는 길은 그 세계의 밖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전공이 북한학인 필자는 이 말에 적극 동의한다. 북한을 이해하는 길은 북한 밖에 있으며, 마찬가지로 한국을 이해하는 길은 한국 밖에, 남북을 이해하는 길은 한반도 밖에 놓여있다. 89년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진 이후에 우리 사회에 대한 반성이 더욱 객관화되고 정밀해질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특히 북한 붕괴와 관한 이야기가 넘실대는 최근에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에 더욱 절절히 공감할 수밖에 없다.


태영호 전 북한 외교관의 탈북을 시작으로 ‘북한 위기론’이 온 사회를 휩쓸고 있다. 10월 1일 국군의 날 행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 주민들의 탈북을 적극 독려하는 발언을 했고, 북한은 발끈하여 헛소리 하지 말라는 무지막지한 발언을 내놓았다. 그 이전에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 위기론을 기정사실화하듯 김정은 위원장에게 “정신상태가 온전하지 못하다”고 말했고, 북한은 “죽을 날이나 기다려라”고 대답했다. 국가 수반 사이의 외교적 발언이라고는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는 발언들이 오가고 있다. 최근에 한국 당국은 북한에서의 대규모 탈북에 대비한 탈북민 캠프를 설치하는 구상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태영호 전 북한 외교관. 태영호 탈북 이후 '북한 고위층 탈북'이라며 북한 위기론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북한이 실제로 위기에 처해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이전에, ‘북한의 위기’라는 담론 이면에 숨겨져 있는 한 줄기의 사유를 파헤쳐야 한다. 북한 위기론은 하나의 강력한 사유체계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는데, “북한 붕괴는 곧 통일”이라는 사고방식이 그것이다. 사실일까? “북한 붕괴는 곧 통일”이라는 명제는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판단해볼 수 있다.

 

1. ‘위기’, '급변사태', '붕괴', ‘통일’은 딱히 상통하지 않는다

 

가장 먼저 짚어두어야 할 것은 북한의 ‘위기’, '급변사태', '붕괴', ‘통일’이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북한의 위기는 급변사태로 이어진다’, ‘북한의 급변사태는 붕괴로 이어진다’, ‘북한의 붕괴는 통일로 이어진다’는 명제는 단언컨대 단 하나도 성립되지 못한다.


제재, 도발 등의 방법으로 북한을 자극하면 필연적으로 북한 내부에 어떤 형식으로든 통제가 어려운 위기 및 급변사태가 발생하고, 이는 국가의 붕괴로 이어지며, 남한 주도의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 붕괴통일론의 핵심이다. 또한 이것이 북한 위기론의 기저에 깔려있다.


그러나 급변사태는 말 그대로 급변사태일 뿐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북한에 닥친 위기가 급변사태로 이어진 경우는 굳이 꼽아봐야 90년대 말의 ‘고난의 행군’ 시기밖에 없으며, 그것조차 붕괴로 이어지도록 하지 않았던 것이 북한의 시스템이다.


북한 고난의 행군 시기 MBC 보도



고난의 행군이야말로 붕괴로 이어질 개연성을 가장 크게 갖춘 사태였는데, 당시 많은 주민이 아사했고, 북한의 국가 시스템은 깡그리 붕괴했으며, 이에 최고 고위층이었던 황장엽을 포함한 대규모 탈북사태, 대규모 작업장 이탈, 극심해진 지역차별 등의 상황이 닥쳤다.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북한이 당연히, 정말 당연히 멸망하리라 예상하고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민은 이에 적응하기 위해서 장마당을 개설하고 이를 발전시켰으며, 국법보다는 주민 자체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비성문적 법칙을 만들어나갔다. 북한 정부는 장마당을 허용하고, 위법행위에 대한 처벌을 완화하였으며, 이 사태를 '고난의 행군'이라 명명하며 인민의 이해와 인내를 이끌어냈다(고난의 행군은 김일성의 항일 투쟁 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칭하는 용어다). 한 국가가 멸망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급변사태가 북한에서는 붕괴로 이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관련 글: 근거 없는 '북한 붕괴론'이 위험한 이유)


설령 어떤 급변사태가 발생했을 때, 붕괴되는 것이 단순히 국가라고 할 수도 없다. 붕괴는 단순히 ‘국가붕괴’만을 의미하지 않고 사회주의 체제나 주체사상의 몰락인 '체제붕괴', 혹은 김씨 일가의 몰락으로서의 '정권 붕괴'까지 포함하는 말이다.


가령 쿠데타라는 급변사태가 닥쳤을 때, 쿠데타 세력은 자신들의 생존을 한국이나 미국에 맡기기보단 중국이나 러시아에 의존하고자 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쿠데타 세력이 고위층일 경우 지금까지 북한에서 일어났던 인권탄압의 책임을 한국이나 미국이 가만히 놔둘 리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쿠데타 세력이 민중이라고 하더라도, 남북관계가 파탄나고 북중관계만 살아있는 오늘날 중국보다 한국이 매력적일 이유는 하등 없다.


쿠데타 세력이 김씨 일가를 몰아낸다고 하더라도, 덩샤오핑과 같이 자기식 자본주의를 개발하거나, 소련 이후의 러시아처럼 기존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해체하고 북한 지역에 새 국가를 선포할 수도 있다. 국제적으로 정권붕괴 혹은 체제붕괴 시 타국이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으며, 국가붕괴 시에는 북한 주민들이 제3국을 건설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가장 개연성이 높다.


2. 국제사회는 북한 붕괴 이후의 남북통일을 허용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북한이 실제적 붕괴를 맞이한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붕괴 국면에서 미국, 중국 등 강대국을 제치고 한국이 끼어들 틈은 없다. 중국과 러시아는 결코 위기에 빠진 북한이 이후에 한미일 세력에 포섭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미국 또한 중국과 러시아를 깡그리 무시한 채 북한을 집어삼키려 할 수 없다. 현상유지적 안정을 꾀하는 국제사회가 남북통일을 도울 이유도 전혀 없다. 냉정해지자. 북한 붕괴 시 한국 주도의 통일이 이루어지리라는 생각은 희망적 사고에 불과하다.


특히 중국의 존재감이 위압적이다. 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은 또 한 번 그와 같은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무조건적인 ‘주체’ 정신을 버리고 중국에 의존하기 시작했다(이 때 중국의 간섭에 대한 최후의 보루로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 ‘핵’이다. 1차 핵실험 이후 김정일은 ‘이제 중국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겠구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북한에 지원을 하지 않으면 북한은 저절로 위태로워지고, 고난의 행군과 같은 새로운 급변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가하면 할수록 북한은 중국을 향한 문을 더 활짝 열어갔다.


10일 북한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김정은(오른쪽)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류윈산(劉雲山)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손을 잡은 채 팔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남북관계가 파행을 시작한 2008년 이후 이와 같은 상황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북한의 대외 교역량 중 대중 교역량이 90%에 가깝다. 뿐만 아니라 위화도, 황금평 등의 땅과 각종 자원에 대한 채굴권을 중국에 팔고, 서해 어업권은 물론 동해 어업권까지 중국에 판매했으며, 창지투 개발지구와 같은 북중 협력을 강화하고, 심지어는 나진항을 중국이 사용할 수 있도록 내어주기까지 하며 북중경협을 공고히 하고 있다. 최근 중국이 동북3성을 개발하는 점을 적극 이용하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북한이 붕괴했을 때 북한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가장 크게 행사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또한 중국은 한국보다 많은 사업자를 북한에 보내고 있는데, 중국이 ‘북한 내 중국인을 보호한다’는 식의 명분으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주장할 때, 한국이 주장할 수 있는 명분은 무엇이 있는가? 남북 간 합의서 따위는 지금까지 다 종잇조각에 불과했다. 중국의 ‘자국민 보호’ 명분 앞에 한국이 ‘원 코리아’ 따위를 주장한다 해도 이 추상적인 개념을 과연 어느 나라가 인정할 것인가? 개성공단이 폐쇄된 이후에는 북한에 대해 우리가 주장할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만약 북한이 완전히 붕괴되어 무정부상태가 되더라도 중국은 북한이 스스로 제3국을 건설할 수 있도록 돕거나 분할신탁통치를 해야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북한이 급변사태를 맞이하거나 붕괴할 가능성이 있을 경우 북한이 중국의 영향력을 벗어날 위험이 있고, 1,400km에 달하는 북중 국경선을 통한 대규모 탈북사태로 중국 동북3성의 질서가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특히 대량탈북 사태는 탈북민의 난민 지위 문제로 다시 한 번 중국을 곤욕스럽게 할 것임은 물론 북한 주민-탈북민-조선족을 끈끈하게 묶어 조선족발(發) 분리주의를 촉발시킬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중국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를 막으려 할 것이다. 


또한 중국은 북한과 유일하게 군사 동맹을 맺고 있으므로, 북한이 붕괴할 경우 북한에 군사적 진입을 할 수 있는 누구보다 강한 권한과 명분을 가지고 있다. 신빙성은 미약하나, 북한 급변사태 시 군사를 투입해 남포와 함남 이북지역을 신속하게 점령해 통제하겠다는 '병아리 작전'의 존재가 알려진 적이 있으며, 이와 비슷한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물론 중국은 내정 불간섭의 원칙을 가장 중시하는 나라이므로 이와 같은 걱정은 기우일지도 모르지만, 미국이나 한국이 북한 지역에의 권리를 마음껏 주장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 리도 만무하다. 중국에게 북한은 순치관계에 있는 국가이자 미국에 대한 압박 카드로서 결코 없어서는 안되는 국가다. 중국은 북한이 관련된 모든 문제에 대해서 침묵하거나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있다. 최근 미사일이나 북핵문제와 관련해 북한을 압박하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동조하고는 있지만, 군사적 대립관계가 경제적 협력관계와 큰 연관이 없는 점, 그리고 이미 언급했듯 중국이 정말 필요로하는 국가라는 점에서 안보-경협을 분리해서 접근할 것이다. 


미국 또한 위와 같은 상황을 염두하여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일정 수준 이상 펴지 않고 있다. 이를테면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정하면서도 한국과 군사작전 계획을 세울 때엔 핵무기 등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통제권만 가지고 통일이나 북한에 대한 진군 등 나머지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관여하지 않는 것이 미국의 속내를 반영하는 것이다.


기실 북한이 석유나 천연자원을 다량 보유한 국가였다면, 북한은 미국의 공격과 점령에 이미 망했을 것이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한국만 필요할 뿐, 구태여 남북통일을 이끌어 중·러와의 관계를 꼬아버리고자 하지 않는다.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통제권만 가질 수 있다면 문제덩어리인 북한이 어떻게 되든 관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3. 오늘날 북한붕괴통일의 끝은 재앙이다




최근 최승호 기자가 연출을 맡은 <자백>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했다. 박근혜 정부 하의 국정원에서 기획한 탈북민 간첩조작사건을 담은 영화다. ‘먼저 온 미래’라고 불리는 탈북민들, 그들이 살아가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단면을 짐작해볼 수 있게 한다.


지금조차 이러할진대, 통일 이후 남북 주민 간 화합을 기대하는 일은 허황된 꿈이다. ‘종북’, ‘빨갱이’에 대한 위기의식이 만연한 한국사회에 이북 출신의 진짜 빨갱이가 대거 남하한다면? ‘종북’ 수준이 아닌 ‘북’ 그 자체가 한국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북한 주민들에게 무조건적인 변화와 순응, 그것이 아니면 퇴출을 요구할 것인가? 이것은 식민지 조선에 대한 일본제국의 주장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순응이 아니면 죽음을.” 영화 <밀정>에서 데라우치 총독이 식민지 조선인에게 말했다고 소개된 말이다. 이에 북한 주민들이 남한의 고압적인 태도에 못이겨 “분리독립하자”고 주장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어디 감히?”라고 말하며 총칼을 들이밀 것인가?


‘북한 위기론’ 기저에 있는 ‘붕괴통일론’에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우리들의 뿌리깊은 선민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승리한 대한민국과 실패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 승패의 구조에서 패자인 북한은 승자 남한의 경험을 그대로 전수받아야하며, 그 과정에서 불만은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1948년 민주주의 국가로 출발한 우리도 87년에 민주적 절차성만을 간신히 갖췄다. 자그마치 40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그조차도 반성이 많다). 독일은 통일 전부터 남북보다 더욱 전향적인 평등주의를 추구했지만, 통일 후 3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동서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 못했다. 우리는 북한에 대해 그보다 더 긴 시간을 기다려줄 수 있을까? 지금 갑자기 통일이 된 한반도,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있을까?


러시아가 일본에 제안한 시베리아 횡단철도 연장 계획 ⓒ한겨레신문



지금까지 통일 편익으로 제시되었던 수많은 근거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열차다. 통일 한반도에서 서울에서 파리까지 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탈 수 있다는 것은 가장 매력적인 통일의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런데 남북 경색 국면이 지속되자,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한반도를 우회하여 쿠릴열도를 거쳐 도쿄로 이을 구상을 내비치고 있다.


세계는 점차 화합해가는데, 한반도가 버려지고 있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통일도 되기 전에 통일편익이 사라지고 있다. 북한 위기 및 붕괴가 통일로 이어질거란 막연한 희망 속에서, 통일의 희망은 점차 시들어가고 있다.




90년대, 북한에 닥친 재앙 수준의 위기


북한 전 외교관인 태영호의 탈북 이후로, 정부부처부터 수많은 언론사들까지 북한에 드디어 망조가 보인다고 신이 나서 떠들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판단은 지극히 편협하다. 1990년대 북한은 지금보다 훨씬 심각한 체제 위기를 겪었으나, 이를 이겨냈다. 이것이 왜 가능했는지의 역사를 조금만 살펴봐도, 지금 창궐하는 북한붕괴론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알 수 있다. 더불어, 북한붕괴론이 얼마나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도 가늠할 수 있다.


1990년대로 돌아가보자. 민주화 운동과 극심한 체제 위기를 겪던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은 1989년부터 붕괴하기 시작했다. 폴란드, 헝가리, 동독, 체코,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등, 전통적인 북한의 우방 국가들이 사회주의 체제를 내팽개치기 시작했다. 89년 6월에는 중국에서 그 유명한 천안문 사태가 발생했다. 심지어 중국은 70년대 말부터 개혁개방 정책을 펼쳤는데도! 1990년에는 독일이 통일되면서 동독은 자연스레 붕괴되었다. 남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사실상 패배한 북한에게는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설상가상으로 1991년에는 사회주의 국가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소련이 마침내 해체되었다. 북한은 몇 년 사이에 세계에서 유례없는 외딴 나라가 되어버렸고, 이 즈음 북한붕괴론은 본격적으로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북한이 국제적으로 얼마나 심각한 위협을 느꼈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1994년 김일성 사망을 보도한 동아일보 지면. 김정일 체제가 안정적일지, 김일성의 죽음이 연사인지 피살인지 등을 다루는 기사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뿐만 아니었다. 북한은 80년대부터 전면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경제계획 실패와 각종 자연재해로 유례없는 경제난을 마주하고 있었으며, 사회주의 국가가 붕괴하며 외부 지원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경제 상황은 하루게 다르게 나빠지고 있었다. 중국과의 관계도 89년 중소 국교정상화를 계기로 상당히 껄끄러웠는데, 중국은 한 발 더 나아가 92년에 남한과 수교를 맺어버렸다. 북중관계는 그야말로 끝장난 지경이어서, 북중 접경지역에서는 총격전이 벌어질 정도였다. 국제적 고립과 경제난이라는 상황은 수습되기는커녕 끊임없이 악화되어 갔다.


더욱 엄청난 문제가 터졌다. 94년에 김일성이 사망한 것이다.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에는 배급제가 붕괴하고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 본격화되어, 북한 당국의 주민에 대한 법적·물리적·경제적·사상적 통제력이 상실되다시피 했다. 몇 십 만 명이 아사하기 시작하고, 주민들은 당국의 지시를 거부하고 자체적으로 살 길을 찾기 시작했다. 80년대까지는 남에서 북으로 가는 탈남 현상이 많았는데, 이 시기 이후에는 탈남 현상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대규모 탈북 사태가 벌어졌다. 김일성 사후 북한 지도층 내부에서 김정일이 무자비한 숙청을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고, 이는 김정일 정권이 불안정하며 지도층의 불만이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해석되었다. 97년에는 주체사상의 창시자인 황장엽마저 남측으로 망명하며 북한붕괴론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당시 북한이 처했던 상황은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더구나 당시에는 사회주의 국가 붕괴라는 실제적인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전 세계 모든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북한 또한 곧 붕괴하리라 예측했다. 그 어떤 학자나 정치인도 별 의심을 품지 않았다. 그런데, 북한은 살아남았다.


북한이 살아남은 이유


도대체 북한은 어떻게 살아남은 것일까?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주체사상의 힘이다. 여타 사회주의 국가들이 기치로 삼았던 사회주의(맑스-레닌주의, 스탈린주의, 모택동주의 등)과 북한의 주체사상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맑스-레닌주의, 스탈린주의, 모택동주의 등은 자기만의 영역과 사상을 공고히 구축했음에도, 맑스식 사회주의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스탈린조차 맑스주의를 뛰어넘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그런데 주체사상은 맑스식 사회주의라는 틀을 과감히 뛰어넘었다. 맑스식 사회주의 이전에 있었던 다른 사회주의들은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북한은 맑스주의를 과감하게 비판하며 주체사상을 치켜세웠고, 이를 통해 어버이 수령과 어머니 당에 대한 충성심은 종교적 신앙 수준으로 치달았다. 부모를 축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두 번째는 상호감시체계다. 주체사상이라는 명확한 삶의 이정표가 세워진 가운데, 북한은 주민들이 서로를 감시하게 하여 주체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상호감시체계로는 '생활총화제도'가 대표적이다. 북한 주민들은 학생, 직장인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이 때 자기반성과 더불어 필수적으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해야 하는데, 이 때 다른 사람의 잘못을 알고 있음에도 지적하지 않으면 죄가 된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잘 지적하거나, 이른바 반국가적 행위를 포착해내면 큰 보상이 뒤따랐다. 주체사상이 생각을 묶는 족쇄였다면, 상호감시체계는 행동을 묶는 족쇄였다.


세 번째는 김정일의 지도력이다. 90년대 당시 북한이 처했던 상황은 단순한 위기가 아니라, 트라우마로 남을 만큼 엄청난 충격의 연속이었다. 재앙처럼 닥치는 위기에 맞서 혼란스러운 정국을 수습하려면 정치력 이상의 능력이 필요했고, 김정일은 이를 정확히 간파했다. 김정일은 마치 악단의 지휘자처럼 북한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김정일은 사회주의국가의 붕괴는 사회주의와 주체사상으로 철저하지 무장하지 못한 가운데 불순한 책동세력이 활개쳤기 때문이므로 사상을 더욱 강화하라고 주문했다. 91년에는 남측과 함께 UN에 동시가입하여 국제적으로 개별국가임을 확인하는 동시에, 불가침조약(91년 남북기본합의서)을 맺어 동요하는 지도층을 달랬다. 그리고 최악의 경제난에는 고난의 행군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고난의 행군은 김일성이 항일투쟁시절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을 견뎌야 했던 시절을 일컫는 말이다. 즉, 어버이 김일성이 인민을 위해 감내했던 시간을 생각하며 견디자는 감정적인 호소를 북한 주민들에게 던진 것이다. 김정일은 이외에도 주체사상을 발전시킨 선군사상을 계발하고, 법체계를 정비하고, 상호감시체계를 통해 쿠데타 시도를 저지하고, 필요한 경우엔 정치적 숙청도 서슴지 않으며 혼란을 차근차근 수습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북한은 살아남았다.


오늘날 김정은 정권이 불안정하다고 말해도, 김정일 시대만큼 불안정할까? 억압적인 정권이 또 다른 정권으로 바뀔 때 지도층의 이탈은 언제나 있어왔던 일이다. 90년대의 북한이 위기를 겪어내게 했던 힘인 주체사상과 상호감시체계는 여전히 유효하다. 물론 김정은의 지도력이 어떤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김정일 사후 지금까지는 지도력이 불안정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


북한보다 먼저 붕괴할 북한붕괴론의 실체


물론 북한이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식으로 확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과 북한의 역사를 살펴보면 북한이 망하리라는 주장이 얼마나 근거없는 것인지 알 수 있다.


북한붕괴론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제발 공부 좀 하라!'고 말해주고 싶으나, 북한 전문가들이 북한 역사도 공부하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사실 그들은 다 알고 있다. 북한이 살아남았으며, 앞으로도 살아남을 것이란 사실을. 그러나 그들에게 그러한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북한은 망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우리나라 국민들이 계속 믿어줬으면 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왜 핵을 개발하는지, 왜 포기하지 않으려 하는지 뻔히 알면서도 대책없이 '비핵화'만 말하는 것, 혹은 도대체 통일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 구체적인 청사진은 하나도 제시하지 않은 채 '통일은 대박' 따위의 속 빈 구호를 외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남북관계나 북한의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나 전망은 최대한 흐리고, 북한 체제에 균열이 보인다는 자극적인 소문을 퍼뜨리면서, '악마국가 북한'과 '마침내 승리할 대한민국'이라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프로파간다를 이데올로기화하고, '이대로만 가면 북한은 끝이다!'는 식의 근본없는 안도감을 조장하는 것이다. 이같은 국가적 무지(無知)를 강화하는 이 이데올로기만 있으면 북한붕괴론은 영속할 것이며, 우리나라의 '특정 세력'은 이를 무척이나 좋아하지 않는가?


세계적인 평화학자인 요한 갈퉁은 한 인터뷰에서 "북한붕괴론이 북한보다 먼저 붕괴할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 말을 듣고 "북한붕괴론을 말하는 사람들이 북한붕괴론보다 먼저 붕괴할 것"이라는 문구를 떠올려보았다. 후자가 더 매력적이다.

추재훈



지난 2월부터 급격하게 가속화된 사드 논란을 지켜보면서, 한 가지 의문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대통령은 왜 사드에 이토록 집착하는 걸까. 답은 간단했다. 그녀는 이상에 사로잡혀있다. 추재훈


사드가 왜 불필요한지는 명확하다사드가 왜 불필요한지는 명확하다. 전술적으로, 첫째로 사드는 미 본토 방어용 MD체계의 일환이다. 미국 태평양사령관, 미사일방어국장 등은 이미 수 차례 이 사실을 미국 의회에서 확인했다. 둘째로, 북한이 한국에 미사일을 쏠 정도의 전면전이 벌어지면 사드는 이미 필요 없다. 북한은 먼저 수천 문의 야포, 중거리 미사일, 생화학 무기 등으로 이미 남한 지역을 초토화시켰을 것이다. 안보주의자들이 걱정하는 미지의 땅굴로, 수십만 명의 인민군이 이미 침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셋째로, 북한이 한국을 지상에서 발사하는 대형 미사일로만 공격할 필요도 없다. 최근 북한이 신이 나서 개발하고 있는 SLBM이 그 대표적인 증거다. 마지막, 사드는 한반도라는 야전의 최전선에 설치하기에는 그 효과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 기껏해야 몇 번의 어설픈 실험만 거쳤을 뿐이다.


더욱 주목해야 할 지점은 사드의 정치적인 효과다. 사드는 중국과 북한을 단단하게 결속시킨다. 사드를 통해 미중관계가 악화되면서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냉전적 갈등구조가 심화되면, 중국은 북한을 포용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사드는 국내의 북한붕괴론을 붕괴시킨다. 필자는 북한붕괴론을 믿지 않지만, 북한붕괴론을 위해서 강력한 대북제재가 필요하다는 논리 자체는 이해한다. 이를 위해 4차 핵실험 이후 간 열심히 노력했던 것도 안다. 그런데 북중동맹이 강고해지면 대북제재는 효과를 잃는다.


북한에 대한 강경일변도는 보수의 정체성과도 같다. 북한 카드는 지금까지 지금껏 여권을 단단하게 결집시켰던 핵심 카드다. 그런데, 사드는 이마저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상황은 이토록 엉망진창이다. 외교적 이익도 없는데, 집권층의 권력을 강화하는 북한과의 적대적 공생관계마저 포기하면서, 뭘 위해서 사드를 추구하는가? 그녀의 특성을 보면 그녀가 추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 그녀는 독재자의 딸이다. 독재자는 국가를 사유화한다. 유년기부터 자아를 확립하는 청소년기까지 독재자 슬하에서 자라며, 그녀는 국가운영에 대한 독재자의 사고방식을 깊게 내면화했다. 유신정권 붕괴 후 오랜 기간 칩거하다가, IMF사태로 정계에 나선 이유도 그와 같다. 아버지가 어떻게 일구어놓은 나란데,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도저히 지켜볼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아버지가 일구어놨다는 생각도 틀렸지만.


, 그녀는 보수의 상징이다. 한국의 보수는 정치·경제적 지향성으로 뭉친 집단이 아니라 이념으로 뭉친 집단이다. 친일에서 독재로 이어지는 보수 집권의 역사 속에서, 보수는 안보위기 결집효과를 위해 북한을 이용했다. 그 과정에서 반북=대한민국이라는 강력한 프레임이 형성되었고, ‘평화통일과 같은 진보적 담론마저도 흡수해버리며 반북 이데올로기는 확대·발전했다.


, 그녀는 정치를 신뢰하지 않는다. 공감능력도 없다. 유신정권이 무너진 후, 아버지에게 충성하던 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던 것을 그녀는 똑똑히 목격했다. 그녀는 부모님의 총격 피살과 배신이라는 엄청난 고통과 슬픔을 혼자 견뎠고, 다른 사람의 슬픔 따위는 자신의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리더는 팔로워에게 일정한 권한과 책임감을 부여해야 하는데, 남을 믿지 못하는 그녀는 그럴 수가 없다.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에게 세심한 부분까지 일일이 간섭하는 이유다. 독재자는 자기 자신밖에 믿지 않는다는 말이 생각나는 지점이다.



대통령이 7월 14일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국무위원(과 국민)들에게 사드를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은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세월호가 눈물로 가라앉을 때, 애초에 공감능력이 없는 그녀는 공감할 줄 안다는 위선마저 내다버렸다. 사드를 배치하면서는 보수의 전통적인 논리체계를 뒤흔들고 있다. 대북제재에 대해서는 입도 벙끗 안하고, 비핵화와 통일이라는 속 빈 레토릭에만 지겹도록 매달리는 것이 이 때문이다.


지금 대통령에게 남은 것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명령과 복종의 일사분란한 체계 속에, 온 구성원이 똘똘 뭉쳐, 북한에 맞서 싸우며 번영하는, ‘나의 대한민국’이라는 허상이다. 그녀는 이렇게만 하면 만사형통이라고 철저하게 믿고 있다.


‘나의 대한민국’ 안에는 아무런 신념도, 철학도, 지혜도 없다. ‘민혁당’의 슬픈 역사와 ‘하얼빈’에서 순국하신 안중근 의사를 말하며, 국민은 여전히 영도가 필요한 자식들이라 믿고 가르치려 드는 그녀에게, 민족이나 역사나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다. 그녀의 대한민국은 보수의 대한민국과도 다르다. 보수가 건국절을 말하는 이유는, 친일과 독재의 과거를 뒤덮고 북한을 부정하며 부강한 대한민국이라는 프레임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녀가 건국절을 말하는 이유는, 대한민국이 아버지가 일으키고 자신이 유지하는 사유물이기 때문이다.


사드는 대통령에게 최초에는 방어용 체계였을 것이다. 하지만 사드 논란이 곪아서 터져버린 지금, 사드는 더 이상 국익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나의 대한민국’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상징이 되었다. 사드마저 포기해버리면, 대통령의 ‘나의 대한민국’은 무너진다. 이것이 그녀가 사드에 집착하는 이유다. 역사는 독재자를 잊었지만, 그녀는 독재자를 잊지 않았다.





사드와 핵실험의 양면성



동북아시아에는 한 가지 법칙이 있다. 북한이 판세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정권유지’라는 목표에서 단 한발자국도 떨어져있지 않다. 세상에 북한만큼 견고하고 고집스러운 나라도 없다. 몇 년에 한 번 정부가 바뀌는 민주국가에 비해 관료의 변화가 극히 적은 북한은, 수십 년 간 외교의 장에서 온갖 경험을 겪은 관료들로 중무장하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주체사상을 만고불변의 진리로 떠받들고 있다. 솔방울을 수류탄으로 만드는 김일성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덤이다. 북한이 예측불가한 나라라는 생각은 오판이다. 그들이 외교적으로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려면, 그들의 과거와 주체사상만 들여다보면 될 정도로 일관성있는 나라다. 따라서 그들이 일으키는 외교적 기획이 얼마나 잘 설계된 것인지 아는 주변국은 북한의 이상징후에 격렬하게 반응한다.


동북아시아의 21세기는, 북한 주변국들이 어떤 식으로든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채찍을 휘두르거나 당근을 내밀며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과거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동북아 냉전적 갈등구조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던 햇볕정책의 시기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는 햇볕정책에 대한 직접적 옹호가 아니라, 사실이다. 여기에 북한은 계속 싸워댔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라가 어디일까? 북한이다. 핵개발, 미사일실험, 경제협력 등, 북한이 지금껏 취했던 대외적 기획들은 하나같이 ‘북한이 판세를 좌우하는’ 동북아 법칙을 최대한 활용해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함이었다.


핵실험을 예로 들어보자. 핵실험은 대외적 효과는 테러에 치를 떠는 미국을 위협하여 미국을 아시아에 더 깊숙이 끌어들이고, 이에 반발하는 중국의 뒤에 잠시 숨는 것이다. 즉, 한미일, 북중러의 냉전적 갈등구조를 심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숙명적 형제이자 적국인 한국이 자신과 협상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대내적으로는 국민을 통합하고, 정권의 위상을 드높이고, 필요에 따라 핵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음은 옵션이다. 한국이 남북경협을 중단하면 어떠랴, 어차피 그 카드는 아직 설익은 카드다.


한 손에 핵을 쥐고 있는 것 자체가 북한에게 안정성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언젠가 협상을 통해 불가역적으로 정권의 생존을 보장받는 것이 북한의 노림수다. 이러나저러나 핵은 북한에게 꽃놀이패다. 간헐적으로 동북아를 뒤흔드는 핵실험을 보면 북한이 보인다.




이제 눈을 남쪽으로 돌려 사드 배치 문제를 보자. 성주에 배치된 사드가 북한의 미사일 공격을 막는데 별로 효과가 없다는 것은 이미 명확하다. 조금 양보해서, 사드가 북한의 미사일을 막을 수 있다고 치자. 북한이 남쪽으로 별 공격 효과도 없는 고고도미사일을 발사할 정도의 상황이 발생했다면, 수천 문의 장사정포와 생화학무기가 이미 한반도 남쪽을 초토화시켰을 것이다. 어쩌면 핵폭탄도 터진 뒤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는 사드배치 논란을 보면 한국이 보인다. 사드배치의 대외적 효과는 미국패권에 치를 떠는 중국을 위협하여 중국을 한반도 문제에 더 깊숙이 끌어들이고, 미국 뒤에 쏘옥 숨는 것이다. 즉, 한미일, 북중러의 냉전적 갈등구조를 심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숙명적 형제이자 적국인 북한이 신이 나서 SLBM을 발사하는 것이다. 대내적으로 국민은 극단으로 찢어지고, 정권의 위상은 땅으로 추락하고, 필요에 따라 불순세력을 이용할 수 있음은 옵션이다. 중국이 대북제재를 중단하면 어떠랴, 어차피 그 카드는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던 카드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라가 어디일까? 한국… 정부… 대통령이다. 사드배치, 개성공단 중단, 위안부협상 등, 대통령이 지금껏 취했던 대외적 기획들은 하나같이 ‘북한이 판세를 좌우하는’ 동북아 법칙을 최대한 활용해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함이었다.


한국의 3년은, 미국과 일본이 어떤 식으로든 한미일 공조체제로 한국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채찍을 휘두르거나 당근을 내밀며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한일관계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는 위안부 협상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는 사실이다. 여기에 한국은 홀랑 넘어갔다.


세심하게 국정을 운영하는 일본이나 중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해 한 달에 한번 꼴로 사고를 내는 한국 정부는, 정치의 장에서 도통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관료들로 중무장하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대통령을 만고불변의 진리로 떠받들고 있다.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역사에 대한 처참한 지식수준은 덤이다. 한국의 외교정책이 예측불가하다는 생각은 오판이다. 외교적으로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려면, 한국 정부와 대통령만 들여다보면 될 정도로 일관성있는 나라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일으키는 정치적 파문이 얼마나 허술하게 설계된 것인지 아는 국민은 격렬하게 반응한다.


한국에는 한 가지 법칙이 있다. 정부가 판세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대통령 안정’이라는 목표에서 단 한발자국도 떨어져있지 않다. 세상에 한국 정부만큼 견고하고 고집스러운 정부도 없다.


핵실험이 북한 정권의 국가적 이익에 정확히 부합하는 만큼, 사드는 한국의 대통령 이익에 정확히 부합하고 있다.






진보는 은폐하고 보수는 외면했던 개성공단의 진실

추재훈

도대체 왜 개성공단이 평화를 위한 안전장치란 말인가? 애초에 적지(敵地) 한가운데 협력적 공단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 오늘날 개성공단 존폐 여부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은 개성공단이 기획된 의도가 상당부분 숨겨져 있기 때문에 유발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성공단은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다. 하지만 개성공단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다는 명제 자체는 너무나도 불충분하며, 그 숨겨진 의도를 알고 있어야만 가능하다.


개성공단과 평화 혹은 안정 사이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론적·현실적 구상과 근거들이 숨어있다. 이를테면 전략적 요충지인 개성에서의 북한군 후퇴, 개성공단을 근거로 하는 한반도 국제경제지구의 가능성 확대 등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하고, 그래서 꼭꼭 숨겨질 수밖에 없었던 개성공단의 성격이 있다. 신자유주의다.


개성공단이 극도의 우파 자본주의적 기획의 결과였음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개성공단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가운데, 개성공단의 전략적 가치에 대한 논의는 전무하다. 이 때의 전략은 단순히 군사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개성공단은 햇볕정책이라는 급진적이고 좌파적인 정책의 산물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좌파·우파와 진보·보수라는 이념적 구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이 좌우와 보혁에 대한 왜곡과 몰이해가 만연한 사회기 때문인 탓도 있다.


▲ 정부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조치로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지난 11일 오전 경기도 파주 경의선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공단 입주기업 관계자들이 차량에 물품을 싣고 복귀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분단체제, 좌-우, 보-혁의 왜곡


개성공단을 이야기하기 전에 좌우와 보혁에 대해 간단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오늘날 좌파-우파, 진보-보수의 틀은 복잡하다. 그러나 핵심은 간단하다. 먼저, 좌파-우파는 결코 민주주의와 관련된 구분이 아니며, 경제적 지향성과 관련된 구분이다. 우파는 사익 중심의 자본주의를, 좌파는 공익 중심의 사회주의를 지향한다(여기에서 말하는 사회주의는 레닌이 기획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사회주의가 아니라, 소수 경제기득권의 횡포를 방지하고자 하는 사회주의 본연의 이념이다. 북한을 결코 사회주의국가라고 할 수 없는 이유다.).


진보와 보수의 경우, 진보는 보다 개혁적인 사람들, 보수는 보다 현상유지적인 사람들의 집합이다. 진보와 보수가 일률적으로 추구하는 이념이란 없으며 시대에 따라 변한다. 카이사르 시절 로마에서는 공화주의자들이 보수, 왕정주의자들이 진보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그런데 근대 이후의 세계는 영미식 자본주의 체제가 지배적이므로, 우파는 자연스럽게 보수로 귀결되었다. 마찬가지로 좌파와 진보 또한 연관될 수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20세기 말 공산권이 붕괴하며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런 사실에 입각한 채로 개성공단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다. 개성공단은 우파적 이념의 발현이다. 개성공단의 근본적인 작동 원리는 간단하다. 대한민국의 자본으로 북한에 공단을 짓고, 여기에서 나오는 이익을 남북이 나누어갖는 것이다. 북한은 노동력만 투입하고 인건비를 벌어들이며, 나머지 이익은 한국 기업이 갖는다. 경제적으로 봤을 때 신자유주의 다국적 기업의 돈 놓고 돈 먹기 전략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원리다.


▲ 지난 12일, 개성공단기업협회 대표들과 간담회를 가진 새누리당(左)과 정의당(右) ⓒ오마이뉴스


개성공단, 극도의 자본주의


따라서 이런 식의 공단이 커지면 커질수록 북한은 얻는 만큼 잃는 것도 커진다. 북한이 개성공단을 쉽사리 건드리지 않았던 것은 개성공단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성공단이 아직까지 북한에게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으므로 지금처럼 첨예한 갈등이 벌어졌을 때 개성공단을 버릴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즉, 개성공단은 더 커져야 했다. 가령 지금까지 개성공단에는 총 123개 기업이 입주해있었는데, 만약 1,230개 기업이 있었다면, 혹은 한미의 협조 하에 삼성이 들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남북이 구상한 대로 해주공단, 신의주공단까지 만들어지고, 나아가 함흥공단, 원산공단 등이 만들어져 몇 백만 명의 북한 주민이 한국 기업으로부터 월급을 받았다면?


대한민국 경제가 북한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커졌을지 짐작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지금 중국의 영향력과 맞먹거나 혹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북한 정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이 남북경협을 통해 천문학적인 세금을 거둬들이고 여기에 크게 의존할 만큼 대남의존도가 높아졌다면, 그래서 경협 중단이 정권 운영에까지 타격을 입힐 정도가 된다면, 지금처럼 남북경협 중단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 무작정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을 자행할 수 있을까?


우파가 보수와 교집합이 많고 좌파가 진보와 교집합이 많은 것이 현실이었다. 그렇다면 왜 햇볕정책과 개성공단이 자칭 보수세력에게 지탄받는가? 그것은 안보지상주의가 만연한 한국의 분단체제 때문이다. 경제적으로는 우파적 보수성을 지향하는 사람조차도 정치적으로 반공적·안보적 보수성에 매몰되는 분단모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예컨대 이것을 북풍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북풍이 향하는 곳은 이른바 좌파 혹은 종북이라고 이름붙여진다. 이곳에는 안보지상주의에 어긋나는 모든 사람들이 뒤섞여있는데, 진정한 의미의 우파도 예외가 아니다. 또한 상당한 국민들은 이를 믿는다. 개성공단은 경제적으로는 철저한 우파적 논리에 따르지만, 분단국의 왜곡된 정치지형 속에서 개성공단이 좌파적이라는 모순적인 비난이 생겨난 것이다.


▲ 개성공단 총계획(左, ⓒ용인시민신문). 계획은 2008년 이후 남북관계 악화와 더불어 중단되었고, 현재는 1단계까지만 진행되었다(右, ⓒ시사저널).


전장에서 시장으로


햇볕정책이 우파 자본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그게 전부인 것은 아니다. 햇볕정책은 남북의 경제적 협력에서 시작해 정치적 협력까지 이끌어낸다는 목표로 출발했다. 이를 기능주의라고 한다. 기능주의는 “자유로운 교역은 전쟁을 억지한다”는 칸트의 영구평화론이 모태가 되어, 현대 유럽에서 통합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1950년대 이후 유럽연합의 근거가 되었다. 즉 기능주의란 단순히 일상적·평면적 신뢰가 아니라 기능적 협력을 통한 관계적·전략적 신뢰의 구축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유럽은 기능주의적 사고에 따라 각종 경제적(기능적) 협력을 펼쳐나가면서 1958년에 유럽경제공동체(ECC)를 만들고, 이를 1967년에 유럽공동체(EC)로 발전시키고, 마침내 1991년 유럽연합(EU)을 출범시킬 수 있었다. 오늘날 유럽은 경제위기에 고전하고 있지만, 위기에 맞서 더욱 전향적인 통합을 위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세계대전 후 어수선했던 유럽이 통합되는 과정을 벤치마킹한 정책이 햇볕정책이며, 그 속에서 설계된 결과물이 개성공단이다.


그런데 남북은 유럽과 크게 두 지점에서 차이점이 있었다. 첫째로 유럽의 전반적 경제격차에 비해 남북 경제격차가 훨씬 심하다는 점, 둘째로 유럽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라는 안보협력체가 1949년 먼저 만들어져 있었던 점이었다. 남북 경제격차는 유럽 통합이 진행되던 때 유럽 내부적 격차보다 훨씬 심하므로 한국 자본이 북한에 투입되면 될수록 북한의 경제적 종속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남북의 첨예한 군사적 대립은 경제협력의 심각한 제약이었으며, 따라서 경협은 군사대립을 약화시킬 수 있도록 보다 전향적으로 시도되어야 했다.


▲ 유럽공동체(EC)는 1991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통해 EU(유럽연합)으로 출범했다. ⓒAPF


시장에서 광장으로


대한민국이 햇볕정책 구상을 처음 내놓았을 때 북한이 격렬하게 반대한 것은 이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고민했던 부분도 이 부분이다. 두 정부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을지 몰라도, 햇볕정책은 본질적으로 북한 경제의 한국에 대한 예속을 심화시키는 극도의 자본주의 정책으로 발현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두 정부는 햇볕정책이 평화를 위한 정책이 될 수 있도록 경제적 팽창주의로 비춰질 수 있는 언행을 최대한 삼가고, 사회적·문화적 협력을 병행하며 정치·군사적으로도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힘썼다.


그 결과 역사, 학문, 예술, 종교, 스포츠 등 수많은 분야에서 남북 협력이 이루어졌고,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을 걷고 있는 최근까지 만월대 공동 발굴 등의 협력을 지속할 수 있었다. 북한은 같은 노동력을 투입했을 때 남북경협보다 북중경협에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지만 개성공단을 더 전향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햇볕정책이 자리잡기 시작한 2003년 이후 대남도발은 없었으며, 공교롭게도 햇볕정책이 멈춘 2008년 이후 북한은 대남도발을 자행하기 시작했다(이 지점에서 핵 문제는 분명히 북한의 책임이 크지만, 단순히 남북 간의 문제가 아니라 항상 동북아시아 및 세계 전체의 문제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논의가 바탕이 됐을 때 개성공단이 남북 안정과 평화에 기여한다는 명제는 비로소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햇볕정책이 신자유주의적 정책이고, 개성공단이 그 결과물이라는 이유로 비판하고자 함은 아니다. 신자유주의가 여러 문제점을 야기하는 것은 사실이며 또한 그것이 제도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앞서 살펴본 대로 신자유주의를 통해 최소한의 안정적 남북관계를 일구어낼 가능성은 있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식의 사고가 불만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우리나라의 왜곡된 정치지형에 의해 개성공단이 이상한 오해의 온상이 된 현실이다.


오늘날 북한문제와 관련해 중국역할론과 중국책임론이 나오는 이유는 중국의 대북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북한의 대외교역 중 대중교역이 90%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자기 스스로는 아무런 전략적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중국이 북한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이에 반해, 지금은 중국이 전유하고 있는 대북영향력을 대한민국이 스스로 갖고자 기획된 것이 햇볕정책이었다. 또한 그 영향력을 최대한 평화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것이기도 했다. 남북경협이 늘어났다면 우리가 지금과는 달리 주도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남북이 함께 일구어낸 성과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현 정부도 강조하는 신뢰와 평화라는 원칙에도 위배되지 않는다. 개성공단은 결코 헛된 공상이 아니다.



4차 핵실험을 통해 보는 북한의 속사정


북한에도 진보적인 사람들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있다. 다만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북한이 왕조와 다를 바 없는 억압적 국가인 만큼 진보-보수의 스펙트럼이 협소하고, 또한 폐쇄적이기 때문에 잘 포착되지 않을 뿐이다. 북한의 진보적 인사들은 1945년 북한 정권이 수립된 이후부터, 이번의 4차 핵실험이 있기까지 나름의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그들의 존재를 염두에 둘 때, 지난 6일 이뤄진 4차 핵실험은, 북한의 핵기술이 수소폭탄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느냐 하는 문제보다 더 심각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사실 진보라는 단어를 콕 집어서 정의내릴 수는 없으며, 때문에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에게는 온건파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보를 ‘비교적 개혁적 성향’이라고 피상적으로나마 정의한다면, 북한의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점은 수령의 철학과 그것이 구체화된 주체사상이다. 말하자면, 주체사상에 가까운 것이 북한의 보수다(이러한 진단은 주체사상이나 북한 정치의 다층적 속성으로 인해 북한 정치지형을 정확히 짚어낸다고 할 수는 없다). 북한의 역사는 수령의 생각에 어긋나는 사람들, 즉 진보적인 사람들에 대한 숙청으로 가득하며, 그 결과 오늘날의 북한은 개혁을 극도로 꺼리는 국가가 되었다. 북한의 온건파는 다른 어느 나라의 진보세력보다 더욱 위험한 노선을 걷고 있는 것이다. 


수령과 주체의 의식에 철저히 복종하긴 하는 가운데, 그 안에서 조금씩의 변화를 바라보는 진보적인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해왔다.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은 운신의 폭이 좁지만, 그들은 한 가지의 방법을 통해 북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바로 수령의 변화를 돕는 일이다. 수령의 철학은 주체사상으로 구체화되었고, 조선로동당과 북한이라는 국가는 이를 철저히 옹호한다. 때문에 수령조차도 주체사상을 함부로 손바닥 뒤집듯 바꾸지는 못한다(97년 망명한 황장엽은 이를 두고, 10살짜리 아이가 수령이 돼도 북한의 체제는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른바 '수령을 따라 위대한 혁명의 위업을 달성한다'는 북한의 핵심 목표에 어긋나지 않는 한 그 방법론은 다양할 수 있었고, 바로 이 지점에서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은 영향력을 펼칠 수 있었다. 


▲영화 <암살>에서 조승우의 연기로 유명해진 독립투사 김원봉. 그는 김일성의 남침 계획을 반대했었으며, 1956년 김일성을 비판한 세력이 숙청되는 과정에 1958년에 실각되었다. 그 후의 종적은 알 수 없다.


이면(裏面)의 목소리


북한에서 진보-보수의 갈등이란, 곧 미제와 그 앞잡이 남조선에 대한 철저한 응징을 사이에 둔 온건파와 강경파 간의 갈등이고, 이는 때때로 경제파와 안보파의 갈등이기도 하며, 당세력과 군세력의 갈등이기도 하다(물론 북한 내부에 어떤 '파'는 존재할 수 없고, 이러한 구분은 대체로 합치될 뿐이다). 군부 강경파는 '조선반도에서의 공산주의 승리'를 위해 철저한 보수성을 표방할 수 있는 명분을 쥐고 있고, 그 틀 속에서라도 경제나 발전을 말하고 싶은 진보적인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명분이 없다. 이러한 구도를 뒤바꿀 수 있는 사람은 수령뿐이다. 수령이 경제나 발전에 관심을 기울이는 순간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은 자기의 능력이 닿는 한에서 인민 생활을 최대한 향상시키고자 했으며, 그 주요한 방법은 남한과의 경제협력일 수밖에 없었다. 최근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개성공단이다.


오늘날 개성공단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여기저기서 지탄을 받고 있지만, 개성공단이 개설되는 과정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개성은 평양과 서울을 잇는 주요도시로서, 북한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 중 하나다. 개성공단이 착공되기 이전 개성 지역에는 군단 규모의 북한군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김정일은 개성공단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개성공단 부지 근방에 있던 6사단, 64사단, 62포병여단을 10km 이상 후퇴시켰다. 남한으로 치자면, 파주 이북의 모든 부대를 고양·의정부 근처로 후퇴시키는 일과 맞먹는 일이다. 사실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남조선의 함정에 걸려드는 꼴"이라는 북한군 내의 강한 반발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 상당한 반대가 있었으리라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김정일의 개성공단에 반대한 강경파 다수가 당·국가의 요직에서 해임되는 사이,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은 경제·외교 등 다방면에서 능력을 펼칠 수 있었다. 자본주의적 시스템도 눈여겨봤던 박봉주, 개성공단을 중시했던 장성택, 8·25 합의를 이끌어낸 김양건 등이 무분별한 보수성과 거리를 둔 인물들이다.


▲지난 6일 평양 기차역 앞에서 핵실험 성공 뉴스에 환호하는(시늉을 하고 있는지 모를) 평양 시민들 ⓒ로이터


4차 핵실험이 당혹스러운 이유


지난 6일 북한이 자행한 핵실험은 그야말로 깜짝 뉴스였다. 핵실험이 이후 며칠 간 국제사회는 커다란 혼란에 빠졌다. 각국 언론을 장식한 '기습'이라는 용어가 이를 잘 표현한다. 북한은 핵실험 계획을 타국에 통보하기는커녕 실험을 카드로 하는 어떠한 외교적 처세도 하지 않았고, 관련된 언급이나 예고도 거의 없었으며, 심지어 신년사조차 핵 언급을 피했다. 정말로 수소폭탄실험이었나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의문부터 출발해, 왜 하필 지금 실험을 했고, 목적은 무엇이냐 하는 수많은 의문에 대해 여러 가설만 떠돌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가 정말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수소폭탄이었는지 김정은 생일(1월8일) 축하용이었는지 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 핵실험이 왜 기존 핵실험과 달리 당혹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느냐는 점이다. 국제사회는 1차~3차 핵실험에 담긴 북한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핵실험은 대개 [외교관계 악화→미사일실험→핵실험]라는 공식(?)에 따라 진행되었고, 북한은 이를 통해 대내적 결집과 대외적 경색국면 돌파를 꾀했다. 작년 10월, 북한 조선노동당 창건일 당시 "미사일을 쏘되 핵실험은 않을 것"이라는 식의 분석이 쏟아졌던 것도 공식이 나름대로 신빙성이 있었기 때문이다(당시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았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실험을 통한 국제외교전이 이와 같은 흐름에 따르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사전대응을 준비하는 한편 실험 후 대북제재와 같은 강경수로 즉각적인 대응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핵실험은 과거의 흐름과 전혀 합치되지 않으며, 무엇을 의도로 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중국에 대한 불만과 대내외적 독립의지를 표출했다는 식의 원론적 분석만이 가능한 상황이다. 다시 말해, 북한은 기존의 틀을 깨버린 것이다. 기존의 틀을 깨면서까지 북한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시간이 더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고, 어쩌면 영원히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첫째로 최고승인자가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바뀌었다는 점, 그리고 그의 곁에 이른바 온건한 사람들, 즉 북한의 외교에 합리성을 보태주던 진보적인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2013년 12월 8일(처형 4일 전), 조선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공개적으로 체포되는 장성택(左)과 2015년 12월 29일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된 김양건(右)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


언제나 그래왔듯 북한을 향한 모든 분석은 외부자의 시선(outsider's view)에서 머물러 있다. 외부자의 시선을 통해 북한은 뭉뚱그려진 단일한 집단 내지는 몸뚱아리처럼 포착되고, 관심은 '그 몸뚱아리를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로 수렴된다. 핵실험에 대한 분석이 한결같이 '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유다. 외부자의 '왜'라는 질문은 '목적이 무엇인가'에만 집중하며, '원리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은 배제된다. 분석이 북한 사회의 외피를 뚫고 내부로 들어가지는 못하는 것이다. 이는 여태껏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이라는 논의가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일본의 자민당과 민주당, 중국의 태자당과 공청단 등이 우리에게 익숙한 것처럼, 한 나라의 정치적 이념지평의 다양성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북한의 정치적 이념지평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협소하다. 그러나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은 수령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의 최대한의 다양성을 확보하고자 했고, 북핵위기와 같은 결정적 사안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으나 남북관계가 유지되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남북관계가 발전적일 때 그들은 북한에서 영향력을 펼칠 수 있었고, 이에 힘입어 수령은 개혁적 변화의 추동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4차 핵실험이 벌어진 지금,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디 있지?'라는 의문이 먼저 떠오른다. 2013년 처형된 장성택과, 2000년대 들어 공식적으로 세 번째로 교통사고를 당한 김양건이 언뜻 생각나는 이유다(북한에서의 교통사고는 항상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이 없다는 것은 김정은이 원하든 원치 않든 대남 강경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북한이 우리의 주적이든 협력대상이든, 핵문제가 남북 사이의 모든 문제를 집어삼켜버리는 블랙홀이 된다면 분단의 괴물은 한반도를 끊임없이 지배할 것이고, 통일은 전쟁으로밖에 이뤄질 수 없는 '죽음의 성물'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 안에는 평화로운 한반도와 평화로운 통일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북한에도 비록 우리와 생각은 다를지언정, 남북 대결구도를 타파하고 평화를 논의할 수 있는 진보적인 사람들이 있어왔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어야 할 사실이다.




지난 18일, UN총회는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북한인권결의안은 2005년부터 UN총회에서 매년 채택되어왔으며, 2014년부터는 북한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도록 권고하는 강력한 조항이 추가되었다. 북한은 조사위의 활동이 인권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두고 있다며 북한인권결의안에 항상 반대해왔다.


북한 내 인권 침해 실태는 세계 어느 지역과 비교해도 덜 심각하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참혹한 수준이다. 인권 문제는 한 개인이 삶을 살아가는 문제이므로, 평화나 통일과 같은 거대한 담론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에 북한 인권 결의안을 자체적으로 결의하는 나라는 물론, 북한 인권법을 국내법으로 제정하며 북한 인권 문제의 개선을 외치는 나라도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2015년 6월 23일 유엔 북한인권사무소 서울사무소가 설치되어있으며, 국회에도 북한인권법이 계류되어 있고 이를 하루라도 빨리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북한 인권 문제의 모든 원인은 북한의 억압적인 정권에 있으며, 때문에 북한 정권을 강하게 압박하고, 그들의 존립 기반을 흔들어 위태롭게 할 때 인권 문제도 개선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노력으로 인하여 북한 인권 문제가 어떠한 형식과 방향으로든 개선될 가망은 없다. 정권에 대한 압박이 인권 개선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대해서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12월 10일, 처음으로 북한 인권 문제를 공식 안건으로 채택한 UN 안전보장이사회 ⓒUN


북한 인권 문제 개괄


북한 내 인권 침해는 권력층의 범위가 산정할 수 없이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권력층에 의해 일반 주민에게’ 이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의 권력층을 교체하거나 제거한다고 해서 북한 인권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없다. 북한의 권력층도 인권 침해에 대하여 분명한 책임이 있지만, 동시에 권력층을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체제적 특성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북한 인권 문제는 본질적으로 북한 체제에서 비롯된 구조적인 문제다. 인권 침해는 모든 사회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발생하는데, 북한 인권 문제가 심각한 근본적인 이유는 인권 문제를 유발하는 주체적 행위자가 북한을 지탱하는 체제 자체라는 점이다. 즉, 북한 권력층은 인권 문제에 있어서는 주체적 행위자인 동시에 체제에 관해서는 객체적 행위자다. 북한 체제 하에서는 북한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억압받는 피지배자인 것이다. 권력층이 객체적 행위자로서의 성질을 가지는 한 권력층의 변화가 인권 문제로 변화할 여지는 없다.


따라서 북한 인권 문제는 북한 내부의 정치적인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게 된다. 북한 체제는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주체’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부분을 뒤섞어 관리하며, 때문에 북한 권력층 또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다방면에 걸친 인권 문제(정치범 수용소, 식량권, 표현의 자유, 이주권, 성분 차별 등)를 생존·충성의 문제와 견고하게 결합시킨다. 북한 내적으로는 인권 문제가 이데올로기의 부분집합이다. 다분히 이데올로기적인 북한 인권 문제는 인권 문제의 주체와 객체, 즉 권력층과 일반 주민을 통해서는 쉽사리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며, 때문에 북한 권력층에게 인권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요구다.


▲ 주체사상이 지배하는 북한. 김일성의 혁명사상은 곧 주체사상을 의미하며, 그 누구도 이에 반기를 들 수 없다.


더구나 이런 접근은 판단의 기준조차 명확하지 않아 논리적 자가당착에 빠질 위험도 있다. 예를 들어, 김정은 시대 북한의 경제적 상황은 과거에 비해 호전되었으며, 이제 굶어죽는 사람은 없다(실제로 IMF나 한국은행조차도 김정은 시대의 북한이 매년 플러스 성장을 하고 있고 보고한다). 그렇다고 북한이 인권을 위해 힘쓰는 국가라고 할 수 있는가? 혹은, UN의 북한 인권조사위원회가 북한 내부에 들어가 북한 인민을 인터뷰할 때, 체제에 완벽히 순응한 인민이 북한 내부에는 아무런 인권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면 실제로 북한 인권 문제는 없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의 대답이 ‘아니오’라는 것은, 질문이 문제의 본질, 즉 인권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포함하지 않고 현상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인권 문제 자체에 접근할 때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현상이 아니라 본질을 바라봐야 한다. 본질은 앞서 언급했듯 북한의 체제다. 북한이 대대적인 경제제재 속에서 경제 성장을 이루어나가며 효과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효과적인 제재나 압박은 없다. 가장 반인권적인 군사적 갈등, 즉 국지적 전투나 전면적인 전쟁을 기획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북한 정권이 잘못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북한에서 벌어지는 반인륜적 범죄는 명백하다. 그러나 북한 인권 문제가 상당히 고질적이며 복잡한 문제인 만큼, 접근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하지만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목소리는 북한 정권 규탄에서 북한 정권 해체 기도로밖에는 다뤄지지 않고 있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접근에서 체제적 특성은 간과되고 있는 것, 즉 현상에만 집중한 피상적인 접근인 것이다. 때문에 아직까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성숙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 북한 3대 세습을 규탄하는 시민단체 ⓒ오마이뉴스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길


인권의 보장은 생명권(정치·시민·종교적 권리)과 생존권(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동시적 보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결코 어느 것이 다른 것에 우선하지 않는다. 북한 인권 문제의 책임을 북한 정권에 묻는 것은 곧 생명권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경제적 체제가 경제적 상황을 개선·퇴보시킨다는 명제와, 국가 내 모든 주민 간 일정 정도의 경제적 평등성이 체제적 변화의 필요조건이라는 명제가 대립하고 있는 모습에서도, 어느 한 편이 절대적으로 중요하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이 인권 개선을 위해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주민의 생명권을 개선해줘야 한다는 논리가 있다면, 마찬가지로 생존권을 개선해줘야 한다는 논리 또한 설 수 있다. 이 두 명제를 바탕으로 정책을 세우는 일은 정책적 명분과 현실성을 고루 고려해서 단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시민이 어떤 방식으로든 북한 인권을 위한 일을 하는 것과, 국가 정부가 나서서 하는 것은 다르다. 북한 인권의 개선을 위해 소리 높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므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정부는 한 마디 말을 할 때도 그 파급력을 염두해야 하며, 어떤 언행을 할 경우 그 언행이 앞뒤가 다르거나 문제의 본질을 흐리지 않아야 한다. 북한 인권 문제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복잡한 가운데, 정부가 북한 인권의 개선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정말로 북한 인권이 개선될 수 있도록 움직여야 한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 북한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나라는 같은 민족이라는 특수성을 갖는 남한이다. 또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남한이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은 북한에 대한 언행의 영향력을 높이는 일, 즉 남북 관계를 긴밀히 엮어가는 일이다. 앞서 언급했듯 북한 인권 문제는 북한 내부에서 정치 체제의 하위적 위치에 있는 부분적 요소로, 남북 공동의 노력으로 북한 인권 문제를 개선해나가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남북 간 정치적 관계 개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늘 명시해야 할 점은 북한이 정치와 인권을 묶어 다룬다고 해서 남한도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남한 또한 인권과 정치를 묶어 다루면-인도적 지원은 지속하겠다는 의지가 있다고 하더라도-북한 인권 개선에 악영향만 끼친다는 사실은, 정치적 관계 악화가 대북 인도적 지원마저 대폭 축소시킨 5·24조치를 통해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전략적 신뢰


남북의 정치적 관계 개선이 인권 문제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명제의 가장 큰 근거는, 정치적 관계 개선으로 말미암아 전략적 신뢰를 구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서 신뢰는 국제 외교에서 반박이 불가능할 정도로 가장 기본적인 신뢰구축(Confidence Building)이라는 정책에서 가져온 것으로, 남북 간의 평면적·일상적 신뢰가 아니라 전략적·관계적 신뢰를 의미한다(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빛 좋은 개살구이자 레토릭 정책의 대표적인 예가 되었다).


전략적·관계적 신뢰를 구축하는 일은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무너뜨릴 수 없을 만큼 상호 관계를 긴밀히 연관·결합하는 것으로, 그 대표적 모델이 개성공단이다. 남북이 공동으로 투자·관리하는 개성공단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전쟁 위험을 크게 줄이는 안전장치였으며, 단연 남북 간 정치적 우호 관계를 바탕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남한이 대북 지원을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지원의 규모가 크게 성장할 때, 인권 개선을 위해 남한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 또한 넓어지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바야흐로 인간안보가 중시되는 사회이다. 인간안보 곧 정치·경제·군사적 안정은 물론 민주주의 사회, 이주권, 환경권 등을 포괄적으로 포함하며 안보의 개념을 인간에게 접목시킨 만큼, 인권 개념과 많은 부분에서 공명한다. 기존에 인간의 권리라는 틀에서 다루어지던 분야가 이제 ‘안보’라는 말로 새로이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인간의 권리가 더 이상 추상적이거나 아름답게만 다룰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라는 것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인권의 보장이 어느 정도까지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상한선도 없는 상황에서,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맹목적으로 변화와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공허하다. 북한 인권 문제의 진짜 문제인 ‘체제’라는 괴물과, 그 괴물을  현실적인 방법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볼 때다.



부조화의 조화


단어에는 의미뿐만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섞여있다. “고독”에는 짙은 외로움의 감정이, “여행”에는 낭만에 대한 그리움이, “복면”에는 익명성이라는 담론이 내포되어 있다. 특정한 단어가 포괄하는 다른 ‘무언가’는 시공간에 따라 달라진다. 때문에 단어를 이야기할 때는 그것이 내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무엇과 연결되는지 면밀히 고민해야한다. 2015년 겨울, “복면”은 우리에게 무엇으로 다가오고 있을까. 테러리스트의 폭력성이 깃들고 있는 복면이라는 단어를, 그저 그렇게 받아들이기만 해도 되는 걸까?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무언가가 서로 연결되는 현상은 흔하다. 예를 들면 ‘푸른 종소리’나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와 같은 공감각적 표현은 서로 다른 차원의 것을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새로운 차원의 심상을 만든다.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만 봐도 가슴이 뛰거나, 헤어진 연인과 함께 듣던 노래를 들으면 슬퍼지는 것도 같은 원리다. 이 ‘부조화의 조화’ 현상은 보기보다 강력해서, 심리치료에까지도 이용된다.


때문에 특정 단어가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킬 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단어와 관계된 것들을 꺼린다. 그러다가는 그 단어 자체는 물론 관련된 것 모두를 거부하게 된다. 소설 <해리포터>의 ‘볼드모트’가 대표적인 예다. 마법사들에게 볼드모트는 곧 죽음이었다. 마법사들은 볼드모트라는 이름을 의도적으로 입 밖에 꺼내지 않음으로써 그를 두려움 자체로 만들었고, 볼드모트를 두려움으로 대상화함으로써 그에 대한 공포를 끊임없이 재생산했다. 볼드모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더욱 막강한 공포권력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



▲ 해리포터와 볼드모트. ⓒ네이버영화


단어, 프레임


같은 것도 그것을 나타내는 서로다른 단어에 의해 여러 방식으로 규정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단어는 가장 효과적인 ‘프레임’이다. 일례로, 교정에서 부조리를 폭로하고, 서투르게나마 올바름을 말하는 학생들을 흔히 ‘운동권’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운동권이라고 불리는 순간, 학생들은 운동권이라는 단어가 지닌 느낌(강경함, 진보지향적, 조직적, 융통성 없음, 반사회적 등)에 매몰된다. 운동권이라는 단어가 몇몇 학생에게는 잘 들어맞을지도 모르나, 모든 운동권 학생에게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다. 그 매몰은 실제 운동권 학생들이 지닌 신념이나 태도와는 별 관련이 없다. ‘운동권’은 외재적인 프레임이다.


대학교에 막 입학한 새내기 시절, 90년대에 대학에 다닌 선배와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다. 선배는 학생회 임원으로 활동했었는데, 그 때를 이렇게 추억했다. “극도로 진보적이었고, 극도로 보수적이었어.” 전자의 진보는 선배가 속했던 정치적 진영의 특성을 나타내지만, 후자의 보수는 진영 속에서 선배의 태도였다. 대립적인 두 단어가 동시에 사용될 수 있는 것은, 진보와 보수라는 단어는 단순히 정치 진영을 나타내는 것 이상으로 광대한 의미 지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맥락에 따라 다른 프레임이 되는 것이다.


한국 정치 지형의 진보와 보수에 대해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진보와 보수의 사전적 의미와 그것이 지칭하는 정치 진영 현실 간의 심각한 부조화를 느꼈을 것이다. 보수와 진보(혹은 우파와 좌파)는 시대와 지역과 집단에 따라 너무나도 다양하게 해석된다. 보수와 진보라는 담론이 한국 사회의 특정 진영을 의미할 때, 보수와 진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와 그것이 내포하는 다른 ‘무언가’들도 그 진영에 귀속된다. 누가 보수고, 누가 진보며, 누가 보수적이고, 누가 진보적인가 하는 질문의 답은 복잡하게 뒤엉켜버린다.



▲ 종단문제 해결을 위해 50일 간 단식농성을 한 동국대학교 김건중 부총학생회장 ⓒ오마이뉴스


보수의 프레임


동국대의 경우, 2014년 12월부터 조계종의 학교 행정 개입, 총장의 논문 표절, 이사장의 탱화 절도사건 등이 문제시되며 학생과 학교당국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학생들의 반발은 총학생회 부총학생회장의 50여일에 걸친 단식농성까지 이어졌으며, 그 결과 12월 3일 동국대 이사회는 모든 이사의 사퇴를 결의했다. 여기에서 주목할 지점은 학교의 문제를 지적하며 저항하는 학생들의 태도다. 그들은 소위 운동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그저 진보적인가? 아니다. 저항하는 동국대 학생들은 누구보다 보수적이다.


저항이란 근원적인 가치를 지키기 위한, 다른 무엇보다 보수적인 행동이다. ‘저항권’이라는 개념은 근대 민주주의의 이론적 기틀을 마련한 존 로크에 의해 공식화되었다(물론 로크의 사회계약론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시민들에게 권한을 위임받아 구성된 정부가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시민의 자연권을 침해할 경우,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이에 저항하고 정부의 변화나 교체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민중총궐기를 두고 폭력이냐 아니냐의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지양되어야 하며, 누구나 폭력을 비난할 수 있다. 하지만 폭력에 대한 비난이 사람들이 말하고자 했던 것에 대한 비난과 연결될 순 없다.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랐다는 이유로 배척되지 않듯, 폭력 자체와 이를 자아낸 시대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지 않고 단지 폭력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현상을 비난할 수 없는 것이다.



▲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나온, 복면의 마스코트가 된 ‘가이포크스’ 가면. ⓒ네이버영화


보수의 제국, 검열관의 천국


서울대학교의 최인철 교수는 그의 저서 <프레임>에서, 프레임은 “우리가 보는 세상을 제한하는 검열관”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발언 이후 복면에 덧씌워진 ‘테러리스트’의 이미지는 시위대에게 끔찍한 폭력성을 부여하며, 사람들은 폭력에 대한 거부감을 시위에 대한 거부감으로 연결한다. 복면을 폭력과 시위를 통제하는 내면의 검열관으로 만든 것이다.


민중총궐기는 경제민주화와 공약 폐기를 넘어 국정교과서에 이르기까지 정부에 대해 쌓여온 불만의 응집이며, “헌법의 가치를 지켜라”고 외치는 시민들은 너무나도 보수적이다. 이를 철저히 외면한 채, IS 운운하고 저항권을 필요악으로 규정하며 “복면을 벗으라”고 외치는 자칭 보수 세력은, 폭력에 대한 비난을 무기삼아 다른 모든 것을 거부한다. 흔히 말하는 ‘물타기’며, 헌법이 지향하는 ‘저항’을 넘어서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가장 진보적인 집단이다.


보수는 신성하다. 보수는 과거의 가장 빛나고 찬란하던 가치와 신념들이 변화하고 재구성되며 만들어낸 시대정신이며, 피땀흘리며 세워놓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집중하고 이를 지키고자 하는 자가 진정한 보수주의자다. 반대로, 시대정신이 필연적으로 내포하는 모순에 집중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새로운 의식과 노력의 집합체를 진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가치를 앞뒤 다퉈가며 왜곡하고 부정하는 사람들은 보수가 아니며, ‘보수’라는 복면을 쓴 친정부적·반국가적 세력이다. 시위대의 복면을 논하는 사람들은, 그 전에 ‘보수’라는 가짜 복면부터 벗어야 할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주체'의 가벼움



▲  새누리당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홍보하기 위해 10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대로변에 걸었다 떼어낸 현수막을, 14일 저녁 다시 내걸었다. ⓒ 오마이뉴스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학생들이 배우고 있습니다." 


'주체사상을 배우는 학생'은 필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필자는 김일성 주체사상만을 배우지는 않았다. 김정일 주체사상, 김정은 주체사상까지 다 배웠다. 주체사상의 내용은 물론 주체사상의 역사까지 세세히 공부했다. 지금 필자의 말을 듣고 독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필자가 주체사상을 공부한 이유는 간단했다. 무엇보다 주체사상을 알아야 북한을 알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필자는 동국대학교 북한학과를 다닌다. 


필자가 주체사상을 공부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대번에 '뜨악'하는 표정을 짓거나 "그럼 북한을 옹호해?"하고 묻는다. 직접적으로 "빨갱이야?"하고 비꼬는가 하면, 군필자인 필자에게 "군대 헛 갔다왔네"고 말하기도 했다. 필자가 평소 북한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따금씩은 누구에게나 불편한 정치적 이야기를 꺼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표정과 눈빛을 통해 깨달은 사실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주체사상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주체사상을 공부한다'는 말을 곧 '주체사상을 믿고 따른다', 혹은 '주체사상을 믿고자 하고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였다. 필자가 말하는 공부는 후자의 의미를 전혀 담고 있지 않고, 순수하게 그 의미와 역사를 알아간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부가적인 설명을 덧붙여야만 사람들도 '아~' 한다. '네가 그 정도는 아닐 줄 알았어'하는 안도감과 함께. 물론, '그래도 그건 아냐'라며 극도의 거부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온건한 것, 불온한 것


한국의 공부는 온건한 공부와 불온한 공부의 두 갈래로 나뉜다. 온건한 공부는 불온하지 않은 공부이고, 불온한 공부란 국가비판적 공부다. 불온한 공부의 3대 대명사가 바로 공산주의, 사회주의, 주체사상이다. 누군가 경제학의 케인즈주의를 공부한다고 해서, 아무도 그를 '케인즈주의자'라고 일컫지 않는다. 하지만 불온한 공부의 3대 대명사는 다르다. '저 공산주의 공부해요'라고 말했다간, 근처에 있는 할아버지에게 등짝을 얻어맞기 딱 좋다. 그것이 불온한 공부기 때문이고, 앞서 말했듯 불온한 공부는 불온한 사상을 내면화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주체사상은 결과적으로 '수령절대주의' 사상이다. 주체사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모를지언정, 그것이 수령절대주의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주체사상을 실제로 공부해본 결과, 그것이 수령절대주의라는 사실은 더 명확해졌을 뿐이다. 고등교육과정 정도를 거친 누구라도 주체사상을 공부해 본다면, 그 부정적인 진실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주체사상은 아직까지 금단의 영역이자 악의 성지다.


시민사회와 언론도 이 금단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새누리당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주장하기 위해 '주체사상'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들고나왔을 때, 시민사회와 언론을 중심으로 한 반대파는 크게 두 가지의 비판을 했다. 첫째,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 그럼 역사교육을 받은 한국 청년이 전부 주사파냐? 둘째, 그래, 역사교과서에서 주체사상 가르친다. 북한의 현실을 명확히 꼬집을 수 있도록 잘 가르치고 있다. 새누리당이 주체사상 운운하는 데에 대하여, '우린 너희가 생각하는 종북좌파가 아니야!'라고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와 보수단체 회원들이 10월 30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찬성하며 친북 반국가 교과서 집필진 퇴출을 촉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가장으로서의 국가, 식솔로서의 시민


이런 비판의 방향이 틀린 것은 아니다. 실제로 모든 반대파가 종북좌파가 아니기 때문이고, 또한 합리적인 비판을 하고 있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반대파를 '종북좌파'나 '빨갱이'의 사상프레임 속에 가둬놓으려고 하는 것은 진부하기까지 한 전략이다. 하지만 그들이 끊임없이 '종북프레임' 전략을 구사하는 이유는, 이 전략이 먹혀 들기 때문이다. 단순히 새누리당 집권층을 공고히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반대파 또한 그 프레임 속에서 흔들리기 때문이다. 


미국 미시건 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인 리처드 니스벳은 그의 저서 <생각의 지도>에서 "한국과 북한을 비교하고 서로의 장단점을 논하는 논쟁이 벌어진다면 모두가 한국의 우월성을 인정할 것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논쟁의 전통이 없는 한국인에게는 옳은 주장이 결국 승리하리라는 신념이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한국 정부는 북한에 관한 정보로부터국민을 '보호'하고자 했고, 북한에 관한 어떠한 형태의 정보도 공개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이는 오늘날의 한국과 오늘날의 한국시민들도 마찬가지다. 


'종북' 담론은 반국가적 세력에 대한 국가의 무제한적 탄압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종북 담론은 옳은 사상을 가진 국가가 사상적으로 미성숙한 시민을 보호한다는 식의 가부장적 기제와 닿아 있다. 새누리당은 '주체사상 학습'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주사파의 부활을 암시했다. 주사파의 부활은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비상사태일 뿐만 아니라, 미성숙한 시민들에 대한 사상적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북한이라는 적을 앞에 둔 상태에서, 국가는 또 한 번 아버지로서의 존재를 꿈꾸고, 시민은 '아버지, 저희 그런 거 아니에요!'하고 외치며 기겁하고 있다.



주체사상 배우면 어때서? 내가 너보다 북한 비판 잘할 걸?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라는 말이 아직 대한민국 사상공간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국가는 물론 시민조차도, 시민 개개인이 자신의 합리적 사고를 통해 북한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리라고 믿지 않는다. 지금의 한국사회는, 아직도 "주체사상 배우면 어때서?"라는 질문에 극도로 조심스럽다. 1980년대 민주화 세력의 한 축을 담당했던 이른바 NL계열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핵심적으로는 그건 그 질문에 응당 따라나올 '북한이 말하는 거니까', '북한에 동조하려고?'식의 비논리적인 비판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물어봐야 한다. '일본의 다케시마 주장을 읽으면 거기에 동조하게 되니? 중국의 동북공정을 공부하면 고구려를 빼앗기니? 그건 바보지.' 새누리당의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주체'적 정치논리에 끌려다니지 말고, 합리적이며 전면적으로 되물을 수 있어야 한다. "주체사상 배우면 어때서?"라고, "대한민국 시민이 주체사상을 공부한다고 주체사상에 빠져버릴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고.


주체사상을 공부하다 보면 북한 김씨 일가의 연설이나 담화를 접하게 된다. 1955년 12월 28일 김일성은 "당사상사업에서 교조주의와 수정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데 대하여"라는 연설을 통해, 북한식의 주체적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1992년 1월 3일 김정일은 "사회주의건설의 력사적 교훈과 우리 당의 총로선"이라는 담화에서 배신자들의 반동적 궤변에 의해 사회주의국가들이 몰락하고 있다고 외쳤다. 


지난 10월 10일 김정은은 당창건기념일 연설에서, 인민은 당을 어머니처럼 무한히 신뢰해야 하여 일심단결해야한다고 말했다. 이틀 뒤인 10월 12일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자 "하나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주체사상 배우길 참 잘했다.



(본 글은 2015년 10월 26일 오마이뉴스에 게재되었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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