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3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올해는 코로나 이슈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전투표율이 26.7%를 기록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졌음을 방증하였습니다. 전체 투표율을 봐야 알겠지만, 투표율이 높아진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습니다. 유권자가 정치효능감이 높아짐으로써,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하는 비율이 높아진 것을 의미할 수도 있고, 아니면 이와는 반대로 반대 여론이 결집한 것도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두 이유는 모두 상충되지만, 결과적으론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올해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하여, 많은 정당이 선거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선거법에는 비례대표를 등록한 정당만 광고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미래통합당이나 더불어민주당이 아닌, 미래한국당과 더불어시민당의 명의로 광고가 나왔죠. 그런데 광고가 매우 뻔하고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총선 광고와 비교해보았습니다.

 

 


 

# 복기  :  공수만 바뀌어버린 양당

 

 

 

바꿔야 미래가 있다. (미래한국당, 2020)
절망의 레드오션을 희망의 블루오션으로 (더불어민주당, 2016)

 

 

 심판 프레임은 질리도록 많이 본 프레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2016년 민주당 광고와 비교하였습니다. 이처럼 야당 포지션에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약점을 잡아서 유리한 쪽으로 설득하려 합니다. 당연한 전략이지만 한편으로 뻔한 전략입니다. 전에도 네거티브의 효능에 대해서 설명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네거티브는 일시적이며, 나아가 정치효능감을 저해하는 ‘자충수’입니다. 더욱이 이런 사안에서 자신과 교묘히 분리하여, 이야기한 것도 유권자의 입장에선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일 것입니다.

 

 

 

문재인과 더불어시민당은 같은 말입니다.(민주당, 2020)

 

  더불어시민당의 광고에 있어서는 사실 중요한 것이 빠져 있습니다. 설득이 없습니다. 일말의 고민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미 4년 전 촛불을 다시 사용하였고, 유권자가 빠지고 그 자리에 대통령을 세웠습니다. 물론 촛불의 의의도 중요하고, 대통령의 국정운영 또한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나 시국에 대한 고민은 다 차치하고, 대통령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적었습니다. 이걸 보는 유권자는 뭐라고 생각할까요? 누구는 수긍할 수도 있겠으나, 지지하지 않는 이들에겐 오만한 발상이라고 보일 수 있습니다.

 

 

거대 양당의 광고를 보면서, 실망이 컸습니다. 유권자를 위한 설득이라기보단, 정당과 정당 간의 싸움이라는 점을 노골적으로 보였습니다. 시간은 지났을지언정 아직도 정치광고는 2016년의 상황에서 진보한 면모를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양당 모두 누군가가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말에 더욱 방점이 찍혀있었습니다. 정치를 유권자에게 팔려한다면, 그들의 말에서 카피를 찾고 컨셉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 기보  :  2008

 

 

유권자는 자신의 고민을 알아주는 후보나 정당에 투표합니다. 정당은 그런 고민을 해결해주겠다는 공약으로 설득합니다. 그 설득의 문장은 쉽고 명쾌해야 합니다. 긴가민가한 카피는 상대 진영에게 기회를 뺏기게 됩니다.

 

 

서민에겐 고등어가 경제입니다. (한나라당, 2008)

 

2008년 총선에서 집행한 한나라당(현 미래통합당)광고입니다. 당시 한나라당은 여당이 된 첫 해, 그것도 정권이 출범한 지 2달 만에 실시한 선거였기 때문에 지지도가 높은 상태였습니다. 다소 여유가 있는 상황에서 집행한 광고였지만, 나름 노력한 광고였습니다.

(실제 집행한 정책과는 정말 많은 괴리감이 있었지만) 권위적인 모습이나 친 기득권적인 모습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모습을 피력하기 위해서 노력하였습니다.

 

 

물론 저 광고 전략이 정답은 아닙니다. 이와 관련한 국내 논문이 있는데요. 논문(박병준 1990 : 208~209)에서는 성공적인 이미지 전제와 조건 중의 하나로 후보자와 유권자 사이에 심리적 연대가 이뤄지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대신 그 이미지가 자연스러우면서 일관되어야 하는데, 단기간에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후보자는 4년 만에 나오지만, 유권자는 4년 동안 본 것으로 결정합니다. 그렇게 오래 쌓인 생각과 태도의 집합체가 이미지이고, 이를 토대로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 대국 : 3일 후 그리고 그 후

 

35개 정당이 이번 총선에 나왔지만, 관심을 받는 정당은 그리 많지 않아보입니다. (ⓒ KBS 뉴스)

 

결국 여당은 정권을 도와줄 것을 요청했고, 야당은 정권 심판을 내세웠습니다. 광고만 놓고 본다면, 선거는 심판의 역할만 수행할 뿐, 그 이상의 역할은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소수정당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오히려 주목받는 것은 두 당과 위성정당 뿐입니다.

 

 

유권자를 소비자라고 친다면, 이번 선거광고는 소비자의 니즈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광고입니다. 이치에 맞지도 않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다음 선거 광고에서는 유권자가, 혹은 능력이나 탁월성에 중심을 맞춘 광고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황교안 "보수 유튜버에 입법보조원 자격 주자" 제안 논란 - [출처 : jtbc 19.12.16]

 

 

 

오늘은 광고라고 하기에는 좀 모호하지만, 여론전의 일환이라 할 수 있는 유튜브를 놓고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인프라가 잘 조성된 한국 사회에서 유튜브는 이제 TV를 넘보는 거대한 미디어 매체가 되었고, 정치권에서도 너 나할 것 없이 채널을 만들어서 구독자를 올리는 데에 열을 올리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지난해에 있었던 이슈에 대해서도 유튜브는 집회를 중계해주거나, 이슈를 알리는 데에 앞장섰습니다.  특히 대한 애국당과 같은 우파 진영에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지지를 결집하는 데에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정말, 유튜브는 정치에 그리고 곧 있을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 유튜브, 이목의 싸움.

 

 

 

유튜브의 장점은 빠른 컨텐츠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한 분야만 집중해도 구독자가 생겨난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오히려 한 분야만 집중하기 때문에 구독자들은 신뢰가 생길 수 있는 것도 부수적인 효과입니다. 무엇보다 유튜브는 손쉽게 소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유튜브를 보러 굳이 티비까지 가지 않아도 됩니다. 단순히 침대 위에서도 전문화된 컨텐츠를 빠르게 시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빠르게 자신의 의견을 전파할 수 있다는 장점은 정치에 있어서도 매우 구미가 당기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정당이나 정치인들도 모두 유튜브를 만들게 됩니다. 무엇보다 유튜브는 '이목'을 끌기 쉽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몇 년 전에 잠시 인기를 끌었던 팟캐스트를 기억하시나요? 팟캐스트는 음성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이었다면, 유튜브는 음성과 더불어 영상 중심의 플랫폼입니다. 현장이 보이고, 사람이 직접 나오는 영상이기에 음성보다 더욱 쉽게 수용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더 수용과 확산을 할 수 있도록, 썸네일부터 영상 제목까지 '이목'을 끌기 위한 장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우파 계열 정치권에서는 이렇게 '이목'을 끌기 위한 유튜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적극 지지자들이 직접 발로 뛰면서 현장에 다니고, 정당 차원에서 직접 의사 표현을 하는 데에 앞장서는데요. 특이한 점은 종종 지지자들이 원색적인 비난을 하거나, 유명 정치인들이 말도 안 되는 가짜 뉴스를 볼 수 있습니다. 소위 말해 '어그로'끄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주 비효율적인 전략만은 아닙니다. 

 

 

이를 점화 효과를 통해서 설명하면 재미있게 풀어볼 수 있습니다. 점화 효과(Priming)는 매스미디어가 유권자에게 특정한 방향을 강조해서 보여줌으로써 여론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인데요.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미디어에 노출된 사람 내에 내재된 키워드들을 건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략적 단어 선택만 잘해도, 미디어 시청자들의 의식과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우파 지지 성향의 유튜버가 ‘공산화’, ‘독재’라는독재’ 단어를 쓰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전쟁을 겪은 세대는 항상 내재하고 있는 공포이자, 그들이 판단하는 근거인 스키마(Schema)의 우선순위입니다. 굳이 깊이 사고하지 않아도, 시청자의 오피니언 리더가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자연스레 의사에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이런 전략적인 선택을 바탕으로, 보수 지지자들을 수면 밖으로 노출시키고 결집이 쉬운 이유였습니다. 더욱이 수직적, 하향적 커뮤니케이션이 익숙했던 이들이었기에, '생각할 것'이 아닌 오직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메시지도 잘 먹힐 수 있던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들에게 유튜브는 새롭고 쓸모 있는 선전수단이 돼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유튜브의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합니다. 선전수단으로써는 용이했지언정,부동층의 지지를 끌어오거나, 설득하는 데에는 미진했습니다. 앞선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대중들은 네거티브에 회의적입니다. 더욱이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대중은 모든 말에 민감해집니다. 의도가 뻔한 말은 거르고 본다는 것입니다. 

 

 

 

# 이목이 아니라 주목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정치적 의사결정, 그러니까 투표에 있어서 유권자가 관심 있게 주목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교과서대로 자신의 정치적 견해에 따라서 투표하는 것일까요. 그렇다고 하기엔 우린 역대 선거에서 너무 많은 이변을 봐왔습니다. 사실 유권자가 투표하기까지 많은 이슈와 캠페인을 마주하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정치적 소신에만 의존한다고 주장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유권자가 주목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투표 행위 모델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요. 정치 커뮤니케이션에서 보는 유권자의 투표 행위 모델은 한 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사회학적 모델과 투표 양분자 모델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2002년 16대 대통령선거 지역별 우세현황.

 

 

'사회학적 모델'은 1948년에 발표된 연식이 좀 있는 이론입니다. 골자는 유권자는 자신이 소속된 사회나 계층에 의해서 투표 결정이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정당 소속감은 의사결정에 있어서 근거로 작용하게 되는데요. 실제로 우리 선거 구도에서 고착된 동서로 지지 정당이 나뉜 것으로 보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소위 '텃밭 지역'이라고 하여 이 부분에 대해서는 큰 지출이나 전략 없이도 어느 정도 표를 예상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모델로 설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역마다 수많은 사연이 얽혀있겠으나, 결국에는 내가 속한 지역이, 내가 속한 계층이 지지하는 성향에 영향을 주는 것이죠. 

 

 

그러나 시대가 지나면서 정당에 맹목적인 충성을 하는 유권자(있기는 하지만)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지역이니까 이 정당하는 심리도 이제는 점차 옛말이 되어가고 있는데요. 이를 반영한투표 모델이 '투표 양분자 모델'입니다. 투표 양분자 모델은 정당 소속감이 아닌 후보자에 관심을 두는 투표행위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당이 아니라 후보자의 개성이나 정책을 두고 유동적으로 결정하는 투표 모델인 것이죠.

 

 

 

 

2016년 20대 총선 부산지역 선거결과 [출처 : 이데일리]

 

 

이런 선거 당선사례는 실제로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2014년 상반기 재보궐 선거에서, 순천-곡성에서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된 사례를 들 수 있겠습니다. 또한 2016년 부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5명의 당선자를 배출한 것도 사례를 들 수 있는데요. 이를 통해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이라는 말도 점차 균열이 가고 있음을 방증하게 됩니다.

 

 

 


 

 

미생이라는 드라마 덕분에 '꼼수는 정수로 받습니다.'는 말은 이미 익숙하실 것입니다.

판이 몰릴 때, 국면을 전환시키기 위해서 두는 위험한 수가 꼼수입니다.

정치 유튜브에 관한 자료를 살피면서 꼼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모두 명분은 분명하지만 결국 많은 유튜브가 가리키는 곳은

자신들이 할 수 없는 심판, '선거'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여러분 앞에 꼼수가 계속 놓였을 때, 정수로 받아칠지 기다릴지는 온전히 여러분의 몫입니다.

 

 

 

 

 

 광고홍보를 배우면 여러 분야를 마주합니다. 마케팅, 행동심리, 수사학 등을 넓고 얇게(?) 만나게 됩니다. 그중에는 정치 커뮤니케이션도 포함됩니다. 쉽게 얘기해서 선거 광고랑 정치 이미지 같은 것들 말이죠. 이번 글부터 한동안 정치 광고가 어떻게 대중에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볼까 합니다. 첫 글로 ‘네거티브’로 소재를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최근에 많이 쓰이는 기법이기도 하면서, 여러분들도 많이 아실 것 같아서 꼽아보았습니다.

 

# 1964년

 

'못살겠다. 갈아보자' - 간결한 네거티브와 메시지가 응축되어있습니다.[사진 : 제3대 대선 민주당 포스터]

 

 

직역하면 "부정적"이라는 의미죠. 어떤 건지는 다들 잘 아실 겁니다. 상대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거나 비꼬아서 말하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거 맞습니다. 지금도 토론이나 유세에서 종종 상대 후보를 비난하는 것이 네거티브지만, 그런 기회가 없던 시절은 위의 사진과 같이 오직 선거 포스터와 문구를 통해서 네거티브를 진행하였습니다.

 

역대급 네거티브 사례는 미국 대선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1964년 미국은 대선을 앞둔 상태였습니다. 전해에 있었던 쿠바 미사일 위기와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로 어수선한 시국이었습니다. 당시 공화당의 배리 골드워터 후보는 강경한 정책을 내세웠고, 핵무기에 대한 언급이 잦던 시기였습니다. 민주당은 이런 시의성을 활용하여 대선 광고를 만들고 9월 7일 딱 한 차례 방송으로 송출합니다.



 

Vote for president Johnson on November 3. The stakes are too high for you to stay home.

11월 3일, 존슨 대통령에게 투표하십시오. 집에 있기에는 이 위험은 너무나 큽니다. 

 (1964, Lyndon B. Johnson presidential campaign)

 

 

 

광고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들의 잠재된 공포를 내면 밖으로 끄집어서 보여준 것입니다. 민주당은 국민이 무엇을 겁먹고 있는지 알고 있었고, 공화당이 가진 이미지를 단숨에 부정적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도 결과는 민주당은 61.1% 압승을 얻을 수 있었고, 후보였던 린든 존슨 또한 대통령직을 이어갈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네거티브가 선거의 판도를 바꾼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 1988년

 

네거티브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입니다. 선거 판도를 확실히 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선거 이후에도 정치인이 가진 이미지도 영향을 줍니다. 제가 가진 전공서에서 정의한 네거티브의 효과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  부정적 이미지는 대중이 생각하던 기존의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데에 큰 영향을 준다.

*  처음 유권자에게 각인된 부정적 이미지는 긍정적 이미지에 비해 쉽게 바뀌지 않는다.

 

1988년 미국에서는 조지 H. W. 부시와 마이클 듀카키스가 대선에서 맞붙었습니다. 민주당의 듀카키스는 매사추세츠 주지사의 성공적인 이력을 바탕으로 당선이 유력한 인물이었는데요. 하지만 부시의 참모였던 리 애트워터가 제시한 네거티브 광고로 역시 판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Revolving door' - 부시는 듀카키스의 죄수주말휴가제도를 교묘하게 이용하였습니다.

 

 

듀카키스가 주지사 시절 시행한 죄수 주말 휴가제도는 의외로 성공을 거둔 정책이었습니다. 치안도 상당히 좋았고, 살인 사건도 전국 최저였습니다. 그러나 이 정책을 공화당에서 교묘히 이용하여 듀카키스를 치안과 행정에 안일한 사람으로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유권자에겐 머나먼 얘기가 아니라 자신의 일상과 직결되는 주제였으니 효과는 더욱 강력했습니다. 이 외에도 안보와 경제에 관한 지속된 네거티브 공세에 결국 듀카키스는 낙선하고 맙니다.

 

# 2002년

 

우리나라에선 2002년 민주당 국민 참여 경선에서도 이를 활용한 일이 있었습니다. 경선에서 대세론의 적임자를 자처하던 이인제 후보는 선거 초반 우위를 점하고 있었는데요. 그러나 2위였던 노무현 후보가 표차를 좁히며 바짝 추격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인제 후보 측에서는 네거티브로 승부수를 던집니다. 당시 이인제 후보는 노무현 후보를 향해, ‘언론 국유화’ 발언과 장인의 ‘빨치산’ 이력을 토대로 공격하였습니다. 이 이슈는 당시 노무현 후보에게는 치명적인 공격이었습니다. 사실의 여부를 떠나, 한번 씌워진 프레임은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낙인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 (2002, 노무현 후보 연설 중 발췌)

 

 

네거티브 공세 앞에서, 일차적인 대응은 즉각적이고 단호한 반박입니다.  '현재진행형'  의혹이 공격이 들어온다면, 타이밍 또한 중요합니다. 아무리 반박을 하더라도 제 때에, 확실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무마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많은 정치인들이 네거티브 선거전에서 실패한 이유 또한 타이밍과 단호함을 놓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후보는 제기된 공격을 타이밍에 맞게 단호하게 부정하였습니다.

 

 노무현 후보의 발언은 묘수이자 승부수였습니다. 장인의 과거 이력에 대해  ‘감정적’ 호소지만 조목조목 반박하였습니다. 사실 이미 일어난 과거의 사건에 대한 통상적인 대응은 사과를 하거나 이슈를 감추고 후보의 좋은 이력들을 어필하였을 것입니다. 이는 후보가 잘못해서 사과하라는 게 아니라, 이미지 회복 전략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수사학에서 유명한 학자 케네스 버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의론]이라는 책을 썼는데, 재밌는 부분이 있습니다. 특정인이 어떤 불미스러운 사건이나 불쾌한 감정이 발생하여 대중의 기대에 어긋나는 상황을 죄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죄를 사하는 것, 다시 말해 인물이 명성을 회복하는 일은 사건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는 것을 이야기하였습니다. 희생양을 두고, 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라는 것입니다.

 

여러모로 저 연설은 편한 선택을 버리고, 어렵지만 가장 확실한 선택이었습니다. 위험 부담이 따르고, 단어 하나만 어긋나도 자칫 대중들에게 명분 없는 선동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위험부담이 있음에도 묘수를 던졌다는 것은 놀라운 선택이었습니다. 후보의 인간적인 부분이 잘 전달이 되었고, 결국은 성공적인 설득이 되었습니다.

 

# 현재

 

사상 유례가 없는 셀프 네거티브 (네거티브 당사자가 대안없이 스스로 언급하는 것은 금기이자 자충수입니다)

 

네거티브는 위력적입니다. 그리고 깔끔한 무기입니다. 네거티브는 보통 출처는 기억하지 않고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하고 또 와전되니까 말이죠. 내 손에 피를 안 묻히고도 상대를 위기에 몰아넣는 좋은 전략인 것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툭하면 네거티브를 씁니다. 그러나 사실 대중들은 네거티브를 싫어합니다. 당장은 상대 정치인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힐지는 모르겠지만, 결국은 유권자 모두에게 정치 자체에 대한 회의감과 불신이 생기고 맙니다.

 

문제 있는 사람도 저렇게 후보가 되는데, 정치판은 어떻겠어? 그 나물에 그 밥이지.’ 같은 생각들이 만연하게 됩니다. 단기간적으로는 투표율 저하가 일어날 것이고, 정치인 전반에 대해서 불신과 회의감만 남게 될 것입니다.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를 요즘 읽고 있습니다. 좋은 책입니다. 많은 치유를 얻었고, 개인적으로 공감 가는 부분이 많은 책인 것 같습니다. 우리 안에서 벌어지는 감정을 비롯해서 심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대목이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점점 개인의 완벽주의의 기준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완벽주의 경향성이 세대를 지나오면서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울과 불안으로 가는 포털이 점점 넓이지고 있는 것이지요. 2017년 메타 연구에 따르면, 1989년부터 2016년까지 자신과 타인에 대한 완벽주의적 기준이 꾸준히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 허지원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p109


  타인을 의식하고, 비교하면서 나의 기준이 높아지면서 정작 스스로에 대해서 인색해지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시대와 타인을 항상 의식해야하는 개인은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힐링, 치유와 같은 컨텐츠가 주목받는 것도 이러한 흐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대가 이런 흐름이니 광고도 이에 맞게 반영합니다. 나는 불행한데, 광고는 세상모르고 마냥 행복하게 보인다면 누구도 그 상품에 대해 좋게 봐주지 않겠죠. 이번 글에서는 시대와 개인의 변화에 따라 바뀌었던 광고의 모습들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박카스 - 나에게로 집중


박카스 광고는 초창기를 제외하고는 제품 기능을 굳이 언급하지 않습니다. 업계의 굳건한 1위라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1등을 굳히기 위해 박카스는 다양한 시도를 모색하였고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그날의 피로는 그날에 푼다. 박카스 (1994, 동아제약)


 20년도 더 된 박카스의 광고입니다. 신검장에서 “꼭 가고 싶습니다!” 외치며 청춘을 어필하던 박카스 광고보다도 더 전 시대의 광고입니다. 박카스를 통해서 가족 간의 사랑, 정(情)의 매개로 표현합니다. 관계를 통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를 얻고, 힘을 얻는다는 식의 광고는 과거에 많았습니다. 개인보다 ‘협동’에 대한 가치가 확고했던 시대였기에, 이는 당연한 메커니즘인 줄 알았죠.



나를 아끼자, 박카스 (2018, 동아제약)


 그러다 지극히 개인을 위한 시대가 왔습니다. 그러나 이전 시대보다 개인은 더욱 우울함과 더 근접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광고보다 인물 배경을 더욱 힘든 면을 부각하면서 시작합니다. 같은 가족이지만, 오히려 가족 속에 소외된 개인에 초점을 맞춥니다. 인물은 스펙이라는 단어를 통하여, 기준을 의식하는 오늘날의 현실과 본인의 노고를 잘 알아주지 못하는 불만도 토로하는 것 같습니다. 더 솔직해졌고, 타겟을 개개인으로 더 좁히면서 특정한 타겟들의 공감을 브랜드로 끌고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광고는 타겟 외의 사람들이 이해나 공감이 없다면 외면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모두가 자기의 노고가 크다고 하는 세상이기에, 한편으로 이는 감수해야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왕뚜껑 - 변칙으로 개인을 들여다보다



지키고 싶은 따뜻함 (2018, 팔도)


 사실 이 광고를 보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보통 식품 광고에서는 저렇게 부정적인 감정을 잘 이용하지 않습니다. 광고학에서 ‘정교화가능성 모형’라는 것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개인은 가전품이나 의약품(고관여제품이라 합니다)을 고를 때는 개인과 관련된 정보들을 바탕으로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음료나 라면 같은 본인의 이슈와 거리가 먼 제품(저관여제품)은 주어진 정보보다 감성으로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라면광고들은 거의 즐겁거나 웃긴 상황을 연출하거나 신나는 음악을 깔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런 원칙들을 왕뚜껑 광고에선 철저히 배제하였습니다. 결론이야 호의적인 정서로 유도로 하긴 했지만, 기존까지 해온 왕뚜껑의 광고를 비추어본다면 정말 상반된 이미지입니다. 이런 모험을 감행한 데에는 결국 타겟 소비자의 인사이트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타겟의 일상과 정서를 제시하면서 얻는 공감이 일반적인 라면 광고로 얻는 공감보다 편익이 더 크다고 계산한 것입니다. 


 일리 있는 선택입니다. 시간적, 공간적, 경제적 모든 것이 제한된 10대가 다른 계층에 비해 컵라면 소비 비중이 더 높을 것입니다. 여기에 10대는 많은 부분을 타의에 영향을 받는 것이 많습니다. 이것이 갈등으로 스트레스로 이어지는 경험은 다들 한번 쯤 있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광고에서의 공감은 소비자가 브랜드의 경계를 허무는 예리한 기술입니다. 이들의 일상에 더 깊게 파고들수록 타겟에게 브랜드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집니다. 왕뚜껑의 이런 변칙적인 선택, 즉 10대 개개인의 일상 어두운 면을 비추는 것을 통하여 공감을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직방 - 개인을 더 쪼개어보기



어디에 살든 나답게 살자. 직방 (2019, 직방)


 이제 전문가가 나서서 제품의 효험을 ‘증언’하는 광고는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특성은 저마다 다양한데 전문성만으로는 모두의 공감을 얻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 빈자리에 개인의 일상에 초점을 맞추는 광고가 주류를 이룹니다. 특정 타겟만을 위한 광고로 자리잡는 것은 위험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위의 광고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광고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또 다른 타겟에게도 프로포즈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타겟이 쌓이면, 모든 타겟들은 ‘나만을 위한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수많은 고객들이 있는 시장을 잘게 쪼개어 먹는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불특정 다수가 아닌 특정 소수를 향한 광고가 많아지면서, 앞선 사례들과 같이 개인 일상에서의 소소한 공감을 사는 광고들이 늘고 있습니다. 개인의 우울감이나 슬픔을 광고에서 잠시나마 위로를 얻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냥 상술의 일환으로 치부하기에는 아까운 구석들이 많습니다. 그런 광고들을 오늘 우리의 일상에 그린 짧은 단편 영화들이라고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남원에서 택시를 탄 적이 있다. 역으로 가야 하는데 시내버스로는 시간이 안 맞아 택시를 탔다. 기사님은 살갑게 맞아주시며, 남원역까지는 금방이니까 걱정 말라고 하셨다. 그러고는 미터기에 할증 버튼을 누르는 모습을 보았다.(시내 밖의 다른 면에 들어갈 때에는 할증이 붙는 것이 맞지만, 남원역은 시내 안에 위치해있으므로 일반 주행으로 가야 한다.) 잘해봐야 기본요금 정도의 거리인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내릴 때 즈음, 요금 3840원을 내며 여쭤보았다.     


“기사님, 할증은 왜 누르셨어요?

기사님은 영수증이 발급되서야 겨우 말씀하셨다.

“...지방자치세야.”

나는 살지도 않은 남원에서 지방자치세 840원을 택시기사님한테 납부하였다.     




택시를 잡는 손님과 함께 심야 승차거부를 단속하는 단속원의 모습이 보인다.(사진=중앙일보)



 모든 택시들이 이렇게 주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농간은 이미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택시의 폐단은 이미 뿌리 깊게 박혀있다. 손님을 골라 태우기 위한 승차거부와 목적지까지 굳이 빙빙 돌아가는 주행 행위들은 비일비재하게 자행되어왔다. 승차거부에 대한 ‘원스트라이크 제도’가 있다고는 하지만, 기사들은 교대시간과 같은 사정을 들어 단속에서 벗어나기 쉽다. 이런 연유로 승차거부 신고의 90%는 증거 불충분으로 처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지간하지 않은 이상 기사들은 손님을 가려도 크게 손해 볼 일이 없는 것이었다. 반대로 차가 없는 시민이나 교통약자에게 있어서 택시는 일상에서 ‘어쩔 수 없이’ 타야만 하는 수단이었다. 심야에는 더욱 그러했다. 택시는 상전이 되었고, '어쩔수 없이 타야하는' 시민들은 콘크리트층처럼 견고한 수요층이 되었다.     


 여기에 택시 요금(서울시 기준)은 내년부로 인상이 확정되었다. 2013년에 600원이 오르고 5년 만에 다시 800원이 오른 것이다. 두 요금 인상 과정 모두 시민의 여론 수렴 과정은 없었다. 또다시 시민들은 근거 없는 인상을 받아들여야 하게 되었다. 과거 2013년 박원순 서울 시장은 인상안에 앞서 "시민 서비스 개선과 운수종사자 처우개선이 동시에 이뤄지는 첫 택시요금 인상이 되길 기대한다 “라고 말헀지만, 5년간 시민들은 인상에 따른 서비스의 개선된 모습을 전혀 인지할 수 없었다. 나아진 것 없이 부담만 가중된 셈이다.     


 최근 카카오의 ‘카풀 서비스’ 도입에 택시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어제 전국적으로 파업에 돌입하였고, 여의도에선 대규모 집회와 행진이 있었다. 그러나 시민들의 택시에 대한 반응은 냉담하다. 오히려 택시가 없으니 더 빨리 출근할 수 있었다거나 칼치기가 없어져서 좋았다는 반응들이 다수였다. 파업에 대한 지지하는 의견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사진=연합뉴스)


 카풀도 기업의 영리 행위의 일환이므로 이를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허점과 한계는 분명 있을 것이다. 다만 필자가 분개하는 것은 택시의 개선과 자성의 목소리는 하나도 없이 자신들의 기득권 사수에 여념이 없는 작태에 대해서이다. 카카오 측은 출퇴근시간 한정과 휴일에는 카풀금지로 타협안을 제시했지만, 택시 업계는 무조건 도입 반대를 주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도 택시는 5년간 시민들에게 1,400원의 요금을 인상안을 받아들이며, 우리는 지속적으로 승차거부와 칼치기를 당하고 있다.


 ‘카풀’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다. 택시에 쌓인 불만이 새로운 수요가 맞물려 이어진 것이다. 소비자의 선택임에도 택시업계는 정부의 오판으로 책임을 돌리고 있다. 내년부터 3,800원의 기본요금을 부담해야 하는 시민 입장에선 택시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소비자의 선택을 침해하는 행위와 함께, 공유경제라는 새로운 파이를 강제적으로 축소하게 된다. 이는 기득권의 일방적인 폭리를 고수하고자 하는 주장이다. 이미 시민들은 기존의 택시 행태에 대해 시민들은 적폐로 규정할 만큼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해있다. 그런 적폐에 대한 해소 의지가 없다면, 시민들의 시선은 계속 카풀로 고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요즘 광고는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는)’의 세상입니다. 뜬금없는 상황에서 브랜드가 등장합니다. 혹은 잘 만들어진 감정선을 과감히 깨고 반전을 연출하여 브랜드를 제시합니다. 뜬금없이 등장하는 상황이나 그 상황에서 제시된 브랜드를 보면서 시청자들은 오히려 흥미를 느낍니다. 그러나 그 흥미가 꼭 브랜드의 인지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찰나의 감정으로 브랜드가 묻히게 되는 사례가 많습니다. 광고는 개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뉴트로지나(2018)



 한 화장품 회사의 최근 바이럴 광고입니다. 어떠신가요. 가벼운 몸개그나 말장난으로 웃겨보려는 노력이 다분해 보입니다만, 어딘가 부족해 보입니다. 2분이라는 시간 동안 애써 만든 스토리가 반전으로 인하여 허무해지고 초라해집니다. 

바이럴, 브랜드를 소비자로 하여금 친숙하게 그리고 널리 홍보할 수 있는 것을 목적으로 한 광고입니다. 그래서 바이럴은 대중에게 인지가 쉽도록 만들어집니다. 이 광고에선 이해는 쉬웠지만 브랜드의 개연성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광고가 소비자와의 대화라면, 이는 논리 없이 말하는 실없는 농담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스토리’의 위기


  ‘갑툭튀’와 함께, 지금 광고의 트렌드는 스토리가 현저하게 줄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의 광고 기획에는 유효한 스토리를 만드는 데 집중했습니다. 제품 하나에 스토리나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초코파이는 정(情)을 붙이기 위해, 수많은 스토리를 기획하고 이를 30년 넘게 집행해왔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지나면서 광고는 오히려 입지가 줄었습니다. 미디어 소비는 이전보다 많아졌지만, 소비자에게 광고를 거를 수 있는 ‘선택’도 동시에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길면 잘 안 봅니다. 주어진 짧은 시간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결국 광고의 선택은 스토리는 줄이고, 더욱 자극적으로 변했습니다. 언어도 함축적인 단어보다 직관적인 단어를 씁니다. 생각할 시간은 적어지고, 잔상만 남는 광고가 되었습니다. 아쉬운 일입니다.


G마켓(2017)


 이야기 없는 광고는 소비자와의 대화 통로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위에 올라온 g마켓 광고는 다들 많이 보셨을 겁니다. 엄밀히 말하면 세뇌입니다. 브랜드를 저렇게 주입식으로 암기하면, 아이돌의 후크송처럼 각인은 되겠지만 그 이상으로 뭐가 남을까요. 소비자가 생각이 없을 것이라는 전제가 깔린 안이한 광고, 주입식으로 교육시키려는 불편한 메시지입니다. 제품은 제품 잘난 점만 이야기하다, 소비자는 연관성을 찾지 못하면 그냥 흘려보내게 됩니다.  

그래서 광고는 이야기가 있어야 합니다. 상품 자신의 설명은 내려놓고, 대중의 스토리에 초점을 맞춥니다. 대중이 들을 만한 이야기를 해주면 이내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사람들이 논리적으로 생각할 때에는 이성을 지배하는 좌뇌가 작동하지만 최종 의사 결정을 할 때에는 감성을 지배하는 우뇌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을 매혹시키는 것은 제품의 교환가치가 아니라, 그 제품에 내재된 이야기와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  p211 [광고 카피의 이론과 실제, 조병량 외]



결국 스토리가 이긴다.



박카스 (2017)



많은 광고들이 있지만, 이야기가 있는 광고는 기억에 남는 편입니다. 이야기가 있다는 광고라고 해서 어떤 드라마나 에피소드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박카스 광고를 꼽아보고 싶습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 박카스 광고는 하나씩 기억이 나실 겁니다. 박카스는 다른 제품보다 다양한 타깃 범위를 갖고 있습니다. 한 세대만 노릴 수 없다는 얘깁니다.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해하기 쉽도록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향을 택한 것입니다. 위의 광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웃픈 현실의 정곡을 찔렀습니다만, 도리어 스토리를 통하여 브랜드의 역할을 부각하여주었습니다. 어떤 브랜드 광고가 가족 이야기를 순수하게 풀어낼 수 있을까요. 꽤 긴 시간 동안 스토리에 대한 연구가 있었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마트(2017)



 ‘갑툭튀’의 홍수 속에도 스토리는 시대의 환경에 맞게 더욱 진화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광고의 이야기는 사람들에서 사람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제품이 더욱 맞춤형으로 다양화되어가고 있는 만큼, 광고도 그런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마트는 어플이나 인터넷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마트인데요. 그런 브랜드 특성상 2030에게는 다른 마트들보다 더욱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그런 주 타깃을 공략하기 위해, 그들의 인사이트에 대한 관찰을 많이 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타깃 인사이트, 즉 소비자의 실상과 심리를 꼼꼼하게 잘 분석한 것 같습니다. 이야기 하나로 공감을 건들어서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고, 브랜드와의 거리를 좁혔습니다. 적확한 분석이 큰 힘을 발휘한 것으로 풀이될 것 같습니다.


 팔리지 않으면 크리에이티브가 아니다는 광고계의 격언이 있습니다. 그 말 덕분에 공모전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고 아등바등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러나 크리에이티브 이전에 저는 우리 광고가 보고 있는 사람은 생각하고 집행했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소비자에게 생각하고 판단할 근거를 줘야, 광고 보고 진정한 소통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회가 복잡합니다. 복잡하니만큼 사고도 많습니다. 개인에게는 무수한 그리고 불확실한 위험들이 도처에 있습니다. 하나하나 대비하고 조심하자니 개인에겐 명확한 방법도 계획도 마땅치 않은 것 같습니다. 보험은 개인의 이런 걱정을 먹고 태어났습니다. 닥치지 않은 걱정이지만, 그래도 돈을 냄으로써 대비책을 갖는 개념. 사람들은 비용보다 걱정에 대한 해결을 더 선호한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런 보험 광고로 이야기를 풀어갈까 합니다. 보험 광고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여기선 보험 브랜드(회사) 광고를 다루고 싶습니다. 개별적인 상품을 소개(치과보험, 무배당보험과 같은 상품만 알리는 광고)하는 지엽적인 광고보다, 보험 브랜드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대한 차별성에 대해 더 하고픈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보험 광고는 어떻게 할까요? 위험을 상기시키게 겁을 줄까요? 의외로 무작정을 겁을 주진 않습니다. 금연과 같은 공익적인 차원의 메시지만 아니라면 위협소구(대중에게 위협적 메시지로 상품 소비를 자극하는 것)는 통하지 않습니다. ‘알 건 다 아는’ 대중들한테는 위협 소구가 뻔한 상술로 치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광고는 뻔한 말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신경을 끄게 됩니다. 관심이 꺼진 광고는 팔리지 않는 광고, 결국 ‘죽은 광고’가 되는 것입니다. 


동부화재_꾸준한 가족 소구



사랑한다면 약속하세요 (2016, 동부화재)


동부화재 광고입니다. 대체적으로 많이 봐온 시나리오 아니실까 생각이 됩니다. 다른 보험 브랜드가 소재와 컨셉을 바꾸는 동안, 동부화재는 꾸준히 가족을 주제로 한 광고를 견지하고 있는데요. 아이의 애교, 그걸 지켜보는 가장 또는 엄마. 화목한 가족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누구나가 원하고 유지하고 싶은 가족의 모습일 겁니다. 그런 개인의 모든 소망, 즉 가족의 화목함을 지키는 약속이라고 광고에서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말하고 있진 않지만, 이런 소중한 가정을 위험이 생길 때 지켜주겠다는 자신의 역할을 광고 밑바탕에 깔아놓은 것입니다. 

사실 보험 광고는 가족 소재를 하는 것이 전통적입니다. 어차피 생명보험 광고의 타겟이자 대상은 가족이니까 당연한 얘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가족을 건드는 광고인만큼 조심히 얘기해야 할 것입니다. 무작정 약속을 지키겠다며, 가족 누군가의 사고를 광고로 보여주었다간 여론의 뭇매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족을 소재로 잡았을 때는 가족의 평범한 일상에서 소재로 많이 찾습니다. 별 거 아닌 것 같은 소재를 따뜻하게 조용하게 다가가서 ‘스윽’ 브랜드 이름을 내미는 것이 보험 광고의 기본적 시나리오입니다. 예전에 “Bravo your life" 라는 삼성생명의 캠페인 광고가 거의 대표적일 겁니다. 아버지, 어머니, 딸 등등의 가족의 한 사람으로 따뜻하게 풀어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따뜻한 ‘가족 사랑’을 토대로, 가족 전체의 삶을 동반하며 곁에서 응원하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Bravo your life(2005, 삼성생명)



삼성생명_가족의 재발견

삼성생명도 앞서 말했듯 가족을 중심으로 한 캠페인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트렌드도 바뀌고, 상품도 많이 내는 기업이다 보니 광고도 다양하게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절대 다수의 상품은 가족입니다. 가족을 건드려야 상품을 팔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방식이 좀 다릅니다. 처음부터 ‘당신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라며 위협소구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게 뭐지?” 싶을 즈음에 중간에 수식어를 끼워넣습니다. “앞으로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라고 말이죠.


당신에게 남은 시간 (2014, 삼성생명)

실험 대상자뿐만 아니라 시청하는 이들에게도 처음에 의문과 위협을 던져줍니다. 그러나 그 위협은 ‘가족’이라는 소재에 대한 공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아무리 가족이 중요한다고한들, 그 소중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 때 더 깊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유튜브 조회수 500만이 넘었고, 2014 광고대상에서 은상까지 받은 이 광고는 기존의 보험 광고와는 가족을 기존과는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했습니다. 단방향적으로 ‘가족 사랑’을 홍보하는 것보다, 대중에게 직접 모니터 밖으로 ‘당신은 가족을 얼마나 사랑하세요?’라고 대중과의 소통을 시도합니다. 동영상 후반엔 ‘가족 시간 계산기’까지 있어서 참여를 유도하게 합니다. 이런 쌍방향적 소통, 대중의 참여와 반응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광고를 ‘인터렉티브’라고 합니다. 단순히 메시지를 투척하는 게 아니라, 광고를 본 대중이 스스로 행동을 하여 브랜드를 기억하게 만드는 기법입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이 기법은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교보생명_가족이 아닌 친구로

가족이란 소재를 발판으로 삼성생명은 보험 1위 자리를 공고히 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보험사가 다 똑같이 가족을 이야기하면 어떻게 될까요. 오히려 삼성생명의 브랜드를 확고히 하는 데 도움을 주는 꼴이 됩니다. 이수원 씨가 쓴 [1등 기업의 광고, 2등 기업의 광고]라는 책에서도 이 사례를 제시하면서 2등은 1등과는 다른 이미지와 개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습니다. 그래서 교보는 조금은 다른 시선을 소개하게 됩니다.

마음에 힘이 되는 친구의 노래처럼(2004, 교보생명)


중년의 남성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한 것 같습니다. 친구를 어떻게 위로할까 고민하다 최민식은 ‘젊은 그대’를 부릅니다. 힘내라는 말보다, 친구니까 능청스레 할 수 있는 위로가 진정하게 더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확실히 가족이 아닌 친구를 소재로 택했습니다. 가족이라는 입지를 쓰진 못했지만, 또 다른 이점을 얻었습니다. 가족은 지켜야 할 대상, 책임감의 이미지가 부여된다면 친구는 함께 길을 걸어가는 동반자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무거운 책임감이 사라지고 거기에 능청맞지만, 고객의 입장을 이해하고 위로해줄 수 있는 이미지로 이어집니다. 교보생명은 그렇게 자신만의 컨셉을 잡아서 1위와 싸울 수 있는 경쟁력을 갖게 된 것입니다.

다른 광고가 USP, 즉 브랜드만의 고유한 메리트를 내세워 강조해왔다면 보험광고는 고객과 더 다정다감한지의 싸움입니다. 누가 더 친하고, 누가 더 아낄 수 있는 지에 대한 이미지 싸움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가족을 소재로 하는 것이 많은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색다른 소재와 컨셉으로 시장을 뒤집을 풍운아가 나오면 어떨까라는 기대도 해봄 직할 것 같습니다.





32℃. 서울은 아직 벚꽃조차 만나지 못했는데 나하(오키나와 현)는 4월 초부터 이미 달아올라있다. 택시 기사의 하늘색 반팔 소매, 넘실대는 야자수 그리고 폐부와 맞닥뜨리는 습한 공기로 하여금 이곳은 일본 본토라기보다는 태평양에 놓인 전형적인 남국의 모습을 하고 있다.

바다에 둘러싸인 오키나와는 지리적 특성과 달리 고유한 음식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오키나와 소바(沖縄そば)’가 대표적인데, 내가 오키나와에서 처음 접한 음식이기도 하다. 오키나와 여행 책마다 반드시 먹어보라고 하는 음식인데, 솔직히 책자의 권유보다는 찌는 날씨가 한 몫 하게 된다.

진하지만 시원한 장국과 투박하지만 호쾌하게 목 뒤로 넘어갈 수 있는 면타래. 소바하면 당연히 여름음식이라는 이미지가 연상될 것이다. 그러나 오키나와 소바는 사뭇 다르다. 아니 일반적인 소바라고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가 봐온 소바와는 판이한 모습이다.


오키나와 소바(沖縄そば)


두툼한 고기와 면발. 그리고 무엇보다 하얗게 올라오는 김은 이미 시원함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음을 증명해 보인다. 일반적인 라멘이나 제주도의 고기국수와 비슷하다. 사실 소바라는 단어 자체가 일본에선 국수 자체를 총칭하는 단어니, 내 기대가 다소 무모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체념을 뒤로 하고 맛을 본다. 국물을 한 움큼 들이킨다. 돼지국밥처럼 걸쭉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국물은 맑다. 마치 소고기무국처럼 맑지만 그 뒤끝에는 진한 육향이 따라오는 느낌이다. 담백했던 국물과의 첫 조우를 마치고나면 면을 마주해야 하는데, 그 양이 상당하다. 


규슈에서 먹었던 라멘보다 차슈나 면의 양이 거의 곱빼기에 가깝다. ‘푸짐하다’라는 표현이 이 음식과 가장 적절해 보인다. 그냥 밀가루로 반죽한 이 면은 라멘보다는 식감이 더 쫄깃하다. 일반적인 소바는 찰기 없이 툭툭 끊어진다면, 오키나와 소바는 우리네 칼국수마냥 적당히 찰지고 탱탱하다. 옆에 코레구스라는 양념도 같이 주는데, 할라피뇨와 같은 매운 맛을 주는 향신료이다. 진한 맛을 방해할 수도 있으나, 돼지의 진한 향이 부담스럽다면 몇 방을 넣어 먹는 것도 나쁘진 않다. 


그릇의 절반만 먹어도 배부른 이 오키나와 소바는 사실 이 섬과는 다소 맞지 않는다. 면의 재료인 밀가루의 밀 자체가 온대에서만 자생할 수 있는 작물이기에 열대에 가까운 오키나와 에선 밀이 자라기는 어려운 조건이다. 사실 오키나와 요리는 독특한 점이 더 있다. 섬임에도 불구하고 생선 요리는 그렇게 발달하지 않았다. 생선 대신 이 섬의 토종 돼지인 아구가 이 섬 요리의 주 단골이다. ‘돼지는 울음소리 빼고 전부 먹는다(豚は鳴き声以外は全部食べられる)’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쓰임은 다양하다. 




고야(여주)가 들어간 참프루. 담백하면서 쌉싸름한 맛이 인상적이다.



오키나와 소바와 함께 대표하는 요리는 참프루이다. 여주를 채썰어 두부와 채썬 고기와 계란 등을 볶은 요리이다. 그렇게 많이 볶지 않았기에 쌉쌀한 맛이 뒤에서부터 조금씩 올라온다. 두부와 채썬 돼지고기가 이런 쓴 맛과 조화를 이룬다. 뒤죽박죽 섞는다라는 뜻을 가진 이 요리는 만드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여주대신 햄이나 양배추 등을 넣을 수 있는, 우리나라로 치면 집에서 해먹는 볶음밥과 같은 위치에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실제로 가정에서는 햄을 애용한다고 한다.)


오키나와 요리는 모자람이 없다. 어떤 음식이든 푼푼하고 기름진 느낌이 강하다. 오히려 사면이 바다임에도 불구하고 고유한 생선 요리가 한 손안에 꼽을 정도이다. 정갈하고 아담한 기존의 일본 요리와는 거의 대척점에 있다고 과언은 아닐 것이다. 



류큐 왕국의 궁궐 슈리성(首里城).



넉넉한 음식의 모습은 사실 이 곳 사람들의 기저에 품고 있는 왕국 ‘류큐’가 자리하고 있다. 류큐. 이 섬을 지지하는 정신적 원동력이자 지주(支柱)와 같은 존재이다. 세 곳 건너 한 곳의 간판은 언제나 류큐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과거의 영광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다. 

이 지역이 이렇게 널리 돼지고기를 애용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은 류큐의 존재 덕분이다. 천년이 넘는 동안 육식을 금해온 일본의 영향 밖에서 류큐만의 독자적인 식문화가 가능했다. 


15-16세기부터 류큐는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사방이 바다로 고립된 것은 오히려 이들에게는 사방으로 통하는 바닷길로 만들었다. 일본과 동남아와 중국 그리고 조선까지 그들의 길을 넓혀가며, 당대 아시아의 허브국가가 되었다. 대륙을 오가며 그들은 자연스레 호방한 기질이 음식에까지 스며들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게 배운 것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았다. 자신의 가진 것에 맞게 재창조하였다. 대륙도 바다도 아닌 류큐만의 밥상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류큐 전통의상을 입은 슈리성(首里城) 안내원.
소금으로 과자를 만드는 발상을 보면 오키나와들의 창의성은 과거에만 한정된 기질은 아닐 것이다.



음식도 언어처럼 사회나 시대의 영향을 받는다. 어떤 것은 시대의 흐름에 그대로 따라가는 경우도 있고, 더러는 시대와 전통이 만나 제3의 길을 모색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 있어서 오키나와의 음식은 제3의 길을 찾아 자주적인 식문화를 완성했다. 일본의 침략과 미군의 진주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도 지켜온 전통을 빼앗기지도 스스로 잃지도 않고 제3의 길로써 오늘까지 이끌어왔다. ‘대장부는 굽히고 펴는데에 능해야한다’라는 말처럼 오키나와의 요리는 흐름의 변화를 다 받아들이고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이다. 


당신이 오키나와를 가게 된다면 먼저 오키나와 소바를 먼저 먹어보길 권한다. 푹푹 찌는 날씨에 왜 하필더운 국물을 권하냐고 할 수 있겠으나, 그 뜨거움이야말로 그들이 치열하게 찾아온 제3의 길을 모색한 흔적이다.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오키나와의 소바는 뜨겁다.

 




고척 돔 내부 전경(ⓒ OSEN)

지난 3월 2016 프로야구 시범경기가 막을 올렸다. 올 시즌 팬들의 최고 화두는 단연 고척 스카이돔(이하 고척돔)이었다. 국내 최초 돔 구장이라는 타이틀은 팬들의 이목을 집중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걱정의 시선도 적지 않았다. 서울시와의 협의를 통해 기존 목동구장에서 고척 돔구장으로 옮겨졌다고는 하나, 모기업 없이 ‘야구로 먹고 사는 구단’인데 돔구장을 운영이 가능할 것인가에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우려 가운데 시작한 시범경기에서 다소 뜻 밖의 광경이 노출되었다.


“4월부터 구장 내 외부음식 반입이 전면 금지합니다.”


구단 측 직원들이 입구에서 관객들에게 공지한 발언이었다. 발언대로라면 정확하게 오늘. 즉 정규시즌부터 구장 밖에서 사온 모든 음식의 반입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음식 자체의 취식을 불허하는 것이 아니다. 구장에는 엄연히 테이블 석까지 마련되어있다. 굳이 관객이 음식을 먹고 싶다면 구장 내에 있는 매장을 이용하라는 논리인 것이다. KBO(한국야구위원회) 규정에는 구장 내 안전을 위하여 외부의 주류 반입을 제재하는 규정은 있으나, 관객의 음식물 반입 제한은 다른 구장에서 찾아볼 수 없는 고척구장만의 풍경이 될지 모른다.

“관객들은 어쩔 수 없이 다소 비싼 가격에 음식을 사야 하는 상황이다. 예컨대 고척돔 외부에 있는 한 치킨집에서는 1만~1만2000원이면 1마리를 살 수 있지만 고척돔 내에서 구매하면 1만8000원을 지불해야 한다.”  출처_ 파이낸셜 뉴스

고척돔의 상술은 명백히 부당한 이득이다. 같은 음식을 매점만 음식을 허가하는 것과 훨씬 더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은 관객을 우롱한 강매 행위이다. 과거 극장에서 행해져 오던 ‘상영관 내 외부음식 반입 금지’와 너무나도 유사하다. 영화를 보러 찾은 관객에게 외부음식은 불허하고, 매점에서 살 것을 강제했다. 냄새가 심한 음식이야 당연히 제재가 필요하지만, 팝콘이나 탄산음료는 원가에 몇 배를 부풀려 판매하였다.(2008년부터 반입 규정은 해제되었지만, 극장의 매출 감소를 우려하여 관객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고 넘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 고척돔 또한 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기간이 지나면 집에서라도 볼 수 있지만, 야구경기는 특정 시간에만 볼 수 있는 제약이 있기에 관객에게 더욱 불리하다. 그 날 야구를 보러 찾아온 관객은 음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돈을 더 내야 하는 을이 되어야했고, 구장은 스스로 갑이 되어 이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고척 돔 입구 전경. 인근 상인회의 넥센 입성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보인다.


이러한 폭리는 단순히 관객들에게 삥을 뜯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고척 돔의 준공을 전후로 관객을 대상으로 한 많은 상권이 새로 생겨났는데, 대부분 야구 하나만 바라고 가게를 열었다. 그런데 구장은 이들마저 고사(枯死)의 위기로 내몰고 있다. 외부 음식의 반입을 금하는 것으로도 이들에게는 막대한 타격인데, 여기에 고척 돔 지하에 대형 식당가를 조성한다는 이야기마저 돌고 있다. 돔 부근의 상점부터 인접한 동양미래대학의 먹자골목마저 다 삼킬 수 있게 된다. 자영업 상인들에게 기회가 될 줄 알았던 돔 구장은 졸지에 거대한 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구장이 이렇게 ‘모두의 갑’이 되어버린 데에는 서울시의 행정이 숨어있다. 2008년 건립계획 발표 때만 해도 408억원에 불과했던 사업비가 8차례나 설계가 변경되면서 2,443억으로 6배로 뛰었다. 그리고 거의 준공이 다다른 작년까지도 구장을 쓸 구단 하나 제대로 잡지 못했다. 상습적 교통정체와 애매한 지하철 접근성, 그리고 막대한 임대료를 부담해야하는데 상식적으로 구단의 입장에서 구미가 당길만한 요소는 전무했다. 2,000억대의 예산은 쓸 사람은 생각도 안한 사상누각(沙上樓閣)과 같은 계획인 것이다.

‘지르고 보자’는 식으로 지어진 2천억 대의 돔구장을 서울시는 부랴부랴 넥센 히어로즈에게 떠밀었다. 서울시는 절박했다. LG나 두산 구단은 이미 거절하기로 못 박았고, 대기업의 눈치를 살핀 것인지 선뜻 제안조차 하지도 못했다. 어느 프로구단도 이곳을 쓰지 않는다면 연간 20억이나 되는 적자를 서울시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동 구장을 홈으로 쓰던 넥센은 완강하게 거부했다. 잠실보다 적은 좌석수인데 더 많은 임대료를 내라는 서울시 측 제안은 당연히 말도 안 되는 논리였다. 서울시는 압박과 제안을 동시에 내밀었다. 기존 목동구장(소유권은 서울시설관리공단에 있다)의 광고권을 회수하고 넥센의 구장이용료를 올리는 대신에, 고척 돔에 대한 시설 보수 비용 390억을 추가로 투입과 2년간 광고권을 구단에 주기로 했다. ‘울며 겨자 먹기’식의 협상이었다.



야구장에 관객은 구장과 구단은 생존과 직결되어있다. 사진은 지난 22일 고척에서 열린 넥센과 롯데와의 시범경기


이렇듯 고척 돔 협상에서 보여준 서울시 행정 처리는 지금까지 보여온 서울시 기조와 많이 다르다. 함께 상생을 주창하던 이미지였으나, 정작 모기업도 없는 약자 야구단의 사정은 외면하고 손해를 감당해 줄 것을 종용하고 있다. 단순히 구단뿐만 아니라 팬과 시민까지 고스란히 피해로 이어질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이기적인 간섭으로 즐겨야하는 프로 스포츠가 주민과 팬 그리고 구단 모두에게 울상이 되고 있다. 

그런 협상을 통해서 넥센은 그렇게 고척 돔에서 오늘부터 경기를 한다. 앞으로도 매 해 60경기 정도를 고척에서 진행하며 운영해야한다. 입장료도 올렸고, 조금이라도 벌기 위해 팬들의 음식 가져올 권리마저 제한하면서까지 아등바등 버티고 있다. 넥센은 앞으로 새로운 수익 구조를 모색하고 창출해야만 하는데, 서울시는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다’며 일관하고 있다. 구단의 이익의 문제가 아닌 존폐의 문제가 되어버린 이 시점에서, 행정과 야구의 불편한 동거가 더 이상 지속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큰 선거들을 앞두고 정당들은 대개 굵직한 캠페인 광고를 집행합니다. 대통령 선거인 경우는 TV나 신문을 통한 광고전이 치열합니다. 후보자의 (밀고 싶은) 이미지를 전국의 유권자에게 알릴 수 있는 최대의 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입에 감기는 슬로건, 참신한 이미지를 어필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기실 저는 대선 광고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회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이 등장하고, 스마트 기기가 활성화되면서 유권자는 TV 외에도 후보의 정보들을 원하는 만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TV에서 후보자를 치장해도 유권자는 후보의 이면들을 충분히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TV 광고는 아직 역할이 남아 있습니다. 스마트폰보다 TV가 더 친숙한 장년층 이상의 유권자를 위한 어필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TV 광고는 단방향성,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이미지 중심 매체라는 것입니다. 전국적으로 방송되는 이 매체를 통해서, 유권자들은 30초라는 시간 동안에 광고에 노출됩니다. 유튜브처럼 의견이 형성되고 상호 공유되는 것에 제한이 되기에, 유권자에게 후보자의 존재나 이미지를 알리고 가르치기에 딱 좋은 매체입니다. 한마디로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줄 수 있는 곳이라는 광고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광고는 대개 후보의 캐릭터와 소통 방식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는 2012년 대선에서 ‘여자1번 후보’와 ‘남자2번 후보’의 광고들을 단편적으로 비교해볼까 합니다. 대선 TV 광고가 좋은 사례들도 많지만, 굳이 이 해의 두 광고를 뽑은 것은 가장 최근의 대선이기도 하지만, 극명하게 다른 시선을 가진 광고였기 때문입니다. 


여자1번_개인에, 개인에 의한, 개인을 위한


준비된 여성 대통령 (2012, 새누리당)

2006년에 있었던 피습사건이 모티브인 것 같습니다. 후보의 인생이야기를 다룬 광고는 많았지만, 특정한 사건을 다루어 어필한 적은 이례적입니다. 사건과 상처를 통한 후보의 깨달음, 생각 등을 어필하고자 하는 것이 광고의 주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상처를 입었던 본인의 네거티브한 상황, 약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청자에게 동정심을 유발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광고에서 논리정연함보다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 더 큰 힘이 나타낼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수반을 꼽는 광고에서 메시지는 배제된 채 일방적으로 감정적 호소만 한다는 것은 그리 바람직해보이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국가로 접근이 아닌, 후보자 개인으로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은 어떤 뚜렷한 메시지나 주제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험 많은 선장은 파도 속으로 들어간다(새누리당, 2012)


이 광고에서도 개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경험 많은 선장’의 이야기를 통해 후보의 오랜 경험으로 위기에 강한 준비된 리더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짧지만 대체로 자기 PR의 성향이 강한 광고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수반으로써의 PR이라고 하기에는 좀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광고든 명확한 소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잘했는지는 알겠지만, 무엇을 잘하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의지가 결여되어 있음에도 ‘파도 속으로 들어간다’는 말을 이제 와서 보니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광고를 보면 후보 개인에 초점을 맞춘 광고입니다. 단순히 개인을 어필하기에는 좋은 광고입니다. 하지만 대선 광고에는 개인보다는 국가를 우선으로 두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생각하는 국가보다 대통령으로서의 어젠다를 유권자에게 피력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기서 개인을 강조한다는 점은 이미 후보 개인이 곧 국가라는 점으로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유권자가 보는 관점에서 유권자를 위한 광고가 아닌 개인을 위한 광고라는 점에서 과거의 프로파간다와 많이 닮은 모습이 보입니다.


남자2번_참신했지만 전형적인 야당 후보


사람이 먼저다(민주통합당, 2012)


남자2번 후보의 가장 첫 광고인 ‘출정식’ 광고입니다. 여기서 명확히 보이는 점은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는 점이다. ‘평등, 공정, 정의’라는 세 키워드를 들어, 새 시대를 열 것을 말합니다. 얼핏 보면 다소 뻔한 키워드로 보일 수 있습니다. 정의로운 결과, 공정한 과정...누구든지 생각할 수 있는 교과서적인 정치의 이상향입니다. 그럼에도 왜 굳이 이 단어를 말해야 했던 것은, 그렇지 않은 우리 현실임을 방증시키기 위함이었을 겁니다. 현실에 젖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잊은 국민에게, 어떤 것이 문제인지를 짚고 대안의 방향을 말하고 싶은 것이죠. 야당이라면 당연히 견지해야 할 포지션이라고 봅니다. 원색적인 비난보다는 더 논리적인 전략이었지만, 유권자에게는 키워드가 다소 ‘뻔하다’는 느낌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남자2번 후보는 제1야당에서 나왔습니다. 당에서는 후보에게 정권 심판이라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하지만 국민에게 무작정 ‘정권 심판’이라는 슬로건을 외쳤다가는,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딱지가 박힐 것이 뻔합니다. 메시지에는 포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미지도 어느 정도 가꾸고, 유권자가 생각하는 기준과 니즈를 건드려야 메시지를 이해하고 공감의 여부까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남자2번 진영은 그 포장을 국민의 현 실정으로 선택했습니다.


문재인의 이름으로 당신도 출마해주십시오(민주통합당, 2012)


야당의 포지션은 매번 ‘친서민’이었기 때문에, 서민과 청년층을 타겟에 맞춘 광고를 냈습니다. 메시지 자체에도 정당의 기존 당론, 후보의 지론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담겨있습니다만, 다소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애국가입니다. 2012년 유난히도 종북 공격과 사상 검증까지 휩싸여야 했던 후보였기에, 이 애국가가 조금은 절박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남자2번의 모습보다 유권자의 현실을 고스란히 나열하고 있습니다. 지나치는 현실이 문제라고, 그리고 이것을 바꾸겠다는 ‘정권 심판론’이라는 담론으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남자2번의 광고는 타겟과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문제의식의 대안이 ‘정권교체’라는 방식이 다소 답정너처럼 보여집니다. 조금 더 다양한 방식과 논리 전개가 있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사람이 먼저다’라는 카피는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후보와 정당이 말해야 하는 메시지의 정수가 헤드 카피인데, 그 헤드 카피의 자리를 유권자에 내주었다는 것은 마땅히 칭찬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대선 광고는 무엇인가



물론 광고의 힘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상품 광고는 잘 팔리게 만들어야 좋은 광고이지만, 대선 광고는 후보를 당선시켜야만 좋은 광고일까요. 글쎄요. 정치 광고에서는 상술과는 별개의 기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과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저는 도덕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네거티브 광고를 하는 것도, 좋은 이미지만 보여 주는 것도 정당과 후보의 자유입니다. 흑색선전도 전략의 한 종류니까요. 그러나 허언이나 과장은 대선뿐만 아니라 모든 광고에서는 있어서는 안됩니다. 광고는 소비자와 브랜드간의 상호 신뢰를 전제하에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오래된 브랜드일수록 소비자들의 신뢰는 더 깊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유권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TV에서 보이는 약속과 모습이 거짓이 아니라고 믿고 판단을 할 수 있어야합니다. 광고 속 화려한 수사보다 더 필요한 것은 대중이 믿을 수 있는 신뢰가 아닐는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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