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서구West of the Tracks>의 감독이 시골과 도시 세계 사이에서의 성장, 영화 교육과 다큐멘터리 훈련에 대해 말한다. 변화하는 중국의 민낯과 사회경제학적 법칙의 중력이 형성한 삶의 장대한 초상.
격변의 대지를 필름에 담다 - ①
격변의 대지를 필름에 담다 - ②
격변의 대지를 필름에 담다 - ③
<이름 없는 남자>(왕삥, 2009)
<바람과 모래>를 촬영하는 동안, 당신은 또 다른 다큐멘터리 <이름 없는 남자>(2009)를 찍었다. 그 영화는 고립과 고독이라는 새로운 주제에 대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또한 인간에 대한 연구이기도 하다. 의도했던 것인가? 형식적으로 말해, 영화 전반에 걸쳐 한 사람이 말하는 것을 녹음한 <중국 여인의 연대기>와 대조적으로, <이름 없는 남자>에는 대화가 전혀 없다.
내가 이 남자와 만난 것은 전적으로 우연이었다. 우리는 <바람과 모래>를 촬영하다 잠시 쉬고 있었고, 한 친구가 나를 황무지 근처로 안내하고 있을 때, 어디서인지 이 남자가 나타났다. 별안간 나는 그가 살고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나는 그가 우리에게 그의 삶의 경험을 전해줬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개인으로서, 또한 사회적으로 물질적 욕망이 커져가는 시간에 살고 있다. 그건 비대해진 욕망의 시간이다. 그리고 여기 가장 가난하고, 외로우나 또한 가장 소박하며, 자발적이고 자급자족하는 존재가 있다. 그는 다른 이들과의 접촉 없이 황무지에서 혼자 살아간다. 그는 다른 이들에게 구걸할 필요가 없다. 그는 여름에 싹을 틔우고, 가을에 메마르는 풀처럼 자연의 상태에 있다. 그 과정에서 가장 기본적인 상태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경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움직인 것은 이런 것들이었다.
<중국 여인의 연대기>를 찍는 동안, 나는 실제로 언어가 영화를 유지할 수 있는 극한을 탐험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름 없는 남자>에서 대화를 쓰지 않은 이유는 꽤 단순하다. 나는 그 남자에게 그에 대한 영화를 찍어도 되는지 물었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어떠한 의사소통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존재 상태를 찍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생존에 대한 주제는 당신의 최근 다큐멘터리 <세자매>(2012)에서도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당신은 이 세자매를 우연히 만났다. 어딘가에서 당신은 중국 남서부의 윈난성雲南省에 멀리 떨어져 있는 한 작가의 죽음을 애도하러 갔을 때 그들을 만났다고 밝혔다. 어떻게 그들과 친구가 되었나?
그 작가의 이름은 쑨 시샹Sun Shixiang이다. 솔직히 나는 그가 2001년 31살에 요절하기 전까지 그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했다. 그와 나는 같은 세대에 속해 있다. 그는 그의 유년기부터 시작하여 그의 삶에 대한 회고를 소설화했고, 2004년 사후에 출간된, 『셴시神史』(신의 이야기)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소설에는 수많은 캐릭터가 있다. 소설은 쑨 시샹이 목격한 인간 삶의 모든 양상들로 풍부하다. 그만의 이야기에 더하여, 그는 그의 부모, 조부, 이웃, 친족들의 이야기를 한다. 내 생각에 그는 나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거기다, 그가 소설에서 형상화한 삶을 나도 살았다고 느낀다. 그는 유년기부터 성숙한 뒤까지 효과적으로 우리 세대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건 정신적인 경험일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감각적인 경험이기도 하다. 내가 작가나 문학 비평가는 아니지만, 『셴시』야말로 동시대 중국에서 몇 안 되는 가장 훌륭한 소설 중 하나라 생각한다. 동시대 문학을 여러 편 읽었지만, 대다수는 우리 삶에서 동떨어져 있다. 개인적인 삶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건 우리가 실제로 이 역사적 시기에, 이 국가 사회적 (진행) 과정에서 겪고 있는 삶이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강렬하지만 종종 풍부하고 강력한, 이 생동하는 집단적 경험을 표현해내지 못한다. 내게 이 작품들은 그저 너무 나이브하다. 나는 <바람과 모래> 작업을 하는 동안, 쑨 시샹의 소설을 매우 빨리 읽었다. 그가 죽었다는 걸 알았지만, 그의 집에 방문해서 부모님을 포함한 가족을 만나고 싶었다. 처음에는 촬영하느라 바빴기에 <바람과 모래>가 완성된 후에야 출발할 수 있었다. 내게 그건 무덤을 방문해 경의를 표하러 가는 길이기도 했다.
<이름 없는 남자>(왕삥, 2009)
거기서 어떻게 세자매를 만나게 되었나? 당신의 필름이 보여주듯, 그들은 돌봐주는 부모 없이 대부분 스스로 생활하고 있다.
쑨 시샹의 무덤은 고산지대에 있다. 언덕에서 돌아 내려오는 길에, 우연히 한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거기서 우리는 차를 멈추고 길가에 있는 세 아이들을 봤다. 첫째 언니 잉잉Yingying이 일곱 살이어서 아직 학교에 가지 않았으므로, 삼 년 전이었다. 영화를 찍기 시작해씅ㄹ 때, 잉잉은 열 살이었고, 두 동생들은 대략 여섯 살, 네 살이었다. 나는 아이들과 얘기하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나를 집으로 데려가 감자로 요리를 해줬다. 그건 시골에선 흔히 있는 일이다. 나는 시골 생활 방식에 익숙하다. 이상하거나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시골에서 낯선 이의 집에 가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주저하지 않는다. 그건 내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세 아이들의 삶이 당신의 유년시절을 상기시켰나?
내가 1970년대에 성장할 때, 중국에서의 삶은 가난 그 자체였다. 전국 모든 곳에서 먹을 음식은 충분하지 않았고, 입을 옷도 없었다. 물론 이런 종류의 물질적 빈곤은 우리 기억에 세세히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다. 80년대부터 중국은 기본적으로 이런 가난에 찌든 상태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 90년대에 이런 문제는 점차 우리에게서 멀어졌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빈곤이란 어느 정도 기억의 문제다. 그러므로 당신이 이 고산지대에 간다면, 갑자기 당신의 눈 앞에 펼쳐진 동일한 빈곤을 직면하게 될 것이다.
1970년대 전국적으로 빈곤이 팽배해있던 건 사실이지만, 당신은 부모들이 자립하기 위해 그렇게 어린 아이들을 남기고 떠나는 게 새로운 현상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맞다. 그건 과거와는 매우 다른 시기에 발생하고 있는 새로운 현상이다. (그렇지만) 이 말이 사람들이 항상 행복한 가족생활을 했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차라리, 높은 확실성의 수준에 대한 말이다. 사람들의 사적인 생활은 사회에 의해 제한받았다. 당신은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쉽게 이혼하거나, 가족을 떠날 수 없었다. 단순히 이데올로기의 문제는 아니었다. 우리는 모든 활동이 통제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시는 만약 당신이 아내, 혹은 남편과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을 때, 떠나버리는 몽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건 실제로 불가능했다. 당신의 개인적 삶을 위한 자유도 가질 수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다. 이는 별개의 문제다.
<세자매>(왕삥, 2012)
이런 문제들은 지금도 발생하지만, 그렇게 전적으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건 상당 부분 경제적 발전 때문이다. 사실 사람들이 일생동안 열심히 일하는 것과 더불어, 경제적 관계는 사람들의 삶에 강력한─과거의 이데올로기적 지배보다 훨씬 더 강한─지배력을 발휘한다. 왜냐고? 간단하다. 이 작고 가난하고 외진 마을을 보자. 일할 수 있는 모든 젊은 노동자들은 이미 일자리를 찾기 위해 다른 곳으로 떠났다. 그곳의 경제는 더욱 안 좋다고 말할 수 있다. 소름끼치게도, 경제는 사람들에게 자발적으로, 그들의 자유 의지에 의해 노력하도록 함으로써 그들을 착취한다.
<세자매>는 여러 롱 쇼트들을 통해, 주로 제한된 대화와 내레이션 없이 아이들의 일상을 좇으며 두 시간 반 동안 이어진다. 그렇지만 그 이미지들은 매우 강렬해서, 사람들로 가득한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들을 하나로 관통하였다. 이런 점들로 미뤄봤을 때, 그런 이미지가 관객을 연결시켜주는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당신에게 있다고 생각해도 되겠나?
그 영화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하나는 90분짜리로, TV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졌다. 보통 TV에 방영되는 영화(다큐멘터리 프로를 말하는 듯 - 옮긴이)는 대략 50분이므로, 90분은 이미 충분히 길다. 또 다른 버전은 영화관 상영을 위해 만들었고, 150분짜리다. 이미 말했듯, 영화는 카메라를 통해 관객과의 접점을 형성한다. 이미지들이 반드시 매력적이거나 흥미로울 필요는 없다. 내 생각에 중요한 것은 영화제작자가 작업하는 방식이다. 당신이 무엇인가를 계속 보고 있을 때, 당신이 무엇인가에 계속해서 집중하고 있을 때, 왜 당신은 그것을 보고 싶어하며, 그리고 왜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가? 사람들이 신경 쓰고, 계속해서 성장하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소녀들의 내면적 충만함, 그들 삶의 모든 디테일들 ─ 이런 것들이 계속해서 펼쳐지고, 관객들에겐 이 확대되어가는 복잡함을 반성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친절함을 베푼다. 심지어 막내 아이조차 돼지와 염소 모이를 주는 데 동참한다. 그건 사람과 동물 사이의 매우 슬프면서 단순한 관계다. 이 영화에서 많은 것들은 실제로 매우 단순하지만, 아이들의 삶과 감정을 통해 인간의 삶과 감정의 기본적이고 현실적인 측면을 보여준다. 충만한 영화는 광고가 아니다. 충만한 영화는 인간의 실존에 대하여, 우리 삶의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 말한다. <세자매>는 궁핍한 환경을 다루는 것에서 시작하지만, 영화 전체는 빈곤에 관한 것이 아니라, 소녀들의 생동하는 실존에 대한 것이다.
<세자매>(왕삥, 2012)
당신의 영화가 보여주듯, 도시에 일하러 나간 세자매의 아버지는 매년 토마토와, 주식을 심으러 마을로 돌아온다.
그렇다, 그리고 명백히 그는 문제가 있다. 이 지점은 중국의 경제적 성장과 함께 발생한 새로운 이슈를 제기한다. 수많은 시골 사람들이 도시로 갔지만, 그들의 노동이 도시 경제에 엄청난 기여를 했음에도 임금과 생활수준은 여전히 낮으며, 그래서 시골은 심지어 이전보다 더욱 살기 어려워졌다. 이 어린 노동자들이 도시에서 음식, 숙박 등의 생계를 위한 지출을 하면, 그들에게 남은 것은 거의 없다. 그들이 시골로 돌아왔을 때, 뼈 빠지게 노동했음에도 가져오는 것이 거의 없다. 소녀들의 아버지는 나이가 많지 않으나, 만약 혼자였다면, 훨씬 나은 삶을 살았다는 것은 명백하다. 세자매가 있으니, 그는 도시에서 아무 것도 저축하지 못하므로 다시 돌아와야만 한다.
그런 측면에서, 영화 또한 외로움에 대한 것은 아닌가?
<세자매>에는 보이지 않는 제약이 있다. 우리는 아이들의 어머니에 대해 말하지 않았으나, 그녀는 아이들의 일상에 어떠한 부분도 차지하지 않는다. 사실, 그녀는 몇 년 동안 아이들을 남기고 떠난 상태다. 우리는 그저 아이들의 아버지와 집 주위에서 몇몇 사람들을 보았을 따름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세 명의 외로운 어린 아이들처럼 보일지라도, 사실 그들은 우리 시대의 경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경제는 우리 모두를 납치해왔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날의 인간 관계란 본질적으로 경제적 관계다. 경제는 사람들이 차지하는 위치를 할당하고, 지속적으로 그들에게 채찍질한다(reinforce의 의역 – 옮긴이). 결국 이러한 위치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원유>와 <석탄, 화폐>에서 논했던 것과 상응하는가?
그렇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것은 사실 오늘날 중국의 불특정한 사회적 관계다.
<세자매>(왕삥, 2012)
당신이 보기에 세자매 같은 아이들이 자라면, 그들 또한 도시를 갈망할 것 같나?
아이가 도시를 갈망하진 않을지라도, 중국의 경제는 도시에 집중되어있다. 도시들은 마치 자석과도 같다. 그건 개인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관계의 문제다. 실제로 과거에는 중국의 경제가 시골에 집중되어있지 않았다. 오랫동안 시골 경제, 도시 경제 그리고 하찮은 산업 사이에는 심연이 있었다. 이제는 무거운 경제적 힘이 도시에 자리 잡고 있고, 그 도시는 엄청난 부의 중심이 되었다. 사람들은 삶을 영위하고, 기회를 찾기 위해 이 부에 이끌린다. 자석의 에너지는 그것이 영향을 미치는 지역의 범위를 결정한다.
언젠가 당신은 중국에서 오직 상하이만이 도시 문화를 갖고 있으며, 다른 곳은 ─ 예컨대, 베이징의 문화는 본질적으로 정치 문화다. ─ 그렇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도시들이 그런 자석이 되어가고 있다면, 이는 도시 문화를 성장시키겠는가? 혹, 반대로 문화는 후커우戶口 거주자 등록 시스템에 의해 좌절되겠는가?
그게 그러한 경향을 늦출 거라 생각진 않는다. 그 말은 중국 시네마에 대한 논의 중에 나왔다. 국가로서 중국은 농경 문명에 기초하고 있다. 오늘날 다수의 사회 이데올로기의 핵심에는 여전히 그러한 프레임이 자리하고 있다. 도시 문화가 대다수의 인구가 도시에 살 때 등장했는지 ─ 혹은 어떻게 등장했는지 ─ 의 여부는 미래를 위한 문제다. 하지만 도시들은 성장을 지향할 것이고, 시네마 또한 도시 문화에 기여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들은 우리 삶의 모든 다른 부분까지도 변화를 이끌어내야 할 의무 또한 있다. 그건 내가 개인적으로 그걸 변화시키고 싶어 하는지의 여부와는 상관없다.
그 말은 당신이 영화는 그만의 생명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영화는 다른 모든 것들이 그렇듯 변화할 것이다. 우리 세계는 점점 더 시각적 이미지에 의존해가고 있지만, 그에 대해선 대수롭지 않아한다. 과거에, 비록 우리는 문자 언어에 기반을 둔 풍성한 문화를 향유했음에도, 이미지들은 그렇게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다. 작곡법, 어휘 게임, 서사 장르, 풍속에 대한 묘사 등 모든 것들은 문자 언어를 응용해서 창조한 문화의 구성요소였다. 움직이는 이미지로서 예술의 역사는 훨씬 짧지만, 매우 빠른 속도로 확장되고 변화하고 있다. 동시대 시네마에는 많은 가능성이 있다. 시네마는 오래 전부터 우리 레퍼토리에 축적되어온 것에 제한받지 않을 것이다.
- 끝 -
<원문 p. 129-134>
* <뉴 레프트 리뷰>는 1960년 영국에서 창간되어 격월로 발간되는 잡지입니다. 이따금 한국어로 번역되어 단행본(도서출판 길)으로 출간되긴 하지만, 영어판 잡지에 기고된 글을 선별적으로만 다루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BIG HIP>에선 <뉴 레프트 리뷰>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된 글들을 최대한 번역해서 수록할 예정입니다. 저는 전문 번역가가 아니기에, 분명 오역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혹시 그걸 발견하신 분이라면, 제게 훈수를 두셔도 좋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여기서 공동 번역 작업을 제안하고 있는 셈입니다.
* 사진출처: 다음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