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전쟁이 시작됐다. ‘나 때는 안 그랬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뭐가 힘들다고 노약자석에 오는지 모르겠다.’는 소리를 또 들었다. 첫째 때도 전철 탈 때마다 들었는데 둘째 때도 또 듣고 있다. 그럴 때마다 임산부 배지를 더 잘 보이도록 꺼낸다. 허나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나 때는 임신하고도 밭을 멘 할머니들이 전철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를 임신하고 첫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의정부 경전철을 이용한 날이 있었다. 노약자석 끝자리를 양보해주면 나도 앉아갈 수 있고 유모차도 붙잡을 수 있어서 끝자리에 앉아 있던 할머니에게 자리를 한 칸만 옆으로 가주실 수 없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할머니는 자신이 유모차 봐 줄 테니 가운데 자리에 앉으라 했다. ‘유모차가 경전철 설 때 밀릴 수가 있어서 계속 잡고 있어야 하는데요.’라고 했더니 안 밀린다며 자신이 잘 보고 있다가 밀리면 잡아준다며 가운데 자리에 앉으라 했다. 한 칸 옆으로 가는 것이 그리도 어려웠을까. 그 날은 자리에 앉는 걸 포기하고 서서 올 수 밖에 없었다.

 

한 칸 옆으로 가는 것이 그리도 어려웠을까(본인촬영)

 

작년 9월 초였다. 한낮 기온이 24도까지 올라간 날이었다. 첫째 문화센터 수업이 끝난 후 경전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앉을 자리가 없어서 서서 가는데 6개월 차에 들어서는 임신부가 유모차까지 밀고 타니 노약자석에 앉은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이었나보다. 그 때부터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아니, 애를 반팔을 입히면 어떡해요? 감기 들게?”

지금 기온이 24도에요. 반팔 안 입히면 더워서 울어요.”

내 손자는 어제 반팔 입혀서 감기 걸렸다니깐? 반팔을 왜 입혔어?”

한여름에 태어난 아이라서 더위를 심하게 타서 오늘 같은 날 반팔 입어야 돼요

 

. 나는 한낮기온 24도에 반팔 입힌 죄로 등산복 입은 아저씨의 시비를 고스란히 받아 줘야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번엔 옆에 있는 아주머니가 시비를 걸었다.

 

얘 배고파하는데?”

방금 먹고 왔어요. 졸려서 그래요.”

이거 손수건 물고 있는데 빨리 빼요!”

이 나려고 간지러워서 그러는거에요. 괜찮아요.”

 

나는 자리에 앉지도 못한 채 일어나기 싫은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잔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고 그 날은 도무지 짜증을 참기 힘들어서 보건소로 직행했다. 더 큰 임산부 배지를 받기 위해서였다.

 

항공사에서 받은 작은 배지에서 보건소에서 주는 큰 배지로 바꿨다.(본인촬영)

 

그 일이 있은 후 커다란 배지를 착용하고 전철을 이용한 날이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학생이 핑크의자에 앉아 있다가 나를 발견하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저 한 정거장만 더 가면 갈아타요. 앉으세요.”라고 했고 학생이 그래도 앉으세요.”라고 하려고 ..까지 발음한 순간 우린 발견했다. 핑크의자에 앉아 있는 할머니를. 그 짧은 순간에 어디서 나타나서 앉으셨는지 너무 몰라서 나도 모르게 어머나!’ 소리가 나왔다.

 

비상상황이 생길까 두려워 전철을 혼자 탈 때마다 남편에게 미리 연락해놨다.

 

그 모습을 보며 3호선에서 1호선으로 갈아탔다. 운이 좋은지 노약자석에 자리가 있었고 앉아서 간지 5분 정도 됐을까. 공포의 그 순간이 왔다. 술 취한 아저씨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역시나 표적은 나였다. 일어나라고 일부러 내 다리에 짐을 내려놨다. 그 순간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곤 전화번호 하나를 주문처럼 외우기 시작했다.

“1544-7769. 1544-7769. 1544-7769. 저 아저씨가 시비를 걸다가 혹시라도 내 배를 때리면 바로 문자해야지 그런데 문자할 시간이 있을까? 미리 써놨다가 전송되게 해놔야지. 그것보다 차라리 서서 가더라도 옆 칸으로 옮기는 게 좋지 않을까?”

 

이 생각 저 생각에 복잡한 순간 반대편 노약자석에 자리가 나서 술 취한 아저씨가 앉았다. ‘. 다행이다. 지금 일어나면 30분은 서서 가야했는데 정말 다행이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에이~ 설마 그 정도겠어?”라는 반응이 많다. 그런데 전철을 10번 타면 8번은 이런 일이 발생한다. 요즘엔 워낙 캠페인을 많이 해서 인식이 많이 개선됐지만 그것도 젊은 사람에 한해서다. 자리 전쟁은 임산부 vs 비임산부가 아니라 임산부 vs 노인이 된지 오래다. 나는 임신하고도 밭을 메지 않은 죄로 노약자석에 앉던 핑크의자에 앉던 노인들의 표적이 됐다.

 

  휠체어도 유모차도 매번 한참을 기다려야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다.

 

유모차를 가지고 전철을 탈 때마다 매번 혀를 끌끌 차며 바라보는 장면이 있다. 전철에서 내린 후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가면 항상 첫 번째에 타지 못한다. 유모차도 휠체어도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이동이 불가능한데 그런 사람들을 제치고 빨리 올라가려는 노인들이 엘리베이터를 먼저 장악했기 때문이다. “계단을 올라가기 힘들어서 그렇겠지라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에스컬레이터가 있을 때도 꼭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간다. 그것도 휠체어와 유모차를 밀어내고 말이다.

 

누군가 나보고 세대 간의 갈등이 극심한 곳을 뽑으라고 하면 전철이라고 답하고 싶다. 핑크의자를 백 날 만들어봤자 노인들의 인식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임산부든 장애인이든 모두 노인에 치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이 아닐까.

 

다시 핑크의자를 졸업하며. 다시는 핑크의자에 앉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간절하다.


포털 사이트 메인에 핑크색 의자 사진이 올라왔다. 서울시는 기존에 엠블럼 스티커만 부착돼 있던 배려석이 크게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여 배려석에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좌석과 등받이, 바닥까지 '분홍색'으로 연출키로 했다는 것이다.



사진 = 서울시


이 사진을 보고 나는 경악했다. “아, 이제 저 자리는 정말 못 앉겠다.”싶었다. 내 생각과는 달리 임신부들은 핑크의자를 매우 반기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저 사진을 보자마자 ‘이제 나는 노약자석에 더는 갈 수 없으며 일반 승객들의 눈치를 더 봐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임신 6개월, 임신부라는 티가 배로 확 나서 누가 봐도 임신부일 때 전철을 타게 됐다. 3호선을 타고 2정거장만 가서 1호선을 갈아타려했기에 의자에 앉아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전철에 탑승했다. 그런데 너무 충격적인 장면이 내 눈에 들어왔다. 홍해 갈라지듯 모든 사람들이 전부, 내가 자신의 앞에 가서 서 있을까 두려운 표정으로 시선을 회피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일어나라고 한 게 아닌데. 그 장면을 보자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앉아 있는 사람들 모두 피로에 지친 사람들이었기에 내 시선을 외면했을 것이다. ‘아. 내가 일어나라고 한 게 아닌데.’


그 후 일주일 뒤에 똑같은 코스로 전철을 타게 됐다. 이번에 탑승한 전철에서는 한 명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당당하게 나를 쳐다봤다. 젊은이 한 명을 빼고 앉아 있는 모든 사람들이 노인이었기 때문이다. 불안한 눈빛으로 앉아 있던 젊은이는 내가 멀찍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눈빛으로 2정거장을 앉아갔다. 내가 내리는 순간까지 매우 고통스럽게 앉아 있는 것 같아서 내 마음이 더 불안했다. ‘아. 내가 일어나라고 한 게 아닌데.’


전철을 탈 때마다 걸어 다니는 폭탄이 된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때문에 임신부들은 전철을 타면 일부러 임신부가 앉아 있는 앞에 서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나는 오늘 서서 갈 힘이 있으니 앉아 있고 싶은 분들은 제 눈치 보지마시고 앉아가세요~라는 무언의 뜻이 알려지기 때문이다. 


씩씩하게 서서가도 괜찮았던 나에게도 고비가 왔다. 임신 8개월 차에 접어들면서 서서가는 것이 너무도 버겁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나는 노약자석에 엄청난 눈총을 받으며 앉아가기 시작했다. ‘요즘 젊은 애들은 좀 봐줘야 돼, 양보 이런 게 없어’라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비난이 시작됐다. 조용히 말씀하지도 않으신다. 전철 칸에 있는 모든 사람이 들으라고 큰 소리로 말씀하신다. 그래도 너무 힘들어서 앉아갔다. 


한 번은 노약자석 3석이 다 비어있어서 봉을 잡고 일어날 수 있는 끝 쪽 의자에 앉으려고 엉덩이를 붙이려는 순간 어떤 할머니가 나를 세차게 밀친 적이 있었다. 전철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 장면을 보고 경악했다. 어떻게 2자리가 남아있는데도 만삭의 임산부를 밀수가 있는지 어이없는 시선으로 할머니를 쳐다봤다. 그러자 할머니가 말했다. “임신했는지 몰랐지, 이 자리 줄까?” 그 말을 듣는 순간 표정 관리가 너무 안됐다. 끝자리가 뭐라고 임신부를 밀면서까지 저 할머니는 저 자리에 앉으려했을까. 임신부가 아니더라도 젊은이는 밀고 앉아도 된다는 할머니의 생각에 너무 화가 났다. “됐어요, 그냥 앉으세요.”라는 말을 내뱉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씩씩대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 일본 도쿄에서 전철 탈 일이 있었다. 전철을 타고나서 노선도를 확인하기 위해 전철문 위에 걸려있는 노선도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아주머니가 나를 계속해서 쳐다봤다. 내가 외국인으로 보이고 길을 모르는거 같아서 자꾸 쳐다보나 했는데 갑자기 아주머니가 벌떡 일어나더니 말씀하셨다. 
“아, 정말 미안합니다. 당신이 임신한 걸 내가 한 번에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여기 앉아서 가세요.” 그 말을 듣고 괜찮다고 고개를 젓고 아니라고 손을 흔들었는데도 아주머니는 나를 의자에 앉힌 후 최대한 나와 떨어진 곳으로 가서 서 계셨다. 내가 미안해할까봐 아예 멀리 가버린 것이다. 그 마음이 어찌나 고맙던지 한국에 있는 엄마한테 문자로 그 상황을 전할 정도였다.   


전철을 타면 나오는 안내방송에서 노약자석에 앉지 말라는 소리는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 타고 있다가 노약자가 오면 양보해달라는 방송이 나온다. 앉아있어도 되는 좌석이라는 것이다. 2000년대 초에 박카스 CF에서 노약자석에 앉자는 친구의 권유에 “우리자리가 아니잖아”라는 말로 젊은 남성 두명이 서서 가는 장면이 방영됐다. 그 때부터 노약자석은 앉으면 안되는 곳이 되었다. 앉으면 안되는 곳이 되다보니 그 곳은 노약자만 앉을 수 있게 됐고 어느 순간부터는 몸이 불편하거나 임신부도 앉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노인만 앉아야 된다는 노인들의 전용 좌석이 돼버렸다. 그렇게 우리는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한 칸당 최대 12석까지 자리가 비어있어도 절대 앉지 말라며 쉴 곳을 빼앗아 버린 게 아닌가 싶다. 


이번에 핑크색으로 도배된 자리는 일반석 양 끝 좌석이다. 임신부가 노약자석에 앉아도 된다는 생각을 노인에게 심어주기는커녕 이제 임신부는 일반석 끝에만 앉아라라는 뜻으로 노인들이 받아들일까. 그리고 일반석에 앉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눈칫밥을 먹으며 일반석에 못 앉아 가는 것은 아닐까, 그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좌석을 더 빼앗아 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며칠 전,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어디서 시원한 바람이 내 배 쪽을 향해 불어왔다. 무슨 일인가 해서 쳐다봤더니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가 미니 선풍기를 손에 쥐고 내 배를 향해 바람을 날리고 있었다. 아이가 왜 그러고 있는 걸까 궁금해서 쳐다봤더니 더운 여름날에 뱃속에 있는 아이가 더울까봐 바람을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양보와 배려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받는 사람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나는 내 배가 지치고 힘든 직장인에게 ‘너 당장 일어나서 양보해!’라는 뜻으로 읽히지 않았으면 한다. 그렇기에 ‘당신은 이곳에 앉을 자격이 없습니다.’라는 핑크 의자가 반갑지 않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리도 각박해져서 임신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며 핑크색으로 압박해야하는 세상이 온 것일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