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선명하게 뜨고 병원에 가서 임신 사실을 확인했다. 드라마에서 봤던 것처럼 펄쩍 뛰며 좋아하기 보단 걱정이 앞섰다. “아. 나 이제 뭐해야하지?”
주변 친구 중에 임신한 친구도 없었고 조언을 들을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국내 최대 임신출산육아 정보 카페라는 곳에 가입해서 이것저것 읽기 시작했다. 성별을 알고 싶어서 각도를 재서 짐작해보는 ‘각도법’ 이야기부터 ‘이게 가진통인가요? 진진통인가요?’라는 글까지 처음 듣는 단어가 넘쳐났다.
△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책은 매우 다양하다.(본인촬영)
인터넷에 게재된 글이다 보니 믿을만하기도 하고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책을 사서 모으기 시작했다. 책도 저자마다 다 다른 입장을 보였는데 출산에 대해 이야기 할 땐 한결같이 같은 주장을 하고 있었다. “한국 사회는 임신부가 선택한 방법으로 출산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허나 출산의 과정은 임신부 혼자 고스란히 이겨내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반드시 임신부의 입장을 존중해야합니다.”
사실 책을 읽기 전부터 나는 원하는 출산 방법이 있었다. 바로 수중분만이다. 사람들은 내가 수중분만을 한다하면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 그렇구나라고 생각한다. 허나 나는 나를 위해서 그 분만법을 선택했다. 물을 워낙 좋아해서 아이를 가졌을 때도 온천 태교를 했고 아이를 갖기 전에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목욕탕에 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가 좋아하는 물에서 아이를 낳으면 긴장감도 덜하고 편히 낳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중분만을 알게 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과학 선생님이 출산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여주셨는데 뮤지컬 배우 최정원씨의 출산 과정이 담겨있었다. 어떤 고통인지는 몰라도 진통이 오자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과 물에서 아이를 낳아 바로 안아 올리는 장면이 당시 14살의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뒤로 나는 반드시 수중분만을 하겠다고 떠들었고 그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나는 출산 예정일을 열흘 앞두었을 때까지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산부인과에 다녔다. 가깝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그곳에서 수중분만을 한다며 인터넷 홈페이지에 써놨기에 간 것이다. 산부인과는 수중분만 외에도 그네분만 등의 특수분만을 한다며 인터넷에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달이 다 돼가도록 담당 선생님이 나의 분만 방법을 묻지 않으셨다. 왜 묻지 않으실까 궁금해서 8개월차에 접어들 때 선생님한테 여쭤봤다.
“저, 수중분만 하고 싶은데요.” 그 말 한 마디에 선생님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리곤 나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요즘 엄마들이 착각하는 게 있는데 물에 들어가서 애 낳는다고 더 쉽게 낳을 거 같아요? 아이를 낳는 건 아플 거 다 아프고 낳아야 하는거에요. 쓸데없는 정보가 요즘 너무 많아서 탈이에요. 수중분만 할 생각은 접으세요.”
남편과 나는 담당 선생님한테 왜 혼났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분명 각종 출산 관련 책에서는 산모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는데 수중분만을 원한다는 이유로 왜 혼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뒤로 병원을 바꿔야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수중분만을 못해서 뿐만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담당 선생님이 나에게 겁을 줬기 때문이다.
“태반이 많이 밑으로 내려왔어요. 진통 오면 어떻게 될지 몰라요.”
“전치태반이라는 말씀인가요?
“전치태반은 아니에요.”
“그럼 정상범위에서 얼마나 내려갔나요?”
“정상범위에 있어요.”
이게 무슨 소린지 병원에 갈 때마다 알 수가 없었다. 태반이 많이 밑에 있는데 정상범위 안에 있다니 이게 무슨 소린가. 설상가상으로 막달에 접어들자 담당 선생님은 제왕절개 이야기를 시작했다. 태반이 밑에 있어서 진통 왔을 때 정상 분만이 어려울 수 있으니까 그 날 상황 봐서 응급으로 수술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을 병원에 갈 때마다 들었다. 응급으로 수술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태반이 밑에 있다는데 그 밑에 있다는 것이 정상 범위 안에 있다는 이상한 소리에 나는 반발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엄마도 우리 친척 언니들도 그리고 우리 할머니도 모두 애를 쉽게 낳다며 출산의 기쁨만 얘기해줬는데 병원에 갈 때마다 혼나고 겁을 먹으니 도무지 그 산부인과에서 담당 선생님과 함께 아이를 낳을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예정일을 일주일가량 남기고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산부인과로 병원을 옮겼다. 태반 검사를 다시 했는데 정상범위에 잘 있었고 그로부터 일주일 뒤에 나는 진통이 올 때 태아의 심박수가 떨어지는 바람에 수중분만이 가능한 병원임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수중분만을 못했다. 그렇게 자연분만으로 첫째를 낳았다. 코앞에서 원하는 분만을 못했지만 응급상황없이 그리고 원하는 대로 무통주사도 맞지 않고 자연분만을 했다는 것에 만족했다.
△ 수중분만실의 모습. (본인촬영)
그리고 2년이 흘렀다. 둘째를 낳기 위해 다시 집에서 1시간 떨어진 병원을 향했고 이번엔 원하는 수중분만을 했다. 은은한 조명에 잔잔히 깔리는 음악. 따뜻한 물속에 들어가니 부력 때문인지 내 몸이 살짝 떠올랐다. 남편이 내 뒤에서 허벅지를 잡아 힘을 줄 때마다 같이 당겨주니 세배로 더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임신부의 3대 굴욕 중 하나인 회음부 절개를 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낳고 난 뒤 입원실에 가자마자 온천을 한 듯 나른한 느낌이었다. 그리곤 정말 행복하다는 생각이 온 몸을 감쌌다. 수중분만의 효과도 있었겠지만 원하는 대로 마음 편히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만약에 병원을 바꾸지 않았으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 진통이 오는 정신없는 상황에서 태반이 밑에 있다는 담당 선생님의 말만 듣고 제왕절개를 하지 않았을까. 그 병원, 그 선생님을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난다. 수중분만 하겠다는 그 날, 나는 도대체 왜 혼난 것일까.
요즘 태어나는 아이들의 생일과 시간은 담당 선생님의 수술 스케쥴에 의해 결정된다는 우수개소리가 있다. 세계보건기구가 권장하는 제왕절개 분만비율은 15%이며 우리나라의 경우 35~40%로 매우 높은 상황이다. 제왕절개 분만이 의료 기관 및 관계자의 영리추구에 의해 시행돼서는 안 된다는 가톨릭 의료기관 의학윤리지침서도 있다한다. 돌이켜보니 혹시 정상범위에 있지만 태반이 밑에 있어서 응급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담당 선생님의 말의 숨은 뜻이 느껴지는 것 같다. 혹시 담당 선생님은 나를 생명을 걸고 아이를 출산하는 산모라고 생각하기 보단 그저 한 명의 ATM 기기로 본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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