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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ㆍ출산ㆍ육아를 지표로만 보는 사회임신ㆍ출산ㆍ육아를 지표로만 보는 사회

Posted at 2017.03.07 15:26 | Posted in [오늘 이야기]


 

- 아이를 잘 보라는 정책보다는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엄마 너무 힘들어서 이제 애 못 봐주겠어. 둘째 낳으면 몸조리 한 달하고 첫째 데리고 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일 그만두고 들어앉으면 안 돼?”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첫째를 봐주겠다며 아이 낳자마자 우리 옆 동으로 이사까지 왔던 엄마가 더는 애를 못 보겠다 했다.

 

엄마가 힘들다는 것은 매 순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 년에 두 번은 해외여행도 보내주고 여름 대비 에어컨도 설치해주고 냉장고가 고장 났다 하면 12개월 할부로 냉장고도 사드렸다. 애 볼 때 소파가 필요하다, 싱글침대가 필요하다, 이렇다저렇다 하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결제 버튼을 눌렀다. 엄마가 애 안 봐주겠다고 하면 큰일이니 눈치가 보였고 그럴 때마다 나는 ISP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 출산 후 5달만에 대형 프로젝트를 마무리 하는 모습, 워킹맘으로의 삶이 시작됐다. (본인촬영)


저렇게 눈치를 본 이유는 하나였다. 밤낮없이 첫째가 엄마 집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야근이 잦았고 주말 근무가 거의 매주 있었기 때문에 첫째를 데리고 올 시간이 없었다. 첫째가 처음으로 뒤집었을 때도, 처음으로 엄마라고 말을 했을 때도, 걸음마를 막 떼던 순간에도 나는 그 장면을 보지 못했다.

 

2015년 여름, 나는 출산한 지 32일 만에 출근했다. 사무실 업무가 폭탄으로 쌓여서 안 나갈 수가 없었다.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도 노트북을 갖고 들어가서 일을 했다. 심지어 출산 10일째 되는 날은 사무실에 나가서 일하고 다시 산후조리원으로 복귀했다.

 

 

“뭐 그런 회사가 있냐! 너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가냐!”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아주 작은 비영리 단체였고 내 업무를 대체할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1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 아니면 안 되는 일이,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는 일이 진짜로 있었다.   


 

아이가 크면 클수록 죄책감이 밀려왔고 어느 날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을 못 썼으니 주 4회만 일하고 하루는 쉬겠다고 선언했다. 그렇게 평일 하루를 쉬면서 한 일이 아이와 함께 문화센터 가기였다. 조리원에서 만났던 엄마들과 문화센터 수업이 끝날 때마다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다 왔는데 갈 때마다 나는 더 스트레스를 받았다.

 

△ 문화센터에 가서 정보를 많이 얻었으나 그 만큼 스트레스도 컸다. (본인촬영)


“얘는 이유식 얼마나 먹어요? 우리 애는 100cc를 못 먹어요.”
“이 과자 먹여봐, 애가 진짜 좋아해”

 

친정엄마가 만들어주는 이유식을 먹던 우리 첫째가 얼마나 먹는지 나는 알 길이 없었고 이유식의 양을 몇cc라고 이야기하며 봐줘야 하는 줄도 몰랐다. 아기가 과자를 먹는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그 순간 나는 벽이 되고 싶었고 땅 밑으로 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 자리를 떠나며 내가 나쁜 엄마라는 생각에 너무나 슬퍼하는 동시에 단축근무를 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업무처리를 위해 계속해서 전화를 걸어왔다. 급한 업무는 눈감을 수 없어서 집에 와서 다시 노트북을 켰다. 그렇게 나의 단축근무는 쉬는 것도 아니고 일하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날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좋은 엄마 되기를 포기한 나는 둘째를 갖게 됐다. 좋은 엄마도 못 되는 판에 남편과 이야기를 끝낸 가족계획을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지 절대로 정부 정책이 좋아서 아이를 가진 것이 아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10년간 80조 원을 쏟아부었다고 하는데 아이를 낳은 나는 왜 피부로 와 닿지 않을까 싶어서 찾아봤더니 정부 정책이 대부분

자녀 3명 이상을 둔 집에 혜택이 가도록 만들어 놨다. 애를 낳는 사람만 계속 낳으라고 유도하는 정책인데 어떤 엄마가 직장을 다니면서 자녀를 3명 이상 낳아 기를 수 있을까. 특히나 나처럼 작은 단체에서 근무하고 있는 워킹맘은 출산휴가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러니 아이 낳는 것을 아예 포기하는 가정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혹시나 해 대선주자들의 정책을 찾아봤는데 역시나 매력적인 정책이 하나도 없었다. 개인적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해줄 터이니 집에 가서 아이를 보라는 것이 가장 맘에 안 드는데 모든 후보가 이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근로시간을 단축한다는 것은 누군가가 내 일을 더 해야 한다는 소리이자 함께 일하는 다른 회사들과의 소통이 8시간 근무 시간보다 더 단축된다는 소리다. 이런 근무를 하면 업무 효율이 오를까? 근로 시간을 단축하는데 과연 눈치 보기 직장문화가 근절될까?

 

 

그것보다 워킹맘으로서 내가 바라는 것은 부모가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여성이 아이를 낳고 육아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자아실현이라는 이유도 있다. 그런 여성들에게 근무시간 단축과 같은 정책이 매력적일 리가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해서 안전하게 아이를 맡기고 아이를 데려올 수 있는 곳을 더 많이 만들어주는 정책을 생산했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이다. 일찍 집에 가도 눈치 주지 않는 직장 문화를 만들기보다는 정시에 퇴근해도 눈치 주지 않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낫다는 소리다.

 

정부의 출산율 하락 대책을 보면 여성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정책을 찾을 수가 없다. 모두 어떡하면 엄마와 아이를 붙어있게 할까에 골몰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여성을 위한 정책을 하나 발견했던 적이 있는데 성남시의 산후조리 지원금이었다. 한국 여성의 산후조리가 과하다고 지적하는 시대에 산후조리 지원금을 준다는 소리에 정말 놀랐다.

 

 

사실 한국 여성의 산후조리가 과한 것이 아니라 서양 여성과의 골반 모양 및 크기의 문제, 온돌 사용으로 인해 추위를 잘 타는 체질 등 때문에 한국 여성들은 산후조리를 잘할 수밖에 없다. 
 

한국 여성의 산후조리가 과하다며 매번 예로 드는 미국 같은 경우 민간 보험사들이 보험료 지출을 줄이기 위해 임의로 출산 후 입원보장 일수를 줄여버렸고 미국 산모들은 아이 출산 후 바로 퇴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 애 낳고 회복이 빨라서 바로 퇴원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어 산모와 아이 건강을 위해 미국 연방정부와 각 주 정부가 출산 후 24시간 이후에 퇴원하는 법안까지 통과시킬 정도였는데 이것을 한국 여성의 산후조리와 비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올해는 엄마가 아이 보는 시간을 늘리기보단 한 명의 여성이 사회에서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행복하게 살기 위한 정책이 쏟아지길 바란다. 임신ㆍ출산ㆍ육아를 지표로만 보지 않을 때 자연스럽게 출산율이 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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