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쓰비_저세상커피.jpg
이 광고 다들 짤방으로나마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저세상 커피’라는 이름의 짤로 많이 오르내린 이 광고는 90년대 말 레쓰비 지면 광고입니다. 다소 충격적인 비주얼인데, 아마 제작자가 영화 ‘제5원소’를 좋아했나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당시 시대상이 반영된 광고입니다. 뭐만 하면 밀레니엄을 갖다 붙이기 바쁜 시대인걸로 기억합니다. 어쩌면 현실이 IMF라는 지독하게 내려앉은 시대이기에, 미래에 대해 더욱 갈망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커피하면 고급적인 인상이나 따뜻한 연인들의 감정으로 어필합니다. 레쓰비는 후자에 가까웠습니다. ‘저 이번에 내려요’, ‘우리 언제 만난 적 있지 않아요’ 같은 멘트를 거침없이 날리는 오글거림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런 감성으로 어느 정도 입지가 굳혔을 법한데, 그런 이미지를 다 던지고 새로운 이미지 전환을 꾀해보려 했던 것 같습니다. 시대도 밀레니엄이고, 여태껏 커피가 소구하지 못한 점을 이야기해보자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의식의 환기를 노린 것이겠죠. 그러나 얼마 못 가 묻히고 말았습니다. 도박이었던 것이죠.
광고가 너무 주관적이면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합니다. 광고에서 메시지를 정의하는 과정을 부호화라고 말하고, 이를 대중들이 이해하는 과정을 해독이라고 합니다. 앞선 광고가 소비자에게 웃음거리가 되었던 것은 결국 소비자가 광고 메시지의 공감 실패, 즉 부호화의 실패인 것입니다. 너무 주관만 앞선 나머지 소비자가 공감하지 못하는 소구가 되버린 것이죠. 하지만 이 시도에는 의의가 있었습니다. 누가 커피 광고에 기존까지의 달달한 감성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겠습니까. 감히 여느 광고보다 파격적이었노라고 생각합니다.
파격(破格), 틀을 파괴한다, 기존의 갖춰진 관념과 의식을 깨어버린 새로운 생각, 새로운 제안을 내놓는 일입니다. 파격적인 생각이 모이면 혁명이 되고, 파격적인 광고는 대중의 이목을 자극합니다. 물론 모든 파격이 그렇다고는 할 수는 없습니다. 실패한 파격은 그 대가로 대중들의 냉소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내 사람들의 기억에 사라지고 맙니다. 그래도 모든 파격은 하나의 업적을 남깁니다. 대중이 기존까지 생각할 수 있었던 틀을 깨어, 더 넓은 사고의 폭으로 인도해주는 것입니다. 일종의 선구자인 셈이죠.
대신 파격에는 책임이 따라야 합니다. 틀을 깨면, 새로운 것을 제시해야하는 그런 사명 말입니다. 그게 없다면 단순히 그건 파격이 아니라 파괴겠죠. 그래서 파격은 가볍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기존의 얽매이던 틀을 구태라고 단정하고, 그것을 넘어서 대안을 제시하는 것, 그것이 파격의 목적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생각나는 광고가 있습니다. 선거 광고인데, 벌써 10년도 더 지났네요.
#_노무현
노무현의 눈물 한 방울이 대한민국을 바꿉니다 (2002)
선거, 특히 대통령 선거 광고 같은 경우에는 후보자의 약한 모습을 잘 나타내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유권자들에게 후보자가 나약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으니까요. 이런 광고에서는 대개 ‘리더라면 이래야 한다’는 저변을 깔고 PR을 시도합니다. 강인한 모습, 유능함을 어필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광고는 완전히 그런 불문율을 무시했습니다. 소박한 이미지야 그렇다 치더라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메인으로 하기에는 실로 파격적입니다. 존 레논의 ‘Imagine’ 선곡 또한 여기에 한 몫 더합니다. 가사지만 나라가 없다고, 자기 재산이 없다고 생각해보라는 말들이 태연하게 대통령 광고에서 등장한다는 건 광고로써 혁명이지만 동시에 승산마저 미지수였습니다.
눈물 흘리는 후보자와 모험적인 팝송. 얼핏 보면 파격이라 해놓고 의미 없는 시도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탄탄한 메시지가 숨어있습니다. 답의 실마리는 노랫말에서부터 있습니다. 천국도, 나라도 심지어 자기 재산도 없다고 생각해보세요라고 한 말에는 이어, 오늘을 위해, 평화를 위해 그리고 사랑으로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프레임보다 진짜 의미를 생각해보자는 거죠. 그리고 이런 것들을 위해, 기꺼이 눈물도 흘릴 수 있는 사람. 광고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것입니다. 잘난 점을 강조하기보단, ‘사람됨’의 리더를 말하고 싶은 광고. 어찌 보면 당신의 철학이 오롯이 반영된 광고인 것 같습니다.
#_병맛
아마 이것도 파격입니다.
사실 파격의 정의는 더 넓어지고 있습니다. 거창한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이슈가 파격일 것 같습니다. 백종원의 요리법도, 김기태의 창조야구(참 소신 있지 않습니까ㅋ)도 모두 파격이고, 더 나아가 병맛 또한 오늘날 파격이 진화한 소산이라고 생각합니다. 병맛이 무슨 진화까지냐고 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과거의 광고를 생각해본다면 확연히 달라진 구석이 많습니다.
과거의 광고는 말해야 하는 것이 꼭 분명해야 했습니다. 15초든 30초든, 소비자에게 강점들을 설명하거나, 차라리 강압적인 세뇌(주로 대부업체 광고를 생각하시면 됩니다)를 해서라도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주입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래서 메시지에 전달하기에 급급한 구석이 보이는 광고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대의 흐름이 지나자, 그런 조급함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편강한의원 (ⓒ 미쓰윤, 2014)
유튜브 광고로써 많은 화제가 되었던 편강한의원 광고입니다. 진정 병맛의 진수입니다. 그것도 진지하게 병맛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0대에게는 웃긴 영상으로써, 병맛 코드가 먹혔을 거라고 봅니다. 그런데 아마 기성세대에게는 이 광고가 납득이 안 갈 것입니다. 전혀 뭘 말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반응이겠지요. 그래도 저는 두 세대에게 공통적으로 인지로써의 전략은 성공했다고 봅니다. 20대에게는 그들의 언어로써 어필한 것, 그리고 기성세대에게는 낯선 병맛으로 인한 자극으로써의 인지가 가능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격식의 틀에 매여있던 기존까지의 광고에서, 말하기에는 차마 저렴한(?) 어필들이었던 것들을 과감하게 얘기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까지 B급 문화로만 치부해왔던 것들을, 세상에 표출하고 또 다른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병맛의 표출은 단순히 웃긴 것을 넘어서, 오늘의 공감대를 제대로 알고, 말하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서 이 또한 파격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파격에 대해서 역설을 했지만, 글을 쓰다보니 파격적이지 않다면 어떨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사실 모든 광고는 파격을 바탕에 둡니다. 기존과의 차별을 강구함으로써 그 시작점을 찾는 것이죠. 그 시작이 없다면 결국 모든 광고는 시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 역으로 파격하지 못하는 사회는 무슨 사회일까요. 기존 틀에 만족하는 사회는 결국 틀에 갇혀있음을 말합니다. 진보할 수 없는 사회인 것이죠. 파격은 비록 뭇사람의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겠으나, 자신의 숙명을 바쳐 세상의 틀을 깬다는 것은 위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손자병법에 전승불복 응형무궁(戰勝不復 應形無窮)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싸움에서 이겼다고 할지라도 똑같은 방식으로 다시는 이길 수는 없으니 주어진 상황에 맞게 끝없이 변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기존에서 변화하는 것, 파격(破格)은 과거에도 오늘도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조건임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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