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를 요즘 읽고 있습니다. 좋은 책입니다. 많은 치유를 얻었고, 개인적으로 공감 가는 부분이 많은 책인 것 같습니다. 우리 안에서 벌어지는 감정을 비롯해서 심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대목이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점점 개인의 완벽주의의 기준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완벽주의 경향성이 세대를 지나오면서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울과 불안으로 가는 포털이 점점 넓이지고 있는 것이지요. 2017년 메타 연구에 따르면, 1989년부터 2016년까지 자신과 타인에 대한 완벽주의적 기준이 꾸준히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 허지원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p109
타인을 의식하고, 비교하면서 나의 기준이 높아지면서 정작 스스로에 대해서 인색해지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시대와 타인을 항상 의식해야하는 개인은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힐링, 치유와 같은 컨텐츠가 주목받는 것도 이러한 흐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대가 이런 흐름이니 광고도 이에 맞게 반영합니다. 나는 불행한데, 광고는 세상모르고 마냥 행복하게 보인다면 누구도 그 상품에 대해 좋게 봐주지 않겠죠. 이번 글에서는 시대와 개인의 변화에 따라 바뀌었던 광고의 모습들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박카스 - 나에게로 집중
박카스 광고는 초창기를 제외하고는 제품 기능을 굳이 언급하지 않습니다. 업계의 굳건한 1위라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1등을 굳히기 위해 박카스는 다양한 시도를 모색하였고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그날의 피로는 그날에 푼다. 박카스 (1994, 동아제약)
20년도 더 된 박카스의 광고입니다. 신검장에서 “꼭 가고 싶습니다!” 외치며 청춘을 어필하던 박카스 광고보다도 더 전 시대의 광고입니다. 박카스를 통해서 가족 간의 사랑, 정(情)의 매개로 표현합니다. 관계를 통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를 얻고, 힘을 얻는다는 식의 광고는 과거에 많았습니다. 개인보다 ‘협동’에 대한 가치가 확고했던 시대였기에, 이는 당연한 메커니즘인 줄 알았죠.
나를 아끼자, 박카스 (2018, 동아제약)
그러다 지극히 개인을 위한 시대가 왔습니다. 그러나 이전 시대보다 개인은 더욱 우울함과 더 근접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광고보다 인물 배경을 더욱 힘든 면을 부각하면서 시작합니다. 같은 가족이지만, 오히려 가족 속에 소외된 개인에 초점을 맞춥니다. 인물은 스펙이라는 단어를 통하여, 기준을 의식하는 오늘날의 현실과 본인의 노고를 잘 알아주지 못하는 불만도 토로하는 것 같습니다. 더 솔직해졌고, 타겟을 개개인으로 더 좁히면서 특정한 타겟들의 공감을 브랜드로 끌고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광고는 타겟 외의 사람들이 이해나 공감이 없다면 외면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모두가 자기의 노고가 크다고 하는 세상이기에, 한편으로 이는 감수해야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왕뚜껑 - 변칙으로 개인을 들여다보다
지키고 싶은 따뜻함 (2018, 팔도)
사실 이 광고를 보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보통 식품 광고에서는 저렇게 부정적인 감정을 잘 이용하지 않습니다. 광고학에서 ‘정교화가능성 모형’라는 것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개인은 가전품이나 의약품(고관여제품이라 합니다)을 고를 때는 개인과 관련된 정보들을 바탕으로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음료나 라면 같은 본인의 이슈와 거리가 먼 제품(저관여제품)은 주어진 정보보다 감성으로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라면광고들은 거의 즐겁거나 웃긴 상황을 연출하거나 신나는 음악을 깔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런 원칙들을 왕뚜껑 광고에선 철저히 배제하였습니다. 결론이야 호의적인 정서로 유도로 하긴 했지만, 기존까지 해온 왕뚜껑의 광고를 비추어본다면 정말 상반된 이미지입니다. 이런 모험을 감행한 데에는 결국 타겟 소비자의 인사이트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타겟의 일상과 정서를 제시하면서 얻는 공감이 일반적인 라면 광고로 얻는 공감보다 편익이 더 크다고 계산한 것입니다.
일리 있는 선택입니다. 시간적, 공간적, 경제적 모든 것이 제한된 10대가 다른 계층에 비해 컵라면 소비 비중이 더 높을 것입니다. 여기에 10대는 많은 부분을 타의에 영향을 받는 것이 많습니다. 이것이 갈등으로 스트레스로 이어지는 경험은 다들 한번 쯤 있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광고에서의 공감은 소비자가 브랜드의 경계를 허무는 예리한 기술입니다. 이들의 일상에 더 깊게 파고들수록 타겟에게 브랜드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집니다. 왕뚜껑의 이런 변칙적인 선택, 즉 10대 개개인의 일상 어두운 면을 비추는 것을 통하여 공감을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직방 - 개인을 더 쪼개어보기
어디에 살든 나답게 살자. 직방 (2019, 직방)
이제 전문가가 나서서 제품의 효험을 ‘증언’하는 광고는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특성은 저마다 다양한데 전문성만으로는 모두의 공감을 얻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 빈자리에 개인의 일상에 초점을 맞추는 광고가 주류를 이룹니다. 특정 타겟만을 위한 광고로 자리잡는 것은 위험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위의 광고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광고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또 다른 타겟에게도 프로포즈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타겟이 쌓이면, 모든 타겟들은 ‘나만을 위한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수많은 고객들이 있는 시장을 잘게 쪼개어 먹는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불특정 다수가 아닌 특정 소수를 향한 광고가 많아지면서, 앞선 사례들과 같이 개인 일상에서의 소소한 공감을 사는 광고들이 늘고 있습니다. 개인의 우울감이나 슬픔을 광고에서 잠시나마 위로를 얻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냥 상술의 일환으로 치부하기에는 아까운 구석들이 많습니다. 그런 광고들을 오늘 우리의 일상에 그린 짧은 단편 영화들이라고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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