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선거들을 앞두고 정당들은 대개 굵직한 캠페인 광고를 집행합니다. 대통령 선거인 경우는 TV나 신문을 통한 광고전이 치열합니다. 후보자의 (밀고 싶은) 이미지를 전국의 유권자에게 알릴 수 있는 최대의 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입에 감기는 슬로건, 참신한 이미지를 어필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기실 저는 대선 광고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회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이 등장하고, 스마트 기기가 활성화되면서 유권자는 TV 외에도 후보의 정보들을 원하는 만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TV에서 후보자를 치장해도 유권자는 후보의 이면들을 충분히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TV 광고는 아직 역할이 남아 있습니다. 스마트폰보다 TV가 더 친숙한 장년층 이상의 유권자를 위한 어필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TV 광고는 단방향성,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이미지 중심 매체라는 것입니다. 전국적으로 방송되는 이 매체를 통해서, 유권자들은 30초라는 시간 동안에 광고에 노출됩니다. 유튜브처럼 의견이 형성되고 상호 공유되는 것에 제한이 되기에, 유권자에게 후보자의 존재나 이미지를 알리고 가르치기에 딱 좋은 매체입니다. 한마디로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줄 수 있는 곳이라는 광고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광고는 대개 후보의 캐릭터와 소통 방식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는 2012년 대선에서 ‘여자1번 후보’와 ‘남자2번 후보’의 광고들을 단편적으로 비교해볼까 합니다. 대선 TV 광고가 좋은 사례들도 많지만, 굳이 이 해의 두 광고를 뽑은 것은 가장 최근의 대선이기도 하지만, 극명하게 다른 시선을 가진 광고였기 때문입니다.
여자1번_개인에, 개인에 의한, 개인을 위한
준비된 여성 대통령 (2012, 새누리당)
2006년에 있었던 피습사건이 모티브인 것 같습니다. 후보의 인생이야기를 다룬 광고는 많았지만, 특정한 사건을 다루어 어필한 적은 이례적입니다. 사건과 상처를 통한 후보의 깨달음, 생각 등을 어필하고자 하는 것이 광고의 주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상처를 입었던 본인의 네거티브한 상황, 약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청자에게 동정심을 유발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광고에서 논리정연함보다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 더 큰 힘이 나타낼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수반을 꼽는 광고에서 메시지는 배제된 채 일방적으로 감정적 호소만 한다는 것은 그리 바람직해보이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국가로 접근이 아닌, 후보자 개인으로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은 어떤 뚜렷한 메시지나 주제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험 많은 선장은 파도 속으로 들어간다(새누리당, 2012)
이 광고에서도 개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경험 많은 선장’의 이야기를 통해 후보의 오랜 경험으로 위기에 강한 준비된 리더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짧지만 대체로 자기 PR의 성향이 강한 광고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수반으로써의 PR이라고 하기에는 좀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광고든 명확한 소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잘했는지는 알겠지만, 무엇을 잘하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의지가 결여되어 있음에도 ‘파도 속으로 들어간다’는 말을 이제 와서 보니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광고를 보면 후보 개인에 초점을 맞춘 광고입니다. 단순히 개인을 어필하기에는 좋은 광고입니다. 하지만 대선 광고에는 개인보다는 국가를 우선으로 두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생각하는 국가보다 대통령으로서의 어젠다를 유권자에게 피력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기서 개인을 강조한다는 점은 이미 후보 개인이 곧 국가라는 점으로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유권자가 보는 관점에서 유권자를 위한 광고가 아닌 개인을 위한 광고라는 점에서 과거의 프로파간다와 많이 닮은 모습이 보입니다.
남자2번_참신했지만 전형적인 야당 후보
사람이 먼저다(민주통합당, 2012)
남자2번 후보의 가장 첫 광고인 ‘출정식’ 광고입니다. 여기서 명확히 보이는 점은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는 점이다. ‘평등, 공정, 정의’라는 세 키워드를 들어, 새 시대를 열 것을 말합니다. 얼핏 보면 다소 뻔한 키워드로 보일 수 있습니다. 정의로운 결과, 공정한 과정...누구든지 생각할 수 있는 교과서적인 정치의 이상향입니다. 그럼에도 왜 굳이 이 단어를 말해야 했던 것은, 그렇지 않은 우리 현실임을 방증시키기 위함이었을 겁니다. 현실에 젖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잊은 국민에게, 어떤 것이 문제인지를 짚고 대안의 방향을 말하고 싶은 것이죠. 야당이라면 당연히 견지해야 할 포지션이라고 봅니다. 원색적인 비난보다는 더 논리적인 전략이었지만, 유권자에게는 키워드가 다소 ‘뻔하다’는 느낌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남자2번 후보는 제1야당에서 나왔습니다. 당에서는 후보에게 정권 심판이라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하지만 국민에게 무작정 ‘정권 심판’이라는 슬로건을 외쳤다가는,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딱지가 박힐 것이 뻔합니다. 메시지에는 포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미지도 어느 정도 가꾸고, 유권자가 생각하는 기준과 니즈를 건드려야 메시지를 이해하고 공감의 여부까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남자2번 진영은 그 포장을 국민의 현 실정으로 선택했습니다.
문재인의 이름으로 당신도 출마해주십시오(민주통합당, 2012)
야당의 포지션은 매번 ‘친서민’이었기 때문에, 서민과 청년층을 타겟에 맞춘 광고를 냈습니다. 메시지 자체에도 정당의 기존 당론, 후보의 지론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담겨있습니다만, 다소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애국가입니다. 2012년 유난히도 종북 공격과 사상 검증까지 휩싸여야 했던 후보였기에, 이 애국가가 조금은 절박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남자2번의 모습보다 유권자의 현실을 고스란히 나열하고 있습니다. 지나치는 현실이 문제라고, 그리고 이것을 바꾸겠다는 ‘정권 심판론’이라는 담론으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남자2번의 광고는 타겟과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문제의식의 대안이 ‘정권교체’라는 방식이 다소 답정너처럼 보여집니다. 조금 더 다양한 방식과 논리 전개가 있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사람이 먼저다’라는 카피는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후보와 정당이 말해야 하는 메시지의 정수가 헤드 카피인데, 그 헤드 카피의 자리를 유권자에 내주었다는 것은 마땅히 칭찬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대선 광고는 무엇인가
물론 광고의 힘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상품 광고는 잘 팔리게 만들어야 좋은 광고이지만, 대선 광고는 후보를 당선시켜야만 좋은 광고일까요. 글쎄요. 정치 광고에서는 상술과는 별개의 기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과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저는 도덕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네거티브 광고를 하는 것도, 좋은 이미지만 보여 주는 것도 정당과 후보의 자유입니다. 흑색선전도 전략의 한 종류니까요. 그러나 허언이나 과장은 대선뿐만 아니라 모든 광고에서는 있어서는 안됩니다. 광고는 소비자와 브랜드간의 상호 신뢰를 전제하에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오래된 브랜드일수록 소비자들의 신뢰는 더 깊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유권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TV에서 보이는 약속과 모습이 거짓이 아니라고 믿고 판단을 할 수 있어야합니다. 광고 속 화려한 수사보다 더 필요한 것은 대중이 믿을 수 있는 신뢰가 아닐는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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