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학원 발제 준비로 재일 조선인에 대한 이즈츠 카즈유키 감독의 영화 <박치기, 2004>를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처음 이 영화를 접했던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당시 이 영화를 봤을 땐 단순히 일본 특유의 재치가 느껴지는 상업영화라고만 생각했다. 머리가 조금 커서 그런지 단순한 상업영화라기보단 정치성이 다분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대충 내용을 설명하자면, 영화는 1968년도 교토에서 일어나는 조선학교와 일본학교의 갈등을 그려낸다. 갈등의 극단에는 각 학교의 폭력조직이 위치해 있지만 결국 조선인 여학생 ‘경자’와 일본인 남학생 ‘코우스케’의 사랑으로 평화가 찾아온다는 매우 신파적 결말로 막을 내린다.


영화 '박치기' 스틸컷 (출처 = 네이버 영화)


 그런데 문제는 내용이 아니다. 내용이 ‘보여지는 방식’이다. 2000년대 세계화의 이름 아래 초국가적 공간이 형성된다. 미국만이 ‘Melting Pot’이 아닌 전 세계가 ‘Melting Pot’이 된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 맞추어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일본 영화계에서는 마치 트렌드처럼 ‘다문화에 대한 고민’, 특히 ‘재일 조선인’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는 재일조선인 출신 최양일 감독의 <피와 뼈>,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Go>, 그리고 <박치기>가 있다. 모두 각종 영화제에서 우수한 상을 차지하면서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좋은 결과를 얻은 영화들이다. 이 세 영화의 재미있는 점은 재일조선인을 다루는 시선은 제각각이지만 그것을 구현하는 방식에서 ‘위협적이고 폭력적인 재일조선인’이라는 공통점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일본 상업영화에서 재일 조선인에 관한 극영화가 많이 제작되었다면 한국에서는 재일조선인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많이 제작되었다. 재일한국인 양영희 감독의 <디어평양>, <굿바이평양>, 김명준 감독의 <우리학교>, 또 최근에 개봉한 박사유, 박돈사 감독의 <60만번의 트라이>등이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시 한번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에서 제작된, 혹은 재일한국인에 의해서 제작된 이 일련의 다큐멘터리에서 재일조선인들이 그려지는 방식이다. ‘위협적인 재일조선인’을 그려낸 일본영화와 달리 한국 다큐멘터리에서는 일본 사회 내의 차별과 극우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순수한 존재로 그들을 구현해 내고 있다.


 이렇듯 일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재일조선인과 한국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재일조선인은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일본인이 또는 한국인이 재일 조선인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영화에서 구현해 내는 폭력적인 재일 조선인의 모습을 보며 한국인으로서 마냥 화만 내야 할까. 실제로 50년, 60년대의 재일조선인들과 일본인들의 무력적 갈등은 영화에서 그려내고 있는 것보다 더 심했으면 심했지 덜 하지는 않았다. 물론 재일조선인의 폭력은 해방 후에도 ‘해방되지 못한 존재’로서 식민지 제국에 살면서 받는 차별과 고통으로부터 기인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되지만,‘위협적인 재일조선인’이 존재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영화는 상상하는 예술이지만 현실에 토대를 둔 상상의 예술이다. 영화가 시대와 사회의 반영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일련의 영화들이 재일조선인을 폭력적으로 그려낸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타당성을 잃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한국 다큐멘터리에서 그려지는 ‘순수한 재일조선인’의 모습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영화에서 보여지는 ‘요즘 시대에 사는 아이들 맞나?’ 싶을 정도의 순수성은 그들의 한 면일 뿐이다. 그들이 재일조선인으로서 살아가면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그 정체성으로 인해 일본 사회 내에서 차별과 위협에 시달린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들은 조선학교를 떠나면 일본 사회에서 사는 똑같은 일본 학생일 뿐이다. 멋 내기 좋아하고, 친구들과 놀기 좋아하는 여느 학생들과 다를 바 없는 아이들이란 말이다.


 우리는 흔히 미디어에서 하는 이야기들을 곧이곧대로 뇌에 저장시키곤 한다. 생각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날 것으로 들어온 정보들은 마치 내 생각인 것 마냥 뇌를 장악한다. 이 날 것의 정보는 또다시 생각의 과정을 생략한 채 입 밖에 나와 누군가의 뇌를 점령하기도 한다.


철학자 벤야민은 근대 인간의 지각 양식을 설명하기 위해 ‘아케이드’를 예로 든다. 아케이드는 19세기 파리 도심에 세워진 아케이드 형식의 쇼핑몰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차 화물칸 같은 상점들로 이루어진 쇼핑몰 양식은 현대에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소비자는 근대에 들어와 ‘이러한 아케이드를 거닐며 이전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다양한 이미지의 ‘파노라마적 연쇄’를 경험하게 된다. 일정한 흐름에 따라 ‘정지’ 상태가 아닌 ‘이동’ 상태에서 상품을 관람하면서 소비자-대중은 주의 깊은 지각 대신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지각만을(김호영, 영화 이미지학, 문학동네) 가능하게 한 것이다.


 



 따라서 이미지의 홍수시대에 사는 우리는 아케이드를 거닐며 지각하는 방식, 대상을 주의 깊게 바라보지 못하고 외연적인 것만을 훑어버리는 편의적인 방식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이러한 편의주의적 지각방식, 사고방식이 현대인간들의 ‘사유’를 멈추게 한다. 이것은 언론, 방송, 영화 등을 포함한 미디어와 그 뒤에 숨겨진 거대담론의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다. 스탈린은 ‘영화는 가장 중요한 대중 선동 수단이다’ 라고 말했다. 소련시대와 나치시대에 영화가 프로파간다의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여전히 북한에서는 프로파간다로서의 영화와 방송프로그램을 제작한다. 물론 21세기는 20세기의 피의 역사의 시대와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안이하게 미디어가 가진 정치성마저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더욱 교묘하게 인간의 의식을 형성한다. 어찌 보면 그것이 미디어의 숙명적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더 ‘보여짐’의 폭력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방패를 마련해야만 한다.


 바로 ‘질문하기’와 ‘사유하기’ 필자가 이 글에서 제안하고 싶은 방패이다. 다시 영화 <박치기>의 예로 돌아가 보자. 영화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영화를 보면서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왜 시대는 68년도일까?’ ‘왜 조선인은 폭력적이고 일본인은 순진하게 그려질까?’ ‘왜 재일조선인에 대한 영화에서 재일조선인은 항상 위협적인 존재일까? 의도적으로 질문한 순간 풀고 싶은 궁금증이 되어버린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스스로 생각하고 공부하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아무런 여과 없이 영상이 보여주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면, <박치기>를 본 한국 관객들은 재일조선인을 폭력적으로 그린 것에 대해 분노할 것이고, 일본 관객들은 폭력적인 재일 조선인들을 보며 자신들을 다시 한번 피해자로서 재정의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비단 재일조선인의 영화, 혹은 영화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던 모든 미디어, 우리가 지각하는 모든 이미지와 정보들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우리는 수동적인 관객에서 능동적인 관객이 된다. 날 것을 정제하여 내 것으로 만드는 힘을 갖게 된다. 또한 ‘사유하기’ 세계의 문을 열 수 있게 된다. 사유할 수 있는 틈새가 발생하는 순간 우리는 더 많은 궁금증이 생긴다. 저절로 찾아보게 되고, 공부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며 이미지가 보여지는 일방적인 사슬에서 벗어나 저 멀리서 관조하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요즘 지하철 내 의자에 앉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 엄지를 위아래로 열심히 움직여가며 핸드폰에 열중해 있다. 과연 그중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 ‘보여짐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호모 사피엔스, 생각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 글을 보는 당신은 진정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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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택트(Arrival, 2016)


<컨택트>의 포스터 (출처: 네이버영화)  



 

[ Contact with Arrival 도입과 접촉하다 ]

 

컨택트의 영어 제목은 "Contact"가 아니다. 바로 “Arrival”, 도착이라는 의미를 사용하고 있다. 제목을 검색해보니 잘못된 번역의 예라는 평가가 많았다. 외계인이 등장하는 영화라고 알고 있었기에 외계인의 도착을 뜻한다면 맞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영화를 본 이후에는 확실히 잘못된 번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창에 영어제목을 다시 검색해보니 몇 가지의 의미가 나왔다. 도착, 도착한 사람 그리고 도래, 도입. 정확하게는 3번째의 뜻이 이 영화와 가장 부합하는 키워드였다.


Arrival

1.도착 2. 도착한 사람 3. 도래, 도입

 

여러 의미에서 해석이 가능한 키워드가 아닐까. 우선 이런 종류의 SF에 도착한 나에게 접목시킬 수 있을 있을 것 같다. 사실 문과-인문계열로 이어진 평범한 내 인생에 SF는 참 어려운 분야가 아닐 수 없다. 특히나 에일리언과 같은 독보적인 외형을 가진 외계인에 대해서는 이질감이 참 큰 편이라 그간 큰 관심을 가지고 영화를 감상했던 적은 없기도 했고, 우주영화에 등장하는 수학적인 부분은 대체적으로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나오는 영화라니, 어렵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러나 SF영화치고는 특이하게도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인문학도를 위한 우주영화’, 혹은 문과판 <인터스텔라>’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궁금증이 들 수밖에 없었다. 우주와 외계인이 나오는데 인문학이 붙는다니, 쉽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아니면 이 영화도 기---사랑으로 이어지는 결말인걸까.

 

영화를 보고 나니 사람들이 표현한 것이 어떤 느낌인지 대략적으로 이해되었다. 무엇보다 <컨택트>의 영어제목이 “Arrival”인 것은 감독의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무엇보다 “Arrival”은 영화 안에서 외계인들이 쓰는 언어 그 자체다.

 

'헵타포드'에게 언어를 가르치는 '루이스' (출처: 네이버영화)


'헵타포드어'를 분석중인 '루이스'와 '이안'의 모습 (출처: 네이버영화)


 

<컨택트>의 외계인들은 오징어를 생각나게 하는 외모를 지녔다. 여기에서 말하는 오징어란 잘생긴 사람 옆에서의 그 오징어가 아니라 진짜 오징어다. 먹물을 사용해 주인공과 의사소통을 한다는 점 또한 오징어스럽다. (영화를 본 후 오징어가 땡겼다라는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먹물 언어라니, 정말이지 탁월한 선택이다. ‘헵타포드어라고 불리는 이 먹물 문자는 단순한 원형 같지만 처음과 끝이 닿지 않는, 시작과 끝이 분명하다. 어딘가에 도착한다던지, 어떤 순간이 도래한다는 영화의 제목과 일치하는 문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쩐지 삶과 죽음의 순환과도 닮아있다. 삶과 죽음 역시 끝맺음과 새로운 시작이 존재하는 순환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던가.

 

헵타포드라고 불리는 이 외계인은 고대 이집트의 그림 문자 같은 회화문자인 헵타포드어를 사용하는데, 이 문자는 다소 수학적이다. 모양의 각도를 분석해 언어를 해석할 수 있고, 주연 배우루이스는 이를 통해 인간의 언어를 가르친다는 다소 신선한 발상을 행동에 옮긴다.

 

의사소통의 과정은 영화에서 꽤 비중 있게 다뤄진다. 어린아이를 가르치듯이, 많은 단어를 뜻하는 행동과 시각자료가 등장한다. 인간의 언어를 배우는 외계인이라니 꽤나 재미있는 조합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언어가 모든 문명의 초석이다.”

 

천체물리학 전문가인 이안루이스와의 첫 만남에서 루이스가 쓴 책의 서문인 이 문장을 읽어주는데 이 장면이 어쩌면 전체를 아우르는 복선이었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들의 운명에 있어서도 언어는 또 다른 초석이 되었으니 꽤 그럴싸하다. 영화를 본지 시간이 좀 흐른 후 생각해보니 이 언어의 이름은 헵타포드일 수도, ‘한나일 수도 있겠다.

 


 

[ H-A-N-N-A-H 한나 ]

 

의미 없다고 생각한 먹물의 문양이 언어라는 것을 이해했을 때 왜 오묘한 기분이 들었는지는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필자 스스로 언어란 이래야한다, 라고 생각해오던 어떠한 벽(마치 헵타포드를 만나는 공간에 놓인 그 투명한 벽과도 같다)에 부딪힌 느낌이었다. 이제 우리 모두가 외계, 우주의 환경에 따라 생명체의 모습도 다를 수 있다고 일반적으로 인식 가능한 것처럼 언어도 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그간 간과해오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막연하게 <E.T.>의 한 장면처럼 필자는 외계인은 우리를 바로 이해할 수 있는 더 높은 지적 수준을 가진 생명체라고만 생각해왔다. 그러나 헵타포드는 의사소통의 과정이 필요한, 삶과 죽음을 겪는 어찌 보면 인간과 동등한 생명체다. 그래서인지 영화에서는 헵타포드중 한 마리가 죽어가고 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시작과 끝이 존재하는 것처럼 삶과 죽음이 존재하는 헵타포드는 그 순간 인간과 동등한 선상에 존재하게 되었다. 마치 지구에 존재하는 다른 인종인 것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여기에 하나 더, 영화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또 다른 존재를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스미스소니언전에 전시된 사진 '금환일식을 바라보는 구경꾼' (출처: 한국정경신문, Colleen Pinski. all right reserved.)

 

영화에서는 개기 일식의 한 장면처럼, 어떤 흔적을 남기는 찰나의 순간들이 존재한다. 그 순간은 영화의 도입부로부터 시작해 헵타포드에게 언어를 가르치는 순간에 더욱 빈번해진다. 그 찰나에 존재하는 그녀의 이름은 한나’, ‘루이스의 딸이다.

 

일반적인 영화의 흐름을 생각해보았을 때 도입부에 등장했고, ‘루이스의 생각 속에 존재하는 그녀는 과거형 혹은 현재형일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다. 이미 한번 언급했듯이 헵타포드에게 언어를 가르치는 순간에 한나는 더욱 빈번해진다. 어린아이에게 어떠한 글자와 의미를 가르치듯이 헵타포드를 가르치는 루이스에게, ‘한나의 존재는 더욱 빈번하게 등장한다.

 

영화 안에서 한나헵타포드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매개라고도 볼 수 있다. [루이스-한나]의 부모와 자식 관계가 [인간-헵타포드]로 이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언어를 배우는 헵타포드는 마치 아이와도 같아서 어떤 한 단어를 인식시키기 위해서는 반복적으로, 행동으로 보여주며 가르쳐야 한다. ‘루이스와 같이 헵타포드를 가르치는 교감형 부모가 있는 반면, ‘서툰 부모중 일부는 전쟁을 선포하며 과격한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전쟁 같은 육아의 과정 중 일부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나 한나의 존재는 여전히 매우 모호하다. 관객은 영화를 통해 이미 한나의 죽음을 보았기 때문에 관객에게 그녀는 이미 과거에 존재하는 인물이다. 같은 선상에서 한나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루이스는 아이를 잃은 아픈 상처를 가진 엄마라고 생각되며, ‘헵타포드에 대한 애정은 모성애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읽히기 쉽다. 필자 역시 같은 방식으로 생각했고, 이 사실을 관객이 범하기 쉬운 오류라고 지적하기 어려울 만큼 연출은 아주 자연스럽다.

 

언어에 따라 생각하는 방식이 바뀌듯이 루이스헵타포드어를 이해하며 한나의 이미지와 자꾸 마주친다. ‘한나를 아는 듯, 모르는 듯한 루이스의 태도는 관객에게는 다소 혼란스럽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이해의 포인트는 바로 시간이다. ‘헵타포드에게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개념이 아니다. 그들의 언어는 마치 헵타포드어와 같이, 멀리서 보아야 전체적인 그림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안에서 한나의 존재 역시 그렇다. 그녀는 과거이자 현재, 동시에 미래다. ‘한나의 영어이름은 H-A-N-N-A-H’, ‘헵타포드어와 비슷한 구조로 나열된 원형 문자임과 동시에 끝이 있는 문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나의 존재는 도래하지 않은 미래와의 만남과도 같은 것이다. ‘헵타포드어로 해석이 가능한 미래의 존재.

 

언어와 시간을 끌어와서 만든 영화 <컨택트>는 이렇게 문과판 <인터스텔라>가 되었다.

 


 

[ 삶이 이어지는 그 지점에서 ]

 

한나의 존재가 영화에 등장하는 이유에 대해 문득 궁금해진다. ‘헵타포드어는 미래를 예측하는 신비한 언어라는 것을 부각하기 위함인가?

 

이 답은 죽음을 앞둔 한나에게 루이스가 속삭이는 한 문장을 통해 알 수 있다.

 

생각에 잠긴 '루이스' (출처: 네이버영화)


 

시작과 끝이 무의미하게 느껴져.

 

다소 철학적인 의미를 내포한 시작과 끝. 그러니까 영화는 루이스를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누군가는 이를 두고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라고도 한다. ‘헵타포드어를 이해하게 된 루이스가 미래의 시간을 통해 딸의 죽음을 알면서도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선택을 하는 것이 그 자유의지의 발현이라고 보는 것이다.

 

같은 결과를 두고 이안루이스의 선택이 갈린 것처럼 인간은 같은 선택지를 두고도 종종 다른 선택을 하곤 한다. 어쨌든 서로 다른 선택을 하더라도 인간의 삶은 또 다른 방향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 삶은 헵타포드어처럼 어디에선가 시작되어 어디론가 사라진다. ‘루이스가 말한 것처럼 시작과 끝, 삶과 죽음을 이미 알고 있기에 그 모든 것은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기에 선택하지 않는 삶은 과연 행복한가? 딸의 죽음을 미리 알게 된 이안루이스중 누가 더 행복했을까?

 

영화는 미래를 알게 된 인간의 선택과 그로 인한 나비효과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저 루이스의 입장에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는 그 사소하고 따뜻한 장면을 비출 뿐이다. ‘루이스를 미워하는 그 순간마저도 사랑하게 되는 그런 삶들을. 그리고 그런 순간을 만났음에 감사함을 느끼게끔.

 

이안의 미래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지만 필자는 왠지 루이스의 삶이 좀 더 행복했을 것 같다. 삶이 죽음으로 흐르는 그녀의 시간 속에서 한나를 만난 것만큼 루이스에게 의미 있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

 

결말을 보고 어쩌면 <컨택트><인터스텔라>처럼 결국은 사랑으로 끝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문과판 <인터스텔라>로 불리는 이 영화의 가치는 곳곳에 숨어든 여백에 있다.

 

왠지 모르게 영화를 보고 나와서는 헵타포트어의 여백을, 영화의 모든 공간에 존재하는 여백들을, ‘루이스의 선택을, 나의 삶 어느 지점들을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다. 그 어딘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나의 한나는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삶이 이어지는 그 지점에서, 당신은 종종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어쨌든 그 결말이 행복으로 이어진다면 그 선택이 무엇이어도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나의 존재를 내가 이해한 문장으로 당신에게 여백으로 남겨둔다.

 

시작과 끝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그 과정은 의미가 있다.”라고 말이다.




* <철서구West of the Tracks>의 감독이 시골과 도시 세계 사이에서의 성장, 영화 교육과 다큐멘터리 훈련에 대해 말한다. 변화하는 중국의 민낯과 사회경제학적 법칙의 중력이 형성한 삶의 장대한 초상.

 


격변의 대지를 필름에 담다 - ①

 

 

<철서구>(왕삥, 2003)


영화를 많이 봤었나? 당신에게 특별한 영향을 준 영화는 무엇이었나?

 

우리는 하루같이 여러 장르의 영화들을 많이 보았다. 나는 비록 시네마의 역사가 겉으론 매우 풍부해 보이지만, 또한 상당히 단순하다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었다. 즉, 처음에 당신은 여러 영화제작자, 학교, 국가적인 전통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체계적인 방식으로 그 분야를 검토하면, 그것의 전반적인 풍경에 대해 상대적으로 포괄적인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사는 매우 짧은 반면, 예술사는 매우 길다. 100년이 좀 넘는 역사를 지닌 시네마는 오래된 형식이 아니다. 거기다, 활동사진motion pictures이 탄생하고 얼마 안 있어, 그 형식은 이미 사람들의 일상적인 문화에 침투해 들어왔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시네마는 문화생활의 필수적인 부분으로서 그 영향의 정점에 다다랐다. 여러 학교와 전통이 생겨났다.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과 소련. 각각은 상대적 환경과 사회적 문맥에 따라 형성되었다. 각 사회의 시네마에는 고유한 기능과 필요조건이 있었다. 가령, 미국에서 영화가 재빨리 상업적 이익에 기여하는 것으로 바뀌었던 반면, 소련에서 영화는 프로파간다의 수단이 되었다. 처음부터 나라별로 실험과 탐구는 상이했다. 시네마 혁신─형식적. 예술적 특성과 기술적 진보 모두에 있어서─이 취한 방향들은 지역의 사회문화사와 연관되어있다.

 

학우들과의 논의에서, 당신은 촬영기법과 같은 기술적인 물음들에 집중했었나, 아니면 이미 대개 영화제작으로 관심이 바뀌어 있었나?

 

단지 촬영기법만 한정하진 않았다. 시작부터, 우리의 관심은 특정한 측면 대신 전체를 쥐어 잡는 것에 있었다. 첫 해는 진정 시네마─역사, 동시대적 발전, 그리고 여러 국가의 전통에 대해─에 대해 배웠다. 요컨대, 목표는 영화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였다. 꼬박 일 년 동안 이 방식으로 작업한 후에, 우리는 영화를 볼 때마다 기본적인 요약과 평가를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영화제작에 있어서 기본적인 방향성은 점차 명료해졌다.

 

당신이 영화제작에 눈을 돌렸던 90년대 중반, 중국 감독들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다. 당시 중국 시네마가 당신의 생각의 영향을 주었나?


아니다. 나는 그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당시 영화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제작자 개인을 싫어한다는 말이 아니다. 사실, 비록 몇 편의 영화들이 1980년대 이후로 국제적 권위의 상을 받았지만, 그것들은 여전히 문화적으로 매우 황량했고, 세계적인 예술의 특성인 풍부함과 예측불가능성이 결여되어있었다. 모던 아트는 삶에 대한 확장된 이해를 포함하지만, 당시 영화들에 그런 의미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왜냐고? 문화적 표지cultural markers 또는 이정표의 문제에 더하여, ─내가 보기에─PRC[각주:1]의 체제establishment 하에서 지속된 영화 제작이 주된 문제였다.

 

1990년대에 영화제에 참여하기 위해 정부의 승인 없이 해외로 몰래 작품을 반출했던 영화제작자들은 어떤가? 그들은 상대적으로 독립적이고, 더 이상 제도적 체제institutional establishment 속에서 영화를 만들지 않지 않나?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내가 체제 속의 영화제작이라고 말할 때, 누구라도 비난하려는 의도는 없다. 뭘 의도한 거냐고? 간단하다. 체제의 영화들은 동시대적 문화와 모순되거나 충돌하는 몇몇 고유의 특징들을 갖고 있다. 체제의 관점은 여전이 영화 속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아직 동시대적이지도, 진정으로 현대문명의 작업도 아니다. 어떤 점에서, 또한 이건 중국 시네마의 역사 때문이기도 하다.

 

<철서구>(왕삥, 2003)

 

이 말은 당신이 이른 20세기 중반 이후 수많은 영화들을 봤고 동시대 영화를 그 당시와의 연관 속에서 본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오, 그렇다. 우리는 모든 영화들을 봤다. 당신이 영화계에 발을 들인다면, 영화는 당신의 삶이 되므로 당신은 영화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언제나 이 작업을 해왔다. 여전히 매일 영화를 본다. 이건 영화제작자로서 내 삶의 일부다. 중국의 영화사를 보면, 영화가 중국에 들어왔을 때, 그건 마치 땅에 떨어진 씨앗과 같았다. 영화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과 접촉했고, 그들 또한 영화에 대한 의식을 형성했다. 중국인들은 시네마가 새로운 문명을 대변한다고 받아들이지도, 또 다른 문화적 형식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만약 그 상황을 연구한다면, 당시 중국인들에게 시네마는 그저 장난감 정도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영화는 주로 이 새로운 장난감이 상당히 매력적이라는 걸 발견한 몇몇 부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우리가 갖고 있는 당시의 자료는 랜덤 저글링random juggling이나 무대 공연 쇼트들이 전부다. 이건 유럽의 경우와 전혀 다르다. 예컨대, 프랑스에서 영화는 아주 강력한 시네마 문명으로서, 새로운 문명─중국의 경우와는 매우 다르게─으로 성장하였다. 

 

이것이 초기 국지화localization가 수행된 방식이다. 하지만 중국 시네마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국, 유럽과 일본 영화의 영향을 받으며, 여러모로 변화했다. 중국인들은 영화가 단지 갖고 노는 새로운 장난감이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문화를 암시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건 또한 중국 자체가 매우 급속히 변화하고 있던 시기와 겹쳤다. 정치와 경제의 발전은 중국 시네마의 역사와 함께였다. 오늘날 통상의 표현은 이 시기를 ‘좌파 시네마’라고 부른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때, 그렇게 정의내리긴 어렵다. 1949년 이전 상하이에서 발전한 시네마는 중국 영화사상 가장 뛰어난 시기였다. 당시 영화들을 세심히 보면, 교과서에서 봤던 버전과는 달리, 씬 뒤에서 이데올로기들의 혼합을 발견할 수 있다. 이제는 역사적 문제가 되었으므로, 이 시기를 차분하고 조리정연한 눈으로 보는 것은 쉬울 것이다. 내 눈에 이 시기의 영화에는 세 가지 요소들이 있다.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있다. 그리고 헐리우드를 표방한, 상업적이고 스타 중심적인 작품도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지적인 전통에 기반을 둔 작품도 있다. 영화를 보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몇몇 요소들이나, 과거 지식인들의 윤리적 표현들, 그리고 동시에 지배적인 스타 시스템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영화는 도시 아방가르드적urban avant-garde이고, 어떤 영화에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리얼리즘의 흔적이 남아있다. 사실, 대부분의 영화는 혼합되어있다. 영화의 여러 스타일은 보통 감독들의 다양한 배경 때문에 생긴다.

 

중국의 영화제작자와 평론가 대부분은 국가(중국 – 옮긴이)의 영화사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다.

 

그건 중국의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유럽의 학자들이 왕왕 중국의 시네마에 대해 논쟁하지만, 중국사회에 대한 제한적인 이해로는 비록 그들이 흥미로운 의견을 제시한다 하더라도, 자세한 연구를 수행할 수 없다. 대조적으로, 그들은 방대한 시간과 에너지를 당면한 문화역사적 배경의 맥락 속에서 자국의 시네마를 연구하는데 투자한다. 국가의 영화사는 이런 종류의 연구로 출현한다. 하지만 중국에는 이와 같은 작업이 없다. 우리의 영화사를 정초하려는 노력─신중하고, 명확하며, 합리적인 노력─이 결핍되어있다. 물론 세계의 영화사와 다른 나라들의 영화사를 이해해야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가의 사회문화적 질서와 동시대적인 영화제작뿐만 아니라, 영화사에 대한 뚜렷한 관점을 갖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전반적인 문화적 맥락 속에서 영화의 본질을 무엇인가? 지금 시네마의 실정은 어떠한가? 영화제작자로서 보건대, 자기이해에 도달하기 위한 인내력을 가져야 한다. 나의 관점은 이렇다.

 

 <원유>(왕삥, 2008)

 

 

당신은 90년대 말에 북동쪽으로, 선양으로 돌아가서 그곳의 사양화한 지구의 철거에 대한 장편 다큐멘터리 <철서구>(2003)을 찍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런 테마로 결정했나?

 

나는 베이징에서 때로 텔레비전 시리즈 작업에 참여하거나 카메라맨으로 일하면서 삼년을 보냈다. 이후 <철서구>를 찍기로 결정했다. 나는 이미 톄시(铁西) 산업지구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선양에서 컬리지에 다닐 때, 주말이면 종종 그곳에 사진을 찍으러 가곤 했다. 그곳의 공장들, 노동자들과 거주자들. 나는 그 장소에 익숙해졌다. 반면에, 그 결정은 또한 우리네 시간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나왔다. 내게 톄시 지구를 상기시키는 고적감desolation─중요하던 역사가 이제 점차 우리 눈 앞에서 쇠퇴해가고, 와해되어가고 있다는 감정─이 있었다. 그 이후, 나의 과제는 어떻게 그런 테마와 수많은 캐릭터를 가지고 상대적으로 일관성 있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느냐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공단과, 그곳의 생산 일과routine,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마주하는 것도 포함되었나?

 

물론이다. 어떤 테마를 정한 뒤에, 모든 영화제작자는 여러 기술적인 접근을 선택할 것이다. 실제로 기술 장비들을 실행 가능하도록 배치하는 법을 고려하는 것, 그게 전부다. 많은 이들은 왜 첫 영화의 러닝 타임이 9시간인지 물었다. 하지만 별다른 이유는 없다. 개인적으로 그건 내게 전혀 특별하지 않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나는 전혀 특이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은 관객들로부터의 저항resistance(저조한 관객수를 말하는 듯 – 옮긴이)을 예상하지 않았나? 그리고 영화 제작에 있어 주된 문제는 무엇이었나?

 

저항? 그런 건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만약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 처음부터 완성할 때까지의 계획을 자각하며 영화에 공을 들여야 한다. 내 직업은 완성하는 것이다. 거기에 현시presentation와 재현representation으로서 언어에 대한 천착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건 주로 나날의 실제 작업과 현실적인 문제들이었다. 나는 공장으로 들어가고, 노동자들과 사귀는 것 등에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모든 건 참으로 간단했다. 영화제작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돈이다. 매일같이 찍고, 매일같이 수많은 세부사항들을 다뤄야 한다. 작업에는 물적 자원의 지속적인 투입이 필요했다. 기본적으로 내 친구들과 가족이 나를 지원해줬다.

 

<원유>(왕삥, 2008)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잠재적인 관객들의 저항을 고려하지 않았나?

 

뭐라고? 영화의 비용은 박스오피스 수익과 다른 문제다. 둘은 연관이 없다. 나는 영화를 만들 때 박스 오피스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걸 완전히 외면하는 것은 아니지만, 둘은 뒤얽혀있지 않다.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그로부터 경제적 이윤을 기대하기 때문이 아니다. ‘예술’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요지는 둘은 서로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다는 것이다. 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고 하자 – 옮긴이). 그건 명백히 큰 이윤을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프로젝트가 중요하다고 믿는 한, 계속해야 한다. 그건 경제적인 문제의식으로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

 

이후 당신은 <철서구>의 테마를 잇는 듯한, 다큐멘터리 두 편 <원유Crude Oil>(2008)와 <석탄 가격Coal, Money>(2010)을 더 찍었다. 엄동설한에 중국 북서쪽 칭하이靑海성의 황야에 있는 유전에서 노동자들을 기록한 <원유>의 러닝타임은 14시간이다. (<원유>는 – 옮긴이)로스 엔젤레스에서 관객들이 임의로 들어오고 나가는 전시관에서 상영되었다. 사실상, 거기 앉아서 영화 전부를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마치 설치미술 같다. 의도했었나?

 

그랬다. 로테르담 영화제를 위한 것이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설치 시네마 섹션을 원했다. 그들은 내게 요청했고, 나는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 영화는 특별히 그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다. 수익은 별로 없었다. 당시 나는 북서쪽에서 작업하고 있었으므로, 편의를 위해 유전을 찍기로 결정했다.

 

이 세 편의 영화들은 모두 중공업이나 에너지 산업과 연관이 있다. 하지만 <원유>에서는 노동자들의 휴게실에서나, 바깥 리그rig(굴착 장비 – 옮긴이) 옆에서나, 대화나 행동이 거의 없다. 영화에 대한 단일한 인상은 심지어 그들이 말을 하거나 주위를 돌아다닐 때에도 끊기지 않으며, 보통 몇 분여간 지속되는 롱 쇼트들은 그 효과를 더욱 강화한다. 이건 관객들이 집단의 유대감뿐만 아니라 이전에 존재했던 공동체와 삶lived life에 대한 강렬한 감상을 품는 <철서구>와는 상반된다. 그러한 대조는 지역의 차이 때문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중국은 변화하고 있다. 과거의 공장들에는 공동체 정신이 남아 있었다. 노동자들의 삶은 공장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이곳의 정규직 노동자라면, 노동 현장에 대한 소유 중 일부를 가진 것으로 간주된다. 유사하게, 사람들의 일상은 공장에서 그들의 노동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옮긴이) 이는 오늘날의 생산시설에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이제는 어디든지 계약-노동 시스템으로 이뤄져있다. 그건 고용이라는 단순한 관계이며, 보통 일시적이다. 유전도 예외는 아니다. 오늘날 중국에서 공무원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계약 시스템에 속해 있다. 본질적으로 노동 현장은 더 이상 당신의 삶과 관계가 없다.

 

 

<원문 p.119-124>
 

 

* <뉴 레프트 리뷰>는 1960년 영국에서 창간되어 격월로 발간되는 잡지입니다. 이따금 한국어로 번역되어 단행본(도서출판 길)으로 출간되긴 하지만, 영어판 잡지에 기고된 글을 선별적으로만 다루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BIG HIP>에선 <뉴 레프트 리뷰>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된 글들을 최대한 번역해서 수록할 예정입니다. 저는 전문 번역가가 아니기에, 분명 오역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혹시 그걸 발견하신 분이라면, 제게 훈수를 두셔도 좋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여기서 공동 번역 작업을 제안하고 있는 셈입니다.


*사진출처:

https://d1tyf8b78tco2j.cloudfront.net/3d16c62a/cea14667/images/b929d2662ab573ede55da76278e346248724a391.1000.jpg
http://www.lightindustry.org/crude_oil.jpg

  1.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중화인민공화국. 중국 (옮긴이) [본문으로]

* <철서구West of the Tracks>의 감독이 시골과 도시 세계 사이에서의 성장, 영화 교육과 다큐멘터리 훈련에 대해 말한다. 변화하는 중국의 민낯과 사회경제학적 법칙의 중력이 형성한 삶의 장대한 초상.

 

 

왕삥(王兵)

 

인터뷰

 

격변의 대지를 필름에 담다

 


당신의 유소년기와 가정환경에 대해 말해줄 수 있나?

 

1967년에 태어났을 때, 우리 가족의 반은 도시에, 반은 시골에 있었다.[각주:1] 부모님은 1950년대에 산시성(陝西省)에 있는, 상대적으로 시골인 촌락에서 떠나 수도 시안(西安)으로 옮겼다. ‘대약진정책’[각주:2] 이후 1960년대 초반은 흉년이었고, (식량 – 옮긴이) 공급에 대한 압박을 줄이기 위해 도시 거주자들은 다시 시골로 돌아가라는 압력을 받았다. 당시 아버지는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으므로 어머니가 떠나야했지만, 우리 삼남매(누나는 나보다 두 살 많고, 남동생은 네 살 아래다)는 모두 시안에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났을 때, 이미 ‘문화 대혁명’[각주:3]은 시작된 상태였다. 도시에서 살기에는 너무 혼란스러워 안전하지 못하고, 고향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게 더 편하다고 모두가 충고했고, 아버지는 이에 동의했다. 그래서 우리가 태어난 이후, 어머니는 늘 우리를 시골로 데려가 키웠다. 우리는 모두 시골에서 학교를 다녔다.

 

부모님은 서로 다른 도시 출신이었다. 처음에 우리는 모두 어머니와 함께 머물렀다. 내가 여섯 살 때, 친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부모님은 할아버지의 뒷바라지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를 할아버지에게 보내기로 결정했다. 누나나 동생 없이, 나는 몇 년 동안 혼자서 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모두 할아버지가 살았던 곳에 있었다. 하지만 사실 나는 간헐적으로 할아버지와 떨어져 있기도 했다. 때로 어머니에게 돌아가곤 했다. 이 기간 동안 내게는 마치 두 곳의 고향이 있던 셈이다. 
 
두 마을에서의 삶은 어땠나? 친족관계는 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했나?

 

부모님 두 분은 모두 산시성의 중심부가 고향이고, 그곳은 농경 지역이었고 농경문화가 짙게 배어있었다. 역사적으로, 그곳은 산시성의 남부나 북부보다 훨씬 빨리 개발되었다. 어머니의 고향은 시안에서 대략 80킬로미터 동쪽에 위치한 진양(旌陽)현이었다. 도시로 직접 연결된 버스가 있어 교통수단은 나쁘지 않았다. 그 마을에는 약 60가구가 있었다. 아버지의 고향은 시안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남쪽에 위치한 마을이었다. 저우즈(周至)현에 속했으며, 친링(秦嶺) 산맥의 작은 언덕에 위치했다. 그 마을에는 1970년 당시 2만의 인구─외가(外家)의 마을에 비해 훨씬 큰─가 있었는데, 산시성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 두 곳의 문화는 매우 달랐다. 확실히 두 곳의 특성이나 친족적인 요소가 유사한 건 맞으나, 산시성 중부에 위치한 관중(關中)에서의 삶이 상대적으로 여유롭다. 그곳의 생활양식은 허난성(河南省), 산서성(山西省)[각주:4] 혹은 허베이성(河北省)과 같은 중국 내륙의 다른 지방들과는 판이하다. 나는 여러 번 그곳에 위치한 시골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늘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우리 산시성 사람들이 더 보수적이다. 내가 봤을 때 이러한 문화적 보수주의의 주된 원인은 산시성이 중국 근대기의 전쟁에 휘말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다.

 

대학 공부는 언제 시작했나?

 

나는 1978년과 1979년에 중학교를 다녔으나, 가정사 때문에 12년이 지난 1991년에야 대학에 진학하였다. 아버지는 시안에서 토목공학을 공부했고,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는 1966년 이전에 이미 졸업하여 지방의 건설-디자인 스튜디오에 배정된 상태였다. 내가 마을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며 학교를 다니는 내내 아버지는 그곳에서 머물렀다. 그러던 1981년, 아버지가 가스 중독으로 급작스럽게 돌아가셨다. 당시 정책은 사망한 노동자의 자식이 빈 일자리를 채울 수 있게끔 되어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자리를 하나 얻어선 정식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겨우 14살이었다. 처음에 나는 온갖 잡일을 하는 ‘후방 공급rear supply’ 부서로 들어갔다. 그러나 정말 내게 중요했던 유일한 문제는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미혼 노동자들이 생활했던 기숙사의 젊은이들은 모두 좋은 친구였다. 우리는 같이 밥을 먹었고 같이 놀았다. 나머지 대부분은 대학을 졸업한 상태였는데, 문화 대혁명 이후 대학이 재개되자마자 매년 (스튜디오에) 들어온 이들이었다. 1977년부터 1986년까지, 디자인 스튜디오는 지방의 최상급 학생들 몇몇을 데려왔다. 그들 중 여럿은 지적으로 뛰어났다. 그들은 모두 가슴으로 그들의 예술사를 알고 있었다. 이것이 1980년대였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80년대는 쉴 겨를이 없는─모든 이들이 미래, 직업, 개인적 삶 등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고 있었다─시대였다. 80년대는 그러했다. 하지만, 내 관점에서 80년대는 또한 차라리 따분한 시기였다. 

 

스튜디오에 있는 동안 나는 예술에 대해 상당한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다양한 규율에 의존하여 광범위의 프로젝트들을 수행했는데, 건축은 그 규율의 기술에 가장 근접해 있었다. 동시에, 건축은 예술 중 가장 실용적인 형식이다. 건축은 예술과 유용성─그러므로 건축을 공부한 사람들은 예술적 혹은 실용적 방향에 기대는 경향이 있다─의 혼합이다. 하지만 건축을 공부하는 것은 예술학교나 영화학교에서 훈련받는 것과 비교하여 사람들에게 독특한 힘을 갖게 한다. 예술학교 학생은 한 분야 혹은 다른 분야에서 특별한 재능을 갖곤 하지만, 보통 그렇게 학식이 뛰어나진 않거나, 개념적인 사고를 잘하진 못한다. 그런 측면은 수학과 과학 과정을 배워야 하므로, 결과적으로 굉장히 논리적으로 생각과 논점을 갖추는 건축과 학생과는 매우 다르다.

 

당시에 당신이 공부하고자 했던 것은 건축이었나, 아니면 토목공학이었나?

 

나는 한 번도 토목공학을 전공하려는 생각을 품은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건축을 전공할 생각이었다. 나는 대학 진학 시험─1984년에, 건축학과에 필요한 특별 시험을 준비하는데 거의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을 준비하기 위해 굉장히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1986년인가 87년인가에 나는 사진을 택했다. 또한 1988년쯤에는 회화를 택했다.

 

 

어떻게 사진으로 바꾸게 되었나?

 

처음에는 단지 호기심 때문이었으나, 대학에서 전공을 정해야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시에 건축학과는 입학 요건이 엄격했고, 따라서 나는 순수 예술로 눈을 돌렸다. 스튜디오 친구들은 모두 회화에 대한 기본적인 연습을 해왔었고, 따라서 나는 그들에게 배우고 그들과 함께 그림을 그렸는데, 그런 활동은 내가 예술 학교를 준비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순수-예술 과정에 진입하는 데에는 굉장히 열띤 경쟁이 있었고, 스튜디오에서 한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따라서 – 옮긴이) 나에게 유일한 방편은 사진이 되었다. 거기다 나는 이미 몇 년 동안 카메라를 갖고 있었고 회화를 시작하기 전부터 사진 연습을 해왔었다. 비록 내 사진들을 전시하지는 않았으나, 충분한 경험을 쌓았다. 1991년 나는 북동쪽에 있는 선양(瀋陽)의 ‘루쉰(魯迅) 예술 아카데미’에 사진 전공으로 입학했다.

 

그렇게 사진을 공부했고. (그렇다면 - 옮긴이) 언제 영화로 관심을 틀었나?

 

예술 컬리지 2년차에 이미 나는 영화로 전과(轉科)할 생각을 품었다. 영화에 대한 책을 사고 준비 작업을 시작했다. 졸업하기 전 마지막 학년 때 베이징 필름 아카데미의 시네마토그라피cinematography[각주:5] 부서로 찾아가, 단기 훈련 프로그램에 등록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렇다고, 그들은 말했다. 내가 꽤 높은 수준의 학위 과정을 수료했기 때문인지 그들은 내게 매우 친절했다. 사실 루쉰 예술 아카데미 졸업 일 년 전에 이미 나는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대신, 내가 했던 공부를 계속하리라 결정했었다. 졸업 후, 베이징에서 나는 여전히 카메라로, 하지만 이제는 시네마토그라피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베이징 필름 아카데미에서는 얼마나 오래 수학했나? 그 과정에 참여한 수강생은 몇 명이었으며, 활발한 토론이 이뤄졌는가?

 

원래 훈련 프로그램은 1년 과정이었지만, 일 년을 더 머물렀다. 여러 동기생이 있었고, 나는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하지만 우리들의 상황은 크게 달랐다. 대다수는 정규 직장에서 임시로 떠나 그곳에 왔던 반면에, 나는 정규 예술 학교를 갓 졸업한 상황이었다. 기초 훈련의 측면에서, 이전에 우리가 습득한 경험은 (서로 - 옮긴이) 달랐다. 대다수는 엄격한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었다.

 

사진은 정적인 반면, 영화는 동적이다. 당신은 둘 사이에서 친숙화 과정(사진에서 영화로 분야를 옮기는 과정에서 드는 비용을 말하는 듯 – 옮긴이)을 거쳐야 했나?

 

시각 예술의 한 형식으로서 사진에는 그만의 특성과 특징properties and characteristics이 있다. 많은 이들은 평생을 사진과 함께 한다. 선양에서 학생으로 있을 때, 나는 매일같이 암실에서 시간을 보내며, 형식과 작업 과정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특정 순간을 잡아내는 데 유별나게 매혹되지는 않았다. 내게는 움직이는 이미지가 훨씬 더 흥미로웠다. 그것은 인간 삶의 여러 양상을 전체론적인 방식으로 보여줌으로써, 시간의 본질the reality of our time을 이해할 수 있는 독특한 방법을 선사했다.

 

친숙화에 대해 말하자면, 어떤 종류의 일을 하든 결국 친숙화는 구성요소material의 문제다. 예를 들어, 글짓기를 하는 기자에게 언어에 대한 친숙화는 필수다. 나에게 사진과 촬영기술 모두에 있어 기본적인 언어는 이미지다. 물론 처음 베이징 필름 아카데미에 갔을 땐, 움직이는 이미지에 대해 숙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양적인 축적을 질적인 변형으로 바꾸는 문제였다. 배움은 손 안에 있는 무언가가 되었다.Learning became something in one’s own hands 사실상 현장에서 2년을 보낸 뒤로, 영화 학교는 더 이상 진정한 해결책을 제공해주지 못했다.

 

14살에 디자인 스튜디오에 들어갈 때부터 24살에 컬리지에 입학할 때까지, 당신은 다양한 관점에서 예술을 배우는데 꼬박 10년을 보냈다. 당시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인식하고 있었나?

 

선양에 가기 전까지는 의식하지 못했다. 80년대 내가 배운 것이나 읽은 책들은 모두 유럽─그리고 거기서 고전적인 건축사(建築史)는 예술사의 여러 양상들과 나뉘지 않는다─에서 온 것이었다. 건축 프로젝트는 화가와 조각가, 그리고 다른 예술가들의 협업으로 이뤄졌다. 그건 여러 전문분야로 분리되지 않았다. 과거에 외딴 건축사란 없었다. 우리는 건축을 예술사─모든 종류의 예술 형식을 총망라한, 장대한 역사─의 일부로 봐야 한다. 컬리지에 입학하고 중국의 전통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동양’과 ‘서양’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다. 영화로 전향한 뒤에는 이 이슈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가졌다. 

 

 

<원문 p. 115-119>

 

 

FILMING A LAND IN FLUX(WANG BING).pdf

* <뉴 레프트 리뷰>는 1960년 영국에서 창간되어 격월로 발간되는 잡지입니다. 이따금 한국어로 번역되어 단행본(도서출판 길)으로 출간되긴 하지만, 영어판 잡지에 기고된 글을 선별적으로만 다루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BIG HIP>에선 <뉴 레프트 리뷰>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된 글들을 최대한 번역해서 수록할 예정입니다. 저는 전문 번역가가 아니기에, 분명 오역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혹시 그걸 발견하신 분이라면, 제게 훈수를 두셔도 좋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여기서 공동 번역 작업을 제안하고 있는 셈입니다.

 

* 사진출처:
http://cdn.asiancorrespondent.com/wp-content/uploads/2013/08/WangBing.jpg

네이버영화

  1. 9시간짜리 다큐멘터리 <철서구>(2003)에 대해 심화된 논의를 위해선, 루 신유Lu Xinyu, ‘Ruins of the Future’, NLR 31, January-February 2005 참고. 중국의 동시대적 움직입에 대한 조사에 대해선, 잉 치안Ying Qian, ‘Power in the Frame’, NLR 74, March-April 2012 참고. [본문으로]
  2. 1958년에 시작된 중국의 경제건설운동이다. 농산부분에는 인민공사를 조직하고, 공업부문에는 중공업 최우선정책을 취하였다. 그러나 1959년부터 3년간 계속된 흉작과 구 소련인 기사들의 철수로 이 정책은 좌절되었다.(옮긴이 – 네이버 지식백과) [본문으로]
  3. 마오쩌둥(毛澤東)에 의해 주도된 사회주의에서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대중운동이었으며 그 힘을 빌려 중국공산당 내부의 반대파들을 제거하기 위한 권력투쟁이었다.(옮긴이 – 네이버 지식백과) [본문으로]
  4. 陝西省(Shaanxi)과 山西省(Shanxi)의 중국어 발음 표기는 ‘산시성’으로 같다. 둘의 구별을 위해 후자는 한자 발음, 즉 산서성으로 표기하였다. 산시성(陝西省)은 중국 중서부에 있는 성이고, 산서성(山西省)은 중국 동부에 있는 성이다.(옮긴이) [본문으로]
  5. 로베르 브레송Robert Bresson에 따르면 시네마cinema는 연극적인 요소가 포함된 작품을, 시네마토그라피cinematography는 영화의 특성만을 지닌 작품을 말한다.(옮긴이) [본문으로]

 

 

누군가 어벤져스에 대한 감상평을 묻는다면 본 후에 같이 얘기해보자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직접적으로 말하면 이 영화에는 호불호가 갈린다는 평이 있고, 재미의 개인차가 있으니 같이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먼저 밝히자면 개인적으로 필자는 이번 어벤져스 시리즈를 재미있게 감상했다. 캐릭터도 좋아할뿐더러 우리나라의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시원시원한 스케일이 좋았다. 울트론이나 비전과 같이 인간이 아닌 캐릭터들도 나쁘지 않았고, 한국의 수도인 서울까지 등장하는 등 실로 볼거리도 많았다. 그러나 그 볼거리는 너무 과한 측면이 있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볼거리가 넘쳐나서 관객의 시선은 분산되어 혼란스럽고, 생생함을 위해 3D 버전을 선택했다면 그 시선 분산의 정도는 빈번하다. 큰 스케일과 화려한 액션, 스크린에 가득 찬 볼거리들, 많은 캐릭터의 등장 등 시선을 어디에 둬야할지 모를 정도다. 물론 그것이 어벤져스라는 영화를 구성하는 하나의 장치임에 틀림없다. 필자 역시 그런 장치를 좋아하는 편이고, 그런 화려한 장치들로 구성된 영화를 종종 감상하기도 하기 때문에 그 부분만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지난 시리즈에 이어 이번 영화에까지 그런 요소들이 복제되듯 등장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적어도 이번 시리즈는 어벤져스1(편의상 1, 2의 개념으로 나누어서 지칭한다.)에서 제시되었던 ‘여러 영웅들이 하나의 팀으로 적과 싸운다면 어떻게 될까?’를 보여주는 데에서 그치지 말았어야 했다. 단결력 있는 하나의 팀, 그리고 그에 따른 영웅들의 모습을 보여줬어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어벤져스2는 여전히 하나가 되지 못한 팀의 연장선상에 있다. 캐릭터는 여전히 개인적으로 행동하고, 새롭게 등장한 영웅들 역시 팀 어벤져스에는 아직 어색해 보인다. 사실 캐릭터의 이러한 행보는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토르와 아이언맨만 놓고 봐도 장르가 신화와 SF로 거의 반대의 장르에 속하지 않는가. 한 영화 안에 여러 캐릭터들을 모아 놓았으니 개별적으로 행동하고 갈등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벤져스1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팀워크 구축의 상황으로 회귀한 어벤져스2의 내용이 관객에게 마냥 반가울 리가 없다. 두 발 전진을 위해 한 발을 물러섰다고 하기에는 아쉬운 포장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환영이라는 장치를 삽입해 캐릭터 스스로를 분열시키기까지 하니 지켜보는 관객은 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시선은 여전히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표류하고, 3D와 스케일로 인해 점차 피로해진다.

 

이러한 피로감을 무릅쓰고 모두가 기대했을 한국 배경에 대해 언급하자면, 아쉽게도 영화에서는 한국 관객들이 열광할 만한 한국의 모습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얘기해주고 싶다. 전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영화에서 한국이 등장한다는 점은 자국민으로서 기쁜 일이지만, 이 영화에서 과연 한국이라는 배경이 등장할 필요성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의문, 헬렌이 한국계이기 때문에 한국을 선택했다? 헬렌의 혈통만으로는 영화의 배경의 하나로 서울을 선택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물론 그녀의 지식을 얻기 위해서 울트론은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가야만 했다. 그러나 사실 헬렌은 굳이 서울에 있을 필요가 없는 인물이다. 그녀는 외국어와 첨단 기술에 능통하고 이 때문에 다른 인물들이 조언을 구하는 대상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첨단 과학의 중심지로 서울을 선택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액션신이 등장한 강남 일대가 참 평범하기 그지없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네티즌들이 합성해서 올린 배경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다. 물론 촬영을 빌딩숲 한 가운데에서 진행할 수는 없었겠지만, 적어도 첨단 과학을 보여줄 만한 배경을 선택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본 적 없는 전철의 등장신이나 다리 위에서의 액션신보다 그런 필연적인 구체적인 배경이 먼저 설정되었어야 했다. 그런 설정 없이 서울을 등장시키다보니 필요 없는 전철의 질주신이 등장하고 다리 위에서의 액션 장면이 등장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점점 따지다보니 이 영화에서 한국의 도시 서울이 등장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이번 어벤져스2에 대한 한국인들의 기대를 높이고 싶은 마블의 노림수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아마 마블사에서 최근 개봉했던 영화 중 킹스맨의 한국 흥행을 눈여겨본 결과일지도 모른다.

 

 

추가적으로 헬렌의 첨단 과학 연구소는 한국인도 잘 인지하지 못하는 서울의 인공섬(세빛섬)에 있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서울시가 어떤 홍보효과를 누리고 싶었다면 이 역시 실패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 인공섬을 가보고 싶은 장소로 만들었어야 했는데,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으며 이를 활용한 홍보도 역시 미미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타고 삼각지역 근처를 지났던 사람들이라면 아마 어벤져스의 촬영지를 언급하는 방송 내용을 들은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어벤져스라는 단어를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잘 들리지도 않는 그 방송을 들으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 여기가 그 인공섬 근처인가보다.’ 정도일 것이다. 한국인에게도 그렇다면 외국인에게는 오죽할까. 만약 홍보 효과를 노린다면 한국인도 잘 모르는 섬을 외국인에게는 어떻게 설명하고 홍보해야할지 고민을 해봐야할 문제다. 물론 여전히 그만큼의 홍보효과가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 다음으로는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어벤져스는 영웅이 많이 등장하는 영화답게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이에 따라 관객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인물에 집중 된다. 사실 이전 시리즈보다 어벤져스2에 더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는 사실에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새로운 인물들은 팀 어벤져스에는 어색해보였을지 몰라도 인물 자체만으로 보면 의외로 자연스럽게 영화 안으로 녹아드는 모습을 보인다.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는 비전이 제일 좋았다. 그 특유의 인간인 듯, 인간 아닌 표정이라든가, 펄럭이는 망토가 왠지 모르게 정겨웠다. 그가 등장하는 장면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울트론과 대조되는 그의 인간미(그것을 인간미라고 할 수 있다면)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온 후에 포스터에서 그를 보니 왠지 더 친근하고 반갑기까지 했다. 새로운 인물로 등장하는 쌍둥이 남매의 경우도 같은 팀으로 합류하게 되는 스토리의 개연성 측면에서는 의문이 들기도 했으나 그 자체의 캐릭터로는 나쁘지 않았다.(나중에 그들이 다른 영화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라는 것을 알았으나 어벤져스2에 등장하는 그들은 그런 배경 없이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남매는 둘 다 어벤져스에 계속 남아있을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퀵 실버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남매의 활약을 한 번 밖에 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러나 동시에 이 부분은 예상치 못한 전개라 다소 신선하기도 했다. 특히 스칼렛 위치가 어벤져스 팀에 계속 잔류하게 되는 강력한 계기가 될 만한 사건이었음에는 틀림없다.

 

한참이나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얘기를 했다. 그런데 전혀 이상하지가 않다. 그들의 비중이 기존의 어벤져스만큼, 혹은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이상하게도 이번 시리즈에서 기존의 캐릭터들은 그 이전 시리즈의 임팩트가 없다. 외면적으로나 내면적으로 상처입고, 갈등하고, 어딘가로 떠나기까지 한다. 신이라는 토르 역시 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환영을 조심하라고 다른 이들에게 경고하는 와중에도 본인도 환영에 당한다. 그 뿐인가? 위급한 상황에서도 알아볼 것이 있다며 훌쩍 떠나기까지 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영웅들이 이렇게 책임감이 없었나? 내가 마블의 세계관을 공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영웅들을 쉬게 해주기 위한 장치라고 하기에는 관객에게 너무 불친절하고, 책임감이 없는 처사다.

 

심지어 어벤져스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자 호크아이의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장면은 더더욱 그렇다.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 나무를 하는 장면은 누군가에게는 신선해보였을지 몰라도 나는 전혀 재미의 요소를 느끼지 못했다. 호크아이가 가정을 이루고 따뜻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영웅이라고 생각했던 호크아이가 그저 평범한 인간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장치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제작진이 영웅들의 인간미와 은퇴를 위해 이를 설정한 것이라면 정말 탁월한 선택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이번 영화 한 편을 보고 어벤져스1에서 환호했던 영웅에 대한 환상이 어느 정도 시들해졌고, 그 영웅 중 일부의 은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혹자는 어벤져스1보다 더 심화된 것을 표현하기 위해 캐릭터의 힘을 조금 뺀 것이라고도 얘기한다. 물론 그런 심화된 것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마블에서도 가벼운 농담만으로 영화를 채우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영화 관련 키워드 중에는 분명 사람, 인공, 도덕과 같은 단어들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도 그런 키워드를 다뤄보고 싶어 고민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마블이 그런 것들을 전혀 하나로 묶지 못했다는 것에 있다. 사람과 인공지능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하고 싶었다면, 이는 울트론과 아이언맨을 중심으로 좀 더 극대화시켜서 표현했어야 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둘은 비슷한 존재에 대한 라이벌 의식 정도로만 표현된다. 정체성이나 도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면 각자의 내면적 갈등만이 아니라 좀 더 대립하는 양상을 보인다던가, 쌍둥이 남매가 기억하는 스타크 사의 폭탄과 같은 문제를 좀 더 다뤘어야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다룰만한 요소들은 그저 스쳐지나가기만 할 뿐이다. 이를 위해 캐릭터의 힘을 뺐다고 하기에는 힘이 빠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쯤 되니 어벤져스2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만 다룬 것 같은데, 혹시 누군가 오해할까 싶어 다시 언급하자면 필자는 사실 어벤져스2를 꽤 재미있게 감상했다. 원래 좋아할수록 더 아쉬운 점이 더 잘 보이기 때문에 지적할 것이 더 많았을 뿐이다. 필자는 어벤져스 시리즈를 계속해서 보고 싶고, 그를 위해서는 어벤져스2의 아쉬움을 보완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은 칭찬보다는 지적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에 다룰 이야기는 꽤 중요하다.

 

 

마블의 열혈 팬들에게는 어쩌면 적용되지 않을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위에서 언급했던 많은 아쉬운 점들과 더불어 어벤져스2를 접하는 필자와 같은 일반 관객에게는 더 복잡한 문제가 남아있다. 바로 이 영화 하나에 많은 이야기들이 연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마블이 그리는 큰 그림을 잘 알지 못하는 필자는 종종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어려웠다. 사전에 어벤져스2에 연관된 영화를 전부 보지 않았고, 봤다 할지라도 그 순서가 뒤죽박죽인 탓이었다. 그러니까 마블영화의 특징인 쿠키 영상에  이야기하자면, 이전 쿠키를 먹지 않으면 나중에 먹는 쿠키의 맛을 알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먹어도 맛을 알 수 없는 쿠키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런 면에서 전작보다 어벤져스2는 마블영화 초보자에게는 더 불친절한 영화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문제는 앞으로도 더 심화될 것만 같다. 마블이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을 계속 만들어내는 이상 마블의 세계관을 정독하지 못한 관객들은 점차 밀려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앞으로 다른 영웅들이 등장한다는 것까지 감안하면 더 머리가 아픈 문제다. 이에 대해 마블은 굉장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부족하면 니들이 찾아보든가.’라는 식의 태도로 구체적인 설명을 생략하며 전작보다 더 불친절한 영화를 만들어낸다. 이 같은 태도는 새로운 마블 초보들이 마블 영화에 입문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고, 기존의 마블 팬들을 더 오타쿠스럽게 만드는 데 한 몫 한다. 일부 마블의 열혈 팬들은 더 즐길지도 모르지만, 앞으로 나올 시리즈를 감안했을 때 이는 결코 발전적인 방향이 아니다. 영화가 그들만의 축제가 되어버리면 마블 시리즈는 그저 팬픽 문화 이상으로 발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팬픽 문화 수준에 머무는 것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모든 세계관을 이해하는 팬들만 존재할 경우 마블 시리즈는 점점 안드로메다로 가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마블은 팬픽 문화 수준에 머무는 것을 경계해야만 한다. 모두가 이해하는 것을 더 친절하고 설득력 있게 만들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때문에 마블은 마블만의 세계관을 더 정교하게 짜고 싶다면 열혈 팬들이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일반 팬들을 위한 통로를 반드시 열어두어야 한다. 앞으로의 마블 시리즈가 팬픽 수준으로 고착화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노력 없이는 앞으로의 마블 시리즈는 점점 그들만의 축제가 되고, 상황은 점점 나빠질 것이다.

 

물론 찾아볼 수 있는 연결 영화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인 일이다. 그런 면에서 연결 영화가 많은 마블은 참고할 영화가 많아 좋지만, 좋은 영화라면 한 편의 내용만으로도 초보 관객까지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아쉬운 마음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마블 영화를 보며 얻은 교훈은 있다. 적어도 새로운 마블 쿠키를 맛보기 전에 이전 쿠키들을 순서대로 다 맛봐야 그나마 맛을 알 수 있다는 것. 필자는 다음 쿠키를 위해 이번에는 이전 쿠키들을 맛보고, 우유도 마시며 다음 쿠키의 맛을 최대한 느껴볼 예정이다. 아마 다른 관객들도 필자처럼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블에서도 이를 감안해 좀 더 친절하고 맛있는 쿠키를 만들어주길 기대해 본다.

 

 

 

* 소설 <화장>과 영화 <화장>의 만남

 

화창한 어느 봄날, 나는 영화 <화장>의 시사회에 다녀왔다. 다른 사람의 평가와는 관계없이 주관적인 영화 감상을 즐기는 나로서는 주변 사람들의 걱정스러운 평에도 불구하고(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젊은 여성과의 불륜 영화로 착각하고 있다.) 이 영화를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던 차였다. 시사회 당첨 문자를 받은 후에 가장 먼저 한 일은 원작 단편이 들어있는 김훈의 <강산무진>의 구입이었는데, 보통 영화를 먼저 본 후에 원작을 감상하던 나로서는 책을 먼저 읽고 간다는 것은 큰 도전처럼 느껴졌다.


다른 단편보다 먼저 <화장>을 펴서 읽어 보았는데 소설은 담담하고, 깊은 맛을 내는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책의 표지는 고서를 생각나게 하는 황색이었고, 그 영향과 문장 때문인지 단편을 읽으며 잘 우러난 황차 한 잔이 계속 생각났다. 소설은 비교적 간단한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었고, 죽어가는 아내에 관련된 ‘화장(火葬)’과 젊은 여사원에 관련된 ‘화장(化粧)’에 대한 중년 남성의 시선에 관한 내용이었다. 단편을 읽고 나니 기대했던 고소한 황차의 느낌보다는 씁쓸한 황차의 느낌이 강했다. 약간의 먹먹함과 함께 죽음과 삶이라는 다소 고차원적인 생각을 하다가 영화는 이런 내용을 어떻게 담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시사회에서 감상한 영화 <화장>은 기대 이상으로 원작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었다. 너무 충실한 나머지 일반 관객들은 밋밋하다고 여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영화보다 소설 <화장>을 훨씬 좋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나는 영화와 소설이 보여준 두 가지 방식에 다 만족한다. 소설은 소설대로 텍스트와 장면을 상상하며 읽는 맛이 있었고, 영화는 영상미와 더불어 소설에서는 다뤄지지 않은 상세한 내용까지 덧붙여서 다뤄주었기 때문에 새로운 맛이 있었다. 유난히 오 상무의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것이 많았고, 소설에서는 알 수 없었던 작은 장면들이 영화에서는 다뤄지면서 나는 텍스트에서 느낀 먹먹함과는 또 다른 먹먹함을 느꼈다. 개인적으로는 소설에서 다뤄지는 오 상무보다 영화에서 다뤄진 오 상무가 더 공감이 갔고, 왠지 모를 여운까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중점으로 뽑은 몇 가지 키워드로 이야기를 더 진행해보려고 한다.

 


* 오 상무의 시선

 

[추은주를 응시하는 오 상무]


영화나 소설을 통틀어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오 상무의 시선이었다. 삶과 죽음으로 대표되는 두 여자 사이에 존재하는 오 상무는 죽음의 가까운 삶을 사는 아내를 간호하며 화사한 추은주를 종종 응시한다. 누군가는 관음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으나 나는 오 상무의 이 시선을 응시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응시에 이름을 붙인다면 사랑이라는 말 보다는 동경이라는 말이 더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시선은 추은주와 관련된 일에 있어서는 다소 감정적으로 변한다. 꿈과 환상 속에서 오 상무는 추은주를 응시하는 것에서 벗어나 더 적극적인 시선과 태도로 그녀를 찾아다닌다. 물론 이것은 꿈과 환상 속일뿐 현실에서 오 상무는 부하 직원인 추은주의 점심 걱정을 하며 초콜렛을 챙겨주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오 상무의 시선 때문인지 추은주는 연신 아름다운 여성으로 표현되는데, 추은주를 연기한 김규리라는 여배우가 이렇게 아름다웠나 하는 생각이 연신 들었다. 그녀의 모든 것은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처럼 표현되는데, 이를 위해 촬영 감독이 특별히 신경을 썼다는 말이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반대로 병중에 있는 아내의 모습은 자꾸만 바래는 느낌이 강해진다. 이 역시 오 상무의 시선이 반영된 결과로 오 상무는 점차 모든 일상에서 추은주를 생각하는 일이 많아지고, 영화에서 추은주와의 회상 씬이 등장하는 장면도 빈번하게 나타난다. 초기에 건강한 아내와의 장면도 많이 나오던 것과는 달리 후반부로 갈수록 아내는 병자의 모습으로만 등장한다.

 

오 상무의 상념 깊은 시선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영화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환상을 드나든다. 최근에 본 샘 에스마일 감독의 <코멧>이라는 영화에서도 시점은 과거와 현재, 미래일지도 모를 어느 시점을 드나든다. 그러나 표현의 방식에 있어 <코멧>은 누구의 시점에 고정이 되어있는지 알 수 없어 관객의 시점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영화 특유의 시점의 회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나는 그 영화를 온전하게 이해하기가 몹시 어려웠다. 반면에 <화장>에서는 오 상무의 시선으로 장면이 회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시점의 회전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으며 오 상무라는 인물에 점차 동화되어 간다. 사실 임권택이라는 영화감독을 생각해 봤을 때 어쩌면 이러한 효과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연 경관을 영화의 한 장면으로 점차 동화시키며 연출하는 그의 기법이 인물의 시선에도 적용된 결과라고 봐야할 것이다. 타 인터뷰에서 감독은 실내에서 주로 촬영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걱정스러웠다라고 밝혔지만, 오히려 그의 기법이 공간에서 벗어나 시선에도 적용되었기에 새로웠고 더 좋았던 것 같다.

 


* 죽음과 삶 사이에 선 오 상무의 존재

 

[추은주의 캐릭터 포스터와 오 상무의 아내 캐릭터 포스터]


오 상무의 시선은 항상 삶의 에너지로 가득 찬 추은주에게로 향해 있지만, 현실에서의 그는 병자를 간호하는 남편에 불과하다. 죽음을 아내, 삶을 추은주라고 생각한다면 구도는 간결하다. 오 상무는 삶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과 삶이라는 잣대를 놓고 봤을 때 오 상무의 위치는 어느 쪽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사실 죽어가는 아내의 옆에 있는 오 상무는 종종 죽음의 입장에서 삶을 관찰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스크린에서도 아내와 추은주는 여러 방면에서 대조되는 존재이다. 그리고 오 상무는 아내를 응시하기 보다는 추은주를 더 많이 응시한다. 건강한 아내도 응시하던 초반부와는 달리 후반부로 갈수록 추은주에 대한 응시와 상념은 증가한다. 삶과 죽음의 구도에서 아내의 옆인 죽음 쪽에서 슬슬 삶의 쪽으로 기우는 것도 같다. 그러나 아내의 화장(火葬) 후 삶의 구도로 치우쳐야 할 오 상무의 위치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추은주에게 향할 것 같던 그의 발걸음은 또 다른 길로 향한다. 여기에서 나는 내 생각의 오류를 발견했다. 죽음(아내)-인간(오 상무)-삶(추은주)의 구도인 것 같던 세 인 물은 사실 죽음(아내)-또 다른 삶(오 상무)-삶(추은주)의 구도라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 구도는 어떤 극단적인 양 방향을 두고 있는 구도가 아니라 서로 환원하는 원형의 구도였다. 결국은 살아가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식사 중인 오 상무와 추은주]


그렇게 생각 하면 ‘사랑’을 키워드로 내세운 이 영화의 취지를 이해할 수 있다. 가장 좋아하는 개념 중 하나인 에로스-타나토스를 가지고 설명하자면 ‘삶과 죽음은 양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고 정리할 수 있다.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사랑’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운 것이라면 이 영화는 참 똑똑한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사랑’이라는 키워드, 살아가는 이야기에 이어 오 상무라는 인물의 캐스팅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일단 김규리와의 베드신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감을 불러일으킨 점이 그랬고(그는 많은 배역에서 정중하고 신사다운 역할을 많이 맡았기에 관객은 그의 베드신을 기대하는 편이었다. 실제로 영화 안에서 그 베드신을 기대할 수는 없었지만 추은주를 보는 그의 시선은 혹자에게는 관음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섹시한 맛이 있다.), 작은 동작과 낮은 목소리로 연기한 점이 그랬다. 안성기라는 배우는 오히려 더 깊고, 무거운 것을 표현하며 관객의 깊은 곳까지 닿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또 내가 이 영화는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결론을 내리기에도 그의 역할이 꽤나 중요했다.

 


* 와인과 슬리퍼 그 사이에서, 오 상무 그리고 나

 

위에서 언급한 추은주에 대한 오 상무의 동경은 아내의 장례식을 기점으로 끝이 난다. 한 쪽의 대조점을 잃은 추은주로 대표되는 삶은 오 상무가 다가가기 어려운 또 다른 삶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오 상무는 결국 또 다른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택한다. 다만 이 부분에서 소설과는 다른 점이 있다. 소설에서 오 상무와 추은주의 관계는 일방적인 오 상무의 응시와 추은주의 퇴사로 끝이 난다. 반면에 영화에서는 오 상무는 추은주의 이직을 위한 추천서를 써줄 만큼 가까운 사이로 발전했으며, 이에 대한 감사의 표현을 하려 별장으로 찾아오는 추은주의 모습까지 등장한다. 작가는 이에 대해 소설에서 이뤄지지 못한 사이가 영화에서는 이뤄지길 바랐다는 가벼운 이야기까지 했으나 영화에서도 둘은 이어지지 못한다. 다만 오 상무의 약간 미련 섞인 마음은 투영되었는지 그는 별장 안에 추은주를 위한 와인상을 차려놓은 채 자리를 비운다.


자리를 비운 오 상무는 별장 마당을 지나쳐 흙길을 걸어가는 장면에서 다시 등장한다. 슬리퍼를 질질 끌고 걸어가는 오 상무의 뒷모습에서는 왠지 모르게 인간의 삶에 대한 비애마저 느껴졌다. 그렇다. 어쨌거나 인간은 아름다운 것들을 버리고 종종 현실로 돌아와 다시 살아가야 한다. 가질 수 없는 것은 늘 아름답기만 하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른다. 오 상무의 아내도 오 상무의 현실이 되기 전에는 추은주처럼 싱그럽고 아름다웠을 것이다. 오 상무로서는 추은주를 붙잡지 않는 것이 그녀를 아름답게 둘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상이 때로는 이상으로 남겨져 있어야 더 아름다운 것처럼.


그래서일까, 오 상무가 걸어가는 길을 추은주가 탄 차가 지나쳐가는 장면이 등장한다. 잠시 오 상무는 멈칫 하며 걸음을 멈춘다. 동시에 내 시선도 스크린에 멈췄다. 어쩐지 슬리퍼를 질질 끌고 가는 오 상무의 모습에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내가 보이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는 내가 머무는 길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 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내 이상과 현실, 그리고 살아가는 것들에 대한 생각과 또 다른 나의 오 상무가 다시 걷는 장면이 재생된다. 아직 그 결말을 알 수는 없지만 나의 오 상무 역시 영화 속의 오 상무처럼 길 어딘가를 정처 없이 걷다가 결국은 현실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나는 다만 그가 조금 덜 건조하기만을 바라며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응시할 뿐이었다.

 

 

* 사진출처: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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