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분짓기는 왜 생겨난 것일까. 모든 구분짓기는 사회의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 만들어 낸다. 그들은 그들이 만든 구분짓기에서 우위를 차지한다. 그리고 그러한 구분짓기들이 정당하고 사회적으로 보편화 될 수 있도록 전파시킨다.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모든 역사과 담론들은 약자의 논리가 아니라 강자의 논리이다. 그래서 그것들은 차이와 차별을 양산한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차이’ 라는 것은 다분히 사회적인 약자와 강자를 ‘구분짓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래야만이 자신들이 통치하는 사회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약자에 대한 억압은 기득권이 자신들의 계급을 유지하는 통치 방법 중 하나이다. 그러한 것들은 사회가 더 나은 사회로 변화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억압과 차별은 중간계층에게 남의 일로 평가되지만 그 여파는 사회전체로 돌아가게 된다. 그 억압과 차별은 체제의 정당성을 확립하고, 계급이동을 불가능하게 한다.
국가라는 것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체계가 필요하다. 무질서한 변화들은 국가의 혼란을 야기한다. 그러기 때문에 어떠한 사회질서가 존재해야 했다. 그것이 바로 결혼이다. 결혼은 이성애적 사랑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라는 것은 기초 논리가 사람의 존엄성보다 시스템의 안정을 중시한다. 그러기 때문에 그 기준선상에서 도태되는 집단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여성과 남성을 나누는 것은 차별이 아니라 ‘구분’으로 평가되고 있다. 사회에서는 그 구분이 아주 기초적이고 그 어떠한 사회적 의미와 권력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가 사회적으로 당연시 될수록 다른 차별들도 차이에서 비롯된 당연한 것으로 평가된다. 모든 차별들은 그 시대 속에서 당연한 것으로 평가되어왔다. 그것은 어떠한 ‘사회적 차이’에서 발현된 차별이었다. 현 시대에 가장 보편화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인간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이다. 여성과 남성을 나누는 것 자체가 권력관계가 투영된 구분짓기 였기 때문에 이 개념자체를 무너뜨리지 않고서는 그것에 대한 차별을 없앨 수 없다.
이 모든 방향성이 뒷 받침 되기 위해서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존엄성을 인정받는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라는 논리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이기도 하며, 헌법에서도 명시하는 사회이다. 그러나 현 시대는 자본주의 체제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강자와 약자가 나뉘는 것을 당연시 하게 된다. 경쟁을 통해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내고 삶을 더 효율성과 상품이 강조된다. 인간도 하나의 부속품으로 살아가며 경쟁력 없는 인간은 무의미한 존재로 받아드려진다. 상품화 가치가 없는 인간으로서 말이다. 이 자본주의 사회가 빈부격차를 넘어서서도 경쟁사회로서 ‘차이’, ‘차별’을 명명하는 것에 익숙하다. 이러한 체제들이 다름을 다름으로 보지 않고, 무언가를 우월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으로 나누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개인에게 세뇌를 시키는 것이다. 결국 체제는 차이와 차별을 반복시키며, 그 논리를 더 단단하게 하는 악순환의 고리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 사회속에서 기득권의 담론들을 아주 기초적인 것에서부터 얼마나 무분별하게 받아드리고 있는 지에 대한 인식과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고 그 속에서 살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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