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의 셰어하우스 생활기>

처음 셰어하우스에 살게 된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나는 신촌에 있는 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였고, 병원과 가까운 집을 찾아야만 했다. 그러다 이대에 위치한 셰어하우스를 알게 됐다. 사실 모르는 사람들과 산다는 게 처음부터 쉽게 느껴진 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한번은 가서 봐보자’ 라는 생각에 집을 방문하고서 나는 그 자리에서 계약서를 썼다. 그렇게 이집에 살게되고 거의 1년이 다 되어간다. 



   (사진=1층 거실 식탁)


- 보증금 80만원에 집을 얻다


서울에 올라와 자취를 시작한지 4년, 별의 별 집에서 다 지냈었다. 기숙사, 반지하, 홍대 원룸, 강북 엄마 친구집, 친적집, 복층 오피스텔까지 방학이면 고향에 내려가기를 반복하며 1년에 두번 꼴로 짐을 쌌다 풀었다 했다. 짐이 되는 겨울옷은 애시당초 많이 사지도 않고, 조금만 필요없어도 물건을 버리는 버릇이 생겼다. 나에게 집의 개념은 잠자는 곳 정도 였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내가 사는 곳은 ‘집’ 이 아니라 ‘방’ 이였다.


높은 보증금과 월세 그리고 그만한 비용을 치르더라도 가지게 되는 좁은 방. 지금 내는 월세도 버거운데 더 좋은 집에서 살려면 더 많은 비용을 들어야 한다. 그래서 인지 앞으로 내가 살아가게 될 미래의 집에 대해서도 낙관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공간에 대한 ‘포기’는 내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까지도 서서히 퍼져나가는 듯 했다. 


“지금 현재 이렇게 좁은 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데 언젠가는 내가 내 집을 마련하고 독립할 수 있을까? 서울에서 집살려면 10억은 있어야 한다는데." 이것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였다.


1000만원이 넘는 보증금은 도저히 내 스스로 벌 수 있는 돈이 아니였다.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 밖에 없었다. 부모님도 버거워하셔서 친구와 반반씩 모아 집을 마련해야 했다. 그러나 셰어하우스의 보증금은 달랐다. ‘두달치 월세가 보증금’ 그 돈은 80만원이였다. 보증금이 100만원도 아니고 80만원이라니. 보증금은 적을 수록 좋다지만 나에게는 너무 파격적인 가격이라 이게 가능한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1000만원을 감당하던 나에게 920만원이 줄어든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였다. 아담한 3층 주택에 거실이 2개, 쾌적한 부엌, 넓은 옥상에 아담한 테라스까지 빠짐없이 좋았다. 7명이 한집에 살면서 거실, 부엌, 화장실을 공유하지만 방은 따로 쓰기 때문에 나의 개인시간도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 




- 함께 밥을 먹을 사람이 생긴다는 것

7명이 함께 살았지만 다같이 밥을 먹는 일은 흔치 않았다. 다 각자의 생활이 있었기 때문에 세명, 네명 시간이 되는 사람끼리 같이 밥을 먹었다. 귀찮을 땐 혼자 라면을 끓여먹기도 하는데 그러면 라면냄새가 온 집안에 퍼져서 누군가가 같이 먹으려고 나오게 되어있다. 그런게 좋았다. 집에서 사람사는 냄새가 나서 뭐든 혼자가 아니라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말이다. 그러나 같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긴다는 건, 어느정도 맞춰나가야 되는 일이 생기는 것과 같다. 룰이 필요하다. 그러기 때문에 한달에 한번은 집 사람들끼리 모여서 회의를 하면서 청소와 다른 문제들을 상의해나가는 시간을 가졌다. 이 식탁에서 회의도 하고, 회의 후에는 같이 요리를 해서 밥을 먹기도 한다. 






- 월세는 28~38만원, 좋은 공간 그리고 좋은 생각



   (사진=1층 거실)


   (사진=2층 거실)


사실 셰어하우스라고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 1층 거실에서 우리는 한 두명씩 모여 빈둥빈둥 티비를 보기도 하고, 2층 테라스에서 연애나 일 이야기를 하며 이런저런 수다를 떤다. 때로 피곤하면 방에 들어가 문닫고 하루종일 잠만 자기도 하고 셰어하우스에서의 생활은 특별하기보다는 대게는 일상적인 일들이다. 1층 거실에서 밤새 대학 과제를 하기도 하고, 몇몇은 모여서 컴퓨터 게임을 하기도 한다. 혼자서 원룸사는 일이 지루하고, 무섭던 나에게 셰어하우스는 딱 좋다. 모든 셰어하우스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우리집은 다들 셰어하우스에 사는 것을 좋아하고 같이 산다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같이 티비보고, 밥 먹고 이런 것들이 매일 같이 사는 가족들 보듯이 일상적인 일들이 되어버려서 맞추어간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가끔 직장 다니는 친구와 학교 등교시간이 비슷해서 같이 집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헤어질때 '저녁에 만나' 라고 말할 때면 가족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럴때면 모여사는 우리가 신기하다.


친구들이 놀러와서 7명인 식구가 10명 정도 되면 1층 거실에서는 술판이 벌어진다. 다들 어울리기를 좋아해서 집에 놀러온 손님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배달음식 시키고 편의점에서 술 사와서 치맥하다보면 이 집 살기 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든다. 놀러온 손님들도 이런 우리집을 신기해하면서도 부러워한다. 작년에 방송했던 '괜찮아, 사랑이야' 같다고 한다. 테라스에 있던 의자에서 햇살을 받으며 광합성을 하기도 하고, 저렇게 이불을 널어놓기도 한다. 여름에는 돗자리를 깔아놓고 치킨시켜서 수다를 떨기도 했다. 우리집 사람 참 많다라고 느낄때는 요리를 할 때다. 찌개를 좋아하는 나는 김치찌개를 끓일 때면 10인분을 한다. 아니면 다음날에 내가 먹을 김치찌개가 없기 때문이다. 입이 많아서 인지 왠만한 요리를 다 한그릇씩 비우고 나면 남는 게 없다. 그래서 찌개를 끓이다가도 양을 보면 집에 사람 참 많다라는 생각이 든다. 라면사러 가기 귀찮으면 아무나 라면있는 사람 있나고 묻고 다음에 사다준다고 한다. 그런게 웃기기도 하고 재밌다. 


집 값이 비싸고, 1인 가구가 많은 서울에서 서로 어느 정도 배려하고, 규칙을 지켜나갈 용의가 있다면 셰어하우스는 좋은 주거 형태이다. '방'이 아닌 '집'에서 높은 삶의 질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죽기 전에 10억을 모아 서울에서 내 집마련 할 수 있을 까?" 이 집에 살며 사회문제인 주거난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함께 풀어나갈 고민을 하면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가 무능력한 개인이라서 집이 없는 것이 아니라, 서울의 집 값이 비정상 적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대안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에게 셰어하우스는 좋은 대안이였다. 셰어하우스가 보편화되며 많은 이들이 같이 밥 먹는 즐거움을 누렸으면 좋겠다.



   (사진=2층 테라스)


   (사진=내 방)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