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태어난 아이를 돌보느냐 책 읽는 시간마저 허락이 안 됐던 올해 초, 아이가 잠든 사이 소파에 기대 숨소리 내지 않고 SNS를 하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던 시간에 사진으로 올라온 <<82년생 김지영>>을 발견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이리 많은 사람이 읽을까 궁금했고 아이가 통잠을 자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나자 드디어 나에게도 책장을 넘길 기회가 왔다.
▲ 조남주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 (본인촬영)
‘이거 내 이야기인가?’
82년생 김지영 씨의 이야기는 87년생 나의 삶과 다를 바 없었다. 현실은 심하면 더 심했지 절대 덜하지 않았다.
출장 프로젝트 건으로 수원의 한 식당에서 저녁 겸 미팅이 있는 날이었다. 상대측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느냐 마느냐 선택하는 날이었다. 출국이 일주일 남은 상태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식당주인은 상대측 인사의 친구라며 미팅 도중에 불쑥불쑥 방으로 들어왔다. 그냥 들어온 것도 아니고 날계란과 소주를 들고 말이다.
식당주인은 맥주잔에 날계란을 넣고 남은 공간을 소주로 가득 채웠다. ‘저게 뭐하는 걸까’ 생각할 틈도 없이 내 앞에 맥주잔이 놓였다. 나는 날계란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으며 한 번에 그 많은 소주를 마셔본 적도 없었다.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서 못 마시겠으면 거부해도 된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어왔고 그 자리에서 마시기를 거부했다. 그러자 식당 주인의 표정이 돌변했다. “어른이 타주는데 안 마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명령조의 말을 듣자 황당했다. 내가 왜 저 사람의 강요를 들어줘야 할까. 오늘 나의 미팅 상대는 저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다시 마시지 못하겠다고 했고 상대측 인사를 쳐다봤다. 그러나 그 누구도 마시지 말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고 식당 주인은 다시 한번 나에게 반말을 시작했다. “야, 빨리 마셔 안 죽어.”
‘딸이 있다고 들었는데…’
중견 기업의 홍보부와 회식을 하게 된 김지영 씨. 홍보부 부장이 따라주는 술을 억지로 마시고 19금 유머까지 참아가며 자리를 지켰던 김지영 씨. 홍보부 부장이 대학생인 딸이 데리러 오라 했다며 자리를 일어나는 장면을 보며 했던 그 생각을 나도 그 날 날계란이 담긴 소주를 마시며 했었다.
“당신의 그 소중한 딸도 몇 년 후에 나처럼 될지 몰라, 당신이 계속 나를 이렇게 대하는 한.”
‘주변인 1이 되다.’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출산휴가만 쓰고 육아휴직은 건드려보지도 못한 채 아이를 두고 회사로 복직했기에 마음이 무거웠다.
퇴근 후 친정엄마 집에 맡긴 아이를 데리러 가면 아이가 나보다 할머니를 더 좋아했다. 할머니와 둘만 공유하는 것들도 많았다. 그럴 때면 나는 외딴 섬에 홀로 갇힌 사람 같았고 아이에게 엄마가 아니라 그저 ‘주변인 1’이 된 것 같아 씁쓸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맘충이 되었다.’
‘주변인 1’을 벗어나기 위해 그나마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문화센터 가기였다. 그 날만큼은 아이와 신나게 놀아주는 날이었다. 조리원에서 만난 친구들과 육아정보를 교류하는 날도 그 날이었다. 아기 띠를 매거나 유모차를 끌며 다니는 우리를 많은 사람이 지켜볼 것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하루는 100일 된 둘째 아이를 데리고 조리원 친구들과 점심을 먹게 됐다. 뷔페식 식당에 자리 잡은 아이 셋과 엄마 셋. 다행히 아이는 잠들어있었고 오랜만에 맛있는 것을 먹을 생각에 엄마 셋은 들떠있었다.
그러나 접시에 음식을 담아 한 숟가락 먹자마자 지옥이 시작됐다. 내 아이는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울었고 다른 엄마 둘은 오뚝이처럼 아이가 깨지 않도록 몸을 왼쪽,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기저귀를 다 갈고 오자 이번엔 다른 아이가 깨서 밥을 달라고 울기 시작했다. 그 아이가 모유 수유를 마치고 오자 이번에는 또 다른 아이가 수유할 시간이 됐다. 엄마 셋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식당을 나왔는데 식당밖에 긴 줄이 우리를 쳐다봤다. 그 순간 나는 아이를 데려와서 자리를 오래 차지한 맘충이 됐다. 밥은 제대로 먹지도 못했는데 그저 맘충이 됐다. 1500원짜리 커피를 마셨다는 이유로 맘충이 된 김지영씨처럼 내 돈 내고 밥을 먹으러 들어갔는데 맘충이 돼 버렸다.
나는 분명 매일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점심시간, 나보다 2살 많은 85년생 주임님과 밥을 먹으며 <<82년생 김지영>> 이야기를 했다.
“주임님, 저는요. 택시 타기 전에 현금을 준비해야하는 제 모습이 싫어요. 남편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무슨 얘긴지 전혀 못 알아듣더라고요.”
“아휴, 연구원님. 현금만이 다예요? 물건이 무거워서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가 달라고 하면 택시 기사가 투덜대서 결국 현금 내고 거스름돈을 포기해야 하잖아요.”
▲ 19대 대통령선거 후보자토론회 (SBS캡처)
지난 6차 대선 토론에서 유승민 후보가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인구가족부를 신설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한다. 이 소리를 듣고 지난 10년간 여성의 사회진출은 늘어나는데 그에 따른 인식은 왜 제자리인가에 대한, 그러니까 내가 왜 82년생 김지영 씨처럼 살고 있는지에 대한 답을 찾은 것 같았다.
저출산 문제는 ‘아이를 낳으면 이것도 해주겠다 저것도 해주겠다’는 저출산만 생각하는 정책들로는 해결할 수 없다. 아이를 낳아도 여성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차별받지 않을 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여성가족부 폐지 견해를 들으며 더 안타까웠던 것은 여성가족부의 ‘여성’이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한 ‘인구’라는 단어로 대체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유승민 후보의 ‘인구가족부’ 신설과 같은 이야기는 행정자치부가 만들었던 저출산지도와 같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나는 다음 정권이 더는 생물학적 차이를 ‘출산’이라는 단어로 묶어 차별하지 않았으면 한다. 저출산 문제가 여성만의 문제라는 인식이 사라질 때 저출산은 사라질 것이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나는 왜 기분이 우울한가에 대해 고민해봤다. 어쩌면 아무리 극복하려고 해도 극복되지 않은 사회 인식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그래서 <<82년생 김지영>>의 마지막 문장이 더더욱 가슴에 파고든다.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다.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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