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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과연 한국 사회를 고칠 만병통치약인가?개헌, 과연 한국 사회를 고칠 만병통치약인가?

Posted at 2016.07.23 13:58 | Posted in 박성환의 [진지빨고 세상보기]


그간 개헌에 대한 논의는 정치 문화나 시민 의식 등 사회 환경적 요인의 변화를 모색하는 방안과는 단절된 채, 제도만능주의에 입각하여 대통령제냐 의원내각제냐 와 같은 ‘통치구조의 외형적 변화’에만 과도하게 집착해왔다. 또한 개헌에 대한 주장을 유력 정치인들이 자신의 세력 결집을 위한 국면전환용으로 이용했다는 사실을 복기해보면 개헌을 주장하는 정치권의 진정성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도적 개헌을 논의하기에 앞서 합의 문화, 당론에 대한 의원들의 자율성 보장 등과 같은 성숙한 정치 문화가 전제되지 않는다거나 헌법 조항이 대중의 인식 변화와 조응하지 않는 방식으로 개헌이 이루어진다면 통치 구조의 외연이 바뀐들, 실질적 민주주의와 공동체의 발전을 도모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필자는 개헌을 통한 통치 구조의 개편 자체에 대해 부정적 이라기보다는 기존 대통령제가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없게 만든 여러 제도와의 부조화가 먼저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참여 민주주의를 제고하기 위해 통치 구조의 개편 같은 하향식 개헌도 필요하지만 선거제, 경제 민주화를 위한 사회적 기본권 강화, 헌법 재판소의 권한 제한 등 ‘상향식 개헌’의 당위성 역시 주장하는 바, 이에 대한 개헌 논의도 추후 전개할 것이다.

 

대통령제의 성공 가능성은 중임제, 결선투표, 총선대선의 동시선거에 달려있어

 

혹자는 현행 대통령제가 대통령에게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것을 우려한다. 하지만 대통령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보다는 ‘실정에 따른 책임성’을 임기 내에 묻지 못한다는 점이 현행 대통령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제도적 원인은 5년 단임제에 있다. 국정 전반을 파악하는 데 2년이 걸리고 제대로 일 좀 해보려면 어느덧 레임덕에 빠져있다. 임기 내 실정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으니 임기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 여론이 빗발친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법 수사를 시도하면 정치 보복으로 인식한 구 세력이 이에 강하게 반발하는 등 정권 초마다 이전 정권에 대한 심판을 하니 마니로 온 나라가 소모적 정쟁에 휩싸인다.

 

“뭐? 그 분이 4년을 더 할 수도 있다고?”

헌법 제128조 2항에 따르면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그 헌법 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라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중임제로 개헌을 하더라도 박 대통령을 위한 ‘노래방 추가시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사진출처: 나무위키)

 

이와는 달리 4년 중임제는 중간 선거로 재신임을 물을 수 있으니 정치의 책임성이 제고되고 대통령이 좀 더 신중한 국정 운영을 하게 된다. 또한 중간 선거에서 승리하면 최대 8년까지 집권가능 하므로 대통령은 단기적 성과에 급급한 나머지 무책임한 정책을 남발해 차기 정권에 부담을 주기보다는 보다 장기적인 정책 구상에 매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중임제를 통한 원활한 국정 운영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총선 시기도 조정이 필요하다. 한국은 대선(5년)과 총선(4년)의 주기가 일치하지 않는다. 총선이 대통령 임기의 중간 시기에 치러질 경우, 유권자들은 대체로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 심리로 야당에 표를 주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여소야대의 분점정부 출현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새로 출범한 정권에 대한 기대가 충만한 집권 초기에 총선을 치르는 동시선거는 분점정부의 출현을 방지하고 대통령과 의회 간 극한 교착 상태가 야기하는 국정 마비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아울러 대선에서 과반을 획득한 후보가 한 명도 없을 경우, 1위와 2위의 2차 투표를 진행하는 결선제의 도입으로 당선자의 ‘외형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결선투표의 가장 큰 장점은 2차 투표가 진행될 경우, 양 최종 후보가 1차 투표에서 탈락한 후보들의 정책을 수용하는 형식으로 소수 정당의 정책이 차후 국정에 반영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다수제가 야기하는 승자독식을 제어하는 한편 합의와 소통의 정치 문화를 정착시키고 국민통합에 기여할 것이다.

 

대표성, 투명성, 개방성을 확보하는 것이 의회 및 선거 제도 개헌의 목표여야

 

현행 단원제를 미국이나 영국같이 상원과 하원을 따로 두는 양원제로 바꾸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구상하는 양원제 개헌에 따르면 미국식과 비슷하게 상원을 각 지역구마다 동(同)수의 지역대표, 하원을 인구수 기준으로 선출한다.

 

양원제의 효용을 따지기 위해서 우선 선거 제도와의 연관성을 살펴봐야 하는데 그간 한국은 총선 때마다 선거구 획정에 대한 공정성 시비가 불거져 나왔다. 근래에는 수도권의 의석수가 인구수에 비해 과소대표 된 반면, 농어촌 지역의 지역구는 상대적으로 과잉대표 되었기 때문에 선거구를 재편해야한다는 주장으로 확대되었다. 이에 대해 농어촌 지역의 대표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해당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이 이어지면서 도, 농간 갈등 문제로 비화되었다.

 

다행히 4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구 재획정 안에 대해 여야가 가까스로 타협했지만 불만은 누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정 의장의 양원제 개헌안은 의회의 이원화를 통해 농어촌 지역의 정치 소외를 막고 인구수에 따른 대표성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농어촌 지역의 지역구를 늘린다한들, 사실상 지역의 몇몇 토호 정치인들이 장기간 독식하고 있는 지방 정치 판도를 감안할 때, 선출된 의원들이 진정 1차 산업 종사자들을 대표하는지 강한 의문이 든다. 농어촌 지역의 대표성이 우려된다면 굳이 양원제를 하지 않아도 직능비례대표를 도입하는 것이 실효성이 더 커 보인다.

 

더구나 당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한국의 경직적인 정당 문화를 판단해보건대, 상원과 하원의 권한 배분 문제와 여야 대립 구도가 중첩될 경우 단원제보다 심한 정치적 불안정성이 예상된다. 특히 양원제로의 전환은 의원 정수 증가를 요하는데 이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강하기 때문에 의원들의 특권 내려놓기를 통한 대국민 설득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무엇보다 한국의 단순다수제(득표 1위만 당선), 소선거구제(1지역구, 1의석)로 대표되는 한국 선거제도 상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양당 구도는 다양하게 변화하는 유권자들의 이념, 정책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물론 한 지역구에서 복수 이상의 당선자를 선출하는 중선거구제 혹은 대선거구제로 전환하고 비례대표의원 수를 늘린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투명성이 결여된 공천 관행에서 탈피하지 못하거나 정책으로 경쟁하는 건전한 정당 정치 문화가 확립되지 않는다면 금권 정치와 정당 난립만을 초래할 것이다.

 

경제 민주화 성공을 위해서는 사회적 기본권의 확대가 필요

 

저번 대선의 화두였던 경제 민주화는 헌법 제119조 2항에 근거한다. 해당 조항에는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고 적혀있다.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채택하고 있는 현행 헌법에 이와 같은 2항을 추가한 이유는 견제 없는 시장의 지나친 확장이 독점과 불평등을 야기해 공동체가 기저에서 무너지고 사회적 기본권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헌법에서 말하는 기본권이란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말한다. 여기에는 행복 추구권, 양심의 자유, 재산권, 사회권 등 여러 기본권을 포함한다.

 

문제는 기본권 행사로 인해 다른 누군가의 기본권이 침해되는 사례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특히 사용자와 피고용자 혹은 건물주와 세입자 간의 계약 문제는 ‘재산권 행사의 자유’와 ‘생존 및 거주의 자유’가 어떤 식으로 일상에서 충돌하는지 잘 보여준다. 이는 오늘날 사회 통합과 경제 민주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따라서 행복추구권 및 사회권 조항의 법률적 구체화 방안과 이에 필요한 입법부의 역할에 대해 강조하고자 한다.

 

개인의 자유를 기본권에서 인정한다 한들 실질적으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자유의 조건’이란 일정 수준 이상의 자유를 누리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사회적 요건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의 자유는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부자유로 귀결된다. 가령 악덕 기업주에게 근무조건의 개선을 주장하는 어떤 피고용자가 본인이 피하고 싶은 선택지들만 열려있는 경우(해고or 가혹한 근무조건), 이런 상태를 자유롭다고 할 수 는 없는 것이다(『자유란 무엇인가』, 사이토 준이치).

 

누구든지 보편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제공한다는 관점에서 행복 추구권과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와 경제 민주화의 실현에 기여한다. 따라서 대기업의 독점을 견제하고 생존과 거주 문제와 직결된 임차인들의 행복추구권 및 사회권을 보다 포괄적으로 보장하는 헌법 조항 신설이 필요하다. 하지만 행복 추구권과 사회적 기본권 조항 자체를 근거로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요구하기는 어렵다는 판례가 다수이다. 대체로 헌법재판소는 기본권이 입법자의 법률 제정을 통해 실현되어야 한다고 판시해왔다.

 

“헌법을 통한 기본권 보장은 의회의 법률 제정으로 실현될 수 있다.”

일하는 국회로의 전환과 더불어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정당 시스템 개선이 시급하다.

(사진출처: 오마이뉴스)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회가 적극적으로 기본권과 관련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그러나 파행이 거듭되어 온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들은 수두룩하다. 설령 관련 법률이 있다하더라도 사회권을 보장하기엔 갖가지 예외조항규정(ex: 해고의 제한, 가산수당지급 의무 대상에서 제외되는 5인 미만 사업장)이 추가되어 실질적인 권리 보호가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경제 민주화를 위한 기본권 확대 여부는 어디까지나 입법부의 적극적 의지가 중요하다. 헌법 조항의 신설과는 별개로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인력을 폭넓게 충원할 수 있는 한국 정당의 개방성 확보 등 정당 조직의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한 이유이다.

 

헌법 재판소의 권한을 줄이는 것이 대의제와 합의 정치 문화 확립의 지름길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손으로 선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민주적 정통성이 떨어질뿐더러 재판소장을 포함한 9인의 재판관 모두 대통령에게 최종 임명권이 있다는 점에서 행정부를 제대로 제어하기에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특히 정당해산심판 권한은 헌재재판관 선출의 비민주성과 권력의존성을 고려하면 그 남용 소지가 크다. 작년에 해산된 구 통합진보당에 대한 헌재의 정당해산결정을 살펴보면 정당해산의 근거가 되는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기준’에 대한 해석이 불분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위 ‘불량 정당’을 정당해산이라는 사법 권위로 분쇄하기보다는 국민이 지속적으로 감시할 수 있도록 제도권 정치의 장에 묶어두면서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자연스럽게 ‘정치적 퇴출’을 유도하는 것이 대의제의 원칙을 살리고 반민주적 정당의 극단적인 ’지하 음성화’를 방지하는데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

의회민주주의가 대화와 타협으로 여론을 수렴하는 제 기능을 상실할 때, 민주주의는 ‘거리의 정치’로 변질되고 ‘이성과 상식’은 ‘다수의 집단논리’에 묻히게 된다. 이와 같이 판단주체의 공백 상태에서 ‘민주성이 결여된 헌법재판소’가 여론의 향방을 스스로 결정지어버리는 거대한 권력을 가지게 된다.

(사진출처: 딴지일보)

 

우리 사회는 민주화 이후, 합의의 정치 문화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극한 정치적 대립에 봉착한 경우, 정쟁에 지친 대통령과 의회가 직접 헌법 재판소에 판단을 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지만 국민의 손으로 뽑히지 않은 9인에 의해 국가의 중요한 정책이 결정되는 사례가 많아진다는 것은 분명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타협과 설득을 포기하고 의회를 건너뛴 채, 결국 소수의 헌법재판소관들에게 최종 결정권을 쥐어주는 이른바 ‘사법 독재’ 양상은 개헌을 통해 견제해야 한다.

 

결론: 성공적인 개헌을 위해서는 사회, 문화, 환경 등 장기적 토대 마련이 필요.

 

투명하고 전문성을 갖춘 정당 문화, 합의와 숙의가 일반화 된 시민 의식 같은 문화적 조건 없이 단순히 제도적 개헌만으로 가시적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헌법의 정비를 통해 시민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할 수는 있겠지만 사회 문화적 환경의 변화는 긴 세대의 축적과 인내심을 요한다. 선거 승리만을 의식하는 일부 정치권 인사들과 당장의 눈에 띄는 변화를 갈망하는 현 세대의 ‘기분풀이 식 개헌 주장’은 장기적 관점에서 통치 구조의 안정성에 기여하지 못할뿐더러 다음 세대에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다.

 

물론 개헌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인식할 필요는 없다. 다만 개헌을 통해 사회의 근본적인 개혁을 바란다면 제도적 수정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헌법 가치가 변화를 갈망하는 대중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나아가 실생활에서 실질적인 권리 보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단순히 제도적 개헌을 통해 공동체에 장기간 축적된 정치, 사회 문제를 일소할 수 있다는 만능주의적 시각을 경계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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