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 진영 붕괴 이후, 자유 시장 경제는 현재 대안이 없는 보편적 경제 규칙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올바른 시장 경제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의문을 품고 바람직한 비판을 끊임없이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현실에서 과연 ‘자유로운 경쟁’이 보장되고 있는가? 둘째, 자유 경쟁이 항상 시장 경제에 도움이 되는가? 셋째, ‘사회적 신뢰의 부족’은 자유 시장 경제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가? 마지막으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시장 장기 균형’이 현실에서 개인의 자유를 항상 보장하는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자유로운 경쟁은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반면 재화는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인류의 역사는 항상 더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었다. 따라서 누구에게 얼마만큼 배분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규칙이 필요했고 가격에 의한 교환 방식을 고안했다. 그런데 보통 수요와 공급은 불일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경쟁은 불가피했다. 문제는 외부 개입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특권이 부여되고 이들의 독점으로 자유로운 경쟁이 방해받아 시장 기능이 왜곡되는 것이다.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는 ‘독점’이야말로 개인의 창의성과 노력에 따라 시장 요소가 분배되는 시장 질서를 깨뜨리고 나아가 소비자의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했다. 물론 또 다른 자유주의자 하이에크는 기업이 얻는 최적의 효용은 독점에 다다르기 이전에 달성되기 때문에 현실에서의 시장 독점은 드물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불균형적 기업 구조와 유통 구조를 볼 때 독점에 가까운 ‘독과점’의 양상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비경쟁적인 독과점의 결과는 결국 상품 다원주의의 훼손이다. 공정하지 못한 지점에서 출발한 무한정한 자유 경쟁은 결국 독과점적 시장 구조의 출현을 막지 못할 것이며 이는 역으로 소비자의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게 된다.
“소 곱창이 비싼 이유”
도축 직후 곱창 1kg당 가격은 4천원이지만 전국 소 곱창 유통의 40%를 담당하는 중도매인조합이 도매업자들에게 kg당 1만~1만5천원에 팔면서 음식점 판매가는 200g당 2만 5천원선까지 치솟는다. 게다가 나머지 60%의 물량도 15개 안팎의 특정 도매업체들이 독점 공급하고 있다. 도축되는 즉시 도매가가 자유경쟁 가격체계로 전환되는 쇠고기 시장과 달리 “곱창은 쉽게 상하기 때문에 빨리 인수해 줄 중개인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15년이 넘도록 중도매인조합이 주도하는 곱창 유통 독점 체계가 지속되었다. 이처럼 독과점으로 점철된 유통 구조의 복잡함은 가격을 왜곡하여 소비자의 후생을 줄인다.
(출처: SBS뉴스)
때로는 무한 자유 경쟁이 시장 경제 규칙을 무시하는 명분이 되기도 한다. 독점이 배제된 자유 경쟁도 어찌되었든 시장 논리에 따라 결과적으로 선도 세력을 등장시킬 것이며 현실에서 이들은 자신들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생산왜곡, 담합 등 비경쟁적 요소에 근거한 편법과 불법을 자행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기심에 근거한 자유 경쟁이 역설적으로 후발 주자들의 자유로운 도전을 막기 위한 ‘사다리 걷어차기’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욕심에 ‘적정함’이 없는 이유는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필요 이상의 욕구를 만들어내는 상상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개인의 부나 기업의 경제적 성과는 어디까지나 상대적 기준이다. 따라서 다른 경쟁자보다 항상 더 많이 취하려 하고 만족이란 것을 모른다.
일례로 기타 선진국에 비해 미국의 높은 범죄율 추세는 끝없는 경쟁과 사회적 성공을 강조하는 아메리칸 드림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메리칸 드림의 성공에 대한 갈망은 낙오된 개인에 대해 패배자라는 사회적 낙인을 부여한다. 아메리칸 드림에서 말하는 성공이란 최종점이 없기 때문에 사회적 지원이 부족한 미국에서 이는 개인에게 굉장한 부담으로 다가온다. 따라서 정당한 방법을 모색하기보다는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결과만 좋으면 장땡’이라는 도덕적 해이를 확산시키고 이는 곧 범죄율의 증가로 이어진다. 법치 질서에 대한 도전은 패자에 대한 배려와 사회적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고 이러한 사회적 불신은 시장 경제의 원활한 작동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총기의 공공장소 휴대가능 법안(open carry)이 통과된 미국 텍사스 주”
미국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개인이 스스로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개인의 총기 소유를 정당화했지만 방어의 수단은 쉽사리 공격의 수단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총의 비대칭적 파괴력은 이미 총기 공격을 당한 사람의 입장에서 공격자에게 똑같이 반격을 가할 수 있는 대칭적 상황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본인이 공격을 받을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언제든 남보다 방아쇠를 먼저 당기는 것이 곧 ‘최선의 방어’가 된다. 이는 대화로 해결하기보다 내가 먼저 쏘지 않는다면 나는 당할 수밖에 없다는 극도의 사회적 불신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신뢰의 부족이 총기 범죄로 이어지고 범죄의 증가가 다시 불신을 초래하게 되는 악순환은 미국 사회가 치러야 할 사회경제적 비용을 증가시켜 역설적으로 안전에 대한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http://www.motherjones.com/politics/2014/06/guns-target-open-carry-texas-women-corpus-christi)
이처럼 신뢰가 결여된 시장경제는 불확실성의 증대를 초래하여 각종 경제적, 사회적 범죄, 환경오염 등 여러 가지 외부 불경제 효과를 야기한다. 수요자와 공급자가 재화를 교환하는 행위에는 서로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이전에 상호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시장 경제에서 시장 변수는 시장에 의해 작동한다고들 하지만 현실에서 가격, 공급량, 수요성향을 결정짓는 것은 결국 인간의 의지와 행동이다. 따라서 올바른 시장 경제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이기심과 상호간에 사회적 신뢰가 수반되어야 한다. 만약 어떤 독점 기업이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일부러 과소공급을 한다거나 공급자가 상품의 질을 속이고 소비자에게 적정 가격 이상으로 판매하면 어떻게 될까? 시장은 장기적으로 신뢰를 잃을 것이다. 신뢰의 실추는 여러모로 시장 경제에 손해를 끼친다. 소비자들이 구매를 꺼려 초과공급 발생과 이에 따른 실업이 초래된다든가, 공급자가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홍보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는 등 불필요한 비용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사회적 신뢰의 회복을 위해서는 시장 주체들의 투명한 운영과 서로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제도적 틀, 윤리 의식이 밑바탕 되어야 한다. 결국 자유 시장 경제의 신뢰 구축을 위해 우리는 정치와 사회의 영역에도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실업은 소비할 자유를 제한한다.”
시장의 자율적 조정 능력을 맹신한 고전학파는 “생산된 것은 결국 모두 재화 소비와 생산요소 투자(ex: 노동 고용)에 지출되기 때문에 비자발적 실업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1930년대 대공황 시대의 공급 과잉과 대량 실업 사태를 설명할 수 없었다. 이에 J.M.케인즈는 수요가 공급을 충족하는 시장 조정 과정에서 외부 시차나 경로 이탈 현상이 나타날 수 있고 때로는 사회의 수요가 시장의 생산물을 전부 소비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이러한 유효수요의 부족이 나타날 때 기업의 고용 감소, 즉 ‘비자발적 실업’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실업에 따른 소비 능력의 감소는 공급 과잉 현상을 해소하지 못할 뿐 더러, 가계 구성원에게는 ‘자유의 제한’을 의미한다. 이에 케인즈는 국가 주도의 사회 복지 제도 구축과 고용 증대를 통해 소비자의 유효 수요 능력을 제고시켜야 장기 불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출처: 더 가디언)
대부분의 시장경제주의자들은 외부개입 없이도 장기에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시장청산(market clearing)과 이자율, 고용, 산출량 등이 최적의 균형을 회복한다는 ‘장기 균형’(long-run equilibrium)을 신뢰한다. 하지만 장기 균형으로 가는 과정은 현실에서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감수해야 할 사회 문제도 분명 존재한다. 가령, 경기진작을 위해 중앙은행이 확장적 통화 정책을 시행하면 통화량의 증가로 이자율이 하락하고 이는 투자의 증가를 가져와 총수요 및 총소득 증가를 불러온다. 하지만 통화정책의 외부시차는 매우 길어서 이론과 달리 현실에서 그 효과는 한참 뒤에야 나타난다. 이 기간 동안 은행의 신용할당 기준에 의해 차입이 거부된 개인과 기업들은 결국 경기 진작 효과가 나타날 때 까지 버티지 못하고 파산하거나 도산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확장적 통화 정책의 성과와는 별개로 사회가 막대한 구제 비용을 감수해야함을 의미한다. 설령 시장의 장기 균형이 제대로 나타난다 해도 케인즈가 “장기가 오기 전에 우리는 모두 죽는다.”(In the long run, we ‘re all dead.)라고 말했듯이 ‘보이지 않는 손의 작동 과정’은 매우 더디다. 장기로 수렴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시장독점, 공급과잉, 대량실업, 유효수요의 감소, 가족해체, 범죄율의 증가 순으로 나타나는 사회적 악영향은 개인이 누릴 자유의 질적 수준을 떨어뜨릴 것임이 분명하다.
“대출받을 수 있는 능력은 곧 경제적 부를 대변한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 통화량을 증대하는 정책은 여러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쓰이지만 통화량 증가로 발생한 신용이 곧바로 전체 국민소득의 증가와 후생의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은행은 중앙은행으로부터 제공받은 신용을 경제주체에게 할당하는 기준으로 개인의 재무 상태에 따른 상환 가능성을 따지기 때문에 정작 차입이 필요한 저소득층은 은행에서 신용을 융통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이들의 불안정한 고용상태나 담보의 부재는 오히려 신용대출을 받는데 있어서 낙인 효과가 될 뿐이다.
(출처: 연합뉴스)
자유 시장 경제가 일부의 자유만을 충족시켜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유는 단순히 ‘억압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 개인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ex: 최저임금제, 기초생활수급, 실업급여) 물론, 자유 시장 경제의 자율성을 부정하고자 함이 아니다. 단지 공정한 규칙에 의한 ‘경쟁의 선순환’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 개입 뿐 아니라, 기업운영의 투명성 재고, 시민사회의 시장 정책 참여가 전제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시장 주체에 의해 동의된 시장 규칙은 분명 정당성을 얻을 것이다. 또한, 공정한 시장 규칙의 적용으로 인해 신뢰가 회복될 것이다. 사회적 신뢰와 배려를 통한 정책은 시장의 장기 균형으로 수렴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시장 소외 집단에 대한 안전망을 제공해줄 뿐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경쟁에 다시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패자부활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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