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70여 년 전, 유럽에는 불과 5년여 기간 동안에 독일과 동유럽 일대에서 약 600만 명의 유대인과 집시를 집단 총살하거나 가스를 이용해 대량학살을 주도한 인물이 있었다. 또한, 그는 소련에서만 약 2000만 명이 희생된 인류 최대의 비극적인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그는 연합국의 반격에 의해 점차 패망의 길에 접어들었고 결국, 조국 독일에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와 국민들에게 ‘전범 민족’이라는 씻을 수 없는 오명만을 남겨준 채 1945년 4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아돌프 히틀러.’ 그는 오늘날까지 적어도 현대사에서만큼은 희대의 살인마 수준을 넘어서 ‘악의 화신’으로 기억되고 있다.

“앵글로-아메리칸-나치 깃발”, 영미는 과연 정의로운 선의 세력일까? 19세기의 영국 패권시대와 미국의 서부 개척사를 살펴보면 나찌 독일의 지배와 착취, 학살 등이 상당부분 영국과 미국을 ‘벤치마킹’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과연 영국과 미국이 나찌 독일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이 든다.
(
http://sttpml.org/canada/breathtaking-hubris-and-hypocrisy-the-nature-and-foundations-of-anglo-american-and-nazi-imperiums-part-i-u-s-origins-development-inspirations-and-cover-ups-of-wmds/)

반면, 이러한 악의 화신과 그의 추종 세력인 나찌 독일을 무찌른 미국, 영국을 위시한 연합국은 곧 선과 정의의 승리로 칭송되어왔다. 세계는 우생학에 기초한 인종주의, 전체주의 등 나찌 독일의 패악적 문명의 잔재를 일소하고, 영미(英美)의 언어, 철학, 문학, 미디어, 정치제도, 기술 등 앵글로 색슨 문화권의 모든 것들이 곧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 ‘정의로운 것’, ‘세련되고 문명화된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한마디로 종전 후 오늘날까지의 70년은 이들의 문화가 곧 지극히 상식적이다 는 ‘국제 표준’(global standard)의 지위를 차지하는 과정이었다. 국제정치경제의 측면에서도 이들 앵글로 색슨(영국, 미국)의 패권이 공인되고 이들의 주도하에 세계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이 진행되었다. 미국 달러 중심의 국제 통화체제와 IMF, 세계은행으로 대변되는 영미권 주도의 국제 금융체제 구축 역시 전후 질서에서 최후의 승자로 등극한 영국과 미국의 패권을 상징하는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앵글로 색슨 문명권(영국, 미국)은 근현대사에서 나찌 독일이나 공산 소련의 위협에 맞서 항상 약자를 보호하고 전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희생한 정의의 세력이었는가? 애석하게도 19세기 빅토리아 여왕의 대영제국시절부터 오늘날 미국의 패권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기록은 오히려 이들의 부도덕성을 고발하고 있다. 영국과 미국의 세계 경영은 그 잔혹성과 비인간적인 측면에서 나찌 독일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도 뻔뻔하게 앵글로 색슨 문명권의 정의로움을 자화자찬하고 그것의 정당성을 전 세계에 주입하려하는 등 상당히 오만하기까지 하다. 근 200여 년간 번갈아가며 정의로운 세계경찰을 자임해온 영국과 미국의 그 위선을 이제 하나하나씩 들추어내고자 한다.

영국의 제국주의: 인도의 벵갈 대기근과 보어 전쟁

영국은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이르러서 5대양 6대주에 걸쳐 제국을 경영한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패권국이었다. 그 중 하나의 식민지였던
인도는 1947년 공식적으로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까지 영국인들의 사상적, 기술적 진보에 필요한 식량을 제공하고, 영국 시민들의 복지비용 확보를 위한 명목으로 끊임없는 경제적 착취를 당하였다. 이미 인도는 18세기부터 영국의 곡물 수탈로 인해 주기적인 기아 상태를 경험하였고 그 때마다 적게는 수만 명, 많게는 수백만 명의 인도인들이 굶주림으로 희생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비극의 절정은 1943년의 벵갈 대기근이었다. 당시 인도에 쌀을 공급하던 영국령 버마가 영국의 적국인 일본에 의해 점령되자 영국의 처칠 수상 내각은 일본의 인도 침공을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인도 벵갈 지역과 방글라데시의 곡물을 군용으로 징발하는 한편, 민간으로의 유통을 엄금하기 시작했다. 이는 벵갈 지역의 인도인들을 최악의 아사지경에 빠뜨렸다. 당시 벵갈 지방의 대도시 콜카타에서는 굶어죽어 가는 아녀자, 아이, 노인이 속출했고 길거리에는 이들의 시체가 쌓이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마운트배튼 당시 인도 총독이 본국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처칠은 “인도인들을 증오한다.”는 식의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요구를 묵살했고 구호물자를 보내겠다던 호주와 미국의 요청도 거절하였다. 전문가들은(차이가 있지만)이 기간 동안 무려 약 300만~700만 명의 인도인이 아사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직접적인 학살 외에도 19세기에만 영국의 혹정, 기근 당시 영국 식민당국의 책임 방기 등으로 인해 약 2000만 명의 인도인이 죽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다.(『American Holocaust 』, David Stannard)

 

“1943년의 인도 벵갈 대기근”, 영국의 곡물 수탈과 지원 거부로 약300만~700만 명의 인도인이 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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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boydom.com/2013/06/02/top-10-ways-world-war-ii-affected-india/)
(
http://news.bbcimg.co.uk/media/images/80414000/jpg/_80414821_famine.jpg)

영국의 만행은 이뿐만이 아니다. 1870년대에 남아프리카 보어인(17세기에 남아프리카에 정착한 네덜란드 계 백인 이주민의 후손)의 영토였던 오렌지 자유국과 트란스발 공화국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되자 탐이 난 영국이 광산을 차지하기 위해 1880년 1차 보어 전쟁을 일으켰다. 보어인의 치고 빠지는 식의 게릴라 전술에 패배한 영국은 1899년부터 1902년까지 벌어진 2차 보어 전쟁에서는 보어인들의 장기인 게릴라전을 수행할 수 없게 아예 그들의 주거지를 소개해버리는 초토화 작전을 수행했다. 그와 더불어 16만 명에 달하는 무고한 보어인 여자와 아이, 노인들을 집단 수용소에 감금했다.

집단 수용소의 환경은 매우 열악하여 이질, 콜레라 등 각종 전염병이 돌았고 그 중 2만여 명의 보어인이 사망하였다. 보어 민간인의 집단 감금은 보어 군의 사기를 저하시켜 결과적으로 영국에 승리를 안겨주었지만 그 잔인성으로 인해 영국은 엄청난 국제적 비난에 시달려야했다. 뿐만 아니라 19세기 제국을 경영하는 과정에서 영국은 수단, 이집트, 중동, 중국 등 세계 각지에서 통계조차 낼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인적, 물적으로 착취했다. 나찌 독일이 단기간에 수백만 명을 학살한 것만 나쁜 짓이고 영국이 긴 시간에 걸쳐 학살뿐만 아니라 혹정과 수탈을 병행하여 간접적으로 수천만 명을 굶어 죽인 것은 과연 덜 욕먹을 일인가?

 

“보어인 집단 수용소에서의 비참한 삶”, 2차 보어 전쟁(1899~1902)에서 영국인들은 아예 보어 민간인들의 주거지와 농장을 불태우고 여성, 어린이, 노인 들을 강제 수용소에 감금하였다. 이 현대적인 형태의 보어인 집단 수용소는 나중에 히틀러의 유대인 수용소 건설에 영감을 주었다.
(
http://www.reformation.org/boer-war.html)

미국의 위선: 인디언 보호구역과 도쿄 전범 재판, 그리고 월남전

미국은 유럽 국가에 비해 해외 식민지가 거의 없었고 따라서 영국과 같은 무력위주의 제국주의적 속성과는 조금 거리가 멀었다. 2차 대전 종전 이후에는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독립을 통한 구 제국주의 청산을 종용했기 때문에 도덕적인 측면에서 영국보다 한층 자유로울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도 마찬가지로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으니 19세기 서부 개척 시대에 자행된 인디언 대학살이다. 인디언 대학살 역시 영국이 일으킨 보어 전쟁과 마찬가지로 자원에 대한 욕심(서부의 금광)때문에 일어났는데 미국인들의 전략은 영국인들보다 더 교묘했다. 직접적인 학살 외에도 이른바 인디언들의 위생과 생활 개선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인디언의 거주 지역을 계획했는데 이는 사실상 ‘인디언들을 척박한 오지로 강제 추방하는 형식’이었다. 뻔뻔스럽게도 인디언 거주지역의 명칭은 ‘집단 수용소’가 아닌 '인디언 보호구역'(Reservation)이라는 위선적인 명칭을 띠고 있다.

또한, 미국의 인디언 정책은 인디언에 대한 직접 학살보다는 인디언의 생존 조건을 차단하는데 그 주안점을 두었다. 미국인들이 인디언의 주요 식량인 아메리카 들소를 의도적으로 대량 사냥하여 거의 멸종시킨 행위는 기아를 통한 인디언 종족의 '절멸'을 그 최종 목표로 삼았다는 사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  미국의 인디언 절멸 정책은 총칼보다는 자연 아사나 종족 도태 등의 방식으로 서서히 진행되어갔으며 서부 개척시대 기간 동안 무려 5000만 명에 달하는 인디언이 죽었다고 추정된다.
(『제노사이드: 학살과 은폐의 역사』, 최호근)

“일본 731 부대장 이시이 시로”, 그는 인간을 상대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생체실험을 했던 전범이자, 일본 관동군 731부대의 총책임자였다. 1945년 종전 후, 그간의 실험 결과를 미국에 제공하기로 한 대가로 도쿄 전범 재판에 기소되지 않았다.
(
http://en.wikipedia.org/wiki/Shir%C5%8D_Ishii)

미국은 화학, 생물, 방사선 무기 등(이하 화생방) 대량살상무기의 확산방지 체제(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를 주도한 국가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런 나라에 왜 ‘포트 데트릭’(Fort Detrick, 미 육군 생화학전 연구소)  같은 기관이 존재하는가? 이에 대해 미국은 적국의 화생방 공격에 대한 방어 차원에서 만든 연구기관이라고 변명하지만, 사실 미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화생방 무기에 축적된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화생방 무기를 실전에 사용한 역사가 있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미국 포트 데트릭은 어떻게 화생방 무기 제조 기술을 축적했는가? 2차 대전 종전 직후 일본의 전범을 처리하던 도쿄 전범재판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일본의 맥아더 미군정은 본국에 일본 731 세균전 부대의 연구를 보고했고 트루먼 미 정부는 비밀리에 이시이 시로(石井四郎) 731 세균전 부대장을 전범으로 기소하지 않는 대신 연구 결과를 넘겨받는 거래를 성사하였다.

“민간택배회사 페덱스로 국내에 生탄저균 반입한 주한미군”, 100kg으로 무려 300만 명을 살상할 수 있는 생물 무기인 ‘살아있는 상태의 탄저균’을 한국 정부와 상의 없이 몰래 들여왔다.
(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998727&plink=ORI&cooper=NAVER)

그리고 전술했듯이 미국은 화학 무기를 실제로 전쟁에 투입했는데 월남 전 당시 베트콩들이 은신한 정글을 고사시키기 위해 살포한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 고엽제의 종류) 살포가 그것이다. 이는 다이옥신이 포함된 강력한 독성 물질이었으며 심각한 후유증을 유발하였다. 1962년부터 71년까지의 기간 동안 고엽제로 인해 베트남에서는 15만 명의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을 포함하여, 300만 명 베트남인들이 에이전트 오렌지에 노출되었고(베트남 적십자사 발표) 결과적으로 40만 명의 베트남인들이 죽거나 장애인이 되었으며, 50만 명의 어린이가 불구로 태어났다고 밝혔다.(베트남 외교부 발표) 뿐만 아니라 당시 작전을 수행 중이던 미군과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맹국 참전군인들 중 적지 않은 수가 고엽제 후유증으로 지금까지 각종 암과 백혈병, 피부병에 시달리고 있다.

애석하게도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편에서 쓰이게 마련이다.

영국과 미국은 200여 년 동안 나찌 독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직접 학살 외에도 불평등 무역을 통한 경제적 착취, 의도적인 병원균 살포, 거주지의 파괴와 식량 수단 제거 등 교묘한 방법으로 무고한 인명 살상을 주도하였다. 문제는 영국과 미국의 다양한 형태의 식민지 착취, 원주민 대량학살, 절멸 정책이 훗날 2차 대전 당시 히틀러와 나찌 독일의 만행에 큰 영감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히틀러는 보어 전쟁 당시 영국의 보어인 수용소를 참조하여 나찌의 유대인 수용소를 구상하였다. 또한, 추방과 보호구역 감금과 같은 인위적인 환경 조작, 기아와 질병으로 절멸에 이르게 한 미국의 인디언 정책을 그의 측근들에게 자주 칭찬하곤 했다.(『Adolf Hitler』, John Toland)

하지만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편이었기에 승자의 추악한 과거는 숨겨지고 패자의 만행은 더 잔인하고 악랄하게 남겨진다. 1943년 벵갈 대기근으로 인도인 약 300만 명이 아사한 사건이 단순한 자연 재해가 아니라 처칠 영국 내각의 의도적인 식량 봉쇄 정책으로 인한 인재(人災)였다는 사실은 비교적 최근에 밝혀졌다. (『Churchill's Secret War』, Madhusree Mukerjee, 2010) 미국의 인디언 절멸 정책 역시 단순한 학살이 아니었다. 인디언 학살을 통한 영토 확장이 신이 미국인에게 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한 일종의 ‘종교적 광기’였으며, 도쿄 전범 재판에서 미국은 정의의 사도인척 행세하고 뒤로는 천인공노할 일본의 세균전 전범들을 연구 자료 몇 장에 면죄하였다. 현대에 들어 미국은 있지도 않은 생화학 무기를 찾는다고 이라크를 박살내는 등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에 열을 올리면서도 정작 그 자신들은 가공할만한 생화학 무기 기술을 축적하고 있다.

물론 히틀러와 나찌 독일의 전쟁 범죄를 옹호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영국과 미국을 위시한 연합국 역시 정의롭지도 도덕적이지도 선하지도 않다. 그들의 패권체제는 어느 정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등 다소 긍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그들이 행사하는 무소불위의 패권은 약소국에게는 착취를, 신흥국에게는 반감을 불러 또 다른 대립과 전쟁이 촉발되는 원인을 제공하기에 충분했다. 국제 사회에서 말하는 평화란 항상 힘으로 세워진 것이기 때문에 정의롭지도 못할 뿐 더러 언제나 불안한 상태이다.

문제는 오늘날 영미권의 패권이 국제 정치에서 뿐만 아니라, 학문, 예술, 문화와 생활양식 등 소프트 파워 적인 측면에서 더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특히 미국의 영향력이 크고 영어가 신분상승의 도구가 된지 오래이며 영미 권에서 유학한 사람들이 정, 재계의 핵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의 영미 문화에 대한 지나친 편중은 결국 세계를 균형 있고 올바르게 보는 시각을 저해할 것이다. 물론 영미 선진국의 좋은 점을 받아들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이들의 부도덕한 과거사와 오늘날의 잘못된 세계경영을 옹호하고 무조건 그들이 ‘선’이라고 숭앙하는 행위는 실리적인 측면에서 영미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차원과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도대체 언제쯤 정신 차릴까? 영미(英美)의 제국주의 정당화

자신들의 과거 잘못에 영국과 미국은 어떤 반응일까? 우선 그들은 나찌 독일이 일으킨 전쟁과 자신들의 패권 추구를 분명하게 구분하고자 한다. 자신들의 통치 기간 동안 식민지 국가에서는 전근대적 봉건 체제가 혁파되고 해당 국민들에게는 문명에 기반을 둔 계몽과 교육의 기회가 주어졌다고 항변한다. 한마디로 자신들은 ‘착한 제국주의’였다는 것이다. 특히 영국의 인도 식민지배논리가 그러한데 아직도 적지 않은 수의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식민 지배가 인도인들에게 철도, 전기, 의료 등 선진 문명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줬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또한, 자신들의 지배가 아니었다면 인도는 아직도 전근대적 봉건 체제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니 오히려 자신들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역시 19세기 말에 필리핀을 점령하면서 내세운 명분이 ‘필리핀인들의 위생 개선’이었다.

한국인이라면 어디서 많이 듣던 논리 아닌가? 그렇다. 이들의 논리는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면서 철도도 놔주고 학교와 병원도 세워줘서 오늘날 한국이 그만큼 발전할 수 있었다는 ‘일제의 식민지 근대화론’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외형적인 근대화가 해당 식민지인들에게 어느 정도 문명의 이기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줬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게 본국인들과 평등한 교육의 기회, 참정권의 기회는 그 어떤 식민지에서도 행해지지 않았다. 단순히 식량과 의료 서비스만 제공하면서 고등 교육의 기회를 제한한다면 그것은 착취를 위한 가축을 사육하는 것이지,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을 양육하는 것이 그 목적이 아니다. 더구나 산업 인프라의 근대화는 어디까지나 그들의 식민지 착취에 필요한 하나의 경영 도구에 불과했을 뿐, 마음에서 우러나온 시혜적 조치는 아니었다.

애석하게도 이러한 앵글로 색슨 문화권(특히 영국, 미국)의 근거 없는 도덕적 오만함은 당분간 계속 될 것이다. 패자인 나찌 독일과 달리 그들은 반성의 필요성을 전혀 못 느끼는 승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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