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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에 언제나, 성폭력우리 옆에 언제나, 성폭력

Posted at 2017.03.08 08:00 | Posted in 닻별의 [일상다반사]




올해 4월,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의 피해사실 폭로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사건의 시간대도, 가-피해자의 관계도, 발생한 공동체도 다양했지만 공통적인 사실이 몇 가지 있었다. 가해자들의 사과 대자보의 내용이었다. 피해자들의 폭로는 수도 없이 쏟아졌지만, 가해자들의 대자보 내용은 정말 비슷비슷했다. 본인의 가해 사실을 나열하고, 사과하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그 당시의 나를 이해할 수 없다’ 는 내용도 있었다. 감히 짐작컨대, 본인이 어떠한 맥락에서 가해를 저질렀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성폭력 사건 가해자가 피해자의 이의제기를 받고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다. 사건 경위를 이미 알고 있던 나는 가해자에게 ‘본인 입장에서 사건을 재구성해볼 것’ 을 권유했다. 그래서 듣게 된 사건 경위는 충격적이었다. 가해자는 본인이 왜 가해자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본인의 행위가 ‘성폭력’ 이 아니라 ‘로맨틱한 관계 사이에 흔히 발생하는 스킨쉽 사인 미스’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피해자와 본질적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던 것이다.

한국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성폭력은 나쁜 것’ 이라고 교육받는다. 하지만 왜 나쁜지, 성폭력이 어떤 맥락에서 발생하는 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오히려 성폭력 피해자에게 손가락질하도록 가르친다. 성폭력 교육을 하면서 이렇게 가르치기 때문이다.

    ▲ 경찰청 공식 블로그에 올라온 성폭력 예방법 (폴인러브 : 16.08.22)

성폭력 예방 교육의 초점이 피해자에게 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사실 성폭력 문제는 어떤 상황이든, 피해자가 어떤 상태이고 둘의 관계가 어떻고 등등과 관계없이 절대 합리화 될 수 없는 문제이다. 왜냐하면, 모든 강력 사건이 그렇듯 성폭력 역시 ‘가해자의 문제’ 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폭력은 어떤 맥락에서 발생할까? 사실 아주 단순하다. 성폭력은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다. 흔히들 폭력을 떠올릴 때, 현상에 집중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신체적, 정신적, 심리적 손상과 압박을 가하는 물리적 강제력을 가하는, ‘현상’ 말이다. 하지만 모든 폭력은 강자가 약자에게 강제력을 행사하면서 발생한다. 폭력이 발생하는 관계성, 즉 강제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가 더 주의깊게 봐야 할 지점이라는 것이다. 성폭력 역시 이 관계성을 정확하게 따른다. 2014년 경찰청 통계를 따르면, 성범죄(강간, 유사강간, 강제추행, 기타 강간/강제추행 등) 전체 발생 건수 21055건 중 여성 피해자는 18974명으로, 약 90.12%이다. 가해자의 경우, 전체 검거자 19306명 중 남성 가해자가 무려 18983명으로 약 98.33%가 남성으로 집계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별권력을 명확하게 볼 수 있다. 피해자 성비를 차치하고서라도,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의 98.33%가 남성이라는 건 현 한국 사회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지표다. 바로 ‘남성’ 으로 통용되는 집단이 성폭력을 저지를 ‘권력’ 을 쥔 집단이라는 것 말이다. 권력 집단이 성교육을 만들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성교육은 이상한 방향으로 비틀어져 있다. 우리는 여기서, 9.88%를 차지하는 남성 피해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남성’ 집단이 가해자로 지목되었다. 이성애규범이 지배하고 있는 이 사회에서, 남성 가해자가 98.33%인데 남성 피해자가 9.88%라는 건 언뜻 이상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자료가 나타내는 것은 명확하다. 남성 집단에 속해있는 개인 역시 권력구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다. 남성 개인 역시 ‘남성 집단’ 에게 요구하는 가부장제 남성성으로 권력을 판가름하기 때문에, 이상적 남성성을 획득한 사람은 남성 집단 – 남성 중심 사회에서 더 많은 권력을 획득하고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위치에 선다. 그러지 못한 사람일수록 집단으로부터 배제되고 권력과 멀어진다.

 하지만 사회에서 남성이 권력을 차지한 지 굉장히 오랜 세월이 지났다. (청동기 시대부터 남성이 사회의 중심이 되었다.) 어떠한 집단이 권력을 획득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 집단은 스스로가 권력을 쥐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인지부조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너무 오랜 세월 남성이 사회에서 권력을 쥐고 있다 보니, 남성집단은 권력층으로 군림하고 있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리게 되었다.

사회의 주류 이념이 남성에게 맞춰진 사회에서, 개인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본인이 권력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하게나마 자각하고 있다면,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있다. 바로 ‘성적 자기결정권’ 을 존중하는 것이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그리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나 사회의 간섭/강요 없이 자신의 의지와 판단에 따라 자율적으로 성적 행위를 결정하고 할 수 있는 권리가 바로 성적 자기결정권이다. 그 중에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행동은 ‘동의 구하기’ 이다.

 동의를 구하는 작업에서도 우선해야 하는 조건이 있다. 첫 번째는 ‘상대와의 권력관계를 생각하는 것’ 이다. 본인과 상대와의 관계를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두 번째는 ‘동의 표현-거절 의사를 잘 표현할 수 있는 환경 만들기’ 이다. 거절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는 환경은 곧 성폭력을 조장하는 문화와 연결된다. 그리고 성적 자기결정권의 원 의미를 크게 훼손한다.

 우리는 성폭력이 만연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언제든 성폭력이 발생할 수 있도록 방조하고, 오히려 조장하는 분위기가 곳곳에 펼쳐져 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미약하지만, 수많은 개인이 모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걸 나는 믿는다. 당장 내가 속한 공동체부터 성폭력에 무방비한 공동체가 되지 않겠다 선언했다. 개인의 생각이 조금씩 바뀐다면, 언젠가 이 사회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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