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시작이군!’
사진출처 : 뉴시스
국정교과서 대표 집필진으로 초빙된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가 기자들과 자택에서 식사를 하는 과정에서 조선일보 여기자에게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한다. 최교수는 논란이 확산되자 국정교과서 집필진에서 자진 사퇴했다. 사퇴 소식에 몰려든 취재진에게 최교수는 "나는 별로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라고 발언했다한다.
지난 해 9월,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여성 캐디를 성추행한 사건이 있었다. ‘딸 같아서 귀엽다는 수준에서 손가락 끝으로 가슴 한 번 툭 찔렀다’는데. 피해 여성은 1991년생, 당시 나이 24살이었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성추행 사건이 일어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그 대사! ‘딸 같아서, 손녀 같아서’라는 말로 무마하려했다. 법원은 박 전 국회의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과 성폭력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수강명령을 내렸는데 박 전 국회의장이 항소하여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건은 또 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기간 중 여성인턴을 성추행한 사건이다. 그는 대통령의 의회 연설을 앞 둔 상황에서 여성인턴을 성추행했고 이 때문에 급히 귀국하여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 당시엔 "허리 툭 치며 격려한 것일 뿐"이라고 혐의를 부인했는데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팀의 조사를 받을 때는 피해 여성의 엉덩이를 만졌다, 여성 인턴이 호텔 방으로 올라왔을 당시에 속옷을 입지 않았다고 시인했다.
그들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변명거리라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오늘도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여성들은 눈물을 흘리며 사회 곳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20대 여자애가 무슨 재주로?’
여러 가지 사건을 지켜보며 나는 재작년 여름을 떠올렸다. 문화재환수운동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나는 LA카운티박물관이 소장한 ‘문정왕후어보’ 반환운동을 하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썼다. 문화재환수운동을 직업으로 삼고 있지만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에서 당당히 문화재를 반환받지 못한다면 문화재환수운동가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정말 열심히 뛰어다녔던 기억이 난다.
작년 7월부터 9월 사이는 LA카운티박물관에 문정왕후어보를 돌려 달라 직접 반환요구를 하는 중요한 시점이었다. 문정왕후어보가 미군에 의해 불법 반출됐다는 사실을 3년간 조사 연구하여 입증했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협상에 나선 것이다.
회사에서는 협상력을 높이고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 수 있도록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환수운동을 고민했고 논의 끝에 백악관 청원사이트를 이용하기로 했다.
백악관 청원사이트 ‘We the People'은 게시한 청원에 대해 10만 명이 한 달 안에 서명하면 백악관이 입장을 표명하는 제도이다. 우리는 불법도난당한 문정왕후어보가 LA카운티박물관에 소장돼 있으니 반환하라는 청원서를 제출했고 10만 명의 서명을 받기 위해 ‘문정왕후어보 반환을 위한 100인 위원회’를 발족했다.
모두 다 문정왕후어보가 고국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환수운동을 벌였지만 한 편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추측할 수 있는 환수위원회 불만의 이유는 정부가 무관심해서이거나 미국 측이 진지하게 협상에 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도 일 것이다. 그러나 어른들의 불만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당시 나이 27살이었던 필자가 문정왕후어보 반환을 위한 100인 위원회 사무처장’이라는 것이었다.
‘20대 여성이 가진 편견과 싸우다’
불만을 가진 ‘못된 아저씨’들의 괴롭힘은 정말 치사할 정도로 쪼잔 했다. 발대식 행사의 사회를 맡은 필자가 못마땅했는지 마이크라도 내려놓으면 쏜살같이 달려와 모든 사람이 듣도록 소리쳤다. ‘이건 준비했냐? 저건 준비했냐?’
행사 도중에 연설자가 연설을 하든 말든 20대 사무처장보다 내가 더 위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별의 별 행동을 다했다. 행사가 끝나고 마련된 식사자리에서도 괴롭힘은 이어졌다. 식탁 맨 끝에 앉아야 한다고 화를 내지 않나. 사무처장이 동행해야하는 자리임에도 자리를 마련하지 않고 어른들이 식사하는 자리이니 방 밖에 나가서 밥을 먹으라고 한 적도 있다. 한밤중에 전화해 자신이 2만 명의 서명을 받을 수 있으니 완벽한 보고서를 올리라는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거나 능력도 없는데 큰 직함을 준 회사에 감사하며 다니라며 필자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한 참 바쁜 시간에 와서 밖에 나가서 커피를 사오라고 시킨 후 커피를 가져오면 내가 사주는 거니까 감사하며 마시라는 것까지. 괴롭힘 당한 것을 나열하면 한도 끝도 없다. 단순히 ‘20대 여성’이 사무처장이 됐다는 이유가 마음에 들지 않아 자신들의 기분이 풀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예의 없는 행동을 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문정왕후어보는 반환결정이 났고 반환결정 축하를 위해 가진 저녁 식사자리에서 모두 한 마디씩 하는 기회가 생겼다. 필자에게 온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어린 나이에 많은 기회를 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문정왕후어보 반환 발표는 정전60주년을 맞아 불법 반출된 우리 문화재가 돌아오게 됐다는 의미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20대 여성은 능력이 없다는 편견과 싸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사회에 갓 진출한 20대 여성은 커피를 타고 복사만 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면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가 참으로 기쁩니다.’
‘대한민국에서 20대 여성으로 살아가는 법’
대한민국에서 20대 여성은 가장 약한 고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쉽게 공격에 노출된다. 그 공격이 성추행이든 그 외의 것이든 그것을 방어해줄 사회적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름만 알면 아는 기업의 회장과 업무 관계로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그 회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필자를 ‘아가씨’라고 불렀다. 필자뿐만이 아니었다. 동행한 20대 여성 통역원에게도 시종일관 ‘아가씨’라고 불렀다. 직급이 조금이라도 높은 남자가 20대 여성을 부를 때 그 많고 많은 단어 중에 하필 ‘아가씨’를 고르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오늘 저 사람의 노동을 착취할 수 있는 임금을 제공했으니 부르는 것도 내 마음이다.’라는 자본주의적이고 계급주의적인 사고를 가졌기에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최몽룡 교수가 성희롱한 여기자의 나이는 필자가 확인하지 못해 이야기 할 수 없지만 윤창중 전 대변인이나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사회에서 가장 약한 연결고리인 20대 여성에 대해 내키는 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곳은 비영리단체로 비교적 자유로운 곳이다. 순수한 열정을 갖고 있으면 초등학생도 연설할 수 있는 그런 곳이다. 그렇기에 정말로 사무처를 이끌어가는 필자에게 ‘사무처장’이라는 직함을 부여했던 곳이다.
그러나 필자가 근무하는 곳이 당연한 권리를 부여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곳으로 손 뽑힐 뿐 우리사회는 20대 여성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 특히나 20대 여성은 사회에 뿌리박힌 악질적 편견과 싸워야 하는 임무도 주어졌다.
이러한 고통을 정책과 시스템들이 바로잡아줄 수는 없을까? 나는 그것을 청년 정치인에게 기대해본다. 자신이 직접 경험했고 주변의 친구들이 고통 받고 있는 모습을 청년들은 똑똑히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정책과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청년 정치인에게 희망을 걸어본다. 20대 여성이 ‘아가씨’라는 호칭으로 불리며 더 이상 피해를 당하지 않는 그런 사회를 청년 정치인이 열어가길 희망한다. 2016년 4월 13일은 20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 이 칼럼을 쓰기 전, 혹시 필자가 갖고 있는 편견은 없을까 여러 가지 자료를 수집했다. 필자는 20대 여성이 사회에서 가장 힘들게 사회적 편견과 싸우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자료를 읽다 보니 20대 여성 뿐만이 아니라 모든 여성들이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편견과 싸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희진은 그의 저서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여성에게 교육이 허락된 것은 5천 년 인류 역사에서, 채 1백 년이 되지 않는다.(p.86)”고 했다. 그만큼 기존의 세계가 남성 중심으로 돌아갔기에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남성은 ‘사람’이지만 여성은 ‘여성’이고 로댕의 조각은 생각하는 ‘남성’이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이고 앵그르의 그림은 욕탕의 ‘사람들’이 아니라 욕탕의 ‘여인들’이라고 표현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는 “국민, 노동자, 민중, 시민의 개념은 성 중립적이지 않다. 이들은 모두 남성이라고 간주되기 때문에, 여성이 이들 범주에 포함되려면 ‘여성 노동자’와 같이 기존 개념에 부가적인 명칭을 갖게 된다.(p.81)”고도 책에서 말했다.
20대 여성뿐만 아니라 이 사회의 여성들은 기존 개념에 부가적인 존재가 되어 사회적 편견과 싸우고 있다. 문제는 필자가 아직 20대이기에 필자가 느끼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칼럼을 썼다. 전체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기엔 필자의 능력이 부족하여 글에 담을 수 없음을 양해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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