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 레프트 리뷰>는 1960년 영국에서 창간되어 격월로 발간되는 잡지입니다. 이따금 한국어로 번역되어 단행본(도서출판 길)으로 출간되긴 하지만, 영어판 잡지에 기고된 글을 선별적으로만 다루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BIG HIP>에선 <뉴 레프트 리뷰>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된 글들을 최대한 번역해서 수록할 예정입니다. 저는 전문 번역가가 아니기에, 분명 오역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혹시 그걸 발견하신 분이라면, 제게 훈수를 두셔도 좋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여기서 공동 번역 작업을 제안하고 있는 셈입니다.
[91 jan.feb 2015] 에브게니 모로조프, <데이터 센터를 사회화하자!> - ①
어떻게 당신의 작업에 정치와 기술을 접목시킬 수 있었나?
2004년 이후, 나는 우크라이나와 다른 지역의 시위자들이 문자 메시지와 블로그를 통해 결집된다는 이야기를 믿었다. 2006년 3월 벨라루스는 선거를 앞두고 있었을 때, 나는 자문해봤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그 시점에, <트랜지션>Transitions이라는 이름의 인쇄 잡지print magazine를 발간하다 90년대 후반부터 온라인으로만 발간하기 시작한, 프라하Prague에 거점을 둔 NGO 트랜지션 온라인Transitions Online과의 협력을 시작했다. 비용을 대기 위해, 그들은 여러 종류의 부차적 활동을 벌여야 했으며, 그래서 NGO로 탈바꿈한 초기엔 전 소련 블록에서 온 기자에게는 기삿거리를 취재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자기의 삶을 기록하고 싶어 하는 집시Roma를 가르치는데─돈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whatever there was money for─집중했다. 대부분의 기금은 교육이나 지역적 이슈에 관심을 가졌던 소로스 네트워크Soros network에서 마련되었다. 자본의 다른 출처들로는 민주주의를 위한 국가기금the 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인터뉴스Internews, 아마도 독일 마셜 기금the German Marshall Fund, 그리고 이와 같은 미국 조직들에 더하여, 체코 정부와 스웨덴 국제 개발국Swedish International Development Agency 등이 있었다. 대다수는 프로젝트 별로 지원되었다. 결국 트랜지션 온라인은 블로깅이나 사회 연결망social network 등 뉴 미디어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 영역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쓴 우편을 그들에게 보냈고, 결국 벨라루스 블로그를 인계받게 되었다. 뉴 미디어의 영역이 매우 빠른 속도로 전(前) 소련을 가로질러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을 때, 나는 그들을 위해 전임으로 일을 맡게 됐다. 이 말은 그들을 교육하면서 전 소련의 상당히 넓은 지역을 여행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시 어디에 머물고 있었나?
나는 베를린에서 삼 년하고 반년을─일 년은 유러피언 컬리지 오브 리버럴 아츠에서, 그리고 이 년 반은 NGO에서 일하며─머물렀다. 하지만 2008년 8월에 나는 NGO에서의 일뿐만 아니라 여러 기금 제공자의 태도, 그리고 그들의 기술과 정치에 대한 억측assumptions 때문에 좌절하게 되었다. 소로스는 원하는 어디에서라도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하는 오픈 소사이어티 장학재단Open Society Fellowships을 창설했다. 장학금 중 하나를 받자마자 나는 어디에 머물러야 할지 정해야 했고, 뉴욕으로 간다면 책을 출판하기 더 쉽지 않을까 추측했다. 나는 이미 많은 글─그렇게 깊이 있지는 않지만,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에 자유 기고하던 여러 편의 오피니언─을 쓰고 있었다. 물론 기사에 이름을 올리진 않았지만, 계간 공학technology 부록과, 잡지 내의 국제 면에 꽤 많은 글을 게재했다. 이미 나는 기술과 정치에 대한 표준적인 지식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있었다.
이것들이란 무엇이었는가?
나는 우리 프로젝트에서 기대했던 결과의 결핍뿐만 아니라 우리가 야기할 수 있는 잠재적 피해 때문에 좌절했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장려함으로써 세계를 구하려 했으나, 스스로 뉴 미디어를 통해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던 벨라루스나 몰도바, 혹은 코카서스 등지의 여러 사람들을 결국 우리가 망칠 거라는 것이 내게는 명백했다. 우리가 상당히 많은 돈을 가지고 도착해서 건넨 뒤, 그들은 곧 전혀 다른 식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었다. “좋아, 비록 내가 실패하더라도 나는 또 다른 장학금을 받을 수 있어.” 후에 우리의 목적 자체도 의심하기 시작했지만, 당시 나는 목적을 믿고 있었고, 만약 우리의 목적이 출판과 대화의 독립적 문화─하버마스의 공론장Habermasian public sphere 1 같은─를 증진시키는 것이었다면, 그것을 돈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계획하는 것은 잘못된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우리는 이러한 국가들의 힘 있는 정부를 지원자로 간주했는데─최소한, 아무도 적이라고 말하진 않았다─그들의 우선사항이 우리와 정반대였다는 것은 명백했다. 우리는 단지 이러한 독립적인 목소리들을 들리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부들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교활하게─감시를 강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블로거들을 고용하여 프로파간다propaganda를 만들어내고, 온라인 대화를 조작하고, 웹사이트에서 서비스 거부 공격denial-of-service attacks 2을 하는 등─뉴 미디어 공간에 툴tool, 기술, 그리고 전략을 신속히 동원했다. 우리는 이에 대해 정당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물론 회상해보면, 우리가 그렇게 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미국 기업들이 우즈베키스탄 정부에 감시 장비를 공급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것은 민주주의를 위한 국가 기금의 소관 밖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첫 책 『넷 딜루전』Net Delusion을 출간했을 때, 나의 목표는 해방의 신호탄으로서 우리가 경탄해 마지않던 여러 툴, 플랫폼 그리고 기술이 마찬가지로 바로 그 활동가, 반체제 인사와 우리가 추구했던 대의cause에 등에 돌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3 오늘날 이 말은 당연하게 들린다. 하지만 그때 당시 대부분의 기부자와 서양의Western 정권은 단순하게도 독재자들이─그들이 독재적인 정부를 뭐라고 부르든─너무 멍청하고, 체계적이지 않고, 과학 기술 공포증technophobia 때문에 절대 ‘인터넷’을 통제하지 못할 것이며, 그래서 이 정보통신기술의 새로운 물결은 그들을 몰락시킬 것이라 가정했다. 워싱턴에서는 냉전의 종결이라는 서사가 이러한 추측을 굳히는 데 한몫했다. 소련을 몰살했던 것이 자유유럽방송Radio Free Europe과 제록스Xerox 프린터였다면, 이제 블로그와 사회 연결망social network이 민주주의의 전파 작업을 완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식으로.
미국의 주 정부American state가 새로운 툴과 플랫폼에 점점 더 관여할수록, 점점 더 그것에 대해 무언가 할 수 있다고 다른 정부에 귀띔해줄 것이므로, 미국 외교 정책의 기둥으로서 인터넷 자유화라는 이러한 프레임이 새로운 툴과 플랫폼이 대안적 공론장을 형성할 잠재성의 기반도 약화시킬 조짐이 내게는 명백히 보였다. 하지만 『넷 딜루전』을 썼을 때 나는 25살이었고, 결국 워싱턴 싱크탱크에 합류하지end up in a Washington think-tank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에 그 책은 마치 미국 정책 입안자들에게 스스로 덫을 놓고 있다고 말하고자 애쓰고, 그들에게 달리 행동하라 충고하고 있는 것 마냥 쓰여 있다. 물론, 이제는 그런 식으로 쓰지 않지만.
당신은 전세계적인 선거 감시에 있어서 어떤 정부도 국가안보국NSA 4을 능가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나?
그렇다. 나는 국가안보국에 대해 알지 못했다. 하지만─미국 정부에 의한 사이버 공격과 같이─많은 사건들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미 2006년이나 2007년에는 비록 늘 그렇듯 지하디스트jigadists에게서 정보를 빼내기 위해 적들의 웹사이트를 다운take down시키는 걸 원치 않는 CIA와 펜타곤Pentagon 사이의 긴장이 있었다 하더라도, 지하디스트나 다른 적들의 웹사이트를 다운시켜야 하는 국방부Department of Defense에는 그에 해당하는 전용 기구dedicated unit가 있었다는 건 명명백백했다. 그래서 힐러리 클린턴Hilary Clinton이 인터넷 자유화에 대한 2010년 연설에서 사이버 공격에 참여한 나라들을 힐난했을 때, 그것은 최악의 위선이었다. 어디서든 미국 당국자들이 블로거를 지원하는 것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단지 아제르바이잔Azerbaijan이나 사우디아라비아Saudi Arabia 같은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실제 정책을 고려야해야 하는 것처럼. 그건 인터넷 자유화뿐만 아니라, 인권과 다른 여러 이슈의 모순이다. 이런 해외 정책의 모순은, 미국 자체가 행하고 있던 것은 간과한 채, 러시아, 중국, 이란, 이집트와 다른 국가들이 감시, 검열, 블로거 매수, 기업에 대한 지배체제 설립 등의 측면에서 어떤 종류의 수단과 기술을 진전시켰는지 이해하고자 했던 나의 책 속에 반영되어있다.
오늘날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좇는가track?
글쎄, 스탠포드의 래리 다이아몬드Larry Diamond 아래서 수학했고, 스스로 차기 국방/외교 정책의 ‘신동Wunderkind’으로 홍보했던 제어드 코엔Jared Cohen과 같은 인물을 예로 들어보자. 24살이었던 2006년, 국무부 정책기획부로 들어가기 전에 그는 두 권을 책─르완다Rwanda의 제노사이드에 대한 미국의 반응을 다룬 책과, 청년의 과격화youth radicalization에 대한 책─을 출판했다. 거기서 코엔은 국무부 부장관이었던, 전직 콘트라Contra 5 통제관 존 네그로폰테John Negroponte와 닷컴 버블 붕괴 직전에 ‘신 경제new economy’ 6에 대한 찬양일색의 글 7을 썼던, 국무부의 정치외교 담당 차관 제임스 글래스먼ames Glassman과 함께 일했다. 하지만 그의 경력은 테크노포리아technophoria 8의 흐름 속에서 오바바의 선거에서 본격적으로 날개를 폈다take off. 국무부에 계속 남아있으면서, 코엔은 콜럼비아에서 발생한 2008년 반(反)Farc 9 집회가 페이스북에 FARC에 저항하는 그룹을 만든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게 전부라고 주장하며, ‘인터넷 자유화’의 불가피한 중요성을 논증했다. 실제로는, TV에 중계된 대통령 연설에서 페이스북 그룹을 방송에 내보내고, 모든 일을 조직했던 이는 물론 알바로 우리베Álvaro Uribe 10였다. 하지만 국무부에 이 사건은 선의를 위한 대중 집회가 신기술을 통해 마법에 걸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방식의 선례showcase로 남았다. 코엔 옆에는, 오바마가 클린턴의 상급 고문으로 임명했던, 국제 관계나 외교 정책에 대한 배경지식이 얕았던 서른 살의 알렉 로스Alec Ross가 있었다. 이 짝패는 소위 ‘기술 집행 여행tech executive trips’을 주선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주요 문화 수출과 소프트 파워soft diplomacy의 근저에는 기술이 있다고 판단하여, 그들은 관련 기업들의 CEO들이 미국의 이미지를 해외로 전파하는 것을 북돋을 수 있도록 결정했다. 그래서 그들은 회장bosses을 준-문화quasi-culture 대사로 임명해, 실리콘 밸리로에서 멕시코, 시리아─아사드를 만났던─ 또는 이라크로 보냈다. 다분히 상징적이게도, 제어드 코엔은 오바바의 중요한 후원자인 구글 회장 에릭 슈미트Eric Schmidt를 바그다드로 가는 중에 만났다. 그들은 『새로운 디지털 시대』The New Digital Age 11 의 공동 저자가 되었다.
<원문> p. 48-52
How and when did you connect politics and technology in your work?
After 2004, I believed the story that the protesters in Ukraine and elsewhere were mobilized through text messaging and blogs. There were elections coming up in Belarus in March 2006, so I asked myself—what’s going to happen there? At this point I started collaborating with an ngo in Prague called Transitions Online, which used to be a print magazine called just Transitions, and in the late nineties became online-only. To pay for this, they had to develop all sorts of secondary activities, so they transformed themselves into an ngo, initially focused on teaching journalists from the former Soviet bloc how to do investigative reporting, or Roma who wanted to write about their lives—whatever there was money for. A lot of the funding came from parts of the Soros network concerned with education or regional issues. Other sources of money included the 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Internews, maybe the German Marshall Fund, and alongside these American organizations, the Czech government and the Swedish International Development Agency. A lot of it was project-by-project. Eventually Transitions Online began to express an interest in new media—blogging, social networking etc. I offered to write some posts for them on what was happening in this area, and eventually took over the Belarus blog. When it became clear how quickly the new media space was developing across the former Soviet Union, we agreed that I would work for them full-time. That meant travelling quite widely in the former Soviet Union, doing training sessions for them.
Where were you based in these years?
I stayed in Berlin for three and a half years—a year in the European College of Liberal Arts, then two and a half years working for the ngo. But by August 2008 I had become frustrated not only with ngo work, but also with the attitude of many funders and their assumptions about technology and politics. Soros had created Open Society Fellowships that allowed you to work on a project from wherever you wanted. On getting one of these, I had to decide where to be based, and reckoned it would probably be easier to get a book published if I moved to New York. I was already doing a lot of writing—nothing very deep, but a lot of opinion pieces, freelancing for The Economist; of course, my name was not attached to the articles, but I worked quite a bit on their quarterly technology supplements and the international section of the magazine. I already had some ideas about what was wrong with much of the received wisdom about technology and politics.
What were these?
I was frustrated not only with the lack of the kind of results we had expected from our projects, but also the potential damage we could be causing. We were supposed to be saving the world by helping to promote democracy, but it seemed clear to me that many people, even in countries like Belarus or Moldova, or in the Caucasus, who could have been working on interesting projects with new media on their own, would eventually be spoiled by us. We would arrive with a lot of money, and put them on a grant, and they would soon start thinking very differently: ‘Great, even if I fail I can get another grant.’ Later I began to question our objectives too, but back then I believed in them, and thought that if our aim was to promote an independent culture of publishing and conversation—a kind of Habermasian public sphere—trying to engineer it by doling out money was the wrong way to go about it.
At the same time, while the governments in power in these countries were supposed to be our allies—at least, nobody said they were our enemies—it was clear their priorities were the opposite of ours. We thought all we needed to do was make these independent voices heard. But governments very quickly began deploying tools, techniques and strategies in this new media space that were much smarter than we had anticipated—not only stepping up surveillance, but creating their own propaganda by hiring bloggers, manipulating online conversations, carrying out denial-of-service
attacks on websites. We weren’t raising the right questions about this. Of course, in retrospect there was a reason why we were not asking them. It wasn’t in the remit of the 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to be questioning whether American companies were supplying surveillance equipment to the government of Uzbekistan.
So when I began my first book, The Net Delusion, my aim was to show that many of the tools, platforms and techniques we were celebrating as emancipatory could equally be turned against the very activists, dissidents
and causes we were trying to promote.1 Today this sounds obvious. But back then, most donors and most Western governments simply assumed that dictators—or whatever they called authoritarian governments—would never be able to control ‘the Internet’, because they were too dumb, too disorganized, too technophobic, and that this new wave of information technology would bring about their downfall. In Washington the narrative of the end of the Cold War encouraged this: if it was Radio Free Europe and Xerox machines that killed off the Soviet Union, blogs and social media could now finish the job of exporting democracy.
It seemed clear to me that this framing of Internet freedom as a pillar of us foreign policy threatened to undermine whatever potential the new tools and platform had for creating an alternative public sphere, since the more the American state got involved in them, the more it would tip off other governments that something ought to be done about them. But I was twenty-five when I wrote The Net Delusion, and thought I might end up in a Washington think-tank, so it reads as if I’m trying to tell us policy-makers they were setting a trap for themselves, and I was advising them to act differently. Of course, I wouldn’t write it that way now.
You weren’t aware that the nsa far exceeded any government in the world in its universal electronic surveillance?
No, I didn’t know about the nsa. But a lot was in the open.cyber-attacks by the us government, for example. Already by 2006 or 2007 it was crystal clear that there were dedicated units within the Department of Defense whose job was to take down the websites of jihadists and other foes, even if there was typically tension between the Pentagon and the cia, which wanted to derive intelligence from them so didn’t want them taken down. So when Hillary Clinton condemned countries that engage in cyber-attacks in her 2010 speech on Internet freedom, it was the worst kind of hypocrisy. Just as when us officials talk of supporting bloggers everywhere, you only have to look at their actual policy in countries like Azerbaijan or Saudi Arabia. It’s not just a contradiction on Internet freedom, but also on human rights and many other issues. These foreign policy contradictions were reflected in my own book, where I was trying to understand what kinds of tools and techniques Russia, China, Iran, Egypt and other such states were developing in terms of surveillance, censorship, buying bloggers, establishing control over companies, without paying attention to what the United States itself was doing.
How would you track that today?
Well, let’s take the example of a figure like Jared Cohen, who studied at Stanford under Larry Diamond, and marketed himself as the next defence/foreign policy Wunderkind. He published two books.one on America’s response to the Rwandan genocide and another on youth radicalization.before getting a job with the Policy Planning Staff at the State Department in 2006, aged twenty-four. There he worked with former Contra-controller John Negroponte, who was Deputy Secretary of State, and Under Secretary of State for Public Diplomacy James Glassman, author of a hymn to the ‘new economy’ shortly before the dot.com bubble collapsed.2 But his career really took off with Obama’s election on a wave of technophoria. Staying on at State, Cohen used the anti-farc mobilization of 2008 in Colombia to demonstrate the vital importance of ‘Internet freedom’ to the State Department, claiming it was all started by a guy on Facebook who had set up a group to protest against the farc. In reality, of course, it was Álvaro Uribe who aired the Facebook group in a presidential address on television, and organized the whole affair. But in the State Department this became the showcase of how mass mobilization for good causes could be magicked up through the new technology. Alongside Cohen, there was now Alec Ross, in his thirties and with little background in international relations or foreign policy, whom Obama appointed as Senior Adviser to Clinton. This pair started arranging what they called ‘tech executive trips’. Since the main us cultural export and basis for soft diplomacy seemed to be technology, they decided that the ceos of these companies could help boost America’s image abroad. So they would fly bosses from Silicon Valley over to Mexico, Syria—where they met with Assad—or Iraq as quasi-cultural ambassadors. Symbolically enough, Jared Cohen met Eric Schmidt, the Google boss who is a key Obama backer, on a trip to Baghdad. They went on to become co-authors of The New Digital Age.3
socialize the data centres!(evgeny morozov).pdf
* 뉴 레프트 리뷰 공식 홈페이지 : http://newleftreview.org/
- 하버마스에 따르면, “공론장(public sphere)은 여론이 만들어질 수 있는 우리 사회 삶의 영역이며, 공론장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다.” 다시 말하면, 공론장은 자유로운 사적 개인이 모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소통 행위를 통해 공공선을 추구하는 이념적, 도덕적, 정치적 소통 행위의 모델이다. (옮긴이 – 네이버 지식백과) [본문으로]
- 시스템을 악의적으로 공격해 해당 시스템의 자원을 부족하게 하여 원래 의도된 용도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공격을 서비스 거부 공격, 혹은 디오에스/도스(DoS)라고 한다.(옮긴이 – 위키백과) [본문으로]
- The Net Delusion: How Not to Liberate the World, New York and London 2011. [본문으로]
- 미국 연방 정부의 해독 첩보국으로 미국 국방부 소속이다. 1952년 11월 4일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창설되어, 해외 통신과 해외 신호 정보의 수집과 분석을 책임진다. NSA는 암호 해독 분석에 관여하고 타국의 유사한 기관에게서 미국의 정부 통신과 정보 시스템에 책임을 진다.(옮긴이 – 위키백과) [본문으로]
- Contrarevolucionario(반혁명분자) 또는 Contrarevolucion(반혁명)의 약어이다. 1979년 니카라과에서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FSLN)의 혁명이 성공하여 소모사정권이 붕괴되고 산디니스타 좌익정부가 수립된 이후, 반혁명 세력들은 온두라스와 코스타리카에서 반군을 조직하고 니카라과에 대한 무력침공을 꾀하였다. (중략) 1981년 9월 미국은 콘트라반군에게 자금공급, 산디니스타군의 이동 및 위치에 관한 정보제공, 통신수단을 이용한 지원 등 간접적인 지원을 시작했다. (중략) 1990년 2월에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친미·보수세력을 대표하는 차모로가 당선되면서 그 존재가치를 잃게 된 콘트라 반군은 곧 해체되었다.(옮긴이 – 네이버 지식백과) [본문으로]
- 정보통신기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유망분야가 출현하거나 확대되고 경제성장과 물가안정의 공존이 지속되는 현상을 말한다.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안정 속의 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미국경제가 이러한 특징을 보이면서 과거와는 전혀 새로운 경제패턴을 나타내고 있다고 하여 "신경제"라 불리우고 있는 것이다.(옮긴이 – 네이버 지식백과) [본문으로]
- James K. Glassman, Dow 36,000: The New Strategy for Profiting from the Coming Rise in the stock Market, New York 1999. [본문으로]
- 최신의 훌륭한 하이테크 장치를 구매함으로써 얻는 황홀경 The high you get from purchasing the latestt and greatest high tech gadget.(옮긴이 – urban dictionary) [본문으로]
- 콜롬비아 무장혁명조직. (옮긴이) [본문으로]
- 콜롬비아의 정치인이다. 2002년 ~ 2010년 대통령으로 재직하였다.(옮긴이 – 위키백과) [본문으로]
- Eric Schmidt and Jared Cohen, The New Digital Age: Reshaping The Future of People, Nations and Business, London 2013.(에릭 슈미트, 제러드 코언, 『에릭 슈미트의 새로운 디지털 시대: Google 회장 에릭 슈미트의 압도적인 통찰과 예측, 사람, 국가, 비즈니스의 미래를 다시 쓰다』, 이진원 역, 알키, 201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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