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와 핵실험의 양면성



동북아시아에는 한 가지 법칙이 있다. 북한이 판세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정권유지’라는 목표에서 단 한발자국도 떨어져있지 않다. 세상에 북한만큼 견고하고 고집스러운 나라도 없다. 몇 년에 한 번 정부가 바뀌는 민주국가에 비해 관료의 변화가 극히 적은 북한은, 수십 년 간 외교의 장에서 온갖 경험을 겪은 관료들로 중무장하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주체사상을 만고불변의 진리로 떠받들고 있다. 솔방울을 수류탄으로 만드는 김일성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덤이다. 북한이 예측불가한 나라라는 생각은 오판이다. 그들이 외교적으로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려면, 그들의 과거와 주체사상만 들여다보면 될 정도로 일관성있는 나라다. 따라서 그들이 일으키는 외교적 기획이 얼마나 잘 설계된 것인지 아는 주변국은 북한의 이상징후에 격렬하게 반응한다.


동북아시아의 21세기는, 북한 주변국들이 어떤 식으로든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채찍을 휘두르거나 당근을 내밀며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과거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동북아 냉전적 갈등구조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던 햇볕정책의 시기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는 햇볕정책에 대한 직접적 옹호가 아니라, 사실이다. 여기에 북한은 계속 싸워댔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라가 어디일까? 북한이다. 핵개발, 미사일실험, 경제협력 등, 북한이 지금껏 취했던 대외적 기획들은 하나같이 ‘북한이 판세를 좌우하는’ 동북아 법칙을 최대한 활용해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함이었다.


핵실험을 예로 들어보자. 핵실험은 대외적 효과는 테러에 치를 떠는 미국을 위협하여 미국을 아시아에 더 깊숙이 끌어들이고, 이에 반발하는 중국의 뒤에 잠시 숨는 것이다. 즉, 한미일, 북중러의 냉전적 갈등구조를 심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숙명적 형제이자 적국인 한국이 자신과 협상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대내적으로는 국민을 통합하고, 정권의 위상을 드높이고, 필요에 따라 핵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음은 옵션이다. 한국이 남북경협을 중단하면 어떠랴, 어차피 그 카드는 아직 설익은 카드다.


한 손에 핵을 쥐고 있는 것 자체가 북한에게 안정성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언젠가 협상을 통해 불가역적으로 정권의 생존을 보장받는 것이 북한의 노림수다. 이러나저러나 핵은 북한에게 꽃놀이패다. 간헐적으로 동북아를 뒤흔드는 핵실험을 보면 북한이 보인다.




이제 눈을 남쪽으로 돌려 사드 배치 문제를 보자. 성주에 배치된 사드가 북한의 미사일 공격을 막는데 별로 효과가 없다는 것은 이미 명확하다. 조금 양보해서, 사드가 북한의 미사일을 막을 수 있다고 치자. 북한이 남쪽으로 별 공격 효과도 없는 고고도미사일을 발사할 정도의 상황이 발생했다면, 수천 문의 장사정포와 생화학무기가 이미 한반도 남쪽을 초토화시켰을 것이다. 어쩌면 핵폭탄도 터진 뒤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는 사드배치 논란을 보면 한국이 보인다. 사드배치의 대외적 효과는 미국패권에 치를 떠는 중국을 위협하여 중국을 한반도 문제에 더 깊숙이 끌어들이고, 미국 뒤에 쏘옥 숨는 것이다. 즉, 한미일, 북중러의 냉전적 갈등구조를 심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숙명적 형제이자 적국인 북한이 신이 나서 SLBM을 발사하는 것이다. 대내적으로 국민은 극단으로 찢어지고, 정권의 위상은 땅으로 추락하고, 필요에 따라 불순세력을 이용할 수 있음은 옵션이다. 중국이 대북제재를 중단하면 어떠랴, 어차피 그 카드는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던 카드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라가 어디일까? 한국… 정부… 대통령이다. 사드배치, 개성공단 중단, 위안부협상 등, 대통령이 지금껏 취했던 대외적 기획들은 하나같이 ‘북한이 판세를 좌우하는’ 동북아 법칙을 최대한 활용해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함이었다.


한국의 3년은, 미국과 일본이 어떤 식으로든 한미일 공조체제로 한국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채찍을 휘두르거나 당근을 내밀며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한일관계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는 위안부 협상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는 사실이다. 여기에 한국은 홀랑 넘어갔다.


세심하게 국정을 운영하는 일본이나 중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해 한 달에 한번 꼴로 사고를 내는 한국 정부는, 정치의 장에서 도통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관료들로 중무장하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대통령을 만고불변의 진리로 떠받들고 있다.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역사에 대한 처참한 지식수준은 덤이다. 한국의 외교정책이 예측불가하다는 생각은 오판이다. 외교적으로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려면, 한국 정부와 대통령만 들여다보면 될 정도로 일관성있는 나라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일으키는 정치적 파문이 얼마나 허술하게 설계된 것인지 아는 국민은 격렬하게 반응한다.


한국에는 한 가지 법칙이 있다. 정부가 판세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대통령 안정’이라는 목표에서 단 한발자국도 떨어져있지 않다. 세상에 한국 정부만큼 견고하고 고집스러운 정부도 없다.


핵실험이 북한 정권의 국가적 이익에 정확히 부합하는 만큼, 사드는 한국의 대통령 이익에 정확히 부합하고 있다.





4차 핵실험을 통해 보는 북한의 속사정


북한에도 진보적인 사람들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있다. 다만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북한이 왕조와 다를 바 없는 억압적 국가인 만큼 진보-보수의 스펙트럼이 협소하고, 또한 폐쇄적이기 때문에 잘 포착되지 않을 뿐이다. 북한의 진보적 인사들은 1945년 북한 정권이 수립된 이후부터, 이번의 4차 핵실험이 있기까지 나름의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그들의 존재를 염두에 둘 때, 지난 6일 이뤄진 4차 핵실험은, 북한의 핵기술이 수소폭탄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느냐 하는 문제보다 더 심각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사실 진보라는 단어를 콕 집어서 정의내릴 수는 없으며, 때문에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에게는 온건파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보를 ‘비교적 개혁적 성향’이라고 피상적으로나마 정의한다면, 북한의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점은 수령의 철학과 그것이 구체화된 주체사상이다. 말하자면, 주체사상에 가까운 것이 북한의 보수다(이러한 진단은 주체사상이나 북한 정치의 다층적 속성으로 인해 북한 정치지형을 정확히 짚어낸다고 할 수는 없다). 북한의 역사는 수령의 생각에 어긋나는 사람들, 즉 진보적인 사람들에 대한 숙청으로 가득하며, 그 결과 오늘날의 북한은 개혁을 극도로 꺼리는 국가가 되었다. 북한의 온건파는 다른 어느 나라의 진보세력보다 더욱 위험한 노선을 걷고 있는 것이다. 


수령과 주체의 의식에 철저히 복종하긴 하는 가운데, 그 안에서 조금씩의 변화를 바라보는 진보적인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해왔다.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은 운신의 폭이 좁지만, 그들은 한 가지의 방법을 통해 북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바로 수령의 변화를 돕는 일이다. 수령의 철학은 주체사상으로 구체화되었고, 조선로동당과 북한이라는 국가는 이를 철저히 옹호한다. 때문에 수령조차도 주체사상을 함부로 손바닥 뒤집듯 바꾸지는 못한다(97년 망명한 황장엽은 이를 두고, 10살짜리 아이가 수령이 돼도 북한의 체제는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른바 '수령을 따라 위대한 혁명의 위업을 달성한다'는 북한의 핵심 목표에 어긋나지 않는 한 그 방법론은 다양할 수 있었고, 바로 이 지점에서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은 영향력을 펼칠 수 있었다. 


▲영화 <암살>에서 조승우의 연기로 유명해진 독립투사 김원봉. 그는 김일성의 남침 계획을 반대했었으며, 1956년 김일성을 비판한 세력이 숙청되는 과정에 1958년에 실각되었다. 그 후의 종적은 알 수 없다.


이면(裏面)의 목소리


북한에서 진보-보수의 갈등이란, 곧 미제와 그 앞잡이 남조선에 대한 철저한 응징을 사이에 둔 온건파와 강경파 간의 갈등이고, 이는 때때로 경제파와 안보파의 갈등이기도 하며, 당세력과 군세력의 갈등이기도 하다(물론 북한 내부에 어떤 '파'는 존재할 수 없고, 이러한 구분은 대체로 합치될 뿐이다). 군부 강경파는 '조선반도에서의 공산주의 승리'를 위해 철저한 보수성을 표방할 수 있는 명분을 쥐고 있고, 그 틀 속에서라도 경제나 발전을 말하고 싶은 진보적인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명분이 없다. 이러한 구도를 뒤바꿀 수 있는 사람은 수령뿐이다. 수령이 경제나 발전에 관심을 기울이는 순간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은 자기의 능력이 닿는 한에서 인민 생활을 최대한 향상시키고자 했으며, 그 주요한 방법은 남한과의 경제협력일 수밖에 없었다. 최근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개성공단이다.


오늘날 개성공단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여기저기서 지탄을 받고 있지만, 개성공단이 개설되는 과정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개성은 평양과 서울을 잇는 주요도시로서, 북한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 중 하나다. 개성공단이 착공되기 이전 개성 지역에는 군단 규모의 북한군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김정일은 개성공단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개성공단 부지 근방에 있던 6사단, 64사단, 62포병여단을 10km 이상 후퇴시켰다. 남한으로 치자면, 파주 이북의 모든 부대를 고양·의정부 근처로 후퇴시키는 일과 맞먹는 일이다. 사실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남조선의 함정에 걸려드는 꼴"이라는 북한군 내의 강한 반발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 상당한 반대가 있었으리라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김정일의 개성공단에 반대한 강경파 다수가 당·국가의 요직에서 해임되는 사이,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은 경제·외교 등 다방면에서 능력을 펼칠 수 있었다. 자본주의적 시스템도 눈여겨봤던 박봉주, 개성공단을 중시했던 장성택, 8·25 합의를 이끌어낸 김양건 등이 무분별한 보수성과 거리를 둔 인물들이다.


▲지난 6일 평양 기차역 앞에서 핵실험 성공 뉴스에 환호하는(시늉을 하고 있는지 모를) 평양 시민들 ⓒ로이터


4차 핵실험이 당혹스러운 이유


지난 6일 북한이 자행한 핵실험은 그야말로 깜짝 뉴스였다. 핵실험이 이후 며칠 간 국제사회는 커다란 혼란에 빠졌다. 각국 언론을 장식한 '기습'이라는 용어가 이를 잘 표현한다. 북한은 핵실험 계획을 타국에 통보하기는커녕 실험을 카드로 하는 어떠한 외교적 처세도 하지 않았고, 관련된 언급이나 예고도 거의 없었으며, 심지어 신년사조차 핵 언급을 피했다. 정말로 수소폭탄실험이었나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의문부터 출발해, 왜 하필 지금 실험을 했고, 목적은 무엇이냐 하는 수많은 의문에 대해 여러 가설만 떠돌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가 정말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수소폭탄이었는지 김정은 생일(1월8일) 축하용이었는지 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 핵실험이 왜 기존 핵실험과 달리 당혹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느냐는 점이다. 국제사회는 1차~3차 핵실험에 담긴 북한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핵실험은 대개 [외교관계 악화→미사일실험→핵실험]라는 공식(?)에 따라 진행되었고, 북한은 이를 통해 대내적 결집과 대외적 경색국면 돌파를 꾀했다. 작년 10월, 북한 조선노동당 창건일 당시 "미사일을 쏘되 핵실험은 않을 것"이라는 식의 분석이 쏟아졌던 것도 공식이 나름대로 신빙성이 있었기 때문이다(당시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았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실험을 통한 국제외교전이 이와 같은 흐름에 따르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사전대응을 준비하는 한편 실험 후 대북제재와 같은 강경수로 즉각적인 대응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핵실험은 과거의 흐름과 전혀 합치되지 않으며, 무엇을 의도로 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중국에 대한 불만과 대내외적 독립의지를 표출했다는 식의 원론적 분석만이 가능한 상황이다. 다시 말해, 북한은 기존의 틀을 깨버린 것이다. 기존의 틀을 깨면서까지 북한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시간이 더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고, 어쩌면 영원히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첫째로 최고승인자가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바뀌었다는 점, 그리고 그의 곁에 이른바 온건한 사람들, 즉 북한의 외교에 합리성을 보태주던 진보적인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2013년 12월 8일(처형 4일 전), 조선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공개적으로 체포되는 장성택(左)과 2015년 12월 29일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된 김양건(右)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


언제나 그래왔듯 북한을 향한 모든 분석은 외부자의 시선(outsider's view)에서 머물러 있다. 외부자의 시선을 통해 북한은 뭉뚱그려진 단일한 집단 내지는 몸뚱아리처럼 포착되고, 관심은 '그 몸뚱아리를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로 수렴된다. 핵실험에 대한 분석이 한결같이 '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유다. 외부자의 '왜'라는 질문은 '목적이 무엇인가'에만 집중하며, '원리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은 배제된다. 분석이 북한 사회의 외피를 뚫고 내부로 들어가지는 못하는 것이다. 이는 여태껏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이라는 논의가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일본의 자민당과 민주당, 중국의 태자당과 공청단 등이 우리에게 익숙한 것처럼, 한 나라의 정치적 이념지평의 다양성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북한의 정치적 이념지평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협소하다. 그러나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은 수령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의 최대한의 다양성을 확보하고자 했고, 북핵위기와 같은 결정적 사안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으나 남북관계가 유지되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남북관계가 발전적일 때 그들은 북한에서 영향력을 펼칠 수 있었고, 이에 힘입어 수령은 개혁적 변화의 추동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4차 핵실험이 벌어진 지금,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디 있지?'라는 의문이 먼저 떠오른다. 2013년 처형된 장성택과, 2000년대 들어 공식적으로 세 번째로 교통사고를 당한 김양건이 언뜻 생각나는 이유다(북한에서의 교통사고는 항상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이 없다는 것은 김정은이 원하든 원치 않든 대남 강경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북한이 우리의 주적이든 협력대상이든, 핵문제가 남북 사이의 모든 문제를 집어삼켜버리는 블랙홀이 된다면 분단의 괴물은 한반도를 끊임없이 지배할 것이고, 통일은 전쟁으로밖에 이뤄질 수 없는 '죽음의 성물'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 안에는 평화로운 한반도와 평화로운 통일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북한에도 비록 우리와 생각은 다를지언정, 남북 대결구도를 타파하고 평화를 논의할 수 있는 진보적인 사람들이 있어왔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어야 할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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