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일할수록 내 아이는 정말 불쌍한 것일까?

 

▶ 출근 시간, 시간이 없어 감은 머리를 말리지도 못한 채 아이를 맡기러 어린이집으로 향하고 있다. (본인남편촬영)

 

출산휴가가 끝나고 육아휴직에 돌입했다. 작은 비영리단체에 다니는데 시민운동이라는 것이 대체 인력을 투입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많다. 휴직 기간 동안 내 업무를 대체할 사람이 없어서 급한 업무만 우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발로 밀어가며 했다. 우는 아이를 재우고 다시 일하고 다시 달래고 일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당연히 업무효율은 최악이었다. 애를 보는 것도 아니고 일을 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시간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심신이 지쳤다. ‘차라리 출근하자!’고 외치며 2달간의 육아휴직을 종료하기로 선언했다.

 

출근을 결심하자 아파트 단지에 ‘0세아 전용 어린이집’이라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첫째 아이에 이어 둘째 아이까지 친정엄마에게 맡기기엔 죄스러웠다. 그래서 현수막을 보자마자 입학 상담을 했다. 어린이집 상담 후 둘째 아이를 오전 8시 30분에 맡기고 오후 8시에 데려오기로 했다. 필요하면 토요일에도 아이를 맡길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아이와 선생님이 적응할 필요가 있으니 출근 2주 전부터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어린이집에 적응훈련을 보내기로 했다. 아이가 둘이어서 둘째 아이가 종일반이 되지 않을 것 같으니 주민센터에 가서 잘 알아보고 종일반으로 등록하라는 소리도 들었다.

 

다음 날 주민센터에 가서 알아보니 첫째 아이가 종일반에 다니기 때문에 둘째 아이가 종일반 등록을 할 수 없다 했다. 출산 휴가 및 육아휴직 동안 내가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 둘 다 종일반 등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내가 일을 쉬는 동안 첫째 아이가 종일반으로 어린이집을 다닐 수 있었던 것은 둘째 아이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 했다.

방법은 하나, 맞벌이라는 것이 증명되면 오늘이라도 둘 다 종일반을 보낼 수 있다고 했다. 출근 날짜는 정해져 있고 어린이집에서는 종일반으로 등록하라고 했으니 난감했다. 종일반 등록을 해달라고 했던 어린이집 선생님의 말씀 때문에 출근 직전 열흘 동안 종일반 등록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다른 방법이 없는지 주민센터에서 담당자와 한참을 대화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육아휴직 급여를 열흘 치 포기하기로 했다. 어린이집 적응 기간을 위해 나는 서류상으로 정식 출근보다 열흘 일찍 출근한 것이 됐다.

 

이제 100일이 갓 지난 둘째를 어린이집에 맡긴다 하니 이번에는 어린아이가 불쌍하다는 친척들의 비난이 들렸다. ‘아이는 엄마가 봐야 하는데……’라는 이야기를 첫째 때부터 꾸준히 3년간 듣고 있다. 내가 일을 하면 아이들이 불쌍한 존재가 되니 마음이 아팠다. 첫째 때보다 죄책감 지수가 10배는 되는 것 같았다. 죄책감이라는 단어로 몸부림치다 보니 복직하는 날이 돌아왔다. 준비는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부터 더 심한 눈치 보기가 시작됐다.
입학 상담 당시 8시 30분에 아이를 데려다주기로 했는데 8시 30분에 갔더니 ‘아이가 일찍 왔네요?’라는 소리를 들었다. 원래 약속한 시간에 갔는데 일찍 왔다 하니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나 싶었다. 아이를 맡기며 오늘부터는 출근하기 때문에 오후 8시에 아이를 데리러 올 수 있다 했더니 아직 어린데 그렇게 늦게 오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이가 어려서 걱정해서 하는 말이겠지 하면서도 어린이집에 눈치가 보였다. 점심시간에 친정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친정엄마가 첫째는 업고 둘째는 유모차에 태워서 오후 6시 30분에 대신 하원을 시켰다. 친정엄마에게 또 미안해졌다.

하루는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변을 못 봤다 하여 유산균을 챙겨 보냈다. 하루에 2~3포 먹었다 했더니 많이 먹는다는 답이 왔다. 권장량대로 먹이고 있는데 많이 먹는다는 답변이 오니 또 별생각이 다 들었다. 분유 타줄 때 유산균 넣기 귀찮다는 뜻인가 하여 괜히 눈치가 보였다. 어린이집 선생님의 한 마디에 이렇게 불안하고 초조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큰 뜻이 없는 이야기일 텐데 괜히 예민하게 구는 것 같았다.

출근하는 날엔 아침에 아이를 맡기려니 머리를 말릴 시간도 없어 머리카락에 물이 뚝뚝 흐른 채로 아이를 안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아침마다 어깨가 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결국, 감기에 걸렸다. 아이에게 감기를 옮길까 전전긍긍했다. 머리도 못 말리고 출근한 내 자신이 또 원망스러웠다.

 

 

 

▶ 집에오면 본격적으로 집안일이 시작된다. (본인촬영)


일하는 도중에도 퇴근해서 아이 찾아올 생각만 들었다. 아이를 찾아오면 모든 것이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때부터 집안일이 시작됐다. 아이를 씻겨야 하고 먹여야 하고 재워야 한다. 아이가 자기 시작하면 아이 옷을 빨고 널고 개고 젖병을 소독해야 한다. 밤중 수유도 이어져서 24시간 쉴 시간이 없다.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올 6월까지 주 2회 출근 주 3회 재택근무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출근하는 날은 정말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전쟁이었다.    

다음 달 내 생일에 1박 2일로 혼자 동해바다 보러 여행 갈 테니 남편한테 아이를 좀 봐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했다. 운전도 못 하는데 혼자 보낼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렇게 3일 잘 버티다가도 4일째 되면 혼자 떠나고 싶고 다시 3일 잘 버티다가도 4일째 되면 또 혼자 떠나서 아이 울음소리 없는 푹신한 침대에서 온종일 잠만 자고 싶었다.

그런 상태로 매일 매일을 꾸역꾸역 버티고 있는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겼다. 토요일에 출근해야 하는 일정이 잡힌 것이다. 첫째가 둘째만 안으면 울고불고 난리가 나서 친정엄마가 아이를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어린이집 찬스를 반드시 써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아침에 아이를 맡기면서 어린이집 선생님께 토요일에도 아이를 맡겨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고 말씀드렸다. 당연히 될 거로 생각했는데 어렵다는 대답이 먼저 돌아왔다. 토요일에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 번 알아봐 주겠다 했다. 그 날이었다. 아이를 데려와서 어린이집 가방을 열어보니 근로자의 날 등원 수요조사 종이가 왔다.

‘맙소사, 출근해야 하는데 이를 어쩌나!’ 혹시나 토요일에 아이를 맡아줄까 싶어 원래 출근해야 하는 요일임에도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재택근무를 하기로 했다. 남편은 아이를 데리고 사무실에 가서 업무를 보자 했지만 이제 막 4개월이 돼가는 아이를 데리고 회사에 나갈 순 없었다. 토요일 등원만 손꼽으며 수요조사 종이에 근로자의 날 아이를 데리고 있겠다는 서명을 한 후 돌려보냈다. 그렇게 3일이 지났고 아이가 너무 어려서 토요일에 맡아줄 수 없으니 양해해달라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첫째를 친정엄마에게 맡길 땐 친정엄마 눈치만 보면 됐는데 둘째를 어린이집에 맡기니 이제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눈치까지 보게 됐다. 아이가 둘 이상 되는 맞벌이 가정들은 그동안 이 어려운 일을 어떻게 헤쳐 나갔는지 모르겠다. 

5월 징검다리 연휴를 보니 아찔하다. ‘2일과 4일에 임시 휴원이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나 그나마 다행이다’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내가 일하면 할수록 죄책감이 드는 것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또 내가 일하면 할수록 우리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소리를 언제까지 들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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