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은 사실 내게 잔인한 달이었다. 믿었던 사람이 등을 돌리기도 했고, 큰 기대를 했던 건 아니지만 꿈을 이루는 과정의 끝에서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를 맛보기도 했다. 힘들었다. 그런데 또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지내보니 참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관계든 일이든 꿈이든 어느 것 하나 내 맘대로 되는 건 없었다.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에 너무 얽매여 있는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또 어쩌면 내 멋대로 일이 잘 풀리기만 한다면 세상은 참 따분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먹기도 씻기도 불편한 곳을 굳이 찾아가기도 귀찮고, 평소 걱정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라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행을 가기로 결심한 데에는 친구들의 역할이 컸다. 아마 혼자였다면 나는 분명 여행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이번 여행도 가능했다. 덕분에 나는 부산국제영화제라는 우리나라 최고의 영화제 행사에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부산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에서 우리는 웃고 떠들었다. 꽤 긴 시간이었지만 별로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여행을 통해 우리는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간식을 먹고, 대화하고, 잠을 자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부산역이었다. 부산역의 풍경은 뭐랄까, 서울역과는 분명 다른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지 않았다. 우리는 그 여유가 좋았다. 부산역 근처에서 밥을 해결한 후, 해운대 근처 게스트하우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에 강풍이 불었는데 제법 시원했다.

우리가 출발한 날은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이 있던 날이었는데 워낙 사람이 많아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비록 배우들의 모습을 정면에서 보지는 못했지만 그 흥과 분위기는 우리의 기분을 유쾌하게 만들었다. 첫날부터 영화를 보는 건 무리라 생각해서 우리는 숙소 근처 횟집으로 갔다. 그곳에서 다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꿈, 돈, 여자 등 다양한 주제가 모둠회마냥 썰려 나왔고, 소주 한 잔과 함께 다시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적당히 취한 상태로 숙소에 들어가니 고요했다. 침대에 가로누워 창문을 바라보니 반달이 보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분명 보름달이었는데 시간이 참 야속하게 느껴졌다.

다음날부터는 오직 영화에 집중했다. 이제까지 살면서 이렇게까지 영화를 본 적은 없었는데, 라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는 첫 영화 <디판>만 같이 보고, 나머지는 각자 예매한 영화들을 따로 봤다. 그래서 이번 여행이 기억에 더 남는다. 함께이면서 동시에 혼자였던 여행이었다. 어쨌든 영화 3편을 이어 보니 정신이 없었다. 오후 1시쯤 헤어진 우리가 다시 한 자리에 모인 건 11시가 넘어서였다. 간단하게 야식을 먹을 겸 해운대 포장마차촌에 들렀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 영화 관계자와 연예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발길을 돌렸다. 다음에 올 때는 좀 더 여유 있는 상태로 오자는 다짐과 함께.

숙소에 와서 눈을 붙이려 했는데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친구들은 피곤했는지 모두 잠들어 있었다. TV를 이리저리 돌리다 영화 <이웃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김성균의 악역 연기에 빠진 사이 새벽 4시가 되어서야 잠에 들었다. 내가 잠에 못 든 건 영화가 재미있어서일까, 아니면 부산에서의 마지막 밤이 아쉬워서였을까, 그도 아니면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서일 것이다. 이따금씩 옆방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것이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는 지금도 선명하지 않다.

마지막 날 남은 영화 한 편을 보러 영화의 전당에 갔다. 그곳엔 레드카펫이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기념사진을 찍기로 했다. 사진 좀 찍어주세요, 하고 부탁하는데 낯익은 얼굴이 서 있었다(사실 처음엔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했다). 3년 전에 마지막으로 봤던 대학 선배였다. 부산에 사는 형도 아닌데 여기서 이렇게 만나는 걸 보면 우연이라는 게 정말 있긴 있구나 싶었다. 어쨌든 사진도 잘 찍고 우리는 다시금 헤어졌다. 마지막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부산 서면에서 권총 도난 사고가 일어났다는 기사를 봤다.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나오자마자 그런 소식을 접하니 씁쓸했다. 인간은 참 다양한 성격의 군상들로 모인 집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에서는 부산으로 내려가는 무궁화호에서처럼 많은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피곤하기도 했고 더 이상 우리가 함께 나눌 수 있는 주제가 고갈됐기 때문이기도 했다. 요컨대 여행에 내려갈 때는 공동으로 할 이야기가 많지만, 올라올 때는 딱히 그런 게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 부산으로 내려가는 시간보다 서울로 올라가는 시간이 더 길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지루하지는 않았다. 여행을 돌아보는 동시에 앞으로 할 일들을 생각하는 것으로 시간은 가득 채워졌다. 서울에 도착하니 바람이 차게 느껴졌다. 이제 가을인가 보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무언가를 얻으러 가는 것이 아니다. 해묵은 감정과 이야기들을 쏟아내며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다. 우리는 여행의 목적에 충실했다. 이제 다시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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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하면 뭐가 달라지나?"

나는 어렸을 때 공상을 참 좋아했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생각들. 물론 그런 터무니없는 상상을 한다고 해서 부모님이 상을 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잠들기 전이면 늘 어떤 것이든 머릿속에서 끄집어내려고 노력했다. 그 생각이 사람들한테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또 내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따위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 시절 내가 품었던 가장 큰 의문은 지구가 혹시 네모난 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이없는 생각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름 진지했다. 물론 그때도 ‘지구는 둥글다’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왠지 인정하기가 싫었다. 적어도 내가 한 방향으로 쭉 가서 다시 원래 있던 지점으로 돌아오지 않는 한 나는 지구가 둥글다라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이기 싫었다.

물론 이 이야기는 혼자만의 상상으로 그쳤다. 당시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계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보편적인 진리에 대한 의문 제기가 철없는 아이의 반항으로 비칠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나름 진지하게 생각한 것인데 그걸 실없는 소리로 취급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들 역시 나와 같은 루트로 그 보편적 사실을 깨달았기에 그들의 반박은 원래 내가 알고 있던 사실의 무게를 뛰어넘지 못할 것이라 판단했다. 마지막으로 일단 공상에 타자가 개입되면 그건 더 이상 공상이 아니었기에 나는 말하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는 공상을 하지 않게 되었다. 무슨 계기가 있었다거나  철이 들었기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런 공상을 한다는 사실을 우연히 다른 친구들한테 들켰다가는 이상한 놈으로 낙인찍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지레 겁을 먹었던 것 같다. 한마디로 나는 대학생이 되면서 남의 시선을 신경 쓰게 됐고, 그 시선이 내 공상을 부정적으로 볼까 두려워 나는 공상 행위 자체를 중단한 것이다. 물론 공상을 하지 않아도 삶이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몇 가지 달라진 것들은 분명히 있었다.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사이에는 늘 간극이 있으니까.

일단 공상을 끊으니 합리적인 고민도 하지 않게 되었다. 지극히 당연한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게 공상이었는데, 그걸 하지 않으니 당연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질문마저도 자취를 감춰버렸다. 또 한 가지, 공상을 하지 않으니 오히려 공허함을 느끼게 됐다. 기실 공상의 위대함은 창조성에 있다. A를 생각하다가 B가 나오고 A와 B가 조합되는 사이에 하나의 세계관이 형성되는 일련의 과정은 공상하는 사람을 절로 유쾌하게 만든다. 그게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그런 공상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기제로 작동하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마음 편히 공상하기로 했다. 공상을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것이 내게 더 유익하고 다른 삶의 영역에 영감을 줄 수 있으니 말이다. 새삼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가 한 말이 떠오른다.

"불가능한 것을 얻으려면 불가능한 것을 시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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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은 내게 신호를 꼭 지키라고 신신당부했다. 도로에 차가 있거나 없거나는 부차적인 문제였다. 신호등은 하나의 약속이자 원칙이었다. 처음 들인 습관 덕분일까.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신호를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졌다. 물론 초록불이 켜질 때까지 기다리는 일은 참 지루한 일이지만 말이다. 특히 방금 막 빨간 불로 변해버린 신호등 앞에 설 때면 그 기다림의 시간에 압도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몇 분 남짓의 시간이 내게는 매우 소중하다. 신호등을 기다리면서 멍하니 서 있는 순간, 그 찰나에 나는 기다린다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다.

전화기를 꺼낸다. 통화 연결음을 듣는다. 음이 울리는 동안만큼은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만 해도 전화를 걸어 무슨 말을 할까 고민했는데 이내 긴장감이 눈 녹듯 풀린다. 잡생각을 멈추고 전화기에 귀를 바짝 댄다. 경쾌한 사운드에 기분이 좋아질 무렵 음악은 적막으로 뒤바뀐다. 마치 깜박이던 초록불이 빨간불로 바뀐 것처럼. 마음속 평온은 불안으로 전복된다. 이때부터 추측과 공상이 이어진다. 상대방이 나를 부러 피하는 것인지, 혹여 너무 늦은 시각에 전화한 건 아닌지, 갖은 이유를 찾으려 한다. 상대방에 대한 애착이 강한 경우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다. 잠자코 상대방의 연락을 기다릴 뿐이다.

 

이제껏 기다리는 건 누구보다 잘해왔다고 자부한다. 그게 신호를 잘 지켜서인지, 타고난 성격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바보 짓 좀 그만 해” 맞다. 백번 타당한 지적이다. 그들이 보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기다리는 일은 너무나도 비효율적일 테니 말이다. 그들은 내가 좀더 과감히 행동하거나 다른 대안을 찾길 바란다. 적어도 가만히 기다리는 일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며 나를 설득한다. 잠깐의 망설임이 뇌리를 스친다.

 

상상을 해본다. 신호를 무시한 채 길을 건너가거나 다른 길로 우회해본다. 확실히 목표지점에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뒤에 내게 남는 건? 평소보다 더 빨리 도착했다는 데에서 오는 자족감 정도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잃어버린 건? 충분히 기다린 후에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성취감 또는 끝내 신호가 바뀌지 않을 때 느끼게 될 좌절감일 것이다. 성취감이나 실패로 인한 좌절감은 곧 경험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자존감으로 환원될 것이다. 잠깐의 자족감을 얻기 위해 자존감을 잃어버려야 하는 건가.

다시 신호등을 바라본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초록불은 아니다. 빨간불이 유난히도 붉다. 언제쯤 초록불이 들어올지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기다린다. 적어도 내가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건 가능성을 바라고 하는 행위는 아니니까. 설령 초록불로 변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기다림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마땅한 이유가 없으니 기다림을 멈추기도 어렵다. 끝이 있는 기다림이었다면 애초부터 기다리지도 않았을 것 같다. 기다림의 시간은 어차피 상대적이니까.

 

기다림의 성공이나 실패는 내 관심사가 아니다. 그보다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기다리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오늘도 신호등 앞에 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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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전부터 인턴기자로 일하고 있다.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조급해지고 이내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그토록 바랐던 인턴이었는데 막상 와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적어도 나는 무언가 생각하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여기서 하는 일은 대부분 무언가 생산해내는 일에 가깝다.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을 구태의연하게 표현하자면 이상과 현실의 괴리다. 물론 그런 우려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언론인이 된 선배들의 조언, 책의 구절, 퇴직한 언론인의 푸념 등에서 그런 기미를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간접경험과 직접경험의 차이는 컸다. 말로 수차례 듣던 이야기를 현실에서 마주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혹자는 내게 말한다.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일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물론 이런 말 해주는 사람들 마음 잘 안다. 또 고맙다. 그러나 의미 부여는 스스로 하는 것이다. 아무리 옆에 있는 사람이 의미 있는 일이라 말해줘도 내가 그걸 느끼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남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기울이는 사람이었다면 모를까. 냉정히 말해 의미 없는 일은 억지를 부린다고 의미 있는 일이 되지 않는다.

내가 하루 종일 붙잡고 있는 일이 의미 없게 느껴지고 재미조차 찾을 수 없다면 그 일은 안 하는 게 맞다. 그런데 슬프게도 그럴 용기는 또 없다. 왜냐면 대안이 없으니까. 총체적 난국이다. 대안을 찾기 위한 시도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항상 돌아선다. 지금까지 해온 게 아깝기도 하고 지금껏 온힘을 다해 준비한 적 역시 없어서 후회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많은 걸 잃어간다. 운 좋게 꿈에 가장 근접하게 됐는데 여전히 꿈은 멀게만 느껴진다. 꿈과 대안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는 사이 자존감은 추락하고 용기와 도전의식 따위는 희미해져만 간다. 함께 언론을 준비했던 친구들은 하나둘씩 평범한 샐러리맨이 되어 간다. 그들이 부럽다. 적어도 갈팡질팡하지 않고 하나의 선택을 내린 것일 테니까. 그 과정에서 그들에게는 어떤 소신 같은 것이 생겼을 것이다. 반면에 나는 꿈과 대안의 중간지점에 놓인 애매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속된 말로 이도저도 아닌 놈이 된 것이다.

어렸을 적에는 이런 고민을 어떤 식으로든 유예할 수 있었다. 어른이 된 다음에 고민해도 늦지 않아, 라는 식으로 말이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누가 봐도 어른이어야 할 나이가 됐다. 지난날처럼 마냥 세월아 네월아 방황의 늪에 빠져 있을 수 없다. 꿈을 예리하게 조정하든, 새로운 대안을 찾든 결정을 내려야 할 때다. 1년 후에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싶지는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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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속에 답이 있다. 대학 입학 첫 해 교양 수업에서 들었던 말이다. 감히 말하건대 내게 철학은 어렵지 않은 학문이었다. 적어도 정답과 오답의 학문이 아니었으니까.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는 것. 내게는 그것이 철학의 전부였다. 최초로 생각하는 것이 어려울 뿐, 일단 한번 시작하면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식으로 나만의 철학은 완성될 수 있었다. 생각한대로 말하기, 아무 것도 모를 때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철학을 머릿속으로만 해봤자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것은 뇌내연애와 조금도 다를 게 없었다. 실천하지 않는 철학은 죽은 지식과도 같았다. 철학을 실천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움일 것이다. 철학의 근본이 다른 생각, 다른 사유에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큰 맥락에서) 동일한 가치관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내 생각을 말했다가는 도태되고 소외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철학을 실천하는데 있어 가장 큰 적이었다.

그러나 실천하는 철학의 어려움에 대한 나의 사유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깨지고 말았다. 지난 해, 우연히 수많은 필리핀 이주자들을 만난 적이 있다. 놀랍게도 그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혜화역 부근에서 주말마다 필리핀 시장을 열고 있다고 했다. 4년 이상 학교를 다니는 동안 나는 그들을 보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애써 못 본 척 했던 것일까. 어쨌든 그들은 저마다의 처지와 사연은 다르겠지만 하나같이 유쾌해 보였다. 그냥 지나가기엔 아쉬운 마음에 필리핀 음식을 먹어보기로 했다.

 

간이식당에는 나와 일행을 제외한 이들 전부가 필리핀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의식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척 음식을 먹으려 했지만, 왠지 모르게 빨리 먹고 자리를 피해야 된다는 생각에 쫓겨 제대로 맛도 보지 못한 채 접시를 비웠다. 식당에 있던 이들은 내게 적대적인 신호를 보내지 않았고, 나 역시 그들에게 반감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나와 일행은 알 수 없는 이질감에 몸을 사렸고, 재빨리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평소 피부색이 다르거나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얼마든지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앞의 사례를 제외하고도 나는 과거 베트남 사람이 건네는 음식에 대해 속으로 경계한 부끄러운 경험이 있었다. 이러한 경험들은 그간 철학 실천의 어려움에 대해 갖고 있던 나의 생각이 어쩌면 변명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는 걸 증명했다. 철학 실천의 어려움은 세상이나 사회 탓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자극과 변화를 두려워하는 나약한 내면에 있었다.

 

그래서 철학적으로 살기란 어렵다. 세상을 바꾸는 일도 어렵지만 그에 앞서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 역시 결코 쉽지 않은 법이다. 철학을 위해서라도 나부터 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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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휴대폰 전화번호부를 유심히 바라볼 때가 있다. ㄱ부터 시작해 ㅎ으로 끝나는 연락처 중 다짜고짜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마음에서다. 유감스럽게도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절반가량은 전화를 받은 뒤 당황할 가능성이 높다. 언제부턴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연락할 수 없는 부류의 사람들이 전화기 속으로 물밀듯이 들어왔다. 휴대폰에 저장된 이들은 하나같이 일상적인 사람들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상적인 일로 그들에게 연락할 수는 없다. 물론 그들이 처음부터 연락하기 껄끄러운 사람들은 아니었다. 별다른 고민 없이 연락처를 꾹꾹 눌러가며 저장한 건 어디까지나 나였으니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취업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게 되면서와 같은 이런저런 핑계로 일상적인 사람들을 기억에서 지운 건 나였다. 그러면서도 항상 특별한 사람을 기대하곤 했다. 전적으로 지지해주고 응원해주거나, 잘못된 길로 가는 걸 미연에 눈치 채고 조언해주는 사람. 하지만 그런 특별한 사람이 어느 순간 짠하고 나타날 리는 없다. 당연한 일이다. 다른 모든 사람들도 그런 방식으로 특별한 이를 찾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특별한 사람은 절대소수다. 그에 반해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람들은 주변에 넘쳐난다. 오늘도 나와 같은 일상인들은 일상적인 사람들 속에서 허우적댄다.

 

하지만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은 일상적인 사람들 사이에 숨어있다. 평소에 살갑게 느껴지지 않았던 친구의 눈물에 비극을 느끼기도 하고, 오랜 도전 끝에 결실을 맺은 친구의 성공에 진심으로 축하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 자연스러운 감정이 도화선이 되어 일상적인 사람은 특별한 사람으로 뒤바뀐다. 일종의 전복이다. 특별한 사람은 일방적이지 않다. 그가 나에게 특별하듯, 나도 그에게 특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지점에서 귀인오류에 빠진다. 나의 성공은 능력이고, 남의 성공은 환경 덕분이라는 식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특별한 사람에게만큼은 귀인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그의 성공은 어디까지나 그의 능력 덕분일 것이라 굳게 믿는다. 특별한 사람을 스스로와 동일시할 정도로 친밀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내게는 5살 때부터 10살까지 함께 자란 이웃집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유치원을 같이 다녔고,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같이 사진을 찍었으며, 매일같이 놀이터에서 놀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사를 가던 날 친구는 이삿짐을 가득 실은 차 뒤를 쫓아오며 연신 손을 흔들어댔다. 그때 이를 악물며 따라온 친구와 연락이 끊긴 지는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당시 차를 뒤따라오던 친구의 눈망울에 맺힌 눈물은 잊히지 않는다. 특별한 사람을 찾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누군가의 특별한 사람이 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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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스물여섯. 무언가에 쫓기듯 재빨리 대학과정을 수료했고, 그 덕분에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백수가 되었다. 주변 친구들은 이것저것 참 준비들을 많이 하는데 그에 비해 나는 몸과 마음 모두 한량이나 다름없다. 간간이 블로그에 글을 쓰고, 신문과 책을 읽는 걸 제외하면 딱히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떠오르지 않는다(기껏해야 1주일에 한 번씩 축구하는 걸 보탤 수 있을 것이다). 심각한 나태다. 비록 몸은 집이라는 공간에 있지만 정신은 어느 것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상태. 쉽게 말해 나는 방황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나의 방황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나?

돌이켜보면 내게는 뚜렷한 방향이 없었다. 방향이 없었기에 뒤늦은 방황은 필연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이제껏 큰 사건 없이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살아왔다. 그렇다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냐 하면, 그것도 의문이다. 고백하건대 사실 내게는 사춘기도 없었다. 일단 충돌이 일어나면 비켜가는 스타일 때문이라는 내부의 원인도 있지만 그보다 본질적인 원인으로 사건 자체가 많지 않았다.

 

찢어진 축구화와 증발해버린 꿈

그러나 내게도 기억될만한 사건 하나는 있었다. 굳이 방황의 근원을 찾자면 유년시절을 꼽을 수 있겠다. 중학교 1학년 때 일이다. 그때 나는 막연하게나마 축구선수를 꿈꿨다. 당시 축구를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또 지금도 왜 축구를 끊지 못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이끌리는 데에는 반드시 이성만이 작용하지 않으니까.

어쨌든 간에 중요한 건 내 꿈이 좌절됐고 그 과정에 스스로의 의지가 전혀 개입되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학원에 가지 않고 몰래 운동장에 공을 차러 나갔다는 소식에 부모님은 이성을 잃었다. 이내 내가 가장 아끼던 축구화를 가위로 오려냈다. 그때 나는 저항했어야만 했다. 멍하니 찢어진 축구화를 잠시 바라보다가 나는 이내 학원을 갔다. 그날 이후 축구선수라는 꿈은 내 마음 속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때부터 나는 한 가지에 ‘올인’한 적이 없다. 성공을 위해서는 1만 시간이 필요하다는 법칙도 있는데 그 이론이 사실이라면 나는 성공하기 글렀는지도 모른다. 한 우물을 파는 건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과 같았다. 축구선수라는 꿈이 좌절된 후, 내게는 경찰, 검사, 사회복지사, 기자 등의 꿈이 다시 등장했지만 어느 것 하나 진득하게 준비하지 못했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꿈은 있지만 동기부여가 되지 않아 이내 포기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오는 변덕 마다하지 말자

쉽게 말해 나의 병은 변덕이다. 변덕은 무서운 병이다. 이 병은 환자가 하나의 목표를 정하고 진득하게 앉아보려 해도 도무지 좀이 쑤셔 이내 포기할 수밖에 없게끔 만든다. 병을 치료할 약을 찾기 위해 갖은 방법을 써봤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우스운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변덕을 고치려면 변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다.

말하자면 어차피 변덕 부릴 거, 좀 더 주체적(?)으로 부리자는 거다. 오는 변덕 막을 수 없다면 마다하지 않고 변덕을 받아들이는 게 낫다. 변덕도 나름대로 쓸모가 있다. 다방면의 분야에 얕은 지식이라도 쌓아 멀티 플레이어로 살아나가는 것. 현재 내가 지향하고 있는 길이자 끝없는 방황에서 내린 결론이다. 변덕에 이용당하느니 주체적으로 변덕을 활용하는 게 사실상 같은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심적으로는 안정감을 줄 거라고 굳게 믿는다.

방황하는 삶에도 근사한 점은 있다. 새로운 일에 잠시나마 고무되어 무력감에 빠지지 않을 수 있고, 한쪽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다른 쪽 일을 추진함으로써 불안감에서 해방할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그러나 무력과 불안에서 벗어난다고 그것이 곧장 행복과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자극이 없으면 무력감에 빠질 수 있다는 게 방황하는 이들의 가장 큰 위험 요소다.

정리하자면 불행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행복하지도 않은 중간항의 상태. 그런 상태가 방황하는 이의 처지다. 아이러니하게도 방황을 그만두는 순간, 행복과 불행은 온다. 함께 혹은 잇따라 찾아올 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그 둘(중 하나)을 맞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사진: 프리드리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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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아니 어쩌면 속에 묵혀있던 응어리가 시한폭탄처럼 때 맞춰 터진 건지도 모르겠다. 6년 전 병상에서 할머니는 웃으면서 나를 맞이하셨다. 수능 성적에 대한 걱정과 앙상하게 마른 할머니의 모습에 대한 이질감으로 나는 할머니에게 살갑게 하지 못 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5살까지 엄마 대신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였다. 당시 그 사실을 잊은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부러 할머니를 멀리했다. 그리고 사흘 뒤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장례식에서 가족들은 펑펑 울었다. 줄곧 강하기만 하셨던 엄마는 속절없이 쓰러졌다. 그런데도 내겐 눈물이 맺히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엄마의 슬픔에 슬픔을 느끼기는 했지만, 이상하게도 할머니의 죽음이 직접적으로 슬픔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장례를 치른 후, 할머니는 점점 내게서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서 멀어져만 갔다. 그랬던 할머니가 “당신이 가장 후회하는 일은?”이란 질문의 답으로 나타났다. 면접을 준비하다가 질문에 자연스레 대답을 찾던 중 할머니는 등장했다. “저는 돌아가신 외할머니에게 정말 죄송합니다. 저를 5살 때까지 키워주셨고 잘못을 해도 혼을 내기보다는 귀여워해주셨는데 병상에 누워계실 때 제대로 찾아뵙지도 않았고 돌아가신 뒤에도 장례식장에서 눈물 한 번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할머니께 잘해드리지 못한 게 가장 후회스럽습니다.”

 

면접에 질문이 나왔더라면 난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를 제시했다. 나는 왜 지금에 와서야 외할머니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가, 지금에서야 이런 죄스러운 감정을 가진다고 달라질 것이 있는가, 그저 나는 질문에 적합한 답을 찾아 외할머니를 호명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과 잡념들. 고민의 종착역은 만약 그랬더라면, 하는 식의 가정이었다. 내가 만약 병상에 계신 할머니를 찾아갔을 때 좀 더 살갑게 대했더라면, 장례식장에서 일가친척이 슬퍼하듯 마음껏 눈물을 흘렸더라면 지금의 이 죄스런 감정은 사라졌을까.

 

그랬더라면, 하는 가정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굳이 가정을 해본다면 아마도 죄스러움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지금 내가 할머니를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상에서 좀 더 살갑게 대하고, 장례식장에서 펑펑 울었더라면 할머니는 이 글에도 내 기억에도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변명이든 합리화든 그것은 가정에 대한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할머니에 대한 죄스러움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슬퍼할 때 온전히 슬퍼하지 못했기 때문에 할머니는 평생 동안 이따금씩 내게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퍽 싫지만은 않다. 어릴 적 외갓집에 가면 난 항상 다락방에 숨곤 했다. 할머니는 내가 다락방에 숨어있다는 걸 알면서도 항상 손자의 재미를 우선시했다. 온 집안 식구들의 걱정을 저당 잡은 채 말이다. 다락방에서 나올 때면 언제나 엄마는 내게 화를 냈는데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먼지를 털어주셨다. 내가 만약 장례식장에서 온전히 슬퍼했다면 이따금씩 기억 속에서 나타나는 할머니도, 할머니와의 추억도 사라졌을까.

 

* 사진출처: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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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뚜. 상대방과 연결되기까지 울리는 이 알림음. 나는 이 연결음이 어떤 컬러링보다도 감미롭게 느껴진다. 통화 상대방이 누구든 상관없다. 연결음이 울리는 동안은 잡생각을 멈출 수 있으니까. 한 박자 여유를 찾을 수도 있다. 전화를 걸어 무슨 말을 할까, 하는 걱정은 단 10초면 사라진다. 조금 과장해서 가끔은 이 연결음이 1분 넘게 지속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상대방 목소리를 듣는 것보다 연결음을 들을 때가 더 반가운 경우다.

 

그러나 “연결이 되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라는 메시지를 듣는 순간 마음의 평온은 불안으로 뒤바뀐다. 여유는 긴장으로 전복된다. 이때부터 갖은 추측과 끝없는 공상에 시달린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혹여 내가 너무 늦은 시각에 전화를 한 건 아닌지, 별의 별 이유를 찾으려 든다. 당황한 나머지 소리샘으로 연결돼 무심결에 녹음이 될 때도 있다. 대개 상대방에 대한 미련과 애착이 강한 경우다.

 

통화 연결음의 속도는 절대적이지 않다. 좋아하는 이의 연결음은 언제나 빠르다. 반면 싫어하거나 꺼려하는 이의 연결음은 한없이 느리게 지나간다. 이기적인 마음은 언제나 주문을 왼다. 좀 더 느리게 혹은 좀 더 빠르게.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이 세분화되는 만큼 연결음의 속도는 상대적이다. 더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면 더 빨리 연결음이 흘러가고, 싫어하는 이의 연결음은 속절없이 느리게 지나간다. 상대방에 따라 연결음의 속도가 정확히 일치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정말 슬픈 것은, 연결음을 대하는 나의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경우다. 그걸 알아내는 방법은 약간의 참을성만 있다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좋아하는 상대방이 전화를 걸 때 유심히 전화기를 지켜보라. 30초도 되지 않아 벨소리가 끊어진다면, 또 그 과정이 여러 번 목격된다면, 당신의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은 일치하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 그게 이성 관계든, 썸이든, 친한 친구 사이든 상관없다. 물론 성급한 일반화일지도 모른다. 이건 법칙이 아니다. 단지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들로부터 도출된 하나의 인식일 뿐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실망할 필요는 없다. 사람의 마음이 변하듯, 연결음을 대하는 태도 역시 변한다. 연결음을 애타게 세며 기다리던 마음은 금세 식어버리고, 귀찮기만 했던 연결음이 간절해질 때가 있으며, 무의미했던 연결음이 한 움큼 의미 있게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런 순간이 있다. 때로는 위기로, 때로는 기회로 다가오는 연결음의 변화. 이 순간을 부여잡든, 놓치든 그것은 온전히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다만 꺼져버린 전화기는 응답이 없다. 울리지 않는 연결음처럼 공허한 것은 없다. 당신은 연결할 준비가 되었는가.

 

* 사진출처: businessins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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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도의 경계에서

 

 

경기도와 서울시를 넘나드는 빨간 버스를 탈 때면 정신이 몽롱해진다. 내가 지금 시로 진입하고 있는지 도를 향해 가는지 궁금할 때쯤이면 전방을 주시한다. 안녕히 가십시오. 어서 오세요. 유난히 친절한 문구로 말미암아 다시금 목적지를 상기한다. 목적지는 정해졌고. 어디 보자. 이제 뭘 하지. 몽롱해진 나의 의식은 운전자를 향한다. 운전자는 나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특유의 선글라스를 쓴 채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 간결한 최소 동작으로 최대의 효율을 내는 그의 운전법을 언젠가 꼭 배우고 싶다.
 
상행선과 하행선의 갈림길에서 어김없이 운전기사는 반대쪽 방향에서 나타난 같은 번호의 광역버스를 보고 손을 흔든다. 저 인사법은 무엇인가. 잡념이 시작된다. 인사하는 대상은 마주보고 오는 버스일까 아니면 버스 운전사일까. 당연히 버스 운전사일 거라고 멋대로 단정한다. 그렇다면 저 운전기사를 알기 때문에 인사를 하는 걸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또는 정말 우연히도 마주보게 된 운전수의 얼굴이 자신이 오랫동안 못 본 친구여서 인사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회사의 방침이 같은 회사 버스이면 무조건 손 인사를 하도록 한 건지도 모른다. 가능성은 열려 있다. 직접 물어보지 않는 이상 어떤 이유로 손을 흔든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저 인사는 너무 건성이지 않은가. 그저 손을 흔들고 마는 저 인사는 간결하기 그지없다. 오랜만에 본 친구라면 경적이라도 울리고 싶은 게 운전수의 본심 아닐까. 아니지. 그랬다간 뼈도 못 추릴 정도로 대형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 운전수의 프로의식을 높이 사야겠다. 그런데 왜 하필 오른손인가. 단순히 오른손잡이라서? 오른손잡이이기 때문에 왼손으로 핸들을 잡고 기어를 조종하기 때문에 오른손으로 인사한 건가. 아직까지 왼손으로 인사하는 기사를 본 적이 없으니 이건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을 것 같다. 근데 운전을 하다가 한 손을 놓는다는 건 조금은 위험한 짓 아닐까. 사고는 순간의 찰나에 일어나는 건데. 다시 생각해보니 운전수는 프로는 아닌 것 같다.

 

그냥 목례나 눈인사만 하면 어떨까. 그건 너무 인간적이지 못한가. 인간적인 것과 프로 같은 것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어려운 문제다. 버스 기사가 아니기에 쉬이 답을 내릴 수 없다. 그런데 잠깐 저쪽에서 오는 운전수도 선글라스를 끼지 않았을까? 그리고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 순간 얼굴을 알아보고 인사를 한다니.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다. 그래 이건 회사 탓이다. 회사가 인사하도록 규정해버린 것이다. 지금 당장 버스 운전수가 인사를 하다가 사고가 난다면 이건 운전수 탓이 아니라 회사 탓이다. 쓸 데 없는 규정 때문에 사고 가능성을 높이다니 너무하지 않은가.

 

혼자만의 상상을 즐기며 미소를 짓다가 흠칫 놀란다. 밖에는 소나기가 내리고 있다. 우산도 없는데 꼼짝없이 비 맞게 생겼네. 이제 곧 버스에서 내리려고 일어서는데 버스 기사가 친절히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한다. 나도 덩달아 “감사합니다”하고 내린다. 그런데 가만 비가 오는데 저 분은 왜 선글라스를 끼고 있을까. 세상에는 궁금한 일들이 참 많다. 버스 운전사가 선글라스 끼게 한 것도 회사의 지시사항이었을까. 뭔가 그건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지만 쉽게 단정하지 못하겠다. 일단 비를 피한 후 생각해보자.

 

사진출처: 엔하위키 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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