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가는 길이었다. 뜨거웠던 여름 해는 구름에 가린 채 지고 있었고, 여행길이라고는 하나 실상은 입석 칸에 널브러졌다. 부산까진 한 시간 남짓 남았다. 배가 고프니 모든 일이 성가시다. 기다리는 것조차 지치던 차에, 기차는 어느 역에 도착했다. 3초 정도 생각했을까. 아니 이성보다는 육감이 더 옳으리라 판단하고는 곧장 차에서 내렸다. 밀양이란다. 밀양아리랑, 전도연과 송강호가 나온 영화... 내가 아는 밀양은 이게 전부였다.


표충사도 있고, 얼음골도 있다지만 거기까지 갈 시간도 없었다. 무작정 내려버렸지만, 막상 갈 곳이 없는 일개 경유지였다. 스마트폰을 뒤져보았다. 이왕 왔으니 저녁은 확실히 채우고 갈 요량이었다. 혹자는 밀면을 가보라 하고, 어느 이는 삼겹살이 맛있더란다. 그러다 한 블로그가 시장에 국밥집이 있는데 괜찮았다고 한다. 시장구경도 하고, 가는 길에 얼추 시내도 볼 수 있겠네 싶어서 버스에 올랐다. 버스 라디오에선 야구 중계가 흘러나온다. 롯데의 사직 홈경기였다. 역 간판을 보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는데, 이제야 여기가 밀양임을 실감한다. 야구가 일상의 하나, 그 이상으로 열광하는 전형적인 부산경남, 소위 PK의 한복판에 있던 것이다.


버스는 낙동강을 지나갔다. 본격적인 시내인데, 건물들이 그리 높지 않다. 그래도 명색이 시(市)라고 은행이니, 카페니 있을 건 다 있어 보였다. 시장 어귀에서 내려 어름어름 찾기 시작했다. 7시도 안 되었는데, 가게는 하나둘 장사를 파하고 있었다. 문 닫았으면 어쩌지 걱정하던 차에, 다행히도 내가 찾던 국밥집은 아직 장사하고 계셨다. 할머니 두 분이 계셨는데, 저녁 손님으로는
 내가 처음인 듯 보였다. 


“국밥 줄까?” 

주인 할머니가 물으시며 주방으로 향하신다. 국밥 외에는 고를 수 있는 게 없었다. 차림판은 할머니께서 직접 쓰신 모양이었다. 작은 뚝배기부터 간판까지 모든 사물에서 노포(老鋪)의 정취가 절로 묻어나온다. 그 사이 국밥을 다 끓이셨는데, 정성스레 뚝배기에 담긴 국밥을 천천히 토렴하고 계셨다. 서울에서는 아마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손주뻘 되는 어린 손님이 뜨거운 국물에 차마 입이라도 상할세라 몇 번이고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는 것을 반복하셨다. 시키면 바로 나와야 하는 게 당연하고, 팔팔 끓고 있는 게 국밥의 의무인 줄 알았는데, 아마 나는 그동안 ‘빠름’을 미덕을 숭상해온 것 같았다. 이유도 모르는 ‘바쁨’에 ‘빨리빨리’가 일상이 되어버린 그런 것 말이다. 그렇게 빠름에 젖어 있는 나에게 ‘느림’의 미덕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다.

부산에서와는 다르게 여기서는 방아잎을 찢어 넣어주신다. 그렇게 알맞게 따스한 국밥이 내 앞에 펼쳐졌다. 찬은 그리 많지는 않다. 정구지와 김치 그리고 새우젓. 여기에 된장과 양파와 풋고추가 전부이다. 소박하지만 국밥을 먹기에 이상적인 차림이다. 뽀얀 국밥에 가지런히 올린 정구지를 이제 보기 좋게 흐트러뜨린다. 휘휘 말아보니, 다대기가 어우러지니 국물 색은 이내 구수한 색깔이 된다. 듬직한 한 술, 정구지 올려 입으로 올려보낸다. 이내 양 볼따구니까지 푸짐히 채워진다. 다른 어떤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먹어댔다. 국밥을 마셨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 정도로 먹었다.


‘어디서 왔노?’

뚝배기 바닥이 보일 즈음에 주인 할머니가 운을 떼신다. 서울에서 왔는데, 서울에는 이런 국밥은 찾을 수도 없다고 호기롭게 이야기했다. 덧붙여 맛의 비결도 여쭈어보았다. 그저 순수하게 매일 끓인다고 말씀하셨다. 당신의 표현으로 작은 하꼬방인데도 서울에서 대학생들이 종종 찾아오는 걸 보면 결국 ‘매일 매일 순수하게’가 그렇게 사람을 부르는 것 같다고 하셨다. 무언가 특별한 비결이 있을 것 같아 내심 기대했는데, 되레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나를 보았다. 어떤 것을 위해 매일, 부끄러움 없이 순수하게 만들어온 적이 있었는지 짐짓 되돌아보게 되었다.

주인 할머니는 밀양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일생을 살아오신 고장이셨는지, 자부심이 묻어났다. 산새가 좋아서, 비가와도 물난리가 잘 안 난다고. 낙동강이 한가운데로 흘러서 농사도 짓기 좋은 땅이었다고. 그런데 지금은 다 부산 가고, 서울 가고 사람들이 많이 떠났다고. 푸념 자부심과 체념, 다양한 것이 느껴졌다. 벽에 걸린 밀양 사진 몇 개가 그 증거처럼 남아있는 것 같았다. 살기 좋은 곳이라 어디든 사람이 북적이던 그 활기가 이제는 사진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옛 정취는 이제 가고 없지만, 그래도 그 시대의 추억하는 사람들이 남아 그 정취를 국밥으로 전해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국밥은 밀양을 닮았다. 넉넉한 인심, 때 묻지 않은 여유로움이 오롯이 담겨있다. 화려한 진미와 값비싼 만찬들이 수두룩하지만 나는 서울에 있는 지금도 그 정취가 담긴 따스한 국밥 한 그릇이 먹고 싶다. 그것은 아마 사람 냄새 솔찬히 먹어보고 싶은 마음의 허기가 아닐지 생각해본다.


(p.s : 광고글만 쓰던 놈이 이젠 국밥에 대해서도 끄적여보았습니다. 아주 가끔은 기행문이나 이런 음식에 대한 낙서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올려보았습니다.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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