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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해지지 않는 서른 혹은 다섯 번째의 것들익숙해지지 않는 서른 혹은 다섯 번째의 것들

Posted at 2019. 4. 24. 00:01 | Posted in [메밀꽃 이는 세상]

 

 

서른 번째 생일이 지나갔다.

 

크게 특별하지 않은 날이었다. 직장 동료들과 맛있는 점심을 먹었고 생일을 축하받았다. 3을 강조한 선물을 많이 받았고, 서른에 관련된 책은 두 권이나 선물 받았다. 모든 사람들이 내가 서른 줄에 들어섰음을 강조하는 것 같아 잠시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다. 10대의 마지막 생일에는 싱그러운 20대 청춘을 꿈꾸며 기대에 가득 찼었던 것이, 10년의 차이를 두고 이렇게 바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아쉽기만 했다.

 

4월 둘째 주인 생일 주간은 애매한 기간이다. 학생 때는 대부분 중간고사 기간이었고, 직장에 와서는 대부분 가장 바쁜 기간이라 대충 챙길 때도 많았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일주일을 차이로 마냥 기뻐하기도, 슬퍼하기도 애매한 주간이 되었다.

 

5년 전 4월의 어느 날은, 내가 일하느라 한창 바쁘던 시기였고 동생이 제주도 수학여행을 일주일 가량 앞둔 시점이었다. 야근을 일삼던 일이 갑자기 중단되어 무슨 일인가 싶어 뉴스를 보며 집으로 가던 퇴근길도 아직 생생하기만 하다. 수학여행을 떠난 고등학생들이 전부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모처럼 편안하게 일찍 잠에 들었던 저녁이었다. 그러나 곧 악몽처럼 사망자와 실종자 수가 급격히 늘어났고, 그 차가운 물에 배의 마지막 조각이 안쓰럽게 잠기는 것을 실시간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먹고 사는 일에만 몰두하는 삶은 얼마나 슬픈가. 그런 큰 사고에도 불구하고 더 슬퍼하지 못한 채로, 나는 일 중단으로 인해 일당을 주지 못함을 다른 근로자에게 설명해야 했고 항의를 받았다. 자본이 인간성에 흠집을 내는 매 순간을 내가 익숙하게 살고 있었다.

 

 

슬픔의 감정은 조금 늦게, 매 순간 다가왔다. 동생의 수학여행이 취소되었을 때, 고3이 되었을 때, 졸업과 입학을 했을 때, 새내기가 되었을 때. 동생 같은 그 아이들이 제때 구조되었다면 그들에게도 똑같이 흘러갔을 시간이었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못한 것에 많이 미안했다.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더 노력했지만 그 미안함의 조각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 또한 그러했으리라 생각한다. 각기 다른 입장에서,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더라도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는 비슷한 모양의 상흔이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5년이 지나 공영방송에서는 오보를 부끄러워하고, 반성하며, 앞으로의 역할을 다짐하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또 반대에선 여전히 누군가의 죽음을 비웃고, 이용할 궁리를 하고 있다. 타인의 이야기에 불과하다며 냉소를 보내기 전에 그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슬퍼해줄 수는 없을까. 슬픔의 무게마저 진영의 잣대 위에 올리는 세상인가 그러한가 싶어 못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건 한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세상을 죽이는 거야”

 

최근 종영한 한 드라마 속 주인공이 흑화 하면서 뱉은 한 마디를 들으며, 문득 다른 장면을 하나 더 떠올려본다. 그것은 작년 늦가을이었고, 11년 만의 삼성의 사과였다. 나는 현장에서 터지는 많은 플래시 속에서 약간의 슬픔과 안도, 안타까움의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다. 당연했어야 할 일들이 당연하지 않았던 지난 11년이 유가족과 피해자에게는 얼마나 긴 시간이었을지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故황유미씨의 아버지는 그렇게 서글프고 푸른 미소를 지었더랬다.

 

그들의 죽은 세상이 여전히 그곳에 살아 있었다.

 

사무실로 복귀하며 핸드폰의 반짝임을 위한 수많은 죽음과 피를 생각했다. 한 사람의 죽음 너머에 놓인 그 세상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메탄올, 시안화수소 등 유해물질의 위험성을 미리 고지받지 못한 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했던 사람들과 산산조각 난 그들의 세상을 누가 보상해줄 수 있을까. 젊은이의 청춘을 뺏은 많은 일들은 또 어떠한가. 그런 조각난 누군가의 세상을 마주하며 사는 우리는 어떤 일상을 살아야 하는 걸까.

 

그럼에도 나는 ‘먹고 살기 위해’라는 이유로 늘 이 ‘익숙함’의 핑계를 대지 않았던가. 세월호에서 아이를 잃은 어머니들이 ‘더 이상 자책하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했지만 나는 여전히 부끄럽고 슬프다. 나의 오늘이 이 상흔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에도 어느덧 이러한 일상과 감정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기에. 내 세상에서 분노와 슬픔마저 그러해서.

 

우리 사회의 상흔이 보다 옅어지고, 그 위에 새싹이 돋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할지 여전히 가늠할 수 없다. 모든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벌써부터 가슴이 선득거린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내 세상이 더 이상 ‘익숙함’으로 포장되어 있지 않기를 바라본다. 익숙해지지 않는 서른처럼 다섯 번째 혹은 열 번째의 많은 것들도 그러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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