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569돌을 맞이하여 2015년 10월 5일부터 6일까지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물어봤다. “국보 1호는 숭례문이 적합합니까? 훈민정음 해례본이 적합합니까?”  조사결과 숭례문은 20.0%, 훈민정음 해례본은 64.2%로 훈민정음 해례본이 숭례문보다 국보 1호로 적합하다는 의견이 3배 이상 차이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 아시아경제

 

숭례문이 국보 1호로 적합한지 묻는 질문에는 부적합 44.7%, 적합 34.8%로 나타나 숭례문이 국보 1호로 부적합하다는 의견이 더 높았다. 

1996년에도 이와 비슷한 여론조사가 있었다. 그 당시에는 서울대 생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조사결과 국보 1호의 재지정 검토 필요성에 대해 57%가 재지정을 검토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국보 1호로 재지정 해야 하는 문화재로 훈민정음 해례본을 뽑았다. 같은 해 문화재 관리국이 실시한 여론 조사도 있다. 이 여론조사는 문화재 전문가와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했는데 국보 1호 재지정에 대해 반대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았다.(그 이유는 국보 번호는 관리상의 편의를 위해 붙인 것이지 가치 순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이 당시 찬성한다는 사람들에게 그렇다면 국보 1호를 교체 한다 가정하고 어떤 문화재로 해야 하는가에 대해 물었는데 훈민정음 해례본을 그 대안으로 꼽았다.   

1995년부터 “국보 1호는 훈민정음 해례본으로 재지정 해야한다.”는 이야기가 10년 단위로 나오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일제잔재 청산과도 관련이 있다. 1996년에는 광복 50주년 사업의 일환으로 김영삼 정부가 추진하였으며 2005년에는 광복 60주년 사업의 일환으로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사업이다. 왜 두 정부는 광복절을 맞이하여 숭례문을 국보 1호에서 해지하고 훈민정음 해례본을 국보 1호로 재지정하려 했을까?

숭례문은 1934년 조선총독이 보물 1호로 지정한 문화재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한양의 교통흐름에 방해된다며 아다치 겐조우가 숭례문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고 하세가와 요시미치 조선군 사령관은 대포를 쏴서 파괴하자라고 주장했다. 이에 일본인 거류민 단장이었던 나카이 기타로가 숭례문 폭격을 반대하고 나섰다. 그가 반대한 이유는 숭례문은 가토 기요마사가 임진왜란 당시 한양에 입성한 문으로 남겨 놔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조선침략의 증거로서 숭례문은 살아남았고 임진왜란 당시 고니시 유키나가가 한양으로 들어온 흥인지문도 살아남았다. 그러나 식민통치에 의미 없는 돈의문, 소의문, 혜화문 등은 철거당했다.
  
그 후 1934년 일제는 조선보물고적명승기념물 보존령을 제정하여 보물1호는 숭례문, 보물2호는 흥인지문으로 정했다. 국보 1호 숭례문이 일제잔대라고 비난받는 이유가 이것이다.(당시 일제는 조선은 식민지이기에 국보번호를 부여하지 않고 보물 번호를 부여했다.)

문화재청은 변명한다. 국보 지정 당시 이 문제가 거론됐지만 보물에서 국보로 격상시켰기에 일제잔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제는 보물 지정 당시 고적도 지정했는데 당시에 고적 1호로 지정한 문화재는 경주 포석정이었다. 일제는 교묘하게 보물과 고적에 망국의 의미를 담은 문화재를 1호로 지정한 것이다. 보물을 국보로 격상시키며 일제잔재를 털어냈다면 고적 1호는 왜 그대로 지정한 것일까? 숭례문은 일제 잔재가 아니기에 국보 1호 자격에 문제가 없다고 말할 때마다 나오는 문화재청의 논리 없는 변명일 뿐이다.

국보 1호, 2호, 3호 등 번호는 문화재 관리상 편의를 위해 붙인 번호이지 가치의 순이 아니라며 국보 1호에 가치를 부여하지 말라는 주장도 있다. 그 문제를 몰라서 국보 1호를 변경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가치 부여하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1호’에 붙는 상징성에 대해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1호가 중요하지 않으면 각종 시험 문제에 왜 국보 1호를 묻고, 문화재청은 왜 국보 1호 숭례문을 복원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인가.

국보 지정 번호제 해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문화재 지정번호제 폐지에 대한 의견은 찬성 57.4%, 반대 25.9%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대로 국보 번호가 해지된다면 우리에게 국보 1호는 영원히 숭례문으로 남는다. 일본도 국보 번호를 폐지하였지만 지금도 일본 국보 1호가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라고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출처 : 본인 촬영

 

필자가 재직 중인 문화재제자리찾기에서는 한글날 제569돌을 맞이하여 국보1호 숭례문 해지 및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 1호 지정 진정서를 지난 7일 청와대에 제출했고 작년 11월 11일부터 1월 11일까지 받은 12만 명과 함께 보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돈이 많이 드는데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거나 ‘다른 문화재는 안 중요해서 국보 1호가 아닌가’라는 댓글을 달았다.

우리는 돈이 없어서 국보 1호를 변경하지 못 하는 게 아니다. 돈이 없어서 못한다면 문화재청이 모든 국보 번호를 없애겠다고 검토하는 일은 바보 같은 짓이 아닌가. 국보 1호를 변경하지 않는 것은 우리에게 정말로 소중하고 우리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을 국가의 상징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다른 문화재는 안 중요해서 국보 1호가 아닌가라는 이야기도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석굴암이 국보 1호가 된다면 국민 모두를 아우를 수 있을까? 숭례문이 국보 1호로 유지된다면 통일된 한국에서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남과 북, 해외동포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한글, 그것이 만들어진 원리를 적은 훈민정음 해례본이 국보 1호가 된다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지 않을까?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일제가 지정한 국보 1호가 아니라 우리 고유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이 국보 1호가 되길 기원해본다.



2014년 11월 11일 오전 11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훈민정음 국보1호 지정을 위한 10만인 서명운동’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동안 한글관련 단체가 같은 주제로 서명운동을 벌였으나 번번이 실패한 운동에 문화재 관련 단체가 도전한 것이다. 문화재 관련 단체가 주장한 내용은 ‘숭례문이 국보1호로써 자격이 있느냐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1996년 김영삼 정권, 2005년 노무현 정권에서 추진했던 국보1호 숭례문과 국보70호 훈민정음 해례본의 번호를 교체하려 했던 정책을 다시 추진하자.’였다. 


서명운동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진행됐는데 국민의 호응을 얻어 서명운동 마감일인 2015년 1월 11일까지 총 11만 8405명의 서명을 받은 것으로 종료됐다. 두 달이라는 시간동안 학생, 주부 및 정치인까지 많은 이들이 호응한 서명운동으로 조명 받았다.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서명운동 종료 당일 저녁에 문화재청은 보도 자료를 배포해 국보 및 보물 등의 번호를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국가문화재 관리 체계 재조정을 위한 기본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국보 번호를 폐지하는 것을 전제로 여러 가지 안을 마련한 뒤 공청회 및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안을 결정한다고 한다.

 


서명은 국보1호 숭례문과 국보70호 훈민정음 해례본의 번호를 바꿔달라는 운동이었는데 문화재청은 왜 모든 국보 번호를 폐지하겠다고 나선 것일까?


문화재청은 국보 1호는 단순한 행정관리 번호이지, 국보의 가치가 으뜸이란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국보1호와 국보70호의 번호를 바꿀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문화재청이 말하는 변명에 불가하다.


국보 1호가 무엇인지는 초등학생도 다 알고 있다. 그 이유는 교과서에 수록하여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국보 1호가 무엇인지 묻는 문제는 외국인이 한국에 귀화할 때 보는 시험에도 등장하고 있으며 문화재 해설 및 관광 관련 자격시험 문제 등 역사와 관련된 시험에 단골문제로 출제되고 있다. 또한 2008년 숭례문 화재 당시 언론은 ‘국보1호’가 불에 탔다고 집중 조명했으며 2013년 숭례문 복원 당시 문화재청에서 ‘국보1호’를 복원했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미 국보1호는 대한민국 문화재의 대표자리를 부여받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문화재청은 말한다. “단순한 행정관리 번호를 국민들이 문화재 중요도 순위로 오해하고 있어서 생긴 일이다.” 그러나 이것도 문화재청이 매번 말하는 변명에 불과하다. 당장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국보2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라고 물어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답하지 못한다. 국보를 문화재 중요도 순서로 인식했다면 국보 5호까지는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국보1호 숭례문을 국민이 기억하는 이유는 1호의 상징성 때문에 그것이 문화재를 대표하는 상징이자 표상이 됐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의 논리적 모순이 드러나는 지점은 1996년과 2005년. 정부가 국보1호와 국보 70호의 번호 교체문제를 진행했다는 것으로 이미 드러나 있다. 국보1호의 상징성은 이미 예전부터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던 사안인 것이다.


두 차례 실패한 정책 이야기가 2015년, 다시 수면위로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2015년이 광복 70주년을 맞는 해이기에 일제잔재를 청산한다는 의미와 최근 복원된 숭례문이 부실과 비리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 국보 자격 박탈문제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숭례문은 1934년 조선총독이 보물1호로 지정한 문화재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한양의 교통흐름에 방해된다며 아다치 겐조우가 숭례문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고 하세가와 요시미치 조선군 사령관은 대포로 쏴서 파괴하자라고 주장했다. 이에 일본인 거류민 단장이었던 나카이 기타로가 숭례문 폭격을 반대하고 나섰다. 그가 반대한 이유는 숭례문은 가토 기요마사가 임진왜란 당시 한양에 입성한 문이므로 남겨 놔야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조선침략의 증거로서 숭례문은 살아남았고 임진왜란 당시 고니시 유키나가가 한양으로 들어온 흥인지문도 살아남았다. 그러나 식민통치에 의미 없는 돈의문, 소의문, 혜화문 등은 철거당했다.


그 후 1934년 일제는 조선보물고적명승기념물 보존령을 제정하여 보물1호는 숭례문, 보물2호는 흥인지문으로 정했다. 국보1호 숭례문이 일제잔재라고 비난받는 이유가 이것이다.(당시 일제는 조선은 식민지이기에 국보번호를 부여하지 않고 보물 번호를 부여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또 변명한다. 국보지정 당시 이 문제가 거론됐지만 보물에서 국보로 격상시켰기에 일제잔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제는 보물 지정 당시 고적도 지정했는데 당시에 고적 1호로 지정한 문화재는 경주 포석정이었다. 일제는 교묘하게 보물과 고적에 망국의 의미를 담은 문화재를 1호로 지정한 것이다. 보물을 국보로 격상시키며 일제잔재를 털어냈다면 고적1호는 왜 그대로 지정한 것일까? 숭례문은 일제잔재가 아니기에 국보1호 자격에 문제가 없다고 말할 때마다 나오는 문화재청의 논리 없는 변명일 뿐이다. 


문화재계에서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문화재와 관련하여 일하고 있는 지식인은 모두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집착 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행정관리 번호일 뿐인데 잘 모르는 국민들이 오해한 것이다라며 이야기 할 때마다 그들은 왜 상징과 표상은 이해하지 못하는지 의아할 뿐이다.

 


현재 국보에 번호를 부여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북한 밖에 없다. 해외사례 중 국보에 번호를 부여하는 경우가 없고 일본도 최근에 없앴으니 우리도 없애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필자는 이 의견에 반대한다.


우리는 우리를 나타낼 수 있는 쉽고 간편한 방법을 갖고 있다. 바로 문화재 국보번호 시스템이다. 이러한 좋은 상징 제도를 왜 없애려하는가. 우리를 나타낼 수 있는 문화재로 훈민정음 해례본을 하겠다며 국민들이 지지하는데 번번이 문화재 위원회만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상징과 표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재위원들이 있는 한, 국민의 여론을 무시한 채 고집과 아집으로 버티는 문화재위원들이 있는 한, 문화재계는 절대로 발전할 수 없다. 또한 대한민국을 상징할 수 있는 좋은 체제도 잃어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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