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없음. 추후에 영화를 볼 예정이라면 마음 놓고 읽어도 무방함 ※)

 

*글을 쓰는 두 번째 자세

 

장수상회를 보면서, 그리고 보고 난 후에도 굉장히 많은 생각들이 중첩되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를 볼 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나로서는 생경한 경험이기도 했다. 물론 울지는 않았다. 그래도 눈가는 아마 미세하게 떨렸을지도 모른다. 가족 영화는 그래서 불편하다. 감정이 담긴 통을 마구잡이로 흔들어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원래 색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리게 만드니까. 나와는 대조적으로 함께 영화를 본 친구는 웃었고, 울었으며 웃었다. 감정이 참 솔직한 친구다. 엔딩 크레딧을 응시하던 그는 이제 갓 1년 정도 지난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이 많이 났을만한 그 영화를 보며 괜찮다, 라고 했다. 정말 괜찮은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붉게 물든 코를 보니 문득 그의 조모상에서 본 그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검은 상복을 입은 그가 그런 코를 한 채로 와 줘서 고맙다고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장수상회를 보고 나서 나는 문득 그와 내가 만난 장면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 영화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런 영화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묘한 영화.

 

지금 아마 첫 문단을 보며 ‘어, 지난번하고는 좀 다른데.’하고 몇몇은 생각했을 법하다. 그리고 글쓴이가 그 사람이 맞는지도 다시 한 번 봤을지도 모르겠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사실 나는 이런 감성적인 글을 지향하는 인간이다. 물론 역설적이게도 영화를 볼 때는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려 노력하지만. 나는 영화를 고를 때에도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고르고, 평가하는 스타일이 있다. 그리고 사람이 각기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아 입고, 그 스타일을 살리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나는 그 영화에 맞는 글을 써보려고 노력한다. 지난번에 투고한 영화 <화장>에 관한 글은 그 노력의 일환으로, 나는 꽤나 진지체로 그 글을 써보려고 노력했다. 아무래도 삶과 죽음에 관한 글은 가벼울 수는 없는 이야기니까 나는 나름대로 그 글의 스타일에 만족했다. 물론 모든 이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다른 의견이 있다면 겸허하게 수용한다. 그러나 맨날 같은 옷을 입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나는 한 번은 클래식하게, 한 번은 캐주얼하게 글을 코디할 예정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그 연습의 일환이라고 보면 되겠다.

 


* 눈이 가는 노년의 로맨스, 성칠-금님 커플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서, 영화를 보고 빠른 시일 내로 글을 쓰겠다던 다짐과는 다르게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물론 그 와중에 많은 일들이 있었고, 나름대로 많은 일들을 마무리했지만 이상하게 이 영화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은 쉽게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뭔가 진지하게 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거운 영화는 아니었으며, 킬링, 힐링타임 만들고 오라고 추천할 정도로 가벼운 영화도 아니었다. 많은 영화들이 그러하듯 이 영화 역시 우리들의 삶, 가족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래서 어려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혹자들은 신파극의 성공 맛을 본 배급사가 또 찍어낸 릴레이 신파극, 너무 많은 것을 넣어서 실패한 영화라고도 평했으나 나로서는 감정선을 건드린 이 영화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장수상회에서 일하는 노인 성칠의 첫사랑이 이뤄질 수 있도록 마을 사람들이 도와준다는 내용이다. 물론 이면에는 성칠이 재개발에 찬성할 수 있도록 금님이라는 인물을 통해 미인계를 쓰는 마을사람들의 이야기도 있기는 하지만 주축은 성칠의 러브스토리다. 아마 이 점이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호기심과 의문을 남겼을 법하다. 보통 러브스토리라고 하면 젊은 층의 소유물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매체에서 등장하는 젊은 청년의 사랑은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로 포장되는 반면 중년이나 노년의 사랑은 불륜, 재산다툼, 새엄마 등과 같은 부정적인 키워드를 떠올리게 하는 것을 봐도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매체에서 이들의 사랑은 비밀스럽고, 은근하게 다뤄진다. 하물며 가장 끝 부분에 위치한 노년의 로맨스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물론 아닌 경우를 배제할 수 없으나 많은 경우 그들의 로맨스는 ‘남사스럽다’라는 표현의 장벽에 막혀 적극적으로 표출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대놓고 노년의 로맨스를 다룬다. 물론 그들의 사랑에 있어 걸림돌이 될 요소는 없다. 배우자가 없는 상태(금님의 경우)이거나 배우자가 한 번도 없었던 상태(성칠의 경우)이기 때문에 그들의 사랑에는 장애물이 없다. 자녀의 반발이 약간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나, 이것은 잠시일 뿐 이들의 로맨스는 환대받는 느낌이 더 강하다. 실제로 감독은 한 매체에서 노년의 사랑을 다루는 영화가 걱정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오히려 잘 안 쓰이는 소재가 될 것 같아 신선했다고 답했는데 그 답이 참 적절했다고 본다. 쉽게 볼 수 없는 것에는 보통 눈이 먼저 가기 마련이다. 쉽게 볼 수 없는 노년의 사랑이, 거기에다 영화의 주축을 이루는 소재로 나왔으니 눈이 안 갈 수가 없지 않은가.

 

민성-아영 커플과 더블데이트를 즐기는 성칠-금님 커플

 

그리고 사실 어느 세대든 사랑은 삶을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언젠가는 중년과 노년이 되어도 그들은 사랑할 때만큼은 다시 청년이 된다. 칠성 역시 마찬가지다. 까칠하고 꼿꼿한 70대의 노인이었던 그는 사랑을 하며 점점 변하기 시작한다. 장수의 딸인 아영-민성 커플과 더블데이트를 즐기며, 그는 본격적으로 노년의 로맨스를 시작한다. 노년의 로맨스는 관객의 눈길을 끄는데, 데이트 장면을 보면 성칠과 금님이라는 캐릭터에 다른 배우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그 이상 적합한 배우는 아마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무엇보다 그들의 그런 모습을 그 동안에는 미처 접하지 못했다는 것에 그 의외성이 있다. 성칠 역을 맡은 배우 박근형은 그동안 로맨틱한 노신사, 혹은 근엄한 노신사로 많이 등장해왔다. 최근에 등장했던 예능에서의 모습이나 드라마에서의 모습을 보아도 그렇다. 금님의 역할을 맡은 윤여정 또한 비슷한 입장이다. 그 동안 집안의 억척스러운 엄마, 가장에 순응하는 엄마와 같은 이미지로 등장해 로맨스물에 어울리는 인물인가에 대한 의문이 일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웬걸, 두 사람의 케미는 정말 의외인 것처럼 느껴진다. 깐깐한 노인으로 변신을 시도했던 박근형은 영화 전반을 지나며 로맨틱한 노신사로 변해가고, 그 옆에서 금님은 더할 나위 없이 고운 여인이 된다. 그들의 데이트는 장수의 딸인 아영과 민성의 데이트만큼이나 싱그럽다. 로맨스가 청년들만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들의 데이트는 청춘이다.

 

놀이공원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성칠과 금님


추가적으로 말하자면 감독은 인물 캐스팅을 하면서 성칠과 금님의 역할에 대해서 고민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의 캐스팅은 적중해서 그들의 모습을 본 관객들이라면 확실히 이 이상의 캐스팅을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과정, 그 속에서의 이웃 그리고 가족

 

칠성이 로맨스를 시작하며 부드러워짐에 따라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도 점차 부드러워진다. 이런 그의 변화에 마을사람들은 칠성의 로맨스를 도우며 점점 하나로 뭉친다. 물론 여전히 이면에는 재개발 문제가 엮여있지만 뭐 어떤가. 어쨌든 그들의 조화로운 모습은 유쾌하게 혹은 우스꽝스럽게 나타나며 관객을 웃음 짓게 만든다. 현실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해도 그 친화되는 과정이 참 인상 깊었다. 무엇보다 인간적이었다는 점에서 더 그랬다. 인간적, 얼마나 살가운 말인지 모르겠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같은 건물에는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전혀 알 수 없는 현재적 시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내가 예전에 살던 동네는 옆집, 뒷집 가족이 몇 명인지, 어느 집의 손주가 무슨 상을 탔는지도 알 수 있을 만큼 친밀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여름이면 이웃끼리 모여 집 앞에 돗자리를 펴놓고 수박을 쪼개 나눠먹기도 했다. 어디 먼 시골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시에 있었던 어느 동네의 이야기다. 그런 동네에서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인지 영화 곳곳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참 반갑고, 친근하게만 느껴졌다. 그 중에서 누가 제일 친근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마트 직원인 제갈청수를 꼽고 싶다.(사실 자갈치라고 그를 지칭하고 싶다. 성칠은 그의 이름을 종종 까먹고 그를 자갈치라고 지칭했기 때문이다.) 그의 높은 목소리와 수다를 떠는 모습은 어디에나 있을법한 캐릭터이기도 했고, 그의 오지라퍼(오지랖을 떠는 사람)적 특성은 관객을 폭소하게 만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의 캐릭터가 오지라퍼였기 때문에 더욱 인간적이고, 매력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외의 인물들도 이웃으로 두고 싶을 만큼 친근하다. 성칠의 로맨스를 돕는 마트 사장 장수나, 성칠을 위해 손님의 양복을 몰래 빼서 다려주는 치수와 같은 인물은 얼마나 코믹하면서 인간적인가.

 

성칠과 금님의 만남을 응원하는 동네 사람들
(제갈청수는 왼쪽 상단부에서 두 번째 인물이다.)


이웃뿐만이 아니다. 장수와 장수의 딸인 아영, 금님과 민정과 같은 가족과 가족의 사이도 눈여겨봐야 한다. 가족들은 서로와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진정한 가족이 되어간다. 진정한 가족이라는 게 사실 어려운 게 아니다. 가족이어도 개인과 개인인 ‘나’와 ‘나’로 이루어진 관계가 ‘나’와 ‘너’로 인정되는 관계이다. 이런 가족 친화적인 요소는 이 영화가 가족의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볼 만한 영화로 손색없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더불어 이 인간적인 친화는 스크린을 넘어서 관객들에게까지도 물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서 가족 생각을 많이 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가장 큰 이유도 가족 생각이 났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다들 누군가를 떠올렸겠지만, 나는 성칠과 금님에 중점을 두고 보다 보니 외할머니 생각이 났다. 한때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꼬장꼬장한 성칠과 닮아있던 외할머니는 세월이 흐르며 점차 작아지고 중이다. 한 성격 하던 때와는 달리 외부에서 들리는 소리와 목소리가 작아짐에 따라 당신의 모든 것이 작아지고, 그런 당신을 나는 가끔 외면하지는 않았나. 문득 처음에 언급했었던 붉은 코의 그가 말한 것이 생각났다. 며칠 전까지도 할머니가 그렇게 가실 줄 몰랐었다고, 더 오래 계실 줄 알았다고. 그러고 보니 영화에서 금님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한다. 그들의 로맨스를 반대하는 민정에게, ‘우리에겐 이런 게 마지막일 수도 있어.’라고. 어쩐지 그 말이 여운이 남는다. 물론 나는 할머니가 더 오래 사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내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 수 있는 총 횟수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더 늦게 전에 할머니에게 종종 연락을 드려야겠다는 다짐을 해보는 것이다. 장수가 아버지의 곁을 늘 지켰듯이, 장수의 딸 아영이 할아버지를 의지했듯이, 그렇게 할머니 일상의 부분인 것처럼. 더불어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권유해본다. 내일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한 번 해보는 건 어떨지를.

 

* 스포일러를 할 수 없기에 비교적 가벼운 이야기로 대처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더불어 반전은 지켜달라는 장수씨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 사진출처 : 네이버영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