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휴대폰 전화번호부를 유심히 바라볼 때가 있다. ㄱ부터 시작해 ㅎ으로 끝나는 연락처 중 다짜고짜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마음에서다. 유감스럽게도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절반가량은 전화를 받은 뒤 당황할 가능성이 높다. 언제부턴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연락할 수 없는 부류의 사람들이 전화기 속으로 물밀듯이 들어왔다. 휴대폰에 저장된 이들은 하나같이 일상적인 사람들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상적인 일로 그들에게 연락할 수는 없다. 물론 그들이 처음부터 연락하기 껄끄러운 사람들은 아니었다. 별다른 고민 없이 연락처를 꾹꾹 눌러가며 저장한 건 어디까지나 나였으니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취업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게 되면서와 같은 이런저런 핑계로 일상적인 사람들을 기억에서 지운 건 나였다. 그러면서도 항상 특별한 사람을 기대하곤 했다. 전적으로 지지해주고 응원해주거나, 잘못된 길로 가는 걸 미연에 눈치 채고 조언해주는 사람. 하지만 그런 특별한 사람이 어느 순간 짠하고 나타날 리는 없다. 당연한 일이다. 다른 모든 사람들도 그런 방식으로 특별한 이를 찾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특별한 사람은 절대소수다. 그에 반해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람들은 주변에 넘쳐난다. 오늘도 나와 같은 일상인들은 일상적인 사람들 속에서 허우적댄다.

 

하지만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은 일상적인 사람들 사이에 숨어있다. 평소에 살갑게 느껴지지 않았던 친구의 눈물에 비극을 느끼기도 하고, 오랜 도전 끝에 결실을 맺은 친구의 성공에 진심으로 축하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 자연스러운 감정이 도화선이 되어 일상적인 사람은 특별한 사람으로 뒤바뀐다. 일종의 전복이다. 특별한 사람은 일방적이지 않다. 그가 나에게 특별하듯, 나도 그에게 특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지점에서 귀인오류에 빠진다. 나의 성공은 능력이고, 남의 성공은 환경 덕분이라는 식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특별한 사람에게만큼은 귀인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그의 성공은 어디까지나 그의 능력 덕분일 것이라 굳게 믿는다. 특별한 사람을 스스로와 동일시할 정도로 친밀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내게는 5살 때부터 10살까지 함께 자란 이웃집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유치원을 같이 다녔고,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같이 사진을 찍었으며, 매일같이 놀이터에서 놀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사를 가던 날 친구는 이삿짐을 가득 실은 차 뒤를 쫓아오며 연신 손을 흔들어댔다. 그때 이를 악물며 따라온 친구와 연락이 끊긴 지는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당시 차를 뒤따라오던 친구의 눈망울에 맺힌 눈물은 잊히지 않는다. 특별한 사람을 찾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누군가의 특별한 사람이 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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