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UN총회는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북한인권결의안은 2005년부터 UN총회에서 매년 채택되어왔으며, 2014년부터는 북한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도록 권고하는 강력한 조항이 추가되었다. 북한은 조사위의 활동이 인권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두고 있다며 북한인권결의안에 항상 반대해왔다.


북한 내 인권 침해 실태는 세계 어느 지역과 비교해도 덜 심각하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참혹한 수준이다. 인권 문제는 한 개인이 삶을 살아가는 문제이므로, 평화나 통일과 같은 거대한 담론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에 북한 인권 결의안을 자체적으로 결의하는 나라는 물론, 북한 인권법을 국내법으로 제정하며 북한 인권 문제의 개선을 외치는 나라도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2015년 6월 23일 유엔 북한인권사무소 서울사무소가 설치되어있으며, 국회에도 북한인권법이 계류되어 있고 이를 하루라도 빨리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북한 인권 문제의 모든 원인은 북한의 억압적인 정권에 있으며, 때문에 북한 정권을 강하게 압박하고, 그들의 존립 기반을 흔들어 위태롭게 할 때 인권 문제도 개선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노력으로 인하여 북한 인권 문제가 어떠한 형식과 방향으로든 개선될 가망은 없다. 정권에 대한 압박이 인권 개선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대해서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12월 10일, 처음으로 북한 인권 문제를 공식 안건으로 채택한 UN 안전보장이사회 ⓒUN


북한 인권 문제 개괄


북한 내 인권 침해는 권력층의 범위가 산정할 수 없이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권력층에 의해 일반 주민에게’ 이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의 권력층을 교체하거나 제거한다고 해서 북한 인권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없다. 북한의 권력층도 인권 침해에 대하여 분명한 책임이 있지만, 동시에 권력층을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체제적 특성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북한 인권 문제는 본질적으로 북한 체제에서 비롯된 구조적인 문제다. 인권 침해는 모든 사회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발생하는데, 북한 인권 문제가 심각한 근본적인 이유는 인권 문제를 유발하는 주체적 행위자가 북한을 지탱하는 체제 자체라는 점이다. 즉, 북한 권력층은 인권 문제에 있어서는 주체적 행위자인 동시에 체제에 관해서는 객체적 행위자다. 북한 체제 하에서는 북한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억압받는 피지배자인 것이다. 권력층이 객체적 행위자로서의 성질을 가지는 한 권력층의 변화가 인권 문제로 변화할 여지는 없다.


따라서 북한 인권 문제는 북한 내부의 정치적인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게 된다. 북한 체제는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주체’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부분을 뒤섞어 관리하며, 때문에 북한 권력층 또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다방면에 걸친 인권 문제(정치범 수용소, 식량권, 표현의 자유, 이주권, 성분 차별 등)를 생존·충성의 문제와 견고하게 결합시킨다. 북한 내적으로는 인권 문제가 이데올로기의 부분집합이다. 다분히 이데올로기적인 북한 인권 문제는 인권 문제의 주체와 객체, 즉 권력층과 일반 주민을 통해서는 쉽사리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며, 때문에 북한 권력층에게 인권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요구다.


▲ 주체사상이 지배하는 북한. 김일성의 혁명사상은 곧 주체사상을 의미하며, 그 누구도 이에 반기를 들 수 없다.


더구나 이런 접근은 판단의 기준조차 명확하지 않아 논리적 자가당착에 빠질 위험도 있다. 예를 들어, 김정은 시대 북한의 경제적 상황은 과거에 비해 호전되었으며, 이제 굶어죽는 사람은 없다(실제로 IMF나 한국은행조차도 김정은 시대의 북한이 매년 플러스 성장을 하고 있고 보고한다). 그렇다고 북한이 인권을 위해 힘쓰는 국가라고 할 수 있는가? 혹은, UN의 북한 인권조사위원회가 북한 내부에 들어가 북한 인민을 인터뷰할 때, 체제에 완벽히 순응한 인민이 북한 내부에는 아무런 인권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면 실제로 북한 인권 문제는 없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의 대답이 ‘아니오’라는 것은, 질문이 문제의 본질, 즉 인권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포함하지 않고 현상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인권 문제 자체에 접근할 때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현상이 아니라 본질을 바라봐야 한다. 본질은 앞서 언급했듯 북한의 체제다. 북한이 대대적인 경제제재 속에서 경제 성장을 이루어나가며 효과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효과적인 제재나 압박은 없다. 가장 반인권적인 군사적 갈등, 즉 국지적 전투나 전면적인 전쟁을 기획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북한 정권이 잘못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북한에서 벌어지는 반인륜적 범죄는 명백하다. 그러나 북한 인권 문제가 상당히 고질적이며 복잡한 문제인 만큼, 접근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하지만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목소리는 북한 정권 규탄에서 북한 정권 해체 기도로밖에는 다뤄지지 않고 있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접근에서 체제적 특성은 간과되고 있는 것, 즉 현상에만 집중한 피상적인 접근인 것이다. 때문에 아직까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성숙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 북한 3대 세습을 규탄하는 시민단체 ⓒ오마이뉴스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길


인권의 보장은 생명권(정치·시민·종교적 권리)과 생존권(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동시적 보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결코 어느 것이 다른 것에 우선하지 않는다. 북한 인권 문제의 책임을 북한 정권에 묻는 것은 곧 생명권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경제적 체제가 경제적 상황을 개선·퇴보시킨다는 명제와, 국가 내 모든 주민 간 일정 정도의 경제적 평등성이 체제적 변화의 필요조건이라는 명제가 대립하고 있는 모습에서도, 어느 한 편이 절대적으로 중요하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이 인권 개선을 위해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주민의 생명권을 개선해줘야 한다는 논리가 있다면, 마찬가지로 생존권을 개선해줘야 한다는 논리 또한 설 수 있다. 이 두 명제를 바탕으로 정책을 세우는 일은 정책적 명분과 현실성을 고루 고려해서 단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시민이 어떤 방식으로든 북한 인권을 위한 일을 하는 것과, 국가 정부가 나서서 하는 것은 다르다. 북한 인권의 개선을 위해 소리 높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므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정부는 한 마디 말을 할 때도 그 파급력을 염두해야 하며, 어떤 언행을 할 경우 그 언행이 앞뒤가 다르거나 문제의 본질을 흐리지 않아야 한다. 북한 인권 문제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복잡한 가운데, 정부가 북한 인권의 개선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정말로 북한 인권이 개선될 수 있도록 움직여야 한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 북한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나라는 같은 민족이라는 특수성을 갖는 남한이다. 또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남한이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은 북한에 대한 언행의 영향력을 높이는 일, 즉 남북 관계를 긴밀히 엮어가는 일이다. 앞서 언급했듯 북한 인권 문제는 북한 내부에서 정치 체제의 하위적 위치에 있는 부분적 요소로, 남북 공동의 노력으로 북한 인권 문제를 개선해나가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남북 간 정치적 관계 개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늘 명시해야 할 점은 북한이 정치와 인권을 묶어 다룬다고 해서 남한도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남한 또한 인권과 정치를 묶어 다루면-인도적 지원은 지속하겠다는 의지가 있다고 하더라도-북한 인권 개선에 악영향만 끼친다는 사실은, 정치적 관계 악화가 대북 인도적 지원마저 대폭 축소시킨 5·24조치를 통해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전략적 신뢰


남북의 정치적 관계 개선이 인권 문제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명제의 가장 큰 근거는, 정치적 관계 개선으로 말미암아 전략적 신뢰를 구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서 신뢰는 국제 외교에서 반박이 불가능할 정도로 가장 기본적인 신뢰구축(Confidence Building)이라는 정책에서 가져온 것으로, 남북 간의 평면적·일상적 신뢰가 아니라 전략적·관계적 신뢰를 의미한다(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빛 좋은 개살구이자 레토릭 정책의 대표적인 예가 되었다).


전략적·관계적 신뢰를 구축하는 일은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무너뜨릴 수 없을 만큼 상호 관계를 긴밀히 연관·결합하는 것으로, 그 대표적 모델이 개성공단이다. 남북이 공동으로 투자·관리하는 개성공단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전쟁 위험을 크게 줄이는 안전장치였으며, 단연 남북 간 정치적 우호 관계를 바탕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남한이 대북 지원을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지원의 규모가 크게 성장할 때, 인권 개선을 위해 남한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 또한 넓어지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바야흐로 인간안보가 중시되는 사회이다. 인간안보 곧 정치·경제·군사적 안정은 물론 민주주의 사회, 이주권, 환경권 등을 포괄적으로 포함하며 안보의 개념을 인간에게 접목시킨 만큼, 인권 개념과 많은 부분에서 공명한다. 기존에 인간의 권리라는 틀에서 다루어지던 분야가 이제 ‘안보’라는 말로 새로이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인간의 권리가 더 이상 추상적이거나 아름답게만 다룰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라는 것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인권의 보장이 어느 정도까지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상한선도 없는 상황에서,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맹목적으로 변화와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공허하다. 북한 인권 문제의 진짜 문제인 ‘체제’라는 괴물과, 그 괴물을  현실적인 방법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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