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는 은폐하고 보수는 외면했던 개성공단의 진실

추재훈

도대체 왜 개성공단이 평화를 위한 안전장치란 말인가? 애초에 적지(敵地) 한가운데 협력적 공단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 오늘날 개성공단 존폐 여부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은 개성공단이 기획된 의도가 상당부분 숨겨져 있기 때문에 유발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성공단은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다. 하지만 개성공단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다는 명제 자체는 너무나도 불충분하며, 그 숨겨진 의도를 알고 있어야만 가능하다.


개성공단과 평화 혹은 안정 사이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론적·현실적 구상과 근거들이 숨어있다. 이를테면 전략적 요충지인 개성에서의 북한군 후퇴, 개성공단을 근거로 하는 한반도 국제경제지구의 가능성 확대 등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하고, 그래서 꼭꼭 숨겨질 수밖에 없었던 개성공단의 성격이 있다. 신자유주의다.


개성공단이 극도의 우파 자본주의적 기획의 결과였음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개성공단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가운데, 개성공단의 전략적 가치에 대한 논의는 전무하다. 이 때의 전략은 단순히 군사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개성공단은 햇볕정책이라는 급진적이고 좌파적인 정책의 산물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좌파·우파와 진보·보수라는 이념적 구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이 좌우와 보혁에 대한 왜곡과 몰이해가 만연한 사회기 때문인 탓도 있다.


▲ 정부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조치로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지난 11일 오전 경기도 파주 경의선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공단 입주기업 관계자들이 차량에 물품을 싣고 복귀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분단체제, 좌-우, 보-혁의 왜곡


개성공단을 이야기하기 전에 좌우와 보혁에 대해 간단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오늘날 좌파-우파, 진보-보수의 틀은 복잡하다. 그러나 핵심은 간단하다. 먼저, 좌파-우파는 결코 민주주의와 관련된 구분이 아니며, 경제적 지향성과 관련된 구분이다. 우파는 사익 중심의 자본주의를, 좌파는 공익 중심의 사회주의를 지향한다(여기에서 말하는 사회주의는 레닌이 기획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사회주의가 아니라, 소수 경제기득권의 횡포를 방지하고자 하는 사회주의 본연의 이념이다. 북한을 결코 사회주의국가라고 할 수 없는 이유다.).


진보와 보수의 경우, 진보는 보다 개혁적인 사람들, 보수는 보다 현상유지적인 사람들의 집합이다. 진보와 보수가 일률적으로 추구하는 이념이란 없으며 시대에 따라 변한다. 카이사르 시절 로마에서는 공화주의자들이 보수, 왕정주의자들이 진보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그런데 근대 이후의 세계는 영미식 자본주의 체제가 지배적이므로, 우파는 자연스럽게 보수로 귀결되었다. 마찬가지로 좌파와 진보 또한 연관될 수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20세기 말 공산권이 붕괴하며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런 사실에 입각한 채로 개성공단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다. 개성공단은 우파적 이념의 발현이다. 개성공단의 근본적인 작동 원리는 간단하다. 대한민국의 자본으로 북한에 공단을 짓고, 여기에서 나오는 이익을 남북이 나누어갖는 것이다. 북한은 노동력만 투입하고 인건비를 벌어들이며, 나머지 이익은 한국 기업이 갖는다. 경제적으로 봤을 때 신자유주의 다국적 기업의 돈 놓고 돈 먹기 전략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원리다.


▲ 지난 12일, 개성공단기업협회 대표들과 간담회를 가진 새누리당(左)과 정의당(右) ⓒ오마이뉴스


개성공단, 극도의 자본주의


따라서 이런 식의 공단이 커지면 커질수록 북한은 얻는 만큼 잃는 것도 커진다. 북한이 개성공단을 쉽사리 건드리지 않았던 것은 개성공단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성공단이 아직까지 북한에게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으므로 지금처럼 첨예한 갈등이 벌어졌을 때 개성공단을 버릴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즉, 개성공단은 더 커져야 했다. 가령 지금까지 개성공단에는 총 123개 기업이 입주해있었는데, 만약 1,230개 기업이 있었다면, 혹은 한미의 협조 하에 삼성이 들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남북이 구상한 대로 해주공단, 신의주공단까지 만들어지고, 나아가 함흥공단, 원산공단 등이 만들어져 몇 백만 명의 북한 주민이 한국 기업으로부터 월급을 받았다면?


대한민국 경제가 북한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커졌을지 짐작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지금 중국의 영향력과 맞먹거나 혹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북한 정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이 남북경협을 통해 천문학적인 세금을 거둬들이고 여기에 크게 의존할 만큼 대남의존도가 높아졌다면, 그래서 경협 중단이 정권 운영에까지 타격을 입힐 정도가 된다면, 지금처럼 남북경협 중단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 무작정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을 자행할 수 있을까?


우파가 보수와 교집합이 많고 좌파가 진보와 교집합이 많은 것이 현실이었다. 그렇다면 왜 햇볕정책과 개성공단이 자칭 보수세력에게 지탄받는가? 그것은 안보지상주의가 만연한 한국의 분단체제 때문이다. 경제적으로는 우파적 보수성을 지향하는 사람조차도 정치적으로 반공적·안보적 보수성에 매몰되는 분단모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예컨대 이것을 북풍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북풍이 향하는 곳은 이른바 좌파 혹은 종북이라고 이름붙여진다. 이곳에는 안보지상주의에 어긋나는 모든 사람들이 뒤섞여있는데, 진정한 의미의 우파도 예외가 아니다. 또한 상당한 국민들은 이를 믿는다. 개성공단은 경제적으로는 철저한 우파적 논리에 따르지만, 분단국의 왜곡된 정치지형 속에서 개성공단이 좌파적이라는 모순적인 비난이 생겨난 것이다.


▲ 개성공단 총계획(左, ⓒ용인시민신문). 계획은 2008년 이후 남북관계 악화와 더불어 중단되었고, 현재는 1단계까지만 진행되었다(右, ⓒ시사저널).


전장에서 시장으로


햇볕정책이 우파 자본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그게 전부인 것은 아니다. 햇볕정책은 남북의 경제적 협력에서 시작해 정치적 협력까지 이끌어낸다는 목표로 출발했다. 이를 기능주의라고 한다. 기능주의는 “자유로운 교역은 전쟁을 억지한다”는 칸트의 영구평화론이 모태가 되어, 현대 유럽에서 통합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1950년대 이후 유럽연합의 근거가 되었다. 즉 기능주의란 단순히 일상적·평면적 신뢰가 아니라 기능적 협력을 통한 관계적·전략적 신뢰의 구축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유럽은 기능주의적 사고에 따라 각종 경제적(기능적) 협력을 펼쳐나가면서 1958년에 유럽경제공동체(ECC)를 만들고, 이를 1967년에 유럽공동체(EC)로 발전시키고, 마침내 1991년 유럽연합(EU)을 출범시킬 수 있었다. 오늘날 유럽은 경제위기에 고전하고 있지만, 위기에 맞서 더욱 전향적인 통합을 위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세계대전 후 어수선했던 유럽이 통합되는 과정을 벤치마킹한 정책이 햇볕정책이며, 그 속에서 설계된 결과물이 개성공단이다.


그런데 남북은 유럽과 크게 두 지점에서 차이점이 있었다. 첫째로 유럽의 전반적 경제격차에 비해 남북 경제격차가 훨씬 심하다는 점, 둘째로 유럽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라는 안보협력체가 1949년 먼저 만들어져 있었던 점이었다. 남북 경제격차는 유럽 통합이 진행되던 때 유럽 내부적 격차보다 훨씬 심하므로 한국 자본이 북한에 투입되면 될수록 북한의 경제적 종속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남북의 첨예한 군사적 대립은 경제협력의 심각한 제약이었으며, 따라서 경협은 군사대립을 약화시킬 수 있도록 보다 전향적으로 시도되어야 했다.


▲ 유럽공동체(EC)는 1991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통해 EU(유럽연합)으로 출범했다. ⓒAPF


시장에서 광장으로


대한민국이 햇볕정책 구상을 처음 내놓았을 때 북한이 격렬하게 반대한 것은 이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고민했던 부분도 이 부분이다. 두 정부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을지 몰라도, 햇볕정책은 본질적으로 북한 경제의 한국에 대한 예속을 심화시키는 극도의 자본주의 정책으로 발현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두 정부는 햇볕정책이 평화를 위한 정책이 될 수 있도록 경제적 팽창주의로 비춰질 수 있는 언행을 최대한 삼가고, 사회적·문화적 협력을 병행하며 정치·군사적으로도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힘썼다.


그 결과 역사, 학문, 예술, 종교, 스포츠 등 수많은 분야에서 남북 협력이 이루어졌고,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을 걷고 있는 최근까지 만월대 공동 발굴 등의 협력을 지속할 수 있었다. 북한은 같은 노동력을 투입했을 때 남북경협보다 북중경협에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지만 개성공단을 더 전향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햇볕정책이 자리잡기 시작한 2003년 이후 대남도발은 없었으며, 공교롭게도 햇볕정책이 멈춘 2008년 이후 북한은 대남도발을 자행하기 시작했다(이 지점에서 핵 문제는 분명히 북한의 책임이 크지만, 단순히 남북 간의 문제가 아니라 항상 동북아시아 및 세계 전체의 문제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논의가 바탕이 됐을 때 개성공단이 남북 안정과 평화에 기여한다는 명제는 비로소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햇볕정책이 신자유주의적 정책이고, 개성공단이 그 결과물이라는 이유로 비판하고자 함은 아니다. 신자유주의가 여러 문제점을 야기하는 것은 사실이며 또한 그것이 제도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앞서 살펴본 대로 신자유주의를 통해 최소한의 안정적 남북관계를 일구어낼 가능성은 있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식의 사고가 불만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우리나라의 왜곡된 정치지형에 의해 개성공단이 이상한 오해의 온상이 된 현실이다.


오늘날 북한문제와 관련해 중국역할론과 중국책임론이 나오는 이유는 중국의 대북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북한의 대외교역 중 대중교역이 90%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자기 스스로는 아무런 전략적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중국이 북한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이에 반해, 지금은 중국이 전유하고 있는 대북영향력을 대한민국이 스스로 갖고자 기획된 것이 햇볕정책이었다. 또한 그 영향력을 최대한 평화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것이기도 했다. 남북경협이 늘어났다면 우리가 지금과는 달리 주도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남북이 함께 일구어낸 성과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현 정부도 강조하는 신뢰와 평화라는 원칙에도 위배되지 않는다. 개성공단은 결코 헛된 공상이 아니다.




 

4.13 총선이 코앞이다. ·야 가릴 것 없이 각 정당들은 선거대책위원회 구성, 예비후보 공천 심사, 그리고 앞 다투어 외부인사 영입 추진 등 총선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 124일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하나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다음 20대 국회의 비례대표 의원 정수를 현행 54석에서 47석으로 줄인다는 골자였다. 당장에 합의한 두 정당 이외에 비례대표로 원내 진출을 희망하던 소수정당들의 눈앞에 빨간불이 켜졌다.

 

 

<ⓒ레디앙>

 

 

현재 19대 국회의 총 의원수는 300명이다. 이 가운데 새누리당이 156, 더불어민주당이 116석을 차지하고 있다. 전체 의석 중 두 정당이 차지하는 비율을 따져보면 무려 약93%나 된다. 반면에 소수 진보정당들 중 정의당만 그나마 5석을 갖고 있으며, 그 외 노동당과 녹색당은 단 한 석도 없는 원외정당 신세다. 이 중 정의당은 새누리, 더민주와 함께 원내정당 위치임에도 원내 교섭단체 자격 기준인 의원수 20명에 미달이라 교섭권이 없기 때문에 보수양당으로부터 무시 받는 처지에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가 복수정당제, 즉 다당제를 추구하고 있다지만, 현실적으로 양당체제와 다름없는 정당구조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지역주의와 인물, 계파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보수적인 정치문화에서 소수정당으로서 원내에 진출하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특정 정당의 과반의 의원 구성에 따른 다수당의 횡포를 미리 막고, 소수정당의 원내진출을 도모하고자 마련한 장치가 바로 비례대표제다. 현행 비례대표제는 총선에서 3% 이상의 정당지지율을 얻어야만 그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 1순위인 사람에게 비례대표 의원직을 부여한다.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 지역구에서 의원을 5명 이상 당선시켜야 지역구 의석 비율에 따라 비례대표직을 배분받게 된다.

 

그런데 현행 비례대표제는 소수정당에게 불친절하단 점 외에 또 큰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사표'의 가능성이다. 우리나라에서 소수정당의 경우 지역구에서 승리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실정이다. 일단 새누리와 더민주 양당의 견고한 경쟁구도 속에서 지지도가 턱없이 부족할뿐더러, 정당과 후보 개인의 열악한 재정상황으로 막대한 선거자금을 조달하기란 더욱더 힘들다. 때문에 결국 소수정당의 입장에서 비례대표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당장에 지지율도 3% 받기 힘든 마당에 정당득표율 3%를 얻으려 한다는 것 역시 큰 벽에 부딪치게 돼있다(3%가 당장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투표자 수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한 숫자가 된다). 다시 말해 정당득표에서 어느 정당이 최종적으로 3% 미만의 득표율을 기록할 시 던져진 그 표들은 전부 사표, 즉 '죽은 표'가 된다. 어느 한 유권자가 소신껏 소수 정당에 투표 하고 싶어도 만약 3%가 넘지 않으면 나의 표가 무용지물이 되지 않을까란 두려움 때문에 선뜻 투표하지 못 하는 현상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렇듯 소수정당은 도저히 살아남기 위한 돌파구가 없는 정치선거제도 현실에 놓여있다.

 

지난 2015년 초 국회는 선거구획정 관련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헌법재판소가 선거구별 인구 차이에 따른 투표가치 불평등 문제에 대하여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여기서 함께 거론된 제시안이 바로 비례대표제에 대한 개혁 작업이었다. 선관위는 이에 연동형비례대표제 방안을 처음 제시했고,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적 소수정당들이 주도적으로 이를 주장해오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현행 비례대표제가 단순히 정해진 비례대표 전체 의석수(현행 54)에서 득표율을 따져 비례대표를 배분했었다면, 그와 다르게 총 300석의 의석에서 정당득표율에 따라 고스란히 비례대표직을 배분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는 절대적으로 소수정당이 원내에 진출하기 유리한 제도로 여겨진다. 혹여나 지역구에서 아무런 성과가 없을지라도 현행 의석수를 전제하에 정당득표율을 단 0.5%만 기록해도 1명 이상의 의원을 배출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최근의 전국선거였던 2014년 지방선거에서 소수정당들의 각 정당득표율을 보자면 정의당은 3.52%, 노동당은 1.25%, 녹색당은 0.84%. 현행 비례제도로 계산하면 유일하게 정의당만이 고작 1석을 얻을 수 있는 초라한 기록이다. 하지만 이때의 각 정당득표율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입해보면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은 각각 무려 10, 3, 2명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 있다. 겨우겨우 정당득표율 3% 이상을 얻어야 비례 의원 1명을 얻을 수 있던 것에 반하여 얼마나 놀라운 효과이자 결과인지 눈여겨보게 된다. 

 

 

 

<‘6대 선거권역중앙선거관리위원회>

또 다른 방안으로 권역별비례대표제가 거론된다. 이는 더불어민주당이 현재 주장하는 것으로서 먼저 특정 권역별로 선거구를 나눈 다음, 국회의원 정수인 300명을 기준으로 해당 권역의 인구비례에 따라 각 권역별로 지역구 의원수와 비례대표 의원수를 더해놓은 할당된 총 의원 수를 배정한다. 그리하여 특정 정당의 득표율 결과에 따라 의석을 배분받는 제도다. 여기서 할당된 의원 수는 지역구 : 비례대표 = 2 : 1’의 비율이다. 예를 들어 서울(인구비례 약 20%)을 기준으로 인구비례를 하면 300명 의원정수 중 60명의 의원을 선출할 수 있다. 지역구 대비 비례대표 의원 비율을 2:1로 한다면 지역구 의원 총 40, 비례대표 의원 총 20명이 된다. 여기서 만약 어떤 정당이 서울 권역에서 20명이 당선되고, 40%의 정당득표율을 기록한다면, 원래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받을 24명의 비례 당선자 중 지역구 당선자 수(20)를 뺀 나머지 4명만 비례대표직을 배분받게 되어 총 24(지역구20+비례4)의 의원을 얻어가는 방식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시행하면 연동형보단 미비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소수 정당에게 역시나 기회를 줄 수 있고, 또 호남에서 새누리당이, 반대로 영남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비례대표 의석을 얻는 등 지역구도를 완화하는 데 도움 될 것이라 선관위 역시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계속되는 여·야의 협상 파행 소식에 정의화 국회의장까지 나서 선거구획정 및 비례대표확대 합의 촉구의 성명을 냈지만, 소수정당 야당의 득세가 실현될 것이 두려워서인지 새누리당은 그마저 무시한 채 전면 반대하고 나섰다. 자신들의 과반 의석수가 깨질 것이 우려되니 반대한다는 노골적인 언사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개혁하기 좋아하면서 정작 개혁당하기는 싫어하는 그 얄팍한 속내가 드러나보인다이렇게 정치 혁신을 뻔뻔히 거부할 수 있는 건 한국 정치사에서 이어져온 지역주의정치, 정당정치의 과두제, 제왕적 대통령제 등의 고질적인 폐단이 견고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점차 민주주의와 자유가 우리 생활과 의식 속에 깊숙이 자리함에 따라 다원화 시대가 도래했다. 사람들은 점차 계층별, 분야별로 각기 추구하는 바가 다양해지며 정치권력이 자신들의 더 나은 삶을 대변해주고 책임져주길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주류 정치세력들은 국민들의 삶보다는 위선과 권모술수의 정치로써 기득권 수호와 정권 획득에만 혈안이었다. 그게 다였다. 전보다 다양하고 세분화된 가치를 충족해주고, 또 사회적 문제와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정당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만의를 배제한 정치는 정치적 무관심층을 생산했고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넘어 전사회적인 신뢰와 연대를 깨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비례대표 확대를 위한 각 정당과 시민사회, 국회의원의 기자회견 모습 비례대표제포럼>

<왼쪽에서 두 번째부터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정진후 정의당 원내대표, 박원석 정의당 의원 정의당 트위터>

연동형(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로의 개혁은 그래서 필요하다. 비례대표제도 개혁은 먼저 보수양당의 독과점 체제가 쌓아놓은 정치적 진입장벽을 허물고, 사표가 줄며 비례성이 높아지는 데 크게 기여한다. 그리고 여러 소수정당들이 원내에 진입하여 정책으로써 경쟁하는 정치, 다양한 계급과 계층, 개인의 의사를 반영하는 정치의 환경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 또 이로써 정당정치의 활성화가 예견되는 바, 소수정당들의 주요 가치인 '탈핵', '노동', '복지', '실질적 민주주의', '평등', '평화', '생태', '인권' 등이 개개인의 정당 참여로써 조금 더 실현 가능해질 것이다. 연동형(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소수정당의 꽉 막혔던 숨통을 트게 해주리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암담하다. 앞서 말했듯이 새누리와 더민주, 보수양당은 비례대표제 개혁과 선거구획정의 합의 파행인 와중에 현행 비례대표 의원수를 줄이고 결국 본인들에게 유리한 지역구 의원수를 늘리는 게리맨더링을 저지르고야말았다. 여기서, 더민주는 도대체 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주장했는지 의아할 수밖에 없다. 또, 새누리는 직접 말만 안 했을 뿐, '지역주의를 좀먹으며 기생할 것'이라 공공연한 다짐을 한 셈과 진배없다. 이 밀실야합은 거대 보수양당이 정치문화 전반을 혼탁하게 만들고 결국 자신들의 기득권만 수호하려했다는, 유권자들의 비판을 결코 면치 못 할 것이다. 아마도 현대정치사에도 길이 남지 않을까 싶다. 우리 사회엔 경제민주화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정당정치, 선거제도의 민주화 또한 간절히 필요하다. 연동형(혹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개혁하는 정치혁신은 '숨통이 트이는 정당정치', '숨통이 트이는 사회'로 변화하는 움직임에 크나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 


4차 핵실험을 통해 보는 북한의 속사정


북한에도 진보적인 사람들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있다. 다만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북한이 왕조와 다를 바 없는 억압적 국가인 만큼 진보-보수의 스펙트럼이 협소하고, 또한 폐쇄적이기 때문에 잘 포착되지 않을 뿐이다. 북한의 진보적 인사들은 1945년 북한 정권이 수립된 이후부터, 이번의 4차 핵실험이 있기까지 나름의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그들의 존재를 염두에 둘 때, 지난 6일 이뤄진 4차 핵실험은, 북한의 핵기술이 수소폭탄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느냐 하는 문제보다 더 심각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사실 진보라는 단어를 콕 집어서 정의내릴 수는 없으며, 때문에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에게는 온건파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보를 ‘비교적 개혁적 성향’이라고 피상적으로나마 정의한다면, 북한의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점은 수령의 철학과 그것이 구체화된 주체사상이다. 말하자면, 주체사상에 가까운 것이 북한의 보수다(이러한 진단은 주체사상이나 북한 정치의 다층적 속성으로 인해 북한 정치지형을 정확히 짚어낸다고 할 수는 없다). 북한의 역사는 수령의 생각에 어긋나는 사람들, 즉 진보적인 사람들에 대한 숙청으로 가득하며, 그 결과 오늘날의 북한은 개혁을 극도로 꺼리는 국가가 되었다. 북한의 온건파는 다른 어느 나라의 진보세력보다 더욱 위험한 노선을 걷고 있는 것이다. 


수령과 주체의 의식에 철저히 복종하긴 하는 가운데, 그 안에서 조금씩의 변화를 바라보는 진보적인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해왔다.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은 운신의 폭이 좁지만, 그들은 한 가지의 방법을 통해 북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바로 수령의 변화를 돕는 일이다. 수령의 철학은 주체사상으로 구체화되었고, 조선로동당과 북한이라는 국가는 이를 철저히 옹호한다. 때문에 수령조차도 주체사상을 함부로 손바닥 뒤집듯 바꾸지는 못한다(97년 망명한 황장엽은 이를 두고, 10살짜리 아이가 수령이 돼도 북한의 체제는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른바 '수령을 따라 위대한 혁명의 위업을 달성한다'는 북한의 핵심 목표에 어긋나지 않는 한 그 방법론은 다양할 수 있었고, 바로 이 지점에서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은 영향력을 펼칠 수 있었다. 


▲영화 <암살>에서 조승우의 연기로 유명해진 독립투사 김원봉. 그는 김일성의 남침 계획을 반대했었으며, 1956년 김일성을 비판한 세력이 숙청되는 과정에 1958년에 실각되었다. 그 후의 종적은 알 수 없다.


이면(裏面)의 목소리


북한에서 진보-보수의 갈등이란, 곧 미제와 그 앞잡이 남조선에 대한 철저한 응징을 사이에 둔 온건파와 강경파 간의 갈등이고, 이는 때때로 경제파와 안보파의 갈등이기도 하며, 당세력과 군세력의 갈등이기도 하다(물론 북한 내부에 어떤 '파'는 존재할 수 없고, 이러한 구분은 대체로 합치될 뿐이다). 군부 강경파는 '조선반도에서의 공산주의 승리'를 위해 철저한 보수성을 표방할 수 있는 명분을 쥐고 있고, 그 틀 속에서라도 경제나 발전을 말하고 싶은 진보적인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명분이 없다. 이러한 구도를 뒤바꿀 수 있는 사람은 수령뿐이다. 수령이 경제나 발전에 관심을 기울이는 순간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은 자기의 능력이 닿는 한에서 인민 생활을 최대한 향상시키고자 했으며, 그 주요한 방법은 남한과의 경제협력일 수밖에 없었다. 최근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개성공단이다.


오늘날 개성공단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여기저기서 지탄을 받고 있지만, 개성공단이 개설되는 과정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개성은 평양과 서울을 잇는 주요도시로서, 북한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 중 하나다. 개성공단이 착공되기 이전 개성 지역에는 군단 규모의 북한군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김정일은 개성공단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개성공단 부지 근방에 있던 6사단, 64사단, 62포병여단을 10km 이상 후퇴시켰다. 남한으로 치자면, 파주 이북의 모든 부대를 고양·의정부 근처로 후퇴시키는 일과 맞먹는 일이다. 사실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남조선의 함정에 걸려드는 꼴"이라는 북한군 내의 강한 반발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 상당한 반대가 있었으리라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김정일의 개성공단에 반대한 강경파 다수가 당·국가의 요직에서 해임되는 사이,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은 경제·외교 등 다방면에서 능력을 펼칠 수 있었다. 자본주의적 시스템도 눈여겨봤던 박봉주, 개성공단을 중시했던 장성택, 8·25 합의를 이끌어낸 김양건 등이 무분별한 보수성과 거리를 둔 인물들이다.


▲지난 6일 평양 기차역 앞에서 핵실험 성공 뉴스에 환호하는(시늉을 하고 있는지 모를) 평양 시민들 ⓒ로이터


4차 핵실험이 당혹스러운 이유


지난 6일 북한이 자행한 핵실험은 그야말로 깜짝 뉴스였다. 핵실험이 이후 며칠 간 국제사회는 커다란 혼란에 빠졌다. 각국 언론을 장식한 '기습'이라는 용어가 이를 잘 표현한다. 북한은 핵실험 계획을 타국에 통보하기는커녕 실험을 카드로 하는 어떠한 외교적 처세도 하지 않았고, 관련된 언급이나 예고도 거의 없었으며, 심지어 신년사조차 핵 언급을 피했다. 정말로 수소폭탄실험이었나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의문부터 출발해, 왜 하필 지금 실험을 했고, 목적은 무엇이냐 하는 수많은 의문에 대해 여러 가설만 떠돌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가 정말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수소폭탄이었는지 김정은 생일(1월8일) 축하용이었는지 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 핵실험이 왜 기존 핵실험과 달리 당혹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느냐는 점이다. 국제사회는 1차~3차 핵실험에 담긴 북한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핵실험은 대개 [외교관계 악화→미사일실험→핵실험]라는 공식(?)에 따라 진행되었고, 북한은 이를 통해 대내적 결집과 대외적 경색국면 돌파를 꾀했다. 작년 10월, 북한 조선노동당 창건일 당시 "미사일을 쏘되 핵실험은 않을 것"이라는 식의 분석이 쏟아졌던 것도 공식이 나름대로 신빙성이 있었기 때문이다(당시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았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실험을 통한 국제외교전이 이와 같은 흐름에 따르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사전대응을 준비하는 한편 실험 후 대북제재와 같은 강경수로 즉각적인 대응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핵실험은 과거의 흐름과 전혀 합치되지 않으며, 무엇을 의도로 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중국에 대한 불만과 대내외적 독립의지를 표출했다는 식의 원론적 분석만이 가능한 상황이다. 다시 말해, 북한은 기존의 틀을 깨버린 것이다. 기존의 틀을 깨면서까지 북한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시간이 더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고, 어쩌면 영원히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첫째로 최고승인자가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바뀌었다는 점, 그리고 그의 곁에 이른바 온건한 사람들, 즉 북한의 외교에 합리성을 보태주던 진보적인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2013년 12월 8일(처형 4일 전), 조선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공개적으로 체포되는 장성택(左)과 2015년 12월 29일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된 김양건(右)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


언제나 그래왔듯 북한을 향한 모든 분석은 외부자의 시선(outsider's view)에서 머물러 있다. 외부자의 시선을 통해 북한은 뭉뚱그려진 단일한 집단 내지는 몸뚱아리처럼 포착되고, 관심은 '그 몸뚱아리를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로 수렴된다. 핵실험에 대한 분석이 한결같이 '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유다. 외부자의 '왜'라는 질문은 '목적이 무엇인가'에만 집중하며, '원리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은 배제된다. 분석이 북한 사회의 외피를 뚫고 내부로 들어가지는 못하는 것이다. 이는 여태껏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이라는 논의가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일본의 자민당과 민주당, 중국의 태자당과 공청단 등이 우리에게 익숙한 것처럼, 한 나라의 정치적 이념지평의 다양성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북한의 정치적 이념지평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협소하다. 그러나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은 수령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의 최대한의 다양성을 확보하고자 했고, 북핵위기와 같은 결정적 사안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으나 남북관계가 유지되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남북관계가 발전적일 때 그들은 북한에서 영향력을 펼칠 수 있었고, 이에 힘입어 수령은 개혁적 변화의 추동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4차 핵실험이 벌어진 지금,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디 있지?'라는 의문이 먼저 떠오른다. 2013년 처형된 장성택과, 2000년대 들어 공식적으로 세 번째로 교통사고를 당한 김양건이 언뜻 생각나는 이유다(북한에서의 교통사고는 항상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이 없다는 것은 김정은이 원하든 원치 않든 대남 강경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북한이 우리의 주적이든 협력대상이든, 핵문제가 남북 사이의 모든 문제를 집어삼켜버리는 블랙홀이 된다면 분단의 괴물은 한반도를 끊임없이 지배할 것이고, 통일은 전쟁으로밖에 이뤄질 수 없는 '죽음의 성물'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 안에는 평화로운 한반도와 평화로운 통일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북한에도 비록 우리와 생각은 다를지언정, 남북 대결구도를 타파하고 평화를 논의할 수 있는 진보적인 사람들이 있어왔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어야 할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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