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때 일입니다. 수학선생님이 4교시(점심 전 시간)에 수업이신 날에는 곧잘 “공부도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배가 고파서 되갔어?? 창자나 빨리 채우고 오라우” 하시면서 10분 일찍 끝내주셨습니다. 그땐 그 얘기가 귀에 들리지는 않았는데, 이제 와서 보니 제대로 밥을 먹은 적이 손에 꼽게 됩니다. 학교 때문에 혹은 알바 때문에 밥 대신 삼각김밥으로 때우는 게 거의 일상이 되었네요. 그렇게 끼니를 때우다보니 정작 나는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는지, 일을 하기 위해 먹는지 씁쓸한 고민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저만의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노동을 하는 모든 사람들. 더 포함한다면 학생도 낄 수 있겠습니다. 오래도록 인류는 계속 먹고 살려고, 정확히는 생존을 위해 작업과 노동을 해왔지만, 어째 요즘은 이것이 뒤바뀌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부 때문에, 일 때문에 우리는 본 목적인 ‘먹고 사는 시간’을 대충해도 되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닐는지 말입니다. 먹는 것뿐일까요. 놀 시간, 쉴 시간도 모두 같은 처지일 것입니다.



최근 올레(Olleh) 광고입니다. 광고를 보면서 제 일상과 오버랩이 많이 됩니다. 앞서 말한 제 푸념들, 정확히는 오늘을 살아가는 직장인들의 초상인 것 같습니다. 일을 하건, 학교를 다니는 모든 이들이라면 시간 때문에 뛰어보았을 테고, 저런 질문을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광고의 타겟으로 설정한 직장인의 상황을 ‘바쁜 이’, ‘시간이 없는 사람’으로 잡은 것 같습니다. 얄밉게도(?) 여기서 바쁜 우리에게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 상황을 제시하면서, ‘시간이 없는 이유’를 올레가 ‘자신이 더 빨라진 이유’라고 설명합니다. 15초라는 짧은 시간에 어떤 반박을 달기 어려울 정도로 논리적인 메시지입니다.

‘직장인은 바쁘다’라는 건 어느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아마 ‘시간이 없다는 것’도 바로 알 수 있는 사실이죠. 하지만 그 사실을 광고로 쓰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가 아닐 것입니다. ‘직장인, 그래 바쁘지...그래서 뭐? 우리 회사랑 무슨 상관인데?’의 물음 앞에서, 명확한 답이 있어야합니다. ‘직장인은 항상 시간이 없으니까, 우리 통신사 속도가 더 빨라지면, 그들이 다른 걸 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날 수 있잖아. 우리가 그 시간을 만들어주자’라는 답의 산물이 이 광고로 이어졌을 겁니다. 


그렇다고 저 질문에 모든 답이 정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상관성이야 찾으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소비자와의 상관성, 즉 팔 수 있는 접점을 강하게 말해야합니다. 그게 어렵다면, 적어도 소비자에게 ‘사고 싶은’ 이미지를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의 큰 무기가 저는 ‘공감’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겪은 감정을 남이 알아준다면 ‘사이다’처럼 속 시원한 쾌감을 느끼는 것처럼, 브랜드도 소비자가 겪은 상황이나 느낌을 광고에서 풀어내는 것이 광고의 핵심입니다. 


밥이 떨어졌을 때, 햇반(1997, CJ)


밥 얘기가 나왔으니, 밥 광고 하나 이야기해보겠습니다. CJ사의 햇반 다들 아실 겁니다. 한국인의 주식이 쌀밥이니, 간편하게 밥을 해먹을 수 있는 제품이 나오는 건 어쩌면 당연해보입니다. 근데 그렇다고 우리가 햇반을 매일 먹지는 않습니다. 집에 밥이 하나도 없을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제품인데요. 처음 햇반의 포지셔닝은 집밥의 대체제로 잡아서 어필했습니다.

‘간편하다'라는 컨셉의 포지셔닝은 잘 먹혔습니다만, 시간이 지나자 이제는 주부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독신이나 자취생들이야 상관은 없었지만, 가족의 밥상을 책임진 주부들에게 햇반은 그리 탐탁지 않았습니다. 물론 바쁜 일과를 보내는 주부의 입장으로서 밥이라도 해결할 수 있는 제품이 나온 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것, 좋은 밥을 가족들에게 먹이고 싶은 것이 어머니의 마음일 진데, 그냥 렌지에 돌려서 밥을 만드는 게 인스턴트 음식같이, 건성건성 밥을 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이에 CJ는 정면으로 돌파합니다. 


'미안해하지 마세요'(2008, CJ)


카피 하나로 주부들이 생각했을 고민을 꿰뚫었습니다. ‘미안해하지마세요’ 한 문장으로 주부의 공감부터, 브랜드의 품질까지 모두 담아냈습니다. 타겟의 집요한 분석이 빛을 발한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부의 일상과 고충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서는 만들어내지 못했을 광고입니다. 그런 오랜 생각에서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찾고 주부들을 설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햇반은 ‘엄마’라는 단어와 뗄 수 없을 정도로 연결고리는 잘 쓰고 있습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라는 말은 익히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라는 말이죠. 마케팅도 마찬가지입니다. 팔아야 할 소비자도 모르면서 우리 브랜드만 잘 났다고 얘기하면 제대로 팔릴 수 있을까요. 아마 표적 없는 화살이 될 것입니다. 표적, 즉 타겟을 잡은 계층의 라이프스타일을 깊숙이 분석하고 연구하여 공감할만한 소재를 찾아 브랜드와 연결하는 것이 마케팅 과정의 필수입니다. 공감만큼 소비자를 쉽게 설득할 수 있는 무기는 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모든 광고가 떠안고 있는 숙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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