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서구West of the Tracks>의 감독이 시골과 도시 세계 사이에서의 성장, 영화 교육과 다큐멘터리 훈련에 대해 말한다. 변화하는 중국의 민낯과 사회경제학적 법칙의 중력이 형성한 삶의 장대한 초상.

 


격변의 대지를 필름에 담다 - ①
격변의 대지를 필름에 담다 - ②

 

 

<중국 여인의 연대기>(왕삥, 2006)


그렇다면, <원유>에서의 노동자들의 계약이 올해 혹은 내년에 끝날지도 모르는 건가?

 

오늘날의 실제 생산관계 때문에 그렇다. 그러한 시스템은 단지 작업장에서의 경제적 관계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측면에서 바뀌어왔다. 한 회사가 당신을 고용하고자 결정한다면, 그건 두 달, 세 달, 일 년, 혹은 삼 년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회사는 당신이 일한 만큼 임금을 지불할 것이다. 영화 자체는 이것을 기록한다. 우리는 그런 현상을 과장하거나 축소하려하지 않았다. 영화를 본 뒤, 당신만의 판단을 내릴 수 있으나, 그건 관람자로서 당신에게서 나온 것이다. 우리의 의도와는 무관하다.

 

<석탄, 화폐Coal, Money>에서 당신은 산시성에서부터 항구도시 톈진天津까지 석탄을 운송하는 트럭을 따라다니며, 석탄 광산 근방에서부터 길 위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손을 거쳐 석탄을 화폐로 바꿀 기회를 붙잡으려는 사람들의 풍경을 포착했다. 이 또한 우리 사회적 현실의 한 단면으로부터 새로운 시대를 포착하려는 목적이었나? 

 

영화 <석탄, 화폐>는 불완전한 프로젝트다. 당시 우리는 매우 많은 장면을 찍었다. 하지만 영화는 유럽의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위해 제작되었고, 내겐 그저 50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프랑스 제작사는 사실 그 문제를 이해했다. 이후 그들은 내게 완전한 버전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지만, 돌아가서 다시 작업할 시간이 없었다. 50분 안에 일관성 있는 이야기를 서술한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건 완성된 작업이 아니다.

 

이전 작품들과 비교할 때, 이 영화 속 사람들이 훨씬 생동적이고, 종종 주도적이라는 데 동의하는가?

 

그렇다. 우리네 시간의 본성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의 중국이 내가 <철서구>를 찍던 당시와 완전히 같진 않다는 걸 볼 수 있다. 오늘날, 사람들의 삶에서 고난을 엿볼 수 있지만, 또한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창조성, 에너지, 그리고 활력이 존재한다. 낙후된 경제, 단순 생산 방식과 시스템의 제약이라는 불리한 조건하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노동을 통해 부를 창출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게 우리 시대의 삶이 흘러간다.

 

<중국 여인의 연대기>(왕삥, 2006)

 

연대기적으로 <철서구> 이후 당신의 작품은 <중국 여인의 연대기He Fengming>(2006)이었다. 주제적으로 봤을 땐, 이 작품은 장편 극영화 <바람과 모래The Ditch>(2010)과 연결된다. 두 작품 모두 중국 북서쪽에 위치한 강제 노동 수용소 지아비앙고Farm Jiabiangou에 대한 것이다. 그 수용소는 1957년 ‘우익인사들’을 잡아두기 위해 설치되었고, 1958년에서 60년의 대기근 당시 3000명 이상의 죄인 중 대부분이 그곳에서 굶어죽자 폐쇄조치했다. 1961년 초 당시 정부는 모든 억류자들에게 귀향하라 명령했고, 단지 몇 백 명만이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을 뿐이다. 이건 우리가 방금 논의했던 영화와 비교해 전혀 다른 주제가 아닌가?

 

사실 나는 <철서구> 직후, 2004년에 일찍이 지아비앙고에 대한 이야기로 관심을 돌렸다. <원유>와 <석유, 화폐>를 찍는 와중에 (지아빙고에 대한 – 옮긴이) 각본의 초안을 쓰고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의 주된 관심은 언제나 지아비앙고에 있었다. <중국 여인의 연대기>와 <바람과 모래>를 완성하는 데 까지 7년이 걸렸다. 다른 영화들은, 어쨌건 여가 시간에 만든 부산물이었다.

 

왜 그러한 주제를 선택했으며, 그 영화에 그렇게 많은 힘을 들인 까닭은 무엇인가?

 

양샨휘杨显惠의 책 『지아비앙고로부터의 이야기Stories from Jiabiangou』에서 처음 그 수용소에 대한 것을 들었다.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후 나는 그와 만나려 했다. 그동안, 더 많은 자료들을 수집하고, 읽고, 인터뷰를 했다. 2005년에 양샨휘는 내게 허펭밍和凤鸣을 소개해줬다. 그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한 게 그때였다.

 

지아비앙고가 중국의 근대사에서 비판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우선, 국제공산주의운동은 거의 한 세기 전에 중국에 유입되었다. 이 시기 전체를 통틀어 그 운동의 이데올로기는 사람들 사이의 첨예한 갈등을 야기했을 뿐 아니라, 괄목할만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등, 이 나라의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지아비앙고 자체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으나, 지아비앙고는 우리의 근대사에서 독특한 의의를 내포한다. 수용소는 우리의 과거를 이해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당신의 다큐멘터리에서, 허펭밍은 자신의 생애를 이야기한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을 때 그녀는 혁명에 가담하려는 열망이 가득했던 열광적인 고등학교 학생이었다. 불과 10년도 안 돼,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우익인사’라는 낙인이 찍혔고, 각자 다른 노동 수용소로 보내졌다. 지아비앙고에서 남편이 굶어 죽었을 때에도, 그녀는 그를 마지막으로 찾아갈 수 없었다. 문화대혁명 기에 자식들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그녀는 이전에 썼던 모든 기록들을 없앴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했던 기억을 복구시키려는 노력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21세기에 회고록을 출판할 수 있었다. 영화는 눈길 위에서 허펭밍을 따라 그녀의 집으로 가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이후, 카메라는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영화는 또한 인터뷰 형식을 취하고 있지도 않는데, 인터뷰어의 질문이 녹음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전체는 기본적으로 불을 켜기 위해 일어날 때 등 일부 예외적 순간을 제외하면, 의자에 앉아서 그녀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건네는 허펭만 그 자체다. 의도한 것이었나?

 

실제로 사전에 계획되었던 것이다. 그 방식은 우리가 처음 허펭만과 만났을 때부터 결정되었다.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물론 실제 촬영은 훨씬 더 길었지만, 형식은 같았다. 나는 보통 영화가 디자인된 방식을 관객들이 받아들일지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당신이 영화제작자라고 해보자. 납득할만한 영화를 만드는 게 당신의 직업이다. 관객들을 걱정하는 대신, 당신은 영화를 훌륭하게 만들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내게 그건 이 특정 작업을 하는 데 있어 당신의 필요에 맞는, 잠재적으로 더 좋은 영화를 만들거나 찾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당신의 영화는 그 주제의 생생한 현실을 담아낼 수 있어야만 한다.

 

<바람과 모래>(왕삥, 2010)

 

카메라는 허펭만에게서 상당히 멀리 고정되어있다. 그녀를 어느 정도 클로즈업해서 잡을 생각은 없었나? 혹시 카메라 자체가 그녀의 주의를 잡아끄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나?

 

내 생각에 그건 문제가 아니다. 영화제작은 다양한 전략을 동원할 수 있다. 클로즈업 혹은 롱 쇼트, 드러나는 카메라 혹은 숨겨진 카메라, 의식적인 행위 혹은 자연스러운 반응 등. 이것들은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선택이다. 영화에서 선택한 기술과 스타일은 주제에 적합해야한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영화의 주제와 관객 사이의 관계를 성립시키는 것이다. 이 연결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카메라다. <중국 여인의 연대기>를 찍을 때 이러한 관계에 대한 나의 주된 관심은 그 관계를 억제─눈치 채지 못하게 하거나, 심지어 따분하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영화를 찍는 것은 단지 각각의 이야기, 캐릭터가 아니라 역사를 연결 짓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그건 당시에 사회적 현상이었다. 당시를 살아간 수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회고를 기록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왜냐고? 우리의 주류 문화, 지배적 이데올로기에서 그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기들의 삶을 인식할 수 있는 정체성을 형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게 반복적으로 물어왔던 또 다른 질문은 ‘왜 사람들이 그 늙은 여인의 말을 믿어야 하는가?’이다. 내게 이건 절대 논쟁거리가 아니었다. 나는 그녀가 진실하다고 여겼고, 그게 전부다. 우리의 사회적 삶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인간관계의 약화다. 주요 사건들에서부터 나날의 만남들까지 우리 사회는 사람들이 서로를 믿지 못한다고 느끼는 환경으로 진화해왔다. 하지만 내게 이건 통하지 않는다. 나는 의심을 갖고 사람들에게 접근하지 않는다. 아니, 나는 그녀와 진실한 관계를 형성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내게 그녀를 믿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거기다 왜 우리는 그저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가? 최소한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또 다른 인간에 대해 배울 수 있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같은 이야기의 극영화, <바람과 모래>를 만들었나?

 

이미 언급했듯, 나는 지아비앙고 수용소가 중국 근대사─반면에, 역사로서 그곳은 과거의 일부분이고 더 이상 현재에도 존재하는 양상은 아니다─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대신 극영화를 만드는 것 또한 개인적 선택이었다. 여전히 여러 방향으로 압력을 받고 있긴 하지만, 우리에겐 또한 공간과 자유─그건 가능성들을 탐험하는 문제다─가 있다. 그러므로 내가 그것을 극영화로 만들어서는 안 될 이유란 없다.


<중국 여인의 연대기>와 <바람과 모래>의 서사화 괴정에서, 시나리오에서부터 편집에 이르기까지 당신은 개인들의 실제적 경험과 역사적 사건들이 드러나는 방식 사이의 갈등에 어떻게 접근했는가?

 

그런 갈등이 나의 작업을 지연시켰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게 중요한 것은, 우선, 오늘날 당신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노력해서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고, 또한 역사적 사건들을 바라볼 때 개인적인 관점을 취하는 것─나 같은 경우는 영화제작 연습을 통해─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건 <바람과 모래>의 제작 과정과 촬영 전반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였다. 사람들은 오랜 기간을 다루고, 복잡한 서사를 엮어내고, 해당 시기의 풍부한 분위기를 제공하는 역사영화에 익숙하다. 하지만 내 접근 방식은 달랐다. 나는 시간과 서사를 다루는 방식을 포함하여 영화와 역사를 보는 것을 다시 사유하길 원했다. 나는 이야기를 그것의 전체로서 표현하려 하지 않았다. 이 영화에서 내가 담았던 것은 훨씬 거대한 역사적 사건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바람과 모래>는 매우 단순하다. 아마 몇몇 관객들은 실망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매우 만족한다.

 

<바람과 모래>(왕삥, 2010)

 

<바람과 모래>는 1957년의 ‘반우익인사’ 운동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전달하지 않고, 노동 수용소의 기원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영화는 단지 1960년 겨울에 수용소에서 ‘우익인사’들이 보낸 길고 끔찍한 나날들을 다룰 뿐이다. 유사하게 영화는 일상의 대화를 통해 배경 정보의 파편들을 제시하는 것을 제하면, 중심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서사화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런 역사 영화에서 시간에 대한 물음에 어떻게 생각하였나?

 

오늘날 역사를 복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것의 존재는 감각할 수 있다. 역사적 사건에서 작은 파편들이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으니까. 역사는 이렇게 흩뿌려진 기억들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내 영화는 작은 부분들로 구성되어있다. 이 부분은 어떤 캐릭터에 있고 저 부분은 다른 캐릭터에 있다. 이 남자의 에피소드와 다른 남자의 또 다른 에피소드가 있다. 그 에피소드들은 모두 같은 장소에서 한 달 안에 발생한다. 이들은 서로 공생하면서 모두 연관되어 있고, 시간의 일치는 모두가 공유한다. 우리는 캐릭터의 개발 또는 완전한 서사를 구축하려하지 않았다. 또한, 지아비앙고 노동 수용소가─결국, <바람과 모래>는 지아비앙고 역사의 오직 일부분만을 보여줄 따름이다─영화의 주된 캐릭터라고 말할 수도 없다. 영화는 수용소의 역사 전반을 다루려는 목표로 하지 않으며, 어쨌든 나는 그런 거대 규모의 작업을 할 자원도 갖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로 내가 흥미로워하는 시간의 작은 부분을 찍을 수 있었고, 그것을 통해, 해당 역사적 시기를 어렴풋이 볼지도 모른다.

 


<원문 p.125-129>

 

 

 

FILMING A LAND IN FLUX(WANG BING).pdf

 

 

* <뉴 레프트 리뷰>는 1960년 영국에서 창간되어 격월로 발간되는 잡지입니다. 이따금 한국어로 번역되어 단행본(도서출판 길)으로 출간되긴 하지만, 영어판 잡지에 기고된 글을 선별적으로만 다루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BIG HIP>에선 <뉴 레프트 리뷰>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된 글들을 최대한 번역해서 수록할 예정입니다. 저는 전문 번역가가 아니기에, 분명 오역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혹시 그걸 발견하신 분이라면, 제게 훈수를 두셔도 좋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여기서 공동 번역 작업을 제안하고 있는 셈입니다.

 

* 사진출처: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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