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 시간에 기계적으로 몸을 지하철에 싣는 삶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의 내 모습과 다르게, 내가 잠시 살아봤던 인도는 생기가 넘치고 ‘살아 있는 곳’ 이었다. 물론 단편적인 모습이라며 인도의 사회문제를 말할 수 있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에너지가 있고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인도의 모습으로 계속 글을 써가도록 하겠다. 또한 기억해야 할 점이 내가 지냈던 곳이 소수민족이 많고 다양한 문화와 종교, 인종이 있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생각하시길.


‘진정 살아 숨쉬는 사람들'이 있는 인도
한국에서 나는 주체적으로 나만의 방식으로 살고 싶었지만, 경쟁 속에 눈치를 살피며 어떤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이끌려 살았다. 하고 싶은 걸 하는 것보다는 안정적이고 사회가 원하는 것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다수의 방향에 따라야 하는지에 의문도 생기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내가 잘 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인도에서 나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볼 수 있었다. 현재 자신의 감정과 일에 충실하고, 주변을 살피고 함께 살 수 있는 여유도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보통 한국 사람들이 인도 사람들를 보고 게으르다고 말한다. 가난이라는 굴레를 벗어나려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그들이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만약 릭샤 아저씨가 우리를 본다면 어떨까? 아마 아저씨는 우리의 방식이 더 한심하다고 생각할 것 같다. 길가에서 낮잠도 자고, 품격 있는 짜이(인도식 밀크티)를 마시며, 가족들을 위해 일할 땐 일하는 릭샤 아저씨들의 삶은 만족을 알고, 그들만의 행복을 향유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기엔 그들의 삶이 열악할 수 있지만, 그들의 삶은 우리보다 풍요롭다고 생각한다. 릭샤 아저씨들처럼 내가 본 인도분들은 자기 페이스를 절대 잃지 않으며, 어떤 틀에 자신을 가두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여유를 가지고 자신의 방식대로 해 나간다. 누군가의 시선과 생각에 의식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에 충실히 사는 것 같았다. 자신이 궁금하면 물어보고, 흥정하고 싶으면 하고, 신기하면 쳐다보고, 무엇이든 때 묻지 않고 아이들처럼 행동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인도 분들의 삶은 겉으로 보기엔 나와 크게 다르지 않으나, '누가 그들 삶의 주인인지'는 달랐다.
또한 타인을 대할 때 자신이 소중해서 타인의 삶이나 성향을 자신의 틀 안에 넣어서 이해하려 합리화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남일에 무심하기 보다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고 관심 가져주고 함께 고민한다. 그 분들은 나를 소수민족인 앙가미족 아이로 생각했음에도 다들 모여서 고민해주었던 기억들이 있다. 내가 무슬림마을에서 사원을 찾지 못해 헤맬때 내가 못 알아듣는 데도 가이드해줬던 일리아할아버지와 마을 사람들도 그랬고. 번잡한 버스터미널에서 내 엉덩이를 만지고 성희롱했던 아저씨한테 나 혼자 위축되어서 한국어욕을 하고 있는데 다들 어디선가 나타나서 욕해주고 혼내줬던 것도 그랬다. 모든 것에 효율적이고 경쟁적인 사람들에겐 시간낭비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분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아낄 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어느 사회든 사람마다 다르지만, 내가 본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그분들의 삶 태도는 내 생각과 행동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해지고 따뜻해졌고, 어떤 것에 편견과 잣대가 아니라 받아들일 수 태도를 배웠다. 한국에서는 오지랖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야할지를 느꼈다. 인도생활은 나에게 더 없이 큰 응원 같았다. ‘너 방식대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달라도 함께 사는 곳’이 살아있는 인도
인도는 다양함 그 자체 였다. 나처럼 생긴 몽골리안부터 우리가 흔히 인도인이라고 생각하는 인종까지, 지역별로 많은 부족과 문화들이 공존했다. 그들은 여러 신들이 공존하고 다른 신들을 믿으며 살아간다. 힌두교, 무슬림, 기독교, 시크교 등등 종교가 달라도 함께 다른 종교의 축제와 휴일을 즐겁게 보낸다. 우리는 절대 무슬림과 기독교는 함께할 수 없으며 이도교라고 배척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서는 종교를 여러 개 가지고 있을 수 있고 기독교이면서 힌두교인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인도인들은 너무나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기에 비슷한 점도 다른 점도 느끼지만, '함께 살아갈 것이고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내가 본 인도는 서로 달라도 융합되고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인도에서의 경험은 나도 모르게 ‘다르다’는 말을 두려워하고, ‘다름’을 머리 속으론 인정하지만 불편해 하고 있었던 나의 모습들이 되돌아보게 되었다. 한국 사회에선 선 긋기와 다름을 죽이려 하는 움직임이 있지만, 인도는 너무나도 다른 차원에서 그들의 삶을 이루고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은 내가 미타암톨 마을(망고나무아래라는 뜻의 시골마을)을 가서 단적으로 볼 수 있었다. 그 마을에는 다양한 소수민족마을과 네팔등 외지에서 시집을 온 아주머니들이 살고 있다. 아주머니들은 항상 모이면 아쌈주의 유명한 비훗Bihut춤을 추고, 한 두시간씩 추고 나서야 마을일을 하던 한다. 비훗을 함께 출때 보면 다양한 소수민족출신의 사람들이 자신의 동네방식을 선보이면서도 함께 모인 사람들끼리 좋아하는 네팔노래를 부르며 박수로 가락을 만들어 한다. 내가 만났던 아주머니들은 서로 너무나도 다른 지역 출신임에도 문화, 언어가 다 달라도 어울리며 지내고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발전시키고 그들만의 문화생활을 만들어 갔다. 나에겐 너무나 신선한 충격이었고, 그들의 포용력과 함께 살아가는 태도 덕분에 외지인인 나도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살아있다. 바로 이 곳에.
나는 그 곳에서 느꼈다. 내가 살아있고, 그들도 살아있고, 우리 모두가 지금 지구에 살아있다는 걸. 옹졸하고 편협했던 나의 마음과 삶의 태도가 나 자신을 죽이고, 주변을 보지 못하게 해서 외부로 공격적으로 반응하고 대한다는 것을 느꼈다. 인도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나는 내가 잊고 있던 많은 감정과 생각들을 다시 느끼고 배웠었다. 다양성이 서로 공존할 수 있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사회를 봐왔고, 잠시 그 곳에서 함께 살아봤다.
지금 나는 이 곳에 살고 있는 데, 아직도 이 곳은 다르고 다양한 것에 대한 혐오의 목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고 뉴스에선 종교를 비롯한 다름에 의한 혐오와 이로 인한 폭력들을 다룬다. 점점 사람들도 나도 뭐가 옳고 그른지를 잘 모르고 몽롱한 상태에서 살아가는 듯하다. 회색빛이 짙게 투사되는 지금의 분위기에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생기가 넘칠 수 있을까? 조화를 이루면서 다양성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을까? 내가 인도 아쌈에서 얻었던 경험처럼 모두가 ‘내가 살아있다’는 자극을 계속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의 나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바짝 긴장해서 올라온 어깨부터 풀고 주기적으로 내면의 평화를 찾고,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기 기대한다. 무엇보다 가시로 둘둘 감은 말과 행동이 아닌, 나와 다른 것을 포용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갖게 해주는 ‘우리는 이곳에서 함께 살아있다’는 의미를 잊지 않길 바란다. 나는 인도에서 함께 살아있음을 느꼈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금 이곳에서도 함께 살아있음을 주변에서 보고 있다. 우리는 지금 살아있다. 바로 이곳에.



당신은 지금 살아있나요? 아니면 오늘 하루라도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 있나요?

요즘 나는 살아있는 햄토리 같은 삶이다. 햄스터가 우리 안에서 주는 먹이를 잘 먹고 쳇바퀴를 수십번 돌고 피곤해서 자고, 어제와 동일한 패턴으로 또 먹고 돌고 잔다. 분명 나는 살아있기에 지금 움직이고 숨을 쉬고 있는 거지만, 내 정신은 살아있다는 느낌보다는 꾸역꾸역 하루를 지낸다는 느낌이 들까. 내 정신이 맑고 말랑했던 때, ‘내가 살아있구나’라고 마음 깊숙한 어느 곳에서 마구 올라오는 감정을 느꼈던 그때의 글을 펴보려고 한다.

물었다. ‘나는 살아있나?...’
피로사회라고 명명되는 한국사회에서 내가 모르는 사이 나는 학점, 취업, 스펙 모든 것을 향해 사람들과 경쟁하고 하루하루 그저 살아가고 있었다. 경쟁 속에서 계속 마주하게 된 좌절과 포기, 걱정으로 일상 속에 지쳐가고 있었다. 점점 ‘내가 잘 가고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이 생기고 조급해지고 사람들로부터 고립되고 있었다. 그땐, 내 눈 앞에 아무것도 안보이고, 미래가 암담해 보였다.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혼자 살기 바빴던 나는, 누군가를 살펴보고 함께 할 만한 여유 또한 없었다. 이렇게 나는 모든 것에 폐쇄적이고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쉽게 말하자면,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문뜩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메말라 가던 내가. 나한테 물었다 ‘나는 살아있나……?’ 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배우고 함께 움직여보고도 싶었고, 살아있다는 말랑말랑한 그 감정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과감히 모든 걸 내려놓고 인도로 떠났었다.

나에게 던지는 물음 ‘살아있는 인도’
인도. 나에게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게 된 곳. 참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한번도 외국을 가본 적이 없었다. 난 오직 인터넷과 책을 통해서만 외국을 봐왔고, 옆집에 살았던 외국인 노동자분들과 학교에서 친하게 지냈던 교환학생들을 만나면서 외국을 알았다. 그렇기에 인도는 간접경험뿐이었던 나에게 마치 세계지도에서 보이는 인도라는 이름처럼 그저 보이기만 하고 느껴지지 않았다. 잠시 인도 아쌈주 가우하티에서 살면서, 살아 숨쉬는 인도와 사람들은 나에게 생기와 호흡을 나눠주었다. 인도는 ‘나는 살고자 하는 삶 자체요. 살고자 하는 삶의 한 가운데 있다’라는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말을 정확히 느낄 수 있었던 곳이었다.

‘사람 그 자체’ 살아있는 인도
인도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Where are you from? 너는 어디 출신이니?’ 이었다. 인도라는 나라가 넓어서, 인도 자국민이라도 다양한 인종과 지역출신들이라 출신을 묻는 질문을 일상 속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나 또한 이 질문을 많이 들었다. 내가 KOREA에서 왔다고 대답했을 때, 그들의 반응은 날 KOREA이라는 외국 나라에서 온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옆집 사는 사람, 인도에 어느 지방사람처럼 대해주셨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모를 수 있지만, 지구라는 별에 나는 그저 어느 곳에 사는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대하는 인도인들에게 놀랐다. 내가 만났던 인도인들은 어느 누구보다 넓은 세계관을 가지고 사람들 자체로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나는 '한국에서 외국인들을 있는 그대로 사람들 자체로 받아 들였나'하고 돌아보게 되었다. 편협하게 외국인들을 어느 나라 사람이라는 인식과 국적으로만 가지고 대하진 않았는지를 말이다. 인도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외국인이 아니었다. 나가랜드, 마니푸르(인도 동북부지역명)사람처럼 생기고 동네에서 덩치가 큰 아이, 한국에 고향 집이 있는 황은미이었다, 다양한 인종, 종교, 문화 속에 살아가는 인도사람들과 살면서 나는 온전히 나일 수 있었고, 나를 마주보고 있게 되었다. 그 곳에서 나를 보여주고 자연스럽게 그 분들을 받아들이면서, 다다, 바이듀(언니 오빠 호칭)과 말이 안 통해도 함께 즐겁게 비훗춤을 추기도 하고 나눠먹기도 하는 등 시간을 보내고 다양한 이야기 나누었다. 잠시나마 한 곳에서 살아가면서 사람 그 사람자체로 느끼고 마주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배웠다. 누군가를 편견과 배경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함을 느꼈다.

3년이 지난 지금. 난 다시 한국에 돌아와 하나의 틀 안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을 쓰며 두꺼운 가면을 쓰고 나를 포장하고 남들과 비교하기 바쁘다. 다시 그 때처럼 온전히 ‘내 자신’이려 노력하고 사람들의 다름을 이해할 필요성을 느꼈다. 2부에 걸쳐 인도 나가랜드에서 일본군을 격파한 몽골리안 앙가미족있었던 내 모습들을 다시 떠올리며 인도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을 함께 공유하고 다시 느끼고자 한다. 

 

* 인도 아쌈주는 우리가 흔히 카페에서 먹는 아쌈홍차가 나오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인도의 이미지와 다르게, 아쌈와 나가랜드, 마니푸르등 인도 동북부지역은 소수민족이 많고, 힌두교,무슬림,기독교가 각각 2-30%정도를 차지하고 그 외에도 여러 종파가 있기에 다양한 종교들이 존재한다. 한국 사람처럼 생긴 몽골리안부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인도인들도 있다. 주변 국가(네팔, 방글라데시, 중국국경 등)과도 가까운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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