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 AP통신>


 

<채권단의 긴축재정안을 반대하는 그리스 국민들 프레시안>

 

그리스 사태가 결국 일단락되어지는 모양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는 심정은 그리 편치 않다. 그리스는 지난달 30(현지시간)까지 국제통화기금(IMF)에 채무를 갚지 못 하면서 사실상 디폴트(국가부도) 상태에 빠졌다. 유럽채권단은 이에 긴축재정을 조건으로 하는 구제금융안을 그리스 정부에 제시했지만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반대의사를 표하며 국민투표에 부쳤고, 그 결과 6139라는 압도적인 표 차이로 국민들 또한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치프라스 총리는 며칠 뒤 기존 협상안보다 무려 50억 유로나 더 긴축하는 내용의 파격적인 재협상안을 채권단에 제시했다. 은행의 붕괴와 유로존 탈퇴(그렉시트)의 우려로 마련한 긴급 강구책이란 판단이었다. 결국 그리스 의회의 승인을 받아낸 이 안은 유로존 정상회의에 회부되어 13(현지시간) 그리스 3차 구제금융에 대한 결정을 이끌어낸 상태다.


 

그리스가 그놈의 복지병때문에 망했다?

 

그리스의 디폴트 사태 이후 우리나라에선 언론들의 다양한 원인 분석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그 중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들은 아니나 다를까 그리스 사태의 원인을 과잉복지’, ‘복지병인 것 마냥 그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 기사를 내놨다. <지원금 300조원도 탕진공짜복지 좋아하다 이 지경까지”> 실제 조선일보 지면에 실렸던 제목이다. 과연 그리스가 복지때문에 망하게 된 걸까? 먼저 그리스의 1인당 국민소득(GNP) 대비 정부 복지지출 비중은 21.3%로 유로존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복지로 유명한 스웨덴은 27.3%, 덴마크는 26.1%, 핀란드는 24.9%(2012년 기준). 복지지출이 많아 그리스가 저 지경이다? 망했다면 저 북유럽 국가가 먼저 망해야 옳다. 결국 애초 사실관계부터 틀린 것이다. 다음 과도한 연금수령액을 문제 삼는다. 그러나 그리스의 노년층이 받는 연금의 비율은 2011년 이후 3차례의 채권단의 긴축 요구에 의해 무려 40%이상이 삭감되었다. 또 그리스 연금수령자의 45%는 빈곤선인 월665유로(83만원) 미만의 연금을 받고 있으며, 그리스 전체 가구의 49%의 주 소득원이 노인연금에 의지하고 있단 사실은 그리스의 열악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연금이 곧 생계 수단인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과잉복지라 칭하고 또 탓할 수 있는가?

 


<한국일보>

 

그 다음 이런 과잉복지로 인한 그리스 국민들의 나태함을 이유로 많이들 꼽는다. 그러나 그리스는 연간 노동시간이 OECD국가 평균(2013년 기준) 1,770시간보다 훨씬 많은 2,037시간으로 멕시코, 한국 다음으로 가장 높은 나라로 기록돼있다. 유럽에서 2,000시간 이상 일하는 나라는 그리스가 유일하다. 이처럼 그리스는 우리가 터무니없이 걱정하는 만큼 복지가 과하지도 또 나태하지도 않다. 우리나라처럼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그에 걸맞은 복지 권리는 누리지 못 하고 있는 처지다.

 


죄지은 금융자본과 부패정권, 탈세자는 쏙 빠진 채, 애꿎은 국민들만 벌 받으라고?

 

그동안 몇 차례에 걸쳐 구제금융을 받는 동안 유로존 정상들 특히 그리스 채권 비중이 높은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채권단은 그리스에게 강도 높은 긴축재정을 요구했고 또 그리스는 성실히 이행해왔다. 재정지출을 줄였고, 빚도 꼬박꼬박 갚아나갔다. 재정은 적자에서 흑자가 됐다. 하지만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실업률이 25%로 치솟았고, 2009년 금융위기의 여파로 GDP(국내총생산)22%나 감소했으며, GDP대비 부채비율도 35%나 증가했다. 부채규모는 갈수록 증가해 20113,559억 유로로 최고치를 찍었고 2015년 현재 3,127억 유로(400조원)를 기록하고 있다. 2011년 말 당시 1,000억 유로 규모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았었다. 하지만 현재를 미뤄보면 구제금융이 그리스 부채를 줄이는 데 별다른 효과를 보이지 못 했다는 걸 나타낸다.

 

그리스의 디폴트 사태는 어찌 보면 예견된 일이었을지 모른다. 애초에 그리스는 유로존에 가입할 수 있는 조건의 나라가 아니었다. 하지만 2001년 당시 그리스 전 정권과 미국 금융회사인 골드만삭스의 국가채무 은폐 작업을 통해 무리하게 가입했던 것이 원흉이었다. 한 마디로 국채 사기를 벌였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 그리스는 각종 공공재 수입을 담보로 28억 유로를 골드만삭스로부터 빌렸었다. 유로존 가입만 하면 장밋빛 미래를 예상했던 그리스는 점차 수출경쟁력 하락과 경기침체에 빠지자 손쉽게 돈을 빌릴 수 있는 금융회사들의 검은 손을 잡아버렸다. 이후의 구제금융이 실질적 경기진작 효과를 거두지 못 하게 된 이유도 이와 같은 금융자본의 채무관계에서 비롯되었다. 또 그리스와 유럽연합 내부 역시 당시에도, 지금까지도 골드만삭스 출신의 사람들도 가득 차 있어왔다.

 

탈세 또한 빈번하고 그 액수도 어마어마하다. 연간 세금 청구액의 불과 20%만이 세입 되고, 나머지의 절반인 40%는 탈세, 또 절반은 뇌물로 바쳐진다고 알려져 있다. 해운업이 강세인 그리스에선 해운재벌들이 사업등록지 이전 등의 방법으로 연 2000~3000억 유로의 탈세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2009년 그리스의 탈세액은 약 2000~3000억 유로로 당해 재정 적자의 3분의2에 달하기도 했다.

 

이렇듯 부정부패와 금융자본주의의 결탁이 지금의 위기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 유럽채권단의 그리스 국민들을 향한 긴축재정 요구는, 죄인은 가만둔 채 애꿎은 이들에게 벌 받으라 강요하는 꼴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리스인의 입장에선 가혹하고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

 

 

 

<SBS>


 

차라리 그렉시트(유로존 탈퇴)가 기회일 수 있다.

 

법률적인, 또 도덕적인 관점에서 그리스가 긴축재정으로 고통을 감내하고서라도 채무이행의 의지를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유로존의 시스템은 그리스와 그 국민들에게 너무나 가혹하다. IMF 등 국가재정 및 개발원조 업무를 맡았던 엘리엇 모스 박사에 의하면 자국 통화를 쓰는 국가들은 무역수지가 악화되면 통화 가치를 낮춰 수출경쟁력을 높일 수 있지만 유로존 국가는 통화가치를 독자적으로 낮출 수 없어 무역적자를 감내할 수밖에 없다. 무역적자의 증가는 정부부채 증가 및 경제성장의 둔화로 이어진다. 그리스 위기도 이런 과정에서 발생했다라고 말한다. 그리스는 제조업 비중이 5.7%로 매우 낮으며, 관광 및 해운업 등 서비스업의 비중은 무려 90%에 이른다. 그런데 자동차, 가전제품 등 대부분 소비재는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 결과 무역수지가 적자 구조인 것이다. 근본적인 경제 산업구조의 개편이 선차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구제금융을 통해 유로존에 남아있다 한들 과연 그리스가 끝까지 살아남을지는 미지수다. 더구나 애초에 유로존의 회원국가간의 경제규모가 천차만별인 상황에서 유로존의 존재이유와 시스템 문제, 그리고 단일통화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시적인 유로존 탈퇴를 통해 자국 경제의 흐름이 어떠한 모습을 보이는지 살피고 체감해보는 것도 지금의 위기를 타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최선의 방법은 공존의 길이다.

 

유로존은 경제도 그렇지만 철저히 정치적 연합체에 가깝다. 경제규모뿐만 아니라 정치적 영향력 또한 미국 패권과 대등한 위치에서 견제하고 협력하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만약 그리스의 치프라스 총리가 모든 협상을 거부하고 그렉시트(유로존 탈퇴)를 선언했다면, 그리스와 같은 부채와 경기침체에 시달리는 나머지 PIGS(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스페인, G는 그리스다)국가들 또한 연달아 유로존 탈퇴를 염두에 둘지도 모른다. 이는 결국 훗날 유로존의 영향력 상실과 나아가 붕괴까지 이어질 수 있기에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 체제 유지를 꾀하는 유로존 강대국인 본인들로서는 큰 위기로 다가올 수 있다. 그리고 이미 올해 초 총선에서 승리를 거둔 시리자(급진좌파연합)의 치프라스 총리는 이미 공약으로 구제금융 재협상 카드를 들고 나왔었다. 국민의 삶 개개인을 파괴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적 구제금융 협상안은 일정 부분 제외하면서, 채무의 30억 유로 정도의 헤어컷(채무탕감)을 요구해왔다. 이처럼 기본적으로 채무이행에 대한 책임감과 의지를 가졌던 사람인 것이다. 기존에 정치적으로 좌파라는 이유만으로 그리스 사태의 책임자로 몰고 비난하는 이들은 이 같은 사실을 알아야한다.

 

그리스 채권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는 독일이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연합국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전쟁보상금을 추징당했지만, 1953년 런던합의를 통해 채무탕감을 받은 전례가 있다. 그로 인하여 경제위기에서 타개했고 라인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독일 역시 이제는 자신들의 예전 기억처럼 위기의 그리스에게도 그와 같은 선처와 배려의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체제 공고화를 위해서 말이다.

 

치프라스 총리가 국민투표 이후 갑작스레 구제금융 재협상안을 제시했을 때 대다수의 국민의 반대의사를 무시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치프라스는 국민투표의 결과가 곧 긴축재정안에 대한 불만의 표시일 뿐이지, 그렉시트의 의미는 아니란 걸 먼저 깨달았다고 본다. 또 그의 협상안 내용을 보면 긴축재정 액수를 늘린 것은 불만일 수 있겠지만, 채무 만기 연장과 법인세 강화, 채무탕감 요구 등을 제시했다. 자국의 탈세문제 같은 부정부패 해소와 더불어 채무탕감을 직접 요구함으로써 유로존의 시스템 문제를 건드리며 온전히 자신들만의 문제 때문이 아니란 것을 피력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해주고 싶은 부분이다.

 

결국 본래 예상 밖으로 탈 없이 그리스 3차 구제금융안이 유럽정상회의서 장장 17시간 마라톤 회의 끝에 타결됐다. 그리스는 기존 요구액보다 108조원이 많은 86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얻게 됐다. 팽팽한 기싸움을 벌이던 독일과 그리스는 공존의 길을 도모한 것이다. 하지만 당장에 그리스를 긍정적으로 예견하기는 힘들다. 삐걱거리는 유로존 시스템의 한계와 금융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검은 그림자가 언제 그리스를 잠식해버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치프라스 본인은 자신의 판단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또 그걸 바라보는 현재의 그리스 국민들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하다. 그리스의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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