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일할수록 내 아이는 정말 불쌍한 것일까?

 

▶ 출근 시간, 시간이 없어 감은 머리를 말리지도 못한 채 아이를 맡기러 어린이집으로 향하고 있다. (본인남편촬영)

 

출산휴가가 끝나고 육아휴직에 돌입했다. 작은 비영리단체에 다니는데 시민운동이라는 것이 대체 인력을 투입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많다. 휴직 기간 동안 내 업무를 대체할 사람이 없어서 급한 업무만 우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발로 밀어가며 했다. 우는 아이를 재우고 다시 일하고 다시 달래고 일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당연히 업무효율은 최악이었다. 애를 보는 것도 아니고 일을 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시간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심신이 지쳤다. ‘차라리 출근하자!’고 외치며 2달간의 육아휴직을 종료하기로 선언했다.

 

출근을 결심하자 아파트 단지에 ‘0세아 전용 어린이집’이라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첫째 아이에 이어 둘째 아이까지 친정엄마에게 맡기기엔 죄스러웠다. 그래서 현수막을 보자마자 입학 상담을 했다. 어린이집 상담 후 둘째 아이를 오전 8시 30분에 맡기고 오후 8시에 데려오기로 했다. 필요하면 토요일에도 아이를 맡길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아이와 선생님이 적응할 필요가 있으니 출근 2주 전부터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어린이집에 적응훈련을 보내기로 했다. 아이가 둘이어서 둘째 아이가 종일반이 되지 않을 것 같으니 주민센터에 가서 잘 알아보고 종일반으로 등록하라는 소리도 들었다.

 

다음 날 주민센터에 가서 알아보니 첫째 아이가 종일반에 다니기 때문에 둘째 아이가 종일반 등록을 할 수 없다 했다. 출산 휴가 및 육아휴직 동안 내가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 둘 다 종일반 등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내가 일을 쉬는 동안 첫째 아이가 종일반으로 어린이집을 다닐 수 있었던 것은 둘째 아이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 했다.

방법은 하나, 맞벌이라는 것이 증명되면 오늘이라도 둘 다 종일반을 보낼 수 있다고 했다. 출근 날짜는 정해져 있고 어린이집에서는 종일반으로 등록하라고 했으니 난감했다. 종일반 등록을 해달라고 했던 어린이집 선생님의 말씀 때문에 출근 직전 열흘 동안 종일반 등록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다른 방법이 없는지 주민센터에서 담당자와 한참을 대화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육아휴직 급여를 열흘 치 포기하기로 했다. 어린이집 적응 기간을 위해 나는 서류상으로 정식 출근보다 열흘 일찍 출근한 것이 됐다.

 

이제 100일이 갓 지난 둘째를 어린이집에 맡긴다 하니 이번에는 어린아이가 불쌍하다는 친척들의 비난이 들렸다. ‘아이는 엄마가 봐야 하는데……’라는 이야기를 첫째 때부터 꾸준히 3년간 듣고 있다. 내가 일을 하면 아이들이 불쌍한 존재가 되니 마음이 아팠다. 첫째 때보다 죄책감 지수가 10배는 되는 것 같았다. 죄책감이라는 단어로 몸부림치다 보니 복직하는 날이 돌아왔다. 준비는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부터 더 심한 눈치 보기가 시작됐다.
입학 상담 당시 8시 30분에 아이를 데려다주기로 했는데 8시 30분에 갔더니 ‘아이가 일찍 왔네요?’라는 소리를 들었다. 원래 약속한 시간에 갔는데 일찍 왔다 하니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나 싶었다. 아이를 맡기며 오늘부터는 출근하기 때문에 오후 8시에 아이를 데리러 올 수 있다 했더니 아직 어린데 그렇게 늦게 오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이가 어려서 걱정해서 하는 말이겠지 하면서도 어린이집에 눈치가 보였다. 점심시간에 친정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친정엄마가 첫째는 업고 둘째는 유모차에 태워서 오후 6시 30분에 대신 하원을 시켰다. 친정엄마에게 또 미안해졌다.

하루는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변을 못 봤다 하여 유산균을 챙겨 보냈다. 하루에 2~3포 먹었다 했더니 많이 먹는다는 답이 왔다. 권장량대로 먹이고 있는데 많이 먹는다는 답변이 오니 또 별생각이 다 들었다. 분유 타줄 때 유산균 넣기 귀찮다는 뜻인가 하여 괜히 눈치가 보였다. 어린이집 선생님의 한 마디에 이렇게 불안하고 초조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큰 뜻이 없는 이야기일 텐데 괜히 예민하게 구는 것 같았다.

출근하는 날엔 아침에 아이를 맡기려니 머리를 말릴 시간도 없어 머리카락에 물이 뚝뚝 흐른 채로 아이를 안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아침마다 어깨가 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결국, 감기에 걸렸다. 아이에게 감기를 옮길까 전전긍긍했다. 머리도 못 말리고 출근한 내 자신이 또 원망스러웠다.

 

 

 

▶ 집에오면 본격적으로 집안일이 시작된다. (본인촬영)


일하는 도중에도 퇴근해서 아이 찾아올 생각만 들었다. 아이를 찾아오면 모든 것이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때부터 집안일이 시작됐다. 아이를 씻겨야 하고 먹여야 하고 재워야 한다. 아이가 자기 시작하면 아이 옷을 빨고 널고 개고 젖병을 소독해야 한다. 밤중 수유도 이어져서 24시간 쉴 시간이 없다.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올 6월까지 주 2회 출근 주 3회 재택근무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출근하는 날은 정말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전쟁이었다.    

다음 달 내 생일에 1박 2일로 혼자 동해바다 보러 여행 갈 테니 남편한테 아이를 좀 봐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했다. 운전도 못 하는데 혼자 보낼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렇게 3일 잘 버티다가도 4일째 되면 혼자 떠나고 싶고 다시 3일 잘 버티다가도 4일째 되면 또 혼자 떠나서 아이 울음소리 없는 푹신한 침대에서 온종일 잠만 자고 싶었다.

그런 상태로 매일 매일을 꾸역꾸역 버티고 있는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겼다. 토요일에 출근해야 하는 일정이 잡힌 것이다. 첫째가 둘째만 안으면 울고불고 난리가 나서 친정엄마가 아이를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어린이집 찬스를 반드시 써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아침에 아이를 맡기면서 어린이집 선생님께 토요일에도 아이를 맡겨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고 말씀드렸다. 당연히 될 거로 생각했는데 어렵다는 대답이 먼저 돌아왔다. 토요일에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 번 알아봐 주겠다 했다. 그 날이었다. 아이를 데려와서 어린이집 가방을 열어보니 근로자의 날 등원 수요조사 종이가 왔다.

‘맙소사, 출근해야 하는데 이를 어쩌나!’ 혹시나 토요일에 아이를 맡아줄까 싶어 원래 출근해야 하는 요일임에도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재택근무를 하기로 했다. 남편은 아이를 데리고 사무실에 가서 업무를 보자 했지만 이제 막 4개월이 돼가는 아이를 데리고 회사에 나갈 순 없었다. 토요일 등원만 손꼽으며 수요조사 종이에 근로자의 날 아이를 데리고 있겠다는 서명을 한 후 돌려보냈다. 그렇게 3일이 지났고 아이가 너무 어려서 토요일에 맡아줄 수 없으니 양해해달라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첫째를 친정엄마에게 맡길 땐 친정엄마 눈치만 보면 됐는데 둘째를 어린이집에 맡기니 이제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눈치까지 보게 됐다. 아이가 둘 이상 되는 맞벌이 가정들은 그동안 이 어려운 일을 어떻게 헤쳐 나갔는지 모르겠다. 

5월 징검다리 연휴를 보니 아찔하다. ‘2일과 4일에 임시 휴원이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나 그나마 다행이다’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내가 일하면 할수록 죄책감이 드는 것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또 내가 일하면 할수록 우리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소리를 언제까지 들어야 할까.    

 




- 아이를 잘 보라는 정책보다는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엄마 너무 힘들어서 이제 애 못 봐주겠어. 둘째 낳으면 몸조리 한 달하고 첫째 데리고 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일 그만두고 들어앉으면 안 돼?”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첫째를 봐주겠다며 아이 낳자마자 우리 옆 동으로 이사까지 왔던 엄마가 더는 애를 못 보겠다 했다.

 

엄마가 힘들다는 것은 매 순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 년에 두 번은 해외여행도 보내주고 여름 대비 에어컨도 설치해주고 냉장고가 고장 났다 하면 12개월 할부로 냉장고도 사드렸다. 애 볼 때 소파가 필요하다, 싱글침대가 필요하다, 이렇다저렇다 하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결제 버튼을 눌렀다. 엄마가 애 안 봐주겠다고 하면 큰일이니 눈치가 보였고 그럴 때마다 나는 ISP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 출산 후 5달만에 대형 프로젝트를 마무리 하는 모습, 워킹맘으로의 삶이 시작됐다. (본인촬영)


저렇게 눈치를 본 이유는 하나였다. 밤낮없이 첫째가 엄마 집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야근이 잦았고 주말 근무가 거의 매주 있었기 때문에 첫째를 데리고 올 시간이 없었다. 첫째가 처음으로 뒤집었을 때도, 처음으로 엄마라고 말을 했을 때도, 걸음마를 막 떼던 순간에도 나는 그 장면을 보지 못했다.

 

2015년 여름, 나는 출산한 지 32일 만에 출근했다. 사무실 업무가 폭탄으로 쌓여서 안 나갈 수가 없었다.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도 노트북을 갖고 들어가서 일을 했다. 심지어 출산 10일째 되는 날은 사무실에 나가서 일하고 다시 산후조리원으로 복귀했다.

 

 

“뭐 그런 회사가 있냐! 너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가냐!”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아주 작은 비영리 단체였고 내 업무를 대체할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1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 아니면 안 되는 일이,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는 일이 진짜로 있었다.   


 

아이가 크면 클수록 죄책감이 밀려왔고 어느 날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을 못 썼으니 주 4회만 일하고 하루는 쉬겠다고 선언했다. 그렇게 평일 하루를 쉬면서 한 일이 아이와 함께 문화센터 가기였다. 조리원에서 만났던 엄마들과 문화센터 수업이 끝날 때마다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다 왔는데 갈 때마다 나는 더 스트레스를 받았다.

 

△ 문화센터에 가서 정보를 많이 얻었으나 그 만큼 스트레스도 컸다. (본인촬영)


“얘는 이유식 얼마나 먹어요? 우리 애는 100cc를 못 먹어요.”
“이 과자 먹여봐, 애가 진짜 좋아해”

 

친정엄마가 만들어주는 이유식을 먹던 우리 첫째가 얼마나 먹는지 나는 알 길이 없었고 이유식의 양을 몇cc라고 이야기하며 봐줘야 하는 줄도 몰랐다. 아기가 과자를 먹는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그 순간 나는 벽이 되고 싶었고 땅 밑으로 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 자리를 떠나며 내가 나쁜 엄마라는 생각에 너무나 슬퍼하는 동시에 단축근무를 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업무처리를 위해 계속해서 전화를 걸어왔다. 급한 업무는 눈감을 수 없어서 집에 와서 다시 노트북을 켰다. 그렇게 나의 단축근무는 쉬는 것도 아니고 일하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날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좋은 엄마 되기를 포기한 나는 둘째를 갖게 됐다. 좋은 엄마도 못 되는 판에 남편과 이야기를 끝낸 가족계획을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지 절대로 정부 정책이 좋아서 아이를 가진 것이 아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10년간 80조 원을 쏟아부었다고 하는데 아이를 낳은 나는 왜 피부로 와 닿지 않을까 싶어서 찾아봤더니 정부 정책이 대부분

자녀 3명 이상을 둔 집에 혜택이 가도록 만들어 놨다. 애를 낳는 사람만 계속 낳으라고 유도하는 정책인데 어떤 엄마가 직장을 다니면서 자녀를 3명 이상 낳아 기를 수 있을까. 특히나 나처럼 작은 단체에서 근무하고 있는 워킹맘은 출산휴가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러니 아이 낳는 것을 아예 포기하는 가정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혹시나 해 대선주자들의 정책을 찾아봤는데 역시나 매력적인 정책이 하나도 없었다. 개인적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해줄 터이니 집에 가서 아이를 보라는 것이 가장 맘에 안 드는데 모든 후보가 이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근로시간을 단축한다는 것은 누군가가 내 일을 더 해야 한다는 소리이자 함께 일하는 다른 회사들과의 소통이 8시간 근무 시간보다 더 단축된다는 소리다. 이런 근무를 하면 업무 효율이 오를까? 근로 시간을 단축하는데 과연 눈치 보기 직장문화가 근절될까?

 

 

그것보다 워킹맘으로서 내가 바라는 것은 부모가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여성이 아이를 낳고 육아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자아실현이라는 이유도 있다. 그런 여성들에게 근무시간 단축과 같은 정책이 매력적일 리가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해서 안전하게 아이를 맡기고 아이를 데려올 수 있는 곳을 더 많이 만들어주는 정책을 생산했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이다. 일찍 집에 가도 눈치 주지 않는 직장 문화를 만들기보다는 정시에 퇴근해도 눈치 주지 않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낫다는 소리다.

 

정부의 출산율 하락 대책을 보면 여성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정책을 찾을 수가 없다. 모두 어떡하면 엄마와 아이를 붙어있게 할까에 골몰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여성을 위한 정책을 하나 발견했던 적이 있는데 성남시의 산후조리 지원금이었다. 한국 여성의 산후조리가 과하다고 지적하는 시대에 산후조리 지원금을 준다는 소리에 정말 놀랐다.

 

 

사실 한국 여성의 산후조리가 과한 것이 아니라 서양 여성과의 골반 모양 및 크기의 문제, 온돌 사용으로 인해 추위를 잘 타는 체질 등 때문에 한국 여성들은 산후조리를 잘할 수밖에 없다. 
 

한국 여성의 산후조리가 과하다며 매번 예로 드는 미국 같은 경우 민간 보험사들이 보험료 지출을 줄이기 위해 임의로 출산 후 입원보장 일수를 줄여버렸고 미국 산모들은 아이 출산 후 바로 퇴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 애 낳고 회복이 빨라서 바로 퇴원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어 산모와 아이 건강을 위해 미국 연방정부와 각 주 정부가 출산 후 24시간 이후에 퇴원하는 법안까지 통과시킬 정도였는데 이것을 한국 여성의 산후조리와 비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올해는 엄마가 아이 보는 시간을 늘리기보단 한 명의 여성이 사회에서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행복하게 살기 위한 정책이 쏟아지길 바란다. 임신ㆍ출산ㆍ육아를 지표로만 보지 않을 때 자연스럽게 출산율이 오를 것이다. 



유난히 덥게 느껴졌던 이번 여름. 출산예정일 전 날까지 출근했던 만삭의 임산부. 출산 전에 회사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 사명감을 갖고 일하느냐 너무 바빠서 출산 가방을 출산 예정일 밤 11시에 쌌다. 그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경악한다. “애가 언제 나올 줄 알고 그랬습니까?” 

작은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모든 준비는 산후조리원에서 한다는 생각으로 겁도 없이 엄마가 될 준비를 대충하고 있었다. 출산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생각도 안 해봤다. 돈이 없어서 애를 천천히 낳겠다는 친구들의 말에 ‘에이~ 애는 낳기만 하면 또 어떻게 해결 되지 않나?’하는 생각도 했다. 

나는 산후조리를 2달 만에 끝내고 회사로 복귀해야했기 때문에 내 몸에 좋다는 소리가 들리면 돈을 썼다. 아이가 50일이 지난 지금, 통장에 그득했던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갑자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출산비용을 얼마나 썼는가? 


<<출산 한 달 전부터 출산 후 50일까지 소모비용>>


1. 병원비용 : 자연분만, 2박 3일 입원 55만원(방이 없어서 제일 큰 방을 사용했으니 자연분만 후 출산 비용이 더 줄어들 수 있음) 
(- 국민건강보험에서 130만원이나 내줘서 55만원이 나왔다는 걸 영수증을 받아보고 알았다.)

2. 산후조리원 : 2주 조리 270만원 + 조리원 마사지 144만원

3. 한약 : 22만원 * 3번 = 66만원

4. 제대혈 보관비용 : 270만원

5. 스튜디오 계약 : 50일까지 45만원 (돌까지 조금씩 나눠내는 형식)

6. 집으로 오는 산후도우미 한 달 : 175만원

7. 아이 용품 구입 : 젖병, 젖병세정제, 소독 집게, 온도계, 면봉, 코뻥, 속싸개, 겉싸개, 옷, 보온병, 아기이불, 아기침대, 아기흔들의자 등등 약 200만원

8. 기저귀 한 달에 15만원, 분유 한 달에 10만원 

출산 준비부터 출산 후 출근하기 직전까지 계산해보면 1250만원이 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출산 후 빠른 시일 내에 복직하기 위해서 아낌없이 돈을 썼다. 제대혈을 보관하지 안겠다고 했다하더라도 또 아이의 성장 앨범을 찍지 않겠다고 결심했다하더라도 천만원 가까운 비용이 출산 시에 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최소 비용으로 아이를 출산할 수도 있다. 출산 후 조리원에 가지 않고 산후도우미도 부르지 않으며 한약 등도 먹지 않고 집에서 아이를 본다고 하면 280만원의 비용이 소모된다고 볼 수 있다. 
에이~ 적게 들여서 280만원만 쓰고 애 낳을 수 있는데 천만 원씩 써서 애 낳는 건 너무 사치 아니야?라고 하는 이들이 있을까 하여 말하고 싶다. “현실에서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필자는 앞서 말했듯이 아주 작은 비영리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작은 단체의 경우엔 출산 휴가 및 육아 휴직 때 대체 인력을 부르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필자가 일하고 있는 문화재 환수 분야는 매우 희귀한 직종이기에(심지어 문화재환수운동가라는 직업은 직업으로 쳐주지 않는다.) 대체 인력을 구하기 힘들다. 필자가 애를 낳고 온 사이 회사는 정말로 멈춰버렸다. 정말로 멈췄기에 산후조리원에서 몸조리를 하다가 회사 행사에 참여하려고 조리원을 뛰쳐나와 일하고 돌아간 적도 있는데 그 날 밤부터 엄청난 젖몸살에 시달려 악몽 같은 시간을 보냈다. 뛰쳐나가기만 했는가, 노트북을 들고 조리원 침대 위에서 급한 일을 처리하곤 했다.



이렇게 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정말로 회사가 멈췄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최대한 빨리 회사로 복직하길 원했다. 그렇기 때문에 산후조리원과 산후도우미를 부르고 한약을 먹으며 몸을 회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 결과 32일 만에 회사에 복귀하여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면 한 달 쉬지 말고 돈을 적게 들여 출산 한 후 3달은 쉬고 일 나가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빠른 복귀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출산 후 산모의 몸 상태는 모든 뼈가 열려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예전엔 대가족 제도에서 산모와 아기가 보호받았기 때문에 조리원이나 산후도우미가 필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친정 엄마가 와서 붙어있지 않는 이상 산모를 보호해줄 사람이 없다.(남편도 아침 7~8시에 나가서 저녁 7시~10시 사이에 오지 않는가.)


뼈가 모두 열려있는 산모가 남편을 출근시키고 3시간에 한 번 먹여야 하는 아이를, 왜 우는지도 모른 채 2시간이고 3시간이고 아이가 울지 않을 때까지 안고 있어야 하는 아이를 볼 수 있을까. 돈 많이 드니까, 최소비용을 들여 애를 낳고 그런 상태로 아이를 보라하면 누가 애를 많이 낳겠는가. 


아이를 낳고 빠르게 회복하여 한 달여 만에 회사에 복직하기까지 나라에서 해준 것은 병원비 지원 130만원이었다. (임신기간 사용한 고운맘카드 비용 50만원도 있으나 이 칼럼은 출산 한 달 전부터 아이 낳고나서 50일을 계산했기에 제외했다.) 문제는 둘째다. 첫째는 어떻게 어떻게 낳았지만 이 비용을 또 부담하고 애를 낳으라는 건 무리다. 


출처 : 네이버블로그 “워킹맘의정보창고” http://cafe.naver.com/ggworkingmom/35301


  저출산시대에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것이 많다하여 아이를 낳기 전에 출산장려금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런데 이거 웬걸. 첫째는 지원대상에서 찾아볼 수 없고 둘째 역시 없다.(성남시 제외) 셋째는 낳아야 출산장려금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하면 경제적 부담을 이기고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최소비용으로 낳으면 되지 않냐 우기면 과연 최소비용으로 아이를 낳은 뒤 둘째, 셋째도 낳을 마음이 생길까.


  아이를 낳아보니 국가가 이것을 지원해주면 애를 좀 더 낳겠다 싶은 것이 생겼다. 바로 “산후조리원과 산후도우미 지원”이다. “산후조리원 2주 + 산후도우미 4주”를 국가가 지원해준다면 나는 둘째를 낳고 다시 직장으로 복귀할 생각이 있다. 6주의 시간이면 산모의 몸이 많이 회복된 상태이고 매일매일 빽빽 울던 아이도 안정을 찾고 조금은 잘 자는 시기이기 때문에 이 시기를 지나면 산모가 혼자 아이를 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6주의 시간동안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크다. 그렇기에 이것을 국가가 지원해주면 나는 애를 더 낳을 생각이 있다. 

 

  조리원에서 만난 친구들도 그 전부터 알고 있던 친구들도 모두 아이를 낳기 전에 사직서를 냈다한다. 내년 초에 결혼하는 가장 친한 친구는 출산비용 부담에 아이 낳는 계획을 미뤘다한다.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 진짜 필요한 시기에 산모를 지원해주는 정책은 언제 나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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