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도의 경계에서

 

 

경기도와 서울시를 넘나드는 빨간 버스를 탈 때면 정신이 몽롱해진다. 내가 지금 시로 진입하고 있는지 도를 향해 가는지 궁금할 때쯤이면 전방을 주시한다. 안녕히 가십시오. 어서 오세요. 유난히 친절한 문구로 말미암아 다시금 목적지를 상기한다. 목적지는 정해졌고. 어디 보자. 이제 뭘 하지. 몽롱해진 나의 의식은 운전자를 향한다. 운전자는 나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특유의 선글라스를 쓴 채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 간결한 최소 동작으로 최대의 효율을 내는 그의 운전법을 언젠가 꼭 배우고 싶다.
 
상행선과 하행선의 갈림길에서 어김없이 운전기사는 반대쪽 방향에서 나타난 같은 번호의 광역버스를 보고 손을 흔든다. 저 인사법은 무엇인가. 잡념이 시작된다. 인사하는 대상은 마주보고 오는 버스일까 아니면 버스 운전사일까. 당연히 버스 운전사일 거라고 멋대로 단정한다. 그렇다면 저 운전기사를 알기 때문에 인사를 하는 걸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또는 정말 우연히도 마주보게 된 운전수의 얼굴이 자신이 오랫동안 못 본 친구여서 인사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회사의 방침이 같은 회사 버스이면 무조건 손 인사를 하도록 한 건지도 모른다. 가능성은 열려 있다. 직접 물어보지 않는 이상 어떤 이유로 손을 흔든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저 인사는 너무 건성이지 않은가. 그저 손을 흔들고 마는 저 인사는 간결하기 그지없다. 오랜만에 본 친구라면 경적이라도 울리고 싶은 게 운전수의 본심 아닐까. 아니지. 그랬다간 뼈도 못 추릴 정도로 대형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 운전수의 프로의식을 높이 사야겠다. 그런데 왜 하필 오른손인가. 단순히 오른손잡이라서? 오른손잡이이기 때문에 왼손으로 핸들을 잡고 기어를 조종하기 때문에 오른손으로 인사한 건가. 아직까지 왼손으로 인사하는 기사를 본 적이 없으니 이건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을 것 같다. 근데 운전을 하다가 한 손을 놓는다는 건 조금은 위험한 짓 아닐까. 사고는 순간의 찰나에 일어나는 건데. 다시 생각해보니 운전수는 프로는 아닌 것 같다.

 

그냥 목례나 눈인사만 하면 어떨까. 그건 너무 인간적이지 못한가. 인간적인 것과 프로 같은 것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어려운 문제다. 버스 기사가 아니기에 쉬이 답을 내릴 수 없다. 그런데 잠깐 저쪽에서 오는 운전수도 선글라스를 끼지 않았을까? 그리고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 순간 얼굴을 알아보고 인사를 한다니.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다. 그래 이건 회사 탓이다. 회사가 인사하도록 규정해버린 것이다. 지금 당장 버스 운전수가 인사를 하다가 사고가 난다면 이건 운전수 탓이 아니라 회사 탓이다. 쓸 데 없는 규정 때문에 사고 가능성을 높이다니 너무하지 않은가.

 

혼자만의 상상을 즐기며 미소를 짓다가 흠칫 놀란다. 밖에는 소나기가 내리고 있다. 우산도 없는데 꼼짝없이 비 맞게 생겼네. 이제 곧 버스에서 내리려고 일어서는데 버스 기사가 친절히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한다. 나도 덩달아 “감사합니다”하고 내린다. 그런데 가만 비가 오는데 저 분은 왜 선글라스를 끼고 있을까. 세상에는 궁금한 일들이 참 많다. 버스 운전사가 선글라스 끼게 한 것도 회사의 지시사항이었을까. 뭔가 그건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지만 쉽게 단정하지 못하겠다. 일단 비를 피한 후 생각해보자.

 

사진출처: 엔하위키 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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