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이 코앞이다. ·야 가릴 것 없이 각 정당들은 선거대책위원회 구성, 예비후보 공천 심사, 그리고 앞 다투어 외부인사 영입 추진 등 총선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 124일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하나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다음 20대 국회의 비례대표 의원 정수를 현행 54석에서 47석으로 줄인다는 골자였다. 당장에 합의한 두 정당 이외에 비례대표로 원내 진출을 희망하던 소수정당들의 눈앞에 빨간불이 켜졌다.

 

 

<ⓒ레디앙>

 

 

현재 19대 국회의 총 의원수는 300명이다. 이 가운데 새누리당이 156, 더불어민주당이 116석을 차지하고 있다. 전체 의석 중 두 정당이 차지하는 비율을 따져보면 무려 약93%나 된다. 반면에 소수 진보정당들 중 정의당만 그나마 5석을 갖고 있으며, 그 외 노동당과 녹색당은 단 한 석도 없는 원외정당 신세다. 이 중 정의당은 새누리, 더민주와 함께 원내정당 위치임에도 원내 교섭단체 자격 기준인 의원수 20명에 미달이라 교섭권이 없기 때문에 보수양당으로부터 무시 받는 처지에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가 복수정당제, 즉 다당제를 추구하고 있다지만, 현실적으로 양당체제와 다름없는 정당구조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지역주의와 인물, 계파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보수적인 정치문화에서 소수정당으로서 원내에 진출하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특정 정당의 과반의 의원 구성에 따른 다수당의 횡포를 미리 막고, 소수정당의 원내진출을 도모하고자 마련한 장치가 바로 비례대표제다. 현행 비례대표제는 총선에서 3% 이상의 정당지지율을 얻어야만 그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 1순위인 사람에게 비례대표 의원직을 부여한다.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 지역구에서 의원을 5명 이상 당선시켜야 지역구 의석 비율에 따라 비례대표직을 배분받게 된다.

 

그런데 현행 비례대표제는 소수정당에게 불친절하단 점 외에 또 큰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사표'의 가능성이다. 우리나라에서 소수정당의 경우 지역구에서 승리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실정이다. 일단 새누리와 더민주 양당의 견고한 경쟁구도 속에서 지지도가 턱없이 부족할뿐더러, 정당과 후보 개인의 열악한 재정상황으로 막대한 선거자금을 조달하기란 더욱더 힘들다. 때문에 결국 소수정당의 입장에서 비례대표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당장에 지지율도 3% 받기 힘든 마당에 정당득표율 3%를 얻으려 한다는 것 역시 큰 벽에 부딪치게 돼있다(3%가 당장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투표자 수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한 숫자가 된다). 다시 말해 정당득표에서 어느 정당이 최종적으로 3% 미만의 득표율을 기록할 시 던져진 그 표들은 전부 사표, 즉 '죽은 표'가 된다. 어느 한 유권자가 소신껏 소수 정당에 투표 하고 싶어도 만약 3%가 넘지 않으면 나의 표가 무용지물이 되지 않을까란 두려움 때문에 선뜻 투표하지 못 하는 현상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렇듯 소수정당은 도저히 살아남기 위한 돌파구가 없는 정치선거제도 현실에 놓여있다.

 

지난 2015년 초 국회는 선거구획정 관련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헌법재판소가 선거구별 인구 차이에 따른 투표가치 불평등 문제에 대하여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여기서 함께 거론된 제시안이 바로 비례대표제에 대한 개혁 작업이었다. 선관위는 이에 연동형비례대표제 방안을 처음 제시했고,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적 소수정당들이 주도적으로 이를 주장해오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현행 비례대표제가 단순히 정해진 비례대표 전체 의석수(현행 54)에서 득표율을 따져 비례대표를 배분했었다면, 그와 다르게 총 300석의 의석에서 정당득표율에 따라 고스란히 비례대표직을 배분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는 절대적으로 소수정당이 원내에 진출하기 유리한 제도로 여겨진다. 혹여나 지역구에서 아무런 성과가 없을지라도 현행 의석수를 전제하에 정당득표율을 단 0.5%만 기록해도 1명 이상의 의원을 배출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최근의 전국선거였던 2014년 지방선거에서 소수정당들의 각 정당득표율을 보자면 정의당은 3.52%, 노동당은 1.25%, 녹색당은 0.84%. 현행 비례제도로 계산하면 유일하게 정의당만이 고작 1석을 얻을 수 있는 초라한 기록이다. 하지만 이때의 각 정당득표율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입해보면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은 각각 무려 10, 3, 2명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 있다. 겨우겨우 정당득표율 3% 이상을 얻어야 비례 의원 1명을 얻을 수 있던 것에 반하여 얼마나 놀라운 효과이자 결과인지 눈여겨보게 된다. 

 

 

 

<‘6대 선거권역중앙선거관리위원회>

또 다른 방안으로 권역별비례대표제가 거론된다. 이는 더불어민주당이 현재 주장하는 것으로서 먼저 특정 권역별로 선거구를 나눈 다음, 국회의원 정수인 300명을 기준으로 해당 권역의 인구비례에 따라 각 권역별로 지역구 의원수와 비례대표 의원수를 더해놓은 할당된 총 의원 수를 배정한다. 그리하여 특정 정당의 득표율 결과에 따라 의석을 배분받는 제도다. 여기서 할당된 의원 수는 지역구 : 비례대표 = 2 : 1’의 비율이다. 예를 들어 서울(인구비례 약 20%)을 기준으로 인구비례를 하면 300명 의원정수 중 60명의 의원을 선출할 수 있다. 지역구 대비 비례대표 의원 비율을 2:1로 한다면 지역구 의원 총 40, 비례대표 의원 총 20명이 된다. 여기서 만약 어떤 정당이 서울 권역에서 20명이 당선되고, 40%의 정당득표율을 기록한다면, 원래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받을 24명의 비례 당선자 중 지역구 당선자 수(20)를 뺀 나머지 4명만 비례대표직을 배분받게 되어 총 24(지역구20+비례4)의 의원을 얻어가는 방식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시행하면 연동형보단 미비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소수 정당에게 역시나 기회를 줄 수 있고, 또 호남에서 새누리당이, 반대로 영남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비례대표 의석을 얻는 등 지역구도를 완화하는 데 도움 될 것이라 선관위 역시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계속되는 여·야의 협상 파행 소식에 정의화 국회의장까지 나서 선거구획정 및 비례대표확대 합의 촉구의 성명을 냈지만, 소수정당 야당의 득세가 실현될 것이 두려워서인지 새누리당은 그마저 무시한 채 전면 반대하고 나섰다. 자신들의 과반 의석수가 깨질 것이 우려되니 반대한다는 노골적인 언사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개혁하기 좋아하면서 정작 개혁당하기는 싫어하는 그 얄팍한 속내가 드러나보인다이렇게 정치 혁신을 뻔뻔히 거부할 수 있는 건 한국 정치사에서 이어져온 지역주의정치, 정당정치의 과두제, 제왕적 대통령제 등의 고질적인 폐단이 견고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점차 민주주의와 자유가 우리 생활과 의식 속에 깊숙이 자리함에 따라 다원화 시대가 도래했다. 사람들은 점차 계층별, 분야별로 각기 추구하는 바가 다양해지며 정치권력이 자신들의 더 나은 삶을 대변해주고 책임져주길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주류 정치세력들은 국민들의 삶보다는 위선과 권모술수의 정치로써 기득권 수호와 정권 획득에만 혈안이었다. 그게 다였다. 전보다 다양하고 세분화된 가치를 충족해주고, 또 사회적 문제와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정당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만의를 배제한 정치는 정치적 무관심층을 생산했고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넘어 전사회적인 신뢰와 연대를 깨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비례대표 확대를 위한 각 정당과 시민사회, 국회의원의 기자회견 모습 비례대표제포럼>

<왼쪽에서 두 번째부터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정진후 정의당 원내대표, 박원석 정의당 의원 정의당 트위터>

연동형(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로의 개혁은 그래서 필요하다. 비례대표제도 개혁은 먼저 보수양당의 독과점 체제가 쌓아놓은 정치적 진입장벽을 허물고, 사표가 줄며 비례성이 높아지는 데 크게 기여한다. 그리고 여러 소수정당들이 원내에 진입하여 정책으로써 경쟁하는 정치, 다양한 계급과 계층, 개인의 의사를 반영하는 정치의 환경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 또 이로써 정당정치의 활성화가 예견되는 바, 소수정당들의 주요 가치인 '탈핵', '노동', '복지', '실질적 민주주의', '평등', '평화', '생태', '인권' 등이 개개인의 정당 참여로써 조금 더 실현 가능해질 것이다. 연동형(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소수정당의 꽉 막혔던 숨통을 트게 해주리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암담하다. 앞서 말했듯이 새누리와 더민주, 보수양당은 비례대표제 개혁과 선거구획정의 합의 파행인 와중에 현행 비례대표 의원수를 줄이고 결국 본인들에게 유리한 지역구 의원수를 늘리는 게리맨더링을 저지르고야말았다. 여기서, 더민주는 도대체 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주장했는지 의아할 수밖에 없다. 또, 새누리는 직접 말만 안 했을 뿐, '지역주의를 좀먹으며 기생할 것'이라 공공연한 다짐을 한 셈과 진배없다. 이 밀실야합은 거대 보수양당이 정치문화 전반을 혼탁하게 만들고 결국 자신들의 기득권만 수호하려했다는, 유권자들의 비판을 결코 면치 못 할 것이다. 아마도 현대정치사에도 길이 남지 않을까 싶다. 우리 사회엔 경제민주화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정당정치, 선거제도의 민주화 또한 간절히 필요하다. 연동형(혹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개혁하는 정치혁신은 '숨통이 트이는 정당정치', '숨통이 트이는 사회'로 변화하는 움직임에 크나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주체'의 가벼움



▲  새누리당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홍보하기 위해 10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대로변에 걸었다 떼어낸 현수막을, 14일 저녁 다시 내걸었다. ⓒ 오마이뉴스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학생들이 배우고 있습니다." 


'주체사상을 배우는 학생'은 필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필자는 김일성 주체사상만을 배우지는 않았다. 김정일 주체사상, 김정은 주체사상까지 다 배웠다. 주체사상의 내용은 물론 주체사상의 역사까지 세세히 공부했다. 지금 필자의 말을 듣고 독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필자가 주체사상을 공부한 이유는 간단했다. 무엇보다 주체사상을 알아야 북한을 알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필자는 동국대학교 북한학과를 다닌다. 


필자가 주체사상을 공부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대번에 '뜨악'하는 표정을 짓거나 "그럼 북한을 옹호해?"하고 묻는다. 직접적으로 "빨갱이야?"하고 비꼬는가 하면, 군필자인 필자에게 "군대 헛 갔다왔네"고 말하기도 했다. 필자가 평소 북한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따금씩은 누구에게나 불편한 정치적 이야기를 꺼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표정과 눈빛을 통해 깨달은 사실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주체사상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주체사상을 공부한다'는 말을 곧 '주체사상을 믿고 따른다', 혹은 '주체사상을 믿고자 하고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였다. 필자가 말하는 공부는 후자의 의미를 전혀 담고 있지 않고, 순수하게 그 의미와 역사를 알아간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부가적인 설명을 덧붙여야만 사람들도 '아~' 한다. '네가 그 정도는 아닐 줄 알았어'하는 안도감과 함께. 물론, '그래도 그건 아냐'라며 극도의 거부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온건한 것, 불온한 것


한국의 공부는 온건한 공부와 불온한 공부의 두 갈래로 나뉜다. 온건한 공부는 불온하지 않은 공부이고, 불온한 공부란 국가비판적 공부다. 불온한 공부의 3대 대명사가 바로 공산주의, 사회주의, 주체사상이다. 누군가 경제학의 케인즈주의를 공부한다고 해서, 아무도 그를 '케인즈주의자'라고 일컫지 않는다. 하지만 불온한 공부의 3대 대명사는 다르다. '저 공산주의 공부해요'라고 말했다간, 근처에 있는 할아버지에게 등짝을 얻어맞기 딱 좋다. 그것이 불온한 공부기 때문이고, 앞서 말했듯 불온한 공부는 불온한 사상을 내면화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주체사상은 결과적으로 '수령절대주의' 사상이다. 주체사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모를지언정, 그것이 수령절대주의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주체사상을 실제로 공부해본 결과, 그것이 수령절대주의라는 사실은 더 명확해졌을 뿐이다. 고등교육과정 정도를 거친 누구라도 주체사상을 공부해 본다면, 그 부정적인 진실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주체사상은 아직까지 금단의 영역이자 악의 성지다.


시민사회와 언론도 이 금단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새누리당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주장하기 위해 '주체사상'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들고나왔을 때, 시민사회와 언론을 중심으로 한 반대파는 크게 두 가지의 비판을 했다. 첫째,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 그럼 역사교육을 받은 한국 청년이 전부 주사파냐? 둘째, 그래, 역사교과서에서 주체사상 가르친다. 북한의 현실을 명확히 꼬집을 수 있도록 잘 가르치고 있다. 새누리당이 주체사상 운운하는 데에 대하여, '우린 너희가 생각하는 종북좌파가 아니야!'라고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와 보수단체 회원들이 10월 30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찬성하며 친북 반국가 교과서 집필진 퇴출을 촉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가장으로서의 국가, 식솔로서의 시민


이런 비판의 방향이 틀린 것은 아니다. 실제로 모든 반대파가 종북좌파가 아니기 때문이고, 또한 합리적인 비판을 하고 있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반대파를 '종북좌파'나 '빨갱이'의 사상프레임 속에 가둬놓으려고 하는 것은 진부하기까지 한 전략이다. 하지만 그들이 끊임없이 '종북프레임' 전략을 구사하는 이유는, 이 전략이 먹혀 들기 때문이다. 단순히 새누리당 집권층을 공고히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반대파 또한 그 프레임 속에서 흔들리기 때문이다. 


미국 미시건 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인 리처드 니스벳은 그의 저서 <생각의 지도>에서 "한국과 북한을 비교하고 서로의 장단점을 논하는 논쟁이 벌어진다면 모두가 한국의 우월성을 인정할 것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논쟁의 전통이 없는 한국인에게는 옳은 주장이 결국 승리하리라는 신념이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한국 정부는 북한에 관한 정보로부터국민을 '보호'하고자 했고, 북한에 관한 어떠한 형태의 정보도 공개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이는 오늘날의 한국과 오늘날의 한국시민들도 마찬가지다. 


'종북' 담론은 반국가적 세력에 대한 국가의 무제한적 탄압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종북 담론은 옳은 사상을 가진 국가가 사상적으로 미성숙한 시민을 보호한다는 식의 가부장적 기제와 닿아 있다. 새누리당은 '주체사상 학습'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주사파의 부활을 암시했다. 주사파의 부활은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비상사태일 뿐만 아니라, 미성숙한 시민들에 대한 사상적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북한이라는 적을 앞에 둔 상태에서, 국가는 또 한 번 아버지로서의 존재를 꿈꾸고, 시민은 '아버지, 저희 그런 거 아니에요!'하고 외치며 기겁하고 있다.



주체사상 배우면 어때서? 내가 너보다 북한 비판 잘할 걸?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라는 말이 아직 대한민국 사상공간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국가는 물론 시민조차도, 시민 개개인이 자신의 합리적 사고를 통해 북한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리라고 믿지 않는다. 지금의 한국사회는, 아직도 "주체사상 배우면 어때서?"라는 질문에 극도로 조심스럽다. 1980년대 민주화 세력의 한 축을 담당했던 이른바 NL계열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핵심적으로는 그건 그 질문에 응당 따라나올 '북한이 말하는 거니까', '북한에 동조하려고?'식의 비논리적인 비판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물어봐야 한다. '일본의 다케시마 주장을 읽으면 거기에 동조하게 되니? 중국의 동북공정을 공부하면 고구려를 빼앗기니? 그건 바보지.' 새누리당의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주체'적 정치논리에 끌려다니지 말고, 합리적이며 전면적으로 되물을 수 있어야 한다. "주체사상 배우면 어때서?"라고, "대한민국 시민이 주체사상을 공부한다고 주체사상에 빠져버릴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고.


주체사상을 공부하다 보면 북한 김씨 일가의 연설이나 담화를 접하게 된다. 1955년 12월 28일 김일성은 "당사상사업에서 교조주의와 수정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데 대하여"라는 연설을 통해, 북한식의 주체적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1992년 1월 3일 김정일은 "사회주의건설의 력사적 교훈과 우리 당의 총로선"이라는 담화에서 배신자들의 반동적 궤변에 의해 사회주의국가들이 몰락하고 있다고 외쳤다. 


지난 10월 10일 김정은은 당창건기념일 연설에서, 인민은 당을 어머니처럼 무한히 신뢰해야 하여 일심단결해야한다고 말했다. 이틀 뒤인 10월 12일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자 "하나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주체사상 배우길 참 잘했다.



(본 글은 2015년 10월 26일 오마이뉴스에 게재되었던 기사입니다.)


졌다. 그야말로 뼈아프게 졌다. 최근 논란인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야권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야권 정당들은 재보궐 선거가 치러진 4곳 모두에서 모두 참패했다. 선거를 앞두고 야권은 내심 자신했을 것이다. 새누리당 소속 몇몇 중진 의원들을 비롯해 지역단체장, 심지어 현직 총리와 청와대 비서실장의 이름까지 리스트에 올라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기 좋게 예상은 빗나갔다. 대표적인 새정치연합 텃밭이었던 ‘광주(서구을)’는 물론, 지난 27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야권 세력이 승리했고 불과 얼마 전까지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이 있던 서울 ‘관악을’에서마저 패배했기에 그 충격은 더욱 컸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그 귀추에 여야의 이목은 더욱 집중됐었다. 바로 내년에 있을 총선의 결과를 미리 가늠해볼 ‘바로미터’ 역할의 선거라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고 제1야당이라는 새정치연합, 그리고 정의당을 비롯한 군소정당들의 존폐 위기까지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http://www.incheonin.com/2014/news/news_view.php?sq=29103&m_no=2&sec=7

 

새정치연합이 내세운 선거 구호는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정권심판론’이었다. 선거 직전에 터진 ‘성완종 리스트’에 기대를 걸었지만 지역 주민들은 자신들의 표를 행사하는 데 있어 냉담했다. 더구나 새누리당과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주류언론들의 노무현 정권과 연관 짓는 물 흐리기 전략으로 기사 면을 도배하는 통에 대다수 국민들은 사건의 심각성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애초에 이번 재보궐선거는 시작 전에 정치 구도상 야권에 불리했다. 헌법재판소의 무리한 통진당 해산판결로 인해 치러지게 됐고, 이미 야권을 향해 ‘종북’이라는 근거 없는 낙인을 찍는 여론이 형성된 이상 중간층의 민심은 요동칠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선거는 부당한 정당해산판결에 반대하여 야권이 한 마음으로 ‘前 통진당’ 후보들에게 양보하고 연대하여 다시금 후보로 나서게 해주면 어떨까란 생각을 했었다. 통진당의 해산판결은 곧 야권 전체의 위기를 몰고 올 수 있을 만큼의 무서운 사건이기 때문에 그 부당함에 정면돌파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선거에 도의란 물론 중요한 요소이지만 도의만으로 선거를 치를 수 없는 노릇일 테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확신 없는 희망을 갖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안타까운 이유들을 극복하길 바라는 심정에서라도 야권이 더더욱 승리해주길 바랐다. 그러나 제1야당이란, 야권의 큰형님을 자처하는 새정치연합은 이번 선거에서도 무능력한 형님의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아무리 4곳에 불과한 ‘미니’ 선거였지만 정권심판론을 외치는 것뿐만이 아닌 정책과 비전 있는 선거를 내심 기대했었다. 예전과 달리 국민들은 이제 선거를 임하는 데 있어 더 신중해지고 성숙했다. 결코 ‘못 살겠다, 갈아보자’와 같은 추상적인 구호만 외치는 선거 전략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오늘날 유권자는 이념과 정당에 상관없이 진정 자신의 삶을 더 희망적으로 바꾸어 줄 수 있는 정책을 내놓는 후보를 지지한다.

 

오마이뉴스 고정미

 

결국 이번 선거에서 정권심판론은 ‘야당심판론’이란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새정치연합의 그동안의 오만함과 무능함을 국민들이 오히려 심판하고 나선 것이다. 특히나 야권 텃밭인 호남의 결과는 그 민심의 심각성을 더욱 또렷이 보여준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오히려 총선이 아닌 재보궐선거에서 이런 결과를 얻은 것이 다행일 수 있다. 총선까지 남은 기간 동안 개선의 여지가 주어진 것 아니겠느냐는 생각에서다. (물론 야권 분열이 참패의 원인이라며 책임을 전가하는 몇몇 야당 관계자와 지지자들의 입장을 보면 답답하고 화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다음 제20대 총선이 1년도 채 안 남았다. 그래서 지금 야권들에게 4.30 재보선 성적표를 들여다보면서 더욱 ‘처절히 절망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야만 자신을 더욱 되돌아보고, 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치열한 전략과 정책을 세울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음 총선은 야권 진영의 운명을 가를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그 이듬해엔 대선이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사활을 걸고 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난 2010년 국민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획기적인 정책들이 펼쳐지는 지방선거를 경험했고, 아직도 잊히지 않을 만큼의 강한 인상을 느꼈었다. 이제는 야권 세력들에게 그 저력이 아직 남아있음을 국민들께 다시금 보여주기 위해 노력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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