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만나면 ‘ 요즘 무슨 일 하세요? ’ 라고 묻는다.

 소속이 없고 일을 쉬고 있는 나는 답한다.

 ‘ 저는, 지금 퇴사 중입니다. ’

 

 어느 날 오후 회의를 하는 내 모습을 마주했다.

 내가 제일 힘들어하고 닮고 싶지 않았던 ‘회색인간’이 되어서 말하고 있었다.

 내 모습이 낯설었다.마음 속에는 선인장을 키우고, 세상과 사람들에겐 바짝 가시를 세우고 움츠리고 있었다.

 마치 속살은 섬세하지만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시를 세우는 고슴도치처럼 말이다.

 다들 사회생활이 그렇다고 하니 멀쩡한 척, 괜찮은 척하며 견디며 살았다는 걸 깨달았다.

 

 퇴사를 하면 여러모로 힘들고 포기하고 도망치는 것 같아 머뭇거렸다. 또 일을 해야만 쓸모가 있는 사람이라고 존재의 가치를 느끼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누군가를 포용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보기 어렵고

 글을 쓰거나 주변의 것을 예찬하지 못하고 있는 회색 고슴도치였다.

 그곳에서 나와 비슷한 고슴도치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모두가 소모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일하고 싶지 않기로 했고,

 나는 사직서 7장을 쓰고 퇴사를 선언했다.


 회사 행정상 제출해야 했던 사직서 1장엔 ‘일신상의 이유’로 적어야 했다.

 퇴사의 이유는 마음 속의 복잡하게 얽힌 감정실 타래 같은데, 어떻게 한 줄로 정리할 수 있나.

 나의 젊은 날에 잠시 일했음에도 삶의 우선순위와 가치가 뒤흔들렸다. 나랑 맞지 않은 옷을 입고 가면을 쓰고 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통제하고 관리하고 있었다. 참 폭력적이여서 마음에 상처투성이었다.

 지금은 나답게 일을 하고 함께 일할 방법을 고민하면서 나의 일경험과 사회생활을 회고하고 있다.

 아직도 난 회사와 일에서 완벽하게 퇴사하지 않은 것만 같다.

 내 안에 이해가, 소화가 되지않은 것들이 참 많다.

 서류상 퇴사했지만, 나는 아직도 퇴사중입니다.


 퇴사하고 나니 홀가분하면서도 덧없음을 느끼고, 또 다른 결의 공허함을 느꼈다.

 바쁘게 지내야 할 것만 같아서 서울을 다녀오던 밤에

 나의 빈자리를 채우는 채용공고를 봤다.

 ‘ 나는 대체가능한 인력이었구나. 내가 대체불가능한 인력이 되고 싶었구나 ’ 를 느꼈다.


 그 날은 잠들기 그른 것 같았다.

 ‘ 벌써 나의 존재가 지워지고 잊혀가는 구나.’ 라는 아쉬움과

 ‘ 새로운 사람은 뭔가 이상한 곳에 잘 적응할까? 나와 다르게.’라는 걱정이 생긴다.

 ‘ 나만 못 견디고 적응에 실패한 걸까 ’ 하는 쓸데없고 자존감을 낮추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계약직이라는 앨범 속에 공집합이 부르는 퇴사 노래를 들으면서

 많은 사람이 나와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생각을 하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낀다.

 ‘ 우린 아직도 퇴사 중이구나. ’  



“ 등을 돌려 떠나가네 남겨둘 것 없는 채로

아쉬워할 틈도 없이 예정대로 지워지네


내가 있던 자리. 당연했던 일상. 함께였던 사람들

모두가 낯설어져만 가네


내가 있던 자리. 당연했던 일상. 함께였던 사람들

모두가 낯설어져만 가네

모두가 잊혀져 가고 있네

모두가 희미해져만 가네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는 하루가 그대로 지나가네

아무 일 없이 무사할 걸 알면서 어쩐지 뒤를 돌아보게 되네


등을 돌려 떠나가네 남겨둘 것 없는 채로

아쉬워할 틈도 없이 예정대로 지워지네.

< 퇴사 - 공집합 > 가사



 

[ 퇴사하면서 하고싶었던 말 #1. 넌 날 담을 큰 그릇이 못된다 ]




추신 :

오랜만에 저의 이야기를 담는 글을 쓰네요. 글을 쓰지 않았던 3년 가까운 시간동안 저에게 참 많은 일이 있었어요. 느영나영 함께 살고 나다운 삶을 찾아서 대안적으로 살려했지만,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내기도 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었죠. 딱 그 시기에 사회와 사람에 대한 순진한 희망을 품고 소위 좋은 일을 시작했어요. 차차 글에 담아내겠지만 엄청난 일들을 겪고 나서 두 달 전에 서류 관계로 완벽히 퇴사했어요. 앞으로 제가 듣고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제 퇴사기를 비롯해서 많이들 공감할 수 있는 고민을 담아서 글을 쓸게요. 글과 음악을 통해 함께 알아가고 소통할 수 있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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