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붕괴가 남북 통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어떤 세계를 이해하는 길은 그 세계의 밖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전공이 북한학인 필자는 이 말에 적극 동의한다. 북한을 이해하는 길은 북한 밖에 있으며, 마찬가지로 한국을 이해하는 길은 한국 밖에, 남북을 이해하는 길은 한반도 밖에 놓여있다. 89년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진 이후에 우리 사회에 대한 반성이 더욱 객관화되고 정밀해질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특히 북한 붕괴와 관한 이야기가 넘실대는 최근에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에 더욱 절절히 공감할 수밖에 없다.


태영호 전 북한 외교관의 탈북을 시작으로 ‘북한 위기론’이 온 사회를 휩쓸고 있다. 10월 1일 국군의 날 행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 주민들의 탈북을 적극 독려하는 발언을 했고, 북한은 발끈하여 헛소리 하지 말라는 무지막지한 발언을 내놓았다. 그 이전에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 위기론을 기정사실화하듯 김정은 위원장에게 “정신상태가 온전하지 못하다”고 말했고, 북한은 “죽을 날이나 기다려라”고 대답했다. 국가 수반 사이의 외교적 발언이라고는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는 발언들이 오가고 있다. 최근에 한국 당국은 북한에서의 대규모 탈북에 대비한 탈북민 캠프를 설치하는 구상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태영호 전 북한 외교관. 태영호 탈북 이후 '북한 고위층 탈북'이라며 북한 위기론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북한이 실제로 위기에 처해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이전에, ‘북한의 위기’라는 담론 이면에 숨겨져 있는 한 줄기의 사유를 파헤쳐야 한다. 북한 위기론은 하나의 강력한 사유체계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는데, “북한 붕괴는 곧 통일”이라는 사고방식이 그것이다. 사실일까? “북한 붕괴는 곧 통일”이라는 명제는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판단해볼 수 있다.

 

1. ‘위기’, '급변사태', '붕괴', ‘통일’은 딱히 상통하지 않는다

 

가장 먼저 짚어두어야 할 것은 북한의 ‘위기’, '급변사태', '붕괴', ‘통일’이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북한의 위기는 급변사태로 이어진다’, ‘북한의 급변사태는 붕괴로 이어진다’, ‘북한의 붕괴는 통일로 이어진다’는 명제는 단언컨대 단 하나도 성립되지 못한다.


제재, 도발 등의 방법으로 북한을 자극하면 필연적으로 북한 내부에 어떤 형식으로든 통제가 어려운 위기 및 급변사태가 발생하고, 이는 국가의 붕괴로 이어지며, 남한 주도의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 붕괴통일론의 핵심이다. 또한 이것이 북한 위기론의 기저에 깔려있다.


그러나 급변사태는 말 그대로 급변사태일 뿐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북한에 닥친 위기가 급변사태로 이어진 경우는 굳이 꼽아봐야 90년대 말의 ‘고난의 행군’ 시기밖에 없으며, 그것조차 붕괴로 이어지도록 하지 않았던 것이 북한의 시스템이다.


북한 고난의 행군 시기 MBC 보도



고난의 행군이야말로 붕괴로 이어질 개연성을 가장 크게 갖춘 사태였는데, 당시 많은 주민이 아사했고, 북한의 국가 시스템은 깡그리 붕괴했으며, 이에 최고 고위층이었던 황장엽을 포함한 대규모 탈북사태, 대규모 작업장 이탈, 극심해진 지역차별 등의 상황이 닥쳤다.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북한이 당연히, 정말 당연히 멸망하리라 예상하고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민은 이에 적응하기 위해서 장마당을 개설하고 이를 발전시켰으며, 국법보다는 주민 자체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비성문적 법칙을 만들어나갔다. 북한 정부는 장마당을 허용하고, 위법행위에 대한 처벌을 완화하였으며, 이 사태를 '고난의 행군'이라 명명하며 인민의 이해와 인내를 이끌어냈다(고난의 행군은 김일성의 항일 투쟁 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칭하는 용어다). 한 국가가 멸망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급변사태가 북한에서는 붕괴로 이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관련 글: 근거 없는 '북한 붕괴론'이 위험한 이유)


설령 어떤 급변사태가 발생했을 때, 붕괴되는 것이 단순히 국가라고 할 수도 없다. 붕괴는 단순히 ‘국가붕괴’만을 의미하지 않고 사회주의 체제나 주체사상의 몰락인 '체제붕괴', 혹은 김씨 일가의 몰락으로서의 '정권 붕괴'까지 포함하는 말이다.


가령 쿠데타라는 급변사태가 닥쳤을 때, 쿠데타 세력은 자신들의 생존을 한국이나 미국에 맡기기보단 중국이나 러시아에 의존하고자 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쿠데타 세력이 고위층일 경우 지금까지 북한에서 일어났던 인권탄압의 책임을 한국이나 미국이 가만히 놔둘 리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쿠데타 세력이 민중이라고 하더라도, 남북관계가 파탄나고 북중관계만 살아있는 오늘날 중국보다 한국이 매력적일 이유는 하등 없다.


쿠데타 세력이 김씨 일가를 몰아낸다고 하더라도, 덩샤오핑과 같이 자기식 자본주의를 개발하거나, 소련 이후의 러시아처럼 기존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해체하고 북한 지역에 새 국가를 선포할 수도 있다. 국제적으로 정권붕괴 혹은 체제붕괴 시 타국이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으며, 국가붕괴 시에는 북한 주민들이 제3국을 건설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가장 개연성이 높다.


2. 국제사회는 북한 붕괴 이후의 남북통일을 허용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북한이 실제적 붕괴를 맞이한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붕괴 국면에서 미국, 중국 등 강대국을 제치고 한국이 끼어들 틈은 없다. 중국과 러시아는 결코 위기에 빠진 북한이 이후에 한미일 세력에 포섭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미국 또한 중국과 러시아를 깡그리 무시한 채 북한을 집어삼키려 할 수 없다. 현상유지적 안정을 꾀하는 국제사회가 남북통일을 도울 이유도 전혀 없다. 냉정해지자. 북한 붕괴 시 한국 주도의 통일이 이루어지리라는 생각은 희망적 사고에 불과하다.


특히 중국의 존재감이 위압적이다. 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은 또 한 번 그와 같은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무조건적인 ‘주체’ 정신을 버리고 중국에 의존하기 시작했다(이 때 중국의 간섭에 대한 최후의 보루로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 ‘핵’이다. 1차 핵실험 이후 김정일은 ‘이제 중국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겠구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북한에 지원을 하지 않으면 북한은 저절로 위태로워지고, 고난의 행군과 같은 새로운 급변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가하면 할수록 북한은 중국을 향한 문을 더 활짝 열어갔다.


10일 북한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김정은(오른쪽)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류윈산(劉雲山)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손을 잡은 채 팔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남북관계가 파행을 시작한 2008년 이후 이와 같은 상황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북한의 대외 교역량 중 대중 교역량이 90%에 가깝다. 뿐만 아니라 위화도, 황금평 등의 땅과 각종 자원에 대한 채굴권을 중국에 팔고, 서해 어업권은 물론 동해 어업권까지 중국에 판매했으며, 창지투 개발지구와 같은 북중 협력을 강화하고, 심지어는 나진항을 중국이 사용할 수 있도록 내어주기까지 하며 북중경협을 공고히 하고 있다. 최근 중국이 동북3성을 개발하는 점을 적극 이용하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북한이 붕괴했을 때 북한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가장 크게 행사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또한 중국은 한국보다 많은 사업자를 북한에 보내고 있는데, 중국이 ‘북한 내 중국인을 보호한다’는 식의 명분으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주장할 때, 한국이 주장할 수 있는 명분은 무엇이 있는가? 남북 간 합의서 따위는 지금까지 다 종잇조각에 불과했다. 중국의 ‘자국민 보호’ 명분 앞에 한국이 ‘원 코리아’ 따위를 주장한다 해도 이 추상적인 개념을 과연 어느 나라가 인정할 것인가? 개성공단이 폐쇄된 이후에는 북한에 대해 우리가 주장할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만약 북한이 완전히 붕괴되어 무정부상태가 되더라도 중국은 북한이 스스로 제3국을 건설할 수 있도록 돕거나 분할신탁통치를 해야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북한이 급변사태를 맞이하거나 붕괴할 가능성이 있을 경우 북한이 중국의 영향력을 벗어날 위험이 있고, 1,400km에 달하는 북중 국경선을 통한 대규모 탈북사태로 중국 동북3성의 질서가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특히 대량탈북 사태는 탈북민의 난민 지위 문제로 다시 한 번 중국을 곤욕스럽게 할 것임은 물론 북한 주민-탈북민-조선족을 끈끈하게 묶어 조선족발(發) 분리주의를 촉발시킬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중국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를 막으려 할 것이다. 


또한 중국은 북한과 유일하게 군사 동맹을 맺고 있으므로, 북한이 붕괴할 경우 북한에 군사적 진입을 할 수 있는 누구보다 강한 권한과 명분을 가지고 있다. 신빙성은 미약하나, 북한 급변사태 시 군사를 투입해 남포와 함남 이북지역을 신속하게 점령해 통제하겠다는 '병아리 작전'의 존재가 알려진 적이 있으며, 이와 비슷한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물론 중국은 내정 불간섭의 원칙을 가장 중시하는 나라이므로 이와 같은 걱정은 기우일지도 모르지만, 미국이나 한국이 북한 지역에의 권리를 마음껏 주장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 리도 만무하다. 중국에게 북한은 순치관계에 있는 국가이자 미국에 대한 압박 카드로서 결코 없어서는 안되는 국가다. 중국은 북한이 관련된 모든 문제에 대해서 침묵하거나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있다. 최근 미사일이나 북핵문제와 관련해 북한을 압박하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동조하고는 있지만, 군사적 대립관계가 경제적 협력관계와 큰 연관이 없는 점, 그리고 이미 언급했듯 중국이 정말 필요로하는 국가라는 점에서 안보-경협을 분리해서 접근할 것이다. 


미국 또한 위와 같은 상황을 염두하여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일정 수준 이상 펴지 않고 있다. 이를테면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정하면서도 한국과 군사작전 계획을 세울 때엔 핵무기 등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통제권만 가지고 통일이나 북한에 대한 진군 등 나머지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관여하지 않는 것이 미국의 속내를 반영하는 것이다.


기실 북한이 석유나 천연자원을 다량 보유한 국가였다면, 북한은 미국의 공격과 점령에 이미 망했을 것이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한국만 필요할 뿐, 구태여 남북통일을 이끌어 중·러와의 관계를 꼬아버리고자 하지 않는다.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통제권만 가질 수 있다면 문제덩어리인 북한이 어떻게 되든 관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3. 오늘날 북한붕괴통일의 끝은 재앙이다




최근 최승호 기자가 연출을 맡은 <자백>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했다. 박근혜 정부 하의 국정원에서 기획한 탈북민 간첩조작사건을 담은 영화다. ‘먼저 온 미래’라고 불리는 탈북민들, 그들이 살아가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단면을 짐작해볼 수 있게 한다.


지금조차 이러할진대, 통일 이후 남북 주민 간 화합을 기대하는 일은 허황된 꿈이다. ‘종북’, ‘빨갱이’에 대한 위기의식이 만연한 한국사회에 이북 출신의 진짜 빨갱이가 대거 남하한다면? ‘종북’ 수준이 아닌 ‘북’ 그 자체가 한국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북한 주민들에게 무조건적인 변화와 순응, 그것이 아니면 퇴출을 요구할 것인가? 이것은 식민지 조선에 대한 일본제국의 주장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순응이 아니면 죽음을.” 영화 <밀정>에서 데라우치 총독이 식민지 조선인에게 말했다고 소개된 말이다. 이에 북한 주민들이 남한의 고압적인 태도에 못이겨 “분리독립하자”고 주장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어디 감히?”라고 말하며 총칼을 들이밀 것인가?


‘북한 위기론’ 기저에 있는 ‘붕괴통일론’에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우리들의 뿌리깊은 선민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승리한 대한민국과 실패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 승패의 구조에서 패자인 북한은 승자 남한의 경험을 그대로 전수받아야하며, 그 과정에서 불만은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1948년 민주주의 국가로 출발한 우리도 87년에 민주적 절차성만을 간신히 갖췄다. 자그마치 40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그조차도 반성이 많다). 독일은 통일 전부터 남북보다 더욱 전향적인 평등주의를 추구했지만, 통일 후 3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동서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 못했다. 우리는 북한에 대해 그보다 더 긴 시간을 기다려줄 수 있을까? 지금 갑자기 통일이 된 한반도,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있을까?


러시아가 일본에 제안한 시베리아 횡단철도 연장 계획 ⓒ한겨레신문



지금까지 통일 편익으로 제시되었던 수많은 근거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열차다. 통일 한반도에서 서울에서 파리까지 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탈 수 있다는 것은 가장 매력적인 통일의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런데 남북 경색 국면이 지속되자,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한반도를 우회하여 쿠릴열도를 거쳐 도쿄로 이을 구상을 내비치고 있다.


세계는 점차 화합해가는데, 한반도가 버려지고 있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통일도 되기 전에 통일편익이 사라지고 있다. 북한 위기 및 붕괴가 통일로 이어질거란 막연한 희망 속에서, 통일의 희망은 점차 시들어가고 있다.




90년대, 북한에 닥친 재앙 수준의 위기


북한 전 외교관인 태영호의 탈북 이후로, 정부부처부터 수많은 언론사들까지 북한에 드디어 망조가 보인다고 신이 나서 떠들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판단은 지극히 편협하다. 1990년대 북한은 지금보다 훨씬 심각한 체제 위기를 겪었으나, 이를 이겨냈다. 이것이 왜 가능했는지의 역사를 조금만 살펴봐도, 지금 창궐하는 북한붕괴론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알 수 있다. 더불어, 북한붕괴론이 얼마나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도 가늠할 수 있다.


1990년대로 돌아가보자. 민주화 운동과 극심한 체제 위기를 겪던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은 1989년부터 붕괴하기 시작했다. 폴란드, 헝가리, 동독, 체코,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등, 전통적인 북한의 우방 국가들이 사회주의 체제를 내팽개치기 시작했다. 89년 6월에는 중국에서 그 유명한 천안문 사태가 발생했다. 심지어 중국은 70년대 말부터 개혁개방 정책을 펼쳤는데도! 1990년에는 독일이 통일되면서 동독은 자연스레 붕괴되었다. 남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사실상 패배한 북한에게는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설상가상으로 1991년에는 사회주의 국가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소련이 마침내 해체되었다. 북한은 몇 년 사이에 세계에서 유례없는 외딴 나라가 되어버렸고, 이 즈음 북한붕괴론은 본격적으로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북한이 국제적으로 얼마나 심각한 위협을 느꼈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1994년 김일성 사망을 보도한 동아일보 지면. 김정일 체제가 안정적일지, 김일성의 죽음이 연사인지 피살인지 등을 다루는 기사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뿐만 아니었다. 북한은 80년대부터 전면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경제계획 실패와 각종 자연재해로 유례없는 경제난을 마주하고 있었으며, 사회주의 국가가 붕괴하며 외부 지원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경제 상황은 하루게 다르게 나빠지고 있었다. 중국과의 관계도 89년 중소 국교정상화를 계기로 상당히 껄끄러웠는데, 중국은 한 발 더 나아가 92년에 남한과 수교를 맺어버렸다. 북중관계는 그야말로 끝장난 지경이어서, 북중 접경지역에서는 총격전이 벌어질 정도였다. 국제적 고립과 경제난이라는 상황은 수습되기는커녕 끊임없이 악화되어 갔다.


더욱 엄청난 문제가 터졌다. 94년에 김일성이 사망한 것이다.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에는 배급제가 붕괴하고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 본격화되어, 북한 당국의 주민에 대한 법적·물리적·경제적·사상적 통제력이 상실되다시피 했다. 몇 십 만 명이 아사하기 시작하고, 주민들은 당국의 지시를 거부하고 자체적으로 살 길을 찾기 시작했다. 80년대까지는 남에서 북으로 가는 탈남 현상이 많았는데, 이 시기 이후에는 탈남 현상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대규모 탈북 사태가 벌어졌다. 김일성 사후 북한 지도층 내부에서 김정일이 무자비한 숙청을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고, 이는 김정일 정권이 불안정하며 지도층의 불만이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해석되었다. 97년에는 주체사상의 창시자인 황장엽마저 남측으로 망명하며 북한붕괴론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당시 북한이 처했던 상황은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더구나 당시에는 사회주의 국가 붕괴라는 실제적인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전 세계 모든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북한 또한 곧 붕괴하리라 예측했다. 그 어떤 학자나 정치인도 별 의심을 품지 않았다. 그런데, 북한은 살아남았다.


북한이 살아남은 이유


도대체 북한은 어떻게 살아남은 것일까?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주체사상의 힘이다. 여타 사회주의 국가들이 기치로 삼았던 사회주의(맑스-레닌주의, 스탈린주의, 모택동주의 등)과 북한의 주체사상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맑스-레닌주의, 스탈린주의, 모택동주의 등은 자기만의 영역과 사상을 공고히 구축했음에도, 맑스식 사회주의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스탈린조차 맑스주의를 뛰어넘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그런데 주체사상은 맑스식 사회주의라는 틀을 과감히 뛰어넘었다. 맑스식 사회주의 이전에 있었던 다른 사회주의들은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북한은 맑스주의를 과감하게 비판하며 주체사상을 치켜세웠고, 이를 통해 어버이 수령과 어머니 당에 대한 충성심은 종교적 신앙 수준으로 치달았다. 부모를 축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두 번째는 상호감시체계다. 주체사상이라는 명확한 삶의 이정표가 세워진 가운데, 북한은 주민들이 서로를 감시하게 하여 주체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상호감시체계로는 '생활총화제도'가 대표적이다. 북한 주민들은 학생, 직장인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이 때 자기반성과 더불어 필수적으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해야 하는데, 이 때 다른 사람의 잘못을 알고 있음에도 지적하지 않으면 죄가 된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잘 지적하거나, 이른바 반국가적 행위를 포착해내면 큰 보상이 뒤따랐다. 주체사상이 생각을 묶는 족쇄였다면, 상호감시체계는 행동을 묶는 족쇄였다.


세 번째는 김정일의 지도력이다. 90년대 당시 북한이 처했던 상황은 단순한 위기가 아니라, 트라우마로 남을 만큼 엄청난 충격의 연속이었다. 재앙처럼 닥치는 위기에 맞서 혼란스러운 정국을 수습하려면 정치력 이상의 능력이 필요했고, 김정일은 이를 정확히 간파했다. 김정일은 마치 악단의 지휘자처럼 북한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김정일은 사회주의국가의 붕괴는 사회주의와 주체사상으로 철저하지 무장하지 못한 가운데 불순한 책동세력이 활개쳤기 때문이므로 사상을 더욱 강화하라고 주문했다. 91년에는 남측과 함께 UN에 동시가입하여 국제적으로 개별국가임을 확인하는 동시에, 불가침조약(91년 남북기본합의서)을 맺어 동요하는 지도층을 달랬다. 그리고 최악의 경제난에는 고난의 행군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고난의 행군은 김일성이 항일투쟁시절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을 견뎌야 했던 시절을 일컫는 말이다. 즉, 어버이 김일성이 인민을 위해 감내했던 시간을 생각하며 견디자는 감정적인 호소를 북한 주민들에게 던진 것이다. 김정일은 이외에도 주체사상을 발전시킨 선군사상을 계발하고, 법체계를 정비하고, 상호감시체계를 통해 쿠데타 시도를 저지하고, 필요한 경우엔 정치적 숙청도 서슴지 않으며 혼란을 차근차근 수습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북한은 살아남았다.


오늘날 김정은 정권이 불안정하다고 말해도, 김정일 시대만큼 불안정할까? 억압적인 정권이 또 다른 정권으로 바뀔 때 지도층의 이탈은 언제나 있어왔던 일이다. 90년대의 북한이 위기를 겪어내게 했던 힘인 주체사상과 상호감시체계는 여전히 유효하다. 물론 김정은의 지도력이 어떤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김정일 사후 지금까지는 지도력이 불안정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


북한보다 먼저 붕괴할 북한붕괴론의 실체


물론 북한이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식으로 확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과 북한의 역사를 살펴보면 북한이 망하리라는 주장이 얼마나 근거없는 것인지 알 수 있다.


북한붕괴론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제발 공부 좀 하라!'고 말해주고 싶으나, 북한 전문가들이 북한 역사도 공부하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사실 그들은 다 알고 있다. 북한이 살아남았으며, 앞으로도 살아남을 것이란 사실을. 그러나 그들에게 그러한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북한은 망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우리나라 국민들이 계속 믿어줬으면 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왜 핵을 개발하는지, 왜 포기하지 않으려 하는지 뻔히 알면서도 대책없이 '비핵화'만 말하는 것, 혹은 도대체 통일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 구체적인 청사진은 하나도 제시하지 않은 채 '통일은 대박' 따위의 속 빈 구호를 외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남북관계나 북한의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나 전망은 최대한 흐리고, 북한 체제에 균열이 보인다는 자극적인 소문을 퍼뜨리면서, '악마국가 북한'과 '마침내 승리할 대한민국'이라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프로파간다를 이데올로기화하고, '이대로만 가면 북한은 끝이다!'는 식의 근본없는 안도감을 조장하는 것이다. 이같은 국가적 무지(無知)를 강화하는 이 이데올로기만 있으면 북한붕괴론은 영속할 것이며, 우리나라의 '특정 세력'은 이를 무척이나 좋아하지 않는가?


세계적인 평화학자인 요한 갈퉁은 한 인터뷰에서 "북한붕괴론이 북한보다 먼저 붕괴할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 말을 듣고 "북한붕괴론을 말하는 사람들이 북한붕괴론보다 먼저 붕괴할 것"이라는 문구를 떠올려보았다. 후자가 더 매력적이다.

추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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