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으로 인한 불안이야말로 문학의 시작, 이라고 그는 말했다. 40여년을 ‘청년작가’로 살아온 그에게 찾아온 자유는 오히려 그에게 걸림돌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이혼’을 꿈꾸었다고 했다. 어느 날 밤, 서재에서 내려와 아내에게 이혼을 하자, 라고 말을 하려 안방으로 왔는데 침대위에 누워있는 아내를 보고선 그런 생각이 쑥, 하고 들어가 버렸다. 침대위엔 예전에 사랑했던 여자는 온대 간대 없고 육십 대 중반의 볼품없는 통자 몸매의 여자가 있었다. 그는 아내의 얼굴을 보며 지금까지 이룬 것보다 이루지 못한 것들이 떠올라서 차마 이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없다고 하였다. 바로 이런 것이 사랑이 아니었을까, 라고 그는 느꼈다. 상대방이 얻은 것보다 잃은 것에 대해 생각을 하는 것, 환한 면 대신 그늘진 곳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었다.

 

자기갱신自己更新, 자기변혁自己變革. 삶의 본질적인 가치향상을 위해선 이런 것들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청춘이 아닌가. 비록 생물학적인 나이는 70세의 노인일지 몰라도 자신의 마음속에 아직도 이런 불씨가 살아있는 한은, 자신은 청년이고 아직도 청춘이라고, 그는 말했다.

 

*

 

결혼을 한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은 딸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버지, 사랑의 끝엔 무엇이 있을까요. 제 어미가 걱정을 할까봐 딸은 아버지에게만 연락을 했다. 아마도 애비가 유명한 작가이기도 해서 그런 것이었으랴. 고심을 한 끝에, 사랑의 끝엔 우의만이 남는다고 답신을 해주었다. 하지만 딸애는, 답장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 그는 설거지를 하고 있는 아내에게 물었다. 사랑의 끝엔 무엇이 있을까요. 아내는 그릇을 내팽겨 진채 이렇게 말했다. 있긴 뭐가 있어요. 사랑의 끝엔 사랑이 있지. 그는 무언가로 크게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고 그 내용을 딸애에게 보냈다. 몇 시간에도 답신이 없던 딸애는 어머니의 의견을 듣자마자 아주 큰 도움이 되었어요, 라고 했다.

 

사랑이란 잘츠부르크Salzburg의 암염巖鹽이다, 라는 말이 있었다. 잘츠부르크의 암염은 어둠과 시간의 합작품이다. 유기물들이 깊은 어둠과 시간을 헤쳐야만 암염이 될 수가 있었다.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긴 어둠과 시간을 이겨내야만이 진정한 사랑으로 도달 할 수 있었다.

 

그는 결혼의 단계를 삼단계로 생각했다. 첫 번째 단계. 낭만주의. 이 시절의 결혼생활은 연애의 연장선이다. 부부싸움은 장미꽃 한 송이나 맛좋은 포도주 한 잔만으로 풀어질 수 있다. 두 번째 단계는 리얼리즘. 아이를 낳고 아파트에 대한, 시부모님에 대한, 아이에 대한 현실적인 삶이 펼쳐진다. 이 단계의 싸움에서는 돈이 최고의 협상 카드다. 마지막 단계, 인간주의. 이 단계에는 여유롭다. 여유롭다 못해 고요하다. 싸움도 없는 대신 낭만도 없다. 그는 40년의 결혼생활을 통해 자신이 인간주의의 단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랑의 끝은 사랑이죠, 라는 아내의 말을 듣고나서 생각했다. 아내는 아직까지도 첫 번째 단계인 낭만주의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부끄러움이 들었다.

 
*

 

히말라야에서는 노새들이 짐을 옮긴다. 몸집이 작은 노새들은 낭떠러지의 길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60킬로그램이 넘는 짐을 굽은 등에 얹은 채 한 발 한 발을 벌벌 떨며 땅 위를 걸어간다. 일 년에 꼭 한 번 히말라야에 가는 그는 어느 날 그 노새들을 보고 울음이 났다. 노새들은 부모님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이 세상에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들은 많지 않다. 그는 오늘만은 아버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태어난 그들은 가난을 등에 맨 채 살아왔다. 어떻게든 그것에서 탈출하기 위해 야수적野獸的노동을 했다. 압축성장壓軸成長을 통해 한국은 역사상 가장 단시간에 급속성장急速成長을 했다.

 

현 사회에 팽배해져 있는 부정부패가 그들의 어두운 면이라고는 하나, 우리가 지금 모두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고, 소비적인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것은 그 시대의 그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꿈을 생각해보지도 못한 채 노동을 했던 그들. 그들은 이제 그들의 다음세대들이 홍대에나 강남등지에서 한 잔에 만원이나 하는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15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베란다에서 담배 한 개비도 쉬이 피지 못하는 처지에 몰려버렸다.

 

어머니, 아버지란 단어는 아름답긴 하나, 그것에는 잔혹함이 있다. 무조건 적인 헌신, 돈을 벌어다 주는 기계. 60억 명의 사람 중 하나가 아닌 단지 한 단어로 그들의 규정해버리는 것. 그것은 분명한 잔인함이었다. 그래서 그는, 우리에게 권했다. 침대에 누워서 당신 부모님의 이름을 한 번 불러보라고. □□씨, △△씨. 母와 父로써의 인생이 아닌 그들 이름으로써의 인생이 그제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와 말이 통하지 않아요. 고집불통이에요. 어찌 보면 그것은 그들이 살아온 삶을 생각해본다면 당연하다. 야수적 노동을 하며 꿈을 버리고 오직 가난에서 탈피하기 위해 살아왔던 그들은 돈을 버는 방법은 배웠지만,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다. 그런 아버지에게 투정을 부리는 것보다 소통의 방법을 배운 그대들이 아버지를 이해하고 설득해고, 때론 칭찬하고 다그치는 것이 더 맞지 않는가. 늙는 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고통스럽고 쓸쓸한 것이다. 자식에겐 거대해 보이는 아버지들, 그들은 알고 보면 속이 빈 공룡일지도 모른다.

늙어가는 아버지의 등을 보라.

 

*

 

옛날의 청춘들에겐 ‘지상명령’이 있었다. 특명, 가난을 극복하라. 그들은 그 명령에 충실하게 따랐다. 하지만 현재의 청춘들에겐 이런 것들이 없다. 부자도, 그렇다고 가난뱅이도 아닌 지금의 청춘들은 너무나 쓸쓸하다. 대량소비와 자본주의는 그들에게 자본의 축적을 강요한다.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직장을 좇아갈 뿐. 오히려 옛 청춘들보다 못한 방황의 시기를 가지고 있다.

 

자기정체성이 중요하다. 20대엔 에너지가 있다. 왜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가. ‘지상명령’이 없다면 자신이 그것을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닌가. 별을 보고 공통의 별자리 대신 자신만의 별자리를 만들어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면 될게 아닌가. 이렇게 말하며 그는 조용히 자신의 청춘을 돌아보았다. 어둠만으로 가득 차있다고 생각했던 그의 청춘은 지금 와서 돌아보니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그땐 왜 그걸 몰랐을까. 그는 우리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보기엔 여러분들은 다들 빛나고 있어요.

 

‘아프니까 청춘’이 아닌 ‘아픈 것을 이겨낼 수 있으니 청춘이지’라는 말 또한 그는 강조했다.

 

구술문화口述文化는 생각하는 법을 잊게 한다. 자신의 별자리, 자신만의 지도를 만들려면 자신만의 생각이 필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확실한 문자가 존재하는 21세기는 오히려 구술문화의 장으로 변질되어버렸다.

 

글로 된 문장에서 생각하는 힘이 나오는 법이다. 진부한 소리 같겠지만 이는 곧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진리이기도 하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

 

일주일 전 오늘,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박범신’의 강연회에 다녀왔다. SBS에서 방송하는 프로그램인 아이러브人의 녹화방송으로써, 등촌동에서 진행된 것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이나 스포츠스타를 직접 보는 것처럼, 나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직접 보는 것을 평소에 갈망하고 있었다. 그런 탓에, 나는 국문과에서 박범신의 강연회 방청권을 준다는 소리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것을 신청했다.

 

자신을 ‘젊은 작가’라고 표상하는 60대 중반의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강연을 시작했다. 작년에 김애란의 강연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작가들의 강연회는 마치 책 한권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자신이 전하고 싶은 내용을 자신의 삶, 혹은 좋은 비유로 설명하는 것을 듣고 있을라치면, 마치 낭독소설朗讀小說을 듣는 듯 했다.

 

강연의 대주제는 힐링, 이자 청춘들에게 권하는 독讀한 습관, 이었다. 그는 이야기의 시작을 작가인 자신의 삶으로 시작했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40년을 같이 살아온 아내의 이야기로 ‘사랑’을 말했고, 이 시대의 늙은 아버지들을 말하면서 그들의 삶을 다시 돌아볼 것을 권유했다. 또, ‘아프니깐 청춘’이 아닌 ‘아픈 것을 이겨낼 수 있으니 청춘’이다, 라는 말을 전했으며 다시 문학이야기로 돌아와 자신에게 문학은 ‘목 메달아 죽어도 좋은 나무’라고 비유했다. 곧이어 현 사회의 문제점과 청춘들의 상태를 꼬집으며 1등만이 성공이 아니라는 말과, 우리는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 라고도 말하며 끝으로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시인들을 꺼내어보라고 권했다.

 

길어도 두 시간이면 될 것 같았던 강연은 무려 세 시간을 넘겼다. 내 왼편에 앉았던 다른 일행은 졸고 있었지만, 나는 그 세 시간이 마치 순식간에 지나갔다. 허리를 죄어오는 요통과 목을 뻐근하게 만드는 경통을 느낀 후에, 같이 강연회를 가준 지인의 손목시계의 시간을 확인해서야 열한시가 넘은 시각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의 강연을 들으며 느꼈던 건, 그의 생각이 나의 생각과 매우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평소에 생각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표현과 생각이 아직 깊지 못해 머릿속에서만 맴돌았던 것들을 강단 위의 그는 힘 있게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주장들을 획일화 시키는 강연을 좋아하지 않았다. 다양성을 해치고, ‘이러저러하게 하면 성공할 수 있다’ 내지는 ‘나처럼 될 수 있다.’라는 책들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소설 대신 올라와있는 것들을 보며 한숨을 쉬곤 했다. 그러나 그의 강연은 그렇지 않았고, 그의 세 시간 분량의 강연을 감히, 아주 압축적으로 말해본다면, 책을 읽고 생각하는 힘을 길러서 자신만의 계획을 만들어서 실천하라, 였다.

 

하지만 강연이 끝나고 있었던 질문시간에 나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가 그렇게 강연 내내 ‘생각하는 힘을 길러라’라고 넌지시 일러주었지만, 방청객들의 질문은 20대 중반의 대학생도, 30대를 맞은 회사원들도 결국은 제가 지금 청춘인데 힘든 점이 있어요, 어떻게 극복해야 될까요, 혹은 달려가다가 넘어졌는데 어떻게 하면 일어설 수 있을까요, 같은 그에게 일련의 ‘답변’을 요구하는 질문뿐이었다. 오히려 맨 처음 갓 스무 살이 된 여자아이가 그에게 물어보았던, 제 친구가 결혼을 지금 당장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라는 질문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깐, 결국은 이것이 누구의 문제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자신만의 생각을 하려는 것보단 ‘다른 사람의 생각’을 빌려 답을 구하려는 것 같아 보였다. 다양성을 중시하기보단 답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의 교육방식이 이미 너무 뿌리를 깊게 내린 것 같아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도 부끄러운 것이 하나 있었다. 얼마 전에 소설 하나를 드디어 완성시킨 덕분에 나는 무언의 만족감과 게으름에 빠져서 다른 글을 쓰는 것을 중단했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도 ‘이미 한 학기에 하나를 쓴다는 목표를 이루었으니 천천히 써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나태하게 지냈던 것이 사실이었다. 방전放電이 됐던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까. 충격요법이 필요했던 시점이었다. 그러다가 일주일 전 접한 그의 강연을 듣고 나서 충전充電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세 시간 동안의 강연을 들으면 피곤할 법도 했지만, 돌아가는 지하철안에서 나는 빨리 집에 가서 그의 강연회를 듣고 느낀 점을 써야 된다는 생각과 새로운 소설을 써야지, 라는 생각에 비로소 사로잡힐 수 있었다.

 

그의 강연회를 들으며 받은 책은 그의 문장집 <힐링>이었다. 앞서,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힐링’이라는 단어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가난과 불안에 시달렸던 전 세대들과 비교하면 우리는 얼마나 좋은 시대에 살고 있는가, 그들도 쓰지 앉았던 ‘힐링’이란 단어를 우리가 쓰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 역시, 이번에 <힐링>이라는 책을 썼지만, 자신도 아직 ‘힐링’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다만,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하고 살며 마음속에 있는 시인을 가두지 말고 꺼낸다면, 자신처럼 흡연과 음주를 하고 운동을 하지 않아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라고 역시나 ‘정답’이 아닌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그래서, 내가 앞서 썼었던 4개의 글은, 그의 강연회에서 필기를 했던 것을 토대로 재문장화再文狀化시킨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문장에 들어있던 단어들은 나의 것이 아니라 그의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다시 그 단어들을 문장으로 만든 것은 나였으니, 결국 단어는 그의 것이었을지는 몰라도 문장은 나의 것이 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강연을 갔다 오고 나서, 나는 정말 많은 것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강연의 여운은 아직까지 남아 지금까지 전해진다. 그의 문장집을 조금씩 읽으면서 더 좋은 문장을 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고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나이가 40살이나 더 젊은 내가 오히려 그에게 충전充電을 당했다. 아! 그야 말로 진정한 ‘젊은 작가’가 아니었는가.

 

- 2014. 5. 8

 

강연회를 갔다 온 지 벌써 1년이 훌쩍 넘었다. 흐릿하긴 하지만 아직도 둔촌동 홀에서 그의 강연을 듣는 나의 모습이 상상이 된다. 1년이 지날 동안 박범신은 한 두 개의 소설집을 더 냈고, 나는 훈련소를 갔다 온 뒤에 사회복무를 하고 있다. 그의 강연이후, 글을 다시 끄적거렸다. 완성된 초고를 세 개 정도 썼고, 하나가 마음에 들어 계속 수정하고 있다. 개인 블로그에 파묻혀 있던 글을 이렇게 다시 수면 위로 들어 올려본다.

 

End.


* 사진출처:
http://medicalworldnews.co.kr/data/news_image/1407/373fc446d570c09e6bababca531e6805_PI9atrG1.jpg

 


'[스펙트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일로 2편 - 진주  (1) 2015.08.13
17일~23일 내일로 여행 1편 [안동]  (0) 2015.08.05
질서를 잃다  (1) 2015.05.11
우회전愚回傳, 비보호雨保護 ⓶  (0) 2015.04.25
우회전愚回傳, 비보호雨保護 ⓵  (0) 2015.04.2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