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는 나의 즐거움?

나는 자발적 실업상태가 된 지 1주일째다. 실업상태라 돈이라고 하면 통장에 몇푼 뿐이기에 한번 돈 안 써보겠다는 마음으로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다들 말하듯이 집밖에 나가는 순간에 교통비-식사비-커피비 등 모든 것이 돈!돈!돈!이라 집밥만 먹는다. 우리 집이 텃밭을 가지고 농사를 지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서울에서 살았음 마트 가서 돈 쓰게 될 뻔 했다. 그렇지만 계속 물건을 사야하는 일들을 마주한다. 내 손에 있는 몇 백원이라도 소중한 나로서 물건 사는 것만큼 고민되고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인가?’를 끊임없이 물어본다. 지금은 물건 사는 일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는 것 같은데, 언제 경제행위를 하면서 즐거웠던 적 있었나?

지난 몇 년 간 소비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던 시절들이 생각난다. 편의점에서 짜잘하게 매일 사가며 내 입을 호화스러운 척하게 했고, 아무런 생각 없이 터덜터덜 걸어가다가 보이는 잡동사니를 샀고 휴대폰과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지만 멋져 보이는 것들을 사 모았다. 뭔가 허전함을 느끼며 자기 위로조로 ‘나를 위한 선물이야.’라는 식으로 소비해왔던 시절이 있었다. 과연 그 당시는 즐거웠고 나에게 도움이 되었을까?

소비가 즐거웠던 기억들: 관계 맺기
나는 사회에선 백조지만 집에서는 가사노동을 해야만 하는 집도비이다. 아직 며칠 되지 않아서 그런지 청소할 때도 계속 걱정과 고민뿐이다. 무심코 틀어 놓은 티비에서 ‘재테크 방법과 주식 변동’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잠시 걸레질을 멈추고 ‘저 방법 써먹을 정도 돈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 찰나에 내가 엄마들이 하는 혼잣말을 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내가 언제부터 돈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목을 맺나’는 생각이 불쑥 든다. 용돈을 받았던 초등학생때부터 인가? 아님 타지에서 대학입학 후 목돈이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인가? 알바를 하고 짧게 돈 벌어본 경험때문인가? 내 머리 속 기억들을 다 들어보아도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담 내가 가진 푼돈으로 즐겁게 쓰고 지냈던 적이 있었나?

내가 돈을 모아서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사거나, 가족들과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할 때 즐겁게 사용한 것 같다. 물리적으로 보이는 것을 소비함으로서의 가지게 된 만족감 말곤 없었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할아버지를 따라 아이스크림 사러가던 가게방에선 항상 더 많이 받아오는 기분이 들어 즐거웠다. 시골동네의 하나뿐인 가게방(슈퍼)는 마을사랑방같은 공간이어서 모든 거래는 외상과 호의로 이루어졌고 부수로 많은 교환활동이 가능했다. 어려서부터 돈으로 주고받는 관계라기보다는 가게방할아버지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지냈던 그 때 무엇인지 모를 따뜻함이 나에게 좋은 기억으로 자리잡혀있다. 또 일주일에 한번만 동네에 오는 순대오토바이할아버지는 내가 이사갔음에도 영역을 확장해 우리동네를 와줄 정도의 관계를 유지하며 초등학교시절 내 나의 순대를 담당하셨다. 그때는 무엇을 사러간다는 것은 부수적인 것이었고, 사람을 만나러 간다는 마음이 더 담겨 있어서, 사고 교환하는 것들이 참 즐거웠던 것 같다. 그 안에는 ‘우리가 함께 살아갈 사람이라는 믿음’으로 경제가 이루어지고 더 주기도 하고, 덜 주기도 하고 돈이 없으면 외상도 해주며 서로의 상황에 맞도록 돕고 지냈던 것 아닐까?

사람들의 관계 속 경제행위
우리 동네도 아파트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다들 시가지로 나가고 구멍가게가 없어졌다. 어느 순간 대형마트와 편의점이 생겨났다. 전에 비해 훨씬 깔끔하고 편리한 모든 것들이 갖춰져 있는 곳들에 둘러싸여 나도 살고 있다. 그런 곳일수록 돈으로만 모든 것을 평가하고, 직원들의 노동력도 서비스라는 차원으로 돈으로 환산하는 것이 쉬워지는 것 같다. 다시 돌아와 고향에서 지내다보니 누구도 가게방할아버지와 순대할아버지처럼 나를 기억해주지 않는다. 자신의 먹고 살기 위한 소비를 할 뿐이지. 이걸 건네주는 사람의 이야기, 생산자의 이야기, 이 물품의 역사에 관심이 없고 플라스틱를 위에 붙어있는 가격표만 본다.

백조로 돈을 펑펑 쓰며 끝없는 공허함을 채울 수 없다보니 나는 근원적 원인을 계속 들여다보게 된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어떤 곳에서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어가며 경제행위를 하고 있는 지’가 문제였다. 합리적 인간처럼 되라고 배운 모든 경제지식들이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법보다는 ‘돈’이라는 허상으로 나와 너를 분리하여 분절화 시키고 있었다. 내가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우리 동네는 경제적 인간보다는 사람다운 인간들이 살았던 곳이었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에 와서야 지저분하고 몇 품목이 없었던 가게방의 아이스크림과 비계를 더 많이 주던 순대모듬을 사먹고 싶고, 지금은 만날 수 없는 그분들과 일상 대화를 너무나도 나누고 싶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