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를 좋아한다. 처음으로 펼쳤을 때의 그 사각거리는 느낌과 손이 기억하는 각 페이지를 만나는 일은 그 무엇보다 설레는 여행과도 같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동안 일이 많아 책의 향기를 맡기는커녕 상상조차 할 수 없었고, 많이 읽어야만 쓸 수 있다는 글은 더 이상 써지지 않았다. ‘빅힙(Big Hip)’의 조합원임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고 싶어서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일도 자연스레 잦아들었다. 시작한 글들은 여러 건이었지만 이들은 시의성에 맞지 않거나 흥미가 떨어졌고, 더 이상 써지지 않았기에 완결을 지을 수 없어 뜨다 만 목도리처럼 남아있었다. 목도리가 필요치 않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다른 전환점이 필요했다. 아이러니하게 이런 상황에서 문득 나에게 있어 ‘글’이 어떤지 더 곰곰이 생각해보게 됐다.


한동안 Q&A북이 유행한 적이 있다. 답을 내리지 못하는 질문이 있을 때 그 책의 아무 페이지나 펴서 그 답을 찾고는 하는. 나는 이것의 또 다른 형태로 무작정 눈에 닿는 책을 주문하거나 구입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 답을 찾았다.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사실 이 두 권의 책은 읽는 중이다. 책을 읽고 난다면 더욱 깊은 맛이 나는 감상기를 쓸 수 있을 테지만 책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쓰는 글 또한 재미있게 여겨졌다. 동시에 ‘빅힙’을 다시 생각해본다. 나는 지금 낙서협동조합이라는 그 이름에 맞게 처음으로 낙서 같은 글을 흘려 쓰고 있다. 물론 세상에 이렇게 긴 낙서가 어디 있겠느냐만 어쨌든 나는 지금 즐거운 낙서질 중인 것이다.


다시 돌아와 글을 쓰라는 책의 암묵적인 지시에 맞춰 나는 ‘글’을 다시 생각해보면, 글은 오랜 시간 동안 도피처와 같았다. 집과 학교를 나와 갈 수 있는 한정적인 공간이었던 도서관, 그 심리적인 불안을 묵묵하게 눌러준 낡은 사그락거림, 그리하여 흘러가던 시간들의 연속. 내가 없는 삶에서 유일하게 그 사그락거림만이 명확한 존재감을 드러냈고, 유일하게 색채가 생생한 순간인 것 같았다.


운명처럼 처음으로 해본 과외도 독서와 토론이었고 학창시절 내내 편집부와 문예부에서 활동했다. 간혹 동생처럼 요트를 타거나 UCC를 제작하는 등 동적인 활동을 꿈꿔보기도 했으나 나에게 유일한 안식처는 글이었으므로 다시 정적인 활동으로 숨어들어가곤 했다. 


숙명처럼 그런 학과로 진학해 장난 같은 글쓰기를 지나 다시 운명처럼 정착한 직장에서도 글을 쓰고 있다. 그것은 하고 싶은 글이기도 했으며 그렇지 않은 글이기도 했다. 숨어지지 않는 글을 나열하며 한동안은 모든 것을 날린 디스켓처럼 허망했고, 보잘 것 없음에 슬퍼했다. 그렇다, 무려 디스켓이다. 고작 2메가도 되지 않는 1.44메가 짜리의 보잘 것 없음에 나는 종종 괴롭고 혼란스러워했다.


흘려 쓰고 싶어 시집의 아무 페이지나 펼쳐본다. 무려 제목이 「꿈과 꼬리」.



 사라지는 꼬리 속에 있었다. 바닥으로 긴 동물이 지나가고 있었다. 바닥 없는 바닥이었다. 흔적 없는 흔적이었다. 고개를 돌리면 꼬리 속에서 고개를 돌리는 꿈속이었다. 꿈은 번지고 뒤늦은 자리는 허공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마음을 따라 사방으로 나아갑시다. 마음의 목소리를 따라 오늘을 놓아둡시다.

- 이제니, 『그리하여 흘려쓴 것들』 중 「꿈과 꼬리」



활자로 위안을 받는다는 것은 오묘한 일이다. 사람의 스킨십과는 다른 따뜻함이며, 다른 종류의 위안이었다. 오롯이 책과 나만 존재하는 작고, 낡은 나의 도피처 속에서 알 수 없는 위안을 얻는다. 그리하여 또 시간이 흘러갔고, 부정적인 감정 또한 사그락거림 속에서 사그라들곤 했다. 그리고 비로소 사부작거릴 마음이, 엉덩이를 들썩거릴 욕구가 생겨나곤 하는 것이다. 그래서 흘려 쓴다. 가는 바람에도 이는 잎사귀마냥 자연스럽게.


재미있게도 또 다른 책의 첫 시작은 ‘민들레씨를 불어라’라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든 하고 싶은 대로 자연스럽게 시작하면 된다는 것. 민들레씨를 부는 일은 사소하지만 그 씨앗은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또 다른 꽃을 피울 것이다. 내 삶이 달그락거리는 중에서도 계속 사그락, 사부작대며 살아왔듯이. 



한 번도 살지 않았으니 이제부터 살아도 좋지 않을까요. 사라지는 꼬리 속에 있었다. 울지 않는 얼굴들이 사라지는 꿈속이었다.

- 이제니, 『그리하여 흘려쓴 것들』 중 「꿈과 꼬리」



실체가 없는 어둠 속에서 발을 잘못 디뎌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나는 불안정한 꿈을 종종 꾸곤 했다. 행복한 글을 쓰지 못해서 작품에서 인물은 종종 죽음을 맞이하곤 했다.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시는 결국은 아무도 이해시키지 못했고, 한동안은 또 글을 쓰지 못한 채 같은 꿈을 꿨다.



이제 다시 민들레씨를 분다.

언젠가는 내가 쓴 글의 사그락거림에 위안 받는 내가 있었으면 한다는 꿈도 같이 불어넣으며, 아주 긴 한숨을 담은 글을 흘려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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