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좋아하시나요? 종류도 많고, 어딜 가든 라면 파는 곳은 꼭 있습니다. 며칠 전, 한 조사에서 우리나라가 라면 소비 세계 1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참 별걸 다 1등 하는 나라입니다) 국민 1인당 1년에 74개를 먹는다고 하니, 짐작되시나요?

뜨끈한 붉은 국물에 노란 면발로 우리의 ‘해장’ 혹은 ‘허기’를 단박에 해결해줍니다. 그 국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매운 군침을 삼키게 됩니다. ‘얼큰한~’, ‘매운~’ 과 같은 컨셉이 절대다수의 입맛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단아가 나타났습니다. 오늘 전해드릴 이야기, 바로 ‘하얀 라면’입니다.

 

 으레 라면 하면 떠오르는 것은 붉은 국물입니다. 1963년, 라면은 국내에 도입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맵고 얼큰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마케팅도 그렇게 진행해왔죠. 우리의 입맛이 매운맛의 선호가 강하여, 이에 따른 시장 전략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라면은 ‘맵다’라는 인식이 저변에 깔릴 때쯤 틈새를 파고든 것이 바로 ‘하얀 라면’이었습니다. 그 시작은 1988년 출시된 농심의 [사리곰탕 면]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매운맛이 아닌 구수한맛이 일품이죠. 출시된 연도를 보니, 생각보다 꽤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시장에 굳건히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답은 광고에 있습니다.


사리곰탕 면, '하얀 라면' 시대를 열다



“아침 굶지 마세요. 농심 사리곰탕면”(1988, 농심)

 

 제품 출시 직후에 만들어진 광고입니다. 30초라는 짧은 시간에 ‘아침’이라는 말이 6번이나 들어갑니다. 맛에 대한 언급은 아예 없습니다. 광고에는 바쁜 가족이 아침 식사를 사리곰탕을 허겁지겁(?) 먹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기서 포지셔닝(Positioning)의 묘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굳이 국역하면 ‘위치 잡기’랄까요? 시장에서 혹은 소비자의 마음의 적절한 한구석을 고유한 자리로 만들기 위한 전략을 말합니다. 소비자 뇌리에 잘 인식되기 위한 자리 잡기인 셈이죠.
이미 달아오른 기존 라면 시장에서 사리곰탕은 새로운 포지셔닝을 시도한 것입니다. 라면은 더 이상 기호식품이 아니라, 바쁜 현대인에게 건강을 위한 아침밥 대용 식사. 자극적이지 않고, 설렁탕처럼 든든한 한 끼를 제공하겠다는 어필이었죠. ‘사리곰탕’은 그렇게 시장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이후 비슷한 제품들이 출시되었지만, 거기에 흔들리지 않고 지금까지 꾸준히 판매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저 광고 이후로, 사리곰탕 광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추가적인 광고 없이도 이미 소비자의 뇌리에 굳혀졌다는 방증인 셈이죠.

 

 ‘하얀 라면’ 시장을 개척하고 제패한 사리곰탕에게, 세월이 흘러 이제 그 아성을 넘을 도전자가 나타납니다. 마치 오랜 한나라 천하에서 위, 촉, 오의 세력들이 등장한 삼국지처럼, 삼양의 [나가사끼 짬뽕]과 팔도의 [꼬꼬면], 그리고 오뚜기의 [기스면]이 속속들이 등장한 것입니다. 2011년, 이들은 저마다의 개성으로 ‘하얀 라면’에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이 세 라면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하얀 라면’이면서, 동시에 칼칼하다(혹은 시원하다)라는 어필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하얀 라면은 맵지 않다’라는 관념을 도전하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그러나 광고를 통한 소비자에게 접근하는 방식은 각기 다릅니다.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나가사끼 짬뽕, 세밀한 소비자 중심 광고



“입맛은 정직하다. 나가사끼 짬뽕”(2011, 삼양)


 기존 ‘하얀 라면’ 시장에 가장 먼저 나타난 도전자는 삼양사의 ‘나가사끼 짬뽕’이었습니다. 일본의 중화풍 음식 ‘나가사키 짬뽕’을 우리 입맛에 맞게 나온 제품입니다.(원래 나가사키 짬뽕은 맵지 않다고 합니다) 광고는 시리즈로 4편이 제작되었는데, 모두 일반인이 광고 모델로 등장했죠. 경쟁사 사이에서 유일하게 일반인을 모델로 썼다는 것은 다소 파격적인 시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유명인 모델을 기용한 광고가 소비자에게 제품 브랜드 인식이 좀 더 빠르 때문입니다. 브랜드가 모델의 인기에 쉽게 편승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꼬꼬면’과 ‘기스면’은 광고에 유명인을 등장시키는 것도 소비자에게 브랜드 인지를 쉽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광고에는 일반인이 메시지에 다가가는 유일한 연결고리입니다. 라면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죠. 그러니까 곧 광고를 마주한 우리도 그 ‘누구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광고에서 ‘누구나’에 해당하는 평범한 이들이 ‘입맛은 정직하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입맛은 정직하니까, 그 입맛은 거짓 없이 맛있는 것을 고르니까, 이 라면을 많이 먹는 것입니다’라는 메시지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소비자의 입장을 등장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제품과 연결하는 점이 절묘합니다. 소비자의 생각을 파악한 광고가 아마 많은 이들의 점심을 매혹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스타 마케팅의 표본, 꼬꼬면


 [나가사끼 짬뽕]이후 한 달 후에 출시된 것이 팔도 [꼬꼬면]입니다. 연예인 이경규 씨의 솜씨가 돋보인 라면이죠. 꼬꼬면은 솔직히 광고의 입장에서 다룰만한 점이 많이 없습니다. 광고보다는 입소문이 큰 위력을 발휘했고, 스타마케팅으로 이미 라면 시장에서 거대한 공룡이 되었으니까요. 출시 한 달 만에 1천만 개가 팔렸고, 판매사 팔도는 업계 2위까지도 넘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정도였다고 하니 상상이 가시나요. ‘없어서 못 팔정도’로 대단한 기세였기에, 오히려 광고는 솔직히 ‘뻔했다’라는 느낌이 다분합니다.

 



“담백, 칼칼 꼬꼬면”(2011, 팔도)


 스타마케팅의 가장 큰 장점은 브랜드를 소비자에 효과적인 각인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꼬꼬면은 ‘이경규가 직접 만들었다’라는 특수성까지 붙습니다. 이렇게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제품이기에 장황한 수식이 필요 없겠죠. 단지 광고 시리즈마다 분명한 메시지를 하나씩 심어놓습니다. 게시한 위 광고에서는 이경규 씨의 전문성을 은연히 잠재해놓았습니다. ‘4분 끓이고, 물은 500ml 넣을 것’이 별반 특이한 게 없어 보이지만, 개발자 이경규 씨가 멘트로 꼬꼬면에 특수성을 부여한 것입니다. 위의 광고보다 앞선 티저광고도 있었는데 메인카피는 ‘라면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었습니다. 기존의 라면과는 다른 새로운 라면임을 부각하였는데요. 어쩌면, 맛에 대한 자부심과 탄탄한 팬덤이 있었기에 가능한 광고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본질에 충실한 광고, 기스면



“청양초 맑은 라면, 기스면”(2011, 오뚜기)

 

 ‘하얀 라면’이 인기를 끌자, 후발주자로 들어온 제품이 바로 오뚜기의 [기스면]입니다. 이전 라면들은 다 여름에 출시되었다면, 이 라면은 11월, 겨울 무렵에야 출시되었습니다. 광고를 보면 아시겠지만, 처음부터 ‘하얗다’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나도 하얀 라면이야’라는 점을 어필한 것 같습니다. ‘나가사끼 짬뽕’과 대조적으로, 여기는 유명 연예인을 모델로 씁니다. 그것도 JYJ의 박유천 씨를 모델로 기용했네요. 아마, 10~20대 초반의 여성을 타깃으로 한 듯싶습니다. 이 광고에서는 제품 특징, 그러니까 맛에 대한 어필을 강하게 합니다. ‘맵다’, ‘맛있다’, ‘깔끔하다’ 등 30초 동안 맛에만 집중하였습니다. 참 솔직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광고의 정의를 ‘정보 전달’과 ‘설득’이라 배웠는데, 이 두 개념을 오롯이 담아낸 광고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소비자를 얼마나 자극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머리에 맴도는 카피나 메시지가 부족하다고나 할까요. ‘기스면은 이런 라면이다’라는 점을 뚜렷이 보여주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렇게 라면 시장은 계속 변화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하얀 라면’이 이제야 하나의 카테고리로 자리를 잡았는데, 요즘은 ‘굵은 라면’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동안 싸움을 관망하던 농심사가 주도권 회복을 위해 새로운 승부수를 던졌는데요. 여기서 또 어떤 경쟁자가 나타나고, 누가 이길지는 모르겠습니다. 승부를 판단해 줄 소비자는 그저 제 입맛대로 사 먹겠죠.

 

긴 글을 마치니, 이제 배가 고픕니다. 모니터로만 라면 광고를 연달아 봐대니 정말 미치겠습니다. 저는 김치에다가 라면 한 사발 해야겠네요. 여러분은 무슨 라면 드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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