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북한에 닥친 재앙 수준의 위기


북한 전 외교관인 태영호의 탈북 이후로, 정부부처부터 수많은 언론사들까지 북한에 드디어 망조가 보인다고 신이 나서 떠들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판단은 지극히 편협하다. 1990년대 북한은 지금보다 훨씬 심각한 체제 위기를 겪었으나, 이를 이겨냈다. 이것이 왜 가능했는지의 역사를 조금만 살펴봐도, 지금 창궐하는 북한붕괴론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알 수 있다. 더불어, 북한붕괴론이 얼마나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도 가늠할 수 있다.


1990년대로 돌아가보자. 민주화 운동과 극심한 체제 위기를 겪던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은 1989년부터 붕괴하기 시작했다. 폴란드, 헝가리, 동독, 체코,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등, 전통적인 북한의 우방 국가들이 사회주의 체제를 내팽개치기 시작했다. 89년 6월에는 중국에서 그 유명한 천안문 사태가 발생했다. 심지어 중국은 70년대 말부터 개혁개방 정책을 펼쳤는데도! 1990년에는 독일이 통일되면서 동독은 자연스레 붕괴되었다. 남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사실상 패배한 북한에게는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설상가상으로 1991년에는 사회주의 국가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소련이 마침내 해체되었다. 북한은 몇 년 사이에 세계에서 유례없는 외딴 나라가 되어버렸고, 이 즈음 북한붕괴론은 본격적으로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북한이 국제적으로 얼마나 심각한 위협을 느꼈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1994년 김일성 사망을 보도한 동아일보 지면. 김정일 체제가 안정적일지, 김일성의 죽음이 연사인지 피살인지 등을 다루는 기사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뿐만 아니었다. 북한은 80년대부터 전면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경제계획 실패와 각종 자연재해로 유례없는 경제난을 마주하고 있었으며, 사회주의 국가가 붕괴하며 외부 지원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경제 상황은 하루게 다르게 나빠지고 있었다. 중국과의 관계도 89년 중소 국교정상화를 계기로 상당히 껄끄러웠는데, 중국은 한 발 더 나아가 92년에 남한과 수교를 맺어버렸다. 북중관계는 그야말로 끝장난 지경이어서, 북중 접경지역에서는 총격전이 벌어질 정도였다. 국제적 고립과 경제난이라는 상황은 수습되기는커녕 끊임없이 악화되어 갔다.


더욱 엄청난 문제가 터졌다. 94년에 김일성이 사망한 것이다.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에는 배급제가 붕괴하고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 본격화되어, 북한 당국의 주민에 대한 법적·물리적·경제적·사상적 통제력이 상실되다시피 했다. 몇 십 만 명이 아사하기 시작하고, 주민들은 당국의 지시를 거부하고 자체적으로 살 길을 찾기 시작했다. 80년대까지는 남에서 북으로 가는 탈남 현상이 많았는데, 이 시기 이후에는 탈남 현상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대규모 탈북 사태가 벌어졌다. 김일성 사후 북한 지도층 내부에서 김정일이 무자비한 숙청을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고, 이는 김정일 정권이 불안정하며 지도층의 불만이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해석되었다. 97년에는 주체사상의 창시자인 황장엽마저 남측으로 망명하며 북한붕괴론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당시 북한이 처했던 상황은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더구나 당시에는 사회주의 국가 붕괴라는 실제적인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전 세계 모든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북한 또한 곧 붕괴하리라 예측했다. 그 어떤 학자나 정치인도 별 의심을 품지 않았다. 그런데, 북한은 살아남았다.


북한이 살아남은 이유


도대체 북한은 어떻게 살아남은 것일까?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주체사상의 힘이다. 여타 사회주의 국가들이 기치로 삼았던 사회주의(맑스-레닌주의, 스탈린주의, 모택동주의 등)과 북한의 주체사상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맑스-레닌주의, 스탈린주의, 모택동주의 등은 자기만의 영역과 사상을 공고히 구축했음에도, 맑스식 사회주의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스탈린조차 맑스주의를 뛰어넘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그런데 주체사상은 맑스식 사회주의라는 틀을 과감히 뛰어넘었다. 맑스식 사회주의 이전에 있었던 다른 사회주의들은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북한은 맑스주의를 과감하게 비판하며 주체사상을 치켜세웠고, 이를 통해 어버이 수령과 어머니 당에 대한 충성심은 종교적 신앙 수준으로 치달았다. 부모를 축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두 번째는 상호감시체계다. 주체사상이라는 명확한 삶의 이정표가 세워진 가운데, 북한은 주민들이 서로를 감시하게 하여 주체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상호감시체계로는 '생활총화제도'가 대표적이다. 북한 주민들은 학생, 직장인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이 때 자기반성과 더불어 필수적으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해야 하는데, 이 때 다른 사람의 잘못을 알고 있음에도 지적하지 않으면 죄가 된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잘 지적하거나, 이른바 반국가적 행위를 포착해내면 큰 보상이 뒤따랐다. 주체사상이 생각을 묶는 족쇄였다면, 상호감시체계는 행동을 묶는 족쇄였다.


세 번째는 김정일의 지도력이다. 90년대 당시 북한이 처했던 상황은 단순한 위기가 아니라, 트라우마로 남을 만큼 엄청난 충격의 연속이었다. 재앙처럼 닥치는 위기에 맞서 혼란스러운 정국을 수습하려면 정치력 이상의 능력이 필요했고, 김정일은 이를 정확히 간파했다. 김정일은 마치 악단의 지휘자처럼 북한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김정일은 사회주의국가의 붕괴는 사회주의와 주체사상으로 철저하지 무장하지 못한 가운데 불순한 책동세력이 활개쳤기 때문이므로 사상을 더욱 강화하라고 주문했다. 91년에는 남측과 함께 UN에 동시가입하여 국제적으로 개별국가임을 확인하는 동시에, 불가침조약(91년 남북기본합의서)을 맺어 동요하는 지도층을 달랬다. 그리고 최악의 경제난에는 고난의 행군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고난의 행군은 김일성이 항일투쟁시절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을 견뎌야 했던 시절을 일컫는 말이다. 즉, 어버이 김일성이 인민을 위해 감내했던 시간을 생각하며 견디자는 감정적인 호소를 북한 주민들에게 던진 것이다. 김정일은 이외에도 주체사상을 발전시킨 선군사상을 계발하고, 법체계를 정비하고, 상호감시체계를 통해 쿠데타 시도를 저지하고, 필요한 경우엔 정치적 숙청도 서슴지 않으며 혼란을 차근차근 수습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북한은 살아남았다.


오늘날 김정은 정권이 불안정하다고 말해도, 김정일 시대만큼 불안정할까? 억압적인 정권이 또 다른 정권으로 바뀔 때 지도층의 이탈은 언제나 있어왔던 일이다. 90년대의 북한이 위기를 겪어내게 했던 힘인 주체사상과 상호감시체계는 여전히 유효하다. 물론 김정은의 지도력이 어떤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김정일 사후 지금까지는 지도력이 불안정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


북한보다 먼저 붕괴할 북한붕괴론의 실체


물론 북한이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식으로 확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과 북한의 역사를 살펴보면 북한이 망하리라는 주장이 얼마나 근거없는 것인지 알 수 있다.


북한붕괴론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제발 공부 좀 하라!'고 말해주고 싶으나, 북한 전문가들이 북한 역사도 공부하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사실 그들은 다 알고 있다. 북한이 살아남았으며, 앞으로도 살아남을 것이란 사실을. 그러나 그들에게 그러한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북한은 망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우리나라 국민들이 계속 믿어줬으면 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왜 핵을 개발하는지, 왜 포기하지 않으려 하는지 뻔히 알면서도 대책없이 '비핵화'만 말하는 것, 혹은 도대체 통일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 구체적인 청사진은 하나도 제시하지 않은 채 '통일은 대박' 따위의 속 빈 구호를 외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남북관계나 북한의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나 전망은 최대한 흐리고, 북한 체제에 균열이 보인다는 자극적인 소문을 퍼뜨리면서, '악마국가 북한'과 '마침내 승리할 대한민국'이라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프로파간다를 이데올로기화하고, '이대로만 가면 북한은 끝이다!'는 식의 근본없는 안도감을 조장하는 것이다. 이같은 국가적 무지(無知)를 강화하는 이 이데올로기만 있으면 북한붕괴론은 영속할 것이며, 우리나라의 '특정 세력'은 이를 무척이나 좋아하지 않는가?


세계적인 평화학자인 요한 갈퉁은 한 인터뷰에서 "북한붕괴론이 북한보다 먼저 붕괴할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 말을 듣고 "북한붕괴론을 말하는 사람들이 북한붕괴론보다 먼저 붕괴할 것"이라는 문구를 떠올려보았다. 후자가 더 매력적이다.

추재훈



참을 수 없는 '주체'의 가벼움



▲  새누리당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홍보하기 위해 10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대로변에 걸었다 떼어낸 현수막을, 14일 저녁 다시 내걸었다. ⓒ 오마이뉴스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학생들이 배우고 있습니다." 


'주체사상을 배우는 학생'은 필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필자는 김일성 주체사상만을 배우지는 않았다. 김정일 주체사상, 김정은 주체사상까지 다 배웠다. 주체사상의 내용은 물론 주체사상의 역사까지 세세히 공부했다. 지금 필자의 말을 듣고 독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필자가 주체사상을 공부한 이유는 간단했다. 무엇보다 주체사상을 알아야 북한을 알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필자는 동국대학교 북한학과를 다닌다. 


필자가 주체사상을 공부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대번에 '뜨악'하는 표정을 짓거나 "그럼 북한을 옹호해?"하고 묻는다. 직접적으로 "빨갱이야?"하고 비꼬는가 하면, 군필자인 필자에게 "군대 헛 갔다왔네"고 말하기도 했다. 필자가 평소 북한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따금씩은 누구에게나 불편한 정치적 이야기를 꺼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표정과 눈빛을 통해 깨달은 사실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주체사상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주체사상을 공부한다'는 말을 곧 '주체사상을 믿고 따른다', 혹은 '주체사상을 믿고자 하고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였다. 필자가 말하는 공부는 후자의 의미를 전혀 담고 있지 않고, 순수하게 그 의미와 역사를 알아간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부가적인 설명을 덧붙여야만 사람들도 '아~' 한다. '네가 그 정도는 아닐 줄 알았어'하는 안도감과 함께. 물론, '그래도 그건 아냐'라며 극도의 거부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온건한 것, 불온한 것


한국의 공부는 온건한 공부와 불온한 공부의 두 갈래로 나뉜다. 온건한 공부는 불온하지 않은 공부이고, 불온한 공부란 국가비판적 공부다. 불온한 공부의 3대 대명사가 바로 공산주의, 사회주의, 주체사상이다. 누군가 경제학의 케인즈주의를 공부한다고 해서, 아무도 그를 '케인즈주의자'라고 일컫지 않는다. 하지만 불온한 공부의 3대 대명사는 다르다. '저 공산주의 공부해요'라고 말했다간, 근처에 있는 할아버지에게 등짝을 얻어맞기 딱 좋다. 그것이 불온한 공부기 때문이고, 앞서 말했듯 불온한 공부는 불온한 사상을 내면화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주체사상은 결과적으로 '수령절대주의' 사상이다. 주체사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모를지언정, 그것이 수령절대주의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주체사상을 실제로 공부해본 결과, 그것이 수령절대주의라는 사실은 더 명확해졌을 뿐이다. 고등교육과정 정도를 거친 누구라도 주체사상을 공부해 본다면, 그 부정적인 진실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주체사상은 아직까지 금단의 영역이자 악의 성지다.


시민사회와 언론도 이 금단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새누리당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주장하기 위해 '주체사상'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들고나왔을 때, 시민사회와 언론을 중심으로 한 반대파는 크게 두 가지의 비판을 했다. 첫째,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 그럼 역사교육을 받은 한국 청년이 전부 주사파냐? 둘째, 그래, 역사교과서에서 주체사상 가르친다. 북한의 현실을 명확히 꼬집을 수 있도록 잘 가르치고 있다. 새누리당이 주체사상 운운하는 데에 대하여, '우린 너희가 생각하는 종북좌파가 아니야!'라고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와 보수단체 회원들이 10월 30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찬성하며 친북 반국가 교과서 집필진 퇴출을 촉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가장으로서의 국가, 식솔로서의 시민


이런 비판의 방향이 틀린 것은 아니다. 실제로 모든 반대파가 종북좌파가 아니기 때문이고, 또한 합리적인 비판을 하고 있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반대파를 '종북좌파'나 '빨갱이'의 사상프레임 속에 가둬놓으려고 하는 것은 진부하기까지 한 전략이다. 하지만 그들이 끊임없이 '종북프레임' 전략을 구사하는 이유는, 이 전략이 먹혀 들기 때문이다. 단순히 새누리당 집권층을 공고히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반대파 또한 그 프레임 속에서 흔들리기 때문이다. 


미국 미시건 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인 리처드 니스벳은 그의 저서 <생각의 지도>에서 "한국과 북한을 비교하고 서로의 장단점을 논하는 논쟁이 벌어진다면 모두가 한국의 우월성을 인정할 것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논쟁의 전통이 없는 한국인에게는 옳은 주장이 결국 승리하리라는 신념이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한국 정부는 북한에 관한 정보로부터국민을 '보호'하고자 했고, 북한에 관한 어떠한 형태의 정보도 공개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이는 오늘날의 한국과 오늘날의 한국시민들도 마찬가지다. 


'종북' 담론은 반국가적 세력에 대한 국가의 무제한적 탄압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종북 담론은 옳은 사상을 가진 국가가 사상적으로 미성숙한 시민을 보호한다는 식의 가부장적 기제와 닿아 있다. 새누리당은 '주체사상 학습'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주사파의 부활을 암시했다. 주사파의 부활은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비상사태일 뿐만 아니라, 미성숙한 시민들에 대한 사상적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북한이라는 적을 앞에 둔 상태에서, 국가는 또 한 번 아버지로서의 존재를 꿈꾸고, 시민은 '아버지, 저희 그런 거 아니에요!'하고 외치며 기겁하고 있다.



주체사상 배우면 어때서? 내가 너보다 북한 비판 잘할 걸?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라는 말이 아직 대한민국 사상공간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국가는 물론 시민조차도, 시민 개개인이 자신의 합리적 사고를 통해 북한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리라고 믿지 않는다. 지금의 한국사회는, 아직도 "주체사상 배우면 어때서?"라는 질문에 극도로 조심스럽다. 1980년대 민주화 세력의 한 축을 담당했던 이른바 NL계열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핵심적으로는 그건 그 질문에 응당 따라나올 '북한이 말하는 거니까', '북한에 동조하려고?'식의 비논리적인 비판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물어봐야 한다. '일본의 다케시마 주장을 읽으면 거기에 동조하게 되니? 중국의 동북공정을 공부하면 고구려를 빼앗기니? 그건 바보지.' 새누리당의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주체'적 정치논리에 끌려다니지 말고, 합리적이며 전면적으로 되물을 수 있어야 한다. "주체사상 배우면 어때서?"라고, "대한민국 시민이 주체사상을 공부한다고 주체사상에 빠져버릴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고.


주체사상을 공부하다 보면 북한 김씨 일가의 연설이나 담화를 접하게 된다. 1955년 12월 28일 김일성은 "당사상사업에서 교조주의와 수정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데 대하여"라는 연설을 통해, 북한식의 주체적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1992년 1월 3일 김정일은 "사회주의건설의 력사적 교훈과 우리 당의 총로선"이라는 담화에서 배신자들의 반동적 궤변에 의해 사회주의국가들이 몰락하고 있다고 외쳤다. 


지난 10월 10일 김정은은 당창건기념일 연설에서, 인민은 당을 어머니처럼 무한히 신뢰해야 하여 일심단결해야한다고 말했다. 이틀 뒤인 10월 12일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자 "하나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주체사상 배우길 참 잘했다.



(본 글은 2015년 10월 26일 오마이뉴스에 게재되었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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